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자유대학교 (개화)

Curio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4월 29일 (월) 20:10 판 (→시설)

틀:녹우크라이나의 대학교 (개화)
우크라이나 자유대학교
Український Вільний Університет
Ukrainian Free University
상징 슬로건 자유 우크라이나의 지혜여 영원하라
교색 파랑색
수호천사 미하일
국가 녹우크라이나의 기 녹우크라이나
지역 대한민국의 기 한국 파일:한성부 문장 (개화).svg 한성부 (1946-1996)
녹우크라이나의 기 녹우크라이나 스보보디우스카 주 스보보디우 자치시 (1996-현재)
분류 국립대학, 4년제 종합대학
개교 1953년 3월 1일
소속 녹우크라이나 교육부
총장
운영위원장
재학생 학부 5,623명 (2023년)
대학원 2,345명 (2023년)
교직원 874명 (2023년)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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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우크라이나 자유대학교(Ukrainian Free University, UFU)는 녹우크라이나 스보보디우 자치시에 위치한 4년제 국립종합대학교이다. 1946년 녹우크라이나 망명정부에 의해 한국 한성에서 설립되었으며 녹우크라이나의 독립 이후인 1996년 개교 40년만에 현재의 스보보디우 캠퍼스로 이전하였다.

볼로디스히드 작할시에 위치한 성 일라리온 대학교, 하바리우스크 직할시에 위치한 주립 하바리우스크 대학교와 함께 녹우크라이나의 3대 대학교로 꼽힌다.

상징

우크라이나 자유대학교 문장

우크라이나 자유대학교의 문장은 1946년 개교와 함께 디자인되었다. 대천사 미하일(미카엘)이 두 손에 검을 들고 있는 모습을 중심으로 한 문장인데, 미하일은 (독립을 향한) 힘을 의미한다. 문장의 전반적인 방패 형상은 우크라이나와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한다는 의미이다. 문장의 푸른 색상은 구소련과 공산주의의 붉은 색에 맞섬을 의미한다.

자유대학교의 문장은 본토 우크라이나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이었던 뱌체슬라우 리핀스키가 생전에 디자인한 우크라이나의 국장 제안안을 기반으로 당시 녹우크라이나 망명정부의 각료였던 이반 파슬라우스키가 디자인했다.

역사

1942년 앵커리지 조약으로 녹우크라이나 제1공화국은 멸망하였고 녹우크라이나의 영토는 구소련에 병합당하였다. 대한민국으로 피신한 녹우크라이나 정부는 한국의 수도 한성에 녹우크라이나 망명정부를 세웠는데, 이와 함께 많은 녹우크라이나인들이 한국에 망명했다. 하지만 이 망명객들을 위한 전문 고등교육기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인 대학생들은 임시로 한국의 대학교들에서 공부하였지만 한계가 있었다. 이에 전직 문화부흥성 장관이었던 파슬라우스키와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나란말사미가 대통령이었던 흐레샤티츠키의 승인을 받아 망명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한 대학의 수립을 주도하였고, 이들이 1946년 한성에 세운 대학교가 바로 녹우크라이나 자유대학교다. 초대 총장은 파슬라우스키가 맡았다.

1991년 녹우크라이나가 구소련으로뷰터 독립하면서 망명정부가 귀국하였고, 자유대학교 역시 귀국 계획을 세우게 됐다. 기존의 계획은 당연히도 새로 녹우크라이나의 수도로 지정된 볼로디스히드로 이전하는 것이었지만 북부 지역, 특히 제2의 도시인 하바리우스크 지역에서 주요 대학교가 남쪽에만 몰려있다며 반발했다. 이에 당국은 하바리우스크 이전 계획을 검토했으나 이번에는 볼로디스히드 지역에서 반발이 나왔다. 그러자 당국은 볼로디스히드도 하바리우스크도 아닌 스보보디우로 이전을 결정했고, 학사 공사 끝에 개교 40주년인 1996년 오늘날의 스보보디우로 이전이 완료되었다.

학부

성 일라리온 대학교, 하바리우스크 대학교와 함께 녹우크라이나 최고의 대학 중 하나로 꼽히는 만큼 웬만한 학부, 학과가 다 있다.

