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월령 (플로라)

리진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9월 20일 (화) 05:2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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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이달의 문화인물 (플로라)


대한제국의 국가유공자
제군왕비 겸 진주백 전하
하월령
河月齡 | Ha Wol-ryeong
출생 1896년 12월 25일
청나라의 기 청나라 상하이 와이탄
(現 중화인민공화국 상하이시 황푸구 와이탄)
사망 1930년 9월 13일 (향년 34세)
영국의 기 영국 잉글랜드 런던 웨스트민스터
묘소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자모리 913
국적 대한제국의 기 대한제국
작위 백작[1]
직업 시인, 교육가, 사회운동가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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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진주 하씨[2]
본적 경상남도 진주군 수곡면 사곡리
(現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
신체 168cm
부모 아버지 하선진, 어머니 서희수
형제자매 언니 하월향, 여동생 하월안
배우자 이신[3]
학력 육영공원 (졸업)
연희전문학교 (문과 / 졸업)
경성제국대학 (영문학 / 수료)
종교 개신교 (장로회)
데뷔작 백공작 (1919, 양안)
유작 바람보다 먼저 (1929, 세광사)
상훈 대훈위 이화대수장

개요

"내 대지 위의 질주, 글로써 세상을 광명케하리라."
하월령이 생전 품에 지니고 다닌 수첩의 첫 장에 수록된 문구

영통시대에 활동한 시인이자 교육가, 사회운동가. 20세기 초반 국문학과 여성문학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한국 근대 문학의 상징이다.

상세

생애

출생과 가문

청나라 상하이에서 유복한 귀족 가문으로 태어났다. 본가는 진주부 진주군 진주면 평안동(현 경상남도 진주시 평안동)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외교관인 진주백(晉州伯) 하선진과 어머니 서희수 사이의 3녀 중 차녀였다.

그녀의 부친은 당시 엄격하고 보수적인 귀족 가문의 일원이었음에도 신교육의 영향으로 "조국을 빛내는 신여성이 되려면 머리를 키워야 한다"고 하면서 세 딸에게 학문을 독려했다. 하월령은 14살 때 언니와 동생과 함께 귀국하여 육영공원에 입학한 후, 영어에 소질을 보이면서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후 경성제국대학에서 영문학을 배웠다.

세광여자대학교 설립

비극적 죽음

사조

대표 작품

바람보다 먼저

바람보다 먼저 하월령

바람이 허락한다면
바람보다 먼저
풍광에 스미어
일렁이는 춘추님을 어버이 삼아
거룩한 선험(先驗)을 기르고
대지에 피어난 꽃의 숨결을
작란에 말려든 뜨거운 광야에
조용히 뿌리겠습니다

유명한 구절

우리가 사랑했던 겨울과 여름 사이,
나는 그 자취를 아직 잊을 수 없다.
《가을》
신음 없이 들어도 노을 너머 사라지는 수평선, 그 한 때의 아름다움.
《아나톨리를 위하여》
내분의 으악새 학의 몸을 빌려 날아가라.
《으악새》

작품

여담

  •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필적 확인 문구 "비에 젖지 않는 바다처럼"이 「바다의 편지」 속 시구의 일부이다.
  • 2023학년도 9월 모의평가의 필적 확인 문구 "별과 함께 우리 월광으로 가자"가 「별과 함께하는 산책」 속 시구의 일부이다.
  1. 제군왕과 혼인 직후 진주백(晉州伯) 작위를 받았다.
  2. 사직공파 27세손
  3. 의친왕의 넷째 아들인 제군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