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러시아 임시정부 (민국 38)

Sindan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12월 4일 (일) 16:4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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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관 설명 ]
[ 세계관 설명 ]
중국이 제국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망국의 인간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노예로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민국 38(民國三十八)은 가장 대표적인 대체역사 소재 중 하나인 중화민국국공내전 승리를 가정한 세계관 입니다.
민국 38년(1949년) 중화민국의 국공내전 승리 이후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변화한 여러 정치, 사회, 문화,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자유 러시아 임시정부
Временное правительство свободной Россіи[1]
망명정부
국기 국장
Да здравствуетъ Россія, свободная страна!
자유로운 나라, 러시아 만세![2]
국가 гимнъ свободной Россіи
자유 러시아의 찬가
[3][4]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명목상)
하얼빈(사실상)
정치 체제 공화제, 대통령제(집단지도체제)

역사적: 일당제, 권위주의, 파시즘(논란 있음)
정부수반 최고지도자 → 총리 → 대통령
대통령 알렉산드라 이바노바(2022~)[5]
여당 틀:입헌사회민주당 (민국 38)
언어 러시아어, 중국어, 영어
민족 러시아인
하얼빈에 위치한 임시정부 청사

개요

Снова нападай на Сѣверъ, спасай соотечественниковъ,
снова нападай на Сѣверъ, спаси свою Родину!
북방을 다시 공격해서 동포를 구하라, 북방을 다시 공격해서 조국을 구하라!
그레고리 세묘노프 전 자유 러시아 임시정부 최고지도자,
망명지 하얼빈에서 노환으로 쓰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6]

1956년 중국으로 투항한 그레고리 세묘노프 장군을 필두로 중국의 백계 러시아인들이 구성한 망명정부이다. 현 체제의 타도와 자유롭고 반공적인 러시아의 건설을 목표로 한다.

설립과 역사

초기

그레고리 세묘노프

자유 러시아 임시정부는 구 백군 출신의 장교였던[7] 그레고리 세묘노프가 1956년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단체이다. 세묘노프 장군은 본래 러시아 내전 당시 자바이칼 지방 일대를 통제하던 백군 장교였으나 자신이 지배하던 지역에서 폭정을 일삼아 지역민들의 반발을 사 결국 적군에게 쫒겨 중국으로 망명한 인물로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에 협력하였으나 국민정부의 남만주 수복작전 당시 중국군에 체포되었다.중국군은 톈진에서 일본군의 첩자 노릇을 하고 만주국에 부역한 세묘노프를 소련으로 송환하려고 했으나 국공내전이 재개되면서 장궈타오와 신장 소비에트를 지원하던 소련과의 관계가 냉랭해졌고 세묘노프의 송환은 무위로 돌아갔다.

1950년 몽골 전쟁으로 몽골을 다시 영향권 안에 편입시킨 중국과 장제스는 차후 청나라의 영역이던 외만주와 투바 지역의 수복또한 계획하게 되었다.(녹오계획, 綠烏計畫)[8] 그러나 투바와 외만주 모두 러시아(소련)의 통치하에 들어간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고 중국계 상당수가 추방당한 상황에서 중국이 이 지방을 다시 통치한다고 하면 해당 지역의 거주민들인 투바인들과 러시아인들이 반발 할 것 이라는 당착에 부딪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중국 정부는 해당 계획을 폐기하였으나 계획 자체는 명칭을 변경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으로 알려졌고 극대노한 베리야 서기장은 소련으로 망명한 중공 잔당들을 후원하여 신장과 헤이룽장성 일대에서는 3주에 1번 꼴로 총격전이 발생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이에 장제스 총통과 중국 정부는 소련에 받은것을 똑같이 돌려주자는 심정으로 소련 정권에 반대하는 백계 러시아인들을 모아서 중국 정부에 충성을 맹세한 세묘노프를 수반으로 한 정부를 수립하니 이것이 자유 러시아 임시정부의 시작이었다.

사실 설립 초반에 자유 러시아 임시정부는 현재도 국내에 존재하는 일부 관변조직들과 같이 유명무실한 조직에 불과했다. 일단 중국내의 백계 러시아인 사회는 만주국 시절 일본의 탄압과 소련의 만주 전략 공세 작전 및 신장 소비에트의 소련 송환으로 인해 붕괴 직전까지 몰린 상황이었고 수반으로 내세운 세묘노프는 위에서 보다시피 백군 시절의 폭정과 친일 행위 때문에 백계 러시아인들 사이에서는 물론 중국 정부 마저도 그를 신뢰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설립 이후 10여년간 자유 러시아 임시정부는 외만주 지역에 삐라를 뿌리거나 반공 행사에 연사로 참여하는 등의 행보만을 보이며 존재감이라곤 전혀 없는 단체로 존속해나갔다.

문화대혁명 당시의 행보

장제스 총통과 세묘노프 장군

그러나 소련에서 희대의 뻘짓인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홍위병들의 문화반달리즘과 인텔리 도륙은 모스크바에서 저 멀리 떨어진 극동에서조차 예외가 아니었고 수많은 소련인들이 몽골과 중국, 심지어는 한국과 일공으로까지 건너오기 시작한다. 이들은 대부분 적백내전 이후에 태어난 세대였으며 외만주 출신이었기에 세묘노프 장군의 실정과는 관계가 없었고 이들이 대규모로 중국에 정착하면서 중국내 러시아인 사회의 주류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1. 본토식 철자법으로는 Временное правительство свободной России
  2. 본토식 철자법으로는 Да здравствует Россия, свободная страна!
  3. 본토식 철자법으로는 гимн свободной россии
  4. 세묘노프 집권기에는 시온의 주님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Коль славенъ нашъ Господь въ Сіонѣ)를 사용했으며 이외에도 반공반소가(Антикоммунистическая и антисоветская песня)등의 노래또한 사용된다
  5. 본명은 알렉산드라 보리소비치 이바노바(Александра Борисовича ​Иванова), 임정 최초의 여성 수반이다.
  6. 한편 해당 발언에 대해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 라브렌티 베리야는 "모든 반동파들은 양치기 소년에 불과하다!"라며 세묘노프 장군을 조롱했다.
  7. 최종계급은 중장.
  8. 본래는 외환계획(外還計畫)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었으나 정보의 누출을 우려하여 우크라이나인들이 외만주를 부르던 명칭인 젤레니 클린(녹색 쐐기)어 따온 녹(綠)과 청나라 시대 투바의 이름인 탕누 우량하이(唐努烏梁海, 당노오량해)에서 따온 오(烏)를 합친 녹오계획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