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라웨어」 주가 미국 역사상 최연소 상원의원을 선출하다(뉴욕타임스 / 11-09-1972)

지난 봄, 「J. 셀럽 보그스」 「델라웨어」주 연방 상원의원의 재선을 저지할 민주당 후보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아일랜드 가톨릭 커뮤니티 밖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뉴캐슬 카운티 초선 의원 「조지프 R. 바이든 주니어」씨 만큼은 예외였다. 「바이든」씨는 「델라웨어」주 민주당의 지명을 받았고 유난히 에너지가 넘치는 선거운동으로 「델라웨어」주에서 자신을 유명인으로 만들었다. 어제, 그는 「보그스」상원의원이 하원의원, 주지사, 상원의원으로서 보낸 26년의 경력에 처음으로 낙선을 안겨주었다.

11월 20일이면 「바이든」씨는 30세가 되어 내년 1월에 개원할 연방 상원에 출석할 수 있는 연령대를 넘기게 된다. 「웨스트 버지니아」의 「러시 D. 홀트」의원은 1934년 당선되었을 때 「바이든」씨보다 6개월 더 어렸지만 자격을 갖추고 선서를 한 것은 그 다음해 6월이었으므로 「바이든」씨는 역대 최연소 상원의원이 된다.

「보그스」씨의 예상치 못한 낙선을 막기 위해 「스피로 애그뉴」부통령은 그의 선거 운동을 지원하려 「델라웨어」주에 상주하던 참이었다. 「닉슨」 대통령도 널리 배포된 브로셔 사진에서 그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미국은 다음 의회에서 당신의 리더십을 필요로 합니다』라고 적인 친필 성명을 냈다. 그럼에도 「조지프 바이든」씨가 11만 6,000표 대 11만 3,000표로 승리하였다.

「델라웨어」주에서 「닉슨」 대통령은 「맥거번」씨를 크게 앞질렀지만 주 정계에서 재선을 노리는 공화당 정치인들의 운명은 달랐다. 재선을 노리는 「러셀 W. 피터슨」 주지사는 「셜리 W. 트리비트」 하원의원에게 7,000여표 차이로 패배했고, 「윌밍턴」시의 시장 「해리 G. 헤이스컬 주니어」씨는 시의원 「토머스 C. 멀로니」씨에게 4,000표 차이로 패배했다. 다만, 하원의원에서는 「피에르 S. 뒤퐁 4세」 의원이 민주당 도전자인 「노마 B. 플랜들로프」 「뉴어크」 전 시장을 14만 1,000표 대 8만 3,000표로 앞서 체면을 지켰다.

키가 크고 구릿빛 얼굴로 유명한 유능한 지역 변호사 「조지프 바이든」씨는 「보그스」 상원의원보다 더욱 사회비판적인 상원의원이 「워싱턴」에 입성해야한다는 취지로 선거운동을 벌였다. 그는 베트남 전쟁의 빠른 종식, 습지 보존을 위한 보호 법안, 보다 『공평』한 조세 제도, 정부의 도덕성 및 독립적인 소비자 보호 기관 등을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되었다.

그는 깔끔한 선거운동을 벌였고 주말마다 주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달려가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2,000명의 젊은 자원 봉사자 조직을 구성하여 자신의 잠재력을 유권자들에게 확신시켰다. 「바이든」씨의 정열적인 선거운동은 출마를 꺼렸지만 「닉슨」 대통령의 강권으로 출마한 63세의 상원의원의 선거운동과는 명백하게 대조를 이루는 것이었다.

「바이든」씨의 젊디 젊은 열정은 그의 적극적인 지지자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대다수 선거운동원들의 나이는 「바이든」씨보다도 적었다. 「바이든」씨의 27세 동생인 「브루스 손더스」 부인은 그의 선거운동 관리자였다. 「윌밍턴」의 주식 중개인인 남편 「손더스」씨는 예산 관리자였다. 「델라웨어 대학교」와 「시라큐스 대학교」의 동창이자 친구인 「로저 해리슨」씨는 광고 관리자로 일하였다.

지난 1972년 8월 까지만 하더라도,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씨는 「보그스」 상원의원에 비해 47 대 19로 뒤쳐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보그스」 의원이 「워싱턴」에서 바쁘게 지내면서 「바이든」의 밀착형 선거운동이 성과를 거두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