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오이타현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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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 제22대 오이타현지사 가네무라 세이온 金村正恩 | Theion Kanemur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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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4년 1월 8일 (45세) | ||||||||||||||||||||||||
일본국 오이타현 | |||||||||||||||||||||||||
현직 | 제36대 오이타현지사 | ||||||||||||||||||||||||
서명 | |||||||||||||||||||||||||
링크 | [1]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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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가네무라 세이온 오이타현정 1기 슬로건 생명과 태양의 땅 오이타현 |
日本列島を原発も核脅威もない生命の地にするために積極的に努力していくことを確約しました。 일본 열도를 원전도 핵 위협도 없는 생명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하였습니다. 2018년 타이베이 아시아 원전 제로회의에서 귀국한 직후 |
君と僕のための変化 너와 나를 위한 변화 제3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슬로건 |
일본국의 한국계 정치인.
제20·21대 히타시의원과 제18-21대 오이타현의원을 역임하였으며 현직 민선 제22대 오이타현지사 겸 녹색당 간사장이다.
생애
초기
1984년 1월 8일, 오이타현에서 영화감독 가네무라 쇼이치[5]와 배우 다카다 히메[6] 사이에서 태어났다. 사가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히타시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2003년 지역공단에 의하여 히타시 서부지역에 화학폐기물이 유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역하천에 유출된 유독성 폐기물로 인하여 5명이 숨을 거두고 17명의 인원이 응급실로 실려갔으나 해당 공장측이 한화 5천만 원 가량의 벌금만을 지불하고 허무하게 끝이났다. 이에 자신의 이웃들이 응급실로 실려가는 모습을 보고 분노한 가네무라는 현정부의 폐기물 규제 강화와 공장측의 제대로 된 보상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시작하였다.
초기에 오이타현정부는 무시로 일관하였으나 당시 일본국 염세주의 영화의 거장이던 아버지 가네무라 쇼이치 감독이 5일째 단식투쟁을 이어가던 아들의 텐트를 찾아간 이후부터 관심이 급증하기 시작하였고 TV아사히를 선두로 일부 방송사들이 취재를 시작하자 부담감을 느낀 오이타현정부와 히타시정부는 관련 조례의 개정을 약속했고 공장측도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 지급을 약속하며 시위는 끝이나게 되었다.
언론의 주목을 한몸에 받게된 가네무라는 이후로도 지역 시민운동에 참여하였고 2006년에 동년에 있을 통일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하였고 뒤이어 녹색당에 입당하였다. 전통적으로 사민당과 자유당이 양당제를 이루던[7] 오이타현에서 그의 가능성은 그렇게 높게 여겨지지 않았으나 당시 사민당 오이타현련의 내분으로 인하여 사민당 후보와 사민당계 무소속 후보가 동시에 출마하는 삽질 덕분에[8] 히타시의회 선거구에서 당선되게 되었다.
현지사 당선이전
당선 이후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 특유의 "환경 문제에는 급진적이고 민생 문제에는 무능한" 모습을 보이며 차기 선거에서 낙선 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오히려 20년 히타시 토박이의 클라스를 보여주면서 시 하천의 오염문제를 해결하고 거리 미화 법안과 2008년 경제위기 당시 소상공인에 대한 시 차원의 지원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안정적인 입지를 갖게되었고 2011년 지방선거 당시 동일 선거구내에서 1위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재선 이후에도 여전히 서민 친화적인 태도를 보여주며 지역 내에서 높은 인기를 구사하였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가네무라는 오히타현, 그중에서도 히타시 내부에서만 알려진 전형적인 지역 정치인에 불과하였으나 선거 직전 일어난 일본인민공화국 도호쿠 대지진의 여파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나자 반(反) 원전을 주장하던 녹색당과 가네무라 세이온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특히 가네무라 세이온은 그의 아버지인 가네무라 쇼이치 감독부터가 줄기차게 반 원전을 주장하던 인물이었고 본인 또한 후쿠시마 이전부터 원전의 위험성을 줄기차게 강조해온 덕에 사고이후 주가가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하였다. 이후 그는 여러 방송사의 토론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는등의 행보를 보이며 체급을 급격하게 불려나갔고 그 체급으로 제18회 통일지방선거에서 오히타현의회 3인 선거구에 출마하여 3위로 당선되게 되었다.[9]
현의원으로써 가네무라는 당시 현지사이던 히로세 카츠사다의 경산성 사무차관 시절 원전 옹호를 강력하게 비판하였으며 현정부의 비호아래 오염 물질을 방출하던 공단에 대한 제재를 요구하여 관련법안 통과를 주도하였다. 물론 오이타현 경제의 대부분을 지역공단이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대두되기도 하였으나 "오이타현 암환자 연합회"와 "공단 오염물질의 진실을 밝히는 모임"등이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함에 따라 여론 방어에 성공하였고 결정적으로 오염물질로 인한 피해 사례가 알려짐에 따라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수호함은 물론 지위를 높이는데에도 성공하게 되었다.
