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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브위키 - 사용자 기여 [k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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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습장:Eiffel/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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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3T11:49:4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lt;/p&gt;
&lt;hr /&gt;
&lt;div&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text-align: left; font-size: 10.5pt; border: 2px solid #009ee3; float: right;&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text-align: center; height: 200px;&amp;quot; | [[파일:한나라 세로.png|2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09ee3 20%, #0b318f 80%, #0b318f); color: #fff;&amp;quot; | 한나라당&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영문 명칭&lt;br /&gt;
| Hannara Party&amp;lt;br&amp;gt;Grand National Party&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한문 명칭&lt;br /&gt;
| 한나라黨&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슬로건&lt;br /&gt;
| &#039;&#039;&#039;{{글씨 색|#009ee3|Salus populi suprema lex esto.&amp;lt;br&amp;gt;국민의 안녕이 최고의 법이 되어야 한다.}}&#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등록연월일&lt;br /&gt;
| 2025년 3월 1일&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소 소재지&lt;br /&g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multimaps: 37.530299,126.919577 | height = 150px | zoom = 15}}&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86, 5~8층&amp;lt;br&amp;gt;(여의도동, B&amp;amp;B타워)&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대표&lt;br /&gt;
| [[백강혁 (찬란)|백강혁]] &amp;lt;sub&amp;gt;/ 초선 (24대)&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원내대표&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총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위의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국회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20.4%, transparent 20.4%);&amp;quot; | &#039;&#039;&#039;102석 / 500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광역단체장&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기초단체장&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광역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기초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색&lt;br /&gt;
| &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09ee3; font-size: 0.9em&amp;quot;&amp;gt;{{글씨 색|#FFFFFF|하늘색 (#009ee3)}}&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b318f; font-size: 0.9em&amp;quot;&amp;gt;{{글씨 색|#FFFFFF|파란색 (#0b318f)}}&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연구소&lt;br /&gt;
| [[한나라연구원 (찬란)|한나라연구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후원회&lt;br /&gt;
|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중앙당후원회}}&#039;&#039;&#039;] &amp;lt;sub&amp;gt;(대표자: [[고동진 (찬란)|고동진]])&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원 수&lt;br /&gt;
| 223,488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으뜸당원 수&lt;br /&gt;
| 72,560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당보조금&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비 수입&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재산 총액&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가&lt;br /&gt;
|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공정과 기회 도약의 꿈 이뤄가며}}&#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링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대한민국]]의 제3지대 중도정당. 제n대 국회의 제3당이다.&lt;br /&gt;
&lt;br /&gt;
[[2024년 윤석열 내각 의료대란]]으로 서울 oo병원의 권역외상센터장인 [[백강혁]] 주도로 창당되었으며, [[김동연]]의 [[새로운물결]], [[조정훈]]의 [[시대전환]], 그리고 [[네이버]] CEO 출신의 [[한성숙]]과 [[최휘영]]을 영입하면서 선거 직접 급속도로 세를 불렸다.&lt;br /&gt;
==창당 배경==&lt;br /&gt;
한나라당 창당의 직접적 배경은 [[윤석열 내각]]의 누적된 복합적인 국정 위기였다. 윤석열 내각에서의 의료 시스템 붕괴는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었는데, 전공의 이탈과 지방 의료 공백의 장기화, 응급·외상 의료 체계의 사실상 마비 상태가 수년간 지속되었음에도 내각이 실효성 있는 대응을 내놓지 못하였다. 이 과정에서 00병원 권역외상센터장으로 이름을 알린 [[백강혁]]이 의료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개 비판하며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여기에 경제 위기와 물가 폭등이 겹쳤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고환율이 맞물리며 서민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급격히 하락했고, 정부의 물가 안정 대책은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공공요금 인상, 식료품 가격 상승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며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었다. [[민주당]]과 [[한국경제당]]은 이 위기 국면에서 근본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lt;br /&gt;
&lt;br /&gt;
백강혁 교수는 오랜 기간 정치 참여 의사를 공개적으로 부정해왔다. 그러나 2024년 하반기부터 의료 붕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그의 입장이 변하기 시작했는데, 측근들에 따르면 백강혁은 &amp;quot;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이제 시스템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amp;quot;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전해졌다.&lt;br /&gt;
&lt;br /&gt;
2025년 초 복수의 정치권 인사들이 영입 제안을 해왔으나 백강혁은 기성 정당 합류를 거절하며 &amp;quot;기존 정당의 문법으로는 기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amp;quot;는 이유로, 독자 창당 결정은 2025년 2월 중순 외부에 처음 알려졌으며 정치권 안팎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lt;br /&gt;
==성향==&lt;br /&gt;
[[대한민국]]의 중도개혁보수 정당이다. 전반적으로는 한국 정치 지형 내 보수에서 중도, 그리고 일부 개혁적 중도진보 인사들까지 아우르는 포괄정당적 성격을 일부 지닌다.&lt;br /&gt;
&lt;br /&gt;
양당제 특성상 세간에는 [[한국경제당]]에 비해 &#039;온건한 보수 정당&#039; 내지 &#039;개혁보수 정당&#039;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당의 정치 성향을 하나로 딱 잘라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창당 배경 자체가 기성 보수&amp;lt;ref&amp;gt;[[한국경제당]]&amp;lt;/ref&amp;gt;와 기성 진보&amp;lt;ref&amp;gt;[[민주당]]&amp;lt;/ref&amp;gt; 양측 모두에 대한 환멸에서 비롯된 만큼, 특정 이념 계열에 귀속되기보다 &#039;이념보다 문제 해결&#039;을 전면에 내세우는 실용주의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당 차원에서 스스로를 &#039;보수정당&#039;으로 규정하는 것에도 신중한 입장이며, 지도부 인사들이 일관되게 &amp;quot;좌우 논쟁보다 작동하는 나라가 먼저&amp;quot;라는 메시지를 발신해오고 있다.&lt;br /&gt;
&lt;br /&gt;
그럼에도 정강·정책의 전반적인 결을 살펴보면 한미동맹 강화, 원전 유지, 수능 중심 입시, 재정 건전성 중시 등 전통적 보수 가치에 가까운 정책들이 핵심 축을 이루고 있어, 중도개혁보수로 분류함이 적절하다. 다만 공공의료 국가책임제와 비정규직 보호 강화, 플랫폼 노동자 권리 보장, 국민소환제 도입 등 진보 색채가 있는 정책들도 상당수 포함하고 있어, 단순한 우파 정당으로 규정하기도 어렵다.&lt;br /&gt;
&lt;br /&gt;
타국의 정당들과 비교하면 [[프랑스]]의 [[앙마르슈]](현 르네상스) 창당 초기, [[독일]]의 [[자유민주당]](FDP) 일부 노선, [[일본 유신회]]의 개혁보수 성향 등과 부분적으로 유사하다는 평가가 있다. 국내 정치 지형에서는 한국경제당보다 진보적이고, 민주당보다는 보수적인 위치에 서 있다.&lt;br /&gt;
==강령 및 정책==&lt;br /&gt;
===강령===&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display:inline-block; width: 100%; border-top: 5px solid #009ee3; text-align: center; border-bottom: 2px solid #009ee3; padding: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225deg, #0b318f 33.5px, transparent 33.5px), linear-gradient(315deg, #009ee3 33.5px, #ffffff 33.5px); text-align: center&amp;quot;&amp;gt;&#039;&#039;&#039;{{+2|{{color|#009ee3|조용한 혁명, 새로운 10년}}}}&#039;&#039;&#039;&amp;lt;/span&amp;gt;&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display:inline-block; width: 100%; padding: 10px 15px; background: rgba(125,125,125,.03); border-bottom: 2px solid #009ee3&amp;quot;&amp;gt;&lt;br /&gt;
&#039;&#039;&#039;한나라당은 3·1운동의 자주독립정신과 대한민국 건국,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오늘에 이른 대한민국의 역사적 성취를 계승하고, 중산층과 서민, 그리고 이 나라의 시스템이 외면해온 모든 국민을 대변한다.&#039;&#039;&#039;&amp;lt;br&amp;gt;&amp;lt;br&amp;gt;우리는 노력하면 성장할 수 있는 나라,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는 나라, 일하면 먹고살 수 있는 나라를 원한다. 태어난 지역과 계층에 상관없이 기회가 열려 있고,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나라를 원한다. 기득권 카르텔이 아닌 국민 모두를 위해 작동하는 나라를 원한다.&amp;lt;br&amp;gt;&amp;lt;br&amp;gt;대한민국은 지금 세 가지 위기에 처해 있다. 의료가 무너지고 공공안전이 흔들리는 시스템의 위기, 물가 폭등과 경제 침체가 겹쳐 중산층이 붕괴되는 민생의 위기, 거대 양당이 경쟁하는 척하면서 기득권을 나눠 갖는 정치의 위기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위기는 서로 맞물려 있으며, 기존의 정치 문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amp;lt;br&amp;gt;&amp;lt;br&amp;gt;우리는 &#039;작동하는 나라, 모두의 나라&#039;를 꿈꾼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039;책임, 통합, 실용, 신뢰, 미래, 도전&#039;의 6대 가치를 추구한다. 우리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완전히 책임지는 나라, 지역·세대·계층을 넘어 국민이 하나로 연결되는 나라, 이념보다 문제 해결을 우선하는 나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정치가 실현되는 나라, 미래 세대에게 더 나은 대한민국을 물려주는 나라, 기득권과 관성에 맞서 끊임없이 개혁하는 나라를 만들 것이다.&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우리는 다음의 정책목표를 수립하고 이행한다.&amp;lt;br&amp;gt;&amp;lt;br&amp;gt;하나, &#039;국가가 완전히 책임지는 의료·공공안전 체계&#039;를 구축한다. 응급·외상·필수의료를 국가 핵심 인프라로 지정하고,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의료인이 법적 위험 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이다.&amp;lt;br&amp;gt;&amp;lt;br&amp;gt;둘, &#039;중산층 복원과 민생 회복&#039;을 실현한다. 물가 안정, 세금 인하, 생애주기별 복지를 통해 중산층을 두텁게 하고, 서민층이 중산층으로 도약할 수 있는 사다리를 복원할 것이다.&amp;lt;br&amp;gt;&amp;lt;br&amp;gt;셋, &#039;AI·반도체 중심의 혁신 성장&#039;을 선도한다. 미래 핵심 산업에 대한 국가적 투자를 확대하고, 재벌 대기업 중심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 공정한 혁신 생태계를 조성할 것이다.&amp;lt;br&amp;gt;&amp;lt;br&amp;gt;넷, &#039;중부담·중복지의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039;를 건설한다. 복지 확대와 재정 건전성을 함께 추구하며, 누구도 사각지대에 방치되지 않는 생애주기별 맞춤 복지를 실현할 것이다.&amp;lt;br&amp;gt;&amp;lt;br&amp;gt;다섯, &#039;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039;을 만든다. 비정규직 보호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보장할 것이다.&amp;lt;br&amp;gt;&amp;lt;br&amp;gt;여섯, &#039;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성장하는 균형 발전&#039;을 추구한다. 지방 의료·교육·산업 인프라에 집중 투자하고, 지방정부의 자치권을 확대하여 지역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이다.&amp;lt;br&amp;gt;&amp;lt;br&amp;gt;일곱, &#039;한미동맹에 기반한 강한 안보와 실용 외교&#039;를 추구한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자주국방 역량을 강화하고,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로 대한민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높일 것이다.&amp;lt;br&amp;gt;&amp;lt;br&amp;gt;여덟, &#039;에너지 안보와 탄소 감축의 균형&#039;을 실현한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균형 있는 믹스를 통해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고, 산업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는 단계적 탄소 감축을 추진할 것이다.&amp;lt;br&amp;gt;&amp;lt;br&amp;gt;아홉, &#039;입시 공정성과 교육 격차 해소&#039;를 실현한다. 수시 전면 폐지와 수능 중심 정시 단일화로 입시 공정성을 확보하고, 전일제 학교·기초학력 보장·국공립 유치원 확대를 통해 계층 간 교육 격차를 실질적으로 해소할 것이다.&amp;lt;br&amp;gt;&amp;lt;br&amp;gt;열, &#039;양당 카르텔을 해체하는 정치 개혁&#039;을 단행한다. 비례대표 확대, 국민소환제 도입, 불체포특권 폐지를 통해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고 책임 정치를 실현할 것이다.&amp;lt;br&amp;gt;&amp;lt;br&amp;gt;우리는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유능한 정당, 이념보다 현장을 우선하는 실용적 정당, 기득권이 아닌 국민을 위해 싸우는 개혁 정당이 되어야 한다. 한나라당은 당원과 국민의 모든 지혜와 힘을 모아 작동하는 나라, 모두의 나라로 나아갈 것이다.&lt;br /&gt;
==당 상징==&lt;br /&gt;
===당명===&lt;br /&gt;
* 한국어: 한나라당&lt;br /&gt;
* 영어: Hannara Party 또는 Grand National Party (GNP)&lt;br /&gt;
* 중국어&lt;br /&gt;
** 정체자(번체자): 大國家黨&lt;br /&gt;
** 간화자(간체자): 大国家党&lt;br /&gt;
** 표준중국어 발음&lt;br /&gt;
*** 한어병음: Dà Guójiā Dǎng&lt;br /&gt;
*** 중국어의 외래어 표기법: 다궈자당&lt;br /&gt;
*** 한국어 한자음: 대국가당&lt;br /&gt;
* 일본어&lt;br /&gt;
** 신자체 한자 사용: ハンナラ党&lt;br /&gt;
** 구자체 한자 사용: ハンナラ黨&lt;br /&gt;
** 발음 표기&lt;br /&gt;
*** 가나 표기법: ハンナラとう&lt;br /&gt;
*** 헵번식 로만자 표기법: Hannara-tō&lt;br /&gt;
*** 일본어의 외래어 표기법: 한나라토&lt;br /&gt;
&amp;lt;br&amp;gt;&lt;br /&gt;
당명 한나라당(한나라黨)은 [[백강혁 (찬란)|백강혁]] 교수가 직접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한은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수 관형사로는 &#039;하나의&#039; 라는 뜻으로 읽히고, 형용사로는 &#039;크다&#039; 는 의미의 옛말 &#039;하다&#039;에서 비롯된 표현으로도 읽히며, 한민족과한국을 뜻하는 &#039;한(韓)&#039;으로도 읽힐 수 있다. 이러한 중의적 의미에 따라 &#039;하나로 통합된 정당, 크게 성장하는 정당, 한민족과 한국의 정당&#039;이라는 뜻을 모두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백강혁은 창당 선언에서 이에 대해 &amp;quot;억지로 끼워 맞춘 게 아니라, 이 이름 안에 우리가 하려는 것이 전부 들어 있었다&amp;quot;고 밝혔다.&lt;br /&gt;
&lt;br /&gt;
백강혁은 창당 과정에서 &amp;quot;특정 계보나 계파를 연상시키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이름&amp;quot;이라는 점을 당명 선택의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공개적으로 밝혔으며 당명에 담긴 철학에 대해 백강혁은 창당 선언문에서 &amp;quot;3·1운동이 우리나라 사람 전체가 일어선 날이었듯, 한나라당은 한 나라 전체의 당이 되겠다&amp;quot;고 설명했다.&lt;br /&gt;
===당 상징색 및 로고===&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 100%; text-align: center; font-size: 10.5pt; border: 2px solid #009ee3; float: center;&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 #009ee3; color: #FFF; | {{+2|한나라당의 로고}}&lt;br /&gt;
|-&lt;br /&gt;
| style=&amp;quot;height: 200px; width: 50%;&amp;quot; | [[파일:한나라 세로.png|250px]]&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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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09ee3; color: #FFF;&amp;quot; | 세로형 로고&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09ee3; color: #FFF;&amp;quot; | 가로형 로고&lt;br /&gt;
|-&lt;br /&gt;
|}&lt;br /&gt;
로고의 심볼마크는 중앙의 아치형 문을 중심으로 바깥을 향해 퍼져나가는 푸른 동심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아치형 문은 기회·희망·미래로 나아가는 관문을, 동심원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모습과 함께 지역·세대·계층을 초월한 통합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상단의 넓은 곡선은 포용성을, 하단의 안정된 구조는 책임과 신뢰를 상징한다고 밝히고 있다. 색상은 짙은 남색에서 밝은 하늘색으로 이어지는 그라데이션을 사용하였는데, 푸른색은 신뢰와 미래를, 점진적으로 밝아지는 색의 변화는 대한민국의 지속적 발전과 희망을 의미한다고 한다. 당의 공식 상징 설명은 국민과 미래를 잇는 문&amp;quot;으로, 국민 모두에게 열려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밝혔다. 당이 표방하는 핵심 가치는 책임·통합·실용·신뢰·미래·도전이다.&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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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2&amp;diff=182312</id>
		<title>연습장:Eiffel/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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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3T11:30:0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당 상징색 및 로고 */&lt;/p&gt;
&lt;hr /&gt;
&lt;div&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text-align: left; font-size: 10.5pt; border: 2px solid #009ee3; float: right;&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text-align: center; height: 200px;&amp;quot; | [[파일:한나라 세로.png|2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09ee3 20%, #0b318f 80%, #0b318f); color: #fff;&amp;quot; | 한나라당&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영문 명칭&lt;br /&gt;
| Hannara Party&amp;lt;br&amp;gt;Grand National Party&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한문 명칭&lt;br /&gt;
| 한나라黨&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슬로건&lt;br /&gt;
| &#039;&#039;&#039;{{글씨 색|#009ee3|Salus populi suprema lex esto.&amp;lt;br&amp;gt;국민의 안녕이 최고의 법이 되어야 한다.}}&#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등록연월일&lt;br /&gt;
| 2025년 3월 1일&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소 소재지&lt;br /&g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multimaps: 37.530299,126.919577 | height = 150px | zoom = 15}}&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86, 5~8층&amp;lt;br&amp;gt;(여의도동, B&amp;amp;B타워)&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대표&lt;br /&gt;
| [[백강혁 (찬란)|백강혁]] &amp;lt;sub&amp;gt;/ 초선 (24대)&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원내대표&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총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위의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국회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20.4%, transparent 20.4%);&amp;quot; | &#039;&#039;&#039;102석 / 500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광역단체장&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기초단체장&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광역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기초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색&lt;br /&gt;
| &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09ee3; font-size: 0.9em&amp;quot;&amp;gt;{{글씨 색|#FFFFFF|하늘색 (#009ee3)}}&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b318f; font-size: 0.9em&amp;quot;&amp;gt;{{글씨 색|#FFFFFF|파란색 (#0b318f)}}&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연구소&lt;br /&gt;
| [[한나라연구원 (찬란)|한나라연구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후원회&lt;br /&gt;
|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중앙당후원회}}&#039;&#039;&#039;] &amp;lt;sub&amp;gt;(대표자: [[고동진 (찬란)|고동진]])&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원 수&lt;br /&gt;
| 223,488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으뜸당원 수&lt;br /&gt;
| 72,560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당보조금&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비 수입&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재산 총액&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가&lt;br /&gt;
|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공정과 기회 도약의 꿈 이뤄가며}}&#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링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대한민국]]의 제3지대 중도정당. 제n대 국회의 제3당이다.&lt;br /&gt;
&lt;br /&gt;
[[2024년 윤석열 내각 의료대란]]으로 서울 oo병원의 권역외상센터장인 [[백강혁]] 주도로 창당되었으며, [[김동연]]의 [[새로운물결]], [[조정훈]]의 [[시대전환]], 그리고 [[네이버]] CEO 출신의 [[한성숙]]과 [[최휘영]]을 영입하면서 선거 직접 급속도로 세를 불렸다.&lt;br /&gt;
==창당 배경==&lt;br /&gt;
한나라당 창당의 직접적 배경은 [[윤석열 내각]]의 누적된 복합적인 국정 위기였다. 윤석열 내각에서의 의료 시스템 붕괴는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었는데, 전공의 이탈과 지방 의료 공백의 장기화, 응급·외상 의료 체계의 사실상 마비 상태가 수년간 지속되었음에도 내각이 실효성 있는 대응을 내놓지 못하였다. 이 과정에서 00병원 권역외상센터장으로 이름을 알린 [[백강혁]]이 의료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개 비판하며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여기에 경제 위기와 물가 폭등이 겹쳤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고환율이 맞물리며 서민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급격히 하락했고, 정부의 물가 안정 대책은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공공요금 인상, 식료품 가격 상승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며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었다. [[민주당]]과 [[한국경제당]]은 이 위기 국면에서 근본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lt;br /&gt;
&lt;br /&gt;
백강혁 교수는 오랜 기간 정치 참여 의사를 공개적으로 부정해왔다. 그러나 2024년 하반기부터 의료 붕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그의 입장이 변하기 시작했는데, 측근들에 따르면 백강혁은 &amp;quot;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이제 시스템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amp;quot;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전해졌다.&lt;br /&gt;
&lt;br /&gt;
2025년 초 복수의 정치권 인사들이 영입 제안을 해왔으나 백강혁은 기성 정당 합류를 거절하며 &amp;quot;기존 정당의 문법으로는 기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amp;quot;는 이유로, 독자 창당 결정은 2025년 2월 중순 외부에 처음 알려졌으며 정치권 안팎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lt;br /&gt;
==성향==&lt;br /&gt;
[[대한민국]]의 중도개혁보수 정당이다. 전반적으로는 한국 정치 지형 내 보수에서 중도, 그리고 일부 개혁적 중도진보 인사들까지 아우르는 포괄정당적 성격을 일부 지닌다.&lt;br /&gt;
&lt;br /&gt;
양당제 특성상 세간에는 [[한국경제당]]에 비해 &#039;온건한 보수 정당&#039; 내지 &#039;개혁보수 정당&#039;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당의 정치 성향을 하나로 딱 잘라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창당 배경 자체가 기성 보수&amp;lt;ref&amp;gt;[[한국경제당]]&amp;lt;/ref&amp;gt;와 기성 진보&amp;lt;ref&amp;gt;[[민주당]]&amp;lt;/ref&amp;gt; 양측 모두에 대한 환멸에서 비롯된 만큼, 특정 이념 계열에 귀속되기보다 &#039;이념보다 문제 해결&#039;을 전면에 내세우는 실용주의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당 차원에서 스스로를 &#039;보수정당&#039;으로 규정하는 것에도 신중한 입장이며, 지도부 인사들이 일관되게 &amp;quot;좌우 논쟁보다 작동하는 나라가 먼저&amp;quot;라는 메시지를 발신해오고 있다.&lt;br /&gt;
&lt;br /&gt;
그럼에도 정강·정책의 전반적인 결을 살펴보면 한미동맹 강화, 원전 유지, 수능 중심 입시, 재정 건전성 중시 등 전통적 보수 가치에 가까운 정책들이 핵심 축을 이루고 있어, 중도개혁보수로 분류함이 적절하다. 다만 공공의료 국가책임제와 비정규직 보호 강화, 플랫폼 노동자 권리 보장, 국민소환제 도입 등 진보 색채가 있는 정책들도 상당수 포함하고 있어, 단순한 우파 정당으로 규정하기도 어렵다.&lt;br /&gt;
&lt;br /&gt;
타국의 정당들과 비교하면 [[프랑스]]의 [[앙마르슈]](현 르네상스) 창당 초기, [[독일]]의 [[자유민주당]](FDP) 일부 노선, [[일본 유신회]]의 개혁보수 성향 등과 부분적으로 유사하다는 평가가 있다. 국내 정치 지형에서는 한국경제당보다 진보적이고, 민주당보다는 보수적인 위치에 서 있다.&lt;br /&gt;
==당 상징==&lt;br /&gt;
===당명===&lt;br /&gt;
* 한국어: 한나라당&lt;br /&gt;
* 영어: Hannara Party 또는 Grand National Party (GNP)&lt;br /&gt;
* 중국어&lt;br /&gt;
** 정체자(번체자): 大國家黨&lt;br /&gt;
** 간화자(간체자): 大国家党&lt;br /&gt;
** 표준중국어 발음&lt;br /&gt;
*** 한어병음: Dà Guójiā Dǎng&lt;br /&gt;
*** 중국어의 외래어 표기법: 다궈자당&lt;br /&gt;
*** 한국어 한자음: 대국가당&lt;br /&gt;
* 일본어&lt;br /&gt;
** 신자체 한자 사용: ハンナラ党&lt;br /&gt;
** 구자체 한자 사용: ハンナラ黨&lt;br /&gt;
** 발음 표기&lt;br /&gt;
*** 가나 표기법: ハンナラとう&lt;br /&gt;
*** 헵번식 로만자 표기법: Hannara-tō&lt;br /&gt;
*** 일본어의 외래어 표기법: 한나라토&lt;br /&gt;
&amp;lt;br&amp;gt;&lt;br /&gt;
당명 한나라당(한나라黨)은 [[백강혁 (찬란)|백강혁]] 교수가 직접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한은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수 관형사로는 &#039;하나의&#039; 라는 뜻으로 읽히고, 형용사로는 &#039;크다&#039; 는 의미의 옛말 &#039;하다&#039;에서 비롯된 표현으로도 읽히며, 한민족과한국을 뜻하는 &#039;한(韓)&#039;으로도 읽힐 수 있다. 이러한 중의적 의미에 따라 &#039;하나로 통합된 정당, 크게 성장하는 정당, 한민족과 한국의 정당&#039;이라는 뜻을 모두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백강혁은 창당 선언에서 이에 대해 &amp;quot;억지로 끼워 맞춘 게 아니라, 이 이름 안에 우리가 하려는 것이 전부 들어 있었다&amp;quot;고 밝혔다.&lt;br /&gt;
&lt;br /&gt;
백강혁은 창당 과정에서 &amp;quot;특정 계보나 계파를 연상시키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이름&amp;quot;이라는 점을 당명 선택의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공개적으로 밝혔으며 당명에 담긴 철학에 대해 백강혁은 창당 선언문에서 &amp;quot;3·1운동이 우리나라 사람 전체가 일어선 날이었듯, 한나라당은 한 나라 전체의 당이 되겠다&amp;quot;고 설명했다.&lt;br /&gt;
===당 상징색 및 로고===&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 100%; text-align: center; font-size: 10.5pt; border: 2px solid #009ee3; float: center;&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 #009ee3; color: #FFF; | {{+2|한나라당의 로고}}&lt;br /&gt;
|-&lt;br /&gt;
| style=&amp;quot;height: 200px; width: 50%;&amp;quot; | [[파일:한나라 세로.png|250px]]&lt;br /&gt;
| style=&amp;quot;height: 200px; width: 50%;&amp;quot; | [[파일:한나라 가로.png|350px]]&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09ee3; color: #FFF;&amp;quot; | 세로형 로고&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09ee3; color: #FFF;&amp;quot; | 가로형 로고&lt;br /&gt;
|-&lt;br /&gt;
|}&lt;br /&gt;
로고의 심볼마크는 중앙의 아치형 문을 중심으로 바깥을 향해 퍼져나가는 푸른 동심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아치형 문은 기회·희망·미래로 나아가는 관문을, 동심원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모습과 함께 지역·세대·계층을 초월한 통합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상단의 넓은 곡선은 포용성을, 하단의 안정된 구조는 책임과 신뢰를 상징한다고 밝히고 있다. 색상은 짙은 남색에서 밝은 하늘색으로 이어지는 그라데이션을 사용하였는데, 푸른색은 신뢰와 미래를, 점진적으로 밝아지는 색의 변화는 대한민국의 지속적 발전과 희망을 의미한다고 한다. 당의 공식 상징 설명은 국민과 미래를 잇는 문&amp;quot;으로, 국민 모두에게 열려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밝혔다. 당이 표방하는 핵심 가치는 책임·통합·실용·신뢰·미래·도전이다.&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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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습장:Eiffel/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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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3T11:26:3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새 문서: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text-align: left; font-size: 10.5pt; border: 2px solid #009ee3; float: right;&amp;quo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text-align: center; height: 200px;&amp;quot; | 250px |-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09ee3 20%, #0b318f 80%, #0b318f); color: #fff;&amp;quot; | 한나라당 |-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영문 명칭 | Hannara Party&amp;lt;br&amp;gt;Grand N...&lt;/p&gt;
&lt;hr /&gt;
&lt;div&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text-align: left; font-size: 10.5pt; border: 2px solid #009ee3; float: right;&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text-align: center; height: 200px;&amp;quot; | [[파일:한나라 세로.png|2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09ee3 20%, #0b318f 80%, #0b318f); color: #fff;&amp;quot; | 한나라당&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영문 명칭&lt;br /&gt;
| Hannara Party&amp;lt;br&amp;gt;Grand National Party&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한문 명칭&lt;br /&gt;
| 한나라黨&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슬로건&lt;br /&gt;
| &#039;&#039;&#039;{{글씨 색|#009ee3|Salus populi suprema lex esto.&amp;lt;br&amp;gt;국민의 안녕이 최고의 법이 되어야 한다.}}&#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등록연월일&lt;br /&gt;
| 2025년 3월 1일&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소 소재지&lt;br /&g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multimaps: 37.530299,126.919577 | height = 150px | zoom = 15}}&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86, 5~8층&amp;lt;br&amp;gt;(여의도동, B&amp;amp;B타워)&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대표&lt;br /&gt;
| [[백강혁 (찬란)|백강혁]] &amp;lt;sub&amp;gt;/ 초선 (24대)&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원내대표&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총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위의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국회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20.4%, transparent 20.4%);&amp;quot; | &#039;&#039;&#039;102석 / 500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광역단체장&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기초단체장&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광역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기초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색&lt;br /&gt;
| &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09ee3; font-size: 0.9em&amp;quot;&amp;gt;{{글씨 색|#FFFFFF|하늘색 (#009ee3)}}&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b318f; font-size: 0.9em&amp;quot;&amp;gt;{{글씨 색|#FFFFFF|파란색 (#0b318f)}}&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연구소&lt;br /&gt;
| [[한나라연구원 (찬란)|한나라연구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후원회&lt;br /&gt;
|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중앙당후원회}}&#039;&#039;&#039;] &amp;lt;sub&amp;gt;(대표자: [[고동진 (찬란)|고동진]])&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원 수&lt;br /&gt;
| 223,488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으뜸당원 수&lt;br /&gt;
| 72,560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당보조금&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비 수입&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재산 총액&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가&lt;br /&gt;
|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공정과 기회 도약의 꿈 이뤄가며}}&#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링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대한민국]]의 제3지대 중도정당. 제n대 국회의 제3당이다.&lt;br /&gt;
&lt;br /&gt;
[[2024년 윤석열 내각 의료대란]]으로 서울 oo병원의 권역외상센터장인 [[백강혁]] 주도로 창당되었으며, [[김동연]]의 [[새로운물결]], [[조정훈]]의 [[시대전환]], 그리고 [[네이버]] CEO 출신의 [[한성숙]]과 [[최휘영]]을 영입하면서 선거 직접 급속도로 세를 불렸다.&lt;br /&gt;
==창당 배경==&lt;br /&gt;
한나라당 창당의 직접적 배경은 [[윤석열 내각]]의 누적된 복합적인 국정 위기였다. 윤석열 내각에서의 의료 시스템 붕괴는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었는데, 전공의 이탈과 지방 의료 공백의 장기화, 응급·외상 의료 체계의 사실상 마비 상태가 수년간 지속되었음에도 내각이 실효성 있는 대응을 내놓지 못하였다. 이 과정에서 00병원 권역외상센터장으로 이름을 알린 [[백강혁]]이 의료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개 비판하며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여기에 경제 위기와 물가 폭등이 겹쳤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고환율이 맞물리며 서민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급격히 하락했고, 정부의 물가 안정 대책은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공공요금 인상, 식료품 가격 상승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며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었다. [[민주당]]과 [[한국경제당]]은 이 위기 국면에서 근본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lt;br /&gt;
&lt;br /&gt;
백강혁 교수는 오랜 기간 정치 참여 의사를 공개적으로 부정해왔다. 그러나 2024년 하반기부터 의료 붕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그의 입장이 변하기 시작했는데, 측근들에 따르면 백강혁은 &amp;quot;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이제 시스템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amp;quot;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전해졌다.&lt;br /&gt;
&lt;br /&gt;
2025년 초 복수의 정치권 인사들이 영입 제안을 해왔으나 백강혁은 기성 정당 합류를 거절하며 &amp;quot;기존 정당의 문법으로는 기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amp;quot;는 이유로, 독자 창당 결정은 2025년 2월 중순 외부에 처음 알려졌으며 정치권 안팎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lt;br /&gt;
==성향==&lt;br /&gt;
[[대한민국]]의 중도개혁보수 정당이다. 전반적으로는 한국 정치 지형 내 보수에서 중도, 그리고 일부 개혁적 중도진보 인사들까지 아우르는 포괄정당적 성격을 일부 지닌다.&lt;br /&gt;
&lt;br /&gt;
양당제 특성상 세간에는 [[한국경제당]]에 비해 &#039;온건한 보수 정당&#039; 내지 &#039;개혁보수 정당&#039;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당의 정치 성향을 하나로 딱 잘라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창당 배경 자체가 기성 보수&amp;lt;ref&amp;gt;[[한국경제당]]&amp;lt;/ref&amp;gt;와 기성 진보&amp;lt;ref&amp;gt;[[민주당]]&amp;lt;/ref&amp;gt; 양측 모두에 대한 환멸에서 비롯된 만큼, 특정 이념 계열에 귀속되기보다 &#039;이념보다 문제 해결&#039;을 전면에 내세우는 실용주의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당 차원에서 스스로를 &#039;보수정당&#039;으로 규정하는 것에도 신중한 입장이며, 지도부 인사들이 일관되게 &amp;quot;좌우 논쟁보다 작동하는 나라가 먼저&amp;quot;라는 메시지를 발신해오고 있다.&lt;br /&gt;
&lt;br /&gt;
그럼에도 정강·정책의 전반적인 결을 살펴보면 한미동맹 강화, 원전 유지, 수능 중심 입시, 재정 건전성 중시 등 전통적 보수 가치에 가까운 정책들이 핵심 축을 이루고 있어, 중도개혁보수로 분류함이 적절하다. 다만 공공의료 국가책임제와 비정규직 보호 강화, 플랫폼 노동자 권리 보장, 국민소환제 도입 등 진보 색채가 있는 정책들도 상당수 포함하고 있어, 단순한 우파 정당으로 규정하기도 어렵다.&lt;br /&gt;
&lt;br /&gt;
타국의 정당들과 비교하면 [[프랑스]]의 [[앙마르슈]](현 르네상스) 창당 초기, [[독일]]의 [[자유민주당]](FDP) 일부 노선, [[일본 유신회]]의 개혁보수 성향 등과 부분적으로 유사하다는 평가가 있다. 국내 정치 지형에서는 한국경제당보다 진보적이고, 민주당보다는 보수적인 위치에 서 있다.&lt;br /&gt;
==당 상징==&lt;br /&gt;
===당명===&lt;br /&gt;
* 한국어: 한나라당&lt;br /&gt;
* 영어: Hannara Party 또는 Grand National Party (GNP)&lt;br /&gt;
* 중국어&lt;br /&gt;
** 정체자(번체자): 大國家黨&lt;br /&gt;
** 간화자(간체자): 大国家党&lt;br /&gt;
** 표준중국어 발음&lt;br /&gt;
*** 한어병음: Dà Guójiā Dǎng&lt;br /&gt;
*** 중국어의 외래어 표기법: 다궈자당&lt;br /&gt;
*** 한국어 한자음: 대국가당&lt;br /&gt;
* 일본어&lt;br /&gt;
** 신자체 한자 사용: ハンナラ党&lt;br /&gt;
** 구자체 한자 사용: ハンナラ黨&lt;br /&gt;
** 발음 표기&lt;br /&gt;
*** 가나 표기법: ハンナラとう&lt;br /&gt;
*** 헵번식 로만자 표기법: Hannara-tō&lt;br /&gt;
*** 일본어의 외래어 표기법: 한나라토&lt;br /&gt;
&amp;lt;br&amp;gt;&lt;br /&gt;
당명 한나라당(한나라黨)은 [[백강혁 (찬란)|백강혁]] 교수가 직접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한은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수 관형사로는 &#039;하나의&#039; 라는 뜻으로 읽히고, 형용사로는 &#039;크다&#039; 는 의미의 옛말 &#039;하다&#039;에서 비롯된 표현으로도 읽히며, 한민족과한국을 뜻하는 &#039;한(韓)&#039;으로도 읽힐 수 있다. 이러한 중의적 의미에 따라 &#039;하나로 통합된 정당, 크게 성장하는 정당, 한민족과 한국의 정당&#039;이라는 뜻을 모두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백강혁은 창당 선언에서 이에 대해 &amp;quot;억지로 끼워 맞춘 게 아니라, 이 이름 안에 우리가 하려는 것이 전부 들어 있었다&amp;quot;고 밝혔다.&lt;br /&gt;
&lt;br /&gt;
백강혁은 창당 과정에서 &amp;quot;특정 계보나 계파를 연상시키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이름&amp;quot;이라는 점을 당명 선택의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공개적으로 밝혔으며 당명에 담긴 철학에 대해 백강혁은 창당 선언문에서 &amp;quot;3·1운동이 우리나라 사람 전체가 일어선 날이었듯, 한나라당은 한 나라 전체의 당이 되겠다&amp;quot;고 설명했다.&lt;br /&gt;
===당 상징색 및 로고===&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 100%; text-align: center; font-size: 10.5pt; border: 2px solid #009ee3; float: center;&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 #009ee3; color: #FFF; | {{+2|한나라당의 로고}}&lt;br /&gt;
|-&lt;br /&gt;
| style=&amp;quot;height: 200px; width: 50%;&amp;quot; | [[파일:한나라 세로.png|250px]]&lt;br /&gt;
| style=&amp;quot;height: 200px; width: 50%;&amp;quot; | [[파일:한나라 가로.png|350px]]&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09ee3; color: #FFF;&amp;quot; | 자유당의 로고&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09ee3; color: #FFF;&amp;quot; | 자유당의 로고 (변경후)&lt;br /&gt;
|-&lt;br /&gt;
|}&lt;br /&gt;
로고의 심볼마크는 중앙의 아치형 문을 중심으로 바깥을 향해 퍼져나가는 푸른 동심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아치형 문은 기회·희망·미래로 나아가는 관문을, 동심원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모습과 함께 지역·세대·계층을 초월한 통합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상단의 넓은 곡선은 포용성을, 하단의 안정된 구조는 책임과 신뢰를 상징한다고 밝히고 있다. 색상은 짙은 남색에서 밝은 하늘색으로 이어지는 그라데이션을 사용하였는데, 푸른색은 신뢰와 미래를, 점진적으로 밝아지는 색의 변화는 대한민국의 지속적 발전과 희망을 의미한다고 한다. 당의 공식 상징 설명은 국민과 미래를 잇는 문&amp;quot;으로, 국민 모두에게 열려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밝혔다. 당이 표방하는 핵심 가치는 책임·통합·실용·신뢰·미래·도전이다.&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2304</id>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2304"/>
		<updated>2026-08-23T05:51:2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한나라당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0년]] [[11월 5일]]}}&amp;lt;br&amp;gt;&#039;&#039;&#039;1940년 대선&#039;&#039;&#039;&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width=25%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일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1940년]] [[11월 5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 (프런티어)|{{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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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br /&gt;
===민주당: 웬델 윌키===&lt;br /&gt;
===공화당: 게리쿠퍼===&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500px; margin:0 auto; background:#E81018; border:2px solid #E81018; color:#fff;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font-size:1.25em; line-height:1.4; padding:10px 6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lt;br /&gt;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공화당 전당대회 지명 후보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fff; border:0; line-height:0;&amp;quot; | [[파일:쿠퍼 반덴버그 (프런티어).png|500px|cent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E81018; border:0;&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 margin:0;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border-right:1px solid #fff;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게리 쿠퍼}}&amp;lt;br&amp;gt;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아서 반덴버그}}&amp;lt;br&amp;gt;미시간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N대 부통령&lt;br /&gt;
|-&lt;br /&gt;
| [[1974년]] [[12월 19일]] ~ [[1977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약력==&lt;br /&gt;
* 1939. 제25대 [[미국|미네소타]] 주지사&lt;br /&gt;
* 1945.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제3함대 참모&lt;br /&gt;
* 1949. 미네소타주 연방 상원의원 (1949.1.3. ~ 1974.8.9.)&lt;br /&gt;
* 1957.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lt;br /&gt;
* 1965. 미국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lt;br /&gt;
* 1974.12. &#039;&#039;&#039;제N대 [[미국|미국 부통령]]&#039;&#039;&#039;&lt;br /&gt;
* 1981.1. &#039;&#039;&#039;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039;&#039;&#039;&lt;br /&gt;
==생애==&lt;br /&gt;
===제N대 미국 부통령===&lt;br /&gt;
1974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닉슨게이트 (프런티어)|닉슨게이트]]로 사임하고 [[존 코널리 (프런티어)|존 코널리]]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코널리에 의해 제39대 [[미국|미국 부통령]]으로 전격 지명되었다. 이후 12월 상·하원의 승인 청문회를 거쳐 공식적으로 취임했다.  &lt;br /&gt;
&lt;br /&gt;
닉슨 사임 이후 극도로 혼란스럽던 워싱턴 정가에서 스타센의 부통령 지명은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26년간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쌓은 압도적인 인망과 경력 덕분에, 닉슨게이트 여파로 와해 직전이던 의회와의 관계를 빠르게 회복시켰기 때문. [[존 코널리 행정부 (프런티어)|코널리 행정부]] 내에서는 주로 내정 및 의회 협상, [[1차 석유 파동]]에 따른 경제 위기 수습을 총괄하는 &#039;&#039;&#039;실권형 부통령&#039;&#039;&#039;으로 활약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 사임의 여파와 스태그플레이션 심화, 그리고 부동산 거물 출신 아웃사이더 포퓰리스트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거센 바람을 막지 못하고 코널리-스타센 티켓은 패배하며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했다.&lt;br /&gt;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한 후 고향 [[미국|미네소타]]로 돌아가 정계 은퇴 절차를 밟는 듯했으나, 백의종군하며 [[공화당]] 내 중도합리파와 의회 온건파의 원로로 남아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lt;br /&gt;
&lt;br /&gt;
당시 프레드 트럼프 행정부는 무분별한 뉴욕식 부동산 개발주의, 친족 비리 스캔들, 그리고 1979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의 대응 미숙으로 민심을 크게 잃은 상태였다. 이에 정계 기득권과 대중 모두가 아웃사이더 포퓰리즘에 지쳐가자, 당내 중도파와 상원 동료들의 삼고초려 끝에 1980년 1월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한다.&lt;br /&gt;
&lt;br /&gt;
당내 경선에서는 26년 상원 외교위원장 및 부통령 시절 구축한 막강한 의회 조직망과 미네소타 농가 지지표를 바탕으로 [[하워드 베이커]], [[존 B. 앤더슨]] 등 우파 신진 후보들을 가볍게 제압하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다. 러닝메이트로는 당내 보수파를 다독이기 위해 [[미국|테네시]] 출신의 상원 원내대표 하워드 베이커를 지명했다.&lt;br /&gt;
&lt;br /&gt;
본선에서는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트럼프 캠프 측은 스타센을 &amp;quot;워싱턴 늪지대의 늙은 구렁이&amp;quot;, &amp;quot;빌딩 한 채 못 지어본 무능한 관료&amp;quot;라며 고령과 기득권 이미지를 집중 공격했다.&amp;lt;ref&amp;gt;정작 프레드 트럼프 본인도 1905년생이라 당시 만 75세로 스타센보다 2살이나 많았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공세였던 셈.&amp;lt;/ref&amp;gt; 이에 스타센은 &amp;quot;국가는 법과 제도로 운영되는 공공체&amp;quot;라는 논리로 응수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약점인 불안정성과 품격 부재를 파고들었다.&lt;br /&gt;
&lt;br /&gt;
10월 28일 열린 대선 TV 토론회에서 프레드 트럼프가 &amp;quot;평생 의회 의자에 앉아 세금이나 까먹던 사람&amp;quot;이라고 몰아붙이자, 스타센은 상원 26년의 내공으로 자비롭게 허허 웃으며 &amp;quot;당신은 건물을 올려봤을지는 몰라도 이 나라의 법과 제도를 무너뜨리고 있다. 국가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로 세워지는 것&amp;quot;이라는 말을 남기며 승기를 완전히 잡아챘다.&lt;br /&gt;
&lt;br /&gt;
결국 11월 &#039;&#039;&#039;본선에서 51.7%의 득표율과 선거인단 357석을 확보하며, 181석에 그친 프레드 트럼프를 꺾고 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으로 당선&#039;&#039;&#039;되었다.&lt;br /&gt;
&lt;br /&gt;
이 승리로 스타센은 당선 당시 기준 역대 최고령 대통령(만 73세)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30대 최연소 주지사로 시작해 70대에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역대급 &#039;&#039;&#039;대기만성형 정치 서사&#039;&#039;&#039;를 완성했다.&lt;br /&gt;
===제41대 미국 대통령===&lt;br /&gt;
1981년 1월 20일, 당선 당시 기준 &#039;&#039;&#039;역대 최고령(만 73세)의 나이&amp;lt;ref&amp;gt;이후 이 기록은 프레드 트럼프에 의해 다시 갱신된다.&amp;lt;/ref&amp;gt;로 제41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039;&#039;&#039;했다. 취임 즉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 시절 거친 언사와 독단적 행보로 균열이 갔던 NATO 등 전통 우방국과의 관계를 즉각 복원하고 [[미국|이란 인질 사건]]의 여파를 수습했다. 경제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했다. 경기 후퇴와 실업률 상승이라는 진통을 겪었으나,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하원과의 초당적 협상을 통해 세제 개편안과 긴축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의회정치의 마스터다운 면모를 과시했다.&lt;br /&gt;
&lt;br /&gt;
1983년 하반기부터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자 스타센은 &amp;quot;긴축의 결실이 맺히고 있으며, 미국은 다시 법치와 안정을 되찾았다&amp;quot;며 재선 도전에 나섰다. 상대는 4년 전 낙선 후 재정비하여 칼을 갈아온 프레드 트럼프였다. 트럼프 측은 긴축 정책과 고금리로 타격을 입은 [[미국|러스트 벨트]] 노동자층과 중서부 농민층의 분노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트럼프는 스타센을 &amp;quot;관료주의로 국민의 피를 말린 노인&amp;quot;이라 맹비난하며 과감한 세금 감면과 관세 부과를 약속했다. 스타센은 만 77세의 초고령에 접어들며 유세 과정에서 다소 지친 기색을 보였고, 반면 프레드 트럼프는 2살이 더 많았음에도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대중의 분노 표심을 단숨에 흡수했다.&lt;br /&gt;
&lt;br /&gt;
개표 결과, &#039;&#039;&#039;득표율 48.8% 대 49.6%(0.8%p 차), 선거인단 226표 대 312표&#039;&#039;&#039;로 프레드 트럼프에게 정권 탈환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긴축 정책으로 타격을 입었던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미국|미시간]] 등 핵심 러스트 벨트 스윙스테이트를 접전으로 빼앗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로써 스타센은 단임으로 백악관을 떠나게 되었고, 프레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징검다리 재선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스타센은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한 뒤, 1985년 1월 20일 정권을 이양하고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마무리하며 [[미국|미네소타]]로 완전히 귀향했다.&lt;br /&gt;
==평가==&lt;br /&gt;
===긍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해럴드 스타센은 법치주의와 의회정치라는 미국 헌정사의 위대한 유산을 온몸으로 체화한 인물이었다. 정치적 이념과 정파가 달랐을지라도, 그가 백악관에 앉아 있는 동안 미국인들은 국가의 행정 시스템이 절제되고 정직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깊은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2001년, [[미국|조 바이든]]}}&lt;br /&gt;
26년 상원 의정 경험과 부통령 경력을 바탕으로 [[민주당]]이 다수당인 의회와 끊임없이 소통했으며,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 헌정사의 전통을 되살려냈다. 외교적으로도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답게, 전임 행정부 시절 균열이 갔던 [[NATO]] 등 서방 동맹국과의 관계를 즉각 수습했다. 절제된 정통 외교 노선을 채택하여 냉전기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도덕적 지도력을 다시 올려놓았다. 또한 1970년대를 짓눌렀던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하여, 임기 후반 [[인플레이션]]을 잡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뼈대를 완성했다.&lt;br /&gt;
===부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스타센 대통령은 정치가 숫자와 수식으로만 움직인다고 믿은 오만한 엘리트였다.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통계표를 들고 자화자찬하는 동안 공장이 문을 닫고 길거리로 쫓겨난 중서부 주민들의 절규를 그는 전혀 듣지 못했다.|1992년, [[미국|팻 뷰캐넌]]}}&lt;br /&gt;
{{인용문|스타센은 자신이 &#039;국정의 조타수&#039;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노만 저었던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을 안정시킨 것이 아니라, 정체시키고 퇴보시켰다.|2004년, [[미국|폴 크루구먼]]}}&lt;br /&gt;
고금리 긴축 정책의 여파가 노동자층과 농민층에게 집중되며 [[미국|러스트 벨트]]의 외면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따른다. 지표상으로는 1983년 이후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섰으나, 제조업 몰락으로 타격을 입은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 벨트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이들의 분노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또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선동 정치에 대해 스타센은 지나치게 신사적이고 고전적인 원론으로만 대응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던 1980년대에 노련한 의회주의자의 고지식함은 대중에게 변화에 뒤처진 늙은 관료로 비쳐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결국 스태그플레이션 진화라는 고통스러운 악역을 맡아 국정을 정상화해 놓았으나, 정작 그 결실과 열매는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84년 대선]]에서 프레드 트럼프에게 다시 바치게 되면서 포퓰리즘 정권의 잠시 동안의 쉼표 역할만 하고 정권을 넘겨준 단임 대통령이라는 한계를 남겼다.&lt;br /&gt;
==기타==&lt;br /&gt;
* 1938년 만 31세의 나이로 [[미국|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되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 당선 기록이며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행정 능력과 카리스마로 당내 기득권을 꺾고 당선되어 30대 초반에 이미 [[공화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다. 물론 그는 최고령 미국 대통령 중 한명이 되었다.&lt;br /&gt;
* 주지사 3선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하던 1943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자 &amp;quot;청년들이 전선에서 피를 흘리는데 안락하게 관사에 머물 수 없다&amp;quot;며 &#039;&#039;&#039;주지사직을 전격 사임하고 해군에 자원입대&#039;&#039;&#039;했다. 태평양 전선에서 윌리엄 홀시 제독의 참모로 참전하여 공훈을 세웠고, 이 태평양 참전 경력은 훗날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과 1980년 대선 당시 프레드 트럼프의 &amp;quot;군대 근처에도 안 가본 군필 미필 논란&amp;quot;을 정면으로 격파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lt;br /&gt;
* 프로필 사진을 보면 머리카락이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탈모로 인해 가발을 착용했다.&lt;br /&gt;
==선거 이력==&lt;br /&gt;
=미국 대통령=&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float: right;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lef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90deg,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 #fff&amp;quot; | [[파일:Flag of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svg|60px]]&amp;lt;br&amp;gt;{{large|미합중국 대통령}}&amp;lt;br&amp;gt;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 0; width: 100%;&amp;quot; | [[파일:폴 라이언 (프런티어).png|class=fullImage|100%]]&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25%; 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현직&lt;br /&gt;
| [[폴 라이언 (프런티어)|폴 라이언]] &amp;lt;sub&amp;gt;/ 제49대&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취임일&lt;br /&gt;
| [[2020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재지&lt;br /&gt;
| [[미국|백악관]]&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으로, 미국 헌법에 따라 미국의 행정권을 총괄하며, [[미국|미군]]의 총사령관이자 통수권자로서 미군을 통솔 및 통수한다. 공식명칭은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이다.&lt;br /&gt;
==역대 대통령==&lt;br /&gt;
=한나라당=&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text-align: left; font-size: 10.5pt; border: 2px solid #009ee3; float: right;&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text-align: center; height: 200px;&amp;quot; | [[파일:한나라 세로.png|2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09ee3 20%, #0b318f 80%, #0b318f); color: #fff;&amp;quot; | 한나라당&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영문 명칭&lt;br /&gt;
| Hannara Party&amp;lt;br&amp;gt;Grand National Party&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한문 명칭&lt;br /&gt;
| 한나라黨&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슬로건&lt;br /&gt;
| &#039;&#039;&#039;{{글씨 색|#009ee3|Salus populi suprema lex esto.&amp;lt;br&amp;gt;국민의 안녕이 최고의 법이 되어야 한다.}}&#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등록연월일&lt;br /&gt;
| 2025년 3월 1일&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소 소재지&lt;br /&g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multimaps: 37.530299,126.919577 | height = 150px | zoom = 15}}&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86, 5~8층 (여의도동, B&amp;amp;B타워)&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대표&lt;br /&gt;
| [[백강혁 ()|백강혁]]&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원내대표&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총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위의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국회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20.4%, transparent 20.4%);&amp;quot; | &#039;&#039;&#039;102석 / 500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광역단체장&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기초단체장&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광역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기초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색&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연구소&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후원회&lt;br /&gt;
|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중앙당후원회}}&#039;&#039;&#039;] &amp;lt;sub&amp;gt;(대표자: [[고동진 ()|고동진]])&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원 수&lt;br /&gt;
| 223,488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으뜸당원 수&lt;br /&gt;
| 72,560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당보조금&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비 수입&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재산 총액&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가&lt;br /&gt;
|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공정과 기회 도약의 꿈 이뤄가며}}&#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링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대한민국]]의 제3지대 중도정당. 제n대 국회의 제3당이다.&lt;br /&gt;
&lt;br /&gt;
[[2024년 윤석열 내각 의료대란]]으로 서울 oo병원의 권역외상센터장인 [[백강혁]] 주도로 창당되었으며, [[김동연]]의 [[새로운물결]], [[조정훈]]의 [[시대전환]], 그리고 [[네이버]] CEO 출신의 [[한성숙]]과 [[최휘영]]을 영입하면서 선거 직접 급속도로 세를 불렸다.&lt;br /&gt;
==창당 배경==&lt;br /&gt;
한나라당 창당의 직접적 배경은 [[윤석열 내각]]의 누적된 복합적인 국정 위기였다. 윤석열 내각에서의 의료 시스템 붕괴는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었는데, 전공의 이탈과 지방 의료 공백의 장기화, 응급·외상 의료 체계의 사실상 마비 상태가 수년간 지속되었음에도 내각이 실효성 있는 대응을 내놓지 못하였다. 이 과정에서 00병원 권역외상센터장으로 이름을 알린 [[백강혁]]이 의료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개 비판하며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여기에 경제 위기와 물가 폭등이 겹쳤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고환율이 맞물리며 서민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급격히 하락했고, 정부의 물가 안정 대책은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공공요금 인상, 식료품 가격 상승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며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었다. [[민주당]]과 [[한국경제당]]은 이 위기 국면에서 근본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lt;br /&gt;
&lt;br /&gt;
백강혁 교수는 오랜 기간 정치 참여 의사를 공개적으로 부정해왔다. 그러나 2024년 하반기부터 의료 붕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그의 입장이 변하기 시작했는데, 측근들에 따르면 백강혁은 &amp;quot;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이제 시스템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amp;quot;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전해졌다.&lt;br /&gt;
&lt;br /&gt;
2025년 초 복수의 정치권 인사들이 영입 제안을 해왔으나 백강혁은 기성 정당 합류를 거절하며 &amp;quot;기존 정당의 문법으로는 기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amp;quot;는 이유로, 독자 창당 결정은 2025년 2월 중순 외부에 처음 알려졌으며 정치권 안팎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lt;br /&gt;
==성향==&lt;br /&gt;
[[대한민국]]의 중도개혁보수 정당이다. 전반적으로는 한국 정치 지형 내 보수에서 중도, 그리고 일부 개혁적 중도진보 인사들까지 아우르는 포괄정당적 성격을 일부 지닌다.&lt;br /&gt;
&lt;br /&gt;
양당제 특성상 세간에는 [[한국경제당]]에 비해 &#039;온건한 보수 정당&#039; 내지 &#039;개혁보수 정당&#039;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당의 정치 성향을 하나로 딱 잘라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창당 배경 자체가 기성 보수&amp;lt;ref&amp;gt;[[한국경제당]]&amp;lt;/ref&amp;gt;와 기성 진보&amp;lt;ref&amp;gt;[[민주당]]&amp;lt;/ref&amp;gt; 양측 모두에 대한 환멸에서 비롯된 만큼, 특정 이념 계열에 귀속되기보다 &#039;이념보다 문제 해결&#039;을 전면에 내세우는 실용주의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당 차원에서 스스로를 &#039;보수정당&#039;으로 규정하는 것에도 신중한 입장이며, 지도부 인사들이 일관되게 &amp;quot;좌우 논쟁보다 작동하는 나라가 먼저&amp;quot;라는 메시지를 발신해오고 있다.&lt;br /&gt;
&lt;br /&gt;
그럼에도 정강·정책의 전반적인 결을 살펴보면 한미동맹 강화, 원전 유지, 수능 중심 입시, 재정 건전성 중시 등 전통적 보수 가치에 가까운 정책들이 핵심 축을 이루고 있어, 중도개혁보수로 분류함이 적절하다. 다만 공공의료 국가책임제와 비정규직 보호 강화, 플랫폼 노동자 권리 보장, 국민소환제 도입 등 진보 색채가 있는 정책들도 상당수 포함하고 있어, 단순한 우파 정당으로 규정하기도 어렵다.&lt;br /&gt;
&lt;br /&gt;
