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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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국
대한민국 만주 녹우크라이나
외부동맹국
미국 호주 뉴질랜드
협력국
캐나다 남일본 베트남 필리핀 몽골
대한민국
大韓民國 | Republic of Korea
국기 국장
대한독립만세
大韓獨立萬世
국가 애국가
국수 호랑이
국화 무궁화
국목 소나무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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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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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한성부
북위 37.5642135° 동경 127.0016985°
최대 도시
면적 약 367,000 km2
접경국 중국, 만주, 녹우크라이나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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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1억 3,150만 명
인구 밀도 264.1명/km2
출산율 1.42명
기대수명 83세
민족 구성 한민족 72.5%
화족 20.4%
슬라브족 1.9%
기타 5.2%[4]
공용어 한국어
공용 문자 한글
군대 대한민국 국군
지방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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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행정제도 단일 국가, 지방자치제
광역자치단체 13개 부[5], 20개 도, 1개 자치도[6]
기초자치단체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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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민주공화제 (국민주권), 문민통제, 의원내각제, 단원제, 다당제, 성문법주의 (혼합법계)
민주주의 지수 8.52점 | 완전한 민주주의
대통령
(국가원수)
반기문
국가
요인
국무총리 유승민
부총리 김덕훈 / 재무부장관 겸임
중추원의정 김진표
대법원장 차명남
집권 여당
연립 여당
새천년민주당 글씨 (개화).png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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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시장 경제
GDP
(명목)
$조 억 | 세계 3위
1인당 $48,673
무역 수입 $1조 2,257억
수출 $1조 3,592억
예산 세입 $1조 2,159억
세출 $1조 1,970억
외환보유액 $1조 3,037억
신용 등급 무디스 A1
S&P A+
Fitch A
통화 공식 화폐 대한민국 원
ISO 4217 KRW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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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서력기원
도량형 SI 단위
통행 방향 우측 통행
시간대 GMT+09:00 (KST)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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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가입 1945년
수교국 198개 국가
ccTLD
.kr
국가 코드
410, KOR, KR
전화 코드
+82
위치
파일:한국 위치 지도 (개화)ㅇ.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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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민국(大韓民國 / Republic of Korea)은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1392년에 건국된 조선을 전신으로 하며, 개화와 함께 1889년 대한제국으로 국명을 개칭했다가 1895년 아관파천의 여파로 공화정으로 전환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인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

상징

국기

태극기
太極旗 | Taegeukgi
지위 대한민국의 국기
채택일 1883년 3월 24일[7]
1895년 12월 31일[8]
설계자 이응준[7]
박영효[8]
근거법령 대한국 국제[7]
대한민국 헌법[8]
비율 2:3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국기로, 대한민국 헌법을 통해 그 지위를 보장받는다.

1882년 한국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을 앞두고 미국 측이 조약체결을 위해 조선 측도 국기가 필요하다고 요구하자 이에 당시 협상 실무진에 속한 외교관이었던 이응준이 태극기를 만들었다. 이후 약간의 수정을 거쳐 1883년 태극기는 정식으로 국기로 선포되었다.

이후 1895년 입헌군주제를 명시한 대한국 국제(헌법)로 인해 권력이 크게 제약당한 고종이 전제군주제를 복원하기 위해 아관파천 사태를 일으키자 대한국 중추원은 공화국을 선포하였고 이와 함께 태극기를 수정하여 현재와 같은 형태의 태극기가 완성되게 되었다.

국장

태극근화장
太極槿花章 | Emblem of Taegeuk and Sharon
지위 대한민국의 국장
채택일 1918년 6월 11일
설계자 최재형
근거법령 대한민국 헌법

태극근화장은 대한민국의 국장이다. 태극과 근화(무궁화)의 문장이라는 뜻이다.

1918년 당시 법무성총판이었던 최재형이 설계하였으며 태극문양을 둘러싼 무궁화를 다시 청백색의 리본이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다. 현재의 국장을 채택하기 전까지는 태극기의 태극문양을 똑 떼어 그대로 국장으로 사용했다.

국가

무궁화 삼천리
대한민국 애국가
無窮花三千里 | Long Way of Sharon Roses

지위 대한민국의 국가
채택일 1896년 5월 15일[9]
1937년 6월 9일[10]
작사자 윤치호
작곡자 안익태
근거법령 대한민국 헌법

무궁화 삼천리는 대한민국의 국가이다.

