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대 민의원 의원 총선거 (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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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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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투표는 선거에 포함되지 않으나, 편의상 기술함

틀:역대 민의원 (한나라)

제25대 민의원 의원 총선거

1981년 3월 19일
제24대 민원선
(신정부 총선)
1984년 3월 7일
제25대 민원선
(아웅산 총선)
1988년 3월 23일
제26대 민원선
(올림픽 총선)
투표율 87.2% ▲ 8.9%p
선거 결과
제25대 민의원 의원 총선 결과 (한나라).svg
신민 (50.44%) 232석
140석 (30.44%) 민정
정당 지역구 전국구 총합 비율
113석 119석 232석 50.44%
105석 35석 140석 30.44%
37석 16석 53석 11.52%
18석 7석 25석 5.43%
1석 1석 2석 0.43%
8석 - 8석 1.74%

개요

1984년 3월 21일에 시행한 제25대 민의원 의원 선거로 투표율은 87.2%를 기록했다.

배경

1983년 10월 9일, 동남아시아 순방을 떠난 전두환 내각총리대신이 아웅 산 묘소에서 만주의 북괴 망명정부 인사에 의해 폭탄 테러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소식에 전 국민이 충격을 금하지 못했고, 하나회의 강경론자는 북괴 망명정부가 있는 만주로 군사작전을 펼칠 것을 주영복 내각총리대신 권한대행에게 주장하기도 했다.

군부의 만주 침공계획을 접한 여당 민주정의당은 긴급히 임시국회를 열어 전두환 정권의 2인자인 노태우를 내각총리대신으로 선출했고 노태우는 하나회를 진정시키는 한편, 전두환의 사망으로 인해 전국 곳곳의 민주화 열기를 막기 위해 야당 정치인의 정치 활동 금지를 해제했다.

과정

상당수의 정치인들이 대법원 판결에 의해 규제가 풀리자 김영삼계김대중계, 김일성계신민당 출신 인사들은 신한민주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는 어떻게든 신한민주당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꼼수를 부렸는데 당초 신민당이라는 이름으로 창당하려던 것을 거부한 것도 모자라, 약칭조차 신민당을 쓰지 못하게 딴지를 걸었고 무엇보다도 임기가 만료된 경우 다음해 4월에 치뤄지는 국회의원 선거를 국회를 해산시켜 3월 21일로 앞당겼다.

이로 인해 신한민주당은 창당한지 두 달 만에 선거를 맞이하는 어려움에 직면했으며, 관제 야당인 민주한국당신상우 사무총장을 비롯한 몇몇 주요 인사들은 정권의 협박으로 인해 신한민주당 합류를 못하는 등의 정치 공작도 있었다. 게다가 당시의 선거 제도는 지역구당 2명을 뽑는 중선거구제인데다, 지역구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획득한 정당이 전국구 의석의 2/3을 독식하는 것이라서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과반 획득은 기정사실이었다. 특히 당시는 아직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이 밝혀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광주를 제외한 호남 지역에서도 민주정의당이 의석을 확보하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하나회 군사독재의 연장선인 노태우 정권에 염증을 느낀 대도시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신한민주당의 지지세는 올라가기 시작했으며, 결정적으로 언론의 지나친 편파보도로 인해 이들은 정권에 마음을 돌리게 된다. 총선을 앞두고 양대 방송사에서 아예 대놓고 땡노뉴스를 비롯하여 정권에 유리한 편파보도도 모자라 노비어천가 드라마를 편성했다. 결국 KBS 사장 이원홍MBC 사장 이웅희는 신한민주당 김재광 선거대책본부장에 의해 선거법 위반으로 피소되었다.