타국의 정당들과 비교하면 [[프랑스]]의 [[앙마르슈]](현 르네상스) 창당 초기, [[독일]]의 [[자유민주당]](FDP) 일부 노선, [[일본 유신회]]의 개혁보수 성향 등과 부분적으로 유사하다는 평가가 있다. 국내 정치 지형에서는 한국경제당보다 진보적이고, 민주당보다는 보수적인 위치에 서 있다.&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2303</id>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2303"/>
		<updated>2026-08-23T05:46:3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한나라당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0년]] [[11월 5일]]}}&amp;lt;br&amp;gt;&#039;&#039;&#039;1940년 대선&#039;&#039;&#039;&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width=25%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일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1940년]] [[11월 5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 (프런티어)|{{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br /&gt;
===민주당: 웬델 윌키===&lt;br /&gt;
===공화당: 게리쿠퍼===&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500px; margin:0 auto; background:#E81018; border:2px solid #E81018; color:#fff;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font-size:1.25em; line-height:1.4; padding:10px 6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lt;br /&gt;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공화당 전당대회 지명 후보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fff; border:0; line-height:0;&amp;quot; | [[파일:쿠퍼 반덴버그 (프런티어).png|500px|cent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E81018; border:0;&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 margin:0;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border-right:1px solid #fff;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게리 쿠퍼}}&amp;lt;br&amp;gt;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아서 반덴버그}}&amp;lt;br&amp;gt;미시간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N대 부통령&lt;br /&gt;
|-&lt;br /&gt;
| [[1974년]] [[12월 19일]] ~ [[1977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약력==&lt;br /&gt;
* 1939. 제25대 [[미국|미네소타]] 주지사&lt;br /&gt;
* 1945.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제3함대 참모&lt;br /&gt;
* 1949. 미네소타주 연방 상원의원 (1949.1.3. ~ 1974.8.9.)&lt;br /&gt;
* 1957.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lt;br /&gt;
* 1965. 미국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lt;br /&gt;
* 1974.12. &#039;&#039;&#039;제N대 [[미국|미국 부통령]]&#039;&#039;&#039;&lt;br /&gt;
* 1981.1. &#039;&#039;&#039;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039;&#039;&#039;&lt;br /&gt;
==생애==&lt;br /&gt;
===제N대 미국 부통령===&lt;br /&gt;
1974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닉슨게이트 (프런티어)|닉슨게이트]]로 사임하고 [[존 코널리 (프런티어)|존 코널리]]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코널리에 의해 제39대 [[미국|미국 부통령]]으로 전격 지명되었다. 이후 12월 상·하원의 승인 청문회를 거쳐 공식적으로 취임했다.  &lt;br /&gt;
&lt;br /&gt;
닉슨 사임 이후 극도로 혼란스럽던 워싱턴 정가에서 스타센의 부통령 지명은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26년간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쌓은 압도적인 인망과 경력 덕분에, 닉슨게이트 여파로 와해 직전이던 의회와의 관계를 빠르게 회복시켰기 때문. [[존 코널리 행정부 (프런티어)|코널리 행정부]] 내에서는 주로 내정 및 의회 협상, [[1차 석유 파동]]에 따른 경제 위기 수습을 총괄하는 &#039;&#039;&#039;실권형 부통령&#039;&#039;&#039;으로 활약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 사임의 여파와 스태그플레이션 심화, 그리고 부동산 거물 출신 아웃사이더 포퓰리스트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거센 바람을 막지 못하고 코널리-스타센 티켓은 패배하며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했다.&lt;br /&gt;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한 후 고향 [[미국|미네소타]]로 돌아가 정계 은퇴 절차를 밟는 듯했으나, 백의종군하며 [[공화당]] 내 중도합리파와 의회 온건파의 원로로 남아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lt;br /&gt;
&lt;br /&gt;
당시 프레드 트럼프 행정부는 무분별한 뉴욕식 부동산 개발주의, 친족 비리 스캔들, 그리고 1979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의 대응 미숙으로 민심을 크게 잃은 상태였다. 이에 정계 기득권과 대중 모두가 아웃사이더 포퓰리즘에 지쳐가자, 당내 중도파와 상원 동료들의 삼고초려 끝에 1980년 1월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한다.&lt;br /&gt;
&lt;br /&gt;
당내 경선에서는 26년 상원 외교위원장 및 부통령 시절 구축한 막강한 의회 조직망과 미네소타 농가 지지표를 바탕으로 [[하워드 베이커]], [[존 B. 앤더슨]] 등 우파 신진 후보들을 가볍게 제압하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다. 러닝메이트로는 당내 보수파를 다독이기 위해 [[미국|테네시]] 출신의 상원 원내대표 하워드 베이커를 지명했다.&lt;br /&gt;
&lt;br /&gt;
본선에서는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트럼프 캠프 측은 스타센을 &amp;quot;워싱턴 늪지대의 늙은 구렁이&amp;quot;, &amp;quot;빌딩 한 채 못 지어본 무능한 관료&amp;quot;라며 고령과 기득권 이미지를 집중 공격했다.&amp;lt;ref&amp;gt;정작 프레드 트럼프 본인도 1905년생이라 당시 만 75세로 스타센보다 2살이나 많았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공세였던 셈.&amp;lt;/ref&amp;gt; 이에 스타센은 &amp;quot;국가는 법과 제도로 운영되는 공공체&amp;quot;라는 논리로 응수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약점인 불안정성과 품격 부재를 파고들었다.&lt;br /&gt;
&lt;br /&gt;
10월 28일 열린 대선 TV 토론회에서 프레드 트럼프가 &amp;quot;평생 의회 의자에 앉아 세금이나 까먹던 사람&amp;quot;이라고 몰아붙이자, 스타센은 상원 26년의 내공으로 자비롭게 허허 웃으며 &amp;quot;당신은 건물을 올려봤을지는 몰라도 이 나라의 법과 제도를 무너뜨리고 있다. 국가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로 세워지는 것&amp;quot;이라는 말을 남기며 승기를 완전히 잡아챘다.&lt;br /&gt;
&lt;br /&gt;
결국 11월 &#039;&#039;&#039;본선에서 51.7%의 득표율과 선거인단 357석을 확보하며, 181석에 그친 프레드 트럼프를 꺾고 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으로 당선&#039;&#039;&#039;되었다.&lt;br /&gt;
&lt;br /&gt;
이 승리로 스타센은 당선 당시 기준 역대 최고령 대통령(만 73세)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30대 최연소 주지사로 시작해 70대에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역대급 &#039;&#039;&#039;대기만성형 정치 서사&#039;&#039;&#039;를 완성했다.&lt;br /&gt;
===제41대 미국 대통령===&lt;br /&gt;
1981년 1월 20일, 당선 당시 기준 &#039;&#039;&#039;역대 최고령(만 73세)의 나이&amp;lt;ref&amp;gt;이후 이 기록은 프레드 트럼프에 의해 다시 갱신된다.&amp;lt;/ref&amp;gt;로 제41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039;&#039;&#039;했다. 취임 즉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 시절 거친 언사와 독단적 행보로 균열이 갔던 NATO 등 전통 우방국과의 관계를 즉각 복원하고 [[미국|이란 인질 사건]]의 여파를 수습했다. 경제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했다. 경기 후퇴와 실업률 상승이라는 진통을 겪었으나,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하원과의 초당적 협상을 통해 세제 개편안과 긴축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의회정치의 마스터다운 면모를 과시했다.&lt;br /&gt;
&lt;br /&gt;
1983년 하반기부터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자 스타센은 &amp;quot;긴축의 결실이 맺히고 있으며, 미국은 다시 법치와 안정을 되찾았다&amp;quot;며 재선 도전에 나섰다. 상대는 4년 전 낙선 후 재정비하여 칼을 갈아온 프레드 트럼프였다. 트럼프 측은 긴축 정책과 고금리로 타격을 입은 [[미국|러스트 벨트]] 노동자층과 중서부 농민층의 분노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트럼프는 스타센을 &amp;quot;관료주의로 국민의 피를 말린 노인&amp;quot;이라 맹비난하며 과감한 세금 감면과 관세 부과를 약속했다. 스타센은 만 77세의 초고령에 접어들며 유세 과정에서 다소 지친 기색을 보였고, 반면 프레드 트럼프는 2살이 더 많았음에도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대중의 분노 표심을 단숨에 흡수했다.&lt;br /&gt;
&lt;br /&gt;
개표 결과, &#039;&#039;&#039;득표율 48.8% 대 49.6%(0.8%p 차), 선거인단 226표 대 312표&#039;&#039;&#039;로 프레드 트럼프에게 정권 탈환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긴축 정책으로 타격을 입었던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미국|미시간]] 등 핵심 러스트 벨트 스윙스테이트를 접전으로 빼앗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로써 스타센은 단임으로 백악관을 떠나게 되었고, 프레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징검다리 재선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스타센은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한 뒤, 1985년 1월 20일 정권을 이양하고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마무리하며 [[미국|미네소타]]로 완전히 귀향했다.&lt;br /&gt;
==평가==&lt;br /&gt;
===긍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해럴드 스타센은 법치주의와 의회정치라는 미국 헌정사의 위대한 유산을 온몸으로 체화한 인물이었다. 정치적 이념과 정파가 달랐을지라도, 그가 백악관에 앉아 있는 동안 미국인들은 국가의 행정 시스템이 절제되고 정직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깊은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2001년, [[미국|조 바이든]]}}&lt;br /&gt;
26년 상원 의정 경험과 부통령 경력을 바탕으로 [[민주당]]이 다수당인 의회와 끊임없이 소통했으며,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 헌정사의 전통을 되살려냈다. 외교적으로도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답게, 전임 행정부 시절 균열이 갔던 [[NATO]] 등 서방 동맹국과의 관계를 즉각 수습했다. 절제된 정통 외교 노선을 채택하여 냉전기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도덕적 지도력을 다시 올려놓았다. 또한 1970년대를 짓눌렀던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하여, 임기 후반 [[인플레이션]]을 잡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뼈대를 완성했다.&lt;br /&gt;
===부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스타센 대통령은 정치가 숫자와 수식으로만 움직인다고 믿은 오만한 엘리트였다.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통계표를 들고 자화자찬하는 동안 공장이 문을 닫고 길거리로 쫓겨난 중서부 주민들의 절규를 그는 전혀 듣지 못했다.|1992년, [[미국|팻 뷰캐넌]]}}&lt;br /&gt;
{{인용문|스타센은 자신이 &#039;국정의 조타수&#039;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노만 저었던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을 안정시킨 것이 아니라, 정체시키고 퇴보시켰다.|2004년, [[미국|폴 크루구먼]]}}&lt;br /&gt;
고금리 긴축 정책의 여파가 노동자층과 농민층에게 집중되며 [[미국|러스트 벨트]]의 외면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따른다. 지표상으로는 1983년 이후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섰으나, 제조업 몰락으로 타격을 입은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 벨트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이들의 분노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또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선동 정치에 대해 스타센은 지나치게 신사적이고 고전적인 원론으로만 대응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던 1980년대에 노련한 의회주의자의 고지식함은 대중에게 변화에 뒤처진 늙은 관료로 비쳐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결국 스태그플레이션 진화라는 고통스러운 악역을 맡아 국정을 정상화해 놓았으나, 정작 그 결실과 열매는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84년 대선]]에서 프레드 트럼프에게 다시 바치게 되면서 포퓰리즘 정권의 잠시 동안의 쉼표 역할만 하고 정권을 넘겨준 단임 대통령이라는 한계를 남겼다.&lt;br /&gt;
==기타==&lt;br /&gt;
* 1938년 만 31세의 나이로 [[미국|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되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 당선 기록이며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행정 능력과 카리스마로 당내 기득권을 꺾고 당선되어 30대 초반에 이미 [[공화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다. 물론 그는 최고령 미국 대통령 중 한명이 되었다.&lt;br /&gt;
* 주지사 3선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하던 1943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자 &amp;quot;청년들이 전선에서 피를 흘리는데 안락하게 관사에 머물 수 없다&amp;quot;며 &#039;&#039;&#039;주지사직을 전격 사임하고 해군에 자원입대&#039;&#039;&#039;했다. 태평양 전선에서 윌리엄 홀시 제독의 참모로 참전하여 공훈을 세웠고, 이 태평양 참전 경력은 훗날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과 1980년 대선 당시 프레드 트럼프의 &amp;quot;군대 근처에도 안 가본 군필 미필 논란&amp;quot;을 정면으로 격파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lt;br /&gt;
* 프로필 사진을 보면 머리카락이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탈모로 인해 가발을 착용했다.&lt;br /&gt;
==선거 이력==&lt;br /&gt;
=미국 대통령=&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float: right;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lef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90deg,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 #fff&amp;quot; | [[파일:Flag of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svg|60px]]&amp;lt;br&amp;gt;{{large|미합중국 대통령}}&amp;lt;br&amp;gt;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 0; width: 100%;&amp;quot; | [[파일:폴 라이언 (프런티어).png|class=fullImage|100%]]&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25%; 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현직&lt;br /&gt;
| [[폴 라이언 (프런티어)|폴 라이언]] &amp;lt;sub&amp;gt;/ 제49대&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취임일&lt;br /&gt;
| [[2020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재지&lt;br /&gt;
| [[미국|백악관]]&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으로, 미국 헌법에 따라 미국의 행정권을 총괄하며, [[미국|미군]]의 총사령관이자 통수권자로서 미군을 통솔 및 통수한다. 공식명칭은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이다.&lt;br /&gt;
==역대 대통령==&lt;br /&gt;
=한나라당=&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text-align: left; font-size: 10.5pt; border: 2px solid #009ee3; float: right;&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text-align: center; height: 200px;&amp;quot; | [[파일:한나라 세로.png|2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09ee3 20%, #0b318f 80%, #0b318f); color: #fff;&amp;quot; | 한나라당&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영문 명칭&lt;br /&gt;
| Hannara Party&amp;lt;br&amp;gt;Grand National Party&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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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黨&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슬로건&lt;br /&gt;
| &#039;&#039;&#039;{{글씨 색|#009ee3|Salus populi suprema lex esto.&amp;lt;br&amp;gt;국민의 안녕이 최고의 법이 되어야 한다.}}&#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등록연월일&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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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소 소재지&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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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86, 5~8층 (여의도동, B&amp;amp;B타워)&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대표&lt;br /&gt;
| [[백강혁 ()|백강혁]]&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원내대표&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총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위의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국회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20.4%, transparent 20.4%);&amp;quot; | &#039;&#039;&#039;102석 / 500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광역단체장&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기초단체장&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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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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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후원회&lt;br /&gt;
|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중앙당후원회}}&#039;&#039;&#039;] &amp;lt;sub&amp;gt;(대표자: [[고동진 ()|고동진]])&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원 수&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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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으뜸당원 수&lt;br /&gt;
| 72,560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당보조금&lt;br /&gt;
|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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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재산 총액&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가&lt;br /&gt;
|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공정과 기회 도약의 꿈 이뤄가며}}&#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링크&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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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lt;br /&gt;
==개요==&lt;br /&gt;
[[대한민국]]의 제3지대 중도정당. 제n대 국회의 제3당이다.&lt;br /&gt;
&lt;br /&gt;
[[2024년 윤석열 내각 의료대란]]으로 서울 oo병원의 권역외상센터장인 [[백강혁]] 주도로 창당되었으며, [[김동연]]의 [[새로운물결]], [[조정훈]]의 [[시대전환]], 그리고 [[네이버]] CEO 출신의 [[한성숙]]과 [[최휘영]]을 영입하면서 선거 직접 급속도로 세를 불렸다.&lt;br /&gt;
==창당 배경==&lt;br /&gt;
한나라당 창당의 직접적 배경은 [[윤석열 내각]]의 누적된 복합적인 국정 위기였다. 윤석열 내각에서의 의료 시스템 붕괴는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었는데, 전공의 이탈과 지방 의료 공백의 장기화, 응급·외상 의료 체계의 사실상 마비 상태가 수년간 지속되었음에도 내각이 실효성 있는 대응을 내놓지 못하였다. 이 과정에서 00병원 권역외상센터장으로 이름을 알린 [[백강혁]]이 의료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개 비판하며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여기에 경제 위기와 물가 폭등이 겹쳤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고환율이 맞물리며 서민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급격히 하락했고, 정부의 물가 안정 대책은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공공요금 인상, 식료품 가격 상승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며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었다. [[민주당]]과 [[한국경제당]]은 이 위기 국면에서 근본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lt;br /&gt;
&lt;br /&gt;
백강혁 교수는 오랜 기간 정치 참여 의사를 공개적으로 부정해왔다. 그러나 2024년 하반기부터 의료 붕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그의 입장이 변하기 시작했는데, 측근들에 따르면 백강혁은 &amp;quot;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이제 시스템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amp;quot;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전해졌다.&lt;br /&gt;
&lt;br /&gt;
2025년 초 복수의 정치권 인사들이 영입 제안을 해왔으나 백강혁은 기성 정당 합류를 거절하며 &amp;quot;기존 정당의 문법으로는 기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amp;quot;는 이유로, 독자 창당 결정은 2025년 2월 중순 외부에 처음 알려졌으며 정치권 안팎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2300</id>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2300"/>
		<updated>2026-08-22T11:38: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한나라당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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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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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 (프런티어)|{{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br /&gt;
===민주당: 웬델 윌키===&lt;br /&gt;
===공화당: 게리쿠퍼===&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500px; margin:0 auto; background:#E81018; border:2px solid #E81018; color:#fff;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font-size:1.25em; line-height:1.4; padding:10px 6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lt;br /&gt;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공화당 전당대회 지명 후보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fff; border:0; line-height:0;&amp;quot; | [[파일:쿠퍼 반덴버그 (프런티어).png|500px|cent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E81018; border:0;&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 margin:0;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border-right:1px solid #fff;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게리 쿠퍼}}&amp;lt;br&amp;gt;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아서 반덴버그}}&amp;lt;br&amp;gt;미시간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N대 부통령&lt;br /&gt;
|-&lt;br /&gt;
| [[1974년]] [[12월 19일]] ~ [[1977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약력==&lt;br /&gt;
* 1939. 제25대 [[미국|미네소타]] 주지사&lt;br /&gt;
* 1945.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제3함대 참모&lt;br /&gt;
* 1949. 미네소타주 연방 상원의원 (1949.1.3. ~ 1974.8.9.)&lt;br /&gt;
* 1957.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lt;br /&gt;
* 1965. 미국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lt;br /&gt;
* 1974.12. &#039;&#039;&#039;제N대 [[미국|미국 부통령]]&#039;&#039;&#039;&lt;br /&gt;
* 1981.1. &#039;&#039;&#039;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039;&#039;&#039;&lt;br /&gt;
==생애==&lt;br /&gt;
===제N대 미국 부통령===&lt;br /&gt;
1974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닉슨게이트 (프런티어)|닉슨게이트]]로 사임하고 [[존 코널리 (프런티어)|존 코널리]]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코널리에 의해 제39대 [[미국|미국 부통령]]으로 전격 지명되었다. 이후 12월 상·하원의 승인 청문회를 거쳐 공식적으로 취임했다.  &lt;br /&gt;
&lt;br /&gt;
닉슨 사임 이후 극도로 혼란스럽던 워싱턴 정가에서 스타센의 부통령 지명은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26년간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쌓은 압도적인 인망과 경력 덕분에, 닉슨게이트 여파로 와해 직전이던 의회와의 관계를 빠르게 회복시켰기 때문. [[존 코널리 행정부 (프런티어)|코널리 행정부]] 내에서는 주로 내정 및 의회 협상, [[1차 석유 파동]]에 따른 경제 위기 수습을 총괄하는 &#039;&#039;&#039;실권형 부통령&#039;&#039;&#039;으로 활약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 사임의 여파와 스태그플레이션 심화, 그리고 부동산 거물 출신 아웃사이더 포퓰리스트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거센 바람을 막지 못하고 코널리-스타센 티켓은 패배하며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했다.&lt;br /&gt;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한 후 고향 [[미국|미네소타]]로 돌아가 정계 은퇴 절차를 밟는 듯했으나, 백의종군하며 [[공화당]] 내 중도합리파와 의회 온건파의 원로로 남아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lt;br /&gt;
&lt;br /&gt;
당시 프레드 트럼프 행정부는 무분별한 뉴욕식 부동산 개발주의, 친족 비리 스캔들, 그리고 1979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의 대응 미숙으로 민심을 크게 잃은 상태였다. 이에 정계 기득권과 대중 모두가 아웃사이더 포퓰리즘에 지쳐가자, 당내 중도파와 상원 동료들의 삼고초려 끝에 1980년 1월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한다.&lt;br /&gt;
&lt;br /&gt;
당내 경선에서는 26년 상원 외교위원장 및 부통령 시절 구축한 막강한 의회 조직망과 미네소타 농가 지지표를 바탕으로 [[하워드 베이커]], [[존 B. 앤더슨]] 등 우파 신진 후보들을 가볍게 제압하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다. 러닝메이트로는 당내 보수파를 다독이기 위해 [[미국|테네시]] 출신의 상원 원내대표 하워드 베이커를 지명했다.&lt;br /&gt;
&lt;br /&gt;
본선에서는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트럼프 캠프 측은 스타센을 &amp;quot;워싱턴 늪지대의 늙은 구렁이&amp;quot;, &amp;quot;빌딩 한 채 못 지어본 무능한 관료&amp;quot;라며 고령과 기득권 이미지를 집중 공격했다.&amp;lt;ref&amp;gt;정작 프레드 트럼프 본인도 1905년생이라 당시 만 75세로 스타센보다 2살이나 많았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공세였던 셈.&amp;lt;/ref&amp;gt; 이에 스타센은 &amp;quot;국가는 법과 제도로 운영되는 공공체&amp;quot;라는 논리로 응수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약점인 불안정성과 품격 부재를 파고들었다.&lt;br /&gt;
&lt;br /&gt;
10월 28일 열린 대선 TV 토론회에서 프레드 트럼프가 &amp;quot;평생 의회 의자에 앉아 세금이나 까먹던 사람&amp;quot;이라고 몰아붙이자, 스타센은 상원 26년의 내공으로 자비롭게 허허 웃으며 &amp;quot;당신은 건물을 올려봤을지는 몰라도 이 나라의 법과 제도를 무너뜨리고 있다. 국가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로 세워지는 것&amp;quot;이라는 말을 남기며 승기를 완전히 잡아챘다.&lt;br /&gt;
&lt;br /&gt;
결국 11월 &#039;&#039;&#039;본선에서 51.7%의 득표율과 선거인단 357석을 확보하며, 181석에 그친 프레드 트럼프를 꺾고 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으로 당선&#039;&#039;&#039;되었다.&lt;br /&gt;
&lt;br /&gt;
이 승리로 스타센은 당선 당시 기준 역대 최고령 대통령(만 73세)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30대 최연소 주지사로 시작해 70대에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역대급 &#039;&#039;&#039;대기만성형 정치 서사&#039;&#039;&#039;를 완성했다.&lt;br /&gt;
===제41대 미국 대통령===&lt;br /&gt;
1981년 1월 20일, 당선 당시 기준 &#039;&#039;&#039;역대 최고령(만 73세)의 나이&amp;lt;ref&amp;gt;이후 이 기록은 프레드 트럼프에 의해 다시 갱신된다.&amp;lt;/ref&amp;gt;로 제41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039;&#039;&#039;했다. 취임 즉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 시절 거친 언사와 독단적 행보로 균열이 갔던 NATO 등 전통 우방국과의 관계를 즉각 복원하고 [[미국|이란 인질 사건]]의 여파를 수습했다. 경제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했다. 경기 후퇴와 실업률 상승이라는 진통을 겪었으나,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하원과의 초당적 협상을 통해 세제 개편안과 긴축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의회정치의 마스터다운 면모를 과시했다.&lt;br /&gt;
&lt;br /&gt;
1983년 하반기부터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자 스타센은 &amp;quot;긴축의 결실이 맺히고 있으며, 미국은 다시 법치와 안정을 되찾았다&amp;quot;며 재선 도전에 나섰다. 상대는 4년 전 낙선 후 재정비하여 칼을 갈아온 프레드 트럼프였다. 트럼프 측은 긴축 정책과 고금리로 타격을 입은 [[미국|러스트 벨트]] 노동자층과 중서부 농민층의 분노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트럼프는 스타센을 &amp;quot;관료주의로 국민의 피를 말린 노인&amp;quot;이라 맹비난하며 과감한 세금 감면과 관세 부과를 약속했다. 스타센은 만 77세의 초고령에 접어들며 유세 과정에서 다소 지친 기색을 보였고, 반면 프레드 트럼프는 2살이 더 많았음에도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대중의 분노 표심을 단숨에 흡수했다.&lt;br /&gt;
&lt;br /&gt;
개표 결과, &#039;&#039;&#039;득표율 48.8% 대 49.6%(0.8%p 차), 선거인단 226표 대 312표&#039;&#039;&#039;로 프레드 트럼프에게 정권 탈환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긴축 정책으로 타격을 입었던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미국|미시간]] 등 핵심 러스트 벨트 스윙스테이트를 접전으로 빼앗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로써 스타센은 단임으로 백악관을 떠나게 되었고, 프레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징검다리 재선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스타센은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한 뒤, 1985년 1월 20일 정권을 이양하고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마무리하며 [[미국|미네소타]]로 완전히 귀향했다.&lt;br /&gt;
==평가==&lt;br /&gt;
===긍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해럴드 스타센은 법치주의와 의회정치라는 미국 헌정사의 위대한 유산을 온몸으로 체화한 인물이었다. 정치적 이념과 정파가 달랐을지라도, 그가 백악관에 앉아 있는 동안 미국인들은 국가의 행정 시스템이 절제되고 정직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깊은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2001년, [[미국|조 바이든]]}}&lt;br /&gt;
26년 상원 의정 경험과 부통령 경력을 바탕으로 [[민주당]]이 다수당인 의회와 끊임없이 소통했으며,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 헌정사의 전통을 되살려냈다. 외교적으로도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답게, 전임 행정부 시절 균열이 갔던 [[NATO]] 등 서방 동맹국과의 관계를 즉각 수습했다. 절제된 정통 외교 노선을 채택하여 냉전기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도덕적 지도력을 다시 올려놓았다. 또한 1970년대를 짓눌렀던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하여, 임기 후반 [[인플레이션]]을 잡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뼈대를 완성했다.&lt;br /&gt;
===부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스타센 대통령은 정치가 숫자와 수식으로만 움직인다고 믿은 오만한 엘리트였다.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통계표를 들고 자화자찬하는 동안 공장이 문을 닫고 길거리로 쫓겨난 중서부 주민들의 절규를 그는 전혀 듣지 못했다.|1992년, [[미국|팻 뷰캐넌]]}}&lt;br /&gt;
{{인용문|스타센은 자신이 &#039;국정의 조타수&#039;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노만 저었던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을 안정시킨 것이 아니라, 정체시키고 퇴보시켰다.|2004년, [[미국|폴 크루구먼]]}}&lt;br /&gt;
고금리 긴축 정책의 여파가 노동자층과 농민층에게 집중되며 [[미국|러스트 벨트]]의 외면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따른다. 지표상으로는 1983년 이후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섰으나, 제조업 몰락으로 타격을 입은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 벨트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이들의 분노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또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선동 정치에 대해 스타센은 지나치게 신사적이고 고전적인 원론으로만 대응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던 1980년대에 노련한 의회주의자의 고지식함은 대중에게 변화에 뒤처진 늙은 관료로 비쳐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결국 스태그플레이션 진화라는 고통스러운 악역을 맡아 국정을 정상화해 놓았으나, 정작 그 결실과 열매는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84년 대선]]에서 프레드 트럼프에게 다시 바치게 되면서 포퓰리즘 정권의 잠시 동안의 쉼표 역할만 하고 정권을 넘겨준 단임 대통령이라는 한계를 남겼다.&lt;br /&gt;
==기타==&lt;br /&gt;
* 1938년 만 31세의 나이로 [[미국|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되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 당선 기록이며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행정 능력과 카리스마로 당내 기득권을 꺾고 당선되어 30대 초반에 이미 [[공화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다. 물론 그는 최고령 미국 대통령 중 한명이 되었다.&lt;br /&gt;
* 주지사 3선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하던 1943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자 &amp;quot;청년들이 전선에서 피를 흘리는데 안락하게 관사에 머물 수 없다&amp;quot;며 &#039;&#039;&#039;주지사직을 전격 사임하고 해군에 자원입대&#039;&#039;&#039;했다. 태평양 전선에서 윌리엄 홀시 제독의 참모로 참전하여 공훈을 세웠고, 이 태평양 참전 경력은 훗날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과 1980년 대선 당시 프레드 트럼프의 &amp;quot;군대 근처에도 안 가본 군필 미필 논란&amp;quot;을 정면으로 격파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lt;br /&gt;
* 프로필 사진을 보면 머리카락이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탈모로 인해 가발을 착용했다.&lt;br /&gt;
==선거 이력==&lt;br /&gt;
=미국 대통령=&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float: right;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lef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90deg,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 #fff&amp;quot; | [[파일:Flag of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svg|60px]]&amp;lt;br&amp;gt;{{large|미합중국 대통령}}&amp;lt;br&amp;gt;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 0; width: 100%;&amp;quot; | [[파일:폴 라이언 (프런티어).png|class=fullImage|100%]]&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25%; 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현직&lt;br /&gt;
| [[폴 라이언 (프런티어)|폴 라이언]] &amp;lt;sub&amp;gt;/ 제49대&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취임일&lt;br /&gt;
| [[2020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재지&lt;br /&gt;
| [[미국|백악관]]&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으로, 미국 헌법에 따라 미국의 행정권을 총괄하며, [[미국|미군]]의 총사령관이자 통수권자로서 미군을 통솔 및 통수한다. 공식명칭은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이다.&lt;br /&gt;
==역대 대통령==&lt;br /&gt;
=한나라당=&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text-align: left; font-size: 10.5pt; border: 2px solid #009ee3; float: right;&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text-align: center; height: 200px;&amp;quot; | [[파일:한나라 세로.png|2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09ee3 20%, #0b318f 80%, #0b318f); color: #fff;&amp;quot; | 한나라당&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영문 명칭&lt;br /&gt;
| Hannara Party&amp;lt;br&amp;gt;Grand National Party&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한문 명칭&lt;br /&gt;
| 한나라黨&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슬로건&lt;br /&gt;
| &#039;&#039;&#039;{{글씨 색|#009ee3|Salus populi suprema lex esto.&amp;lt;br&amp;gt;국민의 안녕이 최고의 법이 되어야 한다.}}&#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등록연월일&lt;br /&gt;
| 2025년 3월 1일&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소 소재지&lt;br /&g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multimaps: 37.530299,126.919577 | height = 150px | zoom = 15}}&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86, 5~8층 (여의도동, B&amp;amp;B타워)&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대표&lt;br /&gt;
| [[백강혁 ()|백강혁]]&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원내대표&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총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위의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국회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20.4%, transparent 20.4%);&amp;quot; | &#039;&#039;&#039;102석 / 500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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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기초단체장&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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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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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기초의원&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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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색&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연구소&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후원회&lt;br /&gt;
|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중앙당후원회}}&#039;&#039;&#039;] &amp;lt;sub&amp;gt;(대표자: [[고동진 ()|고동진]])&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원 수&lt;br /&gt;
| 223,488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으뜸당원 수&lt;br /&gt;
| 72,560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당보조금&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비 수입&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재산 총액&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가&lt;br /&gt;
|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공정과 기회 도약의 꿈 이뤄가며}}&#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링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대한민국]]의 제3지대 중도정당. 제n대 국회의 제3당이다.&lt;br /&gt;
&lt;br /&gt;
[[2024년 윤석열 내각 의료대란]]으로 서울 oo병원의 권역외상센터장인 [[백강혁]] 주도로 창당되었으며, [[김동연]]의 [[새로운물결]], [[조정훈]]의 [[시대전환]], 그리고 [[네이버]] CEO 출신의 [[한성숙]]과 [[최휘영]]을 영입하면서 선거 직접 급속도로 세를 불렸다.&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2273</id>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2273"/>
		<updated>2026-08-21T10:25: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한나라당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0년]] [[11월 5일]]}}&amp;lt;br&amp;gt;&#039;&#039;&#039;1940년 대선&#039;&#039;&#039;&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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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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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 (프런티어)|{{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br /&gt;
===민주당: 웬델 윌키===&lt;br /&gt;
===공화당: 게리쿠퍼===&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500px; margin:0 auto; background:#E81018; border:2px solid #E81018; color:#fff;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font-size:1.25em; line-height:1.4; padding:10px 6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lt;br /&gt;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공화당 전당대회 지명 후보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fff; border:0; line-height:0;&amp;quot; | [[파일:쿠퍼 반덴버그 (프런티어).png|500px|cent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E81018; border:0;&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 margin:0;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border-right:1px solid #fff;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게리 쿠퍼}}&amp;lt;br&amp;gt;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아서 반덴버그}}&amp;lt;br&amp;gt;미시간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N대 부통령&lt;br /&gt;
|-&lt;br /&gt;
| [[1974년]] [[12월 19일]] ~ [[1977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약력==&lt;br /&gt;
* 1939. 제25대 [[미국|미네소타]] 주지사&lt;br /&gt;
* 1945.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제3함대 참모&lt;br /&gt;
* 1949. 미네소타주 연방 상원의원 (1949.1.3. ~ 1974.8.9.)&lt;br /&gt;
* 1957.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lt;br /&gt;
* 1965. 미국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lt;br /&gt;
* 1974.12. &#039;&#039;&#039;제N대 [[미국|미국 부통령]]&#039;&#039;&#039;&lt;br /&gt;
* 1981.1. &#039;&#039;&#039;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039;&#039;&#039;&lt;br /&gt;
==생애==&lt;br /&gt;
===제N대 미국 부통령===&lt;br /&gt;
1974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닉슨게이트 (프런티어)|닉슨게이트]]로 사임하고 [[존 코널리 (프런티어)|존 코널리]]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코널리에 의해 제39대 [[미국|미국 부통령]]으로 전격 지명되었다. 이후 12월 상·하원의 승인 청문회를 거쳐 공식적으로 취임했다.  &lt;br /&gt;
&lt;br /&gt;
닉슨 사임 이후 극도로 혼란스럽던 워싱턴 정가에서 스타센의 부통령 지명은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26년간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쌓은 압도적인 인망과 경력 덕분에, 닉슨게이트 여파로 와해 직전이던 의회와의 관계를 빠르게 회복시켰기 때문. [[존 코널리 행정부 (프런티어)|코널리 행정부]] 내에서는 주로 내정 및 의회 협상, [[1차 석유 파동]]에 따른 경제 위기 수습을 총괄하는 &#039;&#039;&#039;실권형 부통령&#039;&#039;&#039;으로 활약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 사임의 여파와 스태그플레이션 심화, 그리고 부동산 거물 출신 아웃사이더 포퓰리스트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거센 바람을 막지 못하고 코널리-스타센 티켓은 패배하며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했다.&lt;br /&gt;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한 후 고향 [[미국|미네소타]]로 돌아가 정계 은퇴 절차를 밟는 듯했으나, 백의종군하며 [[공화당]] 내 중도합리파와 의회 온건파의 원로로 남아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lt;br /&gt;
&lt;br /&gt;
당시 프레드 트럼프 행정부는 무분별한 뉴욕식 부동산 개발주의, 친족 비리 스캔들, 그리고 1979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의 대응 미숙으로 민심을 크게 잃은 상태였다. 이에 정계 기득권과 대중 모두가 아웃사이더 포퓰리즘에 지쳐가자, 당내 중도파와 상원 동료들의 삼고초려 끝에 1980년 1월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한다.&lt;br /&gt;
&lt;br /&gt;
당내 경선에서는 26년 상원 외교위원장 및 부통령 시절 구축한 막강한 의회 조직망과 미네소타 농가 지지표를 바탕으로 [[하워드 베이커]], [[존 B. 앤더슨]] 등 우파 신진 후보들을 가볍게 제압하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다. 러닝메이트로는 당내 보수파를 다독이기 위해 [[미국|테네시]] 출신의 상원 원내대표 하워드 베이커를 지명했다.&lt;br /&gt;
&lt;br /&gt;
본선에서는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트럼프 캠프 측은 스타센을 &amp;quot;워싱턴 늪지대의 늙은 구렁이&amp;quot;, &amp;quot;빌딩 한 채 못 지어본 무능한 관료&amp;quot;라며 고령과 기득권 이미지를 집중 공격했다.&amp;lt;ref&amp;gt;정작 프레드 트럼프 본인도 1905년생이라 당시 만 75세로 스타센보다 2살이나 많았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공세였던 셈.&amp;lt;/ref&amp;gt; 이에 스타센은 &amp;quot;국가는 법과 제도로 운영되는 공공체&amp;quot;라는 논리로 응수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약점인 불안정성과 품격 부재를 파고들었다.&lt;br /&gt;
&lt;br /&gt;
10월 28일 열린 대선 TV 토론회에서 프레드 트럼프가 &amp;quot;평생 의회 의자에 앉아 세금이나 까먹던 사람&amp;quot;이라고 몰아붙이자, 스타센은 상원 26년의 내공으로 자비롭게 허허 웃으며 &amp;quot;당신은 건물을 올려봤을지는 몰라도 이 나라의 법과 제도를 무너뜨리고 있다. 국가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로 세워지는 것&amp;quot;이라는 말을 남기며 승기를 완전히 잡아챘다.&lt;br /&gt;
&lt;br /&gt;
결국 11월 &#039;&#039;&#039;본선에서 51.7%의 득표율과 선거인단 357석을 확보하며, 181석에 그친 프레드 트럼프를 꺾고 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으로 당선&#039;&#039;&#039;되었다.&lt;br /&gt;
&lt;br /&gt;
이 승리로 스타센은 당선 당시 기준 역대 최고령 대통령(만 73세)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30대 최연소 주지사로 시작해 70대에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역대급 &#039;&#039;&#039;대기만성형 정치 서사&#039;&#039;&#039;를 완성했다.&lt;br /&gt;
===제41대 미국 대통령===&lt;br /&gt;
1981년 1월 20일, 당선 당시 기준 &#039;&#039;&#039;역대 최고령(만 73세)의 나이&amp;lt;ref&amp;gt;이후 이 기록은 프레드 트럼프에 의해 다시 갱신된다.&amp;lt;/ref&amp;gt;로 제41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039;&#039;&#039;했다. 취임 즉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 시절 거친 언사와 독단적 행보로 균열이 갔던 NATO 등 전통 우방국과의 관계를 즉각 복원하고 [[미국|이란 인질 사건]]의 여파를 수습했다. 경제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했다. 경기 후퇴와 실업률 상승이라는 진통을 겪었으나,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하원과의 초당적 협상을 통해 세제 개편안과 긴축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의회정치의 마스터다운 면모를 과시했다.&lt;br /&gt;
&lt;br /&gt;
1983년 하반기부터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자 스타센은 &amp;quot;긴축의 결실이 맺히고 있으며, 미국은 다시 법치와 안정을 되찾았다&amp;quot;며 재선 도전에 나섰다. 상대는 4년 전 낙선 후 재정비하여 칼을 갈아온 프레드 트럼프였다. 트럼프 측은 긴축 정책과 고금리로 타격을 입은 [[미국|러스트 벨트]] 노동자층과 중서부 농민층의 분노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트럼프는 스타센을 &amp;quot;관료주의로 국민의 피를 말린 노인&amp;quot;이라 맹비난하며 과감한 세금 감면과 관세 부과를 약속했다. 스타센은 만 77세의 초고령에 접어들며 유세 과정에서 다소 지친 기색을 보였고, 반면 프레드 트럼프는 2살이 더 많았음에도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대중의 분노 표심을 단숨에 흡수했다.&lt;br /&gt;
&lt;br /&gt;
개표 결과, &#039;&#039;&#039;득표율 48.8% 대 49.6%(0.8%p 차), 선거인단 226표 대 312표&#039;&#039;&#039;로 프레드 트럼프에게 정권 탈환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긴축 정책으로 타격을 입었던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미국|미시간]] 등 핵심 러스트 벨트 스윙스테이트를 접전으로 빼앗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로써 스타센은 단임으로 백악관을 떠나게 되었고, 프레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징검다리 재선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스타센은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한 뒤, 1985년 1월 20일 정권을 이양하고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마무리하며 [[미국|미네소타]]로 완전히 귀향했다.&lt;br /&gt;
==평가==&lt;br /&gt;
===긍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해럴드 스타센은 법치주의와 의회정치라는 미국 헌정사의 위대한 유산을 온몸으로 체화한 인물이었다. 정치적 이념과 정파가 달랐을지라도, 그가 백악관에 앉아 있는 동안 미국인들은 국가의 행정 시스템이 절제되고 정직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깊은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2001년, [[미국|조 바이든]]}}&lt;br /&gt;
26년 상원 의정 경험과 부통령 경력을 바탕으로 [[민주당]]이 다수당인 의회와 끊임없이 소통했으며,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 헌정사의 전통을 되살려냈다. 외교적으로도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답게, 전임 행정부 시절 균열이 갔던 [[NATO]] 등 서방 동맹국과의 관계를 즉각 수습했다. 절제된 정통 외교 노선을 채택하여 냉전기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도덕적 지도력을 다시 올려놓았다. 또한 1970년대를 짓눌렀던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하여, 임기 후반 [[인플레이션]]을 잡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뼈대를 완성했다.&lt;br /&gt;
===부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스타센 대통령은 정치가 숫자와 수식으로만 움직인다고 믿은 오만한 엘리트였다.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통계표를 들고 자화자찬하는 동안 공장이 문을 닫고 길거리로 쫓겨난 중서부 주민들의 절규를 그는 전혀 듣지 못했다.|1992년, [[미국|팻 뷰캐넌]]}}&lt;br /&gt;
{{인용문|스타센은 자신이 &#039;국정의 조타수&#039;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노만 저었던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을 안정시킨 것이 아니라, 정체시키고 퇴보시켰다.|2004년, [[미국|폴 크루구먼]]}}&lt;br /&gt;
고금리 긴축 정책의 여파가 노동자층과 농민층에게 집중되며 [[미국|러스트 벨트]]의 외면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따른다. 지표상으로는 1983년 이후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섰으나, 제조업 몰락으로 타격을 입은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 벨트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이들의 분노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또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선동 정치에 대해 스타센은 지나치게 신사적이고 고전적인 원론으로만 대응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던 1980년대에 노련한 의회주의자의 고지식함은 대중에게 변화에 뒤처진 늙은 관료로 비쳐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결국 스태그플레이션 진화라는 고통스러운 악역을 맡아 국정을 정상화해 놓았으나, 정작 그 결실과 열매는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84년 대선]]에서 프레드 트럼프에게 다시 바치게 되면서 포퓰리즘 정권의 잠시 동안의 쉼표 역할만 하고 정권을 넘겨준 단임 대통령이라는 한계를 남겼다.&lt;br /&gt;
==기타==&lt;br /&gt;
* 1938년 만 31세의 나이로 [[미국|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되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 당선 기록이며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행정 능력과 카리스마로 당내 기득권을 꺾고 당선되어 30대 초반에 이미 [[공화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다. 물론 그는 최고령 미국 대통령 중 한명이 되었다.&lt;br /&gt;
* 주지사 3선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하던 1943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자 &amp;quot;청년들이 전선에서 피를 흘리는데 안락하게 관사에 머물 수 없다&amp;quot;며 &#039;&#039;&#039;주지사직을 전격 사임하고 해군에 자원입대&#039;&#039;&#039;했다. 태평양 전선에서 윌리엄 홀시 제독의 참모로 참전하여 공훈을 세웠고, 이 태평양 참전 경력은 훗날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과 1980년 대선 당시 프레드 트럼프의 &amp;quot;군대 근처에도 안 가본 군필 미필 논란&amp;quot;을 정면으로 격파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lt;br /&gt;
* 프로필 사진을 보면 머리카락이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탈모로 인해 가발을 착용했다.&lt;br /&gt;
==선거 이력==&lt;br /&gt;
=미국 대통령=&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float: right;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lef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90deg,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 #fff&amp;quot; | [[파일:Flag of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svg|60px]]&amp;lt;br&amp;gt;{{large|미합중국 대통령}}&amp;lt;br&amp;gt;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 0; width: 100%;&amp;quot; | [[파일:폴 라이언 (프런티어).png|class=fullImage|100%]]&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25%; 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현직&lt;br /&gt;
| [[폴 라이언 (프런티어)|폴 라이언]] &amp;lt;sub&amp;gt;/ 제49대&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취임일&lt;br /&gt;
| [[2020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재지&lt;br /&gt;
| [[미국|백악관]]&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으로, 미국 헌법에 따라 미국의 행정권을 총괄하며, [[미국|미군]]의 총사령관이자 통수권자로서 미군을 통솔 및 통수한다. 공식명칭은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이다.&lt;br /&gt;
==역대 대통령==&lt;br /&gt;
=한나라당=&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text-align: left; font-size: 10.5pt; border: 2px solid #009ee3; float: right;&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text-align: center; height: 200px;&amp;quot; | [[파일:한나라 세로.png|2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09ee3 20%, #0b318f 80%, #0b318f); color: #fff;&amp;quot; | 한나라당&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영문 명칭&lt;br /&gt;
| Hannara Party&amp;lt;br&amp;gt;Grand National Party&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한문 명칭&lt;br /&gt;
| 한나라黨&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슬로건&lt;br /&gt;
| &#039;&#039;&#039;{{글씨 색|#009ee3|Salus populi suprema lex esto.&amp;lt;br&amp;gt;국민의 안녕이 최고의 법이 되어야 한다.}}&#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등록연월일&lt;br /&gt;
| 2025년 3월 1일&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소 소재지&lt;br /&g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multimaps: 37.530299,126.919577 | height = 150px | zoom = 15}}&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86, 5~8층 (여의도동, B&amp;amp;B타워)&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대표&lt;br /&gt;
| [[백강혁 ()|백강혁]]&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원내대표&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총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위의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국회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20.4%, transparent 20.4%);&amp;quot; | &#039;&#039;&#039;102석 / 500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광역단체장&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기초단체장&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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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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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기초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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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연구소&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후원회&lt;br /&gt;
|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중앙당후원회}}&#039;&#039;&#039;] &amp;lt;sub&amp;gt;(대표자: [[고동진 ()|고동진]])&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원 수&lt;br /&gt;
| 223,488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으뜸당원 수&lt;br /&gt;
| 72,560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당보조금&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비 수입&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재산 총액&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가&lt;br /&gt;
|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공정과 기회 도약의 꿈 이뤄가며}}&#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링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2272</id>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2272"/>
		<updated>2026-08-21T10:22:0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한나라당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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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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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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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width=25%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일시&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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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 (프런티어)|{{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br /&gt;
===민주당: 웬델 윌키===&lt;br /&gt;
===공화당: 게리쿠퍼===&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500px; margin:0 auto; background:#E81018; border:2px solid #E81018; color:#fff;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font-size:1.25em; line-height:1.4; padding:10px 6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lt;br /&gt;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공화당 전당대회 지명 후보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fff; border:0; line-height:0;&amp;quot; | [[파일:쿠퍼 반덴버그 (프런티어).png|500px|cent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E81018; border:0;&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 margin:0;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border-right:1px solid #fff;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게리 쿠퍼}}&amp;lt;br&amp;gt;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아서 반덴버그}}&amp;lt;br&amp;gt;미시간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N대 부통령&lt;br /&gt;
|-&lt;br /&gt;
| [[1974년]] [[12월 19일]] ~ [[1977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약력==&lt;br /&gt;
* 1939. 제25대 [[미국|미네소타]] 주지사&lt;br /&gt;
* 1945.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제3함대 참모&lt;br /&gt;
* 1949. 미네소타주 연방 상원의원 (1949.1.3. ~ 1974.8.9.)&lt;br /&gt;
* 1957.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lt;br /&gt;
* 1965. 미국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lt;br /&gt;
* 1974.12. &#039;&#039;&#039;제N대 [[미국|미국 부통령]]&#039;&#039;&#039;&lt;br /&gt;
* 1981.1. &#039;&#039;&#039;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039;&#039;&#039;&lt;br /&gt;
==생애==&lt;br /&gt;
===제N대 미국 부통령===&lt;br /&gt;
1974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닉슨게이트 (프런티어)|닉슨게이트]]로 사임하고 [[존 코널리 (프런티어)|존 코널리]]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코널리에 의해 제39대 [[미국|미국 부통령]]으로 전격 지명되었다. 이후 12월 상·하원의 승인 청문회를 거쳐 공식적으로 취임했다.  &lt;br /&gt;
&lt;br /&gt;
닉슨 사임 이후 극도로 혼란스럽던 워싱턴 정가에서 스타센의 부통령 지명은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26년간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쌓은 압도적인 인망과 경력 덕분에, 닉슨게이트 여파로 와해 직전이던 의회와의 관계를 빠르게 회복시켰기 때문. [[존 코널리 행정부 (프런티어)|코널리 행정부]] 내에서는 주로 내정 및 의회 협상, [[1차 석유 파동]]에 따른 경제 위기 수습을 총괄하는 &#039;&#039;&#039;실권형 부통령&#039;&#039;&#039;으로 활약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 사임의 여파와 스태그플레이션 심화, 그리고 부동산 거물 출신 아웃사이더 포퓰리스트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거센 바람을 막지 못하고 코널리-스타센 티켓은 패배하며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했다.&lt;br /&gt;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한 후 고향 [[미국|미네소타]]로 돌아가 정계 은퇴 절차를 밟는 듯했으나, 백의종군하며 [[공화당]] 내 중도합리파와 의회 온건파의 원로로 남아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lt;br /&gt;
&lt;br /&gt;
당시 프레드 트럼프 행정부는 무분별한 뉴욕식 부동산 개발주의, 친족 비리 스캔들, 그리고 1979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의 대응 미숙으로 민심을 크게 잃은 상태였다. 이에 정계 기득권과 대중 모두가 아웃사이더 포퓰리즘에 지쳐가자, 당내 중도파와 상원 동료들의 삼고초려 끝에 1980년 1월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한다.&lt;br /&gt;
&lt;br /&gt;
당내 경선에서는 26년 상원 외교위원장 및 부통령 시절 구축한 막강한 의회 조직망과 미네소타 농가 지지표를 바탕으로 [[하워드 베이커]], [[존 B. 앤더슨]] 등 우파 신진 후보들을 가볍게 제압하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다. 러닝메이트로는 당내 보수파를 다독이기 위해 [[미국|테네시]] 출신의 상원 원내대표 하워드 베이커를 지명했다.&lt;br /&gt;
