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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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자유당 당의장
림건명
林建明 | Ыин "Жоһн" Цһиен-минқ
출생 1980년 10월 24일(1980-10-24) (43세)
만주 인민 공화국 묵던수도시
국적 만주 인민 공화국
현재 자유당 당의장
자유당 묵던수도시당 위원장
일간자유 주필
가족 사쿠라 코이보리 (桜鯉ぼ)[1]
림춘석 (林春錫)
학력 워싱턴 대학교 (경제학 / 학사)
종교 개신교 (장로회)
의원 대수 초선
의원 선수 (민) 12
소속 정당
약력 워싱턴 대학교 만주인학생회 회장
만주매일신보 집필진
자유민보 대표이사 사장
제12대 민의원 (비례대표)
만주자유총연맹 초대 회장

개요

만주 인민 공화국의 경제인, 언론인, 정치인이다. 현재 자유당 당의장을 지내고 있다.

상세

1980년 10월 24일 관영기업의 사장을 지내던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 어린시절에는 공부는 싫어하고 놀기를 좋아하던 평범한 아이였으나 아버지의 영향으로 수준높은 교육을 받은덕분에 고등학교를 조기졸업하고 단 17세의 나이로 미국 워싱턴 대학교에 입학해 공부하게 된다.

귀국 이후에는 군인으로 가길 원했으나 아버지의 바람으로 인해 변호사 공부를 시작했으나 본인과 맞지 않는다는걸 알고는 때려쳤고 아버지에게서 공식적으로 독립해[2] 만주매일신보 집필진으로 입사하였다. 이후 10년 가량을 집필진으로 일하다 만주매일신보를 퇴사하고 보수주의 성향의 신문인 자유민보를 설립하여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

얼마뒤 대표이사를 지내던 림건명에게 공화당이 묵던권역 비례대표 2번을 제안하자 대표이사에서 사퇴하고 만주공화당에 입당하였고, 무난하게 당선되었다. 허나 만주 공화당에서 추진하는 국가중심 경제발전 정책에 반발하여 경제적 자유주의에 가까운 시장파에 속하였으나, 이조차 본인의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 판단한것인지 탈당하여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이후 자유민보 대표이사 사장으로 복귀했고, 2020년 10월에는 만주자유총연맹을 조직하여 만주에서의 신자유주의 운동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이후 2022년 9월경 만주 공화당에서 국민당으로 탈당하지 못한 의원들이 자유당을 창당하자 합류하여 공동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제8회 묵던수도시장 선거


유능한 시장 믿는다 림건영
림건영 자유당 묵던수도시장 후보 TV광고
유능한 시장
믿는다 림건영

제8회 묵던수도시장 슬로건

2022년 10월 1일, 페이스북을 통하여 공식적으로 묵던수도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본래는 묵던시장 보다는 차기 민의원, 또는 대의원에 관심이 있는것으로 알려졌으나 예상을 깨고 묵던수도시장 출마를 한것이다. 본인은 "당의 확장성과 시장에게 맡겨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손의 법칙을 무시하고 과거의 관습을 반복하는 비운의 경제체제를 전면 교체하고 상식이 통하는 젊은 정치를 이륙하는 첫번째 경제시장이 되겠다"라 말했다.

당초에는 모든 후보들에게 밀리며 5% 가량의 득표율을 보였으나 만주 국민당이 사상 최초로 공화당 금종훈이 아닌 림건명을 지지하며 림건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고, 기존 공화당에 불만을 가지던 공화당 내 시장파를 지지하는 시민들과 일부 리버럴을 흡수하며 공화당 금종훈 후보를 추월했고 토론회 직전까지 상승세를 유지하며 히타라 라하 후보와 2위 자리를 두고 경쟁하였으나 토론회서 히타라 라하 사회주의재건당 후보에게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는 모습, 2025년까지 묵던 시내 드론택시를 활성화 하겠다는 황당한 발언과 더불어 "경제는 상상"이라는 발언으로 인하여 지지율이 내려갔고 후폭풍을 극복한 뒤에도 과거같은 상승세를 보여주지 못한채 최종 득표율 23.8%를 얻으며 1위 히타라 라하 후보에게 밀려 3위로 낙선하였다.

허나 오히려 차기 정치생명은 밝은 분위기인데, 만주에서는 전혀 지지받지 못하는 신자유주의 군소정당으로 23.8%를 얻으며 단독 경쟁력을 증명했다. 이에따라 민의원 출마시 당선 가능성이 적지 않을것으로 보인다. 즉, 이번 시장 출마 자체는 도박수였으나 최종적으로 도박에 실패하진 않은샘이다. 애초에 여론조사 2위 달성 직전까지는 당선이 목표가 아니다는 뉘양스를 공공연히 밝혔으니...

  1. 대성제국 도쿄 출생으로 한달에 한번씩 림건명을 보러 만주로 온다고 한다.
  2. 물론 자금적 부분에서 독립하지 못해 완전한 독립이라고는 볼수 없었다. 실제로 신자유공화보 창간 당시에도 아버지의 금전적 도움이 상당했던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