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 전

왜 헤일리는 이길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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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햄프셔 경선을 앞두고 니키 헤일리 전 UN 대사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양강 구도를 구축하고 있다.

 

헤일리에게 뉴햄프셔가 마냥 적대적인 지역은 아니다. 부시 가문의 가신으로 유명한 스누누 부자(아버지는 아버지 부시의 비서실장을 지냈고 아들은 現 뉴햄프셔 주지사)가 헤일리를 지지했고, 인구 구성으로만 놓고 봐도 뉴햄프셔의 공화당 유권자들은 상대적으로 중도보수적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오와 코커스 직후의 여론조사에서도 헤일리는 40%의 지지율을 기록해 트럼프의 40%와 동률을 이루었다(디샌티스 사퇴 직전의 조사이다).

 

뉴햄프셔는 대의원단 수가 적기에 헤일리가 실질적으로 판세를 뒤집을만큼의 영향력을 갖고 있지 못하지만 처음으로 치러지는 프라이머리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파급력은 크다. (트럼프 같은) 유력주자가 뉴햄프셔에서 부진했을 때 입는 정치적 타격은 크다. 예를 들자면 1952년 트루먼과 1968년 존슨은 뉴햄프셔에서 부진한 직후 3선 포기를 선언했다. 반면 (헤일리 같은) 후발주자에게 뉴햄프셔는 기회의 땅이다. 1992년 빌 클린턴, 2016년 버니 샌더스, 2016년 트럼프가 대표적이다.

 

따라서 헤일리가 뉴햄프셔에서 트럼프를 꺾거나 추격한다면 헤일리가 유의미한 반-트럼프의 표를 잠식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 나는 헤일리가 뉴햄프셔에서 이기더라도 추진력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또한, 그가 뉴햄프셔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받고 추진력을 잃을 것이라고도 주장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우선 그녀의 뉴햄프셔 승리가 향후의 추진력을 담보하는가?

 

역사적으로 헤일리와 비교할만한 사람이 있다.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이다. 그가 대선 후보로 나섰던 2008년이 아닌, 처음으로 대선 후보를 노린 2000년 선거의 이야기이다. 1996년 대선과 1998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한 후, 유일한 대권주자는 텍사스 주지사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던 조지 W. 부시였다. 대선을 1년 앞둔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부시의 당 내 지지율은 68%였고 매케인은 8%에 불과했다. 하지만 매케인은 선거자금법 개혁과 같은 중도적인 입장을 바탕으로 뉴햄프셔에서 놀라운 지지율 상승을 보였고, 투표 당일 49% 대 30%로 부시를 꺾고 깜짝 승리를 거두었다.

 

그럼에도 매케인은 승리할 수 없었다. 선거 일정 상 뉴햄프셔 바로 다음의 프라이머리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치러졌기 때문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는 남부의 대표적인 주로 아직도 기독교 보수주의가 강한 영향력을 가지는 주이다. 부시는 매케인에 비해 선거 자금이 압도적이었고, 여러 기독교 우파의 인사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매케인을 뉴햄프셔에서 이기게 만든 그의 여러 개혁적인 입장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기독교도들에게 전혀 인기가 없는 내용이었다. 부시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9%p차로 승리했고, 그 직후의 슈퍼 화요일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매케인은 2주도 안가 후보직을 사퇴했다.

 