&lt;br /&gt;
본선에서는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트럼프 캠프 측은 스타센을 &amp;quot;워싱턴 늪지대의 늙은 구렁이&amp;quot;, &amp;quot;빌딩 한 채 못 지어본 무능한 관료&amp;quot;라며 고령과 기득권 이미지를 집중 공격했다.&amp;lt;ref&amp;gt;정작 프레드 트럼프 본인도 1905년생이라 당시 만 75세로 스타센보다 2살이나 많았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공세였던 셈.&amp;lt;/ref&amp;gt; 이에 스타센은 &amp;quot;국가는 법과 제도로 운영되는 공공체&amp;quot;라는 논리로 응수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약점인 불안정성과 품격 부재를 파고들었다.&lt;br /&gt;
&lt;br /&gt;
10월 28일 열린 대선 TV 토론회에서 프레드 트럼프가 &amp;quot;평생 의회 의자에 앉아 세금이나 까먹던 사람&amp;quot;이라고 몰아붙이자, 스타센은 상원 26년의 내공으로 자비롭게 허허 웃으며 &amp;quot;당신은 건물을 올려봤을지는 몰라도 이 나라의 법과 제도를 무너뜨리고 있다. 국가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로 세워지는 것&amp;quot;이라는 말을 남기며 승기를 완전히 잡아챘다.&lt;br /&gt;
&lt;br /&gt;
결국 11월 &#039;&#039;&#039;본선에서 51.7%의 득표율과 선거인단 357석을 확보하며, 181석에 그친 프레드 트럼프를 꺾고 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으로 당선&#039;&#039;&#039;되었다.&lt;br /&gt;
&lt;br /&gt;
이 승리로 스타센은 당선 당시 기준 역대 최고령 대통령(만 73세)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30대 최연소 주지사로 시작해 70대에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역대급 &#039;&#039;&#039;대기만성형 정치 서사&#039;&#039;&#039;를 완성했다.&lt;br /&gt;
===제41대 미국 대통령===&lt;br /&gt;
1981년 1월 20일, 당선 당시 기준 &#039;&#039;&#039;역대 최고령(만 73세)의 나이&amp;lt;ref&amp;gt;이후 이 기록은 프레드 트럼프에 의해 다시 갱신된다.&amp;lt;/ref&amp;gt;로 제41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039;&#039;&#039;했다. 취임 즉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 시절 거친 언사와 독단적 행보로 균열이 갔던 NATO 등 전통 우방국과의 관계를 즉각 복원하고 [[미국|이란 인질 사건]]의 여파를 수습했다. 경제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했다. 경기 후퇴와 실업률 상승이라는 진통을 겪었으나,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하원과의 초당적 협상을 통해 세제 개편안과 긴축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의회정치의 마스터다운 면모를 과시했다.&lt;br /&gt;
&lt;br /&gt;
1983년 하반기부터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자 스타센은 &amp;quot;긴축의 결실이 맺히고 있으며, 미국은 다시 법치와 안정을 되찾았다&amp;quot;며 재선 도전에 나섰다. 상대는 4년 전 낙선 후 재정비하여 칼을 갈아온 프레드 트럼프였다. 트럼프 측은 긴축 정책과 고금리로 타격을 입은 [[미국|러스트 벨트]] 노동자층과 중서부 농민층의 분노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트럼프는 스타센을 &amp;quot;관료주의로 국민의 피를 말린 노인&amp;quot;이라 맹비난하며 과감한 세금 감면과 관세 부과를 약속했다. 스타센은 만 77세의 초고령에 접어들며 유세 과정에서 다소 지친 기색을 보였고, 반면 프레드 트럼프는 2살이 더 많았음에도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대중의 분노 표심을 단숨에 흡수했다.&lt;br /&gt;
&lt;br /&gt;
개표 결과, &#039;&#039;&#039;득표율 48.8% 대 49.6%(0.8%p 차), 선거인단 226표 대 312표&#039;&#039;&#039;로 프레드 트럼프에게 정권 탈환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긴축 정책으로 타격을 입었던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미국|미시간]] 등 핵심 러스트 벨트 스윙스테이트를 접전으로 빼앗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로써 스타센은 단임으로 백악관을 떠나게 되었고, 프레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징검다리 재선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스타센은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한 뒤, 1985년 1월 20일 정권을 이양하고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마무리하며 [[미국|미네소타]]로 완전히 귀향했다.&lt;br /&gt;
==평가==&lt;br /&gt;
===긍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해럴드 스타센은 법치주의와 의회정치라는 미국 헌정사의 위대한 유산을 온몸으로 체화한 인물이었다. 정치적 이념과 정파가 달랐을지라도, 그가 백악관에 앉아 있는 동안 미국인들은 국가의 행정 시스템이 절제되고 정직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깊은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2001년, [[미국|조 바이든]]}}&lt;br /&gt;
26년 상원 의정 경험과 부통령 경력을 바탕으로 [[민주당]]이 다수당인 의회와 끊임없이 소통했으며,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 헌정사의 전통을 되살려냈다. 외교적으로도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답게, 전임 행정부 시절 균열이 갔던 [[NATO]] 등 서방 동맹국과의 관계를 즉각 수습했다. 절제된 정통 외교 노선을 채택하여 냉전기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도덕적 지도력을 다시 올려놓았다. 또한 1970년대를 짓눌렀던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하여, 임기 후반 [[인플레이션]]을 잡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뼈대를 완성했다.&lt;br /&gt;
===부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스타센 대통령은 정치가 숫자와 수식으로만 움직인다고 믿은 오만한 엘리트였다.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통계표를 들고 자화자찬하는 동안 공장이 문을 닫고 길거리로 쫓겨난 중서부 주민들의 절규를 그는 전혀 듣지 못했다.|1992년, [[미국|팻 뷰캐넌]]}}&lt;br /&gt;
{{인용문|스타센은 자신이 &#039;국정의 조타수&#039;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노만 저었던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을 안정시킨 것이 아니라, 정체시키고 퇴보시켰다.|2004년, [[미국|폴 크루구먼]]}}&lt;br /&gt;
고금리 긴축 정책의 여파가 노동자층과 농민층에게 집중되며 [[미국|러스트 벨트]]의 외면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따른다. 지표상으로는 1983년 이후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섰으나, 제조업 몰락으로 타격을 입은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 벨트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이들의 분노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또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선동 정치에 대해 스타센은 지나치게 신사적이고 고전적인 원론으로만 대응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던 1980년대에 노련한 의회주의자의 고지식함은 대중에게 변화에 뒤처진 늙은 관료로 비쳐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결국 스태그플레이션 진화라는 고통스러운 악역을 맡아 국정을 정상화해 놓았으나, 정작 그 결실과 열매는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84년 대선]]에서 프레드 트럼프에게 다시 바치게 되면서 포퓰리즘 정권의 잠시 동안의 쉼표 역할만 하고 정권을 넘겨준 단임 대통령이라는 한계를 남겼다.&lt;br /&gt;
==기타==&lt;br /&gt;
* 1938년 만 31세의 나이로 [[미국|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되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 당선 기록이며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행정 능력과 카리스마로 당내 기득권을 꺾고 당선되어 30대 초반에 이미 [[공화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다. 물론 그는 최고령 미국 대통령 중 한명이 되었다.&lt;br /&gt;
* 주지사 3선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하던 1943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자 &amp;quot;청년들이 전선에서 피를 흘리는데 안락하게 관사에 머물 수 없다&amp;quot;며 &#039;&#039;&#039;주지사직을 전격 사임하고 해군에 자원입대&#039;&#039;&#039;했다. 태평양 전선에서 윌리엄 홀시 제독의 참모로 참전하여 공훈을 세웠고, 이 태평양 참전 경력은 훗날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과 1980년 대선 당시 프레드 트럼프의 &amp;quot;군대 근처에도 안 가본 군필 미필 논란&amp;quot;을 정면으로 격파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lt;br /&gt;
* 프로필 사진을 보면 머리카락이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탈모로 인해 가발을 착용했다.&lt;br /&gt;
==선거 이력==&lt;br /&gt;
=미국 대통령=&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float: right;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lef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90deg,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 #fff&amp;quot; | [[파일:Flag of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svg|60px]]&amp;lt;br&amp;gt;{{large|미합중국 대통령}}&amp;lt;br&amp;gt;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 0; width: 100%;&amp;quot; | [[파일:폴 라이언 (프런티어).png|class=fullImage|100%]]&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25%; 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현직&lt;br /&gt;
| [[폴 라이언 (프런티어)|폴 라이언]] &amp;lt;sub&amp;gt;/ 제49대&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취임일&lt;br /&gt;
| [[2020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재지&lt;br /&gt;
| [[미국|백악관]]&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으로, 미국 헌법에 따라 미국의 행정권을 총괄하며, [[미국|미군]]의 총사령관이자 통수권자로서 미군을 통솔 및 통수한다. 공식명칭은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이다.&lt;br /&gt;
==역대 대통령==&lt;br /&gt;
=한나라당=&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text-align: left; font-size: 10.5pt; border: 2px solid #009ee3; float: right;&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text-align: center; height: 200px;&amp;quot; | [[파일:한나라 세로.png|2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09ee3 20%, #0b318f 80%, #0b318f); color: #fff;&amp;quot; | 한나라당&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영문 명칭&lt;br /&gt;
| Hannara Party&amp;lt;br&amp;gt;Grand National Party&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한문 명칭&lt;br /&gt;
| 한나라黨&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슬로건&lt;br /&gt;
| &#039;&#039;&#039;{{글씨 색|#009ee3|Salus populi suprema lex esto.&amp;lt;br&amp;gt;국민의 안녕이 최고의 법이 되어야 한다.}}&#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등록연월일&lt;br /&gt;
| 2025년 3월 1일&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소 소재지&lt;br /&g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multimaps: 37.530299,126.919577 | height = 150px | zoom = 15}}&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86, 5~8층 (여의도동, B&amp;amp;B타워)&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대표&lt;br /&gt;
| [[백강혁 ()|백강혁]]&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원내대표&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총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위의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국회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20.4%, transparent 20.4%);&amp;quot; | &#039;&#039;&#039;102석 / 500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광역단체장&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기초단체장&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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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기초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색&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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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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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중앙당후원회}}&#039;&#039;&#039;] &amp;lt;sub&amp;gt;(대표자: [[고동진 ()|고동진]])&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원 수&lt;br /&gt;
| 223,488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으뜸당원 수&lt;br /&gt;
| 72,560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당보조금&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비 수입&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재산 총액&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가&lt;br /&gt;
|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공정과 기회 도약의 꿈 이뤄가며}}&#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링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개요==&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2271</id>
		<title>연습장:Eiffe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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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1T08:48:3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한나라당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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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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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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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 (프런티어)|{{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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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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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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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br /&gt;
===민주당: 웬델 윌키===&lt;br /&gt;
===공화당: 게리쿠퍼===&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500px; margin:0 auto; background:#E81018; border:2px solid #E81018; color:#fff;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font-size:1.25em; line-height:1.4; padding:10px 6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lt;br /&gt;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공화당 전당대회 지명 후보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fff; border:0; line-height:0;&amp;quot; | [[파일:쿠퍼 반덴버그 (프런티어).png|500px|cent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E81018; border:0;&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 margin:0;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border-right:1px solid #fff;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게리 쿠퍼}}&amp;lt;br&amp;gt;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아서 반덴버그}}&amp;lt;br&amp;gt;미시간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N대 부통령&lt;br /&gt;
|-&lt;br /&gt;
| [[1974년]] [[12월 19일]] ~ [[1977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약력==&lt;br /&gt;
* 1939. 제25대 [[미국|미네소타]] 주지사&lt;br /&gt;
* 1945.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제3함대 참모&lt;br /&gt;
* 1949. 미네소타주 연방 상원의원 (1949.1.3. ~ 1974.8.9.)&lt;br /&gt;
* 1957.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lt;br /&gt;
* 1965. 미국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lt;br /&gt;
* 1974.12. &#039;&#039;&#039;제N대 [[미국|미국 부통령]]&#039;&#039;&#039;&lt;br /&gt;
* 1981.1. &#039;&#039;&#039;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039;&#039;&#039;&lt;br /&gt;
==생애==&lt;br /&gt;
===제N대 미국 부통령===&lt;br /&gt;
1974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닉슨게이트 (프런티어)|닉슨게이트]]로 사임하고 [[존 코널리 (프런티어)|존 코널리]]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코널리에 의해 제39대 [[미국|미국 부통령]]으로 전격 지명되었다. 이후 12월 상·하원의 승인 청문회를 거쳐 공식적으로 취임했다.  &lt;br /&gt;
&lt;br /&gt;
닉슨 사임 이후 극도로 혼란스럽던 워싱턴 정가에서 스타센의 부통령 지명은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26년간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쌓은 압도적인 인망과 경력 덕분에, 닉슨게이트 여파로 와해 직전이던 의회와의 관계를 빠르게 회복시켰기 때문. [[존 코널리 행정부 (프런티어)|코널리 행정부]] 내에서는 주로 내정 및 의회 협상, [[1차 석유 파동]]에 따른 경제 위기 수습을 총괄하는 &#039;&#039;&#039;실권형 부통령&#039;&#039;&#039;으로 활약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 사임의 여파와 스태그플레이션 심화, 그리고 부동산 거물 출신 아웃사이더 포퓰리스트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거센 바람을 막지 못하고 코널리-스타센 티켓은 패배하며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했다.&lt;br /&gt;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한 후 고향 [[미국|미네소타]]로 돌아가 정계 은퇴 절차를 밟는 듯했으나, 백의종군하며 [[공화당]] 내 중도합리파와 의회 온건파의 원로로 남아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lt;br /&gt;
&lt;br /&gt;
당시 프레드 트럼프 행정부는 무분별한 뉴욕식 부동산 개발주의, 친족 비리 스캔들, 그리고 1979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의 대응 미숙으로 민심을 크게 잃은 상태였다. 이에 정계 기득권과 대중 모두가 아웃사이더 포퓰리즘에 지쳐가자, 당내 중도파와 상원 동료들의 삼고초려 끝에 1980년 1월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한다.&lt;br /&gt;
&lt;br /&gt;
당내 경선에서는 26년 상원 외교위원장 및 부통령 시절 구축한 막강한 의회 조직망과 미네소타 농가 지지표를 바탕으로 [[하워드 베이커]], [[존 B. 앤더슨]] 등 우파 신진 후보들을 가볍게 제압하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다. 러닝메이트로는 당내 보수파를 다독이기 위해 [[미국|테네시]] 출신의 상원 원내대표 하워드 베이커를 지명했다.&lt;br /&gt;
&lt;br /&gt;
본선에서는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트럼프 캠프 측은 스타센을 &amp;quot;워싱턴 늪지대의 늙은 구렁이&amp;quot;, &amp;quot;빌딩 한 채 못 지어본 무능한 관료&amp;quot;라며 고령과 기득권 이미지를 집중 공격했다.&amp;lt;ref&amp;gt;정작 프레드 트럼프 본인도 1905년생이라 당시 만 75세로 스타센보다 2살이나 많았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공세였던 셈.&amp;lt;/ref&amp;gt; 이에 스타센은 &amp;quot;국가는 법과 제도로 운영되는 공공체&amp;quot;라는 논리로 응수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약점인 불안정성과 품격 부재를 파고들었다.&lt;br /&gt;
&lt;br /&gt;
10월 28일 열린 대선 TV 토론회에서 프레드 트럼프가 &amp;quot;평생 의회 의자에 앉아 세금이나 까먹던 사람&amp;quot;이라고 몰아붙이자, 스타센은 상원 26년의 내공으로 자비롭게 허허 웃으며 &amp;quot;당신은 건물을 올려봤을지는 몰라도 이 나라의 법과 제도를 무너뜨리고 있다. 국가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로 세워지는 것&amp;quot;이라는 말을 남기며 승기를 완전히 잡아챘다.&lt;br /&gt;
&lt;br /&gt;
결국 11월 &#039;&#039;&#039;본선에서 51.7%의 득표율과 선거인단 357석을 확보하며, 181석에 그친 프레드 트럼프를 꺾고 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으로 당선&#039;&#039;&#039;되었다.&lt;br /&gt;
&lt;br /&gt;
이 승리로 스타센은 당선 당시 기준 역대 최고령 대통령(만 73세)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30대 최연소 주지사로 시작해 70대에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역대급 &#039;&#039;&#039;대기만성형 정치 서사&#039;&#039;&#039;를 완성했다.&lt;br /&gt;
===제41대 미국 대통령===&lt;br /&gt;
1981년 1월 20일, 당선 당시 기준 &#039;&#039;&#039;역대 최고령(만 73세)의 나이&amp;lt;ref&amp;gt;이후 이 기록은 프레드 트럼프에 의해 다시 갱신된다.&amp;lt;/ref&amp;gt;로 제41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039;&#039;&#039;했다. 취임 즉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 시절 거친 언사와 독단적 행보로 균열이 갔던 NATO 등 전통 우방국과의 관계를 즉각 복원하고 [[미국|이란 인질 사건]]의 여파를 수습했다. 경제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했다. 경기 후퇴와 실업률 상승이라는 진통을 겪었으나,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하원과의 초당적 협상을 통해 세제 개편안과 긴축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의회정치의 마스터다운 면모를 과시했다.&lt;br /&gt;
&lt;br /&gt;
1983년 하반기부터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자 스타센은 &amp;quot;긴축의 결실이 맺히고 있으며, 미국은 다시 법치와 안정을 되찾았다&amp;quot;며 재선 도전에 나섰다. 상대는 4년 전 낙선 후 재정비하여 칼을 갈아온 프레드 트럼프였다. 트럼프 측은 긴축 정책과 고금리로 타격을 입은 [[미국|러스트 벨트]] 노동자층과 중서부 농민층의 분노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트럼프는 스타센을 &amp;quot;관료주의로 국민의 피를 말린 노인&amp;quot;이라 맹비난하며 과감한 세금 감면과 관세 부과를 약속했다. 스타센은 만 77세의 초고령에 접어들며 유세 과정에서 다소 지친 기색을 보였고, 반면 프레드 트럼프는 2살이 더 많았음에도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대중의 분노 표심을 단숨에 흡수했다.&lt;br /&gt;
&lt;br /&gt;
개표 결과, &#039;&#039;&#039;득표율 48.8% 대 49.6%(0.8%p 차), 선거인단 226표 대 312표&#039;&#039;&#039;로 프레드 트럼프에게 정권 탈환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긴축 정책으로 타격을 입었던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미국|미시간]] 등 핵심 러스트 벨트 스윙스테이트를 접전으로 빼앗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로써 스타센은 단임으로 백악관을 떠나게 되었고, 프레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징검다리 재선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스타센은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한 뒤, 1985년 1월 20일 정권을 이양하고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마무리하며 [[미국|미네소타]]로 완전히 귀향했다.&lt;br /&gt;
==평가==&lt;br /&gt;
===긍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해럴드 스타센은 법치주의와 의회정치라는 미국 헌정사의 위대한 유산을 온몸으로 체화한 인물이었다. 정치적 이념과 정파가 달랐을지라도, 그가 백악관에 앉아 있는 동안 미국인들은 국가의 행정 시스템이 절제되고 정직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깊은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2001년, [[미국|조 바이든]]}}&lt;br /&gt;
26년 상원 의정 경험과 부통령 경력을 바탕으로 [[민주당]]이 다수당인 의회와 끊임없이 소통했으며,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 헌정사의 전통을 되살려냈다. 외교적으로도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답게, 전임 행정부 시절 균열이 갔던 [[NATO]] 등 서방 동맹국과의 관계를 즉각 수습했다. 절제된 정통 외교 노선을 채택하여 냉전기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도덕적 지도력을 다시 올려놓았다. 또한 1970년대를 짓눌렀던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하여, 임기 후반 [[인플레이션]]을 잡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뼈대를 완성했다.&lt;br /&gt;
===부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스타센 대통령은 정치가 숫자와 수식으로만 움직인다고 믿은 오만한 엘리트였다.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통계표를 들고 자화자찬하는 동안 공장이 문을 닫고 길거리로 쫓겨난 중서부 주민들의 절규를 그는 전혀 듣지 못했다.|1992년, [[미국|팻 뷰캐넌]]}}&lt;br /&gt;
{{인용문|스타센은 자신이 &#039;국정의 조타수&#039;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노만 저었던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을 안정시킨 것이 아니라, 정체시키고 퇴보시켰다.|2004년, [[미국|폴 크루구먼]]}}&lt;br /&gt;
고금리 긴축 정책의 여파가 노동자층과 농민층에게 집중되며 [[미국|러스트 벨트]]의 외면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따른다. 지표상으로는 1983년 이후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섰으나, 제조업 몰락으로 타격을 입은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 벨트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이들의 분노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또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선동 정치에 대해 스타센은 지나치게 신사적이고 고전적인 원론으로만 대응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던 1980년대에 노련한 의회주의자의 고지식함은 대중에게 변화에 뒤처진 늙은 관료로 비쳐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결국 스태그플레이션 진화라는 고통스러운 악역을 맡아 국정을 정상화해 놓았으나, 정작 그 결실과 열매는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84년 대선]]에서 프레드 트럼프에게 다시 바치게 되면서 포퓰리즘 정권의 잠시 동안의 쉼표 역할만 하고 정권을 넘겨준 단임 대통령이라는 한계를 남겼다.&lt;br /&gt;
==기타==&lt;br /&gt;
* 1938년 만 31세의 나이로 [[미국|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되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 당선 기록이며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행정 능력과 카리스마로 당내 기득권을 꺾고 당선되어 30대 초반에 이미 [[공화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다. 물론 그는 최고령 미국 대통령 중 한명이 되었다.&lt;br /&gt;
* 주지사 3선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하던 1943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자 &amp;quot;청년들이 전선에서 피를 흘리는데 안락하게 관사에 머물 수 없다&amp;quot;며 &#039;&#039;&#039;주지사직을 전격 사임하고 해군에 자원입대&#039;&#039;&#039;했다. 태평양 전선에서 윌리엄 홀시 제독의 참모로 참전하여 공훈을 세웠고, 이 태평양 참전 경력은 훗날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과 1980년 대선 당시 프레드 트럼프의 &amp;quot;군대 근처에도 안 가본 군필 미필 논란&amp;quot;을 정면으로 격파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lt;br /&gt;
* 프로필 사진을 보면 머리카락이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탈모로 인해 가발을 착용했다.&lt;br /&gt;
==선거 이력==&lt;br /&gt;
=미국 대통령=&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float: right;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lef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90deg,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 #fff&amp;quot; | [[파일:Flag of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svg|60px]]&amp;lt;br&amp;gt;{{large|미합중국 대통령}}&amp;lt;br&amp;gt;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 0; width: 100%;&amp;quot; | [[파일:폴 라이언 (프런티어).png|class=fullImage|100%]]&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25%; 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현직&lt;br /&gt;
| [[폴 라이언 (프런티어)|폴 라이언]] &amp;lt;sub&amp;gt;/ 제49대&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취임일&lt;br /&gt;
| [[2020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재지&lt;br /&gt;
| [[미국|백악관]]&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으로, 미국 헌법에 따라 미국의 행정권을 총괄하며, [[미국|미군]]의 총사령관이자 통수권자로서 미군을 통솔 및 통수한다. 공식명칭은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이다.&lt;br /&gt;
==역대 대통령==&lt;br /&gt;
=한나라당=&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text-align: left; font-size: 10.5pt; border: 2px solid #009ee3; float: right;&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text-align: center; height: 200px;&amp;quot; | [[파일:한나라 세로.png|2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09ee3 20%, #0b318f 80%, #0b318f); color: #fff;&amp;quot; | 한나라당&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영문 명칭&lt;br /&gt;
| Hannara Party&amp;lt;br&amp;gt;Grand National Party&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한문 명칭&lt;br /&gt;
| 한나라黨&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슬로건&lt;br /&gt;
| &#039;&#039;&#039;{{글씨 색|#009ee3|Salus populi suprema lex esto.&amp;lt;br&amp;gt;국민의 안녕이 최고의 법이 되어야 한다.}}&#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등록연월일&lt;br /&gt;
| 2025년 3월 1일&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소 소재지&lt;br /&g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multimaps: 37.530299,126.919577 | height = 150px | zoom = 15}}&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86, 5~8층 (여의도동, B&amp;amp;B타워)&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대표&lt;br /&gt;
| [[백강혁 ()|백강혁]]&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원내대표&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총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위의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국회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20.4%, transparent 20.4%);&amp;quot; | &#039;&#039;&#039;102석 / 500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광역단체장&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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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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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기초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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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연구소&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후원회&lt;br /&gt;
|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중앙당후원회}}&#039;&#039;&#039;] &amp;lt;sub&amp;gt;(대표자: [[고동진 ()|고동진]])&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원 수&lt;br /&gt;
| 223,488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으뜸당원 수&lt;br /&gt;
| 72,560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당보조금&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비 수입&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재산 총액&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가&lt;br /&gt;
|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공정과 기회 도약의 꿈 이뤄가며}}&#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링크&lt;br /&gt;
|&lt;br /&gt;
|-&lt;br /&gt;
|}&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2270</id>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2270"/>
		<updated>2026-08-21T08:45:1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한나라당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0년]] [[11월 5일]]}}&amp;lt;br&amp;gt;&#039;&#039;&#039;1940년 대선&#039;&#039;&#039;&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width=25%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일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1940년]] [[11월 5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 (프런티어)|{{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br /&gt;
===민주당: 웬델 윌키===&lt;br /&gt;
===공화당: 게리쿠퍼===&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500px; margin:0 auto; background:#E81018; border:2px solid #E81018; color:#fff;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font-size:1.25em; line-height:1.4; padding:10px 6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lt;br /&gt;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공화당 전당대회 지명 후보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fff; border:0; line-height:0;&amp;quot; | [[파일:쿠퍼 반덴버그 (프런티어).png|500px|cent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E81018; border:0;&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 margin:0;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border-right:1px solid #fff;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게리 쿠퍼}}&amp;lt;br&amp;gt;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아서 반덴버그}}&amp;lt;br&amp;gt;미시간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N대 부통령&lt;br /&gt;
|-&lt;br /&gt;
| [[1974년]] [[12월 19일]] ~ [[1977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약력==&lt;br /&gt;
* 1939. 제25대 [[미국|미네소타]] 주지사&lt;br /&gt;
* 1945.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제3함대 참모&lt;br /&gt;
* 1949. 미네소타주 연방 상원의원 (1949.1.3. ~ 1974.8.9.)&lt;br /&gt;
* 1957.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lt;br /&gt;
* 1965. 미국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lt;br /&gt;
* 1974.12. &#039;&#039;&#039;제N대 [[미국|미국 부통령]]&#039;&#039;&#039;&lt;br /&gt;
* 1981.1. &#039;&#039;&#039;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039;&#039;&#039;&lt;br /&gt;
==생애==&lt;br /&gt;
===제N대 미국 부통령===&lt;br /&gt;
1974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닉슨게이트 (프런티어)|닉슨게이트]]로 사임하고 [[존 코널리 (프런티어)|존 코널리]]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코널리에 의해 제39대 [[미국|미국 부통령]]으로 전격 지명되었다. 이후 12월 상·하원의 승인 청문회를 거쳐 공식적으로 취임했다.  &lt;br /&gt;
&lt;br /&gt;
닉슨 사임 이후 극도로 혼란스럽던 워싱턴 정가에서 스타센의 부통령 지명은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26년간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쌓은 압도적인 인망과 경력 덕분에, 닉슨게이트 여파로 와해 직전이던 의회와의 관계를 빠르게 회복시켰기 때문. [[존 코널리 행정부 (프런티어)|코널리 행정부]] 내에서는 주로 내정 및 의회 협상, [[1차 석유 파동]]에 따른 경제 위기 수습을 총괄하는 &#039;&#039;&#039;실권형 부통령&#039;&#039;&#039;으로 활약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 사임의 여파와 스태그플레이션 심화, 그리고 부동산 거물 출신 아웃사이더 포퓰리스트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거센 바람을 막지 못하고 코널리-스타센 티켓은 패배하며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했다.&lt;br /&gt;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한 후 고향 [[미국|미네소타]]로 돌아가 정계 은퇴 절차를 밟는 듯했으나, 백의종군하며 [[공화당]] 내 중도합리파와 의회 온건파의 원로로 남아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lt;br /&gt;
&lt;br /&gt;
당시 프레드 트럼프 행정부는 무분별한 뉴욕식 부동산 개발주의, 친족 비리 스캔들, 그리고 1979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의 대응 미숙으로 민심을 크게 잃은 상태였다. 이에 정계 기득권과 대중 모두가 아웃사이더 포퓰리즘에 지쳐가자, 당내 중도파와 상원 동료들의 삼고초려 끝에 1980년 1월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한다.&lt;br /&gt;
&lt;br /&gt;
당내 경선에서는 26년 상원 외교위원장 및 부통령 시절 구축한 막강한 의회 조직망과 미네소타 농가 지지표를 바탕으로 [[하워드 베이커]], [[존 B. 앤더슨]] 등 우파 신진 후보들을 가볍게 제압하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다. 러닝메이트로는 당내 보수파를 다독이기 위해 [[미국|테네시]] 출신의 상원 원내대표 하워드 베이커를 지명했다.&lt;br /&gt;
&lt;br /&gt;
본선에서는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트럼프 캠프 측은 스타센을 &amp;quot;워싱턴 늪지대의 늙은 구렁이&amp;quot;, &amp;quot;빌딩 한 채 못 지어본 무능한 관료&amp;quot;라며 고령과 기득권 이미지를 집중 공격했다.&amp;lt;ref&amp;gt;정작 프레드 트럼프 본인도 1905년생이라 당시 만 75세로 스타센보다 2살이나 많았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공세였던 셈.&amp;lt;/ref&amp;gt; 이에 스타센은 &amp;quot;국가는 법과 제도로 운영되는 공공체&amp;quot;라는 논리로 응수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약점인 불안정성과 품격 부재를 파고들었다.&lt;br /&gt;
&lt;br /&gt;
10월 28일 열린 대선 TV 토론회에서 프레드 트럼프가 &amp;quot;평생 의회 의자에 앉아 세금이나 까먹던 사람&amp;quot;이라고 몰아붙이자, 스타센은 상원 26년의 내공으로 자비롭게 허허 웃으며 &amp;quot;당신은 건물을 올려봤을지는 몰라도 이 나라의 법과 제도를 무너뜨리고 있다. 국가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로 세워지는 것&amp;quot;이라는 말을 남기며 승기를 완전히 잡아챘다.&lt;br /&gt;
&lt;br /&gt;
결국 11월 &#039;&#039;&#039;본선에서 51.7%의 득표율과 선거인단 357석을 확보하며, 181석에 그친 프레드 트럼프를 꺾고 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으로 당선&#039;&#039;&#039;되었다.&lt;br /&gt;
&lt;br /&gt;
이 승리로 스타센은 당선 당시 기준 역대 최고령 대통령(만 73세)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30대 최연소 주지사로 시작해 70대에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역대급 &#039;&#039;&#039;대기만성형 정치 서사&#039;&#039;&#039;를 완성했다.&lt;br /&gt;
===제41대 미국 대통령===&lt;br /&gt;
1981년 1월 20일, 당선 당시 기준 &#039;&#039;&#039;역대 최고령(만 73세)의 나이&amp;lt;ref&amp;gt;이후 이 기록은 프레드 트럼프에 의해 다시 갱신된다.&amp;lt;/ref&amp;gt;로 제41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039;&#039;&#039;했다. 취임 즉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 시절 거친 언사와 독단적 행보로 균열이 갔던 NATO 등 전통 우방국과의 관계를 즉각 복원하고 [[미국|이란 인질 사건]]의 여파를 수습했다. 경제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했다. 경기 후퇴와 실업률 상승이라는 진통을 겪었으나,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하원과의 초당적 협상을 통해 세제 개편안과 긴축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의회정치의 마스터다운 면모를 과시했다.&lt;br /&gt;
&lt;br /&gt;
1983년 하반기부터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자 스타센은 &amp;quot;긴축의 결실이 맺히고 있으며, 미국은 다시 법치와 안정을 되찾았다&amp;quot;며 재선 도전에 나섰다. 상대는 4년 전 낙선 후 재정비하여 칼을 갈아온 프레드 트럼프였다. 트럼프 측은 긴축 정책과 고금리로 타격을 입은 [[미국|러스트 벨트]] 노동자층과 중서부 농민층의 분노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트럼프는 스타센을 &amp;quot;관료주의로 국민의 피를 말린 노인&amp;quot;이라 맹비난하며 과감한 세금 감면과 관세 부과를 약속했다. 스타센은 만 77세의 초고령에 접어들며 유세 과정에서 다소 지친 기색을 보였고, 반면 프레드 트럼프는 2살이 더 많았음에도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대중의 분노 표심을 단숨에 흡수했다.&lt;br /&gt;
&lt;br /&gt;
개표 결과, &#039;&#039;&#039;득표율 48.8% 대 49.6%(0.8%p 차), 선거인단 226표 대 312표&#039;&#039;&#039;로 프레드 트럼프에게 정권 탈환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긴축 정책으로 타격을 입었던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미국|미시간]] 등 핵심 러스트 벨트 스윙스테이트를 접전으로 빼앗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로써 스타센은 단임으로 백악관을 떠나게 되었고, 프레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징검다리 재선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스타센은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한 뒤, 1985년 1월 20일 정권을 이양하고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마무리하며 [[미국|미네소타]]로 완전히 귀향했다.&lt;br /&gt;
==평가==&lt;br /&gt;
===긍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해럴드 스타센은 법치주의와 의회정치라는 미국 헌정사의 위대한 유산을 온몸으로 체화한 인물이었다. 정치적 이념과 정파가 달랐을지라도, 그가 백악관에 앉아 있는 동안 미국인들은 국가의 행정 시스템이 절제되고 정직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깊은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2001년, [[미국|조 바이든]]}}&lt;br /&gt;
26년 상원 의정 경험과 부통령 경력을 바탕으로 [[민주당]]이 다수당인 의회와 끊임없이 소통했으며,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 헌정사의 전통을 되살려냈다. 외교적으로도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답게, 전임 행정부 시절 균열이 갔던 [[NATO]] 등 서방 동맹국과의 관계를 즉각 수습했다. 절제된 정통 외교 노선을 채택하여 냉전기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도덕적 지도력을 다시 올려놓았다. 또한 1970년대를 짓눌렀던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하여, 임기 후반 [[인플레이션]]을 잡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뼈대를 완성했다.&lt;br /&gt;
===부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스타센 대통령은 정치가 숫자와 수식으로만 움직인다고 믿은 오만한 엘리트였다.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통계표를 들고 자화자찬하는 동안 공장이 문을 닫고 길거리로 쫓겨난 중서부 주민들의 절규를 그는 전혀 듣지 못했다.|1992년, [[미국|팻 뷰캐넌]]}}&lt;br /&gt;
{{인용문|스타센은 자신이 &#039;국정의 조타수&#039;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노만 저었던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을 안정시킨 것이 아니라, 정체시키고 퇴보시켰다.|2004년, [[미국|폴 크루구먼]]}}&lt;br /&gt;
고금리 긴축 정책의 여파가 노동자층과 농민층에게 집중되며 [[미국|러스트 벨트]]의 외면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따른다. 지표상으로는 1983년 이후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섰으나, 제조업 몰락으로 타격을 입은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 벨트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이들의 분노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또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선동 정치에 대해 스타센은 지나치게 신사적이고 고전적인 원론으로만 대응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던 1980년대에 노련한 의회주의자의 고지식함은 대중에게 변화에 뒤처진 늙은 관료로 비쳐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결국 스태그플레이션 진화라는 고통스러운 악역을 맡아 국정을 정상화해 놓았으나, 정작 그 결실과 열매는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84년 대선]]에서 프레드 트럼프에게 다시 바치게 되면서 포퓰리즘 정권의 잠시 동안의 쉼표 역할만 하고 정권을 넘겨준 단임 대통령이라는 한계를 남겼다.&lt;br /&gt;
==기타==&lt;br /&gt;
* 1938년 만 31세의 나이로 [[미국|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되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 당선 기록이며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행정 능력과 카리스마로 당내 기득권을 꺾고 당선되어 30대 초반에 이미 [[공화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다. 물론 그는 최고령 미국 대통령 중 한명이 되었다.&lt;br /&gt;
* 주지사 3선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하던 1943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자 &amp;quot;청년들이 전선에서 피를 흘리는데 안락하게 관사에 머물 수 없다&amp;quot;며 &#039;&#039;&#039;주지사직을 전격 사임하고 해군에 자원입대&#039;&#039;&#039;했다. 태평양 전선에서 윌리엄 홀시 제독의 참모로 참전하여 공훈을 세웠고, 이 태평양 참전 경력은 훗날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과 1980년 대선 당시 프레드 트럼프의 &amp;quot;군대 근처에도 안 가본 군필 미필 논란&amp;quot;을 정면으로 격파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lt;br /&gt;
* 프로필 사진을 보면 머리카락이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탈모로 인해 가발을 착용했다.&lt;br /&gt;
==선거 이력==&lt;br /&gt;
=미국 대통령=&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float: right;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lef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90deg,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 #fff&amp;quot; | [[파일:Flag of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svg|60px]]&amp;lt;br&amp;gt;{{large|미합중국 대통령}}&amp;lt;br&amp;gt;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 0; width: 100%;&amp;quot; | [[파일:폴 라이언 (프런티어).png|class=fullImage|100%]]&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25%; 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현직&lt;br /&gt;
| [[폴 라이언 (프런티어)|폴 라이언]] &amp;lt;sub&amp;gt;/ 제49대&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취임일&lt;br /&gt;
| [[2020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재지&lt;br /&gt;
| [[미국|백악관]]&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으로, 미국 헌법에 따라 미국의 행정권을 총괄하며, [[미국|미군]]의 총사령관이자 통수권자로서 미군을 통솔 및 통수한다. 공식명칭은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이다.&lt;br /&gt;
==역대 대통령==&lt;br /&gt;
=한나라당=&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text-align: left; font-size: 10.5pt; border: 2px solid #009ee3; float: right;&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text-align: center; height: 200px;&amp;quot; | [[파일:한나라 세로.png|2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09ee3 20%, #0b318f 80%, #0b318f); color: #fff;&amp;quot; | 한나라당&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영문 명칭&lt;br /&gt;
| Hannara Party&amp;lt;br&amp;gt;Grand National Party&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한문 명칭&lt;br /&gt;
| 한나라黨&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슬로건&lt;br /&gt;
| &#039;&#039;&#039;{{글씨 색|#009ee3|Salus populi suprema lex esto.&amp;lt;br&amp;gt;국민의 안녕이 최고의 법이 되어야 한다.}}&#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등록연월일&lt;br /&gt;
| 2025년 3월 1일&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소 소재지&lt;br /&g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multimaps: 37.530299,126.919577 | height = 150px | zoom = 15}}&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86, 5~8층 (여의도동, B&amp;amp;B타워)&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대표&lt;br /&gt;
| [[백강혁 ()|백강혁]]&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원내대표&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총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위의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국회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20.4%, transparent 20.4%);&amp;quot; | &#039;&#039;&#039;102석 / 500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광역단체장&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기초단체장&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광역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기초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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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연구소&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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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중앙당후원회}}&#039;&#039;&#039;]] &amp;lt;sub&amp;gt;(대표자: [[고동진 ()|고동진]]&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원 수&lt;br /&gt;
| 223,488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으뜸당원 수&lt;br /&gt;
| 72,560명&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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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비 수입&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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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가&lt;br /&gt;
|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공정과 기회 도약의 꿈 이뤄가며}}&#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링크&lt;br /&gt;
|&lt;br /&gt;
|-&lt;br /&gt;
|}&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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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습장:Eiffe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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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21T08:41: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한나라당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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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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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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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25%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일시&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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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 (프런티어)|{{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br /&gt;
===민주당: 웬델 윌키===&lt;br /&gt;
===공화당: 게리쿠퍼===&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500px; margin:0 auto; background:#E81018; border:2px solid #E81018; color:#fff;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font-size:1.25em; line-height:1.4; padding:10px 6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lt;br /&gt;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공화당 전당대회 지명 후보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fff; border:0; line-height:0;&amp;quot; | [[파일:쿠퍼 반덴버그 (프런티어).png|500px|cent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E81018; border:0;&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 margin:0;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border-right:1px solid #fff;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게리 쿠퍼}}&amp;lt;br&amp;gt;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아서 반덴버그}}&amp;lt;br&amp;gt;미시간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N대 부통령&lt;br /&gt;
|-&lt;br /&gt;
| [[1974년]] [[12월 19일]] ~ [[1977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약력==&lt;br /&gt;
* 1939. 제25대 [[미국|미네소타]] 주지사&lt;br /&gt;
* 1945.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제3함대 참모&lt;br /&gt;
* 1949. 미네소타주 연방 상원의원 (1949.1.3. ~ 1974.8.9.)&lt;br /&gt;
* 1957.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lt;br /&gt;
* 1965. 미국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lt;br /&gt;
* 1974.12. &#039;&#039;&#039;제N대 [[미국|미국 부통령]]&#039;&#039;&#039;&lt;br /&gt;
* 1981.1. &#039;&#039;&#039;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039;&#039;&#039;&lt;br /&gt;
==생애==&lt;br /&gt;
===제N대 미국 부통령===&lt;br /&gt;
1974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닉슨게이트 (프런티어)|닉슨게이트]]로 사임하고 [[존 코널리 (프런티어)|존 코널리]]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코널리에 의해 제39대 [[미국|미국 부통령]]으로 전격 지명되었다. 이후 12월 상·하원의 승인 청문회를 거쳐 공식적으로 취임했다.  &lt;br /&gt;
&lt;br /&gt;
닉슨 사임 이후 극도로 혼란스럽던 워싱턴 정가에서 스타센의 부통령 지명은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26년간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쌓은 압도적인 인망과 경력 덕분에, 닉슨게이트 여파로 와해 직전이던 의회와의 관계를 빠르게 회복시켰기 때문. [[존 코널리 행정부 (프런티어)|코널리 행정부]] 내에서는 주로 내정 및 의회 협상, [[1차 석유 파동]]에 따른 경제 위기 수습을 총괄하는 &#039;&#039;&#039;실권형 부통령&#039;&#039;&#039;으로 활약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 사임의 여파와 스태그플레이션 심화, 그리고 부동산 거물 출신 아웃사이더 포퓰리스트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거센 바람을 막지 못하고 코널리-스타센 티켓은 패배하며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했다.&lt;br /&gt;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한 후 고향 [[미국|미네소타]]로 돌아가 정계 은퇴 절차를 밟는 듯했으나, 백의종군하며 [[공화당]] 내 중도합리파와 의회 온건파의 원로로 남아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lt;br /&gt;
&lt;br /&gt;
당시 프레드 트럼프 행정부는 무분별한 뉴욕식 부동산 개발주의, 친족 비리 스캔들, 그리고 1979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의 대응 미숙으로 민심을 크게 잃은 상태였다. 이에 정계 기득권과 대중 모두가 아웃사이더 포퓰리즘에 지쳐가자, 당내 중도파와 상원 동료들의 삼고초려 끝에 1980년 1월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한다.&lt;br /&gt;
&lt;br /&gt;
당내 경선에서는 26년 상원 외교위원장 및 부통령 시절 구축한 막강한 의회 조직망과 미네소타 농가 지지표를 바탕으로 [[하워드 베이커]], [[존 B. 앤더슨]] 등 우파 신진 후보들을 가볍게 제압하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다. 러닝메이트로는 당내 보수파를 다독이기 위해 [[미국|테네시]] 출신의 상원 원내대표 하워드 베이커를 지명했다.&lt;br /&gt;
&lt;br /&gt;
본선에서는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트럼프 캠프 측은 스타센을 &amp;quot;워싱턴 늪지대의 늙은 구렁이&amp;quot;, &amp;quot;빌딩 한 채 못 지어본 무능한 관료&amp;quot;라며 고령과 기득권 이미지를 집중 공격했다.&amp;lt;ref&amp;gt;정작 프레드 트럼프 본인도 1905년생이라 당시 만 75세로 스타센보다 2살이나 많았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공세였던 셈.&amp;lt;/ref&amp;gt; 이에 스타센은 &amp;quot;국가는 법과 제도로 운영되는 공공체&amp;quot;라는 논리로 응수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약점인 불안정성과 품격 부재를 파고들었다.&lt;br /&gt;
&lt;br /&gt;
10월 28일 열린 대선 TV 토론회에서 프레드 트럼프가 &amp;quot;평생 의회 의자에 앉아 세금이나 까먹던 사람&amp;quot;이라고 몰아붙이자, 스타센은 상원 26년의 내공으로 자비롭게 허허 웃으며 &amp;quot;당신은 건물을 올려봤을지는 몰라도 이 나라의 법과 제도를 무너뜨리고 있다. 국가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로 세워지는 것&amp;quot;이라는 말을 남기며 승기를 완전히 잡아챘다.&lt;br /&gt;
&lt;br /&gt;
결국 11월 &#039;&#039;&#039;본선에서 51.7%의 득표율과 선거인단 357석을 확보하며, 181석에 그친 프레드 트럼프를 꺾고 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으로 당선&#039;&#039;&#039;되었다.&lt;br /&gt;
&lt;br /&gt;
이 승리로 스타센은 당선 당시 기준 역대 최고령 대통령(만 73세)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30대 최연소 주지사로 시작해 70대에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역대급 &#039;&#039;&#039;대기만성형 정치 서사&#039;&#039;&#039;를 완성했다.&lt;br /&gt;
===제41대 미국 대통령===&lt;br /&gt;
1981년 1월 20일, 당선 당시 기준 &#039;&#039;&#039;역대 최고령(만 73세)의 나이&amp;lt;ref&amp;gt;이후 이 기록은 프레드 트럼프에 의해 다시 갱신된다.&amp;lt;/ref&amp;gt;로 제41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039;&#039;&#039;했다. 취임 즉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 시절 거친 언사와 독단적 행보로 균열이 갔던 NATO 등 전통 우방국과의 관계를 즉각 복원하고 [[미국|이란 인질 사건]]의 여파를 수습했다. 경제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했다. 경기 후퇴와 실업률 상승이라는 진통을 겪었으나,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하원과의 초당적 협상을 통해 세제 개편안과 긴축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의회정치의 마스터다운 면모를 과시했다.&lt;br /&gt;
&lt;br /&gt;
1983년 하반기부터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자 스타센은 &amp;quot;긴축의 결실이 맺히고 있으며, 미국은 다시 법치와 안정을 되찾았다&amp;quot;며 재선 도전에 나섰다. 상대는 4년 전 낙선 후 재정비하여 칼을 갈아온 프레드 트럼프였다. 트럼프 측은 긴축 정책과 고금리로 타격을 입은 [[미국|러스트 벨트]] 노동자층과 중서부 농민층의 분노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트럼프는 스타센을 &amp;quot;관료주의로 국민의 피를 말린 노인&amp;quot;이라 맹비난하며 과감한 세금 감면과 관세 부과를 약속했다. 스타센은 만 77세의 초고령에 접어들며 유세 과정에서 다소 지친 기색을 보였고, 반면 프레드 트럼프는 2살이 더 많았음에도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대중의 분노 표심을 단숨에 흡수했다.&lt;br /&gt;
&lt;br /&gt;
개표 결과, &#039;&#039;&#039;득표율 48.8% 대 49.6%(0.8%p 차), 선거인단 226표 대 312표&#039;&#039;&#039;로 프레드 트럼프에게 정권 탈환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긴축 정책으로 타격을 입었던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미국|미시간]] 등 핵심 러스트 벨트 스윙스테이트를 접전으로 빼앗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로써 스타센은 단임으로 백악관을 떠나게 되었고, 프레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징검다리 재선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스타센은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한 뒤, 1985년 1월 20일 정권을 이양하고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마무리하며 [[미국|미네소타]]로 완전히 귀향했다.&lt;br /&gt;
==평가==&lt;br /&gt;
===긍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해럴드 스타센은 법치주의와 의회정치라는 미국 헌정사의 위대한 유산을 온몸으로 체화한 인물이었다. 정치적 이념과 정파가 달랐을지라도, 그가 백악관에 앉아 있는 동안 미국인들은 국가의 행정 시스템이 절제되고 정직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깊은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2001년, [[미국|조 바이든]]}}&lt;br /&gt;
26년 상원 의정 경험과 부통령 경력을 바탕으로 [[민주당]]이 다수당인 의회와 끊임없이 소통했으며,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 헌정사의 전통을 되살려냈다. 외교적으로도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답게, 전임 행정부 시절 균열이 갔던 [[NATO]] 등 서방 동맹국과의 관계를 즉각 수습했다. 절제된 정통 외교 노선을 채택하여 냉전기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도덕적 지도력을 다시 올려놓았다. 또한 1970년대를 짓눌렀던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하여, 임기 후반 [[인플레이션]]을 잡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뼈대를 완성했다.&lt;br /&gt;
===부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스타센 대통령은 정치가 숫자와 수식으로만 움직인다고 믿은 오만한 엘리트였다.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통계표를 들고 자화자찬하는 동안 공장이 문을 닫고 길거리로 쫓겨난 중서부 주민들의 절규를 그는 전혀 듣지 못했다.|1992년, [[미국|팻 뷰캐넌]]}}&lt;br /&gt;
{{인용문|스타센은 자신이 &#039;국정의 조타수&#039;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노만 저었던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을 안정시킨 것이 아니라, 정체시키고 퇴보시켰다.|2004년, [[미국|폴 크루구먼]]}}&lt;br /&gt;
고금리 긴축 정책의 여파가 노동자층과 농민층에게 집중되며 [[미국|러스트 벨트]]의 외면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따른다. 지표상으로는 1983년 이후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섰으나, 제조업 몰락으로 타격을 입은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 벨트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이들의 분노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또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선동 정치에 대해 스타센은 지나치게 신사적이고 고전적인 원론으로만 대응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던 1980년대에 노련한 의회주의자의 고지식함은 대중에게 변화에 뒤처진 늙은 관료로 비쳐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결국 스태그플레이션 진화라는 고통스러운 악역을 맡아 국정을 정상화해 놓았으나, 정작 그 결실과 열매는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84년 대선]]에서 프레드 트럼프에게 다시 바치게 되면서 포퓰리즘 정권의 잠시 동안의 쉼표 역할만 하고 정권을 넘겨준 단임 대통령이라는 한계를 남겼다.&lt;br /&gt;
==기타==&lt;br /&gt;
* 1938년 만 31세의 나이로 [[미국|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되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 당선 기록이며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행정 능력과 카리스마로 당내 기득권을 꺾고 당선되어 30대 초반에 이미 [[공화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다. 물론 그는 최고령 미국 대통령 중 한명이 되었다.&lt;br /&gt;
