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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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국어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이름 한글 조선왕조실록[1]
영어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한자 朝鮮王朝實錄
프랑스어 Annales de la Dynastie Jo-Seon 영어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국가·위치 대한제국 한성부, 성남시, 부산광역시, 평창군, 평양광역시 분류번호 국보 151호
소장·관리 수학원대학 규장각, 국가기록원, 학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평양대학교 중앙도서관 국립중앙박물관 소재지 정족산사고본: 한성부 성북구 수학원로 124, 수학원대학 규장각
태백산사고본: 부산광역시 연제구 경기장로 28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
오대산사고본: 강원도 평창군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적성산사고본: 평양광역시 대성구 대학로 13, 평양대학교 중앙도서관 보존서고
기타산엽본: 한성부 성북구 수학원로 124, 수학원대학 규장각
봉모당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학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재유형 기록유산 분류 기록유산 / 전적류 / 필사본 / 고본
등재연도 1997년 시설 1181책[2], 848책[3], 788책[4], 21책[5], 6책[6], 1,485책[7]
제작 주체 각 시기의 사관 및 실록청 지정연도 1973년 12월 31일
1차 사료 승정원일기 제작시기 태조 1년~유종 35년
첫 구절
태조 1년 7월 17일
태조가 수창궁(壽昌宮)에서 왕위에 올랐다. 마지막 구절
유종 35년 7월 16일
명년 1월 16일에 회릉(懷陵)에 장사하고 혼전(魂殿)의 이름을 효환(孝桓)라고 하였다.

개요

편찬

세초(洗草)

보관, 그리고 수난

갖가지 에피소드

평가

내용의 방대함

지우개를 쓰지 않는 역사

사관의 촌평

한계

사관들의 집념

현대화 노력

영인

번역과 전산화

번역의 문제점

실록 전산화의 영향

사극

교양서

그 외

목록과 분량

실록을 포함, 전근대 동양에서 서적/출판물의 분량을 말할 때 쓰는 '권' 과 '책' 에서 '권'은 '내용상 구분하여 나눈 단위' 이고 '책'은 '물리적으로 종이를 묶은 단위' 를 뜻한다. 즉 오늘날 흔히 말하는 '장(챕터, 파트)' 이 당시의 '권' 이고, '권' 이 당시의 '책' 이다. 예를 들어 태조실록이 15권 3책이라고 하면, 15개 장이 3권 책에 나뉘어 수록되었다는 의미다.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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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실록(태조~철종실록)