보스턴 글로브나 워싱턴 포스트 같은 언론은 헤일리를 실제로 매케인에 비유하고 있다. 왜냐하면 헤일리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극도로 인기 없기 때문이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사우스캐롤라이나 내 지지율은 61%에 달하는 반면, 헤일리는 24%에 불과하다. 매케인의 사우스캐롤라이나 패배와 헤일리의 패배는 격이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헤일리는 이 지역에서 8년동안이나 주지사를 지냈기 때문에,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는 헤일리의 지지 기반이라 할 수 있다. 한데, 매케인은 9%p 차이로 졌지만 최근의 여론조사는 35%p 이상의 격차로 헤일리가 패배할 것을 예상한다. 그 타격은 클 것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문제를 제쳐두더라도, 뉴햄프셔의 승리가 즉각적인 헤일리의 모멘텀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 이 역시 매케인과 같은 이유이다. 매케인은 뉴햄프셔를 벗어나면 인기가 없는 정책을 주장했고, 전국적으로 부시에게 압살당했다. 헤일리 역시 마찬가지로 뉴햄프셔 유권자만을 위한 정책을 발표하고 있고, 뉴햄프셔 유권자들에 최적화된 지지 기반을 관리하고 있다.

 

통계적으로 보자면 뉴햄프셔는 헤일리에게 가장 최적으로 맞추어져있는 주 처럼 보인다. 뉴햄프셔의 인문적 환경을 3가지 포인트로 정리하자면 고소득층-부유층-교외이다. 이 주에 거주하는 공화당 유권자의 대부분은 아이비리그를 졸업하고 한적한 교외에 수영장 딸린 2층 저택을 두고 사는 전문직 고소득층이다. 그리고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헤일리가 강세를 보인 유권자 집단은 바로 그들이다. 고학력자(29%) 지지율이 저학력자(10%) 지지율보다 3배 높았고, 고소득층(29%)이 저소득층(14%)보다 많이 지지했고, 시골(13%)보다는 교외(23%)와 도심(22%)에서 헤일리를 더 많이 지지했다. 정리하자면 헤일리가 뉴햄프셔에서 선전하는 것은 그만의 경쟁력보다는 뉴햄프셔에 최적화된 헤일리의 자격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2020년대 공화당의 지지층은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 2022년 중간선거의 출구조사 결과, 공화당의 지지율은 대졸자(44%)에서 보다 고등학교 이하(55%)에서 높았다. 도심(41%)보다 교외(52%)가, 교외보다 농촌(63%)에서 더 높았다. 공화당 지지층은 저학력자 - 고소득층 - 농촌 거주자이다. 헤일리와 맞는 것은 고소득층 밖에 없지만, 사실 공화당을 지지하는 고소득층은 헤일리의 그것(대학교육을 마친 전문직 종사자)과는 다른 교육 수준이 낮은 50세 이상의 은퇴자에 더 가깝다.

 

이것은 매케인이 2000년 뉴햄프셔에서의 깜짝 승리를 거둔 이후에 지속적으로 부시에게 패배한 이유와 같다. 매케인은 뉴햄프셔에서 이겼지만 그것은 매케인이 매력적이어서가 아니라 매케인이 "뉴햄프셔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헤일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더욱 안타깝게도, 뉴햄프셔는 2000년에 비해 훨씬 진보적인 주가 되었다. 2000년 대선에서 뉴햄프셔는 부시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최근의 뉴햄프셔 주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은 9점 차이로 트럼프를 앞서고 있다. 이 주가 어떻게 공화당의 미래를 결정짓는 모멘텀의 발판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자: 2000년 매케인과 비교되어도 괜찮을만큼 헤일리는 뉴햄프셔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가?

 

공정하게 말하자면, 헤일리는 뉴햄프셔에서 치러진 그 어떤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를 이기지 못했다. 매케인은 18%p 차이로 부시를 꺾었지만, 여론조사 평균에 따르면 헤일리는 트럼프에게 15%p 가까이 밀리고 있다. 국내 언론은 헤일리가 "잘" 받는 여론조사만을 토대로 헤일리와 트럼프의 관계를 "양자구도"로 축약하고 있지만, 사실 헤일리가 뉴햄프셔에서 트럼프에 열세한 정도는 더불어민주당이 경상남도에서 국민의힘에 열세한 정도와 비교될 수 있다. <보스턴글로브>지에서 발표한 최근 여론조사에서 헤일리는 36 대 55로 19점 차이의 열세를 보였다. 대조하자면 4년 전 총선의 경상남도에서 민주당은 국힘에 15점 차이로 열세했다(38 대 53).