* 주지사 3선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하던 1943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자 &amp;quot;청년들이 전선에서 피를 흘리는데 안락하게 관사에 머물 수 없다&amp;quot;며 &#039;&#039;&#039;주지사직을 전격 사임하고 해군에 자원입대&#039;&#039;&#039;했다. 태평양 전선에서 윌리엄 홀시 제독의 참모로 참전하여 공훈을 세웠고, 이 태평양 참전 경력은 훗날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과 1980년 대선 당시 프레드 트럼프의 &amp;quot;군대 근처에도 안 가본 군필 미필 논란&amp;quot;을 정면으로 격파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lt;br /&gt;
* 프로필 사진을 보면 머리카락이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탈모로 인해 가발을 착용했다.&lt;br /&gt;
==선거 이력==&lt;br /&gt;
=미국 대통령=&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float: right;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lef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90deg,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 #fff&amp;quot; | [[파일:Flag of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svg|60px]]&amp;lt;br&amp;gt;{{large|미합중국 대통령}}&amp;lt;br&amp;gt;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 0; width: 100%;&amp;quot; | [[파일:폴 라이언 (프런티어).png|class=fullImage|100%]]&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25%; 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현직&lt;br /&gt;
| [[폴 라이언 (프런티어)|폴 라이언]] &amp;lt;sub&amp;gt;/ 제49대&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취임일&lt;br /&gt;
| [[2020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재지&lt;br /&gt;
| [[미국|백악관]]&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으로, 미국 헌법에 따라 미국의 행정권을 총괄하며, [[미국|미군]]의 총사령관이자 통수권자로서 미군을 통솔 및 통수한다. 공식명칭은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이다.&lt;br /&gt;
==역대 대통령==&lt;br /&gt;
=한나라당=&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text-align: left; font-size: 10.5pt; border: 2px solid #009ee3; float: right;&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text-align: center; height: 200px;&amp;quot; | [[파일:한나라 세로.png|2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09ee3 20%, #0b318f 80%, #0b318f); color: #fff;&amp;quot; | 한나라당&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영문 명칭&lt;br /&gt;
| Hannara Party&amp;lt;br&amp;gt;Grand National Party&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한문 명칭&lt;br /&gt;
| 한나라黨&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슬로건&lt;br /&gt;
| &#039;&#039;&#039;{{글씨 색|#009ee3|Salus populi suprema lex esto.&amp;lt;br&amp;gt;국민의 안녕이 최고의 법이 되어야 한다.}}&#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등록연월일&lt;br /&gt;
| 2025년 3월 1일&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소 소재지&lt;br /&g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multimaps: 37.530299,126.919577 | height = 150px | zoom = 15}}&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86, 5~8층 (여의도동, B&amp;amp;B타워)&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대표&lt;br /&gt;
| [[백강혁 ()|백강혁]]&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원내대표&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총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위의장&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국회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20.4%, transparent 20.4%);&amp;quot; | &#039;&#039;&#039;102석 / 500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광역단체장&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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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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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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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연구소&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후원회&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원 수&lt;br /&gt;
| 223,488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으뜸당원 수&lt;br /&gt;
| 72,560명&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당보조금&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비 수입&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재산 총액&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가&lt;br /&gt;
|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공정과 기회 도약의 꿈 이뤄가며}}&#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링크&lt;br /&gt;
|&lt;br /&gt;
|-&lt;br /&gt;
|}&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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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습장:Eiffe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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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한나라당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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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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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width=25%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일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1940년]] [[11월 5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 (프런티어)|{{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br /&gt;
===민주당: 웬델 윌키===&lt;br /&gt;
===공화당: 게리쿠퍼===&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500px; margin:0 auto; background:#E81018; border:2px solid #E81018; color:#fff;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font-size:1.25em; line-height:1.4; padding:10px 6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lt;br /&gt;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공화당 전당대회 지명 후보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fff; border:0; line-height:0;&amp;quot; | [[파일:쿠퍼 반덴버그 (프런티어).png|500px|cent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E81018; border:0;&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 margin:0;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border-right:1px solid #fff;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게리 쿠퍼}}&amp;lt;br&amp;gt;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아서 반덴버그}}&amp;lt;br&amp;gt;미시간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N대 부통령&lt;br /&gt;
|-&lt;br /&gt;
| [[1974년]] [[12월 19일]] ~ [[1977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약력==&lt;br /&gt;
* 1939. 제25대 [[미국|미네소타]] 주지사&lt;br /&gt;
* 1945.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제3함대 참모&lt;br /&gt;
* 1949. 미네소타주 연방 상원의원 (1949.1.3. ~ 1974.8.9.)&lt;br /&gt;
* 1957.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lt;br /&gt;
* 1965. 미국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lt;br /&gt;
* 1974.12. &#039;&#039;&#039;제N대 [[미국|미국 부통령]]&#039;&#039;&#039;&lt;br /&gt;
* 1981.1. &#039;&#039;&#039;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039;&#039;&#039;&lt;br /&gt;
==생애==&lt;br /&gt;
===제N대 미국 부통령===&lt;br /&gt;
1974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닉슨게이트 (프런티어)|닉슨게이트]]로 사임하고 [[존 코널리 (프런티어)|존 코널리]]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코널리에 의해 제39대 [[미국|미국 부통령]]으로 전격 지명되었다. 이후 12월 상·하원의 승인 청문회를 거쳐 공식적으로 취임했다.  &lt;br /&gt;
&lt;br /&gt;
닉슨 사임 이후 극도로 혼란스럽던 워싱턴 정가에서 스타센의 부통령 지명은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26년간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쌓은 압도적인 인망과 경력 덕분에, 닉슨게이트 여파로 와해 직전이던 의회와의 관계를 빠르게 회복시켰기 때문. [[존 코널리 행정부 (프런티어)|코널리 행정부]] 내에서는 주로 내정 및 의회 협상, [[1차 석유 파동]]에 따른 경제 위기 수습을 총괄하는 &#039;&#039;&#039;실권형 부통령&#039;&#039;&#039;으로 활약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 사임의 여파와 스태그플레이션 심화, 그리고 부동산 거물 출신 아웃사이더 포퓰리스트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거센 바람을 막지 못하고 코널리-스타센 티켓은 패배하며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했다.&lt;br /&gt;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한 후 고향 [[미국|미네소타]]로 돌아가 정계 은퇴 절차를 밟는 듯했으나, 백의종군하며 [[공화당]] 내 중도합리파와 의회 온건파의 원로로 남아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lt;br /&gt;
&lt;br /&gt;
당시 프레드 트럼프 행정부는 무분별한 뉴욕식 부동산 개발주의, 친족 비리 스캔들, 그리고 1979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의 대응 미숙으로 민심을 크게 잃은 상태였다. 이에 정계 기득권과 대중 모두가 아웃사이더 포퓰리즘에 지쳐가자, 당내 중도파와 상원 동료들의 삼고초려 끝에 1980년 1월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한다.&lt;br /&gt;
&lt;br /&gt;
당내 경선에서는 26년 상원 외교위원장 및 부통령 시절 구축한 막강한 의회 조직망과 미네소타 농가 지지표를 바탕으로 [[하워드 베이커]], [[존 B. 앤더슨]] 등 우파 신진 후보들을 가볍게 제압하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다. 러닝메이트로는 당내 보수파를 다독이기 위해 [[미국|테네시]] 출신의 상원 원내대표 하워드 베이커를 지명했다.&lt;br /&gt;
&lt;br /&gt;
본선에서는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트럼프 캠프 측은 스타센을 &amp;quot;워싱턴 늪지대의 늙은 구렁이&amp;quot;, &amp;quot;빌딩 한 채 못 지어본 무능한 관료&amp;quot;라며 고령과 기득권 이미지를 집중 공격했다.&amp;lt;ref&amp;gt;정작 프레드 트럼프 본인도 1905년생이라 당시 만 75세로 스타센보다 2살이나 많았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공세였던 셈.&amp;lt;/ref&amp;gt; 이에 스타센은 &amp;quot;국가는 법과 제도로 운영되는 공공체&amp;quot;라는 논리로 응수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약점인 불안정성과 품격 부재를 파고들었다.&lt;br /&gt;
&lt;br /&gt;
10월 28일 열린 대선 TV 토론회에서 프레드 트럼프가 &amp;quot;평생 의회 의자에 앉아 세금이나 까먹던 사람&amp;quot;이라고 몰아붙이자, 스타센은 상원 26년의 내공으로 자비롭게 허허 웃으며 &amp;quot;당신은 건물을 올려봤을지는 몰라도 이 나라의 법과 제도를 무너뜨리고 있다. 국가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로 세워지는 것&amp;quot;이라는 말을 남기며 승기를 완전히 잡아챘다.&lt;br /&gt;
&lt;br /&gt;
결국 11월 &#039;&#039;&#039;본선에서 51.7%의 득표율과 선거인단 357석을 확보하며, 181석에 그친 프레드 트럼프를 꺾고 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으로 당선&#039;&#039;&#039;되었다.&lt;br /&gt;
&lt;br /&gt;
이 승리로 스타센은 당선 당시 기준 역대 최고령 대통령(만 73세)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30대 최연소 주지사로 시작해 70대에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역대급 &#039;&#039;&#039;대기만성형 정치 서사&#039;&#039;&#039;를 완성했다.&lt;br /&gt;
===제41대 미국 대통령===&lt;br /&gt;
1981년 1월 20일, 당선 당시 기준 &#039;&#039;&#039;역대 최고령(만 73세)의 나이&amp;lt;ref&amp;gt;이후 이 기록은 프레드 트럼프에 의해 다시 갱신된다.&amp;lt;/ref&amp;gt;로 제41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039;&#039;&#039;했다. 취임 즉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 시절 거친 언사와 독단적 행보로 균열이 갔던 NATO 등 전통 우방국과의 관계를 즉각 복원하고 [[미국|이란 인질 사건]]의 여파를 수습했다. 경제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했다. 경기 후퇴와 실업률 상승이라는 진통을 겪었으나,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하원과의 초당적 협상을 통해 세제 개편안과 긴축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의회정치의 마스터다운 면모를 과시했다.&lt;br /&gt;
&lt;br /&gt;
1983년 하반기부터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자 스타센은 &amp;quot;긴축의 결실이 맺히고 있으며, 미국은 다시 법치와 안정을 되찾았다&amp;quot;며 재선 도전에 나섰다. 상대는 4년 전 낙선 후 재정비하여 칼을 갈아온 프레드 트럼프였다. 트럼프 측은 긴축 정책과 고금리로 타격을 입은 [[미국|러스트 벨트]] 노동자층과 중서부 농민층의 분노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트럼프는 스타센을 &amp;quot;관료주의로 국민의 피를 말린 노인&amp;quot;이라 맹비난하며 과감한 세금 감면과 관세 부과를 약속했다. 스타센은 만 77세의 초고령에 접어들며 유세 과정에서 다소 지친 기색을 보였고, 반면 프레드 트럼프는 2살이 더 많았음에도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대중의 분노 표심을 단숨에 흡수했다.&lt;br /&gt;
&lt;br /&gt;
개표 결과, &#039;&#039;&#039;득표율 48.8% 대 49.6%(0.8%p 차), 선거인단 226표 대 312표&#039;&#039;&#039;로 프레드 트럼프에게 정권 탈환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긴축 정책으로 타격을 입었던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미국|미시간]] 등 핵심 러스트 벨트 스윙스테이트를 접전으로 빼앗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로써 스타센은 단임으로 백악관을 떠나게 되었고, 프레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징검다리 재선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스타센은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한 뒤, 1985년 1월 20일 정권을 이양하고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마무리하며 [[미국|미네소타]]로 완전히 귀향했다.&lt;br /&gt;
==평가==&lt;br /&gt;
===긍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해럴드 스타센은 법치주의와 의회정치라는 미국 헌정사의 위대한 유산을 온몸으로 체화한 인물이었다. 정치적 이념과 정파가 달랐을지라도, 그가 백악관에 앉아 있는 동안 미국인들은 국가의 행정 시스템이 절제되고 정직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깊은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2001년, [[미국|조 바이든]]}}&lt;br /&gt;
26년 상원 의정 경험과 부통령 경력을 바탕으로 [[민주당]]이 다수당인 의회와 끊임없이 소통했으며,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 헌정사의 전통을 되살려냈다. 외교적으로도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답게, 전임 행정부 시절 균열이 갔던 [[NATO]] 등 서방 동맹국과의 관계를 즉각 수습했다. 절제된 정통 외교 노선을 채택하여 냉전기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도덕적 지도력을 다시 올려놓았다. 또한 1970년대를 짓눌렀던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하여, 임기 후반 [[인플레이션]]을 잡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뼈대를 완성했다.&lt;br /&gt;
===부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스타센 대통령은 정치가 숫자와 수식으로만 움직인다고 믿은 오만한 엘리트였다.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통계표를 들고 자화자찬하는 동안 공장이 문을 닫고 길거리로 쫓겨난 중서부 주민들의 절규를 그는 전혀 듣지 못했다.|1992년, [[미국|팻 뷰캐넌]]}}&lt;br /&gt;
{{인용문|스타센은 자신이 &#039;국정의 조타수&#039;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노만 저었던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을 안정시킨 것이 아니라, 정체시키고 퇴보시켰다.|2004년, [[미국|폴 크루구먼]]}}&lt;br /&gt;
고금리 긴축 정책의 여파가 노동자층과 농민층에게 집중되며 [[미국|러스트 벨트]]의 외면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따른다. 지표상으로는 1983년 이후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섰으나, 제조업 몰락으로 타격을 입은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 벨트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이들의 분노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또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선동 정치에 대해 스타센은 지나치게 신사적이고 고전적인 원론으로만 대응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던 1980년대에 노련한 의회주의자의 고지식함은 대중에게 변화에 뒤처진 늙은 관료로 비쳐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결국 스태그플레이션 진화라는 고통스러운 악역을 맡아 국정을 정상화해 놓았으나, 정작 그 결실과 열매는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84년 대선]]에서 프레드 트럼프에게 다시 바치게 되면서 포퓰리즘 정권의 잠시 동안의 쉼표 역할만 하고 정권을 넘겨준 단임 대통령이라는 한계를 남겼다.&lt;br /&gt;
==기타==&lt;br /&gt;
* 1938년 만 31세의 나이로 [[미국|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되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 당선 기록이며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행정 능력과 카리스마로 당내 기득권을 꺾고 당선되어 30대 초반에 이미 [[공화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다. 물론 그는 최고령 미국 대통령 중 한명이 되었다.&lt;br /&gt;
* 주지사 3선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하던 1943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자 &amp;quot;청년들이 전선에서 피를 흘리는데 안락하게 관사에 머물 수 없다&amp;quot;며 &#039;&#039;&#039;주지사직을 전격 사임하고 해군에 자원입대&#039;&#039;&#039;했다. 태평양 전선에서 윌리엄 홀시 제독의 참모로 참전하여 공훈을 세웠고, 이 태평양 참전 경력은 훗날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과 1980년 대선 당시 프레드 트럼프의 &amp;quot;군대 근처에도 안 가본 군필 미필 논란&amp;quot;을 정면으로 격파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lt;br /&gt;
* 프로필 사진을 보면 머리카락이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탈모로 인해 가발을 착용했다.&lt;br /&gt;
==선거 이력==&lt;br /&gt;
=미국 대통령=&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float: right;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lef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90deg,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 #fff&amp;quot; | [[파일:Flag of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svg|60px]]&amp;lt;br&amp;gt;{{large|미합중국 대통령}}&amp;lt;br&amp;gt;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 0; width: 100%;&amp;quot; | [[파일:폴 라이언 (프런티어).png|class=fullImage|100%]]&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25%; 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현직&lt;br /&gt;
| [[폴 라이언 (프런티어)|폴 라이언]] &amp;lt;sub&amp;gt;/ 제49대&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취임일&lt;br /&gt;
| [[2020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재지&lt;br /&gt;
| [[미국|백악관]]&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으로, 미국 헌법에 따라 미국의 행정권을 총괄하며, [[미국|미군]]의 총사령관이자 통수권자로서 미군을 통솔 및 통수한다. 공식명칭은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이다.&lt;br /&gt;
==역대 대통령==&lt;br /&gt;
=한나라당=&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text-align: left; font-size: 10.5pt; border: 2px solid #009ee3; float: right;&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text-align: center; height: 200px;&amp;quot; | [[파일:한나라 세로.png|2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09ee3 20%, #0b318f 80%, #0b318f); color: #fff;&amp;quot; | 한나라당&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영문 명칭&lt;br /&gt;
| Hannara Party&amp;lt;br&amp;gt;Grand National Party&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25px; 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한문 명칭&lt;br /&gt;
| 한나라黨&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슬로건&lt;br /&gt;
| &#039;&#039;&#039;{{글씨 색|#009ee3|Salus populi suprema lex esto.&amp;lt;br&amp;gt;국민의 안녕이 최고의 법이 되어야 한다.}}&#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등록연월일&lt;br /&gt;
| 2025년 3월 1일&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소 소재지&lt;br /&g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multimaps: 37.530299,126.919577 | height = 150px | zoom = 15}}&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86, 5~8층 (여의도동, B&amp;amp;B타워)&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대표&lt;br /&gt;
|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원내대표&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사무총장&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위의장&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국회의원&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039;&#039;&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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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amp;quot;background-color:#aaaaaa; 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9ee3 0%, transparent 0%);&amp;quot; | &#039;&#039;&#039;n석 / n석 (n.n%)&#039;&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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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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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정책연구소&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후원회&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원 수&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으뜸당원 수&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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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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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비 수입&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재산 총액&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당가&lt;br /&gt;
| [https://www.youtube.com/watch?v=Se6lAb1wtsw &#039;&#039;&#039;{{글씨 색|#009ee3|공정과 기회 도약의 꿈 이뤄가며}}&#039;&#039;&#039;]&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F5F5F5; color: #009ee3;&amp;quot; | 링크&lt;br /&gt;
|&lt;br /&gt;
|-&lt;br /&gt;
|}&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2248</id>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2248"/>
		<updated>2026-08-20T15:19:4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0년]] [[11월 5일]]}}&amp;lt;br&amp;gt;&#039;&#039;&#039;1940년 대선&#039;&#039;&#039;&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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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width=25%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일시&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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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 (프런티어)|{{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br /&gt;
===민주당: 웬델 윌키===&lt;br /&gt;
===공화당: 게리쿠퍼===&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500px; margin:0 auto; background:#E81018; border:2px solid #E81018; color:#fff;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font-size:1.25em; line-height:1.4; padding:10px 6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lt;br /&gt;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공화당 전당대회 지명 후보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fff; border:0; line-height:0;&amp;quot; | [[파일:쿠퍼 반덴버그 (프런티어).png|500px|cent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E81018; border:0;&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 margin:0;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border-right:1px solid #fff;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게리 쿠퍼}}&amp;lt;br&amp;gt;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아서 반덴버그}}&amp;lt;br&amp;gt;미시간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N대 부통령&lt;br /&gt;
|-&lt;br /&gt;
| [[1974년]] [[12월 19일]] ~ [[1977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약력==&lt;br /&gt;
* 1939. 제25대 [[미국|미네소타]] 주지사&lt;br /&gt;
* 1945.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제3함대 참모&lt;br /&gt;
* 1949. 미네소타주 연방 상원의원 (1949.1.3. ~ 1974.8.9.)&lt;br /&gt;
* 1957.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lt;br /&gt;
* 1965. 미국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lt;br /&gt;
* 1974.12. &#039;&#039;&#039;제N대 [[미국|미국 부통령]]&#039;&#039;&#039;&lt;br /&gt;
* 1981.1. &#039;&#039;&#039;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039;&#039;&#039;&lt;br /&gt;
==생애==&lt;br /&gt;
===제N대 미국 부통령===&lt;br /&gt;
1974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닉슨게이트 (프런티어)|닉슨게이트]]로 사임하고 [[존 코널리 (프런티어)|존 코널리]]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코널리에 의해 제39대 [[미국|미국 부통령]]으로 전격 지명되었다. 이후 12월 상·하원의 승인 청문회를 거쳐 공식적으로 취임했다.  &lt;br /&gt;
&lt;br /&gt;
닉슨 사임 이후 극도로 혼란스럽던 워싱턴 정가에서 스타센의 부통령 지명은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26년간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쌓은 압도적인 인망과 경력 덕분에, 닉슨게이트 여파로 와해 직전이던 의회와의 관계를 빠르게 회복시켰기 때문. [[존 코널리 행정부 (프런티어)|코널리 행정부]] 내에서는 주로 내정 및 의회 협상, [[1차 석유 파동]]에 따른 경제 위기 수습을 총괄하는 &#039;&#039;&#039;실권형 부통령&#039;&#039;&#039;으로 활약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 사임의 여파와 스태그플레이션 심화, 그리고 부동산 거물 출신 아웃사이더 포퓰리스트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거센 바람을 막지 못하고 코널리-스타센 티켓은 패배하며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했다.&lt;br /&gt;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한 후 고향 [[미국|미네소타]]로 돌아가 정계 은퇴 절차를 밟는 듯했으나, 백의종군하며 [[공화당]] 내 중도합리파와 의회 온건파의 원로로 남아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lt;br /&gt;
&lt;br /&gt;
당시 프레드 트럼프 행정부는 무분별한 뉴욕식 부동산 개발주의, 친족 비리 스캔들, 그리고 1979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의 대응 미숙으로 민심을 크게 잃은 상태였다. 이에 정계 기득권과 대중 모두가 아웃사이더 포퓰리즘에 지쳐가자, 당내 중도파와 상원 동료들의 삼고초려 끝에 1980년 1월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한다.&lt;br /&gt;
&lt;br /&gt;
당내 경선에서는 26년 상원 외교위원장 및 부통령 시절 구축한 막강한 의회 조직망과 미네소타 농가 지지표를 바탕으로 [[하워드 베이커]], [[존 B. 앤더슨]] 등 우파 신진 후보들을 가볍게 제압하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다. 러닝메이트로는 당내 보수파를 다독이기 위해 [[미국|테네시]] 출신의 상원 원내대표 하워드 베이커를 지명했다.&lt;br /&gt;
&lt;br /&gt;
본선에서는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트럼프 캠프 측은 스타센을 &amp;quot;워싱턴 늪지대의 늙은 구렁이&amp;quot;, &amp;quot;빌딩 한 채 못 지어본 무능한 관료&amp;quot;라며 고령과 기득권 이미지를 집중 공격했다.&amp;lt;ref&amp;gt;정작 프레드 트럼프 본인도 1905년생이라 당시 만 75세로 스타센보다 2살이나 많았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공세였던 셈.&amp;lt;/ref&amp;gt; 이에 스타센은 &amp;quot;국가는 법과 제도로 운영되는 공공체&amp;quot;라는 논리로 응수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약점인 불안정성과 품격 부재를 파고들었다.&lt;br /&gt;
&lt;br /&gt;
10월 28일 열린 대선 TV 토론회에서 프레드 트럼프가 &amp;quot;평생 의회 의자에 앉아 세금이나 까먹던 사람&amp;quot;이라고 몰아붙이자, 스타센은 상원 26년의 내공으로 자비롭게 허허 웃으며 &amp;quot;당신은 건물을 올려봤을지는 몰라도 이 나라의 법과 제도를 무너뜨리고 있다. 국가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로 세워지는 것&amp;quot;이라는 말을 남기며 승기를 완전히 잡아챘다.&lt;br /&gt;
&lt;br /&gt;
결국 11월 &#039;&#039;&#039;본선에서 51.7%의 득표율과 선거인단 357석을 확보하며, 181석에 그친 프레드 트럼프를 꺾고 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으로 당선&#039;&#039;&#039;되었다.&lt;br /&gt;
&lt;br /&gt;
이 승리로 스타센은 당선 당시 기준 역대 최고령 대통령(만 73세)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30대 최연소 주지사로 시작해 70대에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역대급 &#039;&#039;&#039;대기만성형 정치 서사&#039;&#039;&#039;를 완성했다.&lt;br /&gt;
===제41대 미국 대통령===&lt;br /&gt;
1981년 1월 20일, 당선 당시 기준 &#039;&#039;&#039;역대 최고령(만 73세)의 나이&amp;lt;ref&amp;gt;이후 이 기록은 프레드 트럼프에 의해 다시 갱신된다.&amp;lt;/ref&amp;gt;로 제41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039;&#039;&#039;했다. 취임 즉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 시절 거친 언사와 독단적 행보로 균열이 갔던 NATO 등 전통 우방국과의 관계를 즉각 복원하고 [[미국|이란 인질 사건]]의 여파를 수습했다. 경제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했다. 경기 후퇴와 실업률 상승이라는 진통을 겪었으나,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하원과의 초당적 협상을 통해 세제 개편안과 긴축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의회정치의 마스터다운 면모를 과시했다.&lt;br /&gt;
&lt;br /&gt;
1983년 하반기부터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자 스타센은 &amp;quot;긴축의 결실이 맺히고 있으며, 미국은 다시 법치와 안정을 되찾았다&amp;quot;며 재선 도전에 나섰다. 상대는 4년 전 낙선 후 재정비하여 칼을 갈아온 프레드 트럼프였다. 트럼프 측은 긴축 정책과 고금리로 타격을 입은 [[미국|러스트 벨트]] 노동자층과 중서부 농민층의 분노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트럼프는 스타센을 &amp;quot;관료주의로 국민의 피를 말린 노인&amp;quot;이라 맹비난하며 과감한 세금 감면과 관세 부과를 약속했다. 스타센은 만 77세의 초고령에 접어들며 유세 과정에서 다소 지친 기색을 보였고, 반면 프레드 트럼프는 2살이 더 많았음에도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대중의 분노 표심을 단숨에 흡수했다.&lt;br /&gt;
&lt;br /&gt;
개표 결과, &#039;&#039;&#039;득표율 48.8% 대 49.6%(0.8%p 차), 선거인단 226표 대 312표&#039;&#039;&#039;로 프레드 트럼프에게 정권 탈환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긴축 정책으로 타격을 입었던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미국|미시간]] 등 핵심 러스트 벨트 스윙스테이트를 접전으로 빼앗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로써 스타센은 단임으로 백악관을 떠나게 되었고, 프레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징검다리 재선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스타센은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한 뒤, 1985년 1월 20일 정권을 이양하고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마무리하며 [[미국|미네소타]]로 완전히 귀향했다.&lt;br /&gt;
==평가==&lt;br /&gt;
===긍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해럴드 스타센은 법치주의와 의회정치라는 미국 헌정사의 위대한 유산을 온몸으로 체화한 인물이었다. 정치적 이념과 정파가 달랐을지라도, 그가 백악관에 앉아 있는 동안 미국인들은 국가의 행정 시스템이 절제되고 정직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깊은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2001년, [[미국|조 바이든]]}}&lt;br /&gt;
26년 상원 의정 경험과 부통령 경력을 바탕으로 [[민주당]]이 다수당인 의회와 끊임없이 소통했으며,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 헌정사의 전통을 되살려냈다. 외교적으로도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답게, 전임 행정부 시절 균열이 갔던 [[NATO]] 등 서방 동맹국과의 관계를 즉각 수습했다. 절제된 정통 외교 노선을 채택하여 냉전기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도덕적 지도력을 다시 올려놓았다. 또한 1970년대를 짓눌렀던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하여, 임기 후반 [[인플레이션]]을 잡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뼈대를 완성했다.&lt;br /&gt;
===부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스타센 대통령은 정치가 숫자와 수식으로만 움직인다고 믿은 오만한 엘리트였다.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통계표를 들고 자화자찬하는 동안 공장이 문을 닫고 길거리로 쫓겨난 중서부 주민들의 절규를 그는 전혀 듣지 못했다.|1992년, [[미국|팻 뷰캐넌]]}}&lt;br /&gt;
{{인용문|스타센은 자신이 &#039;국정의 조타수&#039;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노만 저었던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을 안정시킨 것이 아니라, 정체시키고 퇴보시켰다.|2004년, [[미국|폴 크루구먼]]}}&lt;br /&gt;
고금리 긴축 정책의 여파가 노동자층과 농민층에게 집중되며 [[미국|러스트 벨트]]의 외면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따른다. 지표상으로는 1983년 이후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섰으나, 제조업 몰락으로 타격을 입은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 벨트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이들의 분노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또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선동 정치에 대해 스타센은 지나치게 신사적이고 고전적인 원론으로만 대응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던 1980년대에 노련한 의회주의자의 고지식함은 대중에게 변화에 뒤처진 늙은 관료로 비쳐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결국 스태그플레이션 진화라는 고통스러운 악역을 맡아 국정을 정상화해 놓았으나, 정작 그 결실과 열매는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84년 대선]]에서 프레드 트럼프에게 다시 바치게 되면서 포퓰리즘 정권의 잠시 동안의 쉼표 역할만 하고 정권을 넘겨준 단임 대통령이라는 한계를 남겼다.&lt;br /&gt;
==기타==&lt;br /&gt;
* 1938년 만 31세의 나이로 [[미국|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되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 당선 기록이며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행정 능력과 카리스마로 당내 기득권을 꺾고 당선되어 30대 초반에 이미 [[공화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다. 물론 그는 최고령 미국 대통령 중 한명이 되었다.&lt;br /&gt;
* 주지사 3선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하던 1943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자 &amp;quot;청년들이 전선에서 피를 흘리는데 안락하게 관사에 머물 수 없다&amp;quot;며 &#039;&#039;&#039;주지사직을 전격 사임하고 해군에 자원입대&#039;&#039;&#039;했다. 태평양 전선에서 윌리엄 홀시 제독의 참모로 참전하여 공훈을 세웠고, 이 태평양 참전 경력은 훗날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과 1980년 대선 당시 프레드 트럼프의 &amp;quot;군대 근처에도 안 가본 군필 미필 논란&amp;quot;을 정면으로 격파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lt;br /&gt;
* 프로필 사진을 보면 머리카락이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탈모로 인해 가발을 착용했다.&lt;br /&gt;
==선거 이력==&lt;br /&gt;
=미국 대통령=&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float: right;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lef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90deg,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 #fff&amp;quot; | [[파일:Flag of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svg|60px]]&amp;lt;br&amp;gt;{{large|미합중국 대통령}}&amp;lt;br&amp;gt;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 0; width: 100%;&amp;quot; | [[파일:폴 라이언 (프런티어).png|class=fullImage|100%]]&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25%; 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현직&lt;br /&gt;
| [[폴 라이언 (프런티어)|폴 라이언]] &amp;lt;sub&amp;gt;/ 제49대&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취임일&lt;br /&gt;
| [[2020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재지&lt;br /&gt;
| [[미국|백악관]]&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으로, 미국 헌법에 따라 미국의 행정권을 총괄하며, [[미국|미군]]의 총사령관이자 통수권자로서 미군을 통솔 및 통수한다. 공식명칭은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이다.&lt;br /&gt;
==역대 대통령==&lt;br /&gt;
=한나라당=&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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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습장:Eiffe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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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13T17:16:2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미국 대통령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0년]] [[11월 5일]]}}&amp;lt;br&amp;gt;&#039;&#039;&#039;1940년 대선&#039;&#039;&#039;&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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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width=25%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일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1940년]] [[11월 5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 (프런티어)|{{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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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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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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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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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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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br /&gt;
===민주당: 웬델 윌키===&lt;br /&gt;
===공화당: 게리쿠퍼===&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500px; margin:0 auto; background:#E81018; border:2px solid #E81018; color:#fff;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font-size:1.25em; line-height:1.4; padding:10px 6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lt;br /&gt;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공화당 전당대회 지명 후보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fff; border:0; line-height:0;&amp;quot; | [[파일:쿠퍼 반덴버그 (프런티어).png|500px|cent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E81018; border:0;&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 margin:0;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border-right:1px solid #fff;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게리 쿠퍼}}&amp;lt;br&amp;gt;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아서 반덴버그}}&amp;lt;br&amp;gt;미시간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N대 부통령&lt;br /&gt;
|-&lt;br /&gt;
| [[1974년]] [[12월 19일]] ~ [[1977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약력==&lt;br /&gt;
* 1939. 제25대 [[미국|미네소타]] 주지사&lt;br /&gt;
* 1945.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제3함대 참모&lt;br /&gt;
* 1949. 미네소타주 연방 상원의원 (1949.1.3. ~ 1974.8.9.)&lt;br /&gt;
* 1957.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lt;br /&gt;
* 1965. 미국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lt;br /&gt;
* 1974.12. &#039;&#039;&#039;제N대 [[미국|미국 부통령]]&#039;&#039;&#039;&lt;br /&gt;
* 1981.1. &#039;&#039;&#039;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039;&#039;&#039;&lt;br /&gt;
==생애==&lt;br /&gt;
===제N대 미국 부통령===&lt;br /&gt;
1974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닉슨게이트 (프런티어)|닉슨게이트]]로 사임하고 [[존 코널리 (프런티어)|존 코널리]]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코널리에 의해 제39대 [[미국|미국 부통령]]으로 전격 지명되었다. 이후 12월 상·하원의 승인 청문회를 거쳐 공식적으로 취임했다.  &lt;br /&gt;
&lt;br /&gt;
닉슨 사임 이후 극도로 혼란스럽던 워싱턴 정가에서 스타센의 부통령 지명은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26년간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쌓은 압도적인 인망과 경력 덕분에, 닉슨게이트 여파로 와해 직전이던 의회와의 관계를 빠르게 회복시켰기 때문. [[존 코널리 행정부 (프런티어)|코널리 행정부]] 내에서는 주로 내정 및 의회 협상, [[1차 석유 파동]]에 따른 경제 위기 수습을 총괄하는 &#039;&#039;&#039;실권형 부통령&#039;&#039;&#039;으로 활약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 사임의 여파와 스태그플레이션 심화, 그리고 부동산 거물 출신 아웃사이더 포퓰리스트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거센 바람을 막지 못하고 코널리-스타센 티켓은 패배하며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했다.&lt;br /&gt;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한 후 고향 [[미국|미네소타]]로 돌아가 정계 은퇴 절차를 밟는 듯했으나, 백의종군하며 [[공화당]] 내 중도합리파와 의회 온건파의 원로로 남아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lt;br /&gt;
&lt;br /&gt;
당시 프레드 트럼프 행정부는 무분별한 뉴욕식 부동산 개발주의, 친족 비리 스캔들, 그리고 1979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의 대응 미숙으로 민심을 크게 잃은 상태였다. 이에 정계 기득권과 대중 모두가 아웃사이더 포퓰리즘에 지쳐가자, 당내 중도파와 상원 동료들의 삼고초려 끝에 1980년 1월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한다.&lt;br /&gt;
&lt;br /&gt;
당내 경선에서는 26년 상원 외교위원장 및 부통령 시절 구축한 막강한 의회 조직망과 미네소타 농가 지지표를 바탕으로 [[하워드 베이커]], [[존 B. 앤더슨]] 등 우파 신진 후보들을 가볍게 제압하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다. 러닝메이트로는 당내 보수파를 다독이기 위해 [[미국|테네시]] 출신의 상원 원내대표 하워드 베이커를 지명했다.&lt;br /&gt;
&lt;br /&gt;
본선에서는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트럼프 캠프 측은 스타센을 &amp;quot;워싱턴 늪지대의 늙은 구렁이&amp;quot;, &amp;quot;빌딩 한 채 못 지어본 무능한 관료&amp;quot;라며 고령과 기득권 이미지를 집중 공격했다.&amp;lt;ref&amp;gt;정작 프레드 트럼프 본인도 1905년생이라 당시 만 75세로 스타센보다 2살이나 많았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공세였던 셈.&amp;lt;/ref&amp;gt; 이에 스타센은 &amp;quot;국가는 법과 제도로 운영되는 공공체&amp;quot;라는 논리로 응수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약점인 불안정성과 품격 부재를 파고들었다.&lt;br /&gt;
&lt;br /&gt;
10월 28일 열린 대선 TV 토론회에서 프레드 트럼프가 &amp;quot;평생 의회 의자에 앉아 세금이나 까먹던 사람&amp;quot;이라고 몰아붙이자, 스타센은 상원 26년의 내공으로 자비롭게 허허 웃으며 &amp;quot;당신은 건물을 올려봤을지는 몰라도 이 나라의 법과 제도를 무너뜨리고 있다. 국가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로 세워지는 것&amp;quot;이라는 말을 남기며 승기를 완전히 잡아챘다.&lt;br /&gt;
&lt;br /&gt;
결국 11월 &#039;&#039;&#039;본선에서 51.7%의 득표율과 선거인단 357석을 확보하며, 181석에 그친 프레드 트럼프를 꺾고 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으로 당선&#039;&#039;&#039;되었다.&lt;br /&gt;
&lt;br /&gt;
이 승리로 스타센은 당선 당시 기준 역대 최고령 대통령(만 73세)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30대 최연소 주지사로 시작해 70대에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역대급 &#039;&#039;&#039;대기만성형 정치 서사&#039;&#039;&#039;를 완성했다.&lt;br /&gt;
===제41대 미국 대통령===&lt;br /&gt;
1981년 1월 20일, 당선 당시 기준 &#039;&#039;&#039;역대 최고령(만 73세)의 나이&amp;lt;ref&amp;gt;이후 이 기록은 프레드 트럼프에 의해 다시 갱신된다.&amp;lt;/ref&amp;gt;로 제41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039;&#039;&#039;했다. 취임 즉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 시절 거친 언사와 독단적 행보로 균열이 갔던 NATO 등 전통 우방국과의 관계를 즉각 복원하고 [[미국|이란 인질 사건]]의 여파를 수습했다. 경제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했다. 경기 후퇴와 실업률 상승이라는 진통을 겪었으나,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하원과의 초당적 협상을 통해 세제 개편안과 긴축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의회정치의 마스터다운 면모를 과시했다.&lt;br /&gt;
&lt;br /&gt;
1983년 하반기부터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자 스타센은 &amp;quot;긴축의 결실이 맺히고 있으며, 미국은 다시 법치와 안정을 되찾았다&amp;quot;며 재선 도전에 나섰다. 상대는 4년 전 낙선 후 재정비하여 칼을 갈아온 프레드 트럼프였다. 트럼프 측은 긴축 정책과 고금리로 타격을 입은 [[미국|러스트 벨트]] 노동자층과 중서부 농민층의 분노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트럼프는 스타센을 &amp;quot;관료주의로 국민의 피를 말린 노인&amp;quot;이라 맹비난하며 과감한 세금 감면과 관세 부과를 약속했다. 스타센은 만 77세의 초고령에 접어들며 유세 과정에서 다소 지친 기색을 보였고, 반면 프레드 트럼프는 2살이 더 많았음에도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대중의 분노 표심을 단숨에 흡수했다.&lt;br /&gt;
&lt;br /&gt;
개표 결과, &#039;&#039;&#039;득표율 48.8% 대 49.6%(0.8%p 차), 선거인단 226표 대 312표&#039;&#039;&#039;로 프레드 트럼프에게 정권 탈환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긴축 정책으로 타격을 입었던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미국|미시간]] 등 핵심 러스트 벨트 스윙스테이트를 접전으로 빼앗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로써 스타센은 단임으로 백악관을 떠나게 되었고, 프레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징검다리 재선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스타센은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한 뒤, 1985년 1월 20일 정권을 이양하고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마무리하며 [[미국|미네소타]]로 완전히 귀향했다.&lt;br /&gt;
==평가==&lt;br /&gt;
===긍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해럴드 스타센은 법치주의와 의회정치라는 미국 헌정사의 위대한 유산을 온몸으로 체화한 인물이었다. 정치적 이념과 정파가 달랐을지라도, 그가 백악관에 앉아 있는 동안 미국인들은 국가의 행정 시스템이 절제되고 정직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깊은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2001년, [[미국|조 바이든]]}}&lt;br /&gt;
26년 상원 의정 경험과 부통령 경력을 바탕으로 [[민주당]]이 다수당인 의회와 끊임없이 소통했으며,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 헌정사의 전통을 되살려냈다. 외교적으로도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답게, 전임 행정부 시절 균열이 갔던 [[NATO]] 등 서방 동맹국과의 관계를 즉각 수습했다. 절제된 정통 외교 노선을 채택하여 냉전기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도덕적 지도력을 다시 올려놓았다. 또한 1970년대를 짓눌렀던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하여, 임기 후반 [[인플레이션]]을 잡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뼈대를 완성했다.&lt;br /&gt;
===부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스타센 대통령은 정치가 숫자와 수식으로만 움직인다고 믿은 오만한 엘리트였다.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통계표를 들고 자화자찬하는 동안 공장이 문을 닫고 길거리로 쫓겨난 중서부 주민들의 절규를 그는 전혀 듣지 못했다.|1992년, [[미국|팻 뷰캐넌]]}}&lt;br /&gt;
{{인용문|스타센은 자신이 &#039;국정의 조타수&#039;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노만 저었던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을 안정시킨 것이 아니라, 정체시키고 퇴보시켰다.|2004년, [[미국|폴 크루구먼]]}}&lt;br /&gt;
고금리 긴축 정책의 여파가 노동자층과 농민층에게 집중되며 [[미국|러스트 벨트]]의 외면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따른다. 지표상으로는 1983년 이후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섰으나, 제조업 몰락으로 타격을 입은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 벨트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이들의 분노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또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선동 정치에 대해 스타센은 지나치게 신사적이고 고전적인 원론으로만 대응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던 1980년대에 노련한 의회주의자의 고지식함은 대중에게 변화에 뒤처진 늙은 관료로 비쳐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결국 스태그플레이션 진화라는 고통스러운 악역을 맡아 국정을 정상화해 놓았으나, 정작 그 결실과 열매는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84년 대선]]에서 프레드 트럼프에게 다시 바치게 되면서 포퓰리즘 정권의 잠시 동안의 쉼표 역할만 하고 정권을 넘겨준 단임 대통령이라는 한계를 남겼다.&lt;br /&gt;
==기타==&lt;br /&gt;
* 1938년 만 31세의 나이로 [[미국|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되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 당선 기록이며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행정 능력과 카리스마로 당내 기득권을 꺾고 당선되어 30대 초반에 이미 [[공화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다. 물론 그는 최고령 미국 대통령 중 한명이 되었다.&lt;br /&gt;
* 주지사 3선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하던 1943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자 &amp;quot;청년들이 전선에서 피를 흘리는데 안락하게 관사에 머물 수 없다&amp;quot;며 &#039;&#039;&#039;주지사직을 전격 사임하고 해군에 자원입대&#039;&#039;&#039;했다. 태평양 전선에서 윌리엄 홀시 제독의 참모로 참전하여 공훈을 세웠고, 이 태평양 참전 경력은 훗날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과 1980년 대선 당시 프레드 트럼프의 &amp;quot;군대 근처에도 안 가본 군필 미필 논란&amp;quot;을 정면으로 격파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lt;br /&gt;
* 프로필 사진을 보면 머리카락이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탈모로 인해 가발을 착용했다.&lt;br /&gt;
==선거 이력==&lt;br /&gt;
=미국 대통령=&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 420px; width: 100%; float: right;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lef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90deg,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 #fff&amp;quot; | [[파일:Flag of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svg|60px]]&amp;lt;br&amp;gt;{{large|미합중국 대통령}}&amp;lt;br&amp;gt;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 0; width: 100%;&amp;quot; | [[파일:폴 라이언 (프런티어).png|class=fullImage|100%]]&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25%; 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현직&lt;br /&gt;
| [[폴 라이언 (프런티어)|폴 라이언]] &amp;lt;sub&amp;gt;/ 제49대&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취임일&lt;br /&gt;
| [[2020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 #0D164A; color: #fff&amp;quot; | 소재지&lt;br /&gt;
| [[미국|백악관]]&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으로, 미국 헌법에 따라 미국의 행정권을 총괄하며, [[미국|미군]]의 총사령관이자 통수권자로서 미군을 통솔 및 통수한다. 공식명칭은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이다.&lt;br /&gt;
==역대 대통령==&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D%8C%8C%EC%9D%BC:%ED%8F%B4_%EB%9D%BC%EC%9D%B4%EC%96%B8_(%ED%94%84%EB%9F%B0%ED%8B%B0%EC%96%B4).png&amp;diff=181577</id>
		<title>파일:폴 라이언 (프런티어).png</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D%8C%8C%EC%9D%BC:%ED%8F%B4_%EB%9D%BC%EC%9D%B4%EC%96%B8_(%ED%94%84%EB%9F%B0%ED%8B%B0%EC%96%B4).png&amp;diff=181577"/>
		<updated>2026-08-13T17:08:2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576</id>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576"/>
		<updated>2026-08-13T16:59:3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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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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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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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 (프런티어)|{{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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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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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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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br /&gt;
===민주당: 웬델 윌키===&lt;br /&gt;
===공화당: 게리쿠퍼===&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500px; margin:0 auto; background:#E81018; border:2px solid #E81018; color:#fff;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font-size:1.25em; line-height:1.4; padding:10px 6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lt;br /&gt;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공화당 전당대회 지명 후보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fff; border:0; line-height:0;&amp;quot; | [[파일:쿠퍼 반덴버그 (프런티어).png|500px|cent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E81018; border:0;&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 margin:0;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border-right:1px solid #fff;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게리 쿠퍼}}&amp;lt;br&amp;gt;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아서 반덴버그}}&amp;lt;br&amp;gt;미시간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N대 부통령&lt;br /&gt;
|-&lt;br /&gt;
| [[1974년]] [[12월 19일]] ~ [[1977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약력==&lt;br /&gt;
* 1939. 제25대 [[미국|미네소타]] 주지사&lt;br /&gt;
* 1945.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제3함대 참모&lt;br /&gt;
* 1949. 미네소타주 연방 상원의원 (1949.1.3. ~ 1974.8.9.)&lt;br /&gt;
* 1957.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lt;br /&gt;
* 1965. 미국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lt;br /&gt;
* 1974.12. &#039;&#039;&#039;제N대 [[미국|미국 부통령]]&#039;&#039;&#039;&lt;br /&gt;
* 1981.1. &#039;&#039;&#039;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039;&#039;&#039;&lt;br /&gt;
==생애==&lt;br /&gt;
===제N대 미국 부통령===&lt;br /&gt;
1974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닉슨게이트 (프런티어)|닉슨게이트]]로 사임하고 [[존 코널리 (프런티어)|존 코널리]]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코널리에 의해 제39대 [[미국|미국 부통령]]으로 전격 지명되었다. 이후 12월 상·하원의 승인 청문회를 거쳐 공식적으로 취임했다.  &lt;br /&gt;
&lt;br /&gt;
닉슨 사임 이후 극도로 혼란스럽던 워싱턴 정가에서 스타센의 부통령 지명은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26년간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쌓은 압도적인 인망과 경력 덕분에, 닉슨게이트 여파로 와해 직전이던 의회와의 관계를 빠르게 회복시켰기 때문. [[존 코널리 행정부 (프런티어)|코널리 행정부]] 내에서는 주로 내정 및 의회 협상, [[1차 석유 파동]]에 따른 경제 위기 수습을 총괄하는 &#039;&#039;&#039;실권형 부통령&#039;&#039;&#039;으로 활약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 사임의 여파와 스태그플레이션 심화, 그리고 부동산 거물 출신 아웃사이더 포퓰리스트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거센 바람을 막지 못하고 코널리-스타센 티켓은 패배하며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했다.&lt;br /&gt;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한 후 고향 [[미국|미네소타]]로 돌아가 정계 은퇴 절차를 밟는 듯했으나, 백의종군하며 [[공화당]] 내 중도합리파와 의회 온건파의 원로로 남아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lt;br /&gt;
&lt;br /&gt;
당시 프레드 트럼프 행정부는 무분별한 뉴욕식 부동산 개발주의, 친족 비리 스캔들, 그리고 1979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의 대응 미숙으로 민심을 크게 잃은 상태였다. 이에 정계 기득권과 대중 모두가 아웃사이더 포퓰리즘에 지쳐가자, 당내 중도파와 상원 동료들의 삼고초려 끝에 1980년 1월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한다.&lt;br /&gt;
&lt;br /&gt;
당내 경선에서는 26년 상원 외교위원장 및 부통령 시절 구축한 막강한 의회 조직망과 미네소타 농가 지지표를 바탕으로 [[하워드 베이커]], [[존 B. 앤더슨]] 등 우파 신진 후보들을 가볍게 제압하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다. 러닝메이트로는 당내 보수파를 다독이기 위해 [[미국|테네시]] 출신의 상원 원내대표 하워드 베이커를 지명했다.&lt;br /&gt;
&lt;br /&gt;
본선에서는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트럼프 캠프 측은 스타센을 &amp;quot;워싱턴 늪지대의 늙은 구렁이&amp;quot;, &amp;quot;빌딩 한 채 못 지어본 무능한 관료&amp;quot;라며 고령과 기득권 이미지를 집중 공격했다.&amp;lt;ref&amp;gt;정작 프레드 트럼프 본인도 1905년생이라 당시 만 75세로 스타센보다 2살이나 많았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공세였던 셈.&amp;lt;/ref&amp;gt; 이에 스타센은 &amp;quot;국가는 법과 제도로 운영되는 공공체&amp;quot;라는 논리로 응수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약점인 불안정성과 품격 부재를 파고들었다.&lt;br /&gt;
&lt;br /&gt;
10월 28일 열린 대선 TV 토론회에서 프레드 트럼프가 &amp;quot;평생 의회 의자에 앉아 세금이나 까먹던 사람&amp;quot;이라고 몰아붙이자, 스타센은 상원 26년의 내공으로 자비롭게 허허 웃으며 &amp;quot;당신은 건물을 올려봤을지는 몰라도 이 나라의 법과 제도를 무너뜨리고 있다. 국가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로 세워지는 것&amp;quot;이라는 말을 남기며 승기를 완전히 잡아챘다.&lt;br /&gt;
&lt;br /&gt;
결국 11월 &#039;&#039;&#039;본선에서 51.7%의 득표율과 선거인단 357석을 확보하며, 181석에 그친 프레드 트럼프를 꺾고 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으로 당선&#039;&#039;&#039;되었다.&lt;br /&gt;
&lt;br /&gt;
이 승리로 스타센은 당선 당시 기준 역대 최고령 대통령(만 73세)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30대 최연소 주지사로 시작해 70대에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역대급 &#039;&#039;&#039;대기만성형 정치 서사&#039;&#039;&#039;를 완성했다.&lt;br /&gt;
===제41대 미국 대통령===&lt;br /&gt;
1981년 1월 20일, 당선 당시 기준 &#039;&#039;&#039;역대 최고령(만 73세)의 나이&amp;lt;ref&amp;gt;이후 이 기록은 프레드 트럼프에 의해 다시 갱신된다.&amp;lt;/ref&amp;gt;로 제41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039;&#039;&#039;했다. 취임 즉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 시절 거친 언사와 독단적 행보로 균열이 갔던 NATO 등 전통 우방국과의 관계를 즉각 복원하고 [[미국|이란 인질 사건]]의 여파를 수습했다. 경제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했다. 경기 후퇴와 실업률 상승이라는 진통을 겪었으나,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하원과의 초당적 협상을 통해 세제 개편안과 긴축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의회정치의 마스터다운 면모를 과시했다.&lt;br /&gt;