대한국 시절에는 국가의 안녕과 황제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대한국 애국가를 국가로 사용했으나 공화제 전환 이후 국가를 대한민국 애국가로 변경하였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민요인 올드 랭 사인의 곡조에 애국지사 윤치호가 만든 가사를 붙인 대한민국 애국가는 1896년부터 1937년까지 약 40여 년 간 사용되었다. 하지만 외국 민요를 국가의 곡조로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이에 1937년 당시 총리였던 안창호의 요청으로 민족주의 음악가 안익태가 자신이 작곡한 한국환상곡의 곡조 일부에 윤치호가 만든 기존의 가사를 붙여 무궁화 삼천리라는 이름의 새 국가를 만들었고, 이를 중추원이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로 채택하였다.

저작권자는 대한민국 정부이다. 기존의 저작권자였던 안익태가 국가 채택과 함께 저작권을 정부에 이양했기 때문이다.

무궁화 삼천리
[ 가사 펼치기 · 접기 ]
1절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2절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3절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절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역사

개화

한성 거리 (1893)

1870년대, 서구 세계의 발전에 충격받은 조선은 고종온건개화파의 주도 하에 개화정책을 실시하였다. 서구와의 통상수교를 거부하며 쇄국 정책으로 일관한 흥선대원군의 정책에 비교하면 진일보한 방향을 잡은 것이었지만, 수구적 온건개화파의 주도로 실시된 개화정책은 적극적이지 못했고 정치적 개혁이 수반되지도 않았다. 이에 지식인 계층과 신흥 상공인을 중심으로 더 급진적은 개혁을 요구하는 목서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1884년, 더욱 급진적인 개혁개방을 원하던 급진개화파김옥균을 리더로 하여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정변을 통해 고종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집권한 급진개화파는 개화당을 창당하고선 본격적인 개혁 드라이브에 시동을 건다. 개화당의 개혁정책은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모든 것을 서구식으로!"였다. 개화당 정부는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제도를 유럽식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외교적으로 이전의 전통적인 사대교린 정책을 폐기하고 서구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수교하였으며 또한 만국박람회에도 참가하였다.[11] 또 여전히 상하이 조차지에 대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영국에게 제주도를 조차지로 제공하는 대가로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받았다.

사회, 경제적으로 천지개벽할 만한 변혁이 나타났다. 근대적인 인구조사와 토지조사가 실시되었고 서양식 교육제도와 의료기술이 전면 도입되었고 서구 국가들로 대규모 국비유학생이 파견되었다. 미국 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경성제물포를 연결하는 경인선 철도가 개통되었고 정부 주도의 대규모 상공업 투자가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는 상투를 자르고 머리를 단정하게 다듬는 일명 단발령이 내려졌는데, 정부 요인이었던 유길준이 직접 고종의 머리를 밀어버리기도 했다.(...)

군사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근대적 인구조사를 바탕으로 국민개병제가 계획되었으며 조병창의 건설로 신식 소총이 생산, 도입되었다. 또 영국과 독일로부터 후장식 대포를 대량으로 도입하였으며 제대의 편제와 훈련도 서양식으로 바뀌었다. 영국으로부터 여러 척의 구식 구축함과 경순양함을 값싸게 매입하기도 했다.

팽창

대한제국군 (1899)

적극적인 팽창을 시도한 조선은 청과의 간도 분쟁이 벌어지자 1894년 국명을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일본과 손을 잡고 청을 공격하였다. 한일 동맹군은 퉁화 전투와 서해 해전에서 각각 청나라 북양군과 청나라 북양함대를 격파하였고, 영국의 중재로 영국령 제주에서 제주조약을 맺어 강화하였다. 전쟁으로 한국은 간도를, 일본은 대만을 병합하였다.

1895년, 입헌군주였던 고종이 실권을 되찾기 위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했고, 분노한 중추원은 고종을 폐위시키고 공화정을 채택, 대한민국의 성립하였다. 그 직후 민국의 행정을 맡을 새로운 정부인 대한민국 국무원이 출범하였다.

의화단의 난 당시 러시아 제국은 의화단 진압을 명목으로 대규모 군대를 파병했고, 난이 진압된 이후에도 그대로 만주에 주둔시켰다. 안 그래도 아관파천으로 인해 러시아를 고깝게 보던 한국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철도가 완공되자 않았음을 눈치채고 러시아의 확장을 막으려는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받아 1904년 일본과 함께 러시아에 선전포고하였다.

