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봉 (꽃)

본 세계관은 그 인물을 제외한 북한이 소련의 위성국이 되는 내용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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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제2대 제3대 제4대
김일성 김두봉 한덕수 황장엽
조선 소비에트당 당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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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1948~1960
김두봉
제2대
1960~1973
한덕수
제3대
1974~1991
황장엽
제3대
1992~현재
김영미
민족당 · 자유당 · 조선개선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2대 내각 수상
김두봉
출생 1889년 3월 17일
조선공화국 평안남도 평양시
사망 1960년 2월 6일 (향년 71세)
조선공화국 평안남도 평양시 중구역 39
재임기간 제2대 내각 수상
1948년 8월 16일 ~ 1960년 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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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미상
형제자매 동생 김두원
자녀 장남 김민봉
학력 모스크바대학교(졸업)
종교 무교
신체 175cm AB형
소속 정당
의원 선수 0
의원 대수 0
소속 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보호 위원회
약력

개요

제2대 내각 수상인, 김두봉 관련 문서이다.

생애

어린 시절

1935년 민족혁명당 결성에 참여했고 김두봉은 내무부장 겸 선전부장이 되어 활동했다. 1942년 조선독립동맹의 결성에 참여하여 1942년 7월 의장이 되었다. 이 시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인해 훗날 대한민국에서 활동하게 되는 최현배를 포함한 상당수의 어문학자들이 옥고를 겪었는데 김두봉은 해외에서 항일 운동을 하고 있어 체포는 면할 수 있었다.

내각 수상이 되다

김정일이 반란을 일으키는것을 실패하고, 먼저 소련에게 알린 장본인이다. 이로 인해 김두봉이 제2대 내각 수상이되었고 1949년 최초의 정상회담 이 진행되었으며, 반공주의자 - 기독교를 정리 하였는데, 죽이는게 아닌 해외로 다시 선도를 보내거나, 비밀리에 활동하는것을 암묵적으로 봐줬다. 이후 '국민안전법'이 만들어졌으며 1950년 김두봉은 소련에 방문하여 소련의 도움을 확인 받았으며 여러 정치적 활동을 자유롭게 풀어줬다. 이후 조선국민두마를 만들었으며, 조선소비에트당이 먼저 당선되었으며, 1951년 이승만과 만나 서로의 평화를 약속하였으며, 1954년 2월, 김두봉 국민병원을 지었다. 이후, 제2대 조선국민두마에서도 승리하였고, 1956년 7월 김일성 일가들을 노동교화소로 보냈는데, 이부분에서 일부는 봐줬다. 이후, 안타깝게도 1960년 2월, 김두봉 내각 수상이 죽자 전국이 슬픔에 잠겼으며, 국가애도기간을 3일동안 실시했다.


논란 및 사건사고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48~1960 정계 진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