2018년 4월에 중국 타이베이에서 개최된 아시아 원전 제로회의에 일본 대표로 참여하였다. 2019년 제19회 통일지방선거에서 3인 선거구 내 1위로 현의원에 재선하였으며 직후 녹색당 간사장에 취임하였다. 이후 2022년 연초 자유당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대규모 비리사태로 인해 불명예스럽게 퇴임하고 중의원이 해산되자 2022년 중순에 있을 중의원 의원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였다.
본선에서 사민당과 민주당의 지지를 받아 두명의 야권 단일후보[10]중 한명으로 출마하였으나 정의당 후보에게 밀려 간발의 차이로 3위로 낙선하였다. 그러나 동년 4월의 제20회 통일지방선거에서 다시금 현의원으로 출마해 종전보다 높은 득표율을 끌어내며 당선되었다. 당선 이후 지역 정가에서 거론되는 오이타현지사 혹은 히타시장 출마설에 대하여 "현민을 위한 어떤 형태의 봉사도 가능하다."라는 상당히 애매한 발언으로 화답하였다.
2025년 사토 기이치로 현지사의 JSR 주식회사 관련 비리 의혹이 붉어지자 민주당, 사민당 현의원들과 더불어 사토 현지사의 사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직후 열린 현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자유당-공명당 단일후보가 승리를 거두며 정치적으로 내상을 입었다. 또한 2026년 9회 통일지방선거에서 본인은 당선되었으나 하야시 요시마사 총리의 인기를 업은 범 여권 후보들이 현의회에 대량으로 진출하고 사토 기이치로 현지사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이타현, 그중에서도 히타시에서 20년 동안 활동한 지역 정치가인 자신의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히타시 의회와 시장을 모두 야권인물로 당선시키는 등 건재함을 입증하였으며 교육조례 개정안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는 등[11] 열정적인 정치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2028년 3월 21일 사토 현지사가 비리 의혹으로 인해 사임하자 6월에 있을 재보궐선거에서 차기 오이타현지사에 출마함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이번 재보궐선거가 중의원 의원 총선거와 동시에 치뤄지는 만큼 야권 공투가 총선뿐만 아니라 지방선거에서도 영향을 미칠것이라는 관측이 있기에 범야권 후보들과의 단일화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소수정당인 녹색당 소속이라는 점을 들어 민주당 등 거대 야당이 밀어주는 후보들에 눌려 후보로 선출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관측도 많았으나 상대 후보인 아다치 기요시를 11.08%p 차이로 넉넉하게 제치면서 야권 단일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는 이소자키 요스케 자유당 후보의 여러 논란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짐과 동시에 그의 발언들을 공격했고 교육혁신과 지역 공단들에 대한 온실가스 저감시설 의무화 및 설치비용 지원등을 공약하며 치열한 선거 운동을 벌였고 그 결과 51.34%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46.91%를 얻은 이소자키 요스케 자유당 후보를 밀어내고 민선 제22대 오이타현지사로 당선되었다.
제22대 민선 오이타현지사
민선 제22대 오이타현지사 취임연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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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직후 취임 연설에서 "협치"를 강조하였다. 이는 재보궐 선거로 당선되었으나 현의회의 45% 가량을 자유당 및 보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정 운영에 자유당의 협조를 구하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또한 선거 당시 공약으로 걸었던 온실가스 저감시설 의무화 및 자금지원 법안을 현의회에 제출하였으며 1주일 뒤의 표결 결과 현의회 총 인원 43명 중 23명의 지지를 받아 아슬아슬하게 통과되었다. 또한 출산 지원금 정책의 입법에 대하여 예고하였다.