 

헤일리가 이렇게 크게 밀리고 있는 것은 그가 진정한 반-트럼프의 후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첫번째로 그의 경력이 부족하다. 헤일리는 "트럼프 행정부"의 UN대사였다. 트럼프의 부하였던 사람이 어떻게 트럼프에 맞설 수 있나? 두번째로 헤일리는 전혀 온건하지 않다. 그의 외교 정책은 조지 W. 부시나 딕 체니의 그것만큼이나 호전적이다. 그는 남북전쟁의 원인이 노예제가 아니라 주의 권리 때문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고전적으로 남북전쟁에서 남부를 옹호하는 극우 수정주의자들의 견해이다. 세번째로 헤일리는 트럼프와 직접 맞서 싸우지 않고 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당성에 전혀 의문을 부여하지 않고 단지 2024년에 트럼프가 출마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만을 반복한다(사법리스크나 고령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 이재명의 사퇴를 요구하는 비명계 의원의 요구만큼 근거가 연약해보인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트럼프의 행동이 문제가 없었음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그의 메시지는 연약하고, 소극적이며 비겁한 것처럼 비추어진다.

정리하자면 그는 진짜 반트럼프가 아니라 공화당 기득권층에 의해 억지로 만들어진 반트럼프 후보처럼 보인다. 친트럼프 진영에서는 이것이 얼마나 기득권이 트럼프를 "무서워하는지"에 대한 증거가 될 뿐이고, 반트럼프 진영에서는 헤일리가 얼마나 믿을 수 없는 후보인지에 대한 의심을 강화할 뿐이다.

 

이 때문에 강력한 트럼프의 적들도 헤일리를 지지하기를 꺼려한다. 에이사 허친슨 아칸소 주지사는 헤일리를 지지했지만, 허친슨은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0.5%도 득표하지 못한 인물이다. 트럼프의 가신이었다가 최근 강력한 반트럼프 인사로 거듭난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는 예비선거를 앞두고 사퇴했음에도 헤일리 지지를 거부했다. 도리어 헤일리가 승리할 수 없을것이라며 냉소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거물급 반트럼프 인사들의 인식은 더욱 냉랭하다. 존 케이식 전 오하이오 주지사나 리즈 체니 전 하원의원, 래리 호건 전 메릴랜드 주지사, 존 헌츠먼 전 유타 주지사,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폴 라이언 전 하원의장 등 수많은 공화당의 반트럼프 리더들이 헤일리의 캠페인을 거의 돕지 않고 있다. 케이식은 바이든을 지지했고, 체니는 제3지대 출마를 노리고 있으며 조지 W. 부시는 아직도 딕 체니와 친하기 때문에 체니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친트럼프 진영은 결속하고 있다. 아이오와 코커스가 끝난 직후, 친트럼프 성향 후보인 비벡 라마스와미가 후보직을 사퇴하고 트럼프를 지지했고 얼마 전에는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마저 트럼프를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편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같이 중도보수로 여겨졌던 인사까지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은 헤일리의 압도적인 열세를 보여준다. 심지어 헤일리의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지지자인 스누누 뉴햄프셔 주지사마저 "우리는 1위가 아닌 강한 2위를 노린다"라고 발언할 정도로 헤일리의 패배는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이제 다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자. 헤일리는 강한 후보인가? 그는 자신의 가능성을 가장 강하게 드러낼 수 있는 뉴햄프셔에서조차 압도적으로 패배할 운명이다. 뉴햄프셔에서 이기더라도 사우스캐롤라이나라는 거대한 관문을 통과해야하고, 그 이후의 각종 보수적인 주의 경선에서도 이겨야한다. 이 모든 것을 뚫을 가능성은 차라리 트럼프가 심장마비로 급사해 헤일리가 후보직을 쟁취할 가능성보다 낮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헤일리는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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