&lt;br /&gt;
1983년 하반기부터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자 스타센은 &amp;quot;긴축의 결실이 맺히고 있으며, 미국은 다시 법치와 안정을 되찾았다&amp;quot;며 재선 도전에 나섰다. 상대는 4년 전 낙선 후 재정비하여 칼을 갈아온 프레드 트럼프였다. 트럼프 측은 긴축 정책과 고금리로 타격을 입은 [[미국|러스트 벨트]] 노동자층과 중서부 농민층의 분노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트럼프는 스타센을 &amp;quot;관료주의로 국민의 피를 말린 노인&amp;quot;이라 맹비난하며 과감한 세금 감면과 관세 부과를 약속했다. 스타센은 만 77세의 초고령에 접어들며 유세 과정에서 다소 지친 기색을 보였고, 반면 프레드 트럼프는 2살이 더 많았음에도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대중의 분노 표심을 단숨에 흡수했다.&lt;br /&gt;
&lt;br /&gt;
개표 결과, &#039;&#039;&#039;득표율 48.8% 대 49.6%(0.8%p 차), 선거인단 226표 대 312표&#039;&#039;&#039;로 프레드 트럼프에게 정권 탈환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긴축 정책으로 타격을 입었던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미국|미시간]] 등 핵심 러스트 벨트 스윙스테이트를 접전으로 빼앗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로써 스타센은 단임으로 백악관을 떠나게 되었고, 프레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징검다리 재선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스타센은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한 뒤, 1985년 1월 20일 정권을 이양하고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마무리하며 [[미국|미네소타]]로 완전히 귀향했다.&lt;br /&gt;
==평가==&lt;br /&gt;
===긍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해럴드 스타센은 법치주의와 의회정치라는 미국 헌정사의 위대한 유산을 온몸으로 체화한 인물이었다. 정치적 이념과 정파가 달랐을지라도, 그가 백악관에 앉아 있는 동안 미국인들은 국가의 행정 시스템이 절제되고 정직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깊은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2001년, [[미국|조 바이든]]}}&lt;br /&gt;
26년 상원 의정 경험과 부통령 경력을 바탕으로 [[민주당]]이 다수당인 의회와 끊임없이 소통했으며,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 헌정사의 전통을 되살려냈다. 외교적으로도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답게, 전임 행정부 시절 균열이 갔던 [[NATO]] 등 서방 동맹국과의 관계를 즉각 수습했다. 절제된 정통 외교 노선을 채택하여 냉전기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도덕적 지도력을 다시 올려놓았다. 또한 1970년대를 짓눌렀던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하여, 임기 후반 [[인플레이션]]을 잡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뼈대를 완성했다.&lt;br /&gt;
===부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스타센 대통령은 정치가 숫자와 수식으로만 움직인다고 믿은 오만한 엘리트였다.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통계표를 들고 자화자찬하는 동안 공장이 문을 닫고 길거리로 쫓겨난 중서부 주민들의 절규를 그는 전혀 듣지 못했다.|1992년, [[미국|팻 뷰캐넌]]}}&lt;br /&gt;
{{인용문|스타센은 자신이 &#039;국정의 조타수&#039;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노만 저었던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을 안정시킨 것이 아니라, 정체시키고 퇴보시켰다.|2004년, [[미국|폴 크루구먼]]}}&lt;br /&gt;
고금리 긴축 정책의 여파가 노동자층과 농민층에게 집중되며 [[미국|러스트 벨트]]의 외면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따른다. 지표상으로는 1983년 이후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섰으나, 제조업 몰락으로 타격을 입은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 벨트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이들의 분노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또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선동 정치에 대해 스타센은 지나치게 신사적이고 고전적인 원론으로만 대응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던 1980년대에 노련한 의회주의자의 고지식함은 대중에게 변화에 뒤처진 늙은 관료로 비쳐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결국 스태그플레이션 진화라는 고통스러운 악역을 맡아 국정을 정상화해 놓았으나, 정작 그 결실과 열매는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84년 대선]]에서 프레드 트럼프에게 다시 바치게 되면서 포퓰리즘 정권의 잠시 동안의 쉼표 역할만 하고 정권을 넘겨준 단임 대통령이라는 한계를 남겼다.&lt;br /&gt;
==기타==&lt;br /&gt;
* 1938년 만 31세의 나이로 [[미국|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되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 당선 기록이며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행정 능력과 카리스마로 당내 기득권을 꺾고 당선되어 30대 초반에 이미 [[공화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다. 물론 그는 최고령 미국 대통령 중 한명이 되었다.&lt;br /&gt;
* 주지사 3선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하던 1943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자 &amp;quot;청년들이 전선에서 피를 흘리는데 안락하게 관사에 머물 수 없다&amp;quot;며 &#039;&#039;&#039;주지사직을 전격 사임하고 해군에 자원입대&#039;&#039;&#039;했다. 태평양 전선에서 윌리엄 홀시 제독의 참모로 참전하여 공훈을 세웠고, 이 태평양 참전 경력은 훗날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과 1980년 대선 당시 프레드 트럼프의 &amp;quot;군대 근처에도 안 가본 군필 미필 논란&amp;quot;을 정면으로 격파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lt;br /&gt;
* 프로필 사진을 보면 머리카락이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탈모로 인해 가발을 착용했다.&lt;br /&gt;
==선거 이력==&lt;br /&gt;
=미국 대통령=&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565</id>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565"/>
		<updated>2026-08-13T14:51:3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해럴드 스타센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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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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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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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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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 (프런티어)|{{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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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br /&gt;
===민주당: 웬델 윌키===&lt;br /&gt;
===공화당: 게리쿠퍼===&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500px; margin:0 auto; background:#E81018; border:2px solid #E81018; color:#fff;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font-size:1.25em; line-height:1.4; padding:10px 6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lt;br /&gt;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공화당 전당대회 지명 후보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fff; border:0; line-height:0;&amp;quot; | [[파일:쿠퍼 반덴버그 (프런티어).png|500px|cent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E81018; border:0;&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 margin:0;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border-right:1px solid #fff;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게리 쿠퍼}}&amp;lt;br&amp;gt;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아서 반덴버그}}&amp;lt;br&amp;gt;미시간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N대 부통령&lt;br /&gt;
|-&lt;br /&gt;
| [[1974년]] [[12월 19일]] ~ [[1977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약력==&lt;br /&gt;
* 1939. 제25대 [[미국|미네소타]] 주지사&lt;br /&gt;
* 1945.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제3함대 참모&lt;br /&gt;
* 1949. 미네소타주 연방 상원의원 (1949.1.3. ~ 1974.8.9.)&lt;br /&gt;
* 1957.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lt;br /&gt;
* 1965. 미국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lt;br /&gt;
* 1974.12. &#039;&#039;&#039;제N대 [[미국|미국 부통령]]&#039;&#039;&#039;&lt;br /&gt;
* 1981.1. &#039;&#039;&#039;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039;&#039;&#039;&lt;br /&gt;
==생애==&lt;br /&gt;
===제N대 미국 부통령===&lt;br /&gt;
1974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닉슨게이트 (프런티어)|닉슨게이트]]로 사임하고 [[존 코널리 (프런티어)|존 코널리]]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코널리에 의해 제39대 [[미국|미국 부통령]]으로 전격 지명되었다. 이후 12월 상·하원의 승인 청문회를 거쳐 공식적으로 취임했다.  &lt;br /&gt;
&lt;br /&gt;
닉슨 사임 이후 극도로 혼란스럽던 워싱턴 정가에서 스타센의 부통령 지명은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26년간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쌓은 압도적인 인망과 경력 덕분에, 닉슨게이트 여파로 와해 직전이던 의회와의 관계를 빠르게 회복시켰기 때문. [[존 코널리 행정부 (프런티어)|코널리 행정부]] 내에서는 주로 내정 및 의회 협상, [[1차 석유 파동]]에 따른 경제 위기 수습을 총괄하는 &#039;&#039;&#039;실권형 부통령&#039;&#039;&#039;으로 활약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 사임의 여파와 스태그플레이션 심화, 그리고 부동산 거물 출신 아웃사이더 포퓰리스트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거센 바람을 막지 못하고 코널리-스타센 티켓은 패배하며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했다.&lt;br /&gt;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한 후 고향 [[미국|미네소타]]로 돌아가 정계 은퇴 절차를 밟는 듯했으나, 백의종군하며 [[공화당]] 내 중도합리파와 의회 온건파의 원로로 남아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lt;br /&gt;
&lt;br /&gt;
당시 프레드 트럼프 행정부는 무분별한 뉴욕식 부동산 개발주의, 친족 비리 스캔들, 그리고 1979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의 대응 미숙으로 민심을 크게 잃은 상태였다. 이에 정계 기득권과 대중 모두가 아웃사이더 포퓰리즘에 지쳐가자, 당내 중도파와 상원 동료들의 삼고초려 끝에 1980년 1월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한다.&lt;br /&gt;
&lt;br /&gt;
당내 경선에서는 26년 상원 외교위원장 및 부통령 시절 구축한 막강한 의회 조직망과 미네소타 농가 지지표를 바탕으로 [[하워드 베이커]], [[존 B. 앤더슨]] 등 우파 신진 후보들을 가볍게 제압하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다. 러닝메이트로는 당내 보수파를 다독이기 위해 [[미국|테네시]] 출신의 상원 원내대표 하워드 베이커를 지명했다.&lt;br /&gt;
&lt;br /&gt;
본선에서는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트럼프 캠프 측은 스타센을 &amp;quot;워싱턴 늪지대의 늙은 구렁이&amp;quot;, &amp;quot;빌딩 한 채 못 지어본 무능한 관료&amp;quot;라며 고령과 기득권 이미지를 집중 공격했다.&amp;lt;ref&amp;gt;정작 프레드 트럼프 본인도 1905년생이라 당시 만 75세로 스타센보다 2살이나 많았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공세였던 셈.&amp;lt;/ref&amp;gt; 이에 스타센은 &amp;quot;국가는 법과 제도로 운영되는 공공체&amp;quot;라는 논리로 응수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약점인 불안정성과 품격 부재를 파고들었다.&lt;br /&gt;
&lt;br /&gt;
10월 28일 열린 대선 TV 토론회에서 프레드 트럼프가 &amp;quot;평생 의회 의자에 앉아 세금이나 까먹던 사람&amp;quot;이라고 몰아붙이자, 스타센은 상원 26년의 내공으로 자비롭게 허허 웃으며 &amp;quot;당신은 건물을 올려봤을지는 몰라도 이 나라의 법과 제도를 무너뜨리고 있다. 국가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로 세워지는 것&amp;quot;이라는 말을 남기며 승기를 완전히 잡아챘다.&lt;br /&gt;
&lt;br /&gt;
결국 11월 &#039;&#039;&#039;본선에서 51.7%의 득표율과 선거인단 357석을 확보하며, 181석에 그친 프레드 트럼프를 꺾고 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으로 당선&#039;&#039;&#039;되었다.&lt;br /&gt;
&lt;br /&gt;
이 승리로 스타센은 당선 당시 기준 역대 최고령 대통령(만 73세)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30대 최연소 주지사로 시작해 70대에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역대급 &#039;&#039;&#039;대기만성형 정치 서사&#039;&#039;&#039;를 완성했다.&lt;br /&gt;
===제41대 미국 대통령===&lt;br /&gt;
1981년 1월 20일, 당선 당시 기준 &#039;&#039;&#039;역대 최고령(만 73세)의 나이&amp;lt;ref&amp;gt;이후 이 기록은 프레드 트럼프에 의해 다시 갱신된다.&amp;lt;/ref&amp;gt;로 제41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039;&#039;&#039;했다. 취임 즉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 시절 거친 언사와 독단적 행보로 균열이 갔던 NATO 등 전통 우방국과의 관계를 즉각 복원하고 [[미국|이란 인질 사건]]의 여파를 수습했다. 경제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했다. 경기 후퇴와 실업률 상승이라는 진통을 겪었으나,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하원과의 초당적 협상을 통해 세제 개편안과 긴축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의회정치의 마스터다운 면모를 과시했다.&lt;br /&gt;
&lt;br /&gt;
1983년 하반기부터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자 스타센은 &amp;quot;긴축의 결실이 맺히고 있으며, 미국은 다시 법치와 안정을 되찾았다&amp;quot;며 재선 도전에 나섰다. 상대는 4년 전 낙선 후 재정비하여 칼을 갈아온 프레드 트럼프였다. 트럼프 측은 긴축 정책과 고금리로 타격을 입은 [[미국|러스트 벨트]] 노동자층과 중서부 농민층의 분노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트럼프는 스타센을 &amp;quot;관료주의로 국민의 피를 말린 노인&amp;quot;이라 맹비난하며 과감한 세금 감면과 관세 부과를 약속했다. 스타센은 만 77세의 초고령에 접어들며 유세 과정에서 다소 지친 기색을 보였고, 반면 프레드 트럼프는 2살이 더 많았음에도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대중의 분노 표심을 단숨에 흡수했다.&lt;br /&gt;
&lt;br /&gt;
개표 결과, &#039;&#039;&#039;득표율 48.8% 대 49.6%(0.8%p 차), 선거인단 226표 대 312표&#039;&#039;&#039;로 프레드 트럼프에게 정권 탈환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긴축 정책으로 타격을 입었던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미국|미시간]] 등 핵심 러스트 벨트 스윙스테이트를 접전으로 빼앗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로써 스타센은 단임으로 백악관을 떠나게 되었고, 프레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징검다리 재선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스타센은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한 뒤, 1985년 1월 20일 정권을 이양하고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마무리하며 [[미국|미네소타]]로 완전히 귀향했다.&lt;br /&gt;
==평가==&lt;br /&gt;
===긍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해럴드 스타센은 법치주의와 의회정치라는 미국 헌정사의 위대한 유산을 온몸으로 체화한 인물이었다. 정치적 이념과 정파가 달랐을지라도, 그가 백악관에 앉아 있는 동안 미국인들은 국가의 행정 시스템이 절제되고 정직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깊은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2001년, [[미국|조 바이든]]}}&lt;br /&gt;
26년 상원 의정 경험과 부통령 경력을 바탕으로 [[민주당]]이 다수당인 의회와 끊임없이 소통했으며,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 헌정사의 전통을 되살려냈다. 외교적으로도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답게, 전임 행정부 시절 균열이 갔던 [[NATO]] 등 서방 동맹국과의 관계를 즉각 수습했다. 절제된 정통 외교 노선을 채택하여 냉전기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도덕적 지도력을 다시 올려놓았다. 또한 1970년대를 짓눌렀던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하여, 임기 후반 [[인플레이션]]을 잡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뼈대를 완성했다.&lt;br /&gt;
===부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스타센 대통령은 정치가 숫자와 수식으로만 움직인다고 믿은 오만한 엘리트였다.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통계표를 들고 자화자찬하는 동안 공장이 문을 닫고 길거리로 쫓겨난 중서부 주민들의 절규를 그는 전혀 듣지 못했다.|1992년, [[미국|팻 뷰캐넌]]}}&lt;br /&gt;
{{인용문|스타센은 자신이 &#039;국정의 조타수&#039;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노만 저었던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을 안정시킨 것이 아니라, 정체시키고 퇴보시켰다.|2004년, [[미국|폴 크루구먼]]}}&lt;br /&gt;
고금리 긴축 정책의 여파가 노동자층과 농민층에게 집중되며 [[미국|러스트 벨트]]의 외면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따른다. 지표상으로는 1983년 이후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섰으나, 제조업 몰락으로 타격을 입은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 벨트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이들의 분노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또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선동 정치에 대해 스타센은 지나치게 신사적이고 고전적인 원론으로만 대응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던 1980년대에 노련한 의회주의자의 고지식함은 대중에게 변화에 뒤처진 늙은 관료로 비쳐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결국 스태그플레이션 진화라는 고통스러운 악역을 맡아 국정을 정상화해 놓았으나, 정작 그 결실과 열매는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84년 대선]]에서 프레드 트럼프에게 다시 바치게 되면서 포퓰리즘 정권의 잠시 동안의 쉼표 역할만 하고 정권을 넘겨준 단임 대통령이라는 한계를 남겼다.&lt;br /&gt;
==기타==&lt;br /&gt;
* 1938년 만 31세의 나이로 [[미국|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되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 당선 기록이며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행정 능력과 카리스마로 당내 기득권을 꺾고 당선되어 30대 초반에 이미 [[공화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다. 물론 그는 최고령 미국 대통령 중 한명이 되었다.&lt;br /&gt;
* 주지사 3선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하던 1943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자 &amp;quot;청년들이 전선에서 피를 흘리는데 안락하게 관사에 머물 수 없다&amp;quot;며 &#039;&#039;&#039;주지사직을 전격 사임하고 해군에 자원입대&#039;&#039;&#039;했다. 태평양 전선에서 윌리엄 홀시 제독의 참모로 참전하여 공훈을 세웠고, 이 태평양 참전 경력은 훗날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과 1980년 대선 당시 프레드 트럼프의 &amp;quot;군대 근처에도 안 가본 군필 미필 논란&amp;quot;을 정면으로 격파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lt;br /&gt;
* 프로필 사진을 보면 머리카락이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탈모로 인해 가발을 착용했다.&lt;br /&gt;
==선거 이력==&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564</id>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564"/>
		<updated>2026-08-13T14:50:1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해럴드 스타센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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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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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25%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일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1940년]] [[11월 5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 (프런티어)|{{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br /&gt;
===민주당: 웬델 윌키===&lt;br /&gt;
===공화당: 게리쿠퍼===&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500px; margin:0 auto; background:#E81018; border:2px solid #E81018; color:#fff;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font-size:1.25em; line-height:1.4; padding:10px 6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lt;br /&gt;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공화당 전당대회 지명 후보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fff; border:0; line-height:0;&amp;quot; | [[파일:쿠퍼 반덴버그 (프런티어).png|500px|cent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E81018; border:0;&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 margin:0;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border-right:1px solid #fff;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게리 쿠퍼}}&amp;lt;br&amp;gt;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아서 반덴버그}}&amp;lt;br&amp;gt;미시간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N대 부통령&lt;br /&gt;
|-&lt;br /&gt;
| [[1974년]] [[12월 19일]] ~ [[1977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약력==&lt;br /&gt;
* 1939. 제25대 [[미국|미네소타]] 주지사&lt;br /&gt;
* 1945.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제3함대 참모&lt;br /&gt;
* 1949. 미네소타주 연방 상원의원 (1949.1.3. ~ 1974.8.9.)&lt;br /&gt;
* 1957.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lt;br /&gt;
* 1965. 미국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lt;br /&gt;
* 1974.12. &#039;&#039;&#039;제N대 [[미국|미국 부통령]]&#039;&#039;&#039;&lt;br /&gt;
* 1981.1. &#039;&#039;&#039;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039;&#039;&#039;&lt;br /&gt;
==생애==&lt;br /&gt;
===제N대 미국 부통령===&lt;br /&gt;
1974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닉슨게이트 (프런티어)|닉슨게이트]]로 사임하고 [[존 코널리 (프런티어)|존 코널리]]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코널리에 의해 제39대 [[미국|미국 부통령]]으로 전격 지명되었다. 이후 12월 상·하원의 승인 청문회를 거쳐 공식적으로 취임했다.  &lt;br /&gt;
&lt;br /&gt;
닉슨 사임 이후 극도로 혼란스럽던 워싱턴 정가에서 스타센의 부통령 지명은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26년간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쌓은 압도적인 인망과 경력 덕분에, 닉슨게이트 여파로 와해 직전이던 의회와의 관계를 빠르게 회복시켰기 때문. [[존 코널리 행정부 (프런티어)|코널리 행정부]] 내에서는 주로 내정 및 의회 협상, [[1차 석유 파동]]에 따른 경제 위기 수습을 총괄하는 &#039;&#039;&#039;실권형 부통령&#039;&#039;&#039;으로 활약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 사임의 여파와 스태그플레이션 심화, 그리고 부동산 거물 출신 아웃사이더 포퓰리스트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거센 바람을 막지 못하고 코널리-스타센 티켓은 패배하며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했다.&lt;br /&gt;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한 후 고향 [[미국|미네소타]]로 돌아가 정계 은퇴 절차를 밟는 듯했으나, 백의종군하며 [[공화당]] 내 중도합리파와 의회 온건파의 원로로 남아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lt;br /&gt;
&lt;br /&gt;
당시 프레드 트럼프 행정부는 무분별한 뉴욕식 부동산 개발주의, 친족 비리 스캔들, 그리고 1979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의 대응 미숙으로 민심을 크게 잃은 상태였다. 이에 정계 기득권과 대중 모두가 아웃사이더 포퓰리즘에 지쳐가자, 당내 중도파와 상원 동료들의 삼고초려 끝에 1980년 1월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한다.&lt;br /&gt;
&lt;br /&gt;
당내 경선에서는 26년 상원 외교위원장 및 부통령 시절 구축한 막강한 의회 조직망과 미네소타 농가 지지표를 바탕으로 [[하워드 베이커]], [[존 B. 앤더슨]] 등 우파 신진 후보들을 가볍게 제압하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다. 러닝메이트로는 당내 보수파를 다독이기 위해 [[미국|테네시]] 출신의 상원 원내대표 하워드 베이커를 지명했다.&lt;br /&gt;
&lt;br /&gt;
본선에서는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트럼프 캠프 측은 스타센을 &amp;quot;워싱턴 늪지대의 늙은 구렁이&amp;quot;, &amp;quot;빌딩 한 채 못 지어본 무능한 관료&amp;quot;라며 고령과 기득권 이미지를 집중 공격했다.&amp;lt;ref&amp;gt;정작 프레드 트럼프 본인도 1905년생이라 당시 만 75세로 스타센보다 2살이나 많았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공세였던 셈.&amp;lt;/ref&amp;gt; 이에 스타센은 &amp;quot;국가는 법과 제도로 운영되는 공공체&amp;quot;라는 논리로 응수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약점인 불안정성과 품격 부재를 파고들었다.&lt;br /&gt;
&lt;br /&gt;
10월 28일 열린 대선 TV 토론회에서 프레드 트럼프가 &amp;quot;평생 의회 의자에 앉아 세금이나 까먹던 사람&amp;quot;이라고 몰아붙이자, 스타센은 상원 26년의 내공으로 자비롭게 허허 웃으며 &amp;quot;당신은 건물을 올려봤을지는 몰라도 이 나라의 법과 제도를 무너뜨리고 있다. 국가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로 세워지는 것&amp;quot;이라는 말을 남기며 승기를 완전히 잡아챘다.&lt;br /&gt;
&lt;br /&gt;
결국 11월 &#039;&#039;&#039;본선에서 51.7%의 득표율과 선거인단 357석을 확보하며, 181석에 그친 프레드 트럼프를 꺾고 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으로 당선&#039;&#039;&#039;되었다.&lt;br /&gt;
&lt;br /&gt;
이 승리로 스타센은 당선 당시 기준 역대 최고령 대통령(만 73세)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30대 최연소 주지사로 시작해 70대에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역대급 &#039;&#039;&#039;대기만성형 정치 서사&#039;&#039;&#039;를 완성했다.&lt;br /&gt;
===제41대 미국 대통령===&lt;br /&gt;
1981년 1월 20일, 당선 당시 기준 &#039;&#039;&#039;역대 최고령(만 73세)의 나이&amp;lt;ref&amp;gt;이후 이 기록은 프레드 트럼프에 의해 다시 갱신된다.&amp;lt;/ref&amp;gt;로 제41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039;&#039;&#039;했다. 취임 즉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 시절 거친 언사와 독단적 행보로 균열이 갔던 NATO 등 전통 우방국과의 관계를 즉각 복원하고 [[미국|이란 인질 사건]]의 여파를 수습했다. 경제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했다. 경기 후퇴와 실업률 상승이라는 진통을 겪었으나,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하원과의 초당적 협상을 통해 세제 개편안과 긴축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의회정치의 마스터다운 면모를 과시했다.&lt;br /&gt;
&lt;br /&gt;
1983년 하반기부터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자 스타센은 &amp;quot;긴축의 결실이 맺히고 있으며, 미국은 다시 법치와 안정을 되찾았다&amp;quot;며 재선 도전에 나섰다. 상대는 4년 전 낙선 후 재정비하여 칼을 갈아온 프레드 트럼프였다. 트럼프 측은 긴축 정책과 고금리로 타격을 입은 [[미국|러스트 벨트]] 노동자층과 중서부 농민층의 분노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트럼프는 스타센을 &amp;quot;관료주의로 국민의 피를 말린 노인&amp;quot;이라 맹비난하며 과감한 세금 감면과 관세 부과를 약속했다. 스타센은 만 77세의 초고령에 접어들며 유세 과정에서 다소 지친 기색을 보였고, 반면 프레드 트럼프는 2살이 더 많았음에도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대중의 분노 표심을 단숨에 흡수했다.&lt;br /&gt;
&lt;br /&gt;
개표 결과, &#039;&#039;&#039;득표율 48.8% 대 49.6%(0.8%p 차), 선거인단 226표 대 312표&#039;&#039;&#039;로 프레드 트럼프에게 정권 탈환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긴축 정책으로 타격을 입었던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미국|미시간]] 등 핵심 러스트 벨트 스윙스테이트를 접전으로 빼앗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로써 스타센은 단임으로 백악관을 떠나게 되었고, 프레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징검다리 재선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스타센은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한 뒤, 1985년 1월 20일 정권을 이양하고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마무리하며 [[미국|미네소타]]로 완전히 귀향했다.&lt;br /&gt;
==평가==&lt;br /&gt;
===긍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해럴드 스타센은 법치주의와 의회정치라는 미국 헌정사의 위대한 유산을 온몸으로 체화한 인물이었다. 정치적 이념과 정파가 달랐을지라도, 그가 백악관에 앉아 있는 동안 미국인들은 국가의 행정 시스템이 절제되고 정직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깊은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2001년, [[미국|조 바이든]]}}&lt;br /&gt;
26년 상원 의정 경험과 부통령 경력을 바탕으로 [[민주당]]이 다수당인 의회와 끊임없이 소통했으며,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 헌정사의 전통을 되살려냈다. 외교적으로도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답게, 전임 행정부 시절 균열이 갔던 [[NATO]] 등 서방 동맹국과의 관계를 즉각 수습했다. 절제된 정통 외교 노선을 채택하여 냉전기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도덕적 지도력을 다시 올려놓았다. 또한 1970년대를 짓눌렀던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하여, 임기 후반 [[인플레이션]]을 잡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뼈대를 완성했다.&lt;br /&gt;
===부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스타센 대통령은 정치가 숫자와 수식으로만 움직인다고 믿은 오만한 엘리트였다.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통계표를 들고 자화자찬하는 동안 공장이 문을 닫고 길거리로 쫓겨난 중서부 주민들의 절규를 그는 전혀 듣지 못했다.|1992년, [[미국|팻 뷰캐넌]]}}&lt;br /&gt;
{{인용문|스타센은 자신이 &#039;국정의 조타수&#039;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노만 저었던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을 안정시킨 것이 아니라, 정체시키고 퇴보시켰다.|2004년, [[미국|폴 크루구먼]]}}&lt;br /&gt;
고금리 긴축 정책의 여파가 노동자층과 농민층에게 집중되며 [[미국|러스트 벨트]]의 외면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따른다. 지표상으로는 1983년 이후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섰으나, 제조업 몰락으로 타격을 입은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 벨트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이들의 분노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또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선동 정치에 대해 스타센은 지나치게 신사적이고 고전적인 원론으로만 대응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던 1980년대에 노련한 의회주의자의 고지식함은 대중에게 변화에 뒤처진 늙은 관료로 비쳐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결국 스태그플레이션 진화라는 고통스러운 악역을 맡아 국정을 정상화해 놓았으나, 정작 그 결실과 열매는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84년 대선]]에서 프레드 트럼프에게 다시 바치게 되면서 포퓰리즘 정권의 잠시 동안의 쉼표 역할만 하고 정권을 넘겨준 단임 대통령이라는 한계를 남겼다.&lt;br /&gt;
==기타==&lt;br /&gt;
* 1938년 만 31세의 나이로 [[미국|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되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 당선 기록이며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행정 능력과 카리스마로 당내 기득권을 꺾고 당선되어 30대 초반에 이미 [[공화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다. 물론 그는 최고령 미국 대통령 중 한명이 되었다.&lt;br /&gt;
* 주지사 3선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하던 1943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자 &amp;quot;청년들이 전선에서 피를 흘리는데 안락하게 관사에 머물 수 없다&amp;quot;며 &#039;&#039;&#039;주지사직을 전격 사임하고 해군에 자원입대&#039;&#039;&#039;했다. 태평양 전선에서 윌리엄 홀시 제독의 참모로 참전하여 공훈을 세웠고, 이 태평양 참전 경력은 훗날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과 1980년 대선 당시 프레드 트럼프의 &amp;quot;군대 근처에도 안 가본 군필 미필 논란&amp;quot;을 정면으로 격파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lt;br /&gt;
==선거 이력==&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560</id>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560"/>
		<updated>2026-08-13T14:37:0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해럴드 스타센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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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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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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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25%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일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1940년]] [[11월 5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 (프런티어)|{{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br /&gt;
===민주당: 웬델 윌키===&lt;br /&gt;
===공화당: 게리쿠퍼===&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500px; margin:0 auto; background:#E81018; border:2px solid #E81018; color:#fff;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font-size:1.25em; line-height:1.4; padding:10px 6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lt;br /&gt;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공화당 전당대회 지명 후보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fff; border:0; line-height:0;&amp;quot; | [[파일:쿠퍼 반덴버그 (프런티어).png|500px|cent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E81018; border:0;&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 margin:0;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border-right:1px solid #fff;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게리 쿠퍼}}&amp;lt;br&amp;gt;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아서 반덴버그}}&amp;lt;br&amp;gt;미시간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N대 부통령&lt;br /&gt;
|-&lt;br /&gt;
| [[1974년]] [[12월 19일]] ~ [[1977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약력==&lt;br /&gt;
* 1939. 제25대 [[미국|미네소타]] 주지사&lt;br /&gt;
* 1945.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제3함대 참모&lt;br /&gt;
* 1949. 미네소타주 연방 상원의원 (1949.1.3. ~ 1974.8.9.)&lt;br /&gt;
* 1957.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lt;br /&gt;
* 1965. 미국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lt;br /&gt;
* 1974.12. &#039;&#039;&#039;제N대 [[미국|미국 부통령]]&#039;&#039;&#039;&lt;br /&gt;
* 1981.1. &#039;&#039;&#039;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039;&#039;&#039;&lt;br /&gt;
==생애==&lt;br /&gt;
===제N대 미국 부통령===&lt;br /&gt;
1974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닉슨게이트 (프런티어)|닉슨게이트]]로 사임하고 [[존 코널리 (프런티어)|존 코널리]]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자, 코널리에 의해 제39대 [[미국|미국 부통령]]으로 전격 지명되었다. 이후 12월 상·하원의 승인 청문회를 거쳐 공식적으로 취임했다.  &lt;br /&gt;
&lt;br /&gt;
닉슨 사임 이후 극도로 혼란스럽던 워싱턴 정가에서 스타센의 부통령 지명은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26년간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쌓은 압도적인 인망과 경력 덕분에, 닉슨게이트 여파로 와해 직전이던 의회와의 관계를 빠르게 회복시켰기 때문. [[존 코널리 행정부 (프런티어)|코널리 행정부]] 내에서는 주로 내정 및 의회 협상, [[1차 석유 파동]]에 따른 경제 위기 수습을 총괄하는 &#039;&#039;&#039;실권형 부통령&#039;&#039;&#039;으로 활약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 사임의 여파와 스태그플레이션 심화, 그리고 부동산 거물 출신 아웃사이더 포퓰리스트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거센 바람을 막지 못하고 코널리-스타센 티켓은 패배하며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했다.&lt;br /&gt;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1977년 1월 부통령직에서 퇴임한 후 고향 [[미국|미네소타]]로 돌아가 정계 은퇴 절차를 밟는 듯했으나, 백의종군하며 [[공화당]] 내 중도합리파와 의회 온건파의 원로로 남아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의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lt;br /&gt;
&lt;br /&gt;
당시 프레드 트럼프 행정부는 무분별한 뉴욕식 부동산 개발주의, 친족 비리 스캔들, 그리고 1979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의 대응 미숙으로 민심을 크게 잃은 상태였다. 이에 정계 기득권과 대중 모두가 아웃사이더 포퓰리즘에 지쳐가자, 당내 중도파와 상원 동료들의 삼고초려 끝에 1980년 1월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한다.&lt;br /&gt;
&lt;br /&gt;
당내 경선에서는 26년 상원 외교위원장 및 부통령 시절 구축한 막강한 의회 조직망과 미네소타 농가 지지표를 바탕으로 [[하워드 베이커]], [[존 B. 앤더슨]] 등 우파 신진 후보들을 가볍게 제압하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다. 러닝메이트로는 당내 보수파를 다독이기 위해 [[미국|테네시]] 출신의 상원 원내대표 하워드 베이커를 지명했다.&lt;br /&gt;
&lt;br /&gt;
본선에서는 현직 대통령인 프레드 트럼프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트럼프 캠프 측은 스타센을 &amp;quot;워싱턴 늪지대의 늙은 구렁이&amp;quot;, &amp;quot;빌딩 한 채 못 지어본 무능한 관료&amp;quot;라며 고령과 기득권 이미지를 집중 공격했다.&amp;lt;ref&amp;gt;정작 프레드 트럼프 본인도 1905년생이라 당시 만 75세로 스타센보다 2살이나 많았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공세였던 셈.&amp;lt;/ref&amp;gt; 이에 스타센은 &amp;quot;국가는 법과 제도로 운영되는 공공체&amp;quot;라는 논리로 응수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약점인 불안정성과 품격 부재를 파고들었다.&lt;br /&gt;
&lt;br /&gt;
10월 28일 열린 대선 TV 토론회에서 프레드 트럼프가 &amp;quot;평생 의회 의자에 앉아 세금이나 까먹던 사람&amp;quot;이라고 몰아붙이자, 스타센은 상원 26년의 내공으로 자비롭게 허허 웃으며 &amp;quot;당신은 건물을 올려봤을지는 몰라도 이 나라의 법과 제도를 무너뜨리고 있다. 국가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로 세워지는 것&amp;quot;이라는 말을 남기며 승기를 완전히 잡아챘다.&lt;br /&gt;
&lt;br /&gt;
결국 11월 &#039;&#039;&#039;본선에서 51.7%의 득표율과 선거인단 357석을 확보하며, 181석에 그친 프레드 트럼프를 꺾고 제41대 [[미국|미국 대통령]]으로 당선&#039;&#039;&#039;되었다.&lt;br /&gt;
&lt;br /&gt;
이 승리로 스타센은 당선 당시 기준 역대 최고령 대통령(만 73세)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30대 최연소 주지사로 시작해 70대에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역대급 &#039;&#039;&#039;대기만성형 정치 서사&#039;&#039;&#039;를 완성했다.&lt;br /&gt;
===제41대 미국 대통령===&lt;br /&gt;
1981년 1월 20일, 당선 당시 기준 &#039;&#039;&#039;역대 최고령(만 73세)의 나이&amp;lt;ref&amp;gt;이후 이 기록은 프레드 트럼프에 의해 다시 갱신된다.&amp;lt;/ref&amp;gt;로 제41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039;&#039;&#039;했다. 취임 즉시 [[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프레드 트럼프]] 시절 거친 언사와 독단적 행보로 균열이 갔던 NATO 등 전통 우방국과의 관계를 즉각 복원하고 [[미국|이란 인질 사건]]의 여파를 수습했다. 경제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긴축 정책을 전폭 지원했다. 경기 후퇴와 실업률 상승이라는 진통을 겪었으나,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하원과의 초당적 협상을 통해 세제 개편안과 긴축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의회정치의 마스터다운 면모를 과시했다.&lt;br /&gt;
&lt;br /&gt;
1983년 하반기부터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자 스타센은 &amp;quot;긴축의 결실이 맺히고 있으며, 미국은 다시 법치와 안정을 되찾았다&amp;quot;며 재선 도전에 나섰다. 상대는 4년 전 낙선 후 재정비하여 칼을 갈아온 프레드 트럼프였다. 트럼프 측은 긴축 정책과 고금리로 타격을 입은 [[미국|러스트 벨트]] 노동자층과 중서부 농민층의 분노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트럼프는 스타센을 &amp;quot;관료주의로 국민의 피를 말린 노인&amp;quot;이라 맹비난하며 과감한 세금 감면과 관세 부과를 약속했다. 스타센은 만 77세의 초고령에 접어들며 유세 과정에서 다소 지친 기색을 보였고, 반면 프레드 트럼프는 2살이 더 많았음에도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대중의 분노 표심을 단숨에 흡수했다.&lt;br /&gt;
&lt;br /&gt;
개표 결과, &#039;&#039;&#039;득표율 48.8% 대 49.6%(0.8%p 차), 선거인단 226표 대 312표&#039;&#039;&#039;로 프레드 트럼프에게 정권 탈환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긴축 정책으로 타격을 입었던 [[미국|오하이오]], [[미국|펜실베이니아]], [[미국|미시간]] 등 핵심 러스트 벨트 스윙스테이트를 접전으로 빼앗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로써 스타센은 단임으로 백악관을 떠나게 되었고, 프레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징검다리 재선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스타센은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한 뒤, 1985년 1월 20일 정권을 이양하고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마무리하며 [[미국|미네소타]]로 완전히 귀향했다.&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A%B2%8C%EB%A6%AC_%EC%BF%A0%ED%8D%BC_(%ED%94%84%EB%9F%B0%ED%8B%B0%EC%96%B4)&amp;diff=181555</id>
		<title>게리 쿠퍼 (프런티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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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13T13:32:2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lt;/p&gt;
&lt;hr /&gt;
&lt;div&gt;{{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33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게리 쿠퍼}}&amp;lt;br&amp;gt;Gary Coop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프랭크 제임스 쿠퍼&amp;lt;br&amp;gt;Frank James Cooper&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1년]] [[5월 7일]]&lt;br /&gt;
|-&lt;br /&gt;
| [[미국|미국 몬태나 주 헬레나]]&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1961년]] [[5월 13일]] (향년 60세)&lt;br /&gt;
|-&lt;br /&gt;
| [[미국|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묘소&lt;br /&gt;
| 프랭크 제임스 쿠퍼 국립사적지 묘지&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41년]] [[1월 20일]] ~ [[1949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Gary Cooper signature.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Gary_Coope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 cursor:pointer;&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Gary_Coope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찰스 쿠퍼&amp;lt;sup&amp;gt;(1865. 9. 15 ~ 1946. 9. 18.)&amp;lt;/sup&amp;gt;&amp;lt;br&amp;gt;어머니 앨리스 쿠퍼&amp;lt;sup&amp;gt;(1873. 10. 10. ~ 1967. 10. 6)&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베로니카 쿠퍼&amp;lt;sup&amp;gt;(1913. 5. 27. ~ 2000. 2. 16, 1933년 결혼)&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딸 마리아 쿠퍼&amp;lt;sup&amp;gt;(1937년 9월 15일 ~ )&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프린스턴 대학교]] &amp;lt;small&amp;gt;([[정치철학]], [[사학]] / [[학사]])&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성공회]] → [[가톨릭]]&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의원 선수&lt;br /&gt;
| &#039;&#039;&#039;1&#039;&#039;&#039; (상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의원 대수&lt;br /&gt;
| &#039;&#039;&#039;75&#039;&#039;&#039;&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33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lt;br /&gt;
역대 최연소의 나이에 당선되고,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취임한 미국 대통령이자, 최초의 [[20세기]] 출생 대통령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3명의 [[프린스턴 대학교]] 출신 미국 대통령 중 한 명이자, [[에이브러햄 링컨]] 등과 함께 [[미국 공화당]]을 대표하는 존재이자 강하게 지지 받는 정치인으로, 미국 보수층과 공화당 지지자들의 정신적 지주에 그접한 대통령이다.&lt;br /&gt;
==약력==&lt;br /&gt;
* 1924. 주이탈리아 미국대사관 3등 서기관&lt;br /&gt;
* 1926. 주프랑스 미국대사관 2등 서기관&lt;br /&gt;
* 1928. 주영국 미국대사관 1등 서기관&lt;br /&gt;
* 1936. 제75대 미국 연방 상원의원 당선 (몬태나주, 공화당)&lt;br /&gt;
* 1941.1. &#039;&#039;&#039;제33대 [[미국 대통령|미국 대통령]]&#039;&#039;&#039;&lt;br /&gt;
==생애==&lt;br /&gt;
[[미국|미국 몬태나주]] 헬레나에서 1901년 5월 7일에 태어났다. 본명은 프랭크 제임스 쿠퍼.&lt;br /&gt;
&lt;br /&gt;
부모님은 [[잉글랜드]] 이민자 출신으로 헬레나 외곽에 600에이커, 즉 70만 평이 넘는 대농장을 소유하고 있어서 자연스레 어려서부터 형 아서와 어울리며 승마와 카우보이 기술을 터득할 수 있었다. 아버지 찰스 쿠퍼는 몬태나주 대법원 판사로 복무한 법조인이었다.&lt;br /&gt;
&lt;br /&gt;
자식들이 자신들의 뿌리인 [[영국 (동음이의)|영국 문화]]를 익히길 원했던 어머니 앨리스 쿠퍼의 주도로 초등학생 시절 형과 함께 [[영국 (동음이의)|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이때 학교에서 [[프랑스|프랑스어]]를 익혔다. 같은 시기에 [[라틴 문자|라틴어]]도 수학했다. 1912년 귀국해 헬레나로 복학했으며, 이후 몬태나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lt;br /&gt;
&lt;br /&gt;
졸업 후 1919년 뉴저지주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했다. 전공은 [[우드로 윌슨]]과 함께 [[정치철학]], [[사학]]으로, 재학 중 국제법·외교사·정치철학 분야에서 우수한 성취를 보였으며, 교내 토론 클럽과 웅변 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1923년 우등 졸업한다.&lt;br /&gt;
===외교관===&lt;br /&gt;
대학교 졸업 직후 [[미국 (동음이의)|미국 국무부]]에 합류해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초임지는 [[이탈리아|이탈리아 로마]]였으며, 이후 [[프랑스|프랑스 파리]], [[영국 (동음이의)|영국 런던]]을 순차적으로 거쳤다. 외교관으로 생활하며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라틴어 역시 문서 독해 수준으로 활용했다. 발음은 프랑스 현지인들도 만족하는 수준이었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로마 근무 시절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공고화되는 과정을 현장에서 목격했으며, 파리 근무 시절에는 [[독일|바이마르 공화국]]의 불안정과 프랑스의 대독 유화 기조를 관찰했다. 런던 근무 시절에는 [[영국 (동음이의)|영국 외무부]] 관계자들과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 당시, 쿠퍼는 국무부 내에서 유럽 정세 분석 보고서로 상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1930년대 들어서는 에티오피아 위기, 라인란트 재무장, 스페인 내전 등 유럽의 연쇄적 위기 상황에 관한 분석으로 워싱턴 정가에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1937년 이후 [[일본]]의 [[중국]] 침략이 가시화되면서 국무부 내 태평양 담당 라인과도 긴밀히 협력했다. 이 무렵 쿠퍼는 국무부 내에서 유럽과 태평양 양쪽 정세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외교관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lt;br /&gt;
===정계 입문과 대선 출마===&lt;br /&gt;
한편 1934년 [[미국|몬태나]]로 일시 귀환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1936년 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039;&#039;&#039;이는 엄청난 이변이었는데, 당시 루스벨트의 뉴딜 지지층이 두터웠던 몬태나에서 공화당 후보가 승리한 것은 충격적인 결과&#039;&#039;&#039;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외교관 경력이 본업이었던 만큼 상원의원으로서의 활동은 주로 외교위원회에 집중되었으며, 세입위원회에서도 재정 보수주의 노선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유럽 정세에 관해 당내 고립주의 강경파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독자적 노선을 취했으며, &amp;quot;미국의 지속적 무관심은 결국 더 큰 개입을 불러올 것&amp;quot;이라는 논지를 반복적으로 제기했다.&lt;br /&gt;
&lt;br /&gt;
이후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은 뚜렷한 선두 주자 없이 혼전 양상으로 시작되었는데,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된 것은 뉴욕 검사장 출신의 [[토머스 E. 듀이]]였다. 듀이는 검사 시절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미국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 유죄 판결로 이끌며 &#039;&#039;&#039;&amp;quot;갱버스터&amp;quot;&#039;&#039;&#039;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명사가 된 인물로, 1938년 뉴욕 주지사 선거에서 현직 허버트 레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한 선전이 오히려 1940년 경선 유력 주자로 부상하는 발판이 되었다.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로버트 A. 태프트]]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듀이의 대항마로 부상했다. 태프트는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중서부와 남부 공화당 조직을 공략했다.&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600px; margin-left: auto; margin-right:auto;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center;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padding: 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display: block; overflow: hidden;&amp;quot;&amp;gt;[[파일:쿠퍼 선출.png|600px|style=display:block; width:100%; height:auto;&amp;quo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쿠퍼 역시 경선 초반부터 이 두 후보와 함께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되었다. 1936년 상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38년 [[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 언론에 반복 보도되면서 &amp;quot;외교 전문 상원의원&amp;quot;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외교관·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과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가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 (프런티어)|아서 반덴버그]] 역시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유지했다.&lt;br /&gt;
&lt;br /&gt;
당시 쿠퍼는 스스로를 고립주의자와 관여론자 사이 어딘가에 위치시키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유럽 현장을 직접 경험한 외교관 출신으로서 위기의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미국의 직접적 군사 개입에는 여전히 유보적 입장을 견지했다. 이러한 쿠퍼의 성향은 완전한 고립주의를 고수하는 태프트 계열과도, 적극적 관여론을 주장하는 동부 국제파와도 구별되는 것으로, 오히려 당내 폭넓은 계파를 아우를 수 있는 유연한 입지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이로 인해 전당대회 당시 듀이와 태프트, 쿠퍼의 3강 구도라는 흐름이 이어졌으나, 6월 [[미국|필라델피아]] 전당대회에서 양상이 급변했다. 1차 투표에서 듀이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 미치지 못했고, 2·3차 투표에서도 3명의 후보가 팽팽히 맞서며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4차 투표부터 각 후보의 지지 대의원들이 이탈하기 시작하면서 절충 후보 물색 움직임이 가시화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부상했다.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쿠퍼 지지 움직임이 급격히 확산되었고, 4차 투표에서 쿠퍼가 태프트를 제치고 1위로. 이후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으며, 러닝메이트로는 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를 지명했다. 당내 고립주의파를 달래는 동시에 중서부 대형주의 표심을 잡기 위한 인선으로, 반덴버그의 중서부 기반이 쿠퍼의 서부 지역기반을 보완하는 지역 균형 인선이기도 했다.&lt;br /&gt;
&lt;br /&gt;
본선 상대는 [[민주당]]의 [[웬델 윌키 (프런티어)|웬델 윌키]]였다. 윌키는 원래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루스벨트가 3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민주당 내 루스벨트 색채가 옅어지자 유력 대선 후보군으로도 불리운다.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부상했고,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지명되었다. 러닝메이트는 [[미국|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였다. 남부 수성을 노린 인선이었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lt;br /&gt;
&lt;br /&gt;
선거 운동 과정에서 두 후보의 노선 차이는 생각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윌키가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반면, 쿠퍼는 미국의 직접 개입에는 신중하되 유럽 정세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인식하는 &#039;&#039;&#039;&amp;quot;조건부 관여론자&amp;quot;&#039;&#039;&#039;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했다. 쿠퍼 캠프는 &amp;quot;무분별한 개입도, 무책임한 방관도 아닌 냉철한 현실 판단&amp;quot;을 선거 전략으로 내세우며 고립주의 강경파와 관여론자 양쪽의 표심을 동시에 공략하는 전략을 택했다. 내정에서는 뉴딜로 인한 연방 재정 팽창 비판, 연방 권한의 주 환원, 소기업·농장주 보호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선거 운동이 본격화되던 1940년 여름, 유럽 전황이 결정적인 변수로 부상했다. 5월 [[독일]]의 [[프랑스|프랑스 함락]]에 이어 [[영국]] 본토 항공전이 전개되면서 전쟁이 대서양 건너 현실로 다가온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두 후보의 외교·안보 역량 비교로 쏠렸다. 유럽 현장에서 직접 외교 실무를 수행하며 이 위기의 본질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쿠퍼와 기업인 출신의 윌키 사이에서, &amp;quot;이 위기를 누가 더 현실적으로 다룰 수 있는가&amp;quot;라는 질문은 쿠퍼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구도를 만들어냈다. 쿠퍼 캠프는 이를 최대한 활용해 외교관 경력과 유럽 현장 경험을 선거 후반 운동의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으로 전환했다.&lt;br /&gt;
&lt;br /&gt;
여기에 민주당 내부 분열이 겹쳤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구심력을 잃은 민주당은 전당대회 과정에서부터 계파 간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뉴욕 기반의 자유주의자인 윌키에 대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 사이에서 뚜렷한 거부감이 형성되었으며, 루스벨트 열성 지지층 일부도 FDR의 후계자로서 윌키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이미 균열이 시작된 민주당 연합은 본선에서도 봉합되지 않았으며, 경합주인 텍사스, 테네시, 켄터키에서의 민주당 투표율 저하로 이어졌다.&lt;br /&gt;
&lt;br /&gt;
한편 쿠퍼의 외모 역시 선거 과정에서 적잖은 화제가 되었다. 190cm에 달하는 장신에 단정한 외모를 갖춘 쿠퍼는 유세 현장에서 군중의 시선을 압도했으며, 특히 여성 유권자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당시 언론에서는 [[워런 G. 하딩]] 이후 가장 &amp;quot;대통령답게 생긴&amp;quot; 후보라는 평가가 잇따랐으며, 외교관 출신 특유의 절제된 언행과 차분한 카리스마가 더해지면서 &amp;quot;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amp;quot;라는 이미지가 유권자들에게 효과적으로 각인되었다. 유세 현장에서 쿠퍼가 등장할 때마다 군중이 몰리는 현상이 반복되었고, 일부 유세지에서는 행사 정원을 크게 초과하는 인파가 집결해 경호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결국 선거 결과, 쿠퍼의 압도적 대승이었다. &#039;&#039;&#039;득표율 60.8% 대 38.7%, 선거인단 452 대 79로 쿠퍼가 윌키를 압도적으로 이겼다.&#039;&#039;&#039; 뉴잉글랜드, 중부 대서양, 중서부, 서부 전역을 석권했으 경합주인 켄터키·테네시·버지니아·텍사스에서도 쿠퍼가 우세를 점했다. 윌키는 앨라배마·미시시피·사우스캐롤라이나·루이지애나·조지아·아칸소·플로리다·노스캐롤라이나 등 딥 사우스 8개 주만 겨우 지켜냈다. 민주당으로서는 1920년 이후 최악의 선거 참패로 기록되었으며, 루스벨트 없는 민주당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선거로 평가받는다.&lt;br /&gt;
===대통령 재임===&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600px; margin-left: auto; margin-right:auto;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center;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padding: 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display: block; overflow: hidden;&amp;quot;&amp;gt;[[파일:쿠퍼와 루즈벨트 (프런티어).png|600px|style=display:block; width:100%; height:auto;&amp;quo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대통령이 된 후 쿠퍼가 펼친 정책은 크게 세 축으로 요약되는데, 연방 지출 축소와 감세, 태평양 우선 원칙에 입각한 전시 전략, 그리고 전후 세력권 협상에서의 냉철한 현실주의이다.&lt;br /&gt;
&lt;br /&gt;
취임 직후 [[게리 쿠퍼 행정부 (프런티어)|쿠퍼 행정부]]는 [[뉴딜]] 체제에서 팽창한 연방 관료제의 점진적 축소에 착수했다. 일부 공공사업 프로그램의 규모를 줄이고 연방 기관 통폐합을 추진했으며, 중소기업과 농장주에 대한 규제 완화를 병행했다. 뉴딜을 &amp;quot;미국적 자립 정신의 침식&amp;quot;으로 규정한 그의 선거 공약이 실제 행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다만 농업 보조금과 핵심 인프라 예산만큼은 현실적 이유로 유지했으며, [[진주만 공습]] 이후에는 전시 예산 편성이 불가피해지면서 재정 긴축 기조는 사실상 후순위로 밀렸다.&lt;br /&gt;
&lt;br /&gt;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쿠퍼 행정부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는데, 쿠퍼는 이튿날 의회에 대일 선전포고를 요청했고, 독일과 이탈리아의 선전포고에 맞대응해 유럽 참전도 결정했다. 쿠퍼는 전쟁 수행의 기본 전략으로 태평양 우선 원칙을 채택했다. 유럽은 영국과 소련이 지상에서 버티는 동안 미국은 물자 지원과 제공권 확보에 집중하고, 주력 전투력은 태평양에 투입한다는 구도였다. [[윈스턴 처칠|처칠]]은 이 결정에 격렬히 반발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조기 실현을 강하게 요구했으나, 쿠퍼는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미국이 결정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0세기를 풍미한 두 거목이 전시라는 공동 목표 아래 협력하면서도 끝내 완전히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는 않았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소련]]과의 관계에서 쿠퍼의 반공주의 성향으로, 독일 격퇴라는 공동 목표 하에 소련에 대한 무기대여법 지원은 유지했으나 명시적인 조건을 달았다. 지원의 대가로 전후 동유럽 처리 문제와 소련군의 진격 범위에 관한 사전 협의를 요구했으며, [[이오시프 스탈린]]은 물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일정 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쿠퍼는 스탈린을 두고 측근들에게 &amp;quot;[[아돌프 히틀러]]와 다른 방식으로 위험한 인물&amp;quot;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으로 전해지며, 회담 자리에서도 개인적 친밀감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실무적 협상에만 집중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600px; margin-left: auto; margin-right:auto;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center;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padding: 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display: block; overflow: hidden;&amp;quot;&amp;gt;[[파일:쿠퍼 싸인.png|600px|style=display:block; width:100%; height:auto;&amp;quo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44년 대통령 선거]]에서 쿠퍼는 &#039;&#039;&#039;득표율 61.9%를 기록하며 압도적으로 재선에 성공&#039;&#039;&#039;했다. 전시 대통령 프리미엄과 태평양 전선에서의 연이은 승전보가 맞물린 결과였는데, 민주당은 이번에도 유력한 대항마를 내세우지 못했으며, &amp;quot;전쟁을 이기고 있는 대통령을 바꿀 이유가 없다&amp;quot;는 유권자 심리가 지배적이었다. 쿠퍼는 미국 역사상 전시 재선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lt;br /&gt;
&lt;br /&gt;
재선 임기 중 1945년 [[독일]]의 항복과 [[일본]]의 항복을 연이어 맞이하며 전쟁을 종전으로 이끌었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쿠퍼의 현실주의 외교는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동유럽 일부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을 묵시적으로 인정하되 그 범위를 [[폴란드]] 동부·[[루마니아]]·[[불가리아]] 수준으로 제한하려 했다. 태평양에서는 소련의 대일 참전 요청을 제한적으로만 수용함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는 데 일정 부분 성공했다.&lt;br /&gt;
&lt;br /&gt;
==평가==&lt;br /&gt;
===긍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쿠퍼는 내가 협상 테이블에서 마주한 인물 중 가장 조용하고 가장 위험한 사람이었다. 말수가 적었다. 그러나 한번 선을 그으면 어떤 힘으로도 그것을 움직일 수 없었다.|[[영국|윈스턴 처칠]], 《The Hinge of Fate》}}&lt;br /&gt;
{{인용문|쿠퍼의 뒤를 잇는 것은 명장이 지은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모든 것이 견고했다. 단 하나의 문제는 그것이 내 집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내 집으로 만드는 데 4년이 걸렸다.|1957년, [[미국|토마스 E. 듀이]]}}&lt;br /&gt;
{{인용문|쿠퍼와 나는 셀 수 없이 많이 전략에 대해 의견이 달랐다. 그는 몇 가지에서 틀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에서 옳았다. 태평양이 미국의 미래가 결정될 곳이라는 것. 역사가 그가 옳았음을 증명했다.|[[미국|더글라스 맥아더]], 《Reminiscences》}}&lt;br /&gt;
&#039;&#039;&#039;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 중 한 명&#039;&#039;&#039;이다. 퇴임 후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각종 대통령 평가 설문에서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과 함께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대통령이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특히 이례적이다. 그나마 진보 진영에서도 노골적으로 까기가 어려운 대통령이라는 점이 쿠퍼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보수층과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정신적 지주 취급을 받으며, 21세기 현재도 공화당은 쿠퍼 행정부를 계승하는 정당임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다.&lt;br /&gt;
&lt;br /&gt;
외교 분야에서의 평가가 특히 높다. 외교관 출신 대통령답게 전시 외교 무대에서 [[윈스턴 처칠]]과 [[레프 트로츠키]]를 상대로 [[미국]]의 국익을 최대한 뽑아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소련]]의 대일 참전을 제한적으로만 허용해 [[한반도]]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한 것은, 이 결정 하나로 한반도의 운명 자체가 바뀌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lt;br /&gt;
&lt;br /&gt;
전후 유럽 재건 과정에서도 쿠퍼만의 색깔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전쟁 중에는 유럽 지상군 투입을 최소화했던 쿠퍼가 전후에는 대규모 경제 지원을 통해 [[유럽]]을 미국 중심의 서방 질서에 묶어두는 전략을 택한 것인데,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접근이었다. 집단안보체제 구축에서도 유럽에 미군을 영구 주둔시키는 것에는 신중했으나 소련의 서유럽 진출을 막기 위한 방위조약 체결에는 적극적이었고, 그 결과 탄생한 대서양 집단안보체제는 강력한 군사동맹보다는 [[미국]]·[[영국]]·[[프랑스]] 중심의 제한적 방위조약 성격이 강했다.&lt;br /&gt;
&lt;br /&gt;