시설

  • 흐레샤티츠키 홀: 대학교 본관. 자유대학교에서 가장 큰 건물이며, 대학교 정문으로 입장시 가장 먼저 중앙에 보이는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다. 대학본부로 사용되며, 1층에는 이디야 커피숍과 대학교 역사관이, 2층 이상에는 여러 행정부서가 존재한다. 대학교 건립 당시 녹우크라이나 망명정부의 대통령이었던 보리스 흐레샤티츠키의 이름에서 따왔다. 우크라이나어로는 “Зал Хрещатицького”(“잘 흐레샤티츠코호”)라고 부른다.

  • 파슬라우스키 홀: 대학교 정문의 좌측 정면에 위치한 건물. 반대편에 있는 나란말사미 홀과 대칭을 이룬다. 원래 이 자리에는 대학교 창립자 중 한 명인 이반 파슬라우스키의 무덤이 있었으나 대학교 내에, 그것도 아주 잘 보이는 곳에 무덤이 있다는 사실에 꺼림직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거기에다가 밤마다 자유분방한 대학생들의 애정행각이 벌어지던 탓에[1] 무덤을 이장했다. 이후 2007년에 반대편의 나란말사미 홀과 대칭되는 형태의 파슬라우스키 홀이 건립되었다. 현재는 여러 사무실과 강의실이 내부에 존재한다.

  • 나란말사미 홀

  • 자유의 광장: 대학교 정문을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광장. 정면에는 흐레샤티츠키 홀이, 좌우에는 각각 파슬라우스키 홀과 나란말사미 홀이 자유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저녁이 되면 광장 여기저기서 여럿이 모여 돗자리를 깔아두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술을 마시는 대학생들과 커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광장 중앙에는 "자유의 대천사"라는 이름의 동상이 있다.
    • 자유의 대천사: 자유의 광장 중앙에 있는 공상으로, 대학교의 문장에도 들어가 있는 대천사 미하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손에는 자유의 횃불을 들고 있으며, 왼손에는 녹우크라이나의 소형 국장이 양각으로 새겨진 방패를 들고 있다.

  • 도서관

학풍

성 일라리온 대학교보수주의의 대학교라는 별칭이 있고 하바리우스크 대학교가 진보주의의 대학교라는 별칭이 있듯이 자유대학교는 자유주의의 대학교라는 별칭이 있다. 자유대학교는 망명정부 시기 망명정부 산하의 유일한 대학교였고 이로 인해 자유대학교에는 굉장히 다양한 범주의 학생들이 모였다. 대학에서 다양한 의견과 인간군상이 공존해오면서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유주의적 학풍이 자리잡았다.

성 일라리온대나 하바리우스크대 이외에도 타 대학교들에 비해 학생들이 자유분방한 편이다. 또 이런 학풍의 영향인지 학생 수 당 스타트업 창업 비율이 현격하게 높다. 자유대학교 당국에서도 이 사실을 꽤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출신 인물

여담

  • 개교 당시 자유대학교가 세워진 자리는 오늘날의 한성부 구로구로, 당시까지만 해도 한성 외곽의 개발 덜 된 동네였다. 이곳에 우크라이나 자유대학교가 세워지면서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이곳에 모여들었고, 우크라이나 국민당 내 혁신 그룹이었던 구로 그룹도 이 지역에서 회동을 많아 하였다고 하여 구로 그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과거 자유대학교가 있었던 부지에는 오늘날 오극란거리와 오극란 문화원이 있다.

각주

  1. ”파슬라우스키 총장님께서는 밤마다 주례를 서신다“라는 말까지 있었다.
  2. 2.0 2.1 다만 이쪽은 학생이 아니라 교수였다.
  3. 최화학, 장세용과 공동 수상
  4.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 양쪽의 공동체에서 모두 활동해서 국적 논란이 있다. 한국 정부와 녹우크라이나 정부는 녹우크라이나인으로 인정하지만 소련 정부는 소련인이라고 주장하며 또 자유 러시아 국민정부는 러시아인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