2029년 새해 신년사에서
논란
2021년 도지코인 폭락사태 당시 일론 머스크 비하발언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불로 다스릴 것" 한국계 日 정치인 도지코인 폭락에 망언
アメリカの老害の狂人を必ず、必ず火で治める。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다. |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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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 제15회 통일지방선거 | 히타시 제15선거구 | 녹색당 그린스 재팬 | 836 (61,83%) | 당선 (1위) | 초선 |
2010 | 제16회 통일지방선거 | 1,063 (70.44%) | 재선 | |||
2014 | 제17회 통일지방선거 | 오이타현 히타시 | 9,687 (31.22%) | 당선 (3위) | 초선 | |
2018 | 제18회 통일지방선거 | 13,024 (35.45%) | 당선 (1위) | 재선 | ||
2022 | 제3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오이타현 제2선거구 | 88,471 (27.99%) | 낙선 (3위) | [12] | |
2022 | 제19회 통일지방선거 | 오이타현 히타시 | 14,915 (39,24%) | 당선 (1위) | 3선 | |
2026 | 제20회 통일지방선거 | 16,191 (40.22%) | 4선 | |||
2028 | 2028년 상반기 일본국 재보궐선거 | 오이타현 | 282,069 (51.34%) | 초선 |
역대 선거 벽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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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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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 2006 | 정계 입문 |
녹색당 그린스 재팬 | 2006 - | 입당 |
어록
경제 건설의 성과는 시민 생활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시의원 시절 히타시의회 시정질의 中 |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 생명의 시대, 역사의 출발점에서. 2018년 타이베이 아시아 원전 제로회의 당시 방명록에 남긴 글 |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다. 자신의 도지 코인이 폭락하자 |
그런 의지가 없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자사 토론 중 자신의 각오를 밝히며 |
우리 현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풍요롭게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현정의 확고한 결심입니다. 현지사 당선 이후 첫 회의에서 |
제육을 위하여, 햄버거를 위하여, 빵을 위하여. 현청 구내식당 식단의 부실함을 지적하며 |
제육을 더욱 장기적으로. 제육볶음이 1달에 2번 밖에 나오지 않는 구내식당 식단표가 공개되자 |
여담
- 영어 실력은 듣기 정도는 약간 되는 수준이고 말하기는 거의 못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 비교적 날씬하던 시절에는 취미로 농구를 즐겼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 NBA 스타 데니스 로드맨의 팬이다.
- 승마도 그럭저럭 능숙한 듯하다. 이미 체중이 추정 140kg대까지 오른 2019년에도 백마를 타고 승마장을 질주하는 모습이 공개되었다.
- 한국의 정치인 이준석과 외모가 닮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특히 30대 민원선을 앞두고 이준석이 살이 확 찌면서 닮았다는 이야기가 확실히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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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이타현지사실 홈페이지.
- ↑ 우리가 익히 아는 그 김일성으로 제3대 한국공산당 총비서를 역임하였다.
- ↑ 기타리스트라고 한다
- ↑ 현직 도도부현지사들 중 유일한 개신교인이다.
- ↑ 정치인 김일성의 장남으로 양모인 김성애와의 갈등으로 인해 남일본으로 이민하였다.
- ↑ 법적인 이름은 남편의 성을 따서 가네무라 히메이지만 활동명은 결혼 이전의 성인 다카다를 유지했다.
- ↑ 현대 일본에서 범 자유주의 계열을 대표하는 민주당은 이전에는 반미 민족주의 성향의 정당이었고 지속적인 군비확충을 지지하였기에 올림픽 작전의 영향을 직격으로 맞은 오이타현에서 현재까지도 별 맥을 못추고 있다.
- ↑ 차후 이 사민당계 무소속 후보는 가네무라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하였다.
- ↑ 여담이지만 해당 통일지방선거에서 가네무라의 후임으로 히타시의원에 당선된 인물이 일전의 사민당계 무소속 후보(사민당에 복당함) 였다고 한다.
- ↑ 한명은 사민당 후보.
- ↑ 이 당시 본인도 중고등학생 자녀들을 둔 아버지로써의 면모를 보이며 학부모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 ↑ 민주당, 사회민주당 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