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전

빌렘 플루서의 역사-미디어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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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미학자 빌렘 플루서 Vilém Flusser에 의하면 역사는 총 세가지의 단계로 나뉘어진다. 첫번째는 동굴 벽화로 상징되는 역사 이전의 시대이고, 두번째는 문자가 발명된 역사의 시대이며 세번째는 사진이 출현한 탈-역사의 시대이다. 플루서가 설명하는 각각의 발전 단계는 미디어의 표현 방식에 맞추어져있는데, 우선 역사 이전의 시대는 마술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는 그림이 인간과 세계의 매개물이었다. 선사의 인류에게는 그림이 곧 세계처럼 느껴졌으며, 동시에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자신의 소망과 생각을 그림에 투사하는 방식으로 그림과 상호작용하였다. 이 시대의 인간은 그림을 자신의 이상향으로 여기고 욕망을 그림에 투사했기 때문에 그림이 마치 마술과 같이 작용했다.

 

그러나 "환각" 상태를 깨기 위해 문자가 등장하면서 역사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플루서는 문자의 의의를 시간의 지각으로 표현한다. 즉, 한 방향에서 한 방향으로 글을 쓰는 것은 선형성의 사고 방식을 만들었으며, 시대는 흐르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생각의 틀을 주조했다. 그런데 플루서에 따르면 문자는 추상적이고 개념적이라는 한계점이 있다. 이는 문자가 그림에 비해 인간과 세계를 매개하는 능력이 다소 모호하다는 점을 의미하였다. 그리하여 인간이 세계를 개척할 수록 인간은 문자 그 자체를 숭배하게 되었는데, 플루서가 드는 대표적인 두 예시는 크리스트교와 마르크스주의이다. 크리스트교와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주의적인 방식으로 세계관을 풀이하면서 스스로의 우주를 만들었고 오늘날까지 수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18세기에 들어서면, 수학과 과학이 새로운 숭배의 대상이 된다. 수식과 각종 방정식은 그 자체로서는 텍스트에 지나지 않으나 세계의 이치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그것의 엄밀함과는 별개로 이념 혹은 종교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자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19세기에 기술적 영상이 발명되고 사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플루서는 주장한다. 쉽게 말해 영화를 의미한다. 영화는 세계를 그대로 찍어서 보여주는 기능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더욱 추상적이기도 하다. 영화는 복잡한 코드와 프로그래밍을 통해 이루어져있으며, 그 속에 수많은 층위에서 다른 집단이 제작물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플루서는 사진을 찍고 영화를 찍는다는 행위가 사진기라는 "장치"에 함유된 가능성 중 하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본다. 사람들은 그저 사진을 찍는다고 믿지만, 사실 그 사진이 나오기까지는 사진 산업의 프로그램, 산업공단을 만든 사회, 경제적 장치, 사진가의 의도와 그것을 주조한 이데올로기... 등의 다층위가 겹쳐져있다. 그것이 배포되는 과정 역시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며 다층적이다. 플루서는 이를 지시적 사진(학술), 명령적 사진(정치), 예술적 사진(전시)로 나누고 사진은 그 세가지 중 하나에 코드화되어 배포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결국 사진의 시대에 인간은 복합적인 사진의 이데올로기에 굴복하는 것인가? 플루서는 희망 역시 제시한다. 플루서는 사진이 너무 다층위적이기 때문에 텍스트나 그림과는 달리 그것이 소수의 숨은 배후 권력자에 의해 창조될 수 없는 것임에 주목한다. 장치는 룰은 정해져있지만 결국 그것을 최종적으로 찍고 수용하는 사람은 사용자 그 자신이다. 따라서 플루서는 최고의 사진을 주체적으로 장치를 정복하였을 때의 사진이라고 칭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사진을 주체적으로 제작, 감상하는 자세가 현대 인류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플루서는 이런 점을 들어 사진의 시대 이후로는 마르크스주의 계급론이 시효를 다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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