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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군이 한국의 함대가 일본의 영해를 침범한 것을 포착(일본 해군의 주장)하고 수차례 경고했으나 영해에서 나가지 않았고, 이에 일본 해군이 포격을 감행해 한국 구축함 1척이 침몰한다. 이에 한국 해군이 반격해 일본의 어느 경순양함 2척이 큰 피해를 입는다. 일본에서는 한국에 "자신의 정당한 대응에 불법적으로 반격한 한국은 피해금을 보상하라"고 요구했고, 한국은 "우리 해군이 일본 영해를 침범하지 않았는데 포격한 일본 해군이 잘못된 것이므로 일본이 우리에 보상해야된다"라며 맞불을 놓았고, 원래부터 한국을 노리던 일본은 급발진하여 1916년 6월 25일, 선전포고한다. | 일본 해군이 한국의 함대가 일본의 영해를 침범한 것을 포착(일본 해군의 주장)하고 수차례 경고했으나 영해에서 나가지 않았고, 이에 일본 해군이 포격을 감행해 한국 구축함 1척이 침몰한다. 이에 한국 해군이 반격해 일본의 어느 경순양함 2척이 큰 피해를 입는다. 일본에서는 한국에 "자신의 정당한 대응에 불법적으로 반격한 한국은 피해금을 보상하라"고 요구했고, 한국은 "우리 해군이 일본 영해를 침범하지 않았는데 포격한 일본 해군이 잘못된 것이므로 일본이 우리에 보상해야된다"라며 맞불을 놓았고, 원래부터 한국을 노리던 일본은 급발진하여 1916년 6월 25일, 선전포고한다. | ||
그리고 당연히 한국은 개털린다. 한국은 순식간에 일본에게 부산을 빼앗겼으며, 대한제국 황실과 국민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완용 내각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서울은 안전합니다"를 시전한뒤 황실을 데리고 평양으로 도피해버린다. 그 사이 일본은 전쟁 발발 4개월이 안되어 대구 및 호남 일부를 점령함과 동시에 대한제국 내각에 화친을 제안한다. 내용은 한국이 일본제국을 형의 나라로 여김과 동시에 사실상의 괴뢰국이 되라는 조건이였다. 이에 내각은 적극적으로 화친에 나섰으나, 화친조약 직전 황제 직권으로 이완용을 총리대신에서 해임해버리고, 한국독립당-국민당 내 반이완용계를 규합하여 | 그리고 당연히 한국은 개털린다. 한국은 순식간에 일본에게 부산을 빼앗겼으며, 대한제국 황실과 국민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완용 내각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서울은 안전합니다"를 시전한뒤 황실을 데리고 평양으로 도피해버린다. 그 사이 일본은 전쟁 발발 4개월이 안되어 대구 및 호남 일부를 점령함과 동시에 대한제국 내각에 화친을 제안한다. 내용은 한국이 일본제국을 형의 나라로 여김과 동시에 사실상의 괴뢰국이 되라는 조건이였다. 이에 내각은 적극적으로 화친에 나섰으나, 화친조약 직전 황제 직권으로 이완용을 총리대신에서 해임해버리고, 한국독립당-국민당 내 반이완용계를 규합하여 이동녕 중심의 거국내각을 구성한다. 이후 이완용은 평양에서 탈출하여 원산을 통해 부산에 도착, 일본이 11월 설립한 괴뢰정부인 대한민국 유신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또한 서울은 뺏기지도 않았는데 평양으로 강제로 이사 온 정부는 황실의 강력한 지지아래 12월 21일,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 ||
* 1917 | * 1917 | ||
1916년 안에 전쟁을 끝낸다는 일본 군부의 계획이 실패하여 경기도 남부-강원도를 중심으로 전선이 교착되면서 점점 일본은 초조해진다. 이에 당황한 일본 정부는 한단계 낮은 조건으로 화친을 제안하나, 제국 정부는 씹고 오히려 독일제국 중심의 동맹국에 가입해버린다. 허나 이로 인해 러시아가 대한제국에 선전포고 하는 사태가 일어나게되고, 대한제국은 나진부근까지 전선을 넓혀버리는 사고를 친다. 허나 러시아가 워낙 동부 전선에 집중하고 싶었기에 대한제국과의 실질적인 전쟁를 원치않았고, 차후 대한제국에서 -를 제공한다는 밀약을 체결하여 사실상 평화상태에 들어간다. 대한제국이 독일제국 편으로 세계대전에 참전한걸 본 일본 정부는 한국이 미쳤다며 환호성을 질렀으나, 지속해서 실질적인 전선 변화 없이 고착상태가 계속되자 벙찌게 되어버린다. | 1916년 안에 전쟁을 끝낸다는 일본 군부의 계획이 실패하여 경기도 남부-강원도를 중심으로 전선이 교착되면서 점점 일본은 초조해진다. 이에 당황한 일본 정부는 한단계 낮은 조건으로 화친을 제안하나, 제국 정부는 씹고 오히려 독일제국 중심의 동맹국에 가입해버린다. 허나 이로 인해 러시아가 대한제국에 선전포고 하는 사태가 일어나게되고, 대한제국은 나진부근까지 전선을 넓혀버리는 사고를 친다. 허나 러시아가 워낙 동부 전선에 집중하고 싶었기에 대한제국과의 실질적인 전쟁를 원치않았고, 차후 대한제국에서 -를 제공한다는 밀약을 체결하여 사실상 평화상태에 들어간다. 대한제국이 독일제국 편으로 세계대전에 참전한걸 본 일본 정부는 한국이 미쳤다며 환호성을 질렀으나, 지속해서 실질적인 전선 변화 없이 고착상태가 계속되자 벙찌게 되어버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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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 | * 19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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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간기 == | == 전간기 == | ||
=== 1920년대 === | === 1920년대 === |