이런 식의 편파 보도는 도리어 역효과를 불러 일으켰고 판세가 차츰 신민당에게 유리해지는데, 특히 대학생들의 신민당 유세참여 및 대도시 지역 합동연설회가 큰 역할을 해냈다고 평가된다. 1980년 5월 17일 이후로 4년 간 언로가 꽉 막혀있다보니 대도시에서는 선명 야당을 내건 신민당의 합동연설회에 국민들이 큰 관심을 가졌으며, 특히 일부 대학생들은 여당인 민정당과 당시 제1야당인 민한당 연설회장에 야유를 보내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용자짓을 감행하기도 했다. 심지어 1983년 12월 31일에는 대학생 2명이 동작지구 유세장에서 연설중이던 민정당 허청일 후보에게 암모니아를 투척하는 사건도 있었으며 이 현장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신민당 연설회를 통해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이나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 등 전두환 정권 하에서 벌어진 각종 사건들이 연설회를 통해 간접적이나마 폭로되면서 이목을 집중시켜 놓았다. 그리고 연설회 현장에 있었던 유권자들의 구전을 통해 대도시 지역 주민들에게도 이런 내용들이 전파되며 신민당에 대한 지지세가 알게 모르게 확산되기도 하였다.

3·10 민주 항쟁

김영삼과 함께 재야의 거목인 김대중이 선거 이주일 전인 3월 7일 오전에 전격적으로 미국에서 귀국한다. 김대중이 귀국해 경찰과 함께 자택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대규모의 학생과 지지자들이 운집하면서 일대의 경호가 혼란스러워졌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경찰은 학생들에게 최루탄을 사격한다. 이 중에서 규정을 무시하고 직사로 사격한 최루탄이 김일성의 사남인 김영일의 후두부에 직격하며 김영일이 사망한다.

사건을 들은 김일성은 격노했고 하나회를 제어하는데 급급했던 노태우 정권은 신민당과 학생, 그리고 시민들의 거센 규탄에 못이겨 이 사건이 중앙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 사건 사흘 후인 3월 10일에는 김영일을 추모하기 위해 '국민운동본부'가 주관하는 대규모 시위가 한성부청 광장에서 열렸다.

결과

3·10 민주 항쟁으로 인해 노태우 정권과 여당 민주정의당은 당초 목표했던 과반수에도 훨씬 못 미치는 n석을 얻었다. 노태우 내각총리대신은 3.19 선언을 통해 선거 결과를 승복하면서 김영삼, 김대중, 김일성, 김종필의 4김과 다른 유력 정치인들의 정치 활동 금지도 해제했다.

n석을 얻어 원내 제1당으로 올라선 신한민주당은 차기 당 총재, 다시 말해 차기 총리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를 두고 김영삼계김대중계, 김일성계가 격렬하게 다퉜으나 김일성이 경의고속도로 건설을 약속한 김영삼의 손을 들어주면서 차기 당 총재는 김영삼이, 차차기 당 총재는 김대중이 맡는것으로 합의했다. 이후 김영삼이 제64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했다.

지역별 결과

제25대 민의원 의원 총선거
지역 민주정의당 민주국민당 한국국민당 신한민주당 신정사회당 무소속 합계
한성 8 5 0 13 0 0 26
평양 6 3 0 9 0 0 18
부산 2 3 1 6 0 0 12
인천 1 1 0 2 0 0 4
남포 1 1 0 2 0 0 4
대구 2 1 0 3 0 0 6
의주 1 0 0 1 0 0 2
경기 6 2 3 9 0 0 20
강원 6 1 2 2 0 1 12
충남 7 2 0 7 0 0 16
충북 4 1 1 2 0 0 8
전남 8 4 0 9 1 0 22
전북 6 1 1 5 0 1 14
경남 9 3 1 7 0 0 20
경북 8 3 1 6 0 2 20
황남 5 2 1 4 0 0 12
황북 4 1 1 3 0 1 10
평남 8 1 2 9 0 0 20
평북 4 1 1 7 0 1 14
함남 5 0 2 4 0 1 12
함북 3 1 1 3 0 0 8
제주 1 0 0 0 0 1 2
지역구 105 37 18 113 1 8 282
전국구 35(33.3%) 16(15.5%) 7(6.2%) 119(43.7%) 1(1.3%) 0 178
합계 140 53 25 232 2 8 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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