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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5113 테즈모포리온 | ||||||||||
메시니아 시대, 메시니아(Μεςίνια) | |||||||||||
사망 | 5159 키크로피스 | ||||||||||
메시니아 시대, 메시니아(Μεςίνια) | |||||||||||
소속과 직책 | 메시니아 콜로포스, 대제사장 | ||||||||||
5147 알피오스 ~ 5159 키크로피스 | |||||||||||
존칭 (Τιμητικός τίτλος) | 우주의 눈의 변호인(συνήγορος του κοσμικό μάτι) 닐리아페르토니아(ηλιαπεριτονί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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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메시니아의 마르셀루스 (Μάρκελλος στη Μεσίνια, 5113 테즈모포리온 ~ 5159 키크로피스)는 메시니아 시대의 중심지인 메시니아의 철학자, 정치가, 신학자, 제사장, 종교 사상가이다. 그는 가장 유의미한 수준의 기초적인 인식론, 종교적 사상을 일구어낸 위대한 사상가로 꼽힌다. 그는 특히 태양을 숭배하는 근거로서 볼 수 있는것과 볼 수 없는것을 통하여 이분법적인 신성개념을 들어냈으며 이로 인해 기초적인 태양의 숭배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였으므로 태양의 변호인이라는 존칭이 사후에 부여되었다.
그의 생전에는 닐리야페르토니아 라고 불렸는데, 닐리야는 태양과 높음을, 페르토니아는 제사장을 의미하는 말이다. 즉 역대 제사장들중에서도 특히나 존경받았던 인물이었고, 사후에는 그 명성이 더욱 드높아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물활론을 근거로 하는 마르셀루스파를 창안하였으며[2] 이후 나타날 모든 논쟁에 있어서 모든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또한 문명의 중심인 메시니아에서 권력의 중심이자 가장 위에 위치하게 된 인물이기도 하다.
생애
그는 메시니아 시대 메시니아에서 태어난 인물로, 메시니아의 고위 법률가인 부친 메시니아의 알로스피로스와 성직자의 딸이었던 모친 메시나의 헤라파토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부유하고 명망이 높은 집안이었고 학식을 쌓을때도 수많은 후원자들이 줄을 섰었다고 한다. 어릴적에는 가정교사를 불러다 썻는데 어릴때엔 성질이 고약하여 수학교사를 향해서 책을 집어던진 일화가 있다.
그는 청소년기에는 사제로서 준비하며 가족과 떨어지게 되었는데, 당시 사제가 되는 길은 일종의 엘리트 코스로서, 사제의 양성과정은 당대 모든 지식을 가르치는 최고의 교육이었기 때문이다. 당대 가장 수준이 높은 학교였던 이그나스-나이스트롬[3][4]에서 다니었다 하는데, 이곳은 특히 규율이 엄격한 곳이었으며 그의 초기 저작으로 알려진 《나이스트라스 논고》[5] 에서 그는 "가시적 존재" 에 대해서 다루었다. 그의 사상사 초반부터 자리한 개념으로서 이후 태양숭배사상에 큰 근간이 되기도 한다.
성인이 된 후에는 단순히 아버지를 이어 법조인이 되는것도 가능했지만, 그는 당대 최고의 스승으로 알려졌던 오푸시노스를 찾아가 스승이 되기를 간청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을 추천하였는데, 다른 스승이었던 폴로토스였다. 하지만 그조차 청원을 거절하고 대신 크로노스를 추천하지만 크로노스는 죽어도 싫었던 그는[6] 결국 다시 오푸시노스를 찾아가 받아들여졌는데, 영 시원찮게 대했다고 전해진다.
왜냐하면 오푸시노스의 제자, 자신의 사형인 안타스코스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회고에서 그는 무녀에게 안타스코스가 얼마나 사냐 물었고, 오래살것이라 말을 듣자 뇌물을 주며 이 사실을 숨겨달라고 하였다. 그러고선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하여 그가 곧 죽을것이라는 계시가 있었다 소문을 내게 하고, 무녀는 뇌물로 인하여 모든 질문에 대해 난해한 대답만을 하며 사실을 숨겨주었다.
