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 PD 논쟁 정리
1970년대 이전: 주로 자유민주주의 관련된 투쟁. 논쟁 없음.
주요 인물 - 김근태, 손학규, 이재오, 김문수.
목표 - 자유민주주의 쟁취, 박정희 정권 타도.
1979년 10.26 사건으로 서울의봄 정국. 어떻게 민주화를 이룰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적인 투쟁이 가속화됨.
1980년대: 학림 대 무림 논쟁
학림 - 운동권 내 다수파. 서울대학교 중심이었으며 투쟁 유보론의 성격을 가짐. 이후 MT로 이어지며, 야학을 통한 투쟁 양성론을 비판. 잡지 <깃발> 발간. 처음에는 다수파였으나 서울대 학생회장 심재철의 각종 삽질로 학림의 여론이 나빠지면서 점차 무림에게 자리를 내어줌.
무림 - 운동권 내 소수파. 국민대, 전남대 중심이었으며 적극투쟁론의 성격을 지님. 이후 MC로 이어지며, 야학투쟁론 전개. 잡지 <깃발> 발간에 반대. 처음에는 소수파였으나 전정권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힘을 얻었음.
1985년: 함운경 등 삼민투 지도부가 미문화원 점거 사건을 일으킴. 전두환 정권의 공안 탄압 거세짐. 이로 인해 학생 운동이 지하화되고 방법론투쟁보다 이념투쟁 성격이 강해졌음. 이를 두고 사구체 논쟁이라고 함.
비슷한 시기 레닌, 마르크스, 트로츠키, 스탈린의 원서가 유입되면서 원전 탐독의 시대 개막. 마르크스주의가 한국으로 수입됨.
1980년대 중반: 민민투 대 자민투.
민민투 - 운동권 내 소수파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도입한 좌파에 속했음.
자민투 - 운동권 내 다수 보수파로 민족해방 이론을 우선시함.
1985~1987년: 민민투가 분열되면서 CNP 논쟁이 발생함. (제1차 사구체 논쟁)
CDR - 시민민주혁명론. 이론은 주변부자본주의론. 한국이 미국-일본 등 열강 (중심부자본주의) 변두리에 속한 주변부자본주의에 속한다는 이론. 따라서 한국은 사회주의 혁명을 할만큼의 기반이 없으며 전 인민이 투쟁하는 자유민주주의(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우선시되어야한다고 봄. 운동권 내 소수 보수파.
NDR - 민족민주혁명론. 이론은 신식국독자(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론). 한국이 미국이라는 거대 국가에 종속된 신식민지이자, 이들의 자본에 예속된 사회라고 봄. 한국 내에서 계급모순과 민족모순(미제의 침탈)이 동등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봄.
PDR - 민중민주해방론. 이론은 국독자(국가독점자본론). 스탈린주의의 영향을 받아 가장 격렬하게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주장함. 미제의 침탈을 극복하기 위한 통일보다도 자본계급 타파가 우선이라고 보았고 북한 역시 변질된 공산국가로 보아 적대했음.
그 이외에 트로츠키주의파가 있었는데 알려진건 없음.
이후 CNP 논쟁은 87년 정국 때 CDR이 목표(자유민주주의 사회 건설)를 달성하며 자연 소멸되고, PDR이 이론상 한계로 인해 PD, PTR, IST 등으로 뿔뿔히 흩어지며 NDR의 승리로 종결됨.
1987~1990년: 자민투 내 일부가 독자적으로 이동해 NL을 구성함. (제2차 사구체 논쟁, 이른바 CA NL 논쟁)
NL - 민족해방론. 이론은 식반론, 즉 식민지반봉건론. 이들은 남한 사회의 자본주의성을 부정하고 여전히 미국이라는 거대 제국주의 국가가 지배하는 중세봉건국가의 형태가 강하다고 분석함.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들은 북한과의 민족적인 단결이 있어야한다고 보았음. 다만 친북반미라는 의제만 공유했지 주체사상에 대한 입장은 다 달랐음.
CA - 제헌의회파. NDR이 87년 정국 때 전화하며 결성함. 이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이 동등한 수준으로 공존한다고 봄, 이론은 NDR 때와 마찬가지로 신식국독자에 속했음.
87년 정국 때 NL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CA는 제헌의회 설치를 통한 사회주의 개헌을 주장함. NL의 주장이 대중적으로 호소력이 있었고 CA의 엘리트주의성과 급진성 때문에 점차 CA는 힘을 잃음. 1990년 때 신식국독자 이론도 무역흑자 전환으로 무너지면서 2차 사구체 논쟁은 NL의 승리로 마무리됨.