러시아는 약 10만명의 병력만이 극동 지역에 배치되어있었고, 서부에서 병력과 물자를 수송할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당시 미완공인 상태였기에 러시아는 불리한 처지에 있었다. 거기에다 육군 대장 이용익이 지휘하는 한일동맹군이 여순과 봉천에서 러시아 육군을 격파하면서 전세가 기울어졌고, 대한해협에서 도고 제독의 일본연합함대가 러시아 발트함대를 수몰시키면서 러시아는 굴욕적인 평화협정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중재로 체결된 포츠머스 조약으로, 한국은 만주에 대한 러시아의 모든 이권을 양도받았고, 일본은 사할린섬과 쿠릴 열도를 할양받았다.

1차 세계대전

1차 세계대전 초기 한국은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우방국이었던 영국으로부터 계속해서 참전 압박이 들어왔고 이승만 외무성장관을 중심으로 참전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된다는 의견이 내각 내에서도 다수를 점하면서, 1914년 말 협상국의 편으로 전쟁에 참전하였다. 한국은 독일 제국 등 동맹국 국가들에 선전포고하였고 한국군이 독일령 교주만을 공격, 점령했다.

하지만 한국은 직접적인 참전보다는 다른 방법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일본, 스페인과 같이 협상국에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를 수출하여 엄청난 호황을 누린 것이었다. 훗날 총리를 역임하는 안창호는 이 때를 "거리마다 부와 행복이 흘러넘치던 시대"라고 회상했다. 당시 힌국 정부는 전쟁을 통해 얻은 부를 재투자, 재분배하도록 장려했고, 덕분에 이어진 대공황에서 일본에 비해 비교적 적은 피해를 입었다.[12]

전간기

한성 거리 (1933)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한국은 북방 출병을 통해 연해주와 만주 북부로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군은 소련 노농적군, 몽골 인민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후 하바로우스크 조약을 통해 소련의 만주 진출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연해주와 그 이북지방에 친한 성향의 녹우크라이나 제1공화국을 건국하여 완충지대를 확보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소련의 시베리아 병합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만주의 친한 군벌들을 지원하던 한국은 소련의 위협이 커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더 견고한 완충지대를 만들고자 하였다. 논의 끝에 괴뢰국보다는 친한 성향의 동맹국이 완충지대로서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 만주국 정부와 1927년 심양조약을 체결하여 만주국을 만주의 유일한 정부를 만주 유일한 국가로 인정하고 지원하는 대신 남만주를 할양받았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이 몰아닥치자 한국은 혼란에 빠졌다. 한성 주식시장은 붕괴했고 실업률은 두 자릿수를 넘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공산주의와 결속주의, 무정부주의 등 극단파가 득세하였으며 이런 상황에서 출범한 사회주의 성향의 사회당 양기탁 내각은 강력한 복지정책과 군비 축소로 경제위기에 대응하였다. 양기탁 내각의 군비 축소와 대외 정책에 불만을 품은 급진파 장교들이 12.5 반란사건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1930년대 중반이 되면서 경제상황이 조금씩 호전되고 시작했고 민주당국민회가 손을 잡아 안창호 연립내각이 수립되었다. 새 내각은

2차 세계대전

3차 극동전쟁 당시 한국 국군[13]

1940년, 치올코우스키의 설욕을 이루고자 하는 소련과 한반도와 만주의 각종 자원을 얻으려 하는 일본이 손을 잡고 한국에 선전포고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박헌영이 이끄는 공산당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연길에서 공산주의 정권의 수립을 선포했다. 제3차 극동전쟁의 발발이았다. 소식을 들은 안창호 총리는 충격으로 쓰러졌고, 중추원은 긴급 회의를 소집하여 김창암을 총리로 선출하고 항전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결의의 바람과는 반대로 전황은 한국에 불리하게 흘러갔더. 이전 내각들의 지나친 군축으로 전력이 크게 약해져있었던 국군은 패전을 거듭했고, 남쪽으로는 한강, 북쪽으로는 압록강까지 전선이 후퇴하여 남부에는 일본의 괴뢰국인 동래 정권이, 북부에는 친소 공산주의 정권인 연길 정권이 넓은 땅을 차지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미국의 랜드리스로 간간히 버티고 있던 와중에, 춘천 전투마천령 전투에서 한국군이 일본군과 소련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며 적의 공세가 돈좌되었다. 마침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소련은 한국과의 평화조약을 모색하였고 미국의 중재로 한국과 소련 사이의 앵커리지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일본과 그 괴뢰정부인 동래정권과의 맞대결에 들어갔다.[14]

1942년, 동래를 수복하고 동래 정권을 멸망시키며 한반도에서 일본군을 완전히 몰아낸 한국은 미 항공대에게 비행장을 제공해 일본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는 데에 일조하였다. 또 1944년에는 미군, 영국군과 공동으로 제주도 상륙작전을 싱시해 영국의 조차지였던 제주를 일본으로부터 수복하였다.