그 결과, 안타스코스는 정말 어느날 죽어버렸고,[7] 오푸시노스는 크게 슬퍼하였으나 그때 마르셀루스가 포스트 안타스코스로 낙점되어 큰 애제자로 키웠다고 전해진다.[8] 그는 이후 메시니아의 많은 명망을 사게 되었으며 콜로포스에서 그의 언변을 높이 사, 한때 엑페피노스(Επεπίνος)에 당선되기도 하였는데, 이는 당대 정치가들에게 있어서 아주 큰 선망의 명예이자 총리와 같은 수준의 권한까지도 가질 수 있었던 직위였다.
이후 그는 사제들에게까지 설교를 할만큼 높은 지혜와 덕을 인정받았고, 새로운 제사장을 정할 신탁에서 그는 태양의 신에게 인정을 받고 사제가 되게 된다. 의외로 신탁에 대해선 반론에 해당할만한 자료는 적은데 많은 사람들이 그가 제사장으로서 신탁받은것에 대해선 이의가 없었는듯 하다. 그는 이후 제사장으로 10여년 이상을 재임하며 많은 철학적 업적을 남겼고, 동시에 메시니아의 암흑기를 제공할 결정적인 사건의 모태가 되는 결정을 내리기도 하였다.
오푸시노스의 제자가 되다.
제사장에 오르다.
사상
가시적 존재와 비가시적 존재
그는 우리보다 우월한 존재는 눈으로 볼 수 없다고 믿었다. 그는 후대에 전해지는 언급들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눈에 쉽게 보이는것은 실로 고귀하지 못하고,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것은 실로 고귀하다 못해 숭고하다고 말하였다 전한다. 그는 가시적 존재와 불가시적 존재를 이분법적으로 구별하며 이 두 관계를 우열로서 나눈다.
이 우열의 기준은 인간이며, 인간의 눈에 보인다는것은 그것이 인간보다 더 낮은 격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물론 그가 단순히 눈에 보이는것 그 자체에 기준을 두었다고 보는것은 다소 성급할 수 있다. 하지만 아르케와 같은 본질 개념은 페누의 그라누비스의 시대, 즉 다음 세대의 일이므로 이때의 아르케와 같은 개념은 있지 않았거나, 아니면 좀 더 완성도가 떨어지는 개념이었을것이다.
그리고 마르셀루스는 그 후자의 개념을 말하는 듯 하다. 그는 종교적 신비주의자였으므로 관념적 존재에 대한 통찰이 있었고, 따라서 단순히 눈에 보이는것만으로 분별하는것이 온당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이 존재한다. 그의 대화편 한곳에선 절대적인 개념에 대한 신용을 말하지만 인간이나 세속적인 것에 대해선 다소 상대적인 개념으로도 접근한다. 이는 일관성에 문제가 있어보일 수 있었으나 당시엔 종교적 권위는 세속보다도 더 고결하다는 그러한 인식에 근거하여 절대주의를 주장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
그는 모든 상대적인 시각들속엔 다 절대적인 태양의 관념이 있다고 보았다. 일종의 만유재신설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나 그는 태양은 하늘에 고정되어있고, 다른곳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말하였다. 따라서 인간이 태양의 관념을 가지는것은 영혼이 태양으로부터 유래한다는 유출적인 개념에서 나타난것이라 볼 수 있다.
발출 생명론
그는 모든 생명은 태양을 원인으로 하여 나타나는 것,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타난것이라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는 모든 영혼의 원인되는 태양은 우리가 죽으면 돌아가게 되며, 육신은 어둠속으로 가고 영혼은 빛속으로 가게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인간의 영혼은 육신보다는 비교적 더 고귀하다고 보았다. 또한 모든 생명이 태양을 원인으로 하는것은 동굴속의 박쥐조차도 마찬가지라 말하였다.
모든 생명은 태양으로부터 나타났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고 오감을 완전히 사용할 수 있기 위해선 태양의 빛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한 예시로 인간이 어둠속에서 공포를 느끼는것은 태양의 부재로 인한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이는 태양빛의 필연적인 이유중 하나로 여겨졌다.
그리고 겉보기에 아름다운것도 태양의 빛을 온전히 받아서 그렇다. 박쥐의 생김새가 끔찍한데 반해, 양이나 노루의 모습이 더 아름다운 이유는 태양빛을 더 골고루 받아 형성된 것이라고 보았다.
의식주만큼이나 태양빛은 생명유지에 필연적인 것 이었고, 그는 이러한것을 제공하는 태양을 마땅해 숭배할만하다고 말하였다.
