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철재 (만주일몽)

 만주에 떠오르는 하나의 꿈
만주일몽 · 滿州一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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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민주 공화국의 제6대 정무총리
복철재

Бог Цһеоы Же | 卜哲在
출생 1917년 11월 17일
대한제국 전라북도 군산부
사망 2008년 6월 18일 (향년 91세)
만주 민주 공화국 묵던수도시

만주 민주 공화국 제6대 정무총리
재임기간
2006 - 2008
전임: 토야깅 네르구이(제5대)
후임: 아를라 바승(제7대)
재임기간 국민당 제2대 원내대표
2003년 12월 2일 - 2005년 1월 23일
국민당 제4대 부대표
2003년 1월 23일 - 2003년 11월 22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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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버지 박철구 어머니 양씨
배우자 리련희
자녀 4남 1녀
학력 만주북경대학교 정치학과 (학사 / 1932)
묵던인민사관학교(졸업 / 1950)
장춘인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 / 1987)
종교 장로교 (천주)
정당 틀:만주국민당 (만주일몽)
의원선수
의원대수
공식 초상화

개요

복철재 (만주어:Бог Цһеоы Же , 1917년 11월 17일 ~ 2008년 6월 18일)은 만주 민주 공화국의 정치인·정당인·정치학자·군인으로, 만주 민주 공화국제6대 정무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일생

1917년 11월 17일 대한제국 전라북도 군산부에서 소작농 박철구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9년, 군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만주로 가족을 따라 이주하였다. 그의 부친 박철구는 그를 만주북경대학교에 입학시켜 공부하게 했으며, 평소에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좋지 않은 사정에도 조선 민족주의에 대해 교육시켰는데, 그 영향으로 복철재는 1933년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였다. 한국독립군에서 대전자령 전투에 참전하였고, 한국독립군이 해체되자 한국광복군으로서 항일 운동에 앞장섰다.

1945년 8월, 쏘련의 만주전략공세작전이 시작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는 대한 제국으로 귀국하는 것을 실패하였다. 당시 복철재는 강력한 반공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였는데, 만주가 대한 제국의 정당한 령토라고 생각하고, 이를 쏘련과 중국이 다시 대한제국에 반환하라고 요구하는 간도반환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간도반환운동은 만주 인민 공화국의 진압으로 해산되었다. 이때 복철재는 한 조선족 만주공산당 당원의 회유로 전향하였다. 다른 지도부들과 가담자들이 대한제국으로 탈출할 때, 그는 만주에 남기로 결정하였고, 1946년 5월 묵던인민사관학교에 늦은 나이로 입학하여 만주 인민군 수도방위부에서 소대장으로 군 생활을 시작하였다.

대위 시절 복철재의 사진

이후 민국천명 사건때 적극 동참하였고, 만주 민주 공화국이 건국되자 남춘봉을 탐탁게 여기지 않았기에 마지총 라인에 섰고, 만주공화당의 초기 주역중 하나였으나 여전히 권위적이고 시장주의적인 "붉은 향수"에 취해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생각하여 사람들을 이끌고 만주 국민당을 창건하였다.

이후 토야깅 네르구이의 임기가 끝나자 바로 공화당 정권으로 채우기로는 인민민주당의 압박으로 어려웠던 공화당은 국민당을 대신 앉혔고 국민당의 가장 원로이자 현역인 복철재가 정무총리가 되었다. 그가 정무총리가 되자 만주 그리스도 형제회 측에선 축사를 보내왔다.

복철재 내각

저작

  • 기독교 서적《주예수께선 우리를 위해 못박히셨으니》(1998)
  • 기독교 서적《Гимн на русском(로씨야말 찬송가)》(1999)
  • 기독교 서적《中文赞歌(중국말 찬송가)》(1999)
  • 정치학 서적《빨간 향수에 취한 사람들》(2000)[1]

어록

과연 추산로사는 만주를 공산주의의 망령으로부터 해방시켰는가. 전혀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인민들이 눈 부릅 뜨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코를 그대로 잘라간 것이다. 공산당은 인민민주당으로, 주석은 대총통으로 이름만 번지르르하게 바꾼 것에 불과하다. 아직도 우리 만주는, 우리 조국은, 우리 인민들은, 그 빨간 향수에 취한 사람들로부터 해방되지 못한 것이다.
《빨간 향수에 취한 사람들》의 서문 中
젊은 대한 제국의 인민들, 특히 대학생들은 자꾸 마르크스와 레닌이 영웅이라도 되는 마냥 좋아하곤 해요. 심지어 몇 명은 주덕해까지 존경하는 듯 합니다. 어리석은 일에 불과해요. 진정 마르크스주의를 겪고, 레닌이 누군지 겪어보면 그런 소리 못합니다.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中

여담

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카이저 수염은 소위로 임관한 후부터 기르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스탈린의 모습이 멋있어서라고.[2]

평소 저서와 언론, 정계에서는 남춘봉을 저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사적으로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둘 다 독립군 출신이고, 같은 조선족이었다.

장로교의 열렬한 신자로, 만주선교를 온 선교사와 깊은 인연이 있다고 한다. 장로교(천주)측의 신자이며, 그 유명한 교회인 만주 묵던교회의 장로이며, 공산시절때 가장 힘들었던것은 신앙심을 시험하는 일과, 숨겨야 했던것이라 하였다. 이후 그는 기독교의 교단들이 교회를 되찾는 여러 소송이나 행정심판등을 도왔다. 한국에도 초청되었으며, 대한예수교장로교 (통합)측과 교류하였다.[3]

각주

  1. 니어후루 아이싱가 정권과 남춘봉 정권, 그리고 인민민주당에 대해서 비판하는 책이다. 복철재는 이 책을 쓴 이후, 일부 남춘봉의 열성 지지자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았다.
  2. 본인은 이것을 카이저 수염이라 부르지 말고 꼬리아 수염이라 부르라 말헀다, 주변인들이 복수염이라고 칭찬한다고.
  3. [[만주기독장로교 (만주일몽)}장로교(기독)]]측은 예장합동과 교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