전시 경제 운영 방식도 높이 평가받는다. [[루스벨트]]식 국가주도 경제와는 달리 쿠퍼는 민간기업과 군수산업의 생산력을 동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쟁 수행을 위한 정부 지출은 과감하게 늘렸지만 그 돈이 흘러가는 방식은 민간기업을 통하도록 설계한 것인데, 이 덕분에 전시 생산량이 빠르게 증가했고 전쟁이 끝난 후 군수산업을 민간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도 비교적 순탄하게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뉴딜]]식 국가주도 경제체제로의 영구 전환을 거부하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비상경제 체제를 정상화했다는 점에서 재정 보수주의자로서의 원칙을 끝까지 지켰다는 평가를 받는다.&lt;br /&gt;
&lt;br /&gt;
군 지휘관들과의 관계에서도 쿠퍼의 스타일이 잘 드러난다.[[더글라스 맥아더]], [[조지 C. 마셜]] 등에게 작전상 상당한 자율성을 부여하면서도 전략적 목표와 병력 배치의 최종 결정권은 대통령이 쥔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맥아더가 특유의 독단적 스타일로 대통령의 방침을 넘어서려 했을 때 이를 단호하게 제어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lt;br /&gt;
===부정적 평가===&lt;br /&gt;
솔직히 부정적 평가가 많지 않은 대통령이다. 그나마 가장 자주 거론되는 비판은 유럽 지상군 투입 최소화 결정이다. 태평양 우선 원칙을 밀어붙인 결과 유럽 전선이 불필요하게 길어졌다는 시각이 일부 역사가들 사이에서 제기되며, [[윈스턴 처칠]]과의 갈등을 자초하면서 영미 동맹 관계에 균열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다만 이 결정이 결과적으로 태평양 전선의 조기 종결에 기여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서, 비판으로서의 설득력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다.&lt;br /&gt;
&lt;br /&gt;
일부 진보 성향 역사가들은 뉴딜 축소 기조가 취약 계층 보호망을 약화시켰다는 점을 지적하지만, 전시라는 특수 상황과 압도적인 국민적 지지를 고려할 때 이 비판이 주류 역사 평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amp;quot;그래도 단점을 찾아야 하니까 찾는&amp;quot; 수준의 비판에 가깝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lt;br /&gt;
==당대 각국 정상들과의 관계==&lt;br /&gt;
===윈스턴 처칠===&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600px; margin-left: auto; margin-right:auto;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center;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padding: 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line-height: 0; overflow: hidden;&amp;quot;&amp;gt;[[파일:쿠퍼 처칠.png|6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전시 동맹국 수장이라는 구조상 긴밀하게 협력할 수 밖에 없었지만, 두 사람이 진심으로 죽이 맞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lt;br /&gt;
&lt;br /&gt;
[[윈스턴 처칠|처칠]]은 특유의 과장된 화법으로 쿠퍼와의 관계를 여러 자리에서 친밀하게 묘사한 반면, 쿠퍼는 처칠에 대해 공개적으로 특별한 감정을 표현한 적이 거의 없었으며, 측근들의 회고에 의하면 쿠퍼는 처칠에 대해 탁월한 전략가라고 평했으나 언제나 [[영국]]으로 귀결된다는 평을 동시에 낸 것으로 전해졌다. &lt;br /&gt;
&lt;br /&gt;
실제로 두 사람의 충돌은 재임 기간 내내 반복되었는데, 가장 큰 갈등 지점은 쿠퍼의 [[태평양]] 우선 전략이었다. 쿠퍼가 [[유럽]] 지상군 투입 최소화 방심을 고수하자 처칠은 격렬하게 반발하며 &amp;quot;미국이 유럽을 버렸다&amp;quot;는 표현가지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고, 쿠퍼는 이에 대해서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미국이 결정한다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후 식민지 질서 문제에서도 영국의 제국적 이해관계를 노골적으로 관철하려는 처칠의 입장과 반복적으로 마찰을 빚었다. [[샤를 드골]] 뮨제에서도 의견이 갈렸는데, 처칠이 드골을 [[프랑스|자유 프랑스]]의 유일한 합법적 지도자로 전폭적으로 지지한 반면, 쿠퍼는 드골의 권위주의적 기질을 경계하며 처칠과 다른 입장을 취했다.&lt;br /&gt;
===레프 트로츠키===&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600px; margin-left: auto; margin-right:auto;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center;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padding: 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line-height: 0; overflow: hidden;&amp;quot;&amp;gt;[[파일:트로츠키-쿠퍼-처칠.png|6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둘의 관계는 &#039;&#039;&#039;거래 가능한 적대&#039;&#039;&#039;였다. 이념적으로 정반대였고 전략적으로도 충돌했지만, [[독일]]이라는 공동의 적이 존재하는 동안 최소한의 협력을 유지해야 했다.&lt;br /&gt;
&lt;br /&gt;
쿠퍼는 외교관 시절 유럽에서 소련의 팽창을 직접 목격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레프 트로츠키|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을 단순하 이념이 아니라 실질적인 안보 위협으로 규정했다.&lt;br /&gt;
&lt;br /&gt;
1943년 11월, [[테헤란 회담 (프런티어)|테헤란 회담]]에서 처음 대면한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악수를 나누는 순간부터 싸늘했다고 전해지는데, 트로츠키는 특유의 날카로운 화법으로 먼저 [[미국]]의 [[태평양]] 우선 전략을 비판했고, 쿠퍼는 짧게 받아친 것으로 알려졌다. 회다메 배석했던 미국 측 참모의 회고록에 의하면 쿠퍼는 트로츠키와의 첫 만남 직후 &amp;quot;예상했던 것보다 더 위험한 인물&amp;quot;이라는 짧은 평가를 남겼다고 한다. 트로츠키 역시 쿠퍼를 단순한 자본주의 정치인으로 보지 않았다. 소련 측 외교 문서에 따르면 트로츠키는 귀국 후 &amp;quot;쿠퍼는 설득하기 어려운 정치인이었다. 거래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amp;quot;는 평가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lt;br /&gt;
&lt;br /&gt;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내 협력도 화해도 아닌, 서로를 정확히 파악한 채 거리를 두는 냉랭한 대립으로 요약된다. 쿠퍼와 트로츠키의 관계는 전후에도 봉학되지 않았고, 이후 [[냉전]]의 출발점이 되었다.&lt;br /&gt;
==기타==&lt;br /&gt;
* &#039;&#039;&#039;&#039;가장 미국적인 미남&#039;&#039;&#039;&#039;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할리우드를 뛰어 넘는 외모의 대표적인 미남 정치인이었다.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사석에서 쿠퍼를 가리켜 &amp;quot;만약 제가 치른 대통령 선거에 그 친구가 나왔다면 여지없이 패하고 말았을 겁니다. 그렇게 생긴 친구는 생전 처음 봤어요. 그리고 그 웃음은 또 뭐라고 표현해야 합니까? 아마 여자 유권자들에게 몰표를 얻었겠죠&amp;quot;라고 평가했다고 한다.&lt;br /&gt;
* 쿠퍼의 외모가 선거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당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191cm의 장신에 조각 같은 외모를 갖춘 쿠퍼는 유세 현장마다 인파가 몰렸는데, 특히 여성 유권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당시 한 신문 기자가 쿠퍼의 유세 현장을 취재하면서 &amp;quot;이 사람이 대통령 후보인지 영화배우인지 모르겠다&amp;quot;고 적었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 [[워런 G. 하딩]] 이후 외모가 선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례로 자주 거론되며, 정치학계에서는 쿠퍼의 사례를 후보자 이미지와 선거 결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데 즐겨 인용한다.&lt;br /&gt;
* [[미국 공화당|공화당]] 정치인들 사이에서 쿠퍼의 인기는 거의 전설적인 수준이다. [[배리 골드워터 (프런티어)|배리 골드워터]] 역시 쿠퍼를 공화당 보수주의의 원형으로 자주 언급했고, [[밥 돌 (프런티어)|밥 돌]]도 선거 운동 과정에서 쿠퍼를 언급하며 &amp;quot;쿠퍼 같은 대통령이 다시 나와야 한다&amp;quot;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lt;br /&gt;
* 신장이 191cm로 역대 대통령 중 3번째로 장신이다. [[미국]]의 경우 대중에게 공개되는 인물들에 대한 태도가 평균적으로 무조건 키가 클수록 좋다는 선입견이 심하다.&lt;br /&gt;
&lt;br /&gt;
==선거 이력==&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border: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연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종류&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구&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득표수 (득표율, 선거인단 수)&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 여부&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비고&lt;br /&gt;
|-&lt;br /&gt;
| 1936&lt;br /&gt;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lt;br /&gt;
| [[미국|몬태나]]&lt;br /&gt;
| rowspan=&amp;quot;3&amp;quot; | {{공화당 (미국)}}&lt;br /&gt;
| &#039;&#039;&#039;n (n.n%)&#039;&#039;&#039;&lt;br /&gt;
| rowspan=&amp;quot;3&amp;quot; | &#039;&#039;&#039;당선 (1위)&#039;&#039;&#039;&lt;br /&gt;
| &#039;&#039;&#039;초선&#039;&#039;&#039;&lt;br /&gt;
|-&lt;br /&gt;
| 1940&lt;br /&gt;
|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미합중국]]&lt;br /&gt;
| &#039;&#039;&#039;30,332,082 (60.78%, 452명)&#039;&#039;&#039;&lt;br /&gt;
| &#039;&#039;&#039;초선&#039;&#039;&#039;&lt;br /&gt;
|-&lt;br /&gt;
| 1944&lt;br /&gt;
| [[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미합중국]]&lt;br /&gt;
| &#039;&#039;&#039;29,694,259 (61.89%, 498명)&#039;&#039;&#039;&lt;br /&gt;
| &#039;&#039;&#039;재선&#039;&#039;&#039;&lt;br /&gt;
|-&lt;br /&gt;
|}&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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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게리 쿠퍼 (프런티어)</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A%B2%8C%EB%A6%AC_%EC%BF%A0%ED%8D%BC_(%ED%94%84%EB%9F%B0%ED%8B%B0%EC%96%B4)&amp;diff=181554"/>
		<updated>2026-08-13T13:30:2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lt;/p&gt;
&lt;hr /&gt;
&lt;div&gt;{{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33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게리 쿠퍼}}&amp;lt;br&amp;gt;Gary Coop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프랭크 제임스 쿠퍼&amp;lt;br&amp;gt;Frank James Cooper&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1년]] [[5월 7일]]&lt;br /&gt;
|-&lt;br /&gt;
| [[미국|미국 몬태나 주 헬레나]]&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1961년]] [[5월 13일]] (향년 60세)&lt;br /&gt;
|-&lt;br /&gt;
| [[미국|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묘소&lt;br /&gt;
| 프랭크 제임스 쿠퍼 국립사적지 묘지&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41년]] [[1월 20일]] ~ [[1949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Gary Cooper signature.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Gary_Coope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 cursor:pointer;&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Gary_Coope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찰스 쿠퍼&amp;lt;sup&amp;gt;(1865. 9. 15 ~ 1946. 9. 18.)&amp;lt;/sup&amp;gt;&amp;lt;br&amp;gt;어머니 앨리스 쿠퍼&amp;lt;sup&amp;gt;(1873. 10. 10. ~ 1967. 10. 6)&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베로니카 쿠퍼&amp;lt;sup&amp;gt;(1913. 5. 27. ~ 2000. 2. 16, 1933년 결혼)&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딸 마리아 쿠퍼&amp;lt;sup&amp;gt;(1937년 9월 15일 ~ )&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프린스턴 대학교]] &amp;lt;small&amp;gt;([[정치철학]], [[사학]] / [[학사]])&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성공회]] → [[가톨릭]]&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의원 선수&lt;br /&gt;
| &#039;&#039;&#039;1&#039;&#039;&#039; (상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의원 대수&lt;br /&gt;
| &#039;&#039;&#039;75&#039;&#039;&#039;&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33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lt;br /&gt;
역대 최연소의 나이에 당선되고,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취임한 미국 대통령이자, 최초의 [[20세기]] 출생 대통령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3명의 [[프린스턴 대학교]] 출신 미국 대통령 중 한 명이자, [[에이브러햄 링컨]] 등과 함께 [[미국 공화당]]을 대표하는 존재이자 강하게 지지 받는 정치인으로, 미국 보수층과 공화당 지지자들의 정신적 지주에 그접한 대통령이다.&lt;br /&gt;
==약력==&lt;br /&gt;
* 1924. 주이탈리아 미국대사관 3등 서기관&lt;br /&gt;
* 1926. 주프랑스 미국대사관 2등 서기관&lt;br /&gt;
* 1928. 주영국 미국대사관 1등 서기관&lt;br /&gt;
* 1936. 제75대 미국 연방 상원의원 당선 (몬태나주, 공화당)&lt;br /&gt;
* 1941.1. &#039;&#039;&#039;제33대 [[미국 대통령|미국 대통령]]&#039;&#039;&#039;&lt;br /&gt;
==생애==&lt;br /&gt;
[[미국|미국 몬태나주]] 헬레나에서 1901년 5월 7일에 태어났다. 본명은 프랭크 제임스 쿠퍼.&lt;br /&gt;
&lt;br /&gt;
부모님은 [[잉글랜드]] 이민자 출신으로 헬레나 외곽에 600에이커, 즉 70만 평이 넘는 대농장을 소유하고 있어서 자연스레 어려서부터 형 아서와 어울리며 승마와 카우보이 기술을 터득할 수 있었다. 아버지 찰스 쿠퍼는 몬태나주 대법원 판사로 복무한 법조인이었다.&lt;br /&gt;
&lt;br /&gt;
자식들이 자신들의 뿌리인 [[영국 (동음이의)|영국 문화]]를 익히길 원했던 어머니 앨리스 쿠퍼의 주도로 초등학생 시절 형과 함께 [[영국 (동음이의)|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이때 학교에서 [[프랑스|프랑스어]]를 익혔다. 같은 시기에 [[라틴 문자|라틴어]]도 수학했다. 1912년 귀국해 헬레나로 복학했으며, 이후 몬태나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lt;br /&gt;
&lt;br /&gt;
졸업 후 1919년 뉴저지주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했다. 전공은 [[우드로 윌슨]]과 함께 [[정치철학]], [[사학]]으로, 재학 중 국제법·외교사·정치철학 분야에서 우수한 성취를 보였으며, 교내 토론 클럽과 웅변 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1923년 우등 졸업한다.&lt;br /&gt;
===외교관===&lt;br /&gt;
대학교 졸업 직후 [[미국 (동음이의)|미국 국무부]]에 합류해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초임지는 [[이탈리아|이탈리아 로마]]였으며, 이후 [[프랑스|프랑스 파리]], [[영국 (동음이의)|영국 런던]]을 순차적으로 거쳤다. 외교관으로 생활하며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라틴어 역시 문서 독해 수준으로 활용했다. 발음은 프랑스 현지인들도 만족하는 수준이었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로마 근무 시절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공고화되는 과정을 현장에서 목격했으며, 파리 근무 시절에는 [[독일|바이마르 공화국]]의 불안정과 프랑스의 대독 유화 기조를 관찰했다. 런던 근무 시절에는 [[영국 (동음이의)|영국 외무부]] 관계자들과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 당시, 쿠퍼는 국무부 내에서 유럽 정세 분석 보고서로 상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1930년대 들어서는 에티오피아 위기, 라인란트 재무장, 스페인 내전 등 유럽의 연쇄적 위기 상황에 관한 분석으로 워싱턴 정가에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1937년 이후 [[일본]]의 [[중국]] 침략이 가시화되면서 국무부 내 태평양 담당 라인과도 긴밀히 협력했다. 이 무렵 쿠퍼는 국무부 내에서 유럽과 태평양 양쪽 정세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외교관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lt;br /&gt;
===정계 입문과 대선 출마===&lt;br /&gt;
한편 1934년 [[미국|몬태나]]로 일시 귀환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1936년 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039;&#039;&#039;이는 엄청난 이변이었는데, 당시 루스벨트의 뉴딜 지지층이 두터웠던 몬태나에서 공화당 후보가 승리한 것은 충격적인 결과&#039;&#039;&#039;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외교관 경력이 본업이었던 만큼 상원의원으로서의 활동은 주로 외교위원회에 집중되었으며, 세입위원회에서도 재정 보수주의 노선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유럽 정세에 관해 당내 고립주의 강경파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독자적 노선을 취했으며, &amp;quot;미국의 지속적 무관심은 결국 더 큰 개입을 불러올 것&amp;quot;이라는 논지를 반복적으로 제기했다.&lt;br /&gt;
&lt;br /&gt;
이후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은 뚜렷한 선두 주자 없이 혼전 양상으로 시작되었는데,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된 것은 뉴욕 검사장 출신의 [[토머스 E. 듀이]]였다. 듀이는 검사 시절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미국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 유죄 판결로 이끌며 &#039;&#039;&#039;&amp;quot;갱버스터&amp;quot;&#039;&#039;&#039;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명사가 된 인물로, 1938년 뉴욕 주지사 선거에서 현직 허버트 레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한 선전이 오히려 1940년 경선 유력 주자로 부상하는 발판이 되었다.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로버트 A. 태프트]]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듀이의 대항마로 부상했다. 태프트는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중서부와 남부 공화당 조직을 공략했다.&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600px; margin-left: auto; margin-right:auto;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center;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padding: 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display: block; overflow: hidden;&amp;quot;&amp;gt;[[파일:쿠퍼 선출.png|600px|style=display:block; width:100%; height:auto;&amp;quo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쿠퍼 역시 경선 초반부터 이 두 후보와 함께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되었다. 1936년 상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38년 [[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 언론에 반복 보도되면서 &amp;quot;외교 전문 상원의원&amp;quot;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외교관·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과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가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 (프런티어)|아서 반덴버그]] 역시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유지했다.&lt;br /&gt;
&lt;br /&gt;
당시 쿠퍼는 스스로를 고립주의자와 관여론자 사이 어딘가에 위치시키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유럽 현장을 직접 경험한 외교관 출신으로서 위기의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미국의 직접적 군사 개입에는 여전히 유보적 입장을 견지했다. 이러한 쿠퍼의 성향은 완전한 고립주의를 고수하는 태프트 계열과도, 적극적 관여론을 주장하는 동부 국제파와도 구별되는 것으로, 오히려 당내 폭넓은 계파를 아우를 수 있는 유연한 입지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이로 인해 전당대회 당시 듀이와 태프트, 쿠퍼의 3강 구도라는 흐름이 이어졌으나, 6월 [[미국|필라델피아]] 전당대회에서 양상이 급변했다. 1차 투표에서 듀이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 미치지 못했고, 2·3차 투표에서도 3명의 후보가 팽팽히 맞서며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4차 투표부터 각 후보의 지지 대의원들이 이탈하기 시작하면서 절충 후보 물색 움직임이 가시화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부상했다.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쿠퍼 지지 움직임이 급격히 확산되었고, 4차 투표에서 쿠퍼가 태프트를 제치고 1위로. 이후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으며, 러닝메이트로는 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를 지명했다. 당내 고립주의파를 달래는 동시에 중서부 대형주의 표심을 잡기 위한 인선으로, 반덴버그의 중서부 기반이 쿠퍼의 서부 지역기반을 보완하는 지역 균형 인선이기도 했다.&lt;br /&gt;
&lt;br /&gt;
본선 상대는 [[민주당]]의 [[웬델 윌키 (프런티어)|웬델 윌키]]였다. 윌키는 원래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루스벨트가 3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민주당 내 루스벨트 색채가 옅어지자 유력 대선 후보군으로도 불리운다.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부상했고,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지명되었다. 러닝메이트는 [[미국|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였다. 남부 수성을 노린 인선이었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lt;br /&gt;
&lt;br /&gt;
선거 운동 과정에서 두 후보의 노선 차이는 생각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윌키가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반면, 쿠퍼는 미국의 직접 개입에는 신중하되 유럽 정세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인식하는 &#039;&#039;&#039;&amp;quot;조건부 관여론자&amp;quot;&#039;&#039;&#039;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했다. 쿠퍼 캠프는 &amp;quot;무분별한 개입도, 무책임한 방관도 아닌 냉철한 현실 판단&amp;quot;을 선거 전략으로 내세우며 고립주의 강경파와 관여론자 양쪽의 표심을 동시에 공략하는 전략을 택했다. 내정에서는 뉴딜로 인한 연방 재정 팽창 비판, 연방 권한의 주 환원, 소기업·농장주 보호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선거 운동이 본격화되던 1940년 여름, 유럽 전황이 결정적인 변수로 부상했다. 5월 [[독일]]의 [[프랑스|프랑스 함락]]에 이어 [[영국]] 본토 항공전이 전개되면서 전쟁이 대서양 건너 현실로 다가온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두 후보의 외교·안보 역량 비교로 쏠렸다. 유럽 현장에서 직접 외교 실무를 수행하며 이 위기의 본질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쿠퍼와 기업인 출신의 윌키 사이에서, &amp;quot;이 위기를 누가 더 현실적으로 다룰 수 있는가&amp;quot;라는 질문은 쿠퍼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구도를 만들어냈다. 쿠퍼 캠프는 이를 최대한 활용해 외교관 경력과 유럽 현장 경험을 선거 후반 운동의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으로 전환했다.&lt;br /&gt;
&lt;br /&gt;
여기에 민주당 내부 분열이 겹쳤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구심력을 잃은 민주당은 전당대회 과정에서부터 계파 간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뉴욕 기반의 자유주의자인 윌키에 대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 사이에서 뚜렷한 거부감이 형성되었으며, 루스벨트 열성 지지층 일부도 FDR의 후계자로서 윌키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이미 균열이 시작된 민주당 연합은 본선에서도 봉합되지 않았으며, 경합주인 텍사스, 테네시, 켄터키에서의 민주당 투표율 저하로 이어졌다.&lt;br /&gt;
&lt;br /&gt;
한편 쿠퍼의 외모 역시 선거 과정에서 적잖은 화제가 되었다. 190cm에 달하는 장신에 단정한 외모를 갖춘 쿠퍼는 유세 현장에서 군중의 시선을 압도했으며, 특히 여성 유권자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당시 언론에서는 [[워런 G. 하딩]] 이후 가장 &amp;quot;대통령답게 생긴&amp;quot; 후보라는 평가가 잇따랐으며, 외교관 출신 특유의 절제된 언행과 차분한 카리스마가 더해지면서 &amp;quot;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amp;quot;라는 이미지가 유권자들에게 효과적으로 각인되었다. 유세 현장에서 쿠퍼가 등장할 때마다 군중이 몰리는 현상이 반복되었고, 일부 유세지에서는 행사 정원을 크게 초과하는 인파가 집결해 경호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결국 선거 결과, 쿠퍼의 압도적 대승이었다. &#039;&#039;&#039;득표율 60.8% 대 38.7%, 선거인단 452 대 79로 쿠퍼가 윌키를 압도적으로 이겼다.&#039;&#039;&#039; 뉴잉글랜드, 중부 대서양, 중서부, 서부 전역을 석권했으 경합주인 켄터키·테네시·버지니아·텍사스에서도 쿠퍼가 우세를 점했다. 윌키는 앨라배마·미시시피·사우스캐롤라이나·루이지애나·조지아·아칸소·플로리다·노스캐롤라이나 등 딥 사우스 8개 주만 겨우 지켜냈다. 민주당으로서는 1920년 이후 최악의 선거 참패로 기록되었으며, 루스벨트 없는 민주당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선거로 평가받는다.&lt;br /&gt;
===대통령 재임===&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600px; margin-left: auto; margin-right:auto;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center;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padding: 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display: block; overflow: hidden;&amp;quot;&amp;gt;[[파일:쿠퍼와 루즈벨트 (프런티어).png|600px|style=display:block; width:100%; height:auto;&amp;quo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대통령이 된 후 쿠퍼가 펼친 정책은 크게 세 축으로 요약되는데, 연방 지출 축소와 감세, 태평양 우선 원칙에 입각한 전시 전략, 그리고 전후 세력권 협상에서의 냉철한 현실주의이다.&lt;br /&gt;
&lt;br /&gt;
취임 직후 [[게리 쿠퍼 행정부 (프런티어)|쿠퍼 행정부]]는 [[뉴딜]] 체제에서 팽창한 연방 관료제의 점진적 축소에 착수했다. 일부 공공사업 프로그램의 규모를 줄이고 연방 기관 통폐합을 추진했으며, 중소기업과 농장주에 대한 규제 완화를 병행했다. 뉴딜을 &amp;quot;미국적 자립 정신의 침식&amp;quot;으로 규정한 그의 선거 공약이 실제 행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다만 농업 보조금과 핵심 인프라 예산만큼은 현실적 이유로 유지했으며, [[진주만 공습]] 이후에는 전시 예산 편성이 불가피해지면서 재정 긴축 기조는 사실상 후순위로 밀렸다.&lt;br /&gt;
&lt;br /&gt;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쿠퍼 행정부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는데, 쿠퍼는 이튿날 의회에 대일 선전포고를 요청했고, 독일과 이탈리아의 선전포고에 맞대응해 유럽 참전도 결정했다. 쿠퍼는 전쟁 수행의 기본 전략으로 태평양 우선 원칙을 채택했다. 유럽은 영국과 소련이 지상에서 버티는 동안 미국은 물자 지원과 제공권 확보에 집중하고, 주력 전투력은 태평양에 투입한다는 구도였다. [[윈스턴 처칠|처칠]]은 이 결정에 격렬히 반발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조기 실현을 강하게 요구했으나, 쿠퍼는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미국이 결정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0세기를 풍미한 두 거목이 전시라는 공동 목표 아래 협력하면서도 끝내 완전히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는 않았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소련]]과의 관계에서 쿠퍼의 반공주의 성향으로, 독일 격퇴라는 공동 목표 하에 소련에 대한 무기대여법 지원은 유지했으나 명시적인 조건을 달았다. 지원의 대가로 전후 동유럽 처리 문제와 소련군의 진격 범위에 관한 사전 협의를 요구했으며, [[이오시프 스탈린]]은 물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일정 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쿠퍼는 스탈린을 두고 측근들에게 &amp;quot;[[아돌프 히틀러]]와 다른 방식으로 위험한 인물&amp;quot;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으로 전해지며, 회담 자리에서도 개인적 친밀감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실무적 협상에만 집중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600px; margin-left: auto; margin-right:auto;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center;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padding: 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display: block; overflow: hidden;&amp;quot;&amp;gt;[[파일:쿠퍼 싸인.png|600px|style=display:block; width:100%; height:auto;&amp;quo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44년 대통령 선거]]에서 쿠퍼는 &#039;&#039;&#039;득표율 61.9%를 기록하며 압도적으로 재선에 성공&#039;&#039;&#039;했다. 전시 대통령 프리미엄과 태평양 전선에서의 연이은 승전보가 맞물린 결과였는데, 민주당은 이번에도 유력한 대항마를 내세우지 못했으며, &amp;quot;전쟁을 이기고 있는 대통령을 바꿀 이유가 없다&amp;quot;는 유권자 심리가 지배적이었다. 쿠퍼는 미국 역사상 전시 재선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lt;br /&gt;
&lt;br /&gt;
재선 임기 중 1945년 [[독일]]의 항복과 [[일본]]의 항복을 연이어 맞이하며 전쟁을 종전으로 이끌었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쿠퍼의 현실주의 외교는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동유럽 일부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을 묵시적으로 인정하되 그 범위를 [[폴란드]] 동부·[[루마니아]]·[[불가리아]] 수준으로 제한하려 했다. 태평양에서는 소련의 대일 참전 요청을 제한적으로만 수용함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는 데 일정 부분 성공했다.&lt;br /&gt;
&lt;br /&gt;
==평가==&lt;br /&gt;
===긍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쿠퍼는 내가 협상 테이블에서 마주한 인물 중 가장 조용하고 가장 위험한 사람이었다. 말수가 적었다. 그러나 한번 선을 그으면 어떤 힘으로도 그것을 움직일 수 없었다.|[[영국|윈스턴 처칠]], 《The Hinge of Fate》}}&lt;br /&gt;
{{인용문|쿠퍼의 뒤를 잇는 것은 명장이 지은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모든 것이 견고했다. 단 하나의 문제는 그것이 내 집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내 집으로 만드는 데 4년이 걸렸다.|1957년, [[미국|토마스 E. 듀이]]}}&lt;br /&gt;
{{인용문|쿠퍼와 나는 셀 수 없이 많이 전략에 대해 의견이 달랐다. 그는 몇 가지에서 틀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에서 옳았다. 태평양이 미국의 미래가 결정될 곳이라는 것. 역사가 그가 옳았음을 증명했다.|[[미국|더글라스 맥아더]], 《Reminiscences》}}&lt;br /&gt;
&#039;&#039;&#039;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 중 한 명&#039;&#039;&#039;이다. 퇴임 후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각종 대통령 평가 설문에서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과 함께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대통령이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특히 이례적이다. 그나마 진보 진영에서도 노골적으로 까기가 어려운 대통령이라는 점이 쿠퍼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보수층과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정신적 지주 취급을 받으며, 21세기 현재도 공화당은 쿠퍼 행정부를 계승하는 정당임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다.&lt;br /&gt;
&lt;br /&gt;
외교 분야에서의 평가가 특히 높다. 외교관 출신 대통령답게 전시 외교 무대에서 [[윈스턴 처칠]]과 [[레프 트로츠키]]를 상대로 [[미국]]의 국익을 최대한 뽑아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소련]]의 대일 참전을 제한적으로만 허용해 [[한반도]]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한 것은, 이 결정 하나로 한반도의 운명 자체가 바뀌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lt;br /&gt;
&lt;br /&gt;
전후 유럽 재건 과정에서도 쿠퍼만의 색깔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전쟁 중에는 유럽 지상군 투입을 최소화했던 쿠퍼가 전후에는 대규모 경제 지원을 통해 [[유럽]]을 미국 중심의 서방 질서에 묶어두는 전략을 택한 것인데,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접근이었다. 집단안보체제 구축에서도 유럽에 미군을 영구 주둔시키는 것에는 신중했으나 소련의 서유럽 진출을 막기 위한 방위조약 체결에는 적극적이었고, 그 결과 탄생한 대서양 집단안보체제는 강력한 군사동맹보다는 [[미국]]·[[영국]]·[[프랑스]] 중심의 제한적 방위조약 성격이 강했다.&lt;br /&gt;
&lt;br /&gt;
전시 경제 운영 방식도 높이 평가받는다. [[루스벨트]]식 국가주도 경제와는 달리 쿠퍼는 민간기업과 군수산업의 생산력을 동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쟁 수행을 위한 정부 지출은 과감하게 늘렸지만 그 돈이 흘러가는 방식은 민간기업을 통하도록 설계한 것인데, 이 덕분에 전시 생산량이 빠르게 증가했고 전쟁이 끝난 후 군수산업을 민간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도 비교적 순탄하게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뉴딜]]식 국가주도 경제체제로의 영구 전환을 거부하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비상경제 체제를 정상화했다는 점에서 재정 보수주의자로서의 원칙을 끝까지 지켰다는 평가를 받는다.&lt;br /&gt;
&lt;br /&gt;
군 지휘관들과의 관계에서도 쿠퍼의 스타일이 잘 드러난다.[[더글라스 맥아더]], [[조지 C. 마셜]] 등에게 작전상 상당한 자율성을 부여하면서도 전략적 목표와 병력 배치의 최종 결정권은 대통령이 쥔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맥아더가 특유의 독단적 스타일로 대통령의 방침을 넘어서려 했을 때 이를 단호하게 제어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lt;br /&gt;
===부정적 평가===&lt;br /&gt;
솔직히 부정적 평가가 많지 않은 대통령이다. 그나마 가장 자주 거론되는 비판은 유럽 지상군 투입 최소화 결정이다. 태평양 우선 원칙을 밀어붙인 결과 유럽 전선이 불필요하게 길어졌다는 시각이 일부 역사가들 사이에서 제기되며, [[윈스턴 처칠]]과의 갈등을 자초하면서 영미 동맹 관계에 균열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다만 이 결정이 결과적으로 태평양 전선의 조기 종결에 기여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서, 비판으로서의 설득력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다.&lt;br /&gt;
&lt;br /&gt;
일부 진보 성향 역사가들은 뉴딜 축소 기조가 취약 계층 보호망을 약화시켰다는 점을 지적하지만, 전시라는 특수 상황과 압도적인 국민적 지지를 고려할 때 이 비판이 주류 역사 평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amp;quot;그래도 단점을 찾아야 하니까 찾는&amp;quot; 수준의 비판에 가깝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lt;br /&gt;
==당대 각국 정상들과의 관계==&lt;br /&gt;
===윈스턴 처칠===&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600px; margin-left: auto; margin-right:auto;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center;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padding: 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line-height: 0; overflow: hidden;&amp;quot;&amp;gt;[[파일:쿠퍼 처칠.png|6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전시 동맹국 수장이라는 구조상 긴밀하게 협력할 수 밖에 없었지만, 두 사람이 진심으로 죽이 맞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lt;br /&gt;
&lt;br /&gt;
[[윈스턴 처칠|처칠]]은 특유의 과장된 화법으로 쿠퍼와의 관계를 여러 자리에서 친밀하게 묘사한 반면, 쿠퍼는 처칠에 대해 공개적으로 특별한 감정을 표현한 적이 거의 없었으며, 측근들의 회고에 의하면 쿠퍼는 처칠에 대해 탁월한 전략가라고 평했으나 언제나 [[영국]]으로 귀결된다는 평을 동시에 낸 것으로 전해졌다. &lt;br /&gt;
&lt;br /&gt;
실제로 두 사람의 충돌은 재임 기간 내내 반복되었는데, 가장 큰 갈등 지점은 쿠퍼의 [[태평양]] 우선 전략이었다. 쿠퍼가 [[유럽]] 지상군 투입 최소화 방심을 고수하자 처칠은 격렬하게 반발하며 &amp;quot;미국이 유럽을 버렸다&amp;quot;는 표현가지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고, 쿠퍼는 이에 대해서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미국이 결정한다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후 식민지 질서 문제에서도 영국의 제국적 이해관계를 노골적으로 관철하려는 처칠의 입장과 반복적으로 마찰을 빚었다. [[샤를 드골]] 뮨제에서도 의견이 갈렸는데, 처칠이 드골을 [[프랑스|자유 프랑스]]의 유일한 합법적 지도자로 전폭적으로 지지한 반면, 쿠퍼는 드골의 권위주의적 기질을 경계하며 처칠과 다른 입장을 취했다.&lt;br /&gt;
===레프 트로츠키===&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600px; margin-left: auto; margin-right:auto;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center;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padding: 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line-height: 0; overflow: hidden;&amp;quot;&amp;gt;[[파일:트로츠키-쿠퍼-처칠.png|6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둘의 관계는 &#039;&#039;&#039;거래 가능한 적대&#039;&#039;&#039;였다. 이념적으로 정반대였고 전략적으로도 충돌했지만, [[독일]]이라는 공동의 적이 존재하는 동안 최소한의 협력을 유지해야 했다.&lt;br /&gt;
&lt;br /&gt;
쿠퍼는 외교관 시절 유럽에서 소련의 팽창을 직접 목격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레프 트로츠키|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을 단순하 이념이 아니라 실질적인 안보 위협으로 규정했다.&lt;br /&gt;
&lt;br /&gt;
1943년 11월, [[테헤란 회담 (프런티어)|테헤란 회담]]에서 처음 대면한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악수를 나누는 순간부터 싸늘했다고 전해지는데, 트로츠키는 특유의 날카로운 화법으로 먼저 [[미국]]의 [[태평양]] 우선 전략을 비판했고, 쿠퍼는 짧게 받아친 것으로 알려졌다. 회다메 배석했던 미국 측 참모의 회고록에 의하면 쿠퍼는 트로츠키와의 첫 만남 직후 &amp;quot;예상했던 것보다 더 위험한 인물&amp;quot;이라는 짧은 평가를 남겼다고 한다. 트로츠키 역시 쿠퍼를 단순한 자본주의 정치인으로 보지 않았다. 소련 측 외교 문서에 따르면 트로츠키는 귀국 후 &amp;quot;쿠퍼는 설득하기 어려운 정치인이었다. 거래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amp;quot;는 평가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lt;br /&gt;
&lt;br /&gt;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내 협력도 화해도 아닌, 서로를 정확히 파악한 채 거리를 두는 냉랭한 대립으로 요약된다. 쿠퍼와 트로츠키의 관계는 전후에도 봉학되지 않았고, 이후 [[냉전]]의 출발점이 되었다.&lt;br /&gt;
==기타==&lt;br /&gt;
* &#039;&#039;&#039;&#039;가장 미국적인 미남&#039;&#039;&#039;&#039;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할리우드를 뛰어 넘는 외모의 대표적인 미남 정치인이었다.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사석에서 쿠퍼를 가리켜 &amp;quot;만약 제가 치른 대통령 선거에 그 친구가 나왔다면 여지없이 패하고 말았을 겁니다. 그렇게 생긴 친구는 생전 처음 봤어요. 그리고 그 웃음은 또 뭐라고 표현해야 합니까? 아마 여자 유권자들에게 몰표를 얻었겠죠&amp;quot;라고 평가했다고 한다.&lt;br /&gt;
* 쿠퍼의 외모가 선거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당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191cm의 장신에 조각 같은 외모를 갖춘 쿠퍼는 유세 현장마다 인파가 몰렸는데, 특히 여성 유권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당시 한 신문 기자가 쿠퍼의 유세 현장을 취재하면서 &amp;quot;이 사람이 대통령 후보인지 영화배우인지 모르겠다&amp;quot;고 적었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 [[워런 G. 하딩]] 이후 외모가 선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례로 자주 거론되며, 정치학계에서는 쿠퍼의 사례를 후보자 이미지와 선거 결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데 즐겨 인용한다.&lt;br /&gt;
* [[미국 공화당|공화당]] 정치인들 사이에서 쿠퍼의 인기는 거의 전설적인 수준이다. [[배리 골드워터 (프런티어)|배리 골드워터]] 역시 쿠퍼를 공화당 보수주의의 원형으로 자주 언급했고, [[밥 돌 (프런티어)|밥 돌]]도 선거 운동 과정에서 쿠퍼를 언급하며 &amp;quot;쿠퍼 같은 대통령이 다시 나와야 한다&amp;quot;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lt;br /&gt;
* 신장이 191cm로 역대 대통령 중 3번째로 장신이다. [[미국]]의 경우 대중에게 공개되는 인물들에 대한 태도가 평균적으로 무조건 키가 클수록 좋다는 선입견이 심하다.&lt;br /&gt;
&lt;br /&gt;
==선거 이력==&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border: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연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종류&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구&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득표수 (득표율, 선거인단 수)&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 여부&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비고&lt;br /&gt;
|-&lt;br /&gt;
| 1936&lt;br /&gt;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lt;br /&gt;
| [[미국|몬태나]]&lt;br /&gt;
| rowspan=&amp;quot;3&amp;quot; | {{공화당 (미국)}}&lt;br /&gt;
| &#039;&#039;&#039;n (n.n%)&#039;&#039;&#039;&lt;br /&gt;
| rowspan=&amp;quot;3&amp;quot; | &#039;&#039;&#039;당선 (1위)&#039;&#039;&#039;&lt;br /&gt;
| &#039;&#039;&#039;초선&#039;&#039;&#039;&lt;br /&gt;
|-&lt;br /&gt;
| 1940&lt;br /&gt;
|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미합중국]]&lt;br /&gt;
| &#039;&#039;&#039;30,332,082 (60.78%, 452명)&#039;&#039;&#039;&lt;br /&gt;
| &#039;&#039;&#039;초선&#039;&#039;&#039;&lt;br /&gt;
|-&lt;br /&gt;
| 1944&lt;br /&gt;
| [[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미합중국]]&lt;br /&gt;
| &#039;&#039;&#039;29,694,259 (61.89%, 498명)&#039;&#039;&#039;&lt;br /&gt;
| &#039;&#039;&#039;재선&#039;&#039;&#039;&lt;br /&gt;
|-&lt;br /&gt;
|}&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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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게리 쿠퍼 (프런티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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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13T12:20:1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대통령 재임 */&lt;/p&gt;
&lt;hr /&gt;
&lt;div&gt;{{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33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게리 쿠퍼}}&amp;lt;br&amp;gt;Gary Coop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프랭크 제임스 쿠퍼&amp;lt;br&amp;gt;Frank James Cooper&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1년]] [[5월 7일]]&lt;br /&gt;
|-&lt;br /&gt;
| [[미국|미국 몬태나 주 헬레나]]&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1961년]] [[5월 13일]] (향년 60세)&lt;br /&gt;
|-&lt;br /&gt;
| [[미국|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묘소&lt;br /&gt;
| 프랭크 제임스 쿠퍼 국립사적지 묘지&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41년]] [[1월 20일]] ~ [[1949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Gary Cooper signature.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찰스 쿠퍼&amp;lt;sup&amp;gt;(1865. 9. 15 ~ 1946. 9. 18.)&amp;lt;/sup&amp;gt;&amp;lt;br&amp;gt;어머니 앨리스 쿠퍼&amp;lt;sup&amp;gt;(1873. 10. 10. ~ 1967. 10. 6)&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베로니카 쿠퍼&amp;lt;sup&amp;gt;(1913. 5. 27. ~ 2000. 2. 16, 1933년 결혼)&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딸 마리아 쿠퍼&amp;lt;sup&amp;gt;(1937년 9월 15일 ~ )&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프린스턴 대학교]] &amp;lt;small&amp;gt;([[정치철학]], [[사학]] / [[학사]])&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성공회]] → [[가톨릭]]&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의원 선수&lt;br /&gt;
| &#039;&#039;&#039;1&#039;&#039;&#039; (상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의원 대수&lt;br /&gt;
| &#039;&#039;&#039;75&#039;&#039;&#039;&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33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lt;br /&gt;
역대 최연소의 나이에 당선되고,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취임한 미국 대통령이자, 최초의 [[20세기]] 출생 대통령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3명의 [[프린스턴 대학교]] 출신 미국 대통령 중 한 명이자, [[에이브러햄 링컨]] 등과 함께 [[미국 공화당]]을 대표하는 존재이자 강하게 지지 받는 정치인으로, 미국 보수층과 공화당 지지자들의 정신적 지주에 그접한 대통령이다.&lt;br /&gt;
==약력==&lt;br /&gt;
* 1924. 주이탈리아 미국대사관 3등 서기관&lt;br /&gt;
* 1926. 주프랑스 미국대사관 2등 서기관&lt;br /&gt;
* 1928. 주영국 미국대사관 1등 서기관&lt;br /&gt;
* 1936. 제75대 미국 연방 상원의원 당선 (몬태나주, 공화당)&lt;br /&gt;
* 1941.1. &#039;&#039;&#039;제33대 [[미국 대통령|미국 대통령]]&#039;&#039;&#039;&lt;br /&gt;
==생애==&lt;br /&gt;
[[미국|미국 몬태나주]] 헬레나에서 1901년 5월 7일에 태어났다. 본명은 프랭크 제임스 쿠퍼.&lt;br /&gt;
&lt;br /&gt;
부모님은 [[잉글랜드]] 이민자 출신으로 헬레나 외곽에 600에이커, 즉 70만 평이 넘는 대농장을 소유하고 있어서 자연스레 어려서부터 형 아서와 어울리며 승마와 카우보이 기술을 터득할 수 있었다. 아버지 찰스 쿠퍼는 몬태나주 대법원 판사로 복무한 법조인이었다.&lt;br /&gt;
&lt;br /&gt;
자식들이 자신들의 뿌리인 [[영국 (동음이의)|영국 문화]]를 익히길 원했던 어머니 앨리스 쿠퍼의 주도로 초등학생 시절 형과 함께 [[영국 (동음이의)|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이때 학교에서 [[프랑스|프랑스어]]를 익혔다. 같은 시기에 [[라틴 문자|라틴어]]도 수학했다. 1912년 귀국해 헬레나로 복학했으며, 이후 몬태나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lt;br /&gt;
&lt;br /&gt;
졸업 후 1919년 뉴저지주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했다. 전공은 [[우드로 윌슨]]과 함께 [[정치철학]], [[사학]]으로, 재학 중 국제법·외교사·정치철학 분야에서 우수한 성취를 보였으며, 교내 토론 클럽과 웅변 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1923년 우등 졸업한다.&lt;br /&gt;
===외교관===&lt;br /&gt;
대학교 졸업 직후 [[미국 (동음이의)|미국 국무부]]에 합류해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초임지는 [[이탈리아|이탈리아 로마]]였으며, 이후 [[프랑스|프랑스 파리]], [[영국 (동음이의)|영국 런던]]을 순차적으로 거쳤다. 외교관으로 생활하며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라틴어 역시 문서 독해 수준으로 활용했다. 발음은 프랑스 현지인들도 만족하는 수준이었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로마 근무 시절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공고화되는 과정을 현장에서 목격했으며, 파리 근무 시절에는 [[독일|바이마르 공화국]]의 불안정과 프랑스의 대독 유화 기조를 관찰했다. 런던 근무 시절에는 [[영국 (동음이의)|영국 외무부]] 관계자들과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 당시, 쿠퍼는 국무부 내에서 유럽 정세 분석 보고서로 상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1930년대 들어서는 에티오피아 위기, 라인란트 재무장, 스페인 내전 등 유럽의 연쇄적 위기 상황에 관한 분석으로 워싱턴 정가에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1937년 이후 [[일본]]의 [[중국]] 침략이 가시화되면서 국무부 내 태평양 담당 라인과도 긴밀히 협력했다. 이 무렵 쿠퍼는 국무부 내에서 유럽과 태평양 양쪽 정세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외교관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lt;br /&gt;
===정계 입문과 대선 출마===&lt;br /&gt;
한편 1934년 [[미국|몬태나]]로 일시 귀환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1936년 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039;&#039;&#039;이는 엄청난 이변이었는데, 당시 루스벨트의 뉴딜 지지층이 두터웠던 몬태나에서 공화당 후보가 승리한 것은 충격적인 결과&#039;&#039;&#039;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외교관 경력이 본업이었던 만큼 상원의원으로서의 활동은 주로 외교위원회에 집중되었으며, 세입위원회에서도 재정 보수주의 노선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유럽 정세에 관해 당내 고립주의 강경파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독자적 노선을 취했으며, &amp;quot;미국의 지속적 무관심은 결국 더 큰 개입을 불러올 것&amp;quot;이라는 논지를 반복적으로 제기했다.&lt;br /&gt;
&lt;br /&gt;
이후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은 뚜렷한 선두 주자 없이 혼전 양상으로 시작되었는데,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된 것은 뉴욕 검사장 출신의 [[토머스 E. 듀이]]였다. 듀이는 검사 시절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미국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 유죄 판결로 이끌며 &#039;&#039;&#039;&amp;quot;갱버스터&amp;quot;&#039;&#039;&#039;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명사가 된 인물로, 1938년 뉴욕 주지사 선거에서 현직 허버트 레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한 선전이 오히려 1940년 경선 유력 주자로 부상하는 발판이 되었다.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로버트 A. 태프트]]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듀이의 대항마로 부상했다. 태프트는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중서부와 남부 공화당 조직을 공략했다.&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600px; margin-left: auto; margin-right:auto;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center;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padding: 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display: block; overflow: hidden;&amp;quot;&amp;gt;[[파일:쿠퍼 선출.png|600px|style=display:block; width:100%; height:auto;&amp;quo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쿠퍼 역시 경선 초반부터 이 두 후보와 함께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되었다. 1936년 상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38년 [[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 언론에 반복 보도되면서 &amp;quot;외교 전문 상원의원&amp;quot;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외교관·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과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가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 (프런티어)|아서 반덴버그]] 역시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유지했다.&lt;br /&gt;
&lt;br /&gt;
당시 쿠퍼는 스스로를 고립주의자와 관여론자 사이 어딘가에 위치시키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유럽 현장을 직접 경험한 외교관 출신으로서 위기의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미국의 직접적 군사 개입에는 여전히 유보적 입장을 견지했다. 이러한 쿠퍼의 성향은 완전한 고립주의를 고수하는 태프트 계열과도, 적극적 관여론을 주장하는 동부 국제파와도 구별되는 것으로, 오히려 당내 폭넓은 계파를 아우를 수 있는 유연한 입지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이로 인해 전당대회 당시 듀이와 태프트, 쿠퍼의 3강 구도라는 흐름이 이어졌으나, 6월 [[미국|필라델피아]] 전당대회에서 양상이 급변했다. 1차 투표에서 듀이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 미치지 못했고, 2·3차 투표에서도 3명의 후보가 팽팽히 맞서며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4차 투표부터 각 후보의 지지 대의원들이 이탈하기 시작하면서 절충 후보 물색 움직임이 가시화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부상했다.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쿠퍼 지지 움직임이 급격히 확산되었고, 4차 투표에서 쿠퍼가 태프트를 제치고 1위로. 이후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으며, 러닝메이트로는 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를 지명했다. 당내 고립주의파를 달래는 동시에 중서부 대형주의 표심을 잡기 위한 인선으로, 반덴버그의 중서부 기반이 쿠퍼의 서부 지역기반을 보완하는 지역 균형 인선이기도 했다.&lt;br /&gt;
&lt;br /&gt;
본선 상대는 [[민주당]]의 [[웬델 윌키 (프런티어)|웬델 윌키]]였다. 윌키는 원래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루스벨트가 3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민주당 내 루스벨트 색채가 옅어지자 유력 대선 후보군으로도 불리운다.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부상했고,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지명되었다. 러닝메이트는 [[미국|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였다. 남부 수성을 노린 인선이었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lt;br /&gt;
&lt;br /&gt;
선거 운동 과정에서 두 후보의 노선 차이는 생각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윌키가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반면, 쿠퍼는 미국의 직접 개입에는 신중하되 유럽 정세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인식하는 &#039;&#039;&#039;&amp;quot;조건부 관여론자&amp;quot;&#039;&#039;&#039;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했다. 쿠퍼 캠프는 &amp;quot;무분별한 개입도, 무책임한 방관도 아닌 냉철한 현실 판단&amp;quot;을 선거 전략으로 내세우며 고립주의 강경파와 관여론자 양쪽의 표심을 동시에 공략하는 전략을 택했다. 내정에서는 뉴딜로 인한 연방 재정 팽창 비판, 연방 권한의 주 환원, 소기업·농장주 보호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선거 운동이 본격화되던 1940년 여름, 유럽 전황이 결정적인 변수로 부상했다. 5월 [[독일]]의 [[프랑스|프랑스 함락]]에 이어 [[영국]] 본토 항공전이 전개되면서 전쟁이 대서양 건너 현실로 다가온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두 후보의 외교·안보 역량 비교로 쏠렸다. 유럽 현장에서 직접 외교 실무를 수행하며 이 위기의 본질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쿠퍼와 기업인 출신의 윌키 사이에서, &amp;quot;이 위기를 누가 더 현실적으로 다룰 수 있는가&amp;quot;라는 질문은 쿠퍼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구도를 만들어냈다. 쿠퍼 캠프는 이를 최대한 활용해 외교관 경력과 유럽 현장 경험을 선거 후반 운동의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으로 전환했다.&lt;br /&gt;
&lt;br /&gt;
여기에 민주당 내부 분열이 겹쳤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구심력을 잃은 민주당은 전당대회 과정에서부터 계파 간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뉴욕 기반의 자유주의자인 윌키에 대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 사이에서 뚜렷한 거부감이 형성되었으며, 루스벨트 열성 지지층 일부도 FDR의 후계자로서 윌키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이미 균열이 시작된 민주당 연합은 본선에서도 봉합되지 않았으며, 경합주인 텍사스, 테네시, 켄터키에서의 민주당 투표율 저하로 이어졌다.&lt;br /&gt;
&lt;br /&gt;
한편 쿠퍼의 외모 역시 선거 과정에서 적잖은 화제가 되었다. 190cm에 달하는 장신에 단정한 외모를 갖춘 쿠퍼는 유세 현장에서 군중의 시선을 압도했으며, 특히 여성 유권자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당시 언론에서는 [[워런 G. 하딩]] 이후 가장 &amp;quot;대통령답게 생긴&amp;quot; 후보라는 평가가 잇따랐으며, 외교관 출신 특유의 절제된 언행과 차분한 카리스마가 더해지면서 &amp;quot;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amp;quot;라는 이미지가 유권자들에게 효과적으로 각인되었다. 유세 현장에서 쿠퍼가 등장할 때마다 군중이 몰리는 현상이 반복되었고, 일부 유세지에서는 행사 정원을 크게 초과하는 인파가 집결해 경호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결국 선거 결과, 쿠퍼의 압도적 대승이었다. &#039;&#039;&#039;득표율 60.8% 대 38.7%, 선거인단 452 대 79로 쿠퍼가 윌키를 압도적으로 이겼다.&#039;&#039;&#039; 뉴잉글랜드, 중부 대서양, 중서부, 서부 전역을 석권했으 경합주인 켄터키·테네시·버지니아·텍사스에서도 쿠퍼가 우세를 점했다. 윌키는 앨라배마·미시시피·사우스캐롤라이나·루이지애나·조지아·아칸소·플로리다·노스캐롤라이나 등 딥 사우스 8개 주만 겨우 지켜냈다. 민주당으로서는 1920년 이후 최악의 선거 참패로 기록되었으며, 루스벨트 없는 민주당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선거로 평가받는다.&lt;br /&gt;
===대통령 재임===&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600px; margin-left: auto; margin-right:auto;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center;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padding: 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display: block; overflow: hidden;&amp;quot;&amp;gt;[[파일:쿠퍼와 루즈벨트 (프런티어).png|600px|style=display:block; width:100%; height:auto;&amp;quo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대통령이 된 후 쿠퍼가 펼친 정책은 크게 세 축으로 요약되는데, 연방 지출 축소와 감세, 태평양 우선 원칙에 입각한 전시 전략, 그리고 전후 세력권 협상에서의 냉철한 현실주의이다.&lt;br /&gt;
&lt;br /&gt;
취임 직후 [[게리 쿠퍼 행정부 (프런티어)|쿠퍼 행정부]]는 [[뉴딜]] 체제에서 팽창한 연방 관료제의 점진적 축소에 착수했다. 일부 공공사업 프로그램의 규모를 줄이고 연방 기관 통폐합을 추진했으며, 중소기업과 농장주에 대한 규제 완화를 병행했다. 뉴딜을 &amp;quot;미국적 자립 정신의 침식&amp;quot;으로 규정한 그의 선거 공약이 실제 행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다만 농업 보조금과 핵심 인프라 예산만큼은 현실적 이유로 유지했으며, [[진주만 공습]] 이후에는 전시 예산 편성이 불가피해지면서 재정 긴축 기조는 사실상 후순위로 밀렸다.&lt;br /&gt;
&lt;br /&gt;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쿠퍼 행정부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는데, 쿠퍼는 이튿날 의회에 대일 선전포고를 요청했고, 독일과 이탈리아의 선전포고에 맞대응해 유럽 참전도 결정했다. 쿠퍼는 전쟁 수행의 기본 전략으로 태평양 우선 원칙을 채택했다. 유럽은 영국과 소련이 지상에서 버티는 동안 미국은 물자 지원과 제공권 확보에 집중하고, 주력 전투력은 태평양에 투입한다는 구도였다. [[윈스턴 처칠|처칠]]은 이 결정에 격렬히 반발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조기 실현을 강하게 요구했으나, 쿠퍼는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미국이 결정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0세기를 풍미한 두 거목이 전시라는 공동 목표 아래 협력하면서도 끝내 완전히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는 않았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소련]]과의 관계에서 쿠퍼의 반공주의 성향으로, 독일 격퇴라는 공동 목표 하에 소련에 대한 무기대여법 지원은 유지했으나 명시적인 조건을 달았다. 지원의 대가로 전후 동유럽 처리 문제와 소련군의 진격 범위에 관한 사전 협의를 요구했으며, [[이오시프 스탈린]]은 물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일정 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쿠퍼는 스탈린을 두고 측근들에게 &amp;quot;[[아돌프 히틀러]]와 다른 방식으로 위험한 인물&amp;quot;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으로 전해지며, 회담 자리에서도 개인적 친밀감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실무적 협상에만 집중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600px; margin-left: auto; margin-right:auto;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center;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padding: 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display: block; overflow: hidden;&amp;quot;&amp;gt;[[파일:쿠퍼 싸인.png|600px|style=display:block; width:100%; height:auto;&amp;quo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44년 대통령 선거]]에서 쿠퍼는 &#039;&#039;&#039;득표율 61.9%를 기록하며 압도적으로 재선에 성공&#039;&#039;&#039;했다. 전시 대통령 프리미엄과 태평양 전선에서의 연이은 승전보가 맞물린 결과였는데, 민주당은 이번에도 유력한 대항마를 내세우지 못했으며, &amp;quot;전쟁을 이기고 있는 대통령을 바꿀 이유가 없다&amp;quot;는 유권자 심리가 지배적이었다. 쿠퍼는 미국 역사상 전시 재선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lt;br /&gt;
&lt;br /&gt;
재선 임기 중 1945년 [[독일]]의 항복과 [[일본]]의 항복을 연이어 맞이하며 전쟁을 종전으로 이끌었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쿠퍼의 현실주의 외교는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동유럽 일부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을 묵시적으로 인정하되 그 범위를 [[폴란드]] 동부·[[루마니아]]·[[불가리아]] 수준으로 제한하려 했다. 태평양에서는 소련의 대일 참전 요청을 제한적으로만 수용함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는 데 일정 부분 성공했다.&lt;br /&gt;
&lt;br /&gt;
==평가==&lt;br /&gt;
===긍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쿠퍼는 내가 협상 테이블에서 마주한 인물 중 가장 조용하고 가장 위험한 사람이었다. 말수가 적었다. 그러나 한번 선을 그으면 어떤 힘으로도 그것을 움직일 수 없었다.|[[영국|윈스턴 처칠]], 《The Hinge of Fate》}}&lt;br /&gt;
{{인용문|쿠퍼의 뒤를 잇는 것은 명장이 지은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모든 것이 견고했다. 단 하나의 문제는 그것이 내 집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내 집으로 만드는 데 4년이 걸렸다.|1957년, [[미국|토마스 E. 듀이]]}}&lt;br /&gt;
{{인용문|쿠퍼와 나는 셀 수 없이 많이 전략에 대해 의견이 달랐다. 그는 몇 가지에서 틀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에서 옳았다. 태평양이 미국의 미래가 결정될 곳이라는 것. 역사가 그가 옳았음을 증명했다.|[[미국|더글라스 맥아더]], 《Reminiscences》}}&lt;br /&gt;
&#039;&#039;&#039;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 중 한 명&#039;&#039;&#039;이다. 퇴임 후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각종 대통령 평가 설문에서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과 함께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대통령이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특히 이례적이다. 그나마 진보 진영에서도 노골적으로 까기가 어려운 대통령이라는 점이 쿠퍼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보수층과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정신적 지주 취급을 받으며, 21세기 현재도 공화당은 쿠퍼 행정부를 계승하는 정당임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다.&lt;br /&gt;
&lt;br /&gt;
외교 분야에서의 평가가 특히 높다. 외교관 출신 대통령답게 전시 외교 무대에서 [[윈스턴 처칠]]과 [[레프 트로츠키]]를 상대로 [[미국]]의 국익을 최대한 뽑아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소련]]의 대일 참전을 제한적으로만 허용해 [[한반도]]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한 것은, 이 결정 하나로 한반도의 운명 자체가 바뀌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lt;br /&gt;
&lt;br /&gt;
전후 유럽 재건 과정에서도 쿠퍼만의 색깔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전쟁 중에는 유럽 지상군 투입을 최소화했던 쿠퍼가 전후에는 대규모 경제 지원을 통해 [[유럽]]을 미국 중심의 서방 질서에 묶어두는 전략을 택한 것인데,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접근이었다. 집단안보체제 구축에서도 유럽에 미군을 영구 주둔시키는 것에는 신중했으나 소련의 서유럽 진출을 막기 위한 방위조약 체결에는 적극적이었고, 그 결과 탄생한 대서양 집단안보체제는 강력한 군사동맹보다는 [[미국]]·[[영국]]·[[프랑스]] 중심의 제한적 방위조약 성격이 강했다.&lt;br /&gt;
&lt;br /&gt;
전시 경제 운영 방식도 높이 평가받는다. [[루스벨트]]식 국가주도 경제와는 달리 쿠퍼는 민간기업과 군수산업의 생산력을 동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쟁 수행을 위한 정부 지출은 과감하게 늘렸지만 그 돈이 흘러가는 방식은 민간기업을 통하도록 설계한 것인데, 이 덕분에 전시 생산량이 빠르게 증가했고 전쟁이 끝난 후 군수산업을 민간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도 비교적 순탄하게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뉴딜]]식 국가주도 경제체제로의 영구 전환을 거부하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비상경제 체제를 정상화했다는 점에서 재정 보수주의자로서의 원칙을 끝까지 지켰다는 평가를 받는다.&lt;br /&gt;
&lt;br /&gt;
군 지휘관들과의 관계에서도 쿠퍼의 스타일이 잘 드러난다.[[더글라스 맥아더]], [[조지 C. 마셜]] 등에게 작전상 상당한 자율성을 부여하면서도 전략적 목표와 병력 배치의 최종 결정권은 대통령이 쥔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맥아더가 특유의 독단적 스타일로 대통령의 방침을 넘어서려 했을 때 이를 단호하게 제어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lt;br /&gt;
===부정적 평가===&lt;br /&gt;
솔직히 부정적 평가가 많지 않은 대통령이다. 그나마 가장 자주 거론되는 비판은 유럽 지상군 투입 최소화 결정이다. 태평양 우선 원칙을 밀어붙인 결과 유럽 전선이 불필요하게 길어졌다는 시각이 일부 역사가들 사이에서 제기되며, [[윈스턴 처칠]]과의 갈등을 자초하면서 영미 동맹 관계에 균열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다만 이 결정이 결과적으로 태평양 전선의 조기 종결에 기여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서, 비판으로서의 설득력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다.&lt;br /&gt;
&lt;br /&gt;
일부 진보 성향 역사가들은 뉴딜 축소 기조가 취약 계층 보호망을 약화시켰다는 점을 지적하지만, 전시라는 특수 상황과 압도적인 국민적 지지를 고려할 때 이 비판이 주류 역사 평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amp;quot;그래도 단점을 찾아야 하니까 찾는&amp;quot; 수준의 비판에 가깝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lt;br /&gt;
==당대 각국 정상들과의 관계==&lt;br /&gt;
===윈스턴 처칠===&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600px; margin-left: auto; margin-right:auto;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center;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padding: 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line-height: 0; overflow: hidden;&amp;quot;&amp;gt;[[파일:쿠퍼 처칠.png|6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전시 동맹국 수장이라는 구조상 긴밀하게 협력할 수 밖에 없었지만, 두 사람이 진심으로 죽이 맞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lt;br /&gt;
&lt;br /&gt;
