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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제8대 황제 강종 열황제ㅣ康宗 烈皇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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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 (李樟) | |
1948년 10월 9일 | |
대한제국 한성부 제중원 산실청 | |
2010년 7월 12일 (향년 61세) | |
대한제국 한성부 창덕궁 대조전 | |
대한제국 | |
대한 제8대 황제 | |
1978년 10월 16일 ~ 2010년 7월 12일 (31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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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강종 현인대의광명장선익평순원문헌성무정환신효열황제(康宗 顯仁大義光明莊宣翼平純元文憲聖武正桓神孝烈皇帝) 이장은 대한의 제8대 황제이다.
무종의 후손으로 황실 적통과는 거리가 먼 방계 황족이었으나, 1978년 한성 정변 당시 한성을 점령한 강친왕과 반란군을 진압하였다. 이후 한성 정변의 여파로 황족들의 씨가 마르자 의종의 양자로 입적되어 즉위했다.
생애
생애 초기
1948년 대장친왕의 차남으로 태어나 진양공(晉陽公)[5]에 봉작되었다. 어린 시기부터 총명하여 수학원에서 높은 성적을 받아 한성제국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복수전공으로 군사학을 전공하여 한성제대의 수재로 꼽혔다.
대학 졸업 이후에는 외부外府의 관료로서 일하였다.
한성 정변
1978년 애종이 후사 없이 붕어하자 황실의 최고 어른이었던 태후는 무종의 후손 가운데 한 명을 차기 황제로 지명하기로 한다.
이 당시 무종의 후손인 황족 중 명도친왕과 대의친왕, 진양공, 강친왕은 향렬을 역행하기에, 향렬에 부합하는 가장 가까운 황족인 대왕세자 이첨이 희종의 양자 자격으로 황위를 계승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1978년 10월 13일 현직 육군 중장인 강친왕이 정변을 일으켜 한성을 점령하고 대친왕과 대왕세자을 직접 쏴 죽여 황위를 계승할 예정이었던 대친왕가를 멸문시키는 한편, 혈통상 가장 가까웠던 명도친왕을 빈사상태로 만들고 황제를 자처한다.
강친왕에 의해 황족들이 비명횡사하는 상황에서 진양공은 무종의 후손이자 대친왕가의 일원이었기에 당연히 처리 대상이었으나 업무차 제물포에 방문하여 천운으로 목숨을 건진다.
이렇게 목숨을 건진 진양공은 태후를 비롯한 황실과 내각의 요인들을 비밀리에 한성에서 탈출시킨다. 진안공은 태후의 명을 받아 한성 외곽의 군대를 장악하여 시위사단을 이끌고 한성으로 진입, 강친왕을 사살하여 한성 정변을 진압한다.
한성 정변이 진압되고 반란을 일으킨 강친왕가 일족은 황실 족보에서 삭제되고, 애종과 가장 가까웠던 명도친왕은 총상을 입고 골골대다가 10월 말에 사망하고 대친왕가가 거의 멸문 당하여 남은 무종의 씨가 마르자, 유일한 무종의 후손인 진양공이 황제로 추대되어 의종의 양자로서 황위를 계승한다.
즉위
말년
묘호
가계
평가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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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황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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