제목 권수 책수 비고
태조실록 15 3 첫번째 실록
정종실록 6 1 숙종 때에 묘호를 받았기 때문에 실록 속 표제는 전부 '공정왕실록'이라고 적혔다.
태종실록 36 16
세종실록 163 67 조선왕조실록 중에서 유일하게 세종실록오례, 세종실록지리지, 세종실록악보, 칠정산 내외편이 별도로 포함되어 있어 편년체 사서와 기전체 사서가 혼합된 듯한 형식을 보여준다.
문종실록 13 6 문종 1년 12월에서 2년 1월까지 다룬 11권이 표지만 11권이고 내용은 9권이기 때문에 전체 실록 중 유일하게 공백이 있는 실록이다. 원인은 인쇄 중 실수로 표지와 내용이 바뀐 책이 전주사고에 봉인된 바람에 생긴 일이다. 반대로 말하면 임진왜란 때 소실된 다른 사고에 아마 표지만 9권이고 내용이 11권인 문종실록이 있었다는 것이다. 선조 33년 예문관 대교 권태일이 묘향산에 있던 실록을 열람하다가 문종실록의 표지가 11권인데 정작 내용은 9권의 내용이 거듭 실린 것을 확인했다. 이때 권태일은 분명 처음에 인쇄하여 나누어 저장할 때 권질이 잘못되어 서로 바뀌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는데 훗날 영조 9년 누락이 재확인되어 오대산에 있는 실록을 전서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오대산에 있던 실록도 결국 전주에 있던 실록을 복사한거라 의미가 없었고 결국 문종실록 11권은 영원히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단종실록 14 6 숙종 때 비로소 묘호를 받았기 때문에 실록 속 표제에는 전부 '노산군일기'라고 적혔다.[8]
세조실록 49 18 세조실록악보 등이 부록으로 추가되어 있다.
예종실록 8 3
성종실록 297 47 권수가 가장 많은 실록. 원래 실록은 보통 1년치를 한 권으로 편성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반년치나 2개월치를 한 권으로 편성했지만 성종실록은 기사의 많고 적음을 불문하고 그냥 1개월치를 한 권으로 편성했기 때문이다.
연산군일기 63 17
중종실록 105 53
인종실록 2 2 인종 사후 명종 재위기간에 편찬되지는 않았고,명종 사후에 명종실록을 편찬하면서 같이 편찬했다. 따라서 인종실록과 명종실록은 편찬에 관여한 사람이 같다.
명종실록 34 21
선조실록 221 116 임진왜란으로 인해 관련 자료들이 대거 소실되면서 임진왜란 이전은 극히 소략하다. 반면 임진왜란부터 선조 말까지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대거 들어가 분량이 비대해졌다. 선조 24년(1591)까지가 25권 12책뿐인데 비해 선조 25년부터 41년까지는 196권 104책이다. 그나마 선조 25년이 1월부터 3월까지가 빠졌음에도…
선조수정실록 42 8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이 편집 주체가 되어 북인이 편집한 선조실록의 내용을 수정한 것. 효종 대에 완성되었다. 이이, 성혼 같은 서인 인사들에 대한 왜곡된 기록을 바로잡음을 목적으로 수정한 것이다. 서인만 좋게 쓰면 눈치 보여서인지 유성룡 등 대북파가 폄하한 남인도 좋게 써준 기술이 많다. 하지만 서인에 대한 왜곡은 심각하며 선조실록에서 생각보다 고쳐진 부분은 많지 않다. 원균명장론이나 십만양병설 같은 주장들과 관련이 있어서 관련 논쟁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실록.
광해군일기(중초본) 187 64
광해군일기(정초본) 187 40
인조실록 50 50
효종실록 21 22
현종실록 22 23
현종개수실록 28 29 남인이 편집 주체가 된 현종실록의 내용을, 경신환국을 통해 서인이 집권한 후 개수한 것. 고쳐진 실록 중 가장 많은 범위에 손을 대었다. 고쳤다기보다는 아예 실록을 새로 하나 더 만들었다고 봐도 되며 기존의 현종실록보다 분량도 더 많다. 그 유명한 예송논쟁.
숙종실록 65 73
숙종실록보궐정오 노론이 편집한 숙종실록을 소론이 집권하자 고친 실록. 그런데 다른 수정실록보다 가장 고친 부분이 적다. '보궐정오'는 고친 부분을 기존의 숙종실록 권말에 '어느어느 부분을 어떻게 고쳤다.'는 식으로 수정부분을 부록 형식으로 끼워 넣은 것.
경종실록 15 7
경종수정실록 5 3 소론 집권기에 편찬한 경종실록을 노론이 집권하자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 노론에 대한 불리한 기록이 삭제, 수정되고 상대적으로 소론에게 불리한 기록이 실렸다.
영조실록 127 83 처음 받은 묘호가 '영종'이었기에 표지에는 '영종대왕실록'이라 적혔다.
정조실록 54 56 처음 받은 묘호가 '정종'이었기에 표지에는 '정종대왕실록'이라 적혔다.
순조실록 34 36
헌종실록 16 9 헌종 ~ 철종대의 실록들은 세도 가문에 불리한 기록이 대부분 삭제되는 등, 이전 시기의 실록에 비해 분량이 적고 서술 자체가 빈약하다.
철종실록 16 9
총합 1894 888

대한실록(고조 ~ 유종실록)

제목 권수 책수 비고
고조실록 52 52 한국통감부 간섭하에 궁내부 실록청에서 편찬
순종실록 21 7
고조개수실록 58 67 통감부가 편찬 주체가 된 두 실록의 내용을, 패전 후 이승만 내각이 주도하여 개수한 것. 모든 범위에서 손을 대서, 고쳤다기보다는 아예 실록을 하나 더 만들었다고 봐도 되며, 모든 실록의 양이 증가하였다.
순종개수실록 24 10
열조실록 n n
열조개수실록 n n 박정희 내각이 편찬 주체가 된 열조실록의 내용을, 민주화 후 김영삼 내각이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개수한 것. 고쳤다기보다는 실록하나를 더 쓴 수준이다.
유종실록 n n
총합 n n

의의

여담

외부 링크

사이트

영상

같이 보기

관련 역사서


  1.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 기타산엽본.
  2. 정족산사고본(鼎足山史庫本)
  3. 태백산사고본(太白山史庫本)
  4. 오대산사고본(五臺山史庫本)
  5. 기타산엽본(基他散葉本)
  6. 봉모당본(奉謨堂本)
  7. 적상산사고본(赤裳山史庫本)
  8. 수양대군을 전부 '세조'라고 기록하고 있다. 단종 사후가 아닌 세조 사후에 편찬된 것이다. 또한 다른 실록과 일기에는 편찬에 관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었지만, 노산군일기에는 전혀 없다. 때문에 세조 사후에 편찬된 사실만 내용을 통해 알 수 있을 뿐, 정확한 편찬 시점은 불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