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월 전

대륙신유가와 중국공산당의 유가정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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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중국은 '대국굴기(大國屈起)'와 '중국몽(中國夢)'이라는 거대 담론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는 중화 전통, 특히 유학(儒學)을 재평가하고 부흥시키려는 국가적·사회적 움직임이다. 초중고 교육에서의 고전 교육 강화, 민간의 경전독송운동 및 서원(書院)운동, 그리고 국학원(國學院)과 유학원(儒學院)의 연이은 창립은 유학 부흥의 뚜렷한 조짐이다. 이러한 문화적 흐름과 맞물려 학술 담론의 장에서는 더욱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기획이 부상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유교헌정주의(儒敎憲政主義)' 담론이다.

 

 헌정주의란 본래 헌법을 통해 통치 권력을 규제하고 공동체의 운영 원리를 정립하는 근대 서구의 정치 원리였다. 이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 권력 분립, 법치주의를 핵심으로 한다. 그러나 현재 중국공산당 주류파에 의해 폭넓게 지지를 받고 있는 학파인 중국의 '대륙신유가'는 서구 중심의 헌정주의 모델을 비판적으로 넘어서, 유학의 정치적 지혜에 기반한 중국 고유의 헌정 질서를 구상하고자 한다. 이들의 기획은 단순한 문화 담론을 넘어, 홍콩·대만 신유가(港臺新儒家)의 심성유학(心性儒學)적 접근을 비판하고 유학을 현실 정치제도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정치유학 혹은 제도유학의 성격도 띄는 것이다.

 

1. 유교헌정주의의 등장 배경과 역사적 맥락
1.1. 전통적 연원과 캉유웨이의 재발견

 유교헌정주의자은 '헌(憲)'이라는 글자의 연원을 《시경(詩經)》이나 《서경(尙書)》과 같은 고대 경전에서 찾는다. '헌'은 본래 성왕(聖王)이 제정한 법령이나 모범을 의미하며, 예악과 문물을 통해 백성을 교화하는 도덕적 권위를 상징했다. 이는 왕도정치(王道政治)나 인정(仁政)과 같은 유가적 통치 이상과 맞닿아 있다. 대륙신유가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서구의 '권리' 중심 헌정주의와 다른, '의무'와 '도덕'에 기반한 중국적 헌정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러한 고전적 사유를 근대적 정치 개혁의 언어로 전환시킨 핵심 인물은 청말의 캉유웨이(康有爲, 강유의)이다. 캉유웨이는 춘추공양학(春秋公羊學)의 '미언대의(微言大義)' 해석법을 통해 고대 경전에서 변법(變法)의 근거를 찾고자 했다. 과거 보수적 개량파로 평가절하되었던 캉유웨이는 오늘날 대륙신유가들에 의해 유학의 새로운 기원을 열고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대안을 모색한 선구자로 재평가되고 있다. 간춘송(干春松)과 같은 학자들이 캉유웨이를 현대 유학의 개창자로 평가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캉유웨이는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유학의 외왕(外王)적 측면, 즉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전통을 부활시켜 현대 중국의 정치 제도 설계에 직접적인 영감을 주는 사상적 원천이다.

 

1.2. 대륙신유가의 대두와 정치적 전환
 그러나 처음부터 캉유웨이가 21세기 중국 신유학의 주창자로서 평가받았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후반까지 신유학 담론을 주도했던 것은 웅십력(熊十力), 모종삼(牟宗三) 등으로 대표되는 홍콩·대만 신유가였다. 이들은 공산주의 혁명으로 단절된 유학의 명맥을 잇고자 했으나, 주로 서구 철학과의 대화를 통해 유학의 도덕적·형이상학적 측면, 즉 내성(內聖)의 가치를 재해석하는 데 집중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자유주의적 유학, 서방적 유학의 가치에 쟁점을 두었다.

 

 그러나 21세기 중국의 부상과 함께 등장한 대륙신유가들은 이러한 접근법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였다다. 이들의 지향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이들은 홍콩·대만 신유가의 영향에서 벗어나는데 목적이 있다. 둘째, 이들의 중심 관심은 문화/일반 형이상학적 철학에서 정치로 이동하고 있다. 셋째, 이들은 더 이상 서재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 제도 설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한다. 2016년 청도에서 열린 '양안신유가회강(兩岸新儒家會講)'은 이러한 단절과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자리에서 대륙 학자들은 홍콩·대만 신유학이 유학을 서구 자유민주주의에 종속시키는 '항복주의'에 빠졌다고 비판하며, 유학 고유의 정치적 원리를 통해 현대 국가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전환의 배경에는 21세기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발생한 극강의 반영-반미주의, 즉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강한 반감과 중화 민족주의(한족 민족주의와 다름)적 열망이 자리 잡고 있다 할 수 있다. 은 유교헌정주의 구상이 강한 민족주의 경향을 띠며, 민족과 강역(疆域)의 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상정한다고 분석한다. 결국 이들의 기획은 단순한 학술 논쟁을 넘어, 서구 모델을 대체할 '중국 모델'의 철학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거대한 정치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해해야 한다.