냉전기

냉전의 끝

현재

정치

대한민국의 기본 정치 정보
세계자유지수 86점 | 자유로움
언론자유지수 81.39점 | 만족스러움
민주주의지수 8.52점 | 완전한 민주주의

권력 견제 구조

대한민국의 국가 기구 간 견제 구조
[ 국무집정 ]
집정
탄핵 소추권, 법률안 재의결권

법률안 재의 요구권
중추
각료 임명 제청권

각료 임명 거부권, 감리권
국무
명령·규칙 심사권

대법원장 임명 동의권
대법
탄핵심판권

헌법판관 추천권
헌재
[ 중추원 ]
중추
법률안 재의 요구권

탄핵 소추권, 법률안 재의결권
집정
의회 해산권

내각 구성권, 내각 불신임권
국무
위헌 법률 심판 제청권

대법원장 임명 동의권
대법
위헌 법률 심판권, 위헌 정당 해산 심판권

헌법판관 추천권
헌재
[ 국무원 ]
국무
각료 임명 거부권, 감리권

각료 임명 제청권
집정
내각 구성권, 내각 불신임권

의회 해산권
중추
명령·규칙 심사권

대법원장 임명권, 사면권
대법
권한 쟁의 심판권

헌법판관 임명권
헌재

국무집정

틀:역대 대한민국 국무집정 (개화)

중추원

틀:대한민국 중추원의 원내 구성 (개화) 대한민국 중추원은 대한민국의 입법기관이다.

중추원은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을 제정, 개정, 폐지할 수 있다. 법률안의 경우 중추원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인원 과반수 동의가 필요하며 헌법의 경우 중추원 의원의 2/3 이상의 동의가 팔요하다. 또 중추원은 국무총리를 선출하거나 불신임할 수 있으며 국무원에 대한 국정조사, 국정감사를 실시할 수 있다. 또 대통령과 도부평의회의 거부권을 재적 의원의 과반 출석과 출석 의원의 2/3, 이상의 출석으로 무효화할 수 있다.

의원의 임기는 4년이지만 의회 해산이 종종 있으므로 평균 임기는 이보다 짧다. 국무총리에게 중추원 해산권이 있으나 중추원이 재적 의원의 과반 찬성을 통해 자체적으로 해산할 수 있다.

중추원 의정

파일:대한민국 중추원 휘장.svg
대한민국 중추원 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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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NN대 대한민국 중추원 의정 김진표

대한민국 중추원 의정은 중추원의 대표이자 입법부의 수장이다. 집권여당의 중의원 중 정파색이 옅고 선수가 높은 원로 의원이 맡는 관례가 있다.

현재 중추원 의정은 국민의당 출신의 N선 의원인 김진표이다.

대법원

국무원


대한민국 국무원의 국가행정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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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원 소속
내무성 재무성 외무성 법무성
경무청 소방청 통계청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검찰청 외인청 교정청
국방성 상공성 과기성 교육성
군기청 특허청 우주청 우정청
건공성 후생성 노동성 환경성
경해청 방역청 기상청 산림청
농수산성 문화성
흥농청 수산청 문물청 관광청
국무총리 직속
총리부 경위정보부 금융부 관환부 안보부
탁지처 법제처 인사처 통계처
국무집정 직속
감리부
집정처 보훈처

대한민국 국무원은 대한민국의 행정부이다. 국무원의 정책 결정기구는 내각이며 내각의 장은 국무총리이다.

내각


대한민국 국무원의 내각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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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단
국무총리
국무부총리 (1~3인)
국무총판
내무성총판
재무성총판
외무성총판
법무성총판
국방성총판
상공성총판
교육성총판
과기성총판
기설성총판
후생성총판
보건성총판
자원성총판
환경성총판
문화성총판
농수산성총판
특임총판
저출산 담당 총판
반부패 담당 총판
지방 담당 총판
입법부 담당 총판
탄소중립 담당 총판
규제개혁 담당 총판
기타
정무찬성

대한민국 국무원 내각은 국무원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이다. 국무총리, 부총리, 상임총판, 특임총판, 정무찬성, 기타 국정운영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자[15]가 내각 각료가 된다. 정책 통과를 위해서는 각료 과반의 찬성이 필요하다. 각료는 전원 국무총리에 의해 임명되며 언제든지 해임될 수 있다.

