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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서재필 내각]]의 중진이었고, 1차 서재필 내각에서 외무대신, | 이승만은 [[서재필 내각]]의 중진이었고, 1차 서재필 내각에서 외무대신, 내무대신을 지냈다. 그는 서재필 이후 유력한 대권주자로 거론되었다. '''그의 낙선의 역사는 그곳에서 시작한다.'''</br> | ||
1930년 중추원선에서 유력한 대권 주자로 꼽혔지만 ''''의정원의 양심''''박은식에게 패배 | 1930년 중추원선에서 유력한 대권 주자로 꼽혔지만 ''''의정원의 양심''''박은식에게 '''총리지명 낙선'''</br> | ||
1933년'효제평안'의 기수였던 박은식 이후 또다시 대권 도전, 그러나 박용만의 출마 선언으로 표가 갈린 상황에서 박중양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br> | |||
1936년 신민회의 이상재와의 영향력 싸움에서 밀리고 중추원선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던 조소앙에게 '''패배'''</br> | |||
1938년 단단히 준비를 하고 당내를 통합했지만 정국 안정의 필요를 느낀 안창호의 출마선언으로 '''총리지명 낙선''' | |||
1945년 안창호의 사망으로 뒤를 이은 김구의 신임을 받고 사실상 후임으로 거론되었으나 '''김구 사망'''에 이어 신익희에게 '''총리지명 낙선''' | |||
1947년 자신 계파의 신정동지회 창설, 당내 여론은 호의적이었으나 신익희의 의도적인 이승만 배제로 '''총리지명 낙선''', 김성수 당선 | |||
1950년 [[4.19 사태]] 당시 하와이에서 외유 중이었으므로 국내의 여론에 가세하지 못함, 당내 극좌파에게 '''총리지명 낙선''' | |||
결국 이승만은 호헌동지회를 장악하고 온갖 반란표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날치기로 내각불신임결의를 쓰고 나서야 총리에 당선된다. |
2023년 4월 3일 (월) 22:32 판
공지 | | 빌레펠트 연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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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역대 내각총리대신(제안됨)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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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대 김홍집(1894~1897)-온건개화당
• 2대 박정양(1897~1900)-온건개화당
• 3대 박영효(1900~1904)-급진개화당
• 4대 민영환(1904~1905)-황국협회
• 5대 이상설(1905~1907)-독립협회
• 6대 이완용(1907~1916)-태화구락부
• 7대 이동녕(1916~1919)-거국내각
• 8대 윤치호(1919~1923)-헌정연구회
• 9대 서재필(1923~1930)-한국독립당-동우회
• 10대 박은식(1930~1933)-한국독립당-신민회
• 11대 박중양(1933~1935)-헌정연구회
• 12대 조소앙(1936~1937)-한국독립당-개조동맹
• 13대 여운형(1937~1938)-한국독립당-개조동맹
• 14대 안창호(1938~1941)-한국독립당-동우회
• 15대 김구(1941~1946)-한국독립당-유신동우회[1]
• 16대 신익희(1945~1947)-한국독립당-동우회[2][3] ->한국독립당-구파동지회
• 17대 김성수(1947-1950)-한국독립당-구파동지회, 헌정연구회
• 18대 김두봉(1950-1950)[4]-한국독립당-민족혁명그룹, 한국독립당-반제동맹, 진보당, 노동당(신임공급), 호헌동지회[5]
• 19대 이승만 (1950-1953)-자유당, 대한국민당
• 20대 장면 (1953-1960)-한민당, 대한국민당
• 21대 허정 (1960-1962)-한민당, 대한국민당
• 22대 이승만 (1962-1965)-자유당
• 23대 윤보선 (1965-1966)-한민당, 대한국민당
• 24대 윤치영 (1966-1971)-자유당, 민정당
• 25대 유진산 (1971-1971)-신민당
• 26대 이철승 (1971-1973)-신민당
• 27대 김홍일 (1973-1979)-자유당, 민정당
• 28대 박정희 (1979-1989)-자유당, 민정당
• 29대 김대중 (1989-1995)-노동당, 전진당, 정의당
• 30대 김영삼 (1995-2001)-자유민주당
• 31대 이회창 (2001-2003)-자유민주당
• 32대 정몽준 (2003-2004)-자유민주당, 한나라당
• 33대 노무현 (2004-2007)-전진당, 노동당
• 34대 정동영 (2007-2009)-열린우리당, 노동당, 정의당, 관북의힘 (신임공급)
• 35대 이명박 (2009-2012)-자유민주당, 한나라당 (신임공급)
• 36대 박근혜 (2012-2014)-한나라당, 자유민주당 (신임공급)
• 37대 문재인 (2014-2017)-노동당, 전진당, 열린민주당
• 38대 안철수 (2017-2019)-전진당, 노동당, 열린민주당
• 39대 이재명 (2019-2022)-노동당, 전진당, 열린민주당
• 40대 이낙연 (2022-2022)-노동당, 전진당, 열린민주당
• 41대 윤석열 (2022~)-자유민주당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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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의 역사
이승만은 서재필 내각의 중진이었고, 1차 서재필 내각에서 외무대신, 내무대신을 지냈다. 그는 서재필 이후 유력한 대권주자로 거론되었다. 그의 낙선의 역사는 그곳에서 시작한다.
1930년 중추원선에서 유력한 대권 주자로 꼽혔지만 '의정원의 양심'박은식에게 총리지명 낙선
1933년'효제평안'의 기수였던 박은식 이후 또다시 대권 도전, 그러나 박용만의 출마 선언으로 표가 갈린 상황에서 박중양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
1936년 신민회의 이상재와의 영향력 싸움에서 밀리고 중추원선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던 조소앙에게 패배
1938년 단단히 준비를 하고 당내를 통합했지만 정국 안정의 필요를 느낀 안창호의 출마선언으로 총리지명 낙선
1945년 안창호의 사망으로 뒤를 이은 김구의 신임을 받고 사실상 후임으로 거론되었으나 김구 사망에 이어 신익희에게 총리지명 낙선
1947년 자신 계파의 신정동지회 창설, 당내 여론은 호의적이었으나 신익희의 의도적인 이승만 배제로 총리지명 낙선, 김성수 당선
1950년 4.19 사태 당시 하와이에서 외유 중이었으므로 국내의 여론에 가세하지 못함, 당내 극좌파에게 총리지명 낙선
결국 이승만은 호헌동지회를 장악하고 온갖 반란표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날치기로 내각불신임결의를 쓰고 나서야 총리에 당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