 

2. 유교헌정주의의 핵심 이론과 구상
2.1. 장칭(蔣慶, 장경)의 삼원적 합법성과 의회삼원제

 대륙신유가의 유교헌정론을 가장 체계적이고 급진적으로 제시한 인물은 장칭이다. 그의 이론은 '정치적 정당성' 문제와 구체적인 '제도론'으로 구성되고 있다.

 첫째 그는 서구 민주주의가 오직 '인민의 동의', 다시 말해 형식적 동의에 기반한 민주라는 단일한 정당성에 의존하기 때문에 포퓰리즘과 같은 병폐에 취약하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유교적 정당성의 '삼중합법성(三重合法性)' 원리를 제시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 천도의 합법성 (天道의 合法性): 시공을 초월하는 신성한 가치와 자연의 원리에서 비롯되는 정당성.
- 지도의 합법성 (地道의 合法性): 한 국가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 전통에서 비롯되는 정당성.
- 인도의 합법성 (人道의 合法性): 민심, 즉 인민의 뜻에서 비롯되는 정당성.

 

 이러한 삼원적 정당성 원리는 형이상학적 철학의 주제로 머물지 않는다. 장칭은 삼원 정당성의 원리를 제도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장칭은 서구의 양원제나 단원제와는 전혀 다른 '의회삼원제(議會三院制)'를 제도적인 측면에서 제안하기까지 한다. 이는 통유원(通儒院), 서민원(庶民院), 국체원(國體院)으로 나뉜다.

 

 우선 통유원은 천도의 합법성'을 대표한다. 유학적 소양과 덕성을 갖춘 유학자들과 사회 엘리트들로 구성되며, 국가의 장기적 비전과 도덕적 가치를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다음으로 서민원은 인도의 합법성'을 대표하며. 서구 국회처럼 보통선거를 통해 선출된 의원들로 구성되어 민의를 대변한다. 마지막으로 국체원은 '지도의 합법성'을 대표하는데, 공자의 후손, 역대 성현과 공신들의 후예, 소수민족 대표 등으로 구성되어 국가의 역사적·문화적 연속성을 상징하고 수호하는 역할을 맡는다.

 

 장칭의 구상에서 한국을 포함해 통상 서방 시민들이 알고 있는 의회민주의 중추인 서민원은 단지 세 개의 합법성 중 하나에 불과하며, 통유원과 국체원의 견제를 받는다. 이는 현능정치(賢能政治)를 통해 대중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다. 여기에 더해 그는 황종희(黃宗羲)의 '학치(學治)' 전통을 계승한 최고 감독기구로서 '태학감국(太學監國)'을 두어 의회 자체를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면은 플라톤의 철인정치론과 간접적으로 연관되는 부분도 있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전위당론과도 연관되나 근본적으로 그러한 서구 사상이 아닌 동양의 유교 성리학에 기반을 둔 것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2.2. 정치유학과 '지배의 정당성'
 장칭의 이론은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의 문제의식은 간춘송, 탕원밍(唐文明), 천비셩(陳壁生) 등 다수 대륙신유가들과 공유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유학의 정치적 역할을 복원하고, 이를 통해 현대 중국의 통치 이념과 제도를 재건해야 한다고 본다. 예컨대 간춘송의 '제도유학'은 유학을 개인의 수양 윤리를 넘어 국가 통치의 제도적 원리로 확립하려는 시도이며, 탕원밍은 유교가 공산당 국가 이념에 '대일통(大一統)'의 강력한 통합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기획은 그런 점에서 두가지로 정리될 수 있는데: [1] 명나라 이후 주류 유학에서 밀려난 유교 성리학을 정치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이며, [2]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유교적으로 재전유(혹은 변형)하려는 시도이다.

 

 이 모든 담론은 궁극적으로 중국공산당의 개혁개방 이후, 정당성이 취약해진 현 시대 중국공산당의 '지배의 정당성(legitimacy of rule)' 문제와 직결된다. 마오쩌둥의 '계급중국', 쑨원의 '혈통중국' 모델이 한계를 드러낸 지금, 이들은 캉유웨이가 제시했던 '문명중국' 모델, 즉 유교 문명을 기반으로 한 국가 모델을 통해 새로운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동중서(董仲舒)가 천하사상을 통해 한 제국의 통치 원리를 확립했듯, 이들은 21세기에 유교적 보편주의를 재구성하여 분열이 아닌 통합의 제국적 메커니즘을 만들려 한다. 결국 이들에게 유교헌정주의는 단순한 정치철학적 탐구가 아니라, '대일통'이라는 중화왕조의 정통성 기준을 현대적으로 복원하기 위한 현실 정치적 기획인 셈이다.