총리


대한민국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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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김옥균 이완용 황헌 김홍집 박영효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유길준 서재필 이승만 손정도 이상설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양기탁 이동휘 유동열 안창호 김창암
제16대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조만식 여운형 조봉암 윤보선 장면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25대
김성주 장준하 김철 김영삼 김대중
제26대 제27대 제28대 제29대 제30대
이기택 홍숙자 이회창 노무현 김문수
제31대 제32대
정병국 유승민

고구려 국상 · 고구려 대막리지 · 신라 상대등 · 고려 문하시중 · 조선 영의정 · 대한국 총리

제32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유승민
① 국무총리는 중추원에서 의원 투표로 선출한다.
② 국무총리는 내각을 대표하며 행정에 관하여 국무원 행정각부를 통할한다.
③ 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총리에 취임할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 중

국무총리는 대한민국 행정부인 국무원의 장이다.

국무총리는 행정각부를 통할하고 부총리, 국무장관, 특임장관, 내각사무처장, 기타 각료, 헌법재판관 등을 임명, 면직할 수 있으며[16] 중추원을 해산할 수 있으나 중추원이 통과시킨 법률안을 거부할 수는 없다.

국무총리는 새 총선이 있을 때마다 총선 직후 중추원에서의 투표로 선출되며,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위 득표자와 2위 득표자 간의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중추원 의원의 과반수의 찬상으로 불신임될 수 있으며, 이 경우 총리는 총리직에서 사퇴하거나, 중추원을 해산하고 새 총선을 치룰 수 있다.

부총리

지방자치

틀:대한민국의 광역자치단체 (개화)

선거

틀:한국의 주요 선거 (개화)

주요 정당

경제

농수산업

제조업

광업 · 에너지

교통 · 무역

노동

사회

민족구성

공휴일

  • 일요일
  • 새해첫날 / 1월 1일
  • 설 / 음력 12월 31일 ~ 익년 1월 2일
  • 어린이날 / 5월 5일
  • 부처님오신날 / 음력 4월 8일
  • 대전승절 / 8월 15일
  • 추석 / 음력 8월 14일 ~ 16일
  • 현충일
  • 민국절
  • 갑신 / 12월 4일
  • 성탄절 / 12월 25일

문화

군사

현대 한국의 전쟁·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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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전투 교전국
제1차 극동전쟁
(1894-1895)
청나라의 기 청나라
의화단 운동
(1900-1901)
의화단
청나라의 기 청나라
제2차 극동전쟁
(1904-1905)
러시아 제국의 기 러시아 제국
제1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역)
(1914)
독일 제국의 기 독일 제국
북방 출병
(1918-1921)
소비에트 러시아
극동 공화국의 기 극동 공화국
몽골 인민공화국의 기 몽골 빨치산 → 몽골 인민군
만주 출병
(1927)
봉천군벌
치올코우스키 전투
(1936)
소비에트 연방의 기 소비에트 연방
제3차 극동전쟁
(1940-1941)
소비에트 연방의 기 소비에트 연방
일본의 기 일본 제국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
(1941-1945)
일본의 기 일본 제국과 친구들
한중전쟁
(1956-1957)
타이완의 기 중화민국
베트남 전쟁
(1967-1975)
베트남의 기 월맹
베트콩
걸프 전쟁
(1990-1991)
이라크의 기 이라크

행정구역 및 지역구분

틀:대한민국의 광역자치단체 (개화)

외교

한미관계

한일관계

한중관계

한러관계

한만관계

한오관계

틀:한오관계 (개화)

기타

훈장

각주

  1. ~ 1905년 2월
  2. ~ 1920년 5월
  3. ~ 1944년 or 1945년
  4. 여진인, 몽골인, 일본인 등
  5. 한성, 동래, 평양, 인천, 함흥, 비사, 대구, 의주, 남포, 나주, 여옥, 대전, 개성
  6. 제주
  7. 7.0 7.1 7.2 구 태극기
  8. 8.0 8.1 8.2 현 태극기
  9. 구 국가
  10. 현 국가
  11. 만국박람회에서 Korea라는 표기가 확립되었다.
  12. 한국도 큰 피해를 입었으나 일본 등 타 국가에 비해서는 피해가 적었다.
  13. 춘천 전투 당시 숲 속에 매복해 일본군을 기다리고 있는 6사단 장병들이다.
  14. 학자들은 소련과의 평화조약 체결 시점을 3차 극동전의 끝이라고 보며 이후의 한일간의 전쟁은 보통 태평양 전쟁의 일부로 간주한다.
  15. 국무총리가 최대 8인까지 지명.
  16. 헌법재판관은 임명만 가능하고 면직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