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1968 2023, CC-0 |
1993년 미국 대통령 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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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결과 (1차 / 결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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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 | 1차 86.69% 결선 85.89% | |||||||
선거 결과 | ||||||||
후보 | ||||||||
1차 투표 | ||||||||
31.72% 49,323,807 |
33.15% 51,547,422 | |||||||
결선 투표 | ||||||||
57.42% 88,418,382 |
42.58% 65,566,958 | |||||||
당선자 | ||||||||
무소속 로스 페로 |
개요
1993년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1991년 아메리카 사회주의 국가 연방의 해체 이후 최초로 치러진 민선 대통령 선거였다. 선거 결과, 무소속 로스 페로 후보가 결선 투표에서 과반 이상을 득표하여 미국의 제2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배경
1930년부터 1991년까지 이어진 61년간의 일당제 공산주의 통치와 유라시아 연방과의 냉전 이후, 1991년 2월 2일 아메리카 사회주의 연방(CPUSSA)은 체제적 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 아메리카 연방(미국)으로 다시 태어났다. 공산당 내 개혁파는 매사추세츠SR에서 오랫동안 행정 요직을 맡으며 행정력을 입증받은 온건한 개혁파 마이클 두카키스를 과도기 지도자로 내세웠고 상트페테르부르크 학파(오스트리아 학파)의 조언에 따른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방을 추구했다. 그러나 두카키스 과도정부가 내세운 "충격요법"은 제어할 수 없는 환율 변동, 초인플레이션, 기업 도산 등을 불러일으키며 신생 아메리카 연방을 혼란으로 내몰았다.
1992년 총선에서 미국 민주사회당으로 이름을 바꾼 공산당은 435석의 의석 중 10석만을 확보하며 군소정당으로 굴러 떨어졌고 USSA의 재건을 주장하는 급진 공산주의자, 극단적 보수주의자, 자유지상주의자, 포퓰리스트 등의 준동으로 정치는 혼란스러워졌다. 지지 기반을 잃은 두카키스 정권은 1993년 조기 대통령 선거를 통해 하루 빨리 민정으로 정권을 이양하고자 했다.
대선을 앞두고 자유무역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명시적 반대를 내세운 신흥재벌 로스 페로와, USSA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초강경 보수주의자 패트릭 뷰캐넌, "양심적 자유주의"를 내세운 철학자 존 롤스가 유력한 후보자로 떠올랐다. 구 공산당 온건파는 로버트 돌 부통령을 후보로 내세웠으며 그 외에도 마리오 쿠오모 뉴욕SR 행정수반, 윌리엄 클린턴 아칸소SR 검찰총장, 신흥재벌 도널드 트럼프 등이 군소 후보로 부상하며 승패를 가릴 수 없는 접전이 펼쳐졌다.
후보
로스 페로 (무소속)
Real Plans for Real People 진정한 인민을 위한 진정한 계획 | |
출생 | 1930년 6월 27일 (6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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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메이트 | 제임스 스톡데일 前 미국 인민군 해군참조총장 |
기반주 | 텍사스 |
소속당 | 무소속 |
성향 | 중도 ~ 중도우파 대중주의 |
로스 페로는 텍사스SR 출신의 사업가로, 텍사스에서 주택건설 공기업의 사장으로 근무하다가 1985년 경제자유화 조치 이후 급속도로 부동산 재벌로 솟아올라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인 중 하나가 된 올리가크(Oligarch, "신흥 재벌")이다. 그는 전국적으로 거의 알려져있지 않았으나, 두카키스 과도정부가 추진한 나프타(북미자유무역) 협정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정치적 행보를 보이며 급속도로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또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양 진영의 정치인들이 무능한 모습을 보이며 정치적 혐오에 빠져있던 미국인들에게 비(非) 정치인이었던 페로는 "신선함"을 무기로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팻 뷰캐넌을 앞지르고 1993년 연초부터 가장 높은 지지를 보이기 시작했다.
기업가로서 보인 여러 범법 행위와 스캔들, 그리고 체계적이지 못한 포퓰리즘적인 정책들이 비판을 받고 있으나, 현재로서 반공주의 계열 정치인 중 가장 높은 지지를 얻고 있으며 대중적인 지지도 상당하다. 구 공산당 계열과 뷰캐넌의 급진적 반동주의에 반대하는 자유주의, 반공주의 인사 대부분이 페로 지지를 선언하며 가장 승리 가능성이 높은 후보로 여겨졌다.
패트릭 뷰캐넌 (미국 재건공산당)
America First 미국이 우선이다 | |
출생 | 1938년 11월 2일 (54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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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메이트 | 조지 W. 부시 現 텍사스 주지사 |
기반주 | 컬럼비아 |
소속당 | 미국 재건공산당 |
성향 | 극좌 공산주의 |
패트릭 뷰캐넌 역시 로스 페로와 마찬가지로 거의 알려진 바가 없던 정치인으로, 컬럼비아 행정구에서 태어나 1970년대부터 조지 H.W. 부시 CSS(국가안보위원회) 국장, 월터 먼데일 서기장 등 미국 공산당의 고위 관료들을 보좌했다.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된 후, 그는 폭 넓은 컬럼비아 정치 경력을 바탕으로 공산당 출신 고위인사들을 포섭하였으며 극단적인 언행과 행보로 대중의 지지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1992년 연초부터 유력한 대권 주자로 여겨지고 있었으며 로스 페로에 이은 2위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는 강경한 "USSA 복고주의자"로 외부 자본 투자 금지, 나프타 협약 즉각 파기, 부동산 국유화 등 좌익포퓰리즘 정책으로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주류 언론과 경제학자, 유라시아 정부 측에서는 뷰캐넌의 급진 마르크스주의 성향을 경계하고 있으며 그에 우호적이지 않은 행보를 보였다.
존 롤스 (정의당)
Equal Opportunity for All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 |
출생 | 1921년 2월 21일 (7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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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메이트 | 로버트 노직 現 하버드대학 철학과 교수 |
기반주 | 매사추세츠 |
소속당 | 정의당 |
성향 | 중도좌파 사회자유주의[2] |
존 롤스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친 철학자로, 1971년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고 좌파적 자유주의를 옹호한 저서 《정의론》이 문제가 되어 유라시아 연방으로 추방되었다. 그러나 유라시아 연방 내에서 적극적으로 자유주의를 옹호하고 독재를 비난하는 저술 활동을 펼치며 1988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미국 내 자유주의자들과 평화운동가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전설이 되었고 "백인 만델라"라는 별명도 얻었다. 1991년, 미국의 민주화 이후 미국으로 귀국하여 하버드 대학교에 복직하였고 미국의 어지러운 정치 현실을 비판하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20년간 미국과 상관 없는 나라를 떠돌며 망명생활을 했기에, 현실 감각이 부족하며 고지식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유력 후보 중 가장 확고한 반공주의, 자유주의, 친동방 행보로 인해 지식인계와 주류 언론, 시민단체 사이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꾸준히 20%대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당선 가능성도 어느정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소 후보
여론조사
투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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