 

3. 주요 쟁점과 비판적 검토
 대륙신유가의 야심 찬 기획은 학계 내외에서 수많은 비판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들의 이론적 허점과 잠재적 위험성을 드러내는 비판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3.1. 내성외왕(內聖外王)의 분리와 실현 가능성 문제
대륙신유가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비판은 홍콩·대만 학자들에게서 나온다. 대만 학자 이명휘(李明輝)는 이들이 '정치유학'을 강조하며 유학을 '심성유학'과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것이 유학의 핵심인 '내성외왕(內聖外王)'의 통일성을 훼손한다고 비판한다. 즉, 개인의 도덕적 수양(내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치 제도(외왕) 설계는 공허하며, 이는 역사적 실증이 없는 유토피아적 공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장칭의 국체원 구상에 대한 우려 역시 이러한 맥락에 있다. 혈통이나 지명에 의해 의원을 구성하는 방식은 관직매매나 자질 미달의 문제를 낳을 수 있으며, 특정 이익집단이 국가 정책을 왜곡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현실적 비판에 직면한다. 하버드대의 두유명(杜維明) 또한 유학의 정치화가 과거 군벌이나 보수정치가들에게 이용당했던 역사를 상기시키며, 인문 정신으로서의 '유가전통(儒家傳統)'과 제도화된 이데올로기로서의 '유교중국(儒敎中國)'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이는 대륙신유가의 기획이 유학을 비판적 사유의 전통이 아닌, 국가 통치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근본적인 우려를 담고 있다.

 

3.2. 중화민족주의와의 결부

 대륙신유가 담론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 사상적 기반이 비판적 성찰이 결여된 중화민족주의와 깊이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동서의 복잡한 역사는 단지 '강약(强弱)의 문제'로 단순화된다. 서양이라는 '타자'를 통해 "나는 누구인가"를 성찰하며 자기 객관화를 시도하기보다, 경제 성장을 토대로 서양과의 경쟁에 초점을 맞춘 자기 전통의 회복만을 목표로 삼는다. 조경란(2020)은 이를 두고 "부강(富强)에 기반한 중화제국으로의 귀환"이 유일한 목표라고 일갈한다.

 

이러한 비성찰성은 20세기의 고통스러운 역사적 경험, 즉 제국주의 침략, 혁명, 내전 등의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사상적으로 대면하지 못하게 만든다. 결론부터 보자면 20세기의 사상 경험이 아예 들어설 자리가 없으며 따라서 그런 바탕 위에서 21세기를 담론화하고 전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결국 이들의 유교헌정주의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철학이라기보다, 또 다른 '중국중심주의'를 추구하는 배타적 이데올로기로 귀결될 위험이 크다. (다만, 현 중국의 사상적 지도에서 신유가주의와 한족 민족주의는 구분된다)

 

3.3. 정치적 도구화와 공산당 이데올로기로의 전락 가능성
 마지막으로, 유교헌정주의 담론은 현대 중국의 정치 현실 속에서 그 순수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힌다. 탕원밍이 유교가 공산당 국가이념에 통합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정부가 비판적인 유학 학술지인 《천부신론(天府新論)》을 정간시키는 사례는 유학 담론이 이미 국가 권력의 직간접적인 통제하에 놓여 있음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대륙신유가들이 주장하는 '왕도정치'나 '현능정치'의 이상이 실제로는 당대(黨大)의 일당독재를 유교적 언어로 포장하고 정당화하는 수사(rhetoric)로 소비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들의 기획이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중국 공산당이라는 절대적 권력 주체를 비판하고 견제할 실질적인 수단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유교헌정주의'는 결국 '헌정' 없는 유교, 즉 비판 능력을 상실한 채 권력에 복속된 '관학(官學)'으로 전락할 운명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다.

 

 

참조 문헌

조경란. (2020). 중국공산당의 '통치의 정당성'과 '유교중국'의 재구축 Ⅱ - 대륙신유가와 ‘유가전통’ 그리고 ‘성찰적 유학’. 사회와 철학,(39), 169-202.

정종모. (2018). 대륙신유가의 유교헌정주의 담론. 철학탐구, 51, 33-63.

송인재. (2015). 21세기 중국의 ‘천하’ 재해석과 신보편 탐색. 인문과학연구, 44, 477-496.

조경란, 장윤정. (2018). 대륙신유가 1 : 캉유웨이로 5.4를 비판하는 천밍. 서강인문논총, 52, 453-484.

조경란. (2019). ‘천하질서’와 유교적 ‘보편주의’의 재구성의 가능성-Ⅱ: ‘대륙신유가’ 의 ‘신캉유웨이주의’(新康有爲主義)에 대한 비판적 분석. 철학연구, 127, 33-61. 

박설수. (2020). 중국정치사상학계의 전통에 대한 두 입장: ‘대륙신유가’와 ‘왕권주의학파’의 대비를 중심으로. 정치사상연구, 26(2), 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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