[[윈스턴 처칠|처칠]]은 특유의 과장된 화법으로 쿠퍼와의 관계를 여러 자리에서 친밀하게 묘사한 반면, 쿠퍼는 처칠에 대해 공개적으로 특별한 감정을 표현한 적이 거의 없었으며, 측근들의 회고에 의하면 쿠퍼는 처칠에 대해 탁월한 전략가라고 평했으나 언제나 [[영국]]으로 귀결된다는 평을 동시에 낸 것으로 전해졌다. &lt;br /&gt;
&lt;br /&gt;
실제로 두 사람의 충돌은 재임 기간 내내 반복되었는데, 가장 큰 갈등 지점은 쿠퍼의 [[태평양]] 우선 전략이었다. 쿠퍼가 [[유럽]] 지상군 투입 최소화 방심을 고수하자 처칠은 격렬하게 반발하며 &amp;quot;미국이 유럽을 버렸다&amp;quot;는 표현가지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고, 쿠퍼는 이에 대해서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미국이 결정한다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후 식민지 질서 문제에서도 영국의 제국적 이해관계를 노골적으로 관철하려는 처칠의 입장과 반복적으로 마찰을 빚었다. [[샤를 드골]] 뮨제에서도 의견이 갈렸는데, 처칠이 드골을 [[프랑스|자유 프랑스]]의 유일한 합법적 지도자로 전폭적으로 지지한 반면, 쿠퍼는 드골의 권위주의적 기질을 경계하며 처칠과 다른 입장을 취했다.&lt;br /&gt;
===레프 트로츠키===&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600px; margin-left: auto; margin-right:auto;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center;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padding: 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line-height: 0; overflow: hidden;&amp;quot;&amp;gt;[[파일:트로츠키-쿠퍼-처칠.png|6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둘의 관계는 &#039;&#039;&#039;거래 가능한 적대&#039;&#039;&#039;였다. 이념적으로 정반대였고 전략적으로도 충돌했지만, [[독일]]이라는 공동의 적이 존재하는 동안 최소한의 협력을 유지해야 했다.&lt;br /&gt;
&lt;br /&gt;
쿠퍼는 외교관 시절 유럽에서 소련의 팽창을 직접 목격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레프 트로츠키|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을 단순하 이념이 아니라 실질적인 안보 위협으로 규정했다.&lt;br /&gt;
&lt;br /&gt;
1943년 11월, [[테헤란 회담 (프런티어)|테헤란 회담]]에서 처음 대면한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악수를 나누는 순간부터 싸늘했다고 전해지는데, 트로츠키는 특유의 날카로운 화법으로 먼저 [[미국]]의 [[태평양]] 우선 전략을 비판했고, 쿠퍼는 짧게 받아친 것으로 알려졌다. 회다메 배석했던 미국 측 참모의 회고록에 의하면 쿠퍼는 트로츠키와의 첫 만남 직후 &amp;quot;예상했던 것보다 더 위험한 인물&amp;quot;이라는 짧은 평가를 남겼다고 한다. 트로츠키 역시 쿠퍼를 단순한 자본주의 정치인으로 보지 않았다. 소련 측 외교 문서에 따르면 트로츠키는 귀국 후 &amp;quot;쿠퍼는 설득하기 어려운 정치인이었다. 거래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amp;quot;는 평가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lt;br /&gt;
&lt;br /&gt;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내 협력도 화해도 아닌, 서로를 정확히 파악한 채 거리를 두는 냉랭한 대립으로 요약된다. 쿠퍼와 트로츠키의 관계는 전후에도 봉학되지 않았고, 이후 [[냉전]]의 출발점이 되었다.&lt;br /&gt;
==기타==&lt;br /&gt;
* &#039;&#039;&#039;&#039;가장 미국적인 미남&#039;&#039;&#039;&#039;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할리우드를 뛰어 넘는 외모의 대표적인 미남 정치인이었다.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사석에서 쿠퍼를 가리켜 &amp;quot;만약 제가 치른 대통령 선거에 그 친구가 나왔다면 여지없이 패하고 말았을 겁니다. 그렇게 생긴 친구는 생전 처음 봤어요. 그리고 그 웃음은 또 뭐라고 표현해야 합니까? 아마 여자 유권자들에게 몰표를 얻었겠죠&amp;quot;라고 평가했다고 한다.&lt;br /&gt;
* 쿠퍼의 외모가 선거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당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191cm의 장신에 조각 같은 외모를 갖춘 쿠퍼는 유세 현장마다 인파가 몰렸는데, 특히 여성 유권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당시 한 신문 기자가 쿠퍼의 유세 현장을 취재하면서 &amp;quot;이 사람이 대통령 후보인지 영화배우인지 모르겠다&amp;quot;고 적었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 [[워런 G. 하딩]] 이후 외모가 선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례로 자주 거론되며, 정치학계에서는 쿠퍼의 사례를 후보자 이미지와 선거 결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데 즐겨 인용한다.&lt;br /&gt;
* [[미국 공화당|공화당]] 정치인들 사이에서 쿠퍼의 인기는 거의 전설적인 수준이다. [[배리 골드워터 (프런티어)|배리 골드워터]] 역시 쿠퍼를 공화당 보수주의의 원형으로 자주 언급했고, [[밥 돌 (프런티어)|밥 돌]]도 선거 운동 과정에서 쿠퍼를 언급하며 &amp;quot;쿠퍼 같은 대통령이 다시 나와야 한다&amp;quot;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lt;br /&gt;
* 신장이 191cm로 역대 대통령 중 3번째로 장신이다. [[미국]]의 경우 대중에게 공개되는 인물들에 대한 태도가 평균적으로 무조건 키가 클수록 좋다는 선입견이 심하다.&lt;br /&gt;
&lt;br /&gt;
==선거 이력==&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border: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연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종류&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구&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득표수 (득표율, 선거인단 수)&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 여부&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비고&lt;br /&gt;
|-&lt;br /&gt;
| 1936&lt;br /&gt;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lt;br /&gt;
| [[미국|몬태나]]&lt;br /&gt;
| rowspan=&amp;quot;3&amp;quot; | {{공화당 (미국)}}&lt;br /&gt;
| &#039;&#039;&#039;n (n.n%)&#039;&#039;&#039;&lt;br /&gt;
| rowspan=&amp;quot;3&amp;quot; | &#039;&#039;&#039;당선 (1위)&#039;&#039;&#039;&lt;br /&gt;
| &#039;&#039;&#039;초선&#039;&#039;&#039;&lt;br /&gt;
|-&lt;br /&gt;
| 1940&lt;br /&gt;
|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미합중국]]&lt;br /&gt;
| &#039;&#039;&#039;30,332,082 (60.78%, 452명)&#039;&#039;&#039;&lt;br /&gt;
| &#039;&#039;&#039;초선&#039;&#039;&#039;&lt;br /&gt;
|-&lt;br /&gt;
| 1944&lt;br /&gt;
| [[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미합중국]]&lt;br /&gt;
| &#039;&#039;&#039;29,694,259 (61.89%, 498명)&#039;&#039;&#039;&lt;br /&gt;
| &#039;&#039;&#039;재선&#039;&#039;&#039;&lt;br /&gt;
|-&lt;br /&gt;
|}&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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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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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프레더릭 크라이스트 트럼프 시니어&amp;lt;br&amp;gt;Frederick Christ Trump Sr.&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5년]] [[10월 11일]]&lt;br /&gt;
|-&lt;br /&gt;
| [[미국|미국 뉴욕 주 뉴욕시]] 브롱스&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1999년]] [[6월 25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국 뉴욕주]] 뉴 하이드 파크&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77년]] [[1월 20일]] ~ [[1981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5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5년]] [[1월 20일]] ~ [[1989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프레더릭 트럼프]]&amp;lt;br&amp;gt;엘리자베스 크라이스트 트럼프&amp;lt;sup&amp;gt;(1879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형제자매&lt;br /&gt;
| 누나 엘리자베스 트럼프&amp;lt;sup&amp;gt;(1904년생)&amp;lt;/sup&amp;gt;&amp;lt;br&amp;gt;남동생 [[존 G. 트럼프]]&amp;lt;sup&amp;gt;(1907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메리 앤 매클라우드 트럼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녀 마리안 트럼프&amp;lt;sup&amp;gt;(1937년생)&amp;lt;/sup&amp;gt;&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차녀 엘리자베스 트럼프&amp;lt;sup&amp;gt;(1942년생)&amp;lt;/sup&amp;gt;&amp;lt;br&amp;gt;차남 [[도널드 트럼프]]&amp;lt;br&amp;gt;삼남 로버트 트럼프&amp;lt;sup&amp;gt;(1948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리치몬드 힐 고등학교&amp;lt;br&amp;gt;[[프랫 인스티튜트]]&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ub&amp;gt;([[루터교회]])&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85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민주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0, 42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lt;br /&gt;
역사상 최고령 취임 [[미국 대통령]]이자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한 대통령이었다.&lt;br /&gt;
==생애==&lt;br /&gt;
===유년기===&lt;br /&gt;
1905년 10월 11일 [[미국|뉴욕]] 브롱스에서 [[바이에른]] 출신 [[독일|독일계]]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친 [[프레드릭 트럼프]]는 트럼프가 13세이던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다. 부친의 이른 죽음으로 트럼프는 어린 나이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는데, 근처 목수 밑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며 목공 기술을 익혔고, 야간 학교와 통신 강좌로 제도와 건축을 독학했으며 이후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건축 관리와 공학을 수학했다. &lt;br /&gt;
&lt;br /&gt;
192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첫 번째 주택을 직접 지었으며, 1926년까지 퀸즈에만 20채 이상의 건물을 완공했다. 이 당시 어머니 엘리자베스와 공동으로 E. 트럼프 앤 선(E. Trump &amp;amp; Son)을 설립했다. 트럼프가 미성년자였던 탓에 어머니가 공식 업무를 처리했으나 실질적인 사업 운영은 트럼프가 주도했다. &lt;br /&gt;
&lt;br /&gt;
1927년 퀸즈에서 열린 [[KKK]] 집회 현장에서 해산 명령 불응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혐의는 이후 기각되었다. 그러나 수십 년 후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대선]] 당시 트럼프가 정계에 진출했을 때 언론에 의해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논란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lt;br /&gt;
===사업가로서의 성장===&lt;br /&gt;
[[경제대공황]]으로 많은 뉴욕 사업가들을 파산으로 몰아넣었으나, 트럼프는 오히려 이를 기회로 활용했다. 공터를 싸게 사들이고 식료품점에 투자하는 한편 파산한 독일계 금융 그룹 하우스 오브 레런크라우스의 자산을 매입해 브루클린 부동산 시장에 진입했다. &lt;br /&gt;
&lt;br /&gt;
우드헤이번에 식료품점인 트럼프 마켓을 운영했으며, 이후 킹 쿨른 체인에 매각했다. 이때부터 트럼프의 사업 방식이 확립되기 시작했는데, 빌린 돈을 극도로 꺼렸으며, 건설 현장을 직접 돌며 바닥에 떨어진 못을 주워 목수들에게 다시 쓰게 할 만큼 철저한 절약가였다. 자체 청소 용액을 직접 조제하고 건물을 최대한 저렴하게 지었다는 일화는 뉴욕 건설업계에서 전설처럼 전해졌다. &lt;br /&gt;
&lt;br /&gt;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군 복무 대신 징병 유예를 받아 사업을 확장했다. 전후 주택난을 정확히 간파한 트럼프는 참전 귀환 군인과 중산층 가족을 위한 대형 아파트 단지 건설에 집중했는데, 연방주택청의 보증을 활용한 저금리 대출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식이었다. 1947년부터 1949년 사이 벤슨허스트에 완공된 쇼어 헤이븐 아파트, 코니아일랜드의 비치 헤이븐 아파트 등 대형 프로젝트를 연달아 성공시켰다.&lt;br /&gt;
&lt;br /&gt;
1954년 [[미국 상원]] 위원회가 공공 계약 이윤 착취 혐의로 트럼프를 조사했다. 정부 저금리 대출을 받기 전 임대료를 170만 달러 초과 징수한 것이 확인되었으며, 트럼프는 상원 위원회에서 정부 프로그램 조작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amp;quot;모든 것이 서류상 합법이었다&amp;quot;는 입장을 고수하며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고 수사 결과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되지 않았다.&lt;br /&gt;
===정계 진출 준비===&lt;br /&gt;
트럼프는 [[민주당|브루클린 민주당]]의 저명한 당원이었다. 정부 보조금을 받는 아파트 건설 사업을 수십 년간 운영하면서 [[미국|뉴욕]]의 시·주 정치인들과 광범위한 인맥을 구축했다. 정치적 후원와 연줄을 적극 활용해 각종 정부 프로그램과 규제를 유리하게 활용하는 방식이 트럼프 사업 모델의 핵심이었다. &lt;br /&gt;
&lt;br /&gt;
1960년대 말 아들 [[도널드 트럼프|도널드]]가 트럼프 매니지먼트에 합류하면서 사업의 일상적 운영을 점차 아들에게 이전하기 시작했다. 1971년 도널드에게 회사 경영권을 넘겨주면서 더 많은 시간을 정치 활동에 쏟게 되었다.&lt;br /&gt;
===1976년 대통령 선거===&lt;br /&gt;
[[민주당]]은 경선에서 뚜렷한 구심점을 찾지 못했다. 그 틈을 파고든 것이 트럼프였는데, 정치 경력이 전무한 부동산 재벌 출신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노린다는 것 자체가 당시 언론의 조롱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의 출마 선언 다음 날 칼럼에서 &amp;quot;부동산 업자가 대통령을?&amp;quot;이라는 제목으로 냉소적인 논평을 실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트럼프는 [[뉴욕]] 브루클린, 퀸즈 노동계층 백인 유권자들 사이에서 예상을 뒤집는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뉴딜]] 이후 정치인들로부터 약속만 받고 실질적 혜택을 체감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쌓인 블루칼라 민주당원들에게 트럼프의 아웃사이더이자 사업가 이미지가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이다.&lt;br /&gt;
&lt;br /&gt;
민주당 기득권 인사들은 트럼프를 무시했으나 초반 예비선거에서 예상 외의 선전이 이어지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1973년 법무부 인종차별 소송 전력이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파헤쳐졌으나 트럼프는 이를 &amp;quot;워싱턴 관료들의 박해&amp;quot;로 역프레이밍하며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기득권 언론과 민주당 지도부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공격받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의 아웃사이더 이미지를 강화했다.&lt;br /&gt;
&lt;br /&gt;
트럼프가 대세론을 이끌며 전당대회에서 다수 대의원을 확보한 트럼프가 결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당내 기득권과 진보파의 강한 반발 속에서도 노동계층, 블루칼라 민주당원들의 압도적 지지가 결정적이었다. 러닝메이트로는 [[미국|메인주]] 상원의원 [[에드먼드 머스키]]를 지명했다.&lt;br /&gt;
&lt;br /&gt;
본선 상대는 현직 대통령인 [[존 코널리]]였다. 닉슨의 부통령으로 스캔들 여파를 안고 있는 코널리에 맞서 트럼프는 닉슨 스캔들로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유권자들의 심리를 정확히 파고드며 코널리에 맞서기 시작한다.&lt;br /&gt;
===대통령 재임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600px; margin:auto; border:2px solid #0d164a; border-collapse:collapse; background:#fff;&amp;quot;&lt;br /&gt;
|-&lt;br /&g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 -4.5px -9px&amp;quot;&amp;gt;[[파일:코널리 트럼프.png]]&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 text-align:center;&amp;quot; |&#039;&#039;&#039;트럼프 당선 이후 코널리-트럼프 회동 장면&#039;&#039;&#039;&lt;br /&gt;
|}&lt;br /&gt;
대통령이 된 후 [[미국|워싱턴]] 기득권에 대한 전면전, 건설 및 인프라 투자를 통한 경제 부양, 그리고 미국 우선주의를 기반으로 힌 동맹 재검토가 그 주요 골자였다. 뉴딜식 국가주도 경제에는 반대했으나, 정부가 직접 짓고 투자하는 방식에는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역사가들은 트럼프를 다소 모순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lt;br /&gt;
&lt;br /&gt;
트럼프는 [[소련]]에 대해 공개적으로는 강경한 자세를 취했으나 실제 외교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행보를 반복했다. 소련을 &#039;&#039;&#039;붉은 깡패들&#039;&#039;&#039;로 부르며 강경하게 비난하다가도, 소련 지도부와의 비공개 접촉 소식이 언론에 유출되어 파문을 일으키는 일이 반복되었다. [[국무부]] 전문 외교관들은 트럼프의 대소 노선을 &amp;quot;일관성이 없다&amp;quot;고 비판했으나, 트럼프는 이를 예측 불가능이 곧 협상력이라고 반박했다. [[나토]] 분담금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며 유럽 동맹국들을 압박했고, &amp;quot;미국이 이득을 보지 못하는 동맹은 재검토해야 한다&amp;quot;는 발언이 서방 동맹 전체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lt;br /&gt;
&lt;br /&gt;
언론과의 전쟁은 재임 기간 내내 이어졌다. 비판적인 언론을 &amp;quot;거짓말쟁이들&amp;quot;로 공개 규정하고 특정 기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CBS]] 등 주요 언론과의 갈등은 임기 4년 내내 단 하루도 끊이지 않았고, [[백악관]] 정례 기자회견은 트럼프의 즉흥 발언과 기자들과의 설전으로 매번 혼란스럽게 끝났으며, 이 장면이 저녁 뉴스의 단골 꼭지가 되었다. 트럼프는 자신에 대한 비판 보도를 두고 &amp;quot;이 나라 언론의 90%는 거짓말 공장&amp;quot;이라고 공언했으며, 지지층은 이 발언에 열광했고 반대층은 민주주의 훼손이라며 격렬히 반발했다.&lt;br /&gt;
&lt;br /&gt;
경제 측면에서 트럼프는 뾰족한 해법을 끝내 내놓지 못했다. 임기 중 [[스태그플레이션]]이 심화되면서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동시에 상승하는 최악의 구도가 연출되었다. 사업가 출신 대통령이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오히려 실망감으로 증폭되어 돌아온 것이다. 트럼프 본인은 경제 침체의 책임을 의회, 연방준비제도, 언론, 전임 행정부에 차례로 돌렸으며, &amp;quot;내가 막지 않았다면 더 나빴을 것&amp;quot;이라는 논리를 반복했고, 지지층은 이를 받아들였으나 중도층은 납득하지 못했다.&lt;br /&gt;
&lt;br /&gt;
그래도 트럼프의 이러한 성향이 당시 워싱턴 정치 전반에 환멸을 느끼던 블루칼라 백인 유권자들의 정서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운데, [[닉슨 스캔들]] 이후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정치인이 아니라는 트럼프의 자기 규정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닌 유권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오죽하면 트럼프에게 비판적인 진영에서도 &amp;quot;트럼프가 정책적으로 기여한 것은 없지만 워싱턴 기득권에 대한 분노를 결집시키는 측면에서는 탁월했다&amp;quot;고 인정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lt;br /&gt;
&lt;br /&gt;
이런 트럼프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재선에는 실패했다. [[1980년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80년 재선]] 도전에서 공화당의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에게 &#039;&#039;&#039;51.3% 대 46.9&#039;&#039;&#039;%로 패배하며 단임으로 임기를 마쳤다. 경제 침체와 끊이지 않는 논란, 4년간 누적된 워싱턴 기득권 전체와의 갈등, 그리고 중도층의 이탈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패배 이후 트럼프는 선거 결과에 강한 불복 의사를 내비쳤다. &amp;quot;선거가 조작되었다&amp;quot;는 주장을 측근들에게 반복했으며 권력 이양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부통령 [[에드먼드 머스키]]가 이를 공개적으로 거부하며 스타센 당선인에게 직접 축하 메시지를 보내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끊어졌다. 트럼프는 머스키를 두고 &amp;quot;역대 최악의 배신자&amp;quot;로 지칭했으며 이후 두 사람은 다시 공개 석상에서 만나지 않았다.&lt;br /&gt;
==평가==&lt;br /&gt;
===긍정적 평가===&lt;br /&gt;
프레드 트럼프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그가 [[워싱턴]] 기득권 정치에 균열을 낸 최초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닉슨 스캔들 (프런티어)|닉슨 스캔들]] 이후 [[미국|미국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분위기 속에서, 정치 경력이 전무한 [[뉴욕]] 부동산 재벌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고 실제로 대통령까지 됐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블루칼라 백인 노동계층, 중서부 농촌 유권자, 뉴욕 서민 아파트들이 민주당에 마지막으로 대규모 결집한 선거가 1976년 트럼프가 출마한 선거였다는 분석이 많다. 이후 이들이 민주당으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트럼프가 변화의 시작점이자 마지막 기회를 놓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lt;br /&gt;
===부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프레드 트럼프는 건물 짓는 법을 알았다. 그는 경제를 짓는 법을 몰랐다. 불행히도 그 둘은 같은 것이 아니다.|1980년,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lt;br /&gt;
{{인용문|나는 자신감을 능력과 혼동하는 많은 사람들을 알아왔다. 프레드 트럼프는 내가 40년의 공직 생활에서 만난 이 혼동의 가장 장대한 사례였을 것이다.|1983년, [[미국|에드먼드 머스키]]}}&lt;br /&gt;
&#039;&#039;&#039;사업가 출신 대통령이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기대가 보기 좋게 빗나갔다.&#039;&#039;&#039; 임기 중 스태그플레이션이 심화되면서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동시에 상승했음에도 트럼프 본인은 경제 침체의 책임을 의회, 연방준비제도, 언론, 전임 행정부에 차례로 돌렸으나 유권자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인 트럼프 특유의 단기 성과 집착과 거시경제에 대한 이해 부족이 정책 실패의 구조적 원인이었다는 분석이 많다.&lt;br /&gt;
&lt;br /&gt;
또한 언론과의 전면전, [[의회]] 무시, 행정명령 남발, 그리고 퇴임 후 선거 결과 불복 시도까지 트럼프 행정부 4년은 미국 민주주의의 비공식적 관행들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기간이었다다. 특히 [[1980년 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80년 재선 패배]] 후 &#039;&#039;&#039;&amp;quot;선거가 조작되었다&amp;quot;는 주장을 반복하며 권력 이양을 거부하려 한 것은 미국 헌정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 중 하나&#039;&#039;&#039;로 평가된다. 부통령 [[미국|에드먼드 머스키]]가 이를 거부하며 정상적인 권력 이양이 이루어졌으나, 이 사건은 미국 정치에서 선거 불복이라는 새로운 위험 요소의 존재를 경고한 선례 중 하나다.&lt;br /&gt;
&lt;br /&gt;
여기에 더해 인종차별 임대 전력, 공공 계약 이윤 착취 의혹, 연방 건설 프로그램 수혜 기업 목록에 포함된 트럼프 연관 업체들 등 이 모든 것이 임기 내내 트럼프의 도덕적 권위를 갉아먹었다. 트럼프는 모든 의혹을 &amp;quot;거짓말쟁이 기자들의 조작&amp;quot;으로 일축했으나, 이해충돌 문제는 임기가 끝난 후에도 계속 제기되었다. 역대 대통령 평가 설문에서 트럼프는 꾸준히 하위권에 머물러 있으며 &amp;quot;가장 논란적인 대통령&amp;quot;과 &amp;quot;가장 준비가 안 된 대통령&amp;quot; 두 가지 항목에서 모두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다.&lt;br /&gt;
==여담==&lt;br /&gt;
* 자식들을 굉장히 엄하게 키웠다고 한다.&lt;br /&gt;
* [[민주당]] 내에서도 호불호가 굉장히 갈리는 대통령이다. 실제로 지지율에서 항상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많았다. 트럼프 정도로 전체 임기 동안 쭉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우세했던 대통령은 트럼프의 재선을 저지한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을 제외하면 없으며, 평균 지지율도 39%로 바이든(40%)를 제외하면 가장 낮다.&lt;br /&gt;
==선거 이력==&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border: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연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종류&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구&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득표수 (득표율, 선거인단 수)&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 여부&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비고&lt;br /&gt;
|-&lt;br /&gt;
| 1976&lt;br /&gt;
|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미합중국]]&lt;br /&gt;
| rowspan=&amp;quot;3&amp;quot; | {{민주당 (미국)}}&lt;br /&gt;
| 37,570,249 (46.08%, &#039;&#039;&#039;278명&#039;&#039;&#039;%)&lt;br /&gt;
| &#039;&#039;&#039;당선 (1위)&#039;&#039;&#039;&lt;br /&gt;
| &#039;&#039;&#039;초선&#039;&#039;&#039;&lt;br /&gt;
|-&lt;br /&gt;
| 1980&lt;br /&gt;
|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미합중국]]&lt;br /&gt;
|39,806,598 (46.01%, 181명)&lt;br /&gt;
| 낙선 (2위)&lt;br /&gt;
| &lt;br /&gt;
|-&lt;br /&gt;
| 1944&lt;br /&gt;
|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미합중국]]&lt;br /&gt;
| &#039;&#039;&#039;45,916,142 (49.56%, 312명)&#039;&#039;&#039;&lt;br /&gt;
| &#039;&#039;&#039;당선 (1위)&#039;&#039;&#039;&lt;br /&gt;
| &#039;&#039;&#039;재선&#039;&#039;&#039;&lt;br /&gt;
|-&lt;br /&gt;
|}&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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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13T12:01:1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lt;/p&gt;
&lt;hr /&gt;
&lt;div&gt;{{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33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게리 쿠퍼}}&amp;lt;br&amp;gt;Gary Coop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프랭크 제임스 쿠퍼&amp;lt;br&amp;gt;Frank James Cooper&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1년]] [[5월 7일]]&lt;br /&gt;
|-&lt;br /&gt;
| [[미국|미국 몬태나 주 헬레나]]&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1961년]] [[5월 13일]] (향년 60세)&lt;br /&gt;
|-&lt;br /&gt;
| [[미국|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묘소&lt;br /&gt;
| 프랭크 제임스 쿠퍼 국립사적지 묘지&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41년]] [[1월 20일]] ~ [[1949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Gary Cooper signature.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찰스 쿠퍼&amp;lt;sup&amp;gt;(1865. 9. 15 ~ 1946. 9. 18.)&amp;lt;/sup&amp;gt;&amp;lt;br&amp;gt;어머니 앨리스 쿠퍼&amp;lt;sup&amp;gt;(1873. 10. 10. ~ 1967. 10. 6)&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베로니카 쿠퍼&amp;lt;sup&amp;gt;(1913. 5. 27. ~ 2000. 2. 16, 1933년 결혼)&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딸 마리아 쿠퍼&amp;lt;sup&amp;gt;(1937년 9월 15일 ~ )&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프린스턴 대학교]] &amp;lt;small&amp;gt;([[정치철학]], [[사학]] / [[학사]])&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성공회]] → [[가톨릭]]&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의원 선수&lt;br /&gt;
| &#039;&#039;&#039;1&#039;&#039;&#039; (상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의원 대수&lt;br /&gt;
| &#039;&#039;&#039;75&#039;&#039;&#039;&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33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lt;br /&gt;
역대 최연소의 나이에 당선되고,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취임한 미국 대통령이자, 최초의 [[20세기]] 출생 대통령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3명의 [[프린스턴 대학교]] 출신 미국 대통령 중 한 명이자, [[에이브러햄 링컨]] 등과 함께 [[미국 공화당]]을 대표하는 존재이자 강하게 지지 받는 정치인으로, 미국 보수층과 공화당 지지자들의 정신적 지주에 그접한 대통령이다.&lt;br /&gt;
==약력==&lt;br /&gt;
* 1924. 주이탈리아 미국대사관 3등 서기관&lt;br /&gt;
* 1926. 주프랑스 미국대사관 2등 서기관&lt;br /&gt;
* 1928. 주영국 미국대사관 1등 서기관&lt;br /&gt;
* 1936. 제75대 미국 연방 상원의원 당선 (몬태나주, 공화당)&lt;br /&gt;
* 1941.1. &#039;&#039;&#039;제33대 [[미국 대통령|미국 대통령]]&#039;&#039;&#039;&lt;br /&gt;
==생애==&lt;br /&gt;
[[미국|미국 몬태나주]] 헬레나에서 1901년 5월 7일에 태어났다. 본명은 프랭크 제임스 쿠퍼.&lt;br /&gt;
&lt;br /&gt;
부모님은 [[잉글랜드]] 이민자 출신으로 헬레나 외곽에 600에이커, 즉 70만 평이 넘는 대농장을 소유하고 있어서 자연스레 어려서부터 형 아서와 어울리며 승마와 카우보이 기술을 터득할 수 있었다. 아버지 찰스 쿠퍼는 몬태나주 대법원 판사로 복무한 법조인이었다.&lt;br /&gt;
&lt;br /&gt;
자식들이 자신들의 뿌리인 [[영국 (동음이의)|영국 문화]]를 익히길 원했던 어머니 앨리스 쿠퍼의 주도로 초등학생 시절 형과 함께 [[영국 (동음이의)|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이때 학교에서 [[프랑스|프랑스어]]를 익혔다. 같은 시기에 [[라틴 문자|라틴어]]도 수학했다. 1912년 귀국해 헬레나로 복학했으며, 이후 몬태나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lt;br /&gt;
&lt;br /&gt;
졸업 후 1919년 뉴저지주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했다. 전공은 [[우드로 윌슨]]과 함께 [[정치철학]], [[사학]]으로, 재학 중 국제법·외교사·정치철학 분야에서 우수한 성취를 보였으며, 교내 토론 클럽과 웅변 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1923년 우등 졸업한다.&lt;br /&gt;
===외교관===&lt;br /&gt;
대학교 졸업 직후 [[미국 (동음이의)|미국 국무부]]에 합류해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초임지는 [[이탈리아|이탈리아 로마]]였으며, 이후 [[프랑스|프랑스 파리]], [[영국 (동음이의)|영국 런던]]을 순차적으로 거쳤다. 외교관으로 생활하며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라틴어 역시 문서 독해 수준으로 활용했다. 발음은 프랑스 현지인들도 만족하는 수준이었다고 전해진다.&lt;br /&gt;
&lt;br /&gt;
로마 근무 시절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공고화되는 과정을 현장에서 목격했으며, 파리 근무 시절에는 [[독일|바이마르 공화국]]의 불안정과 프랑스의 대독 유화 기조를 관찰했다. 런던 근무 시절에는 [[영국 (동음이의)|영국 외무부]] 관계자들과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 당시, 쿠퍼는 국무부 내에서 유럽 정세 분석 보고서로 상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1930년대 들어서는 에티오피아 위기, 라인란트 재무장, 스페인 내전 등 유럽의 연쇄적 위기 상황에 관한 분석으로 워싱턴 정가에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1937년 이후 [[일본]]의 [[중국]] 침략이 가시화되면서 국무부 내 태평양 담당 라인과도 긴밀히 협력했다. 이 무렵 쿠퍼는 국무부 내에서 유럽과 태평양 양쪽 정세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외교관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lt;br /&gt;
===정계 입문과 대선 출마===&lt;br /&gt;
한편 1934년 [[미국|몬태나]]로 일시 귀환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1936년 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039;&#039;&#039;이는 엄청난 이변이었는데, 당시 루스벨트의 뉴딜 지지층이 두터웠던 몬태나에서 공화당 후보가 승리한 것은 충격적인 결과&#039;&#039;&#039;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외교관 경력이 본업이었던 만큼 상원의원으로서의 활동은 주로 외교위원회에 집중되었으며, 세입위원회에서도 재정 보수주의 노선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유럽 정세에 관해 당내 고립주의 강경파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독자적 노선을 취했으며, &amp;quot;미국의 지속적 무관심은 결국 더 큰 개입을 불러올 것&amp;quot;이라는 논지를 반복적으로 제기했다.&lt;br /&gt;
&lt;br /&gt;
이후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은 뚜렷한 선두 주자 없이 혼전 양상으로 시작되었는데,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된 것은 뉴욕 검사장 출신의 [[토머스 E. 듀이]]였다. 듀이는 검사 시절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미국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 유죄 판결로 이끌며 &#039;&#039;&#039;&amp;quot;갱버스터&amp;quot;&#039;&#039;&#039;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명사가 된 인물로, 1938년 뉴욕 주지사 선거에서 현직 허버트 레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한 선전이 오히려 1940년 경선 유력 주자로 부상하는 발판이 되었다.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로버트 A. 태프트]]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듀이의 대항마로 부상했다. 태프트는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중서부와 남부 공화당 조직을 공략했다.&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600px; margin-left: auto; margin-right:auto;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center;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padding: 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display: block; overflow: hidden;&amp;quot;&amp;gt;[[파일:쿠퍼 선출.png|600px|style=display:block; width:100%; height:auto;&amp;quo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쿠퍼 역시 경선 초반부터 이 두 후보와 함께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되었다. 1936년 상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38년 [[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 언론에 반복 보도되면서 &amp;quot;외교 전문 상원의원&amp;quot;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외교관·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과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가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 (프런티어)|아서 반덴버그]] 역시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유지했다.&lt;br /&gt;
&lt;br /&gt;
당시 쿠퍼는 스스로를 고립주의자와 관여론자 사이 어딘가에 위치시키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유럽 현장을 직접 경험한 외교관 출신으로서 위기의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미국의 직접적 군사 개입에는 여전히 유보적 입장을 견지했다. 이러한 쿠퍼의 성향은 완전한 고립주의를 고수하는 태프트 계열과도, 적극적 관여론을 주장하는 동부 국제파와도 구별되는 것으로, 오히려 당내 폭넓은 계파를 아우를 수 있는 유연한 입지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이로 인해 전당대회 당시 듀이와 태프트, 쿠퍼의 3강 구도라는 흐름이 이어졌으나, 6월 [[미국|필라델피아]] 전당대회에서 양상이 급변했다. 1차 투표에서 듀이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 미치지 못했고, 2·3차 투표에서도 3명의 후보가 팽팽히 맞서며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4차 투표부터 각 후보의 지지 대의원들이 이탈하기 시작하면서 절충 후보 물색 움직임이 가시화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부상했다.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쿠퍼 지지 움직임이 급격히 확산되었고, 4차 투표에서 쿠퍼가 태프트를 제치고 1위로. 이후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으며, 러닝메이트로는 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를 지명했다. 당내 고립주의파를 달래는 동시에 중서부 대형주의 표심을 잡기 위한 인선으로, 반덴버그의 중서부 기반이 쿠퍼의 서부 지역기반을 보완하는 지역 균형 인선이기도 했다.&lt;br /&gt;
&lt;br /&gt;
본선 상대는 [[민주당]]의 [[웬델 윌키 (프런티어)|웬델 윌키]]였다. 윌키는 원래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루스벨트가 3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민주당 내 루스벨트 색채가 옅어지자 유력 대선 후보군으로도 불리운다.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부상했고,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지명되었다. 러닝메이트는 [[미국|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였다. 남부 수성을 노린 인선이었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lt;br /&gt;
&lt;br /&gt;
선거 운동 과정에서 두 후보의 노선 차이는 생각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윌키가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반면, 쿠퍼는 미국의 직접 개입에는 신중하되 유럽 정세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인식하는 &#039;&#039;&#039;&amp;quot;조건부 관여론자&amp;quot;&#039;&#039;&#039;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했다. 쿠퍼 캠프는 &amp;quot;무분별한 개입도, 무책임한 방관도 아닌 냉철한 현실 판단&amp;quot;을 선거 전략으로 내세우며 고립주의 강경파와 관여론자 양쪽의 표심을 동시에 공략하는 전략을 택했다. 내정에서는 뉴딜로 인한 연방 재정 팽창 비판, 연방 권한의 주 환원, 소기업·농장주 보호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선거 운동이 본격화되던 1940년 여름, 유럽 전황이 결정적인 변수로 부상했다. 5월 [[독일]]의 [[프랑스|프랑스 함락]]에 이어 [[영국]] 본토 항공전이 전개되면서 전쟁이 대서양 건너 현실로 다가온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두 후보의 외교·안보 역량 비교로 쏠렸다. 유럽 현장에서 직접 외교 실무를 수행하며 이 위기의 본질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쿠퍼와 기업인 출신의 윌키 사이에서, &amp;quot;이 위기를 누가 더 현실적으로 다룰 수 있는가&amp;quot;라는 질문은 쿠퍼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구도를 만들어냈다. 쿠퍼 캠프는 이를 최대한 활용해 외교관 경력과 유럽 현장 경험을 선거 후반 운동의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으로 전환했다.&lt;br /&gt;
&lt;br /&gt;
여기에 민주당 내부 분열이 겹쳤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구심력을 잃은 민주당은 전당대회 과정에서부터 계파 간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뉴욕 기반의 자유주의자인 윌키에 대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 사이에서 뚜렷한 거부감이 형성되었으며, 루스벨트 열성 지지층 일부도 FDR의 후계자로서 윌키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이미 균열이 시작된 민주당 연합은 본선에서도 봉합되지 않았으며, 경합주인 텍사스, 테네시, 켄터키에서의 민주당 투표율 저하로 이어졌다.&lt;br /&gt;
&lt;br /&gt;
한편 쿠퍼의 외모 역시 선거 과정에서 적잖은 화제가 되었다. 190cm에 달하는 장신에 단정한 외모를 갖춘 쿠퍼는 유세 현장에서 군중의 시선을 압도했으며, 특히 여성 유권자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당시 언론에서는 [[워런 G. 하딩]] 이후 가장 &amp;quot;대통령답게 생긴&amp;quot; 후보라는 평가가 잇따랐으며, 외교관 출신 특유의 절제된 언행과 차분한 카리스마가 더해지면서 &amp;quot;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amp;quot;라는 이미지가 유권자들에게 효과적으로 각인되었다. 유세 현장에서 쿠퍼가 등장할 때마다 군중이 몰리는 현상이 반복되었고, 일부 유세지에서는 행사 정원을 크게 초과하는 인파가 집결해 경호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lt;br /&gt;
&lt;br /&gt;
결국 선거 결과, 쿠퍼의 압도적 대승이었다. &#039;&#039;&#039;득표율 60.8% 대 38.7%, 선거인단 452 대 79로 쿠퍼가 윌키를 압도적으로 이겼다.&#039;&#039;&#039; 뉴잉글랜드, 중부 대서양, 중서부, 서부 전역을 석권했으 경합주인 켄터키·테네시·버지니아·텍사스에서도 쿠퍼가 우세를 점했다. 윌키는 앨라배마·미시시피·사우스캐롤라이나·루이지애나·조지아·아칸소·플로리다·노스캐롤라이나 등 딥 사우스 8개 주만 겨우 지켜냈다. 민주당으로서는 1920년 이후 최악의 선거 참패로 기록되었으며, 루스벨트 없는 민주당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선거로 평가받는다.&lt;br /&gt;
===대통령 재임===&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600px; margin-left: auto; margin-right:auto;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center;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padding: 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display: block; overflow: hidden;&amp;quot;&amp;gt;[[파일:쿠퍼 싸인.png|600px|style=display:block; width:100%; height:auto;&amp;quot;]]&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대통령이 된 후 쿠퍼가 펼친 정책은 크게 세 축으로 요약된다. 연방 지출 축소와 감세, 태평양 우선 원칙에 입각한 전시 전략, 그리고 전후 세력권 협상에서의 냉철한 현실주의이다.&lt;br /&gt;
&lt;br /&gt;
취임 직후 [[게리 쿠퍼 행정부 (프런티어)|쿠퍼 행정부]]는 [[뉴딜]] 체제에서 팽창한 연방 관료제의 점진적 축소에 착수했다. 일부 공공사업 프로그램의 규모를 줄이고 연방 기관 통폐합을 추진했으며, 중소기업과 농장주에 대한 규제 완화를 병행했다. 뉴딜을 &amp;quot;미국적 자립 정신의 침식&amp;quot;으로 규정한 그의 선거 공약이 실제 행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다만 농업 보조금과 핵심 인프라 예산만큼은 현실적 이유로 유지했으며, [[진주만 공습]] 이후에는 전시 예산 편성이 불가피해지면서 재정 긴축 기조는 사실상 후순위로 밀렸다.&lt;br /&gt;
&lt;br /&gt;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쿠퍼 행정부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는데, 쿠퍼는 이튿날 의회에 대일 선전포고를 요청했고, 독일과 이탈리아의 선전포고에 맞대응해 유럽 참전도 결정했다. 쿠퍼는 전쟁 수행의 기본 전략으로 태평양 우선 원칙을 채택했다. 유럽은 영국과 소련이 지상에서 버티는 동안 미국은 물자 지원과 제공권 확보에 집중하고, 주력 전투력은 태평양에 투입한다는 구도였다. [[윈스턴 처칠|처칠]]은 이 결정에 격렬히 반발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조기 실현을 강하게 요구했으나, 쿠퍼는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미국이 결정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0세기를 풍미한 두 거목이 전시라는 공동 목표 아래 협력하면서도 끝내 완전히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는 않았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소련]]과의 관계에서 쿠퍼의 반공주의 성향으로, 독일 격퇴라는 공동 목표 하에 소련에 대한 무기대여법 지원은 유지했으나 명시적인 조건을 달았다. 지원의 대가로 전후 동유럽 처리 문제와 소련군의 진격 범위에 관한 사전 협의를 요구했으며, [[이오시프 스탈린]]은 물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일정 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쿠퍼는 스탈린을 두고 측근들에게 &amp;quot;[[아돌프 히틀러]]와 다른 방식으로 위험한 인물&amp;quot;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으로 전해지며, 회담 자리에서도 개인적 친밀감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실무적 협상에만 집중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lt;br /&gt;
&lt;br /&gt;
[[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44년 대통령 선거]]에서 쿠퍼는 &#039;&#039;&#039;득표율 61.9%를 기록하며 압도적으로 재선에 성공&#039;&#039;&#039;했다. 전시 대통령 프리미엄과 태평양 전선에서의 연이은 승전보가 맞물린 결과였는데, 민주당은 이번에도 유력한 대항마를 내세우지 못했으며, &amp;quot;전쟁을 이기고 있는 대통령을 바꿀 이유가 없다&amp;quot;는 유권자 심리가 지배적이었다. 쿠퍼는 미국 역사상 전시 재선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lt;br /&gt;
&lt;br /&gt;
재선 임기 중 1945년 [[독일]]의 항복과 [[일본]]의 항복을 연이어 맞이하며 전쟁을 종전으로 이끌었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쿠퍼의 현실주의 외교는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동유럽 일부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을 묵시적으로 인정하되 그 범위를 [[폴란드]] 동부·[[루마니아]]·[[불가리아]] 수준으로 제한하려 했다. 태평양에서는 소련의 대일 참전 요청을 제한적으로만 수용함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는 데 일정 부분 성공했다.&lt;br /&gt;
==평가==&lt;br /&gt;
===긍정적 평가===&lt;br /&gt;
{{인용문|쿠퍼는 내가 협상 테이블에서 마주한 인물 중 가장 조용하고 가장 위험한 사람이었다. 말수가 적었다. 그러나 한번 선을 그으면 어떤 힘으로도 그것을 움직일 수 없었다.|[[영국|윈스턴 처칠]], 《The Hinge of Fate》}}&lt;br /&gt;
{{인용문|쿠퍼의 뒤를 잇는 것은 명장이 지은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모든 것이 견고했다. 단 하나의 문제는 그것이 내 집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내 집으로 만드는 데 4년이 걸렸다.|1957년, [[미국|토마스 E. 듀이]]}}&lt;br /&gt;
{{인용문|쿠퍼와 나는 셀 수 없이 많이 전략에 대해 의견이 달랐다. 그는 몇 가지에서 틀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에서 옳았다. 태평양이 미국의 미래가 결정될 곳이라는 것. 역사가 그가 옳았음을 증명했다.|[[미국|더글라스 맥아더]], 《Reminiscences》}}&lt;br /&gt;
&#039;&#039;&#039;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 중 한 명&#039;&#039;&#039;이다. 퇴임 후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각종 대통령 평가 설문에서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과 함께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대통령이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특히 이례적이다. 그나마 진보 진영에서도 노골적으로 까기가 어려운 대통령이라는 점이 쿠퍼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보수층과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정신적 지주 취급을 받으며, 21세기 현재도 공화당은 쿠퍼 행정부를 계승하는 정당임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다.&lt;br /&gt;
&lt;br /&gt;
외교 분야에서의 평가가 특히 높다. 외교관 출신 대통령답게 전시 외교 무대에서 [[윈스턴 처칠]]과 [[레프 트로츠키]]를 상대로 [[미국]]의 국익을 최대한 뽑아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소련]]의 대일 참전을 제한적으로만 허용해 [[한반도]]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한 것은, 이 결정 하나로 한반도의 운명 자체가 바뀌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lt;br /&gt;
&lt;br /&gt;
전후 유럽 재건 과정에서도 쿠퍼만의 색깔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전쟁 중에는 유럽 지상군 투입을 최소화했던 쿠퍼가 전후에는 대규모 경제 지원을 통해 [[유럽]]을 미국 중심의 서방 질서에 묶어두는 전략을 택한 것인데,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접근이었다. 집단안보체제 구축에서도 유럽에 미군을 영구 주둔시키는 것에는 신중했으나 소련의 서유럽 진출을 막기 위한 방위조약 체결에는 적극적이었고, 그 결과 탄생한 대서양 집단안보체제는 강력한 군사동맹보다는 [[미국]]·[[영국]]·[[프랑스]] 중심의 제한적 방위조약 성격이 강했다.&lt;br /&gt;
&lt;br /&gt;
전시 경제 운영 방식도 높이 평가받는다. [[루스벨트]]식 국가주도 경제와는 달리 쿠퍼는 민간기업과 군수산업의 생산력을 동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쟁 수행을 위한 정부 지출은 과감하게 늘렸지만 그 돈이 흘러가는 방식은 민간기업을 통하도록 설계한 것인데, 이 덕분에 전시 생산량이 빠르게 증가했고 전쟁이 끝난 후 군수산업을 민간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도 비교적 순탄하게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뉴딜]]식 국가주도 경제체제로의 영구 전환을 거부하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비상경제 체제를 정상화했다는 점에서 재정 보수주의자로서의 원칙을 끝까지 지켰다는 평가를 받는다.&lt;br /&gt;
&lt;br /&gt;
군 지휘관들과의 관계에서도 쿠퍼의 스타일이 잘 드러난다.[[더글라스 맥아더]], [[조지 C. 마셜]] 등에게 작전상 상당한 자율성을 부여하면서도 전략적 목표와 병력 배치의 최종 결정권은 대통령이 쥔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맥아더가 특유의 독단적 스타일로 대통령의 방침을 넘어서려 했을 때 이를 단호하게 제어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lt;br /&gt;
===부정적 평가===&lt;br /&gt;
솔직히 부정적 평가가 많지 않은 대통령이다. 그나마 가장 자주 거론되는 비판은 유럽 지상군 투입 최소화 결정이다. 태평양 우선 원칙을 밀어붙인 결과 유럽 전선이 불필요하게 길어졌다는 시각이 일부 역사가들 사이에서 제기되며, [[윈스턴 처칠]]과의 갈등을 자초하면서 영미 동맹 관계에 균열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다만 이 결정이 결과적으로 태평양 전선의 조기 종결에 기여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서, 비판으로서의 설득력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다.&lt;br /&gt;
&lt;br /&gt;
일부 진보 성향 역사가들은 뉴딜 축소 기조가 취약 계층 보호망을 약화시켰다는 점을 지적하지만, 전시라는 특수 상황과 압도적인 국민적 지지를 고려할 때 이 비판이 주류 역사 평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amp;quot;그래도 단점을 찾아야 하니까 찾는&amp;quot; 수준의 비판에 가깝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lt;br /&gt;
==당대 각국 정상들과의 관계==&lt;br /&gt;
===윈스턴 처칠===&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600px; margin-left: auto; margin-right:auto;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center;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padding: 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line-height: 0; overflow: hidden;&amp;quot;&amp;gt;[[파일:쿠퍼 처칠.png|6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전시 동맹국 수장이라는 구조상 긴밀하게 협력할 수 밖에 없었지만, 두 사람이 진심으로 죽이 맞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lt;br /&gt;
&lt;br /&gt;
[[윈스턴 처칠|처칠]]은 특유의 과장된 화법으로 쿠퍼와의 관계를 여러 자리에서 친밀하게 묘사한 반면, 쿠퍼는 처칠에 대해 공개적으로 특별한 감정을 표현한 적이 거의 없었으며, 측근들의 회고에 의하면 쿠퍼는 처칠에 대해 탁월한 전략가라고 평했으나 언제나 [[영국]]으로 귀결된다는 평을 동시에 낸 것으로 전해졌다. &lt;br /&gt;
&lt;br /&gt;
실제로 두 사람의 충돌은 재임 기간 내내 반복되었는데, 가장 큰 갈등 지점은 쿠퍼의 [[태평양]] 우선 전략이었다. 쿠퍼가 [[유럽]] 지상군 투입 최소화 방심을 고수하자 처칠은 격렬하게 반발하며 &amp;quot;미국이 유럽을 버렸다&amp;quot;는 표현가지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고, 쿠퍼는 이에 대해서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미국이 결정한다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후 식민지 질서 문제에서도 영국의 제국적 이해관계를 노골적으로 관철하려는 처칠의 입장과 반복적으로 마찰을 빚었다. [[샤를 드골]] 뮨제에서도 의견이 갈렸는데, 처칠이 드골을 [[프랑스|자유 프랑스]]의 유일한 합법적 지도자로 전폭적으로 지지한 반면, 쿠퍼는 드골의 권위주의적 기질을 경계하며 처칠과 다른 입장을 취했다.&lt;br /&gt;
===레프 트로츠키===&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max-width:600px; margin-left: auto; margin-right:auto;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 center;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padding: 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line-height: 0; overflow: hidden;&amp;quot;&amp;gt;[[파일:트로츠키-쿠퍼-처칠.png|6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lt;br /&gt;
둘의 관계는 &#039;&#039;&#039;거래 가능한 적대&#039;&#039;&#039;였다. 이념적으로 정반대였고 전략적으로도 충돌했지만, [[독일]]이라는 공동의 적이 존재하는 동안 최소한의 협력을 유지해야 했다.&lt;br /&gt;
&lt;br /&gt;
쿠퍼는 외교관 시절 유럽에서 소련의 팽창을 직접 목격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레프 트로츠키|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을 단순하 이념이 아니라 실질적인 안보 위협으로 규정했다.&lt;br /&gt;
&lt;br /&gt;
1943년 11월, [[테헤란 회담 (프런티어)|테헤란 회담]]에서 처음 대면한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악수를 나누는 순간부터 싸늘했다고 전해지는데, 트로츠키는 특유의 날카로운 화법으로 먼저 [[미국]]의 [[태평양]] 우선 전략을 비판했고, 쿠퍼는 짧게 받아친 것으로 알려졌다. 회다메 배석했던 미국 측 참모의 회고록에 의하면 쿠퍼는 트로츠키와의 첫 만남 직후 &amp;quot;예상했던 것보다 더 위험한 인물&amp;quot;이라는 짧은 평가를 남겼다고 한다. 트로츠키 역시 쿠퍼를 단순한 자본주의 정치인으로 보지 않았다. 소련 측 외교 문서에 따르면 트로츠키는 귀국 후 &amp;quot;쿠퍼는 설득하기 어려운 정치인이었다. 거래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amp;quot;는 평가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lt;br /&gt;
&lt;br /&gt;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내 협력도 화해도 아닌, 서로를 정확히 파악한 채 거리를 두는 냉랭한 대립으로 요약된다. 쿠퍼와 트로츠키의 관계는 전후에도 봉학되지 않았고, 이후 [[냉전]]의 출발점이 되었다.&lt;br /&gt;
==기타==&lt;br /&gt;
* &#039;&#039;&#039;&#039;가장 미국적인 미남&#039;&#039;&#039;&#039;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할리우드를 뛰어 넘는 외모의 대표적인 미남 정치인이었다.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사석에서 쿠퍼를 가리켜 &amp;quot;만약 제가 치른 대통령 선거에 그 친구가 나왔다면 여지없이 패하고 말았을 겁니다. 그렇게 생긴 친구는 생전 처음 봤어요. 그리고 그 웃음은 또 뭐라고 표현해야 합니까? 아마 여자 유권자들에게 몰표를 얻었겠죠&amp;quot;라고 평가했다고 한다.&lt;br /&gt;
* 쿠퍼의 외모가 선거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당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191cm의 장신에 조각 같은 외모를 갖춘 쿠퍼는 유세 현장마다 인파가 몰렸는데, 특히 여성 유권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당시 한 신문 기자가 쿠퍼의 유세 현장을 취재하면서 &amp;quot;이 사람이 대통령 후보인지 영화배우인지 모르겠다&amp;quot;고 적었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 [[워런 G. 하딩]] 이후 외모가 선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례로 자주 거론되며, 정치학계에서는 쿠퍼의 사례를 후보자 이미지와 선거 결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데 즐겨 인용한다.&lt;br /&gt;
* [[미국 공화당|공화당]] 정치인들 사이에서 쿠퍼의 인기는 거의 전설적인 수준이다. [[배리 골드워터 (프런티어)|배리 골드워터]] 역시 쿠퍼를 공화당 보수주의의 원형으로 자주 언급했고, [[밥 돌 (프런티어)|밥 돌]]도 선거 운동 과정에서 쿠퍼를 언급하며 &amp;quot;쿠퍼 같은 대통령이 다시 나와야 한다&amp;quot;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lt;br /&gt;
* 신장이 191cm로 역대 대통령 중 3번째로 장신이다. [[미국]]의 경우 대중에게 공개되는 인물들에 대한 태도가 평균적으로 무조건 키가 클수록 좋다는 선입견이 심하다.&lt;br /&gt;
&lt;br /&gt;
==선거 이력==&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border: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연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종류&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구&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득표수 (득표율, 선거인단 수)&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 여부&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비고&lt;br /&gt;
|-&lt;br /&gt;
| 1936&lt;br /&gt;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lt;br /&gt;
| [[미국|몬태나]]&lt;br /&gt;
| rowspan=&amp;quot;3&amp;quot; | {{공화당 (미국)}}&lt;br /&gt;
| &#039;&#039;&#039;n (n.n%)&#039;&#039;&#039;&lt;br /&gt;
| rowspan=&amp;quot;3&amp;quot; | &#039;&#039;&#039;당선 (1위)&#039;&#039;&#039;&lt;br /&gt;
| &#039;&#039;&#039;초선&#039;&#039;&#039;&lt;br /&gt;
|-&lt;br /&gt;
| 1940&lt;br /&gt;
|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미합중국]]&lt;br /&gt;
| &#039;&#039;&#039;30,332,082 (60.78%, 452명)&#039;&#039;&#039;&lt;br /&gt;
| &#039;&#039;&#039;초선&#039;&#039;&#039;&lt;br /&gt;
|-&lt;br /&gt;
| 1944&lt;br /&gt;
| [[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미합중국]]&lt;br /&gt;
| &#039;&#039;&#039;29,694,259 (61.89%, 498명)&#039;&#039;&#039;&lt;br /&gt;
| &#039;&#039;&#039;재선&#039;&#039;&#039;&lt;br /&gt;
|-&lt;br /&gt;
|}&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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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습장:Eiffe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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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해럴드 스타센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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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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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 (프런티어)|{{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br /&gt;
===민주당: 웬델 윌키===&lt;br /&gt;
===공화당: 게리쿠퍼===&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500px; margin:0 auto; background:#E81018; border:2px solid #E81018; color:#fff;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font-size:1.25em; line-height:1.4; padding:10px 6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lt;br /&gt;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공화당 전당대회 지명 후보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fff; border:0; line-height:0;&amp;quot; | [[파일:쿠퍼 반덴버그 (프런티어).png|500px|cent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E81018; border:0;&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 margin:0;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border-right:1px solid #fff;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게리 쿠퍼}}&amp;lt;br&amp;gt;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아서 반덴버그}}&amp;lt;br&amp;gt;미시간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530</id>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530"/>
		<updated>2026-08-13T07:44:0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공화당: 게리쿠퍼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0년]] [[11월 5일]]}}&amp;lt;br&amp;gt;&#039;&#039;&#039;1940년 대선&#039;&#039;&#039;&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width=25%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일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1940년]] [[11월 5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 (프런티어)|{{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br /&gt;
===민주당: 웬델 윌키===&lt;br /&gt;
===공화당: 게리쿠퍼===&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500px; margin:0 auto; background:#E81018; border:2px solid #E81018; color:#fff;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font-size:1.25em; line-height:1.4; padding:10px 6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lt;br /&gt;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공화당 전당대회 지명 후보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fff; border:0; line-height:0;&amp;quot; | [[파일:쿠퍼 반덴버그 (프런티어).png|500px|cent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E81018; border:0;&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 margin:0;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border-right:1px solid #fff;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게리 쿠퍼}}&amp;lt;br&amp;gt;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아서 반덴버그}}&amp;lt;br&amp;gt;미시간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529</id>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529"/>
		<updated>2026-08-13T07:43:4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공화당: 게리쿠퍼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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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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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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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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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 (프런티어)|{{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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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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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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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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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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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br /&gt;
===민주당: 웬델 윌키===&lt;br /&gt;
===공화당: 게리쿠퍼===&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500px; margin:0 auto; background:#E81018; border:2px solid #E81018; color:#fff;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font-size:1.25em; line-height:1.4; padding:10px 6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lt;br /&gt;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 /&amp;gt;공화당 전당대회 지명 후보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7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fff; border:0; line-height:0;&amp;quot; | [[파일:쿠퍼 반덴버그 (프런티어).png|500px|center]]&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0; background:#E81018; border:0;&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 margin:0;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text-align:center;&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border-right:1px solid #fff;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게리 쿠퍼}}&amp;lt;br&amp;gt;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 style=&amp;quot;width:50%; padding:8px 4px; background:#E81018; color:#fff; border:0; vertical-align:middle;&amp;quot; | {{+2|아서 반덴버그}}&amp;lt;br&amp;gt;미시간주 연방 상원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528</id>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528"/>
		<updated>2026-08-13T07:33:3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0년]] [[11월 5일]]}}&amp;lt;br&amp;gt;&#039;&#039;&#039;1940년 대선&#039;&#039;&#039;&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width=25%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일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1940년]] [[11월 5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 (프런티어)|{{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br /&gt;
===민주당: 웬델 윌키===&lt;br /&gt;
===공화당: 게리쿠퍼===&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 100%; max-width: 500px; margin: 0 auto; border: 1px solid #E81018; border-collapse: collapse; text-align: center; font-family: sans-serif;&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 #E81018; color: #ffffff; padding: 12px 8px; font-size: 1.25em; font-weight: bold; line-height: 1.3;&amp;quot; |&lt;br /&gt;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공화당 전당대회 지명 후보자&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50%;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padding: 8px; border: 1px solid #E81018; font-size: 0.95em;&amp;quot; | 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 style=&amp;quot;width: 50%;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padding: 8px; border: 1px solid #E81018; font-size: 0.95em;&amp;quot; | 부통령 후보 지명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 0; border: 1px solid #E81018; background-color: #ffffff;&amp;quot; |&lt;br /&gt;
