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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국가유공자 하월령 河月齡 | Ha Wolryeo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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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12월 24일 | ||||
청나라 상하이 | ||||
1970년 9월 13일 (향년 74세) | ||||
영국 잉글랜드 런던 웨스트민스터 | ||||
진주 하씨 시랑공파 | ||||
경상남도 진주시 평거구 수곡면 사곡리 | ||||
아버지 하성곤, 어머니 서희수 | ||||
언니 하월안, 여동생 하월향 | ||||
윤재혁 | ||||
육영공원 (졸업) 보성전문학교 (영문학 / 졸업) 게이오기주쿠대학 문학부 (영문학 / 박사) 컬럼비아 대학교 (철학 / 석사) | ||||
문학가, 교육가, 사회운동가 | ||||
개신교 (장로회) | ||||
1920년 시《백공작》을 양안에 발표 | ||||
《바람보다 먼저》(1968, 세광사) | ||||
천명, 월광, 낙화, 신세계 대동강은 흐른다, 아나톨리를 위하여 | ||||
대훈위 이화대수장 |
개요
"붓과 펜은 민족의 힘과 실력을 위상하는 시대의 원천이다." 하월령이 생전 품에 지니고 다닌 수첩의 첫 장에 수록된 문구 |
영통시대에 활동한 시인이자 교육가, 사회운동가. 20세기 초반 국문학과 여성문학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한국 근대 문학의 상징이다.
상세
생애
출생과 가문
청나라 상하이에서 유복한 귀족 가문으로 태어났다. 본가는 진주부 진주군 진주면 평안동(현 경상남도 진주시 진양구 중앙동)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외교관인 진주백(晉州伯) 하성곤과 어머니 서희수 사이의 3녀 중 차녀였다.
그녀의 부친은 당시 엄격하고 보수적인 귀족 가문의 일원이었음에도 신교육의 영향으로 "조국을 빛내는 신여성이 되려면 머리를 키워야 한다"고 하면서 세 딸에게 학문을 독려했다. 하월령은 14살 때 언니와 동생과 함께 귀국하여 육영공원에 입학한 후, 영어에 소질을 보이면서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했다.
평양여자대학교 설립
비극적 죽음
사조
문학과 기독교
대표 작품
바람보다 먼저
바람보다 먼저 하월령
바람이 허락한다면 |
유명한 구절
우리가 사랑했던 겨울과 여름 사이, 나는 그 자취를 아직 잊을 수 없다. 《가을》 |
신음 없이 들어도 노을 너머 사라지는 수평선, 그 한 때의 아름다움. 《아나톨리를 위하여》 |
내분의 으악새 학의 몸을 빌려 날아가라. 《으악새》 |
작품
여담
-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필적 확인 문구 "비에 젖지 않는 바다처럼"이 「바다의 편지」 속 시구의 일부이다.
- 2023학년도 9월 모의평가의 필적 확인 문구 "별과 함께 우리 월광으로 가자"가 「별과 함께하는 산책」 속 시구의 일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