종속주의
그의 관점은 존재론적으로 인간의 비자립성을 주장하였다. 그의 세계관에선, 태양은 빛을 비추는 모든것에 영향력을 끼치고 생명을 주는 절대적 존재이다. 이런 태양에 영향을 받는것은 인간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태양이라는 절대자에 종속되며, 이는 인간뿐만 아닌 모든 자연이 그러하다. 때문에 태양으로부터 영혼을 부여받았지만 태양을 보지 못하는 생물은 보다 미개하고, 태양을 보는 존재들은 보다 우월하다. 때문에 지각을 할 수 있는 모든 존재들은 반드시 태양으로부터 와야만 한다. 그리고 태양의 빛을 받을 수 있어야만 한다.
지각과 같은 우월한 능력은 태양으로부터만 발출된것이기 때문이다. 태양은 그 자체로서 전재전능한 존재 그 자체로서의 현현이다. 그의 종속주의는 태양이 생명을 주는 생명의 근원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이는 생명론과 관련이 있다.
신비주의
초기 신비주의중 하나로서의 마르셀루스 신비주의는 비가시적 존재, 불가사의한 존재, 무지한 존재라는 세가지 요소로서 신비를 말한다. 신비 그 자체는 그저 "알 수 없는 것" 으로서 불가사의함의 속성을 지니고, 그 불가사의함을 충족하기 위해선 "비가시적 존재" 로서 존재해야만 한다. 또한, 이 두 속성으로 인해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무지한 상태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 무지함으로 인해 신비를 느낀다. 그리고 이 시대에서 가장 큰 신비의 증거를 감정에서, 특히 공포를 그 근거로 삼았는데 이 세가지 요소가 갖추어진 두 존재는 빛과 어둠이 있고, 온전한 빛인 태양, 온전한 어둠은 둘다 무지한 상태이다. 하지만 태양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지만 어둠은 공포의 대상인것은 바로 빛으로부터 유래한 우리 영혼은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이고, 어둠은 상반되므로 벗어나고 싶어한다는것이 바로 신비주의의 근거가 되었다.
의인화된 신
그는 우리가 태양을 통하여 태어난, 즉 영혼을 얻은 존재인만큼 태양 또한 우리와 닮은 인격체일 수 있다 생각하였다. 또한 우리에게 계시나, 풍년을 들게 하거나, 아니면 우리의 간청을 듣거나 하는 모든 상호작용은 태양 또한 그 인격이 존재하기 때문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 인격은 신비주의에 가려져 일방적으로 신은 우리를 보지만 우리를 신을 볼 수 없다고 여겼다. 이에 대해선 더 많은 견해를 제시하지 않았다. 철저히 신비주의속에 넣어두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우주적 관점의 태양
기타
- 메시니아 시대의 조각상중 가장 섬세한 흉상으로, 메시니아의 신전 지하 영묘에 있던 것이다.
- ↑ 메시니아의 오푸시노스는 여럿 제자를 양성한 유명한 정치가이자 철학자이다. 5076 오몰로이오스에 태어나 5131 도데카테우스때 죽었다.
- ↑ 그는 정치인임과 동시에 제사장이었으므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로 인해 무리가 만들어지었지만 생전 본인은 스스로가 그 어느곳에도 자신이 속해있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 ↑ 이그나스는 당대 최고의 교육기관에서 붙일 수 있었던 하나의 칭호였다. 사람에게 붙이는 형태로는 이그노시아.
- ↑ 물론 당대의 사제를 준비하게 되는 학교들은 진짜 사제를 시킨다기보단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일종의 사업으로 이러한 교육기관을 굴린것도 크다.
- ↑ 사실은, 일종의 졸업논문의 의미로 쓰인 글이지만 당대 논문이란 글 자체가 형식이 정해져 있지 않았던 탓에 대단히 제멋대로인 글이긴 하다.
- ↑ 그는 유명한 유물론자였고, 때문에 싫어하였던것으로 추정된다. 정황상으로 보면 크로노스가 워낙 기인이기도 하였다. 크로노스의 제자로 크로토니아스가 배출되어 이후 그와 대립하였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 ↑ 야사에 따르면 마법사 오스오로스에게 사주하여 저주를 걸었다는 말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확인되는 바로는 그저 급사에 불과하다.
- ↑ 훗날 안타스코스는 죽기 전 이 사실을 몰랐지만 태양의 신이 그에게 진실을 이르니, 죽기 직전 단말마로 "아아, 난 실패한 인생이다!" 라고 남기고 죽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