[[파일:트럼프-밴스 캠페인.jpg|center|100px|alt=트럼프-밴스 캠페인]]&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 #E81018; padding: 0; border: 1px solid #E81018;&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 text-align: center; color: #ffffff;&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 50%; padding: 10px 5px; vertical-align: middle; border-right: 1px solid rgba(255,255,255,0.2);&amp;quo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font-size: 1.15em; font-weight: bold;&amp;quot;&amp;gt;[[도널드 트럼프|&amp;lt;span style=&amp;quot;color: #ffffff; text-decoration: none;&amp;quot;&amp;gt;도널드 트럼프&amp;lt;/span&amp;gt;]]&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font-size: 0.85em; opacity: 0.9;&amp;quot;&amp;gt;제45대 미국 대통령&amp;lt;/span&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 50%; padding: 10px 5px; vertical-align: middle;&amp;quo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font-size: 1.15em; font-weight: bold;&amp;quot;&amp;gt;[[JD 밴스|&amp;lt;span style=&amp;quot;color: #ffffff; text-decoration: none;&amp;quot;&amp;gt;JD 밴스&amp;lt;/span&amp;gt;]]&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font-size: 0.85em; opacity: 0.9;&amp;quot;&amp;gt;오하이오주 연방 상원의원&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padding: 10px; border: 1px solid #E81018; background-color: #ffffff;&amp;quot; |&lt;br /&gt;
[[파일:2024년 트럼프-밴스 선거 로고.svg|center|100px|alt=2024년 트럼프-밴스 선거 로고]]&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 #E81018; color: #ffffff; padding: 12px 8px; border: 1px solid #E81018;&amp;quot; |&lt;br /&gt;
[[Make America Great Again|&amp;lt;span style=&amp;quot;color: #ffffff; font-size: 1.1em; font-weight: bold; text-decoration: none;&amp;quot;&amp;gt;MAKE AMERICA GREAT AGAIN!&amp;lt;br&amp;gt;미국을 다시 위대하게!&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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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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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파일:쿠퍼 반덴버그 (프런티어).pn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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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13T07:28:2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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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526"/>
		<updated>2026-08-13T07:26:3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0년]] [[11월 5일]]}}&amp;lt;br&amp;gt;&#039;&#039;&#039;1940년 대선&#039;&#039;&#039;&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width=25%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일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1940년]] [[11월 5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 (프런티어)|{{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lt;br /&gt;
==최종 후보==&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525</id>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525"/>
		<updated>2026-08-13T07:24:2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해럴드 스타센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0년]] [[11월 5일]]}}&amp;lt;br&amp;gt;&#039;&#039;&#039;1940년 대선&#039;&#039;&#039;&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width=25%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일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1940년]] [[11월 5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lt;br /&gt;
==최종 후보==&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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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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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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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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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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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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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1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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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프레드 트럼프 (프런티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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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13T03:02:1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lt;/p&gt;
&lt;hr /&gt;
&lt;div&gt;{{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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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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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프레더릭 크라이스트 트럼프 시니어&amp;lt;br&amp;gt;Frederick Christ Trump Sr.&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5년]] [[10월 11일]]&lt;br /&gt;
|-&lt;br /&gt;
| [[미국|미국 뉴욕 주 뉴욕시]] 브롱스&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1999년]] [[6월 25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국 뉴욕주]] 뉴 하이드 파크&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77년]] [[1월 20일]] ~ [[1981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5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5년]] [[1월 20일]] ~ [[1989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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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프레더릭 트럼프]]&amp;lt;br&amp;gt;엘리자베스 크라이스트 트럼프&amp;lt;sup&amp;gt;(1879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형제자매&lt;br /&gt;
| 누나 엘리자베스 트럼프&amp;lt;sup&amp;gt;(1904년생)&amp;lt;/sup&amp;gt;&amp;lt;br&amp;gt;남동생 [[존 G. 트럼프]]&amp;lt;sup&amp;gt;(1907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메리 앤 매클라우드 트럼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녀 마리안 트럼프&amp;lt;sup&amp;gt;(1937년생)&amp;lt;/sup&amp;gt;&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차녀 엘리자베스 트럼프&amp;lt;sup&amp;gt;(1942년생)&amp;lt;/sup&amp;gt;&amp;lt;br&amp;gt;차남 [[도널드 트럼프]]&amp;lt;br&amp;gt;삼남 로버트 트럼프&amp;lt;sup&amp;gt;(1948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리치몬드 힐 고등학교&amp;lt;br&amp;gt;[[프랫 인스티튜트]]&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ub&amp;gt;([[루터교회]])&amp;lt;/sub&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85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민주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미국]]의 제40, 42대 [[미국 대통령|대통령]].&lt;br /&gt;
&lt;br /&gt;
역사상 최고령 취임 [[미국 대통령]]이자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한 대통령이었다.&lt;br /&gt;
==생애==&lt;br /&gt;
===유년기===&lt;br /&gt;
1905년 10월 11일 [[미국|뉴욕]] 브롱스에서 [[바이에른]] 출신 [[독일|독일계]]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친 [[프레드릭 트럼프]]는 트럼프가 13세이던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다. 부친의 이른 죽음으로 트럼프는 어린 나이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는데, 근처 목수 밑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며 목공 기술을 익혔고, 야간 학교와 통신 강좌로 제도와 건축을 독학했으며 이후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건축 관리와 공학을 수학했다. &lt;br /&gt;
&lt;br /&gt;
192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첫 번째 주택을 직접 지었으며, 1926년까지 퀸즈에만 20채 이상의 건물을 완공했다. 이 당시 어머니 엘리자베스와 공동으로 E. 트럼프 앤 선(E. Trump &amp;amp; Son)을 설립했다. 트럼프가 미성년자였던 탓에 어머니가 공식 업무를 처리했으나 실질적인 사업 운영은 트럼프가 주도했다. &lt;br /&gt;
&lt;br /&gt;
1927년 퀸즈에서 열린 [[KKK]] 집회 현장에서 해산 명령 불응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혐의는 이후 기각되었다. 그러나 수십 년 후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대선]] 당시 트럼프가 정계에 진출했을 때 언론에 의해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논란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lt;br /&gt;
===사업가로서의 성장===&lt;br /&gt;
[[경제대공황]]으로 많은 뉴욕 사업가들을 파산으로 몰아넣었으나, 트럼프는 오히려 이를 기회로 활용했다. 공터를 싸게 사들이고 식료품점에 투자하는 한편 파산한 독일계 금융 그룹 하우스 오브 레런크라우스의 자산을 매입해 브루클린 부동산 시장에 진입했다. &lt;br /&gt;
&lt;br /&gt;
우드헤이번에 식료품점인 트럼프 마켓을 운영했으며, 이후 킹 쿨른 체인에 매각했다. 이때부터 트럼프의 사업 방식이 확립되기 시작했는데, 빌린 돈을 극도로 꺼렸으며, 건설 현장을 직접 돌며 바닥에 떨어진 못을 주워 목수들에게 다시 쓰게 할 만큼 철저한 절약가였다. 자체 청소 용액을 직접 조제하고 건물을 최대한 저렴하게 지었다는 일화는 뉴욕 건설업계에서 전설처럼 전해졌다. &lt;br /&gt;
&lt;br /&gt;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군 복무 대신 징병 유예를 받아 사업을 확장했다. 전후 주택난을 정확히 간파한 트럼프는 참전 귀환 군인과 중산층 가족을 위한 대형 아파트 단지 건설에 집중했는데, 연방주택청의 보증을 활용한 저금리 대출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식이었다. 1947년부터 1949년 사이 벤슨허스트에 완공된 쇼어 헤이븐 아파트, 코니아일랜드의 비치 헤이븐 아파트 등 대형 프로젝트를 연달아 성공시켰다.&lt;br /&gt;
&lt;br /&gt;
1954년 [[미국 상원]] 위원회가 공공 계약 이윤 착취 혐의로 트럼프를 조사했다. 정부 저금리 대출을 받기 전 임대료를 170만 달러 초과 징수한 것이 확인되었으며, 트럼프는 상원 위원회에서 정부 프로그램 조작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amp;quot;모든 것이 서류상 합법이었다&amp;quot;는 입장을 고수하며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고 수사 결과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되지 않았다.&lt;br /&gt;
===정계 진출 준비===&lt;br /&gt;
트럼프는 [[민주당|브루클린 민주당]]의 저명한 당원이었다. 정부 보조금을 받는 아파트 건설 사업을 수십 년간 운영하면서 [[미국|뉴욕]]의 시·주 정치인들과 광범위한 인맥을 구축했다. 정치적 후원와 연줄을 적극 활용해 각종 정부 프로그램과 규제를 유리하게 활용하는 방식이 트럼프 사업 모델의 핵심이었다. &lt;br /&gt;
&lt;br /&gt;
1960년대 말 아들 [[도널드 트럼프|도널드]]가 트럼프 매니지먼트에 합류하면서 사업의 일상적 운영을 점차 아들에게 이전하기 시작했다. 1971년 도널드에게 회사 경영권을 넘겨주면서 더 많은 시간을 정치 활동에 쏟게 되었다.&lt;br /&gt;
===1976년 대통령 선거===&lt;br /&gt;
[[민주당]]은 경선에서 뚜렷한 구심점을 찾지 못했다. 그 틈을 파고든 것이 트럼프였는데, 정치 경력이 전무한 부동산 재벌 출신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노린다는 것 자체가 당시 언론의 조롱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의 출마 선언 다음 날 칼럼에서 &amp;quot;부동산 업자가 대통령을?&amp;quot;이라는 제목으로 냉소적인 논평을 실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트럼프는 [[뉴욕]] 브루클린, 퀸즈 노동계층 백인 유권자들 사이에서 예상을 뒤집는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뉴딜]] 이후 정치인들로부터 약속만 받고 실질적 혜택을 체감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쌓인 블루칼라 민주당원들에게 트럼프의 아웃사이더이자 사업가 이미지가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이다.&lt;br /&gt;
&lt;br /&gt;
민주당 기득권 인사들은 트럼프를 무시했으나 초반 예비선거에서 예상 외의 선전이 이어지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1973년 법무부 인종차별 소송 전력이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파헤쳐졌으나 트럼프는 이를 &amp;quot;워싱턴 관료들의 박해&amp;quot;로 역프레이밍하며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기득권 언론과 민주당 지도부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공격받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의 아웃사이더 이미지를 강화했다.&lt;br /&gt;
&lt;br /&gt;
트럼프가 대세론을 이끌며 전당대회에서 다수 대의원을 확보한 트럼프가 결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당내 기득권과 진보파의 강한 반발 속에서도 노동계층, 블루칼라 민주당원들의 압도적 지지가 결정적이었다. 러닝메이트로는 [[미국|메인주]] 상원의원 [[에드먼드 머스키]]를 지명했다.&lt;br /&gt;
&lt;br /&gt;
본선 상대는 현직 대통령인 [[존 코널리]]였다. 닉슨의 부통령으로 스캔들 여파를 안고 있는 코널리에 맞서 트럼프는 닉슨 스캔들로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유권자들의 심리를 정확히 파고드며 코널리에 맞서기 시작한다.&lt;br /&gt;
===대통령 재임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600px; margin:auto; border:2px solid #0d164a; border-collapse:collapse; background:#fff;&amp;quot;&lt;br /&gt;
|-&lt;br /&g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 -4.5px -9px&amp;quot;&amp;gt;[[파일:코널리 트럼프.png]]&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 text-align:center;&amp;quot; |&#039;&#039;&#039;트럼프 당선 이후 코널리-트럼프 회동 장면&#039;&#039;&#039;&lt;br /&gt;
|}&lt;br /&gt;
대통령이 된 후 [[미국|워싱턴]] 기득권에 대한 전면전, 건설 및 인프라 투자를 통한 경제 부양, 그리고 미국 우선주의를 기반으로 힌 동맹 재검토가 그 주요 골자였다. 뉴딜식 국가주도 경제에는 반대했으나, 정부가 직접 짓고 투자하는 방식에는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역사가들은 트럼프를 다소 모순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lt;br /&gt;
&lt;br /&gt;
트럼프는 [[소련]]에 대해 공개적으로는 강경한 자세를 취했으나 실제 외교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행보를 반복했다. 소련을 &#039;&#039;&#039;붉은 깡패들&#039;&#039;&#039;로 부르며 강경하게 비난하다가도, 소련 지도부와의 비공개 접촉 소식이 언론에 유출되어 파문을 일으키는 일이 반복되었다. [[국무부]] 전문 외교관들은 트럼프의 대소 노선을 &amp;quot;일관성이 없다&amp;quot;고 비판했으나, 트럼프는 이를 예측 불가능이 곧 협상력이라고 반박했다. [[나토]] 분담금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며 유럽 동맹국들을 압박했고, &amp;quot;미국이 이득을 보지 못하는 동맹은 재검토해야 한다&amp;quot;는 발언이 서방 동맹 전체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lt;br /&gt;
&lt;br /&gt;
언론과의 전쟁은 재임 기간 내내 이어졌다. 비판적인 언론을 &amp;quot;거짓말쟁이들&amp;quot;로 공개 규정하고 특정 기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CBS]] 등 주요 언론과의 갈등은 임기 4년 내내 단 하루도 끊이지 않았고, [[백악관]] 정례 기자회견은 트럼프의 즉흥 발언과 기자들과의 설전으로 매번 혼란스럽게 끝났으며, 이 장면이 저녁 뉴스의 단골 꼭지가 되었다. 트럼프는 자신에 대한 비판 보도를 두고 &amp;quot;이 나라 언론의 90%는 거짓말 공장&amp;quot;이라고 공언했으며, 지지층은 이 발언에 열광했고 반대층은 민주주의 훼손이라며 격렬히 반발했다.&lt;br /&gt;
&lt;br /&gt;
경제 측면에서 트럼프는 뾰족한 해법을 끝내 내놓지 못했다. 임기 중 [[스태그플레이션]]이 심화되면서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동시에 상승하는 최악의 구도가 연출되었다. 사업가 출신 대통령이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오히려 실망감으로 증폭되어 돌아온 것이다. 트럼프 본인은 경제 침체의 책임을 의회, 연방준비제도, 언론, 전임 행정부에 차례로 돌렸으며, &amp;quot;내가 막지 않았다면 더 나빴을 것&amp;quot;이라는 논리를 반복했고, 지지층은 이를 받아들였으나 중도층은 납득하지 못했다.&lt;br /&gt;
&lt;br /&gt;
그래도 트럼프의 이러한 성향이 당시 워싱턴 정치 전반에 환멸을 느끼던 블루칼라 백인 유권자들의 정서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운데, [[닉슨 스캔들]] 이후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정치인이 아니라는 트럼프의 자기 규정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닌 유권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오죽하면 트럼프에게 비판적인 진영에서도 &amp;quot;트럼프가 정책적으로 기여한 것은 없지만 워싱턴 기득권에 대한 분노를 결집시키는 측면에서는 탁월했다&amp;quot;고 인정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lt;br /&gt;
&lt;br /&gt;
이런 트럼프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재선에는 실패했다. [[1980년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1980년 재선]] 도전에서 공화당의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에게 &#039;&#039;&#039;51.3% 대 46.9&#039;&#039;&#039;%로 패배하며 단임으로 임기를 마쳤다. 경제 침체와 끊이지 않는 논란, 4년간 누적된 워싱턴 기득권 전체와의 갈등, 그리고 중도층의 이탈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패배 이후 트럼프는 선거 결과에 강한 불복 의사를 내비쳤다. &amp;quot;선거가 조작되었다&amp;quot;는 주장을 측근들에게 반복했으며 권력 이양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부통령 [[에드먼드 머스키]]가 이를 공개적으로 거부하며 스타센 당선인에게 직접 축하 메시지를 보내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끊어졌다. 트럼프는 머스키를 두고 &amp;quot;역대 최악의 배신자&amp;quot;로 지칭했으며 이후 두 사람은 다시 공개 석상에서 만나지 않았다.&lt;br /&gt;
==여담==&lt;br /&gt;
* 자식들을 굉장히 엄하게 키웠다고 한다.&lt;br /&gt;
* [[민주당]] 내에서도 호불호가 굉장히 갈리는 대통령이다. 실제로 지지율에서 항상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많았다. 트럼프 정도로 전체 임기 동안 쭉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우세했던 대통령은 트럼프의 재선을 저지한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을 제외하면 없으며, 평균 지지율도 39%로 바이든(40%)를 제외하면 가장 낮다.&lt;br /&gt;
==선거 이력==&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border: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연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종류&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구&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득표수 (득표율, 선거인단 수)&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 여부&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비고&lt;br /&gt;
|-&lt;br /&gt;
| 1976&lt;br /&gt;
|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미합중국]]&lt;br /&gt;
| rowspan=&amp;quot;3&amp;quot; | {{민주당 (미국)}}&lt;br /&gt;
| 37,570,249 (46.08%, &#039;&#039;&#039;278명&#039;&#039;&#039;%)&lt;br /&gt;
| &#039;&#039;&#039;당선 (1위)&#039;&#039;&#039;&lt;br /&gt;
| &#039;&#039;&#039;초선&#039;&#039;&#039;&lt;br /&gt;
|-&lt;br /&gt;
| 1980&lt;br /&gt;
|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미합중국]]&lt;br /&gt;
|39,806,598 (46.01%, 181명)&lt;br /&gt;
| 낙선 (2위)&lt;br /&gt;
| &lt;br /&gt;
|-&lt;br /&gt;
| 1944&lt;br /&gt;
|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프런티어)|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미합중국]]&lt;br /&gt;
| &#039;&#039;&#039;45,916,142 (49.56%, 312명)&#039;&#039;&#039;&lt;br /&gt;
| &#039;&#039;&#039;당선 (1위)&#039;&#039;&#039;&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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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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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습장:Eiffe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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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12T09:57:3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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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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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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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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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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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lt;br /&gt;
==최종 후보==&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amp;lt;/div&amp;gt;&lt;br /&gt;
&amp;lt;/div&amp;gt;&lt;br /&gt;
|}&lt;br /&gt;
{{목차}}&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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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해럴드 스타센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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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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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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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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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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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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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lt;br /&gt;
==최종 후보==&lt;br /&gt;
==해럴드 스타센==&lt;br /&gt;
{{프런티어}}&lt;br /&gt;
{{역대 미국 대통령 (프런티어)}}&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x-width:420px; border:2px solid #0d164a; font-size:10.5pt; float:right&amp;quo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D1635, #0d164a 20%, #0d164a 80%, #0D1635); color:#fff&amp;quot; |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amp;lt;br&amp;gt;{{글씨 크기|14|해럴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Stasse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margin:-4.5px -9.0px&amp;quot;&amp;gt;[[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42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본명&lt;br /&gt;
| 해럴드 에드워드 스타센&amp;lt;br&amp;gt;Harold Edward Stassen&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출생&lt;br /&gt;
| [[1907년]] [[4월 13일]]&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세인트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width:100px; 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사망&lt;br /&gt;
| [[2001년]] [[3월 4일]] (향년 93세)&lt;br /&gt;
|-&lt;br /&gt;
| [[미국|미네소타 주]] 블루밍턴&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재임기간&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amp;quot; | 제33대 대통령&lt;br /&gt;
|-&lt;br /&gt;
| [[1981년]] [[1월 20일]] ~ [[1985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서명&lt;br /&gt;
| [[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150px]]&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2&amp;quot; | &amp;lt;div class=&amp;quot;mw-customtoggle-JFK_Jr&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color:#000; font-size:10.5pt&amp;quot;&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2px&amp;quot;&amp;gt;&#039;&#039;&#039;[ 펼치기 · 접기 ]&#039;&#039;&#039;&amp;lt;/div&amp;gt;&amp;lt;/div&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mw-collapsible mw-collapsed&amp;quot; id=&amp;quot;mw-customcollapsible-JFK_Jr&amp;quot; style=&amp;quot;border:1px solid transparen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class=&amp;quot;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amp;quot; style=&amp;quot;margin:0px -15px 0px; background:none; border: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left&amp;quot;&amp;gt;&lt;br /&gt;
{| style=&amp;quot;width:calc(100% + 5px);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 margin-bottom:-13px; text-align:left; font-size:10.5p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부모&lt;br /&gt;
| 아버지 윌리엄 앤드류 스타센&amp;lt;br&amp;gt;어머니 엘시 엠마 뮐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배우자&lt;br /&gt;
| 에스더 글루위&amp;lt;sup&amp;gt;(1912년생)&amp;lt;/sup&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자녀&lt;br /&gt;
| 장남 글렌 스타센&amp;lt;br&amp;gt;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amp;lt;br&amp;gt;장녀 캐슬린 스타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학력&lt;br /&gt;
|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학사&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종교&lt;br /&gt;
| [[개신교]] &amp;lt;small&amp;gt;([[침례교]])&amp;lt;/small&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신체&lt;br /&gt;
| 191cm&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소속 정당&lt;br /&gt;
| {{공화당 (미국)}}&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D%8C%8C%EC%9D%BC:%ED%95%B4%EB%9F%B4%EB%93%9C_%EC%8A%A4%ED%83%80%EC%84%BC_%EC%B9%9C%ED%95%84.svg&amp;diff=181463</id>
		<title>파일:해럴드 스타센 친필.sv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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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Eiffel: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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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파일: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pn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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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11T16:24:5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lt;/p&gt;
&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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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460"/>
		<updated>2026-08-11T16:24:0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시카고 전당대회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0년]] [[11월 5일]]}}&amp;lt;br&amp;gt;&#039;&#039;&#039;1940년 대선&#039;&#039;&#039;&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width=25%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일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1940년]] [[11월 5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lt;br /&gt;
==최종 후보==&lt;br /&gt;
==해럴드 스타센==&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459</id>
		<title>연습장:Eiffe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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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8-11T16:22:4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0년]] [[11월 5일]]}}&amp;lt;br&amp;gt;&#039;&#039;&#039;1940년 대선&#039;&#039;&#039;&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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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1940년]] [[11월 5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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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br /&gt;
==해럴드 스타센==&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457</id>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457"/>
		<updated>2026-08-11T16:06:1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0년]] [[11월 5일]]}}&amp;lt;br&amp;gt;&#039;&#039;&#039;1940년 대선&#039;&#039;&#039;&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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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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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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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br /&gt;
==최종 후보==&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456</id>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456"/>
		<updated>2026-08-11T16:05:2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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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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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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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454</id>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454"/>
		<updated>2026-08-11T15:51:5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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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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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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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민주당===&lt;br /&gt;
[[민주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3선 출마 포기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내 권력 공백이 심화된 상태에서 루스벨트는 후계자 지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lt;br /&gt;
&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존 낸스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루스벨트와 공개적으로 불화를 드러낸 상태였다. 루스벨트의 불출마 선언은 가너를 비롯한 보수 민주당원들에게 당권 탈환의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동시에 진보파에게는 뉴딜 유산을 계승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웬델 윌키&#039;&#039;&#039;&lt;br /&gt;
윌키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으로, 커먼웰스 앤 서던 전력회사 경영진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특히 TVA가 자신의 회사를 압박하는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루스벨트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본래 국제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였던 윌키는 민주당 내에서 FDR 이후의 대안 후보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제임스 팔리&#039;&#039;&#039;&lt;br /&gt;
루스벨트의 전 선거 캠프 책임자이자 우정장관을 지낸 [[제임스 팔리|팔리]]는 당 조직 내에서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스벨트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독자적인 대선 도전을 준비해왔다. 뉴딜에 대해 루스벨트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중도 성향이었으며, 당 조직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종교적 배경이 일부 [[개신교]] 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정책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존 낸스 가너&#039;&#039;&#039;&lt;br /&gt;
[[미국|텍사스]] 출신의 보수파 가너는 루스벨트의 뉴딜 팽창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미 1939년 말부터 대선 도전을 공개적으로 준비해온 인물이었다. 남부 및 서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 임했으며 연방 지출 축소, 의회 독립성 회복, 뉴딜 일부 정책 철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루스벨트 지지층이 여전히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가너의 반뉴딜 노선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헨리 A. 월리스&#039;&#039;&#039;&lt;br /&gt;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국 농업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약한 월러스는 당내 진보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뉴딜 유산의 충실한 계승자로 자처했으며, 농민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탄탄한 지지 기반을 보유했다. 그러나 친[[소련]] 성향과 급진적 진보 노선이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당내 연합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다.&lt;br /&gt;
====시카고 전당대회====&lt;br /&gt;
민주당 전당대회는 1940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일리노이주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전체 대의원 수는 1,093명이었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은 547표였다.&lt;br /&gt;
&lt;br /&gt;
전당대회 개막 전부터 당내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루스벨트의 불출마로 인한 구심점 상실이 각 계파 간 갈등으로 표면화되었다.&lt;br /&gt;
&lt;br /&gt;
대통령 후보 투표는 7월 18일 시작되었는데, 팔리는 당 조직 인사들의 지지를, 가너는 남부 보수파의 지지를, 밀러드 타이딩스 상원의원은 반뉴딜 대안으로 일부 지지를 확보했다.&lt;br /&gt;
&lt;br /&gt;
*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웬델 윌키|윌키]]가 선두를 달렸으나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다. [[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월리스]]가 2위, [[제임스 팔리|팔리]]가 3위, [[존 낸스 가너|존 낸스 가너]]가 4위를 기록했다. 어느 후보도 과반 확보가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2·3차 투표에서도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윌키와 월러스 사이의 이념적 간극이 너무 커서 지지 대의원들이 상대방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를 꺼렸다. 가너 지지 남부 대의원들은 윌키도 월러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5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에서 팔리가 사퇴를 선언하며 윌키 지지를 선언했다. 팔리의 지지 대의원들이 윌키에게 이동하면서 윌키가 과반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차 투표에서 가너 지지 대의원 일부도 결국 윌키로 선회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가 윌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윌키가 과반을 확보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뒤이어 연쇄적인 대의원 이동이 이루어지며 최종적으로 압도적 다수의 지지가 윌키에게 집중되었다.&lt;br /&gt;
&lt;br /&gt;
부통령 후보로는 켄터키주 출신 상원 원내대표 [[앨번 W. 바클리]]가 지명되었다. 남부 보수 민주당원들을 달래기 위한 인선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미 균열이 시작된 당내 연합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448</id>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448"/>
		<updated>2026-08-11T15:37:5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 공화당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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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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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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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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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width=25%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일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1940년]] [[11월 5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알프 랜던]]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압도적인 참패를 당하며 공화당은 4년간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열된 채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후보 경선은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전당대회 개막 시점까지 1,000명의 대의원 중 300명만이 특정 후보에게 서약한 상태였고, 대다수 대의원이 미결 상태로 전당대회까지 이어져 진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장이 형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시 공화당은 크게 두 가지 노선 갈등을 안고 있었다. 첫째는 &#039;&#039;&#039;[[뉴딜]]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039;&#039;&#039;였다. 뉴딜 전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재정 보수파와, 일부 뉴딜 정책의 대중적 인기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온건파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둘째는 &#039;&#039;&#039;대외 정책 노선&#039;&#039;&#039; 문제였다.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고립주의 강경파와, [[영국]] 등 [[연합국]]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세력 사이의 균열이 경선 내내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lt;br /&gt;
====주요 후보====&lt;br /&gt;
* &#039;&#039;&#039;토머스 E. 듀이&#039;&#039;&#039;&lt;br /&gt;
[[미국|맨해튼]] 지방검사 출신의 듀이는 경선 초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럭키 루치아노, 왁시 고든 등 뉴욕 마피아 거물들을 연이어 기소하고 유죄 판결로 이끌며 갱버스터라는 별명을 얻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었다. 1938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현직인 허버트 리먼에게 불과 1%p 차이로 패배하며 1940년 경선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만 38세라는 젊은 나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의 경험 부재가 약점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었고 특히 5월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면서 유럽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듀이의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lt;br /&gt;
&lt;br /&gt;
* &#039;&#039;&#039;로버트 A. 태프트&#039;&#039;&#039;&lt;br /&gt;
[[미국|오하이오주]] 상원의원 태프는 당내 재정 보수파와 고립주의 강경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다.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드]]의 아들이기도 했고, &#039;&#039;&#039;Mr. Republica&#039;&#039;&#039;라고 불릴 만큼 당내 정통 보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뉴딜]] 비판과 연방 권한 축소, 강경한 고립주의 노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내 주류 조직과 중립적인 정치인 대의원들 사이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와 카리스마 면에서 쿠퍼는 물론이고 듀이에게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lt;br /&gt;
&lt;br /&gt;
* &#039;&#039;&#039;게리 쿠퍼&#039;&#039;&#039;&lt;br /&gt;
[[미국|몬태나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경선 초반부터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앞서 언급된 듀이, 태프트와 함께 &#039;&#039;&#039;3강&#039;&#039;&#039;을 구축했다. 1936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외교위원회에서 유럽 정세에 관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쿠퍼는, 1983년 [[뮌헨|뮌헨 협정]] 전후로 유럽 위기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발언들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아서 네빌 체임벌린|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amp;quot;협상이 아니라 시간만 벌어주는 것&amp;quot;이라고 지적한 상원 외교위 발언은 당시 AP통신을 통해 전국에 타전되며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그리고 서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이 경선 초반부터 쿠퍼를 여타 후보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아서 반덴버그&#039;&#039;&#039;&lt;br /&gt;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반덴버그는 경선 초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경선 운동을 펼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경선 전반에 걸쳐 듀이, 태프트, 쿠퍼와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직접 선거운동보다는 전당대회에서 교착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절충 후보로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lt;br /&gt;
&lt;br /&gt;
* 기타 후보군&lt;br /&gt;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 재기를 노렸으나 1929년 대공황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아서 제임스는 자국 주의 72표를 장악하는 지역 후보 역할을 했다. 뉴햄프셔 상원의원 스타일스 브리지스, 신문 발행인 프랭크 가넷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lt;br /&gt;
===예비선거 과정===&lt;br /&gt;
예비선거는 [[미국|뉴햄프셔]]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현재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 배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주에서 대의원은 예비선거가 아닌 주별 당 조직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서약한 대의원 비율이 낮았다.&lt;br /&gt;
&lt;br /&gt;
초반 예비선거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선두를 달렸다. [[미국|위스콘신]], [[미국|일리노이]], [[미국|뉴저지]] 등 주요 주에서 듀이가 우세를 보이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로버트 A. 태프트|태프트]]는 오하이오 등 중서부 보수 텃밭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동부에서는 약세였다. 쿠퍼는 태프트와 함께 중서부, 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를 쌓아나갔다.&lt;br /&gt;
&lt;br /&gt;
그러나 5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변했는데, 1940년 5월 [[독일|독일군]]이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들을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 전쟁이 돌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듀이와 태프트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외교관 경험을 갖춘 쿠퍼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lt;br /&gt;
===필라델피아 전당대회===&lt;br /&gt;
1940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미국|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홀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였고, 1,0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집결했다. &lt;br /&gt;
&lt;br /&gt;
전당대회는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는데, 기조연설을 맡은 [[해럴드 스타센 (프런티어)|해럴드 스타센]] 미네소타 주지사&amp;lt;ref&amp;gt;향후 1984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amp;lt;/ref&amp;gt;의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대의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로비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1·2·3차 투표&#039;&#039;&#039;&lt;br /&gt;
1차 투표에서 [[토머스 E. 듀이 (프런티어)|듀이]]가 360표로 선두를 달렸다. 과반인 501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게리 쿠퍼 (프런티어)|쿠퍼]]가 189표로 2위를 기록했으며, 태프트는 3위권을 유지했다.&lt;br /&gt;
&lt;br /&gt;
2차 투표에서 듀이가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과반에는 크게 못 미쳤고, 태프트도 지지 대의원을 추가로 끌어모았으나 2위인 쿠퍼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쿠퍼의 상승세였는데, 1차에서 180표에 불과했으나 3차 투표에서는 247표를 확보했다. 반면 듀이는 360표에서 315표까지 떨어진 상태였다.&lt;br /&gt;
&lt;br /&gt;
* &#039;&#039;&#039;4차 투표&#039;&#039;&#039;&lt;br /&gt;
4차 투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듀이 지지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탈이 시작되었는데, 유럽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교, 안보 경험이 부족한 듀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태프트 역시 고립주의 강경 노선이 급박한 국제 정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확장에 한계를 드러냈다.&lt;br /&gt;
&lt;br /&gt;
절충 후보를 찾는 움직임이 서부와 중서부 주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경선 내내 2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쿠퍼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외교관과 상원의원 경력을 통해 쌓인 실무 경험, 특정 당내 파벌에 얽히지 않은 중립적 이미지, 서부 출신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4차 투표에서 쿠퍼는 290표를 돌파하며 급격히 부상했고, 듀이를 역전해 1위가 되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5차 투표&#039;&#039;&#039;&lt;br /&gt;
듀이는 여전히 2위를 유지했으나 표가 지속적으로 이탈하면서 역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서부와 중서부 대의원들의 쿠퍼 지지 움직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아서 반덴버그|반덴버그 ]] 지지 대의원들도 대거 쿠퍼 쪽으로 선회했다. 반덴버그 본인도 이 시점에서 공개적으로 쿠퍼 지지를 선언하며 흐름을 가속화했다.&lt;br /&gt;
&lt;br /&gt;
* &#039;&#039;&#039;6차 투표&#039;&#039;&#039;&lt;br /&gt;
6차 투표에서 쿠퍼가 과반을 확보하며 후보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듀이와 태프트 측 대의원들이 연쇄적으로 쿠퍼 지지로 전환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전당대회장은 쿠퍼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최종 6차 투표 결과는 쿠퍼 739표, 태프트 128표, 듀이 57표, 기타 76표였다.&lt;br /&gt;
&lt;br /&gt;
최종 부통령 후보로는 [[미국|미시간주]]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가 지명되었다.&lt;br /&gt;
&lt;br /&gt;
===민주당===&lt;br /&gt;
{{인용문|&#039;&#039;&#039;Tomorrow Begins Today&amp;lt;br&amp;gt;미래는 오늘 시작된다&#039;&#039;&#039;|2000 케네디-브로 티켓 슬로건}}&lt;br /&gt;
[[댄 퀘일 행정부 (아메리칸 프린스)|퀘일 행정부]]의 낮은 지지율로 [[민주당]]은 이번 대선을 충분히 승리할 수 있는 선거라고 보았다. 민주당 내에서는 일찍부터 후보군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했는데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부상한 인물이 [[존 F. 케네디 주니어 (아메리칸 프린스)|존 F. 케네디 주니어]]였다.&lt;br /&gt;
&lt;br /&gt;
케네디는 1994년 [[아메리칸 프린스|뉴욕주]] 상원의원 당선 직후 부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압도적인 이름값과 대중적 인지도, 그리고 젊고 호감형인 이미지로 인해 당선 직후부터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어 왔다.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전국 순회 강연, 지역 당 조직과의 교류 등을 통해 민주당 내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였다.&lt;br /&gt;
&lt;br /&gt;
케네디에 맞선 주요 경쟁자로는 [[아메리칸 프린스|뉴저지주]] 상원의원 [[빌 브래들리]], [[아메리칸 프린스|코네티컷주]] 상원의원 [[조 리버만 (아메리칸 프린스)|조 리버만]], 그리고 전 [[아메리칸 프린스|매사추세츠]] 주지사이자,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아메리칸 프린스)|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인 [[마이클 듀카키스 (아메리칸 프린스)|마이클 듀카키스]]가 있었다.&lt;br /&gt;
&lt;br /&gt;
케네디는 아이오와 코커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포함한 초반 경선 일정에서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리하며 사실상 경선을 조기에 종결시켰다. 슈퍼 화요일 이후 브래들리와 리버만은 잇따라 경선 중단을 선언했으며, 듀카키스 역시 뒤이어 완주를 포기했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케네디는 사실상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로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했다.&lt;br /&gt;
&lt;br /&gt;
케니디는 부통령 후보로 [[아메리칸 프린스|루이지애나주]] 연방 상원의원인 [[존 브로 (아메리칸 프린스)|존 브로]]를 지명했다. [[아메리칸 프린스|뉴욕]] 상원의원이자 북동부, 도심 지역 기반의 진보적 이미지가 강한 케네디와 달리, 브로는 딥사우스 출신의 중도실용주의 협상가로서 오랜 상원 경력을 통해 초당적 조정 능력을 인정받아온 인물이다. 이 지명은 케네디의 상대적 약점으로 지적되던 남부 지역 기반과 국정 경험 부족을 동시에 보완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되었다.&lt;br /&gt;
{{목차}}&lt;/div&gt;</summary>
		<author><name>Eiffel</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446</id>
		<title>연습장:Eiffel</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evewiki.kr/w/index.php?title=%EC%97%B0%EC%8A%B5%EC%9E%A5:Eiffel&amp;diff=181446"/>
		<updated>2026-08-11T15:08:5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Eiffel: &lt;/p&gt;
&lt;hr /&gt;
&lt;div&gt;=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ff; color:#000; float:right; width:100%; max-width:500px; border: 2px solid #0d164a; text-align:center; font-size:10.5pt; box-sizing:border-box;&amp;quot;&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글씨 크기|14.5|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amp;lt;br&amp;gt;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order:none; 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1940년 대선 결과(에펠).sv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 padding: 4px;&amp;quot; | &#039;&#039;&#039;{{align|left|{{large|윌키}} {{글씨 크기|9|52인 (14.9%)}}}} {{align|right|{{large|✔}} {{글씨 크기|9|(85.1%) 452인}} {{large|쿠퍼}}}}&#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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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color: #000; margin:0; text-align: center; width: 100%; border-collapse: collapse;&amp;quot;&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36년]] [[11월 3일]]}}&amp;lt;br&amp;gt;[[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36년 대선]]&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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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00;&amp;quot; | →&lt;br /&gt;
| width=&amp;quot;30%&amp;quot; | {{글씨 크기|8.5|[[1944년]] [[11월 7일]]}}&amp;lt;br&amp;gt;[[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1944년 대선]]&lt;br /&gt;
|}&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lt;br /&gt;
|-&lt;br /&gt;
! width=25%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일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1940년]] [[11월 5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투표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align=left | 62.5% {{small|[[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글씨 색|#ff0000|▲ 5.6%p}}]]}}&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선거 결과&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후보&lt;br /&gt;
| width=37.5% | [[민주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0044C9; font-size: 0.85em&amp;quot;&amp;gt;민주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웬델 윌키|{{글씨 색|#0044C9|웬델 윌키}}]]&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앨번 W. 바클리|{{글씨 색|#0044C9|앨번 W. 바클리}}]]&#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 width=37.5% | [[공화당 (미국)|&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margin: 0px 0px; padding: 1px 4px; border-radius: 3px; color: #fff; background-color:#E81018; font-size: 0.85em&amp;quot;&amp;gt;공화당&amp;lt;/span&amp;gt;]]&amp;lt;br&amp;gt;&amp;lt;div style=&amp;quot;margin: 3px 0 0 0; text-align: left; display: inline-block;&amp;quot;&amp;gt;&#039;&#039;&#039;&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정&amp;lt;/span&amp;gt; [[게리 쿠퍼|{{글씨 색|#E81018|게리 쿠퍼}}]]&amp;lt;br&amp;gt;&amp;lt;span style=&amp;quot;display: inline; padding: 1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D164A; color: #FFF; font-size: 0.75em&amp;quot;&amp;gt;부&amp;lt;/span&amp;gt; [[아서 반덴버그|{{글씨 색|#E81018|아서 반덴버그}}]]&#039;&#039;&#039;&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홈스테이트&lt;br /&gt;
| {{small|&#039;&#039;&#039;윌키&#039;&#039;&#039;}} [[미국|뉴욕]]&amp;lt;br&amp;gt;{{small|&#039;&#039;&#039;바클리&#039;&#039;&#039;}} [[미국|켄터키]]&lt;br /&gt;
| {{small|&#039;&#039;&#039;쿠퍼&#039;&#039;&#039;}} [[미국|몬태나]]&amp;lt;br&amp;gt;{{small|&#039;&#039;&#039;반덴버그&#039;&#039;&#039;}} [[미국|미시간]]&lt;br /&gt;
|-&lt;br /&gt;
!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승리 주&lt;br /&gt;
| 8&lt;br /&gt;
| &#039;&#039;&#039;42 + D.C.&#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선거인단&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14.9%, #E81018 14.9%);&amp;quot; |&lt;br /&gt;
|-&lt;br /&gt;
| 79인&lt;br /&gt;
| &#039;&#039;&#039;452인&#039;&#039;&#039;&lt;br /&gt;
|-&lt;br /&gt;
!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f5f5f5; color:#0d164a;&amp;quot; | 전국 득표&lt;br /&gt;
| colspan=&amp;quot;3&amp;quot; style=&amp;quot;color:#fff;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4C9 38.7%, #bbb 38.7%, #bbb 39.2%, #E81018 39.2%);&amp;quot; |&lt;br /&gt;
|-&lt;br /&gt;
| 19,329,606&amp;lt;br&amp;gt;38.7%&lt;br /&gt;
| &#039;&#039;&#039;30,332,082&amp;lt;br&amp;gt;60.8%&#039;&#039;&#039;&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0d164a; color:#fff;&amp;quot; | 당선자&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padding:0;&amp;quot; | &amp;lt;div style=&amp;quot;width:100%; overflow:hidden;&amp;quot;&amp;gt;[[파일:게리 쿠퍼.jpeg|500px]]&amp;lt;/div&amp;gt;&lt;br /&gt;
|-&lt;br /&gt;
! col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e81018; color:#fff;&amp;quot; | [[공화당 (미국)|{{글씨 색|#fff|공화당}}]]&amp;lt;br&amp;gt;{{글씨 크기|14.5|[[게리 쿠퍼|{{글씨 색|#fff|게리 쿠퍼}}]]}}&lt;br /&gt;
|-&lt;br /&gt;
|}&lt;br /&gt;
{{목차}}&lt;br /&gt;
==개요==&lt;br /&gt;
[[1940년]] [[11월 5일]]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게리 쿠퍼와 부통령 후보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웬델 윌키]]와 부통령 [[앨번 W. 바클리]]를 꺾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과 제33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lt;br /&gt;
&lt;br /&gt;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8년만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선거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맞물려 세계 대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lt;br /&gt;
==배경==&lt;br /&gt;
==경선==&lt;br /&gt;
===공화당===&lt;br /&gt;
{{인용문|&#039;&#039;&#039;Worth Fighting For&amp;lt;br&amp;gt;싸울 가치가 있는 미국&#039;&#039;&#039;|2000 퀘일-스톡데일 티켓 슬로건}}&lt;br /&gt;
[[공화당]] 경선은 민주당과 달리 시작 전부터 사실상 승부가 정해져 있었다. 현직 대통령인 [[댄 퀘일 (아메리칸 프린스)|댄 퀘일]]이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당내 뚜렷한 대항마가 없는 상태에서 사실상 단독 후보로 경선에 임했다.&lt;br /&gt;
&lt;br /&gt;
일부 당내 인사들 사이에서 퀘일의 재지명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존재했으나, 현지 대통령에 맞서 당내 경선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을 수반하는 선택이었기에, 결국 이렇다 할 도전자 없이 퀘일이 압도적인 대의원 수를 확보하며 재지명되었다.&lt;br /&gt;
&lt;br /&gt;
퀘일은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아메리칸 프린스)|1996년 대선]]에 이어 [[제임스 스톡데일 (아메리칸 프린스)|제임스 스톡데일]] 부통령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다만 그가 매우 고령이라는 점이 지속해서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전쟁 영웅이자 명예훈장 수훈자로서 상당한 존경을 받는 인물이지만, 정치에서의 대중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대해서는 재임 4년 내내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당 일각에서는 새로운 얼굴로의 교체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퀘일은 그냥 무시하고 지명을 선택했다.&lt;br /&gt;
===민주당===&lt;br /&gt;
{{인용문|&#039;&#039;&#039;Tomorrow Begins Today&amp;lt;br&amp;gt;미래는 오늘 시작된다&#039;&#039;&#039;|2000 케네디-브로 티켓 슬로건}}&lt;br /&gt;
[[댄 퀘일 행정부 (아메리칸 프린스)|퀘일 행정부]]의 낮은 지지율로 [[민주당]]은 이번 대선을 충분히 승리할 수 있는 선거라고 보았다. 민주당 내에서는 일찍부터 후보군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했는데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부상한 인물이 [[존 F. 케네디 주니어 (아메리칸 프린스)|존 F. 케네디 주니어]]였다.&lt;br /&gt;
&lt;br /&gt;
케네디는 1994년 [[아메리칸 프린스|뉴욕주]] 상원의원 당선 직후 부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압도적인 이름값과 대중적 인지도, 그리고 젊고 호감형인 이미지로 인해 당선 직후부터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어 왔다.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전국 순회 강연, 지역 당 조직과의 교류 등을 통해 민주당 내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였다.&lt;br /&gt;
&lt;br /&gt;
케네디에 맞선 주요 경쟁자로는 [[아메리칸 프린스|뉴저지주]] 상원의원 [[빌 브래들리]], [[아메리칸 프린스|코네티컷주]] 상원의원 [[조 리버만 (아메리칸 프린스)|조 리버만]], 그리고 전 [[아메리칸 프린스|매사추세츠]] 주지사이자,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아메리칸 프린스)|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인 [[마이클 듀카키스 (아메리칸 프린스)|마이클 듀카키스]]가 있었다.&lt;br /&gt;
&lt;br /&gt;
케네디는 아이오와 코커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포함한 초반 경선 일정에서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리하며 사실상 경선을 조기에 종결시켰다. 슈퍼 화요일 이후 브래들리와 리버만은 잇따라 경선 중단을 선언했으며, 듀카키스 역시 뒤이어 완주를 포기했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케네디는 사실상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로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했다.&lt;br /&gt;
&lt;br /&gt;
케니디는 부통령 후보로 [[아메리칸 프린스|루이지애나주]] 연방 상원의원인 [[존 브로 (아메리칸 프린스)|존 브로]]를 지명했다. [[아메리칸 프린스|뉴욕]] 상원의원이자 북동부, 도심 지역 기반의 진보적 이미지가 강한 케네디와 달리, 브로는 딥사우스 출신의 중도실용주의 협상가로서 오랜 상원 경력을 통해 초당적 조정 능력을 인정받아온 인물이다. 이 지명은 케네디의 상대적 약점으로 지적되던 남부 지역 기반과 국정 경험 부족을 동시에 보완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되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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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Eiffel</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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