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현재에 대한 짧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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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윤리와 사상>에서 나오는 개념 중에 가장 자본주의 체제에 잘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은 노르웨이 철학자 요한 갈퉁의 직접적 폭력 대 간접적 폭력의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일반적인 학살, 전쟁, 주먹다짐과 같은 물리적인 폭력 - 즉 직접적 폭력 이면에는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간접적 폭력의 현상이 존재한다. 예컨대 - 예전에 읽은 한 미국 사회주의자의 어록집에서 이를 읽었다. 사회주의 운동이 폭력적이라고? 리처드 닉슨은 백악관에서의 첫날에 베트남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고 키신저를 시켜 캄보디아에 비밀폭격을 지시했다. 맞다. 사회주의 운동은 폭력적이다. 하지만 이른바 "명예로운 평화"라고 하는 키신저 장관의 말은 - 수십만이 넘는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아이들을 죽인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그러면서 닉슨을 "비폭력 평화"의 후보로 선출한다니 이 얼마나 모순인가?

 

이 늙은 사회주의자의 말은 오늘날에도 와닿는다. 분명하게도 미군 기지의 설립을 저지하고자 한 대추리 주민들의 시위는 얼마나 폭력적이었으며 - 민주노총의 폭력은 뉴스를 보는 청자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가. 그러나 동시에 그 이면에는 더욱 더 간접적이고 체계적이며 구조적인 폭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진보좌파는 잊어서는 안된다. 이재명에 대한 검찰의 조악하고도 첨예한 수사망을 보았을 때, 그 누구도 - 한동훈도, 윤석열도, 그리고 권성동도 이재명을 폭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재명을 펜으로, 수사 일정으로, 카메라로 쉴세 없이 내리쳤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폭력은 분명하게도 근대의 가장 독창적인 발명에 틀림이 없다.

 

에릭 홉스봄이 일찍이 말하길, 역사 속 자본주의적 체계는 시장적으로 맺어진 수 없는 간접적 폭력의 굴레인데, 그것은 부르주아적 자본 창출을 위한 "합법적" 수단으로서 법률로 소수자를 갈취하며, 국가 기관과의 연합을 통하여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행사하고 또 조선-중앙-동아를 통해 다시 한번 노동자를 죽이고 있다. 이와 같은 구도는, 때로는 국내적 경제의 체계에서 가장 넓게는 국제적 폭력의 굴레와 연관되어질 수 있다. 과연 아이를 죽이고, 여성을 죽이고, 군인을 죽이는 그들의 행태가 옹호될 수는 없을지언정 그 어떠한 순간에도, 단 1초라도 다시 그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는 없는것인가? 테러리스트로서만 치부할 수 있는것인가?

 

- 사실 나도 모르겠다. 유물론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남겨진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물질적 토대와 계급적 갈등의 굴레 속에서 그러한 직-간접적 폭력의 양상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다시 살아나는 과거의 한순간 한순간은 먼 미래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날의 일정표의 인용문이 되리라... (발터 벤야민, 역사철학 테제 3번에서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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