NL의 주요 인사 = 임종석, 우상호, 이인영, 정태흥, 안병직, 태재준, 송갑석, 임수경, 오영식
CA의 주요 인사 = 노회찬, 송영길, 조국, 이진경, 윤소영, 김길오, 백태웅, 은수미, 민병두, 김성식
1989년 동유럽 혁명. 1991년 소련 붕괴. 1990년 한국 무역흑자 전환 등의 사건 등으로 맑스주의를 추구하는 CA파는 사실상 붕괴됨.
1990년~1996년: CA의 세력이 약화됨에 따라 CA 내부에서 분화. 이 과정에서 PD가 형성됨. (제3차 사구체 논쟁, 이른바 PD NL 논쟁)
NLPDR - 민족해방민중민주혁명론. CA 내에서 조직 통합에 찬성한 다수파가 NL과 힘을 합쳐 형성했음. 다만 내부적으로는 세력이 또 나뉨.
NL 다수파 -> 주체사상파. 대표 인물 김영환. (충북지사 아님) 자주대오, 자주결집, 비선이라 불림. 이들의 근거지는 전남대였음. 한총련 내에서 줄곧 다수파를 차지함.
NL 소수파 -> 非주사파. 대표 인물 이석기. 자민통 NL, 자주혁신이라고 불림. 이들의 근거지는 용인외대였고 주체사상을 중시하지 않았으며 민중과 함께하는 투쟁을 강조함.
사실 대중의 인식과 달리 PD라는 조직은 없음. NLPDR 내 좌파, 非NL, 제파PT, PTR 등을 합쳐서 PD라고 뭉뚱그리는거임. PD에 속한 대표적 입장들을 나열하자면
다수파 -> 제독PD (반제반독점 PD). 대표 인물은 이진경, 윤소영, 이병천. 이들은 맑스-레닌주의적 입장을 포기하고 1990년대에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의 이론을 도입함. 이때의 영향으로 현재도 한국 마르크스주의 학계는 알튀세르의 영향력이 가장 큼.
소수파 -> 제파PD (반제반파쇼 PD). 이들은 엘리트주의를 배격하고 1990년대에 민주노조 설립운동에 참여, 노동 현장에서의 투쟁을 강조함. 사상 역시 레닌주의적 입장을 보존함. 이들은 현재 민주노총 내 현장파를 이루게 됨.
그 외에 소수분파로는 PTR. 프롤레타리아트 혁명. 마르크스-레닌-마오주의를 받아들였고 대내 인식은 PD와 같았지만 대외인식을 NL과 함께함. 현재 노정협으로 대표됨.
IST. 국제사회주의 경향성. 소련을 미국급 자본주의 국가로 바라본 영국 철학자 토니 클리프와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이론을 받아들임. 수장은 최일붕, 김인식.
IBT. 국제볼셰비키 경향성. 이들은 신트로츠키주의를 받아들인 IST에 대항해 정통 트로츠키주의를 받아들였음. 그러나 세력은 매우 미약한 수준
그러나 김일성 사망, 강경대 사건, 연세대 사건, IMF 등으로 학생운동을 하기 어려워지면서 1996년 연세대 사태 등을 즈음해 학생운동은 다 무너지고 PD는 학계로 떠남. 그래서 NL만이 남았다가, 이들은 대추리 사태 때 대부분 와해되고 운동권이 소멸하게 됨.
1997년: 국민승리21 창당. 노회찬 등 PD가 주가 된 가운데 전국연합 등 NL 조직이 참여.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현재의 파벌을 정리하자면 이러함
1. 자주파 (NL 계승)
- 진보당 (자주파 내 다수. 非주사파들이 다수.)
- 민중민주당 (코리아연대, 민주노동당 강원도당에서 비롯됨. 정통 주체사상을 받아들임.)
- 국민주권연대 (대진연. 계보상으로는 NL 다수파인 주체사상파를 계승하지만 현재는 주체사상보다는 그냥 김정은 팬클럽으로 변질됨)
- 민주노동자전국회의
- 전국노동자정치협회 (PTR 계통, PD인데 지금은 NL과 뜻을 함께함)
- 진보대학생넷
- 평화나비
- 정의당 내 일부 정파 (함께서울, 비상)
2. 좌단위 (PD 계승)
- 노동당 (좌단위 내 우파)
-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정통 맑스-레닌주의. 근데 얼마전에 회원들이 ㅈ목질에 반발하며 집단탈퇴하고 진보당(???)에 입당함)
- 사회진보연대 (전국학생행진. 알튀세르주의. 근데 지난 대선 때 윤석열 지지하는 미친짓하고 지금 조직 무너짐)
- 노동자연대 (클리프주의, IST 계승)
- 볼셰비키그룹 (정통 트로츠키주의, IBT 계승)
-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 (트로+反북 맑레)
- 전국결집
- 노동전선 (반미의식이 매우 높은 좌단위)
- 정의당 내 일부 정파 (전환)
3. 무근본
- 국제 코뮤니스트 전망 (룩셈부르크주의)
- 아나키스트연대, 말랑키즘 -> 무정부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