2022년 10월 30일 (일) 22:23 판
공지 | | 빌레펠트 연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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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본 문서는 동아시아 중심으로 서술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
- 1914
1914년 일본이 영일동맹에 의거하여 독일 제국에 선전포고를 해 협상국 측으로 참전했다. 이때 한국은 중립을 선언했다. 일본이 독일의 동아시아 식민지를 대거 점령한다.
-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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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6
일본 해군이 한국의 함대가 일본의 영해를 침범한 것을 포착(일본 해군의 주장)하고 수차례 경고했으나 영해에서 나가지 않았고, 이에 일본 해군이 포격을 감행해 한국 구축함 1척이 침몰한다. 이에 한국 해군이 반격해 일본의 어느 경순양함 2척이 큰 피해를 입는다. 일본에서는 한국에 "자신의 정당한 대응에 불법적으로 반격한 한국은 피해금을 보상하라"고 요구했고, 한국은 "우리 해군이 일본 영해를 침범하지 않았는데 포격한 일본 해군이 잘못된 것이므로 일본이 우리에 보상해야된다"라며 맞불을 놓았고, 원래부터 한국을 노리던 일본은 급발진하여 1916년 6월 25일, 선전포고한다.
그리고 당연히 한국은 개털린다. 한국은 순식간에 일본에게 부산을 빼앗겼으며, 대한제국 황실과 국민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완용 내각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서울은 안전합니다"를 시전한뒤 황실을 데리고 평양으로 도피해버린다. 그 사이 일본은 전쟁 발발 4개월이 안되어 대구 및 호남 일부를 점령함과 동시에 대한제국 내각에 화친을 제안한다. 내용은 한국이 일본제국을 형의 나라로 여김과 동시에 사실상의 괴뢰국이 되라는 조건이였다. 이에 내각은 적극적으로 화친에 나섰으나, 화친조약 직전 황제 직권으로 이완용을 총리대신에서 해임해버리고, 한국독립당-국민당 내 반이완용계를 규합하여 이동녕 중심의 거국내각을 구성한다. 이후 이완용은 평양에서 탈출하여 원산을 통해 부산에 도착, 일본이 11월 설립한 괴뢰정부인 대한민국 유신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또한 서울은 뺏기지도 않았는데 평양으로 강제로 이사 온 정부는 황실의 강력한 지지아래 12월 21일,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 1917
1916년 안에 전쟁을 끝낸다는 일본 군부의 계획이 실패하여 경기도 남부-강원도를 중심으로 전선이 교착되면서 점점 일본은 초조해진다. 이에 당황한 일본 정부는 한단계 낮은 조건으로 화친을 제안하나, 제국 정부는 씹고 오히려 독일제국 중심의 동맹국에 가입해버린다. 허나 이로 인해 러시아가 대한제국에 선전포고 하는 사태가 일어나게되고, 대한제국은 나진부근까지 전선을 넓혀버리는 사고를 친다. 허나 러시아가 워낙 동부 전선에 집중하고 싶었기에 대한제국과의 실질적인 전쟁를 원치않았고, 차후 대한제국에서 -를 제공한다는 밀약을 체결하여 사실상 평화상태에 들어간다. 대한제국이 독일제국 편으로 세계대전에 참전한걸 본 일본 정부는 한국이 미쳤다며 환호성을 질렀으나, 지속해서 실질적인 전선 변화 없이 고착상태가 계속되자 벙찌게 되어버린다.
-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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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
-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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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간기
1920년대
제2차 세계대전
-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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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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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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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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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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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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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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