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제국 (춘추)


대신라국
大新羅國
국기 국장
덕업일신 망라사방
德業日新 網羅四方
상징
국가 신라가
국조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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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원전 57년 사로국의 6촌 박혁거세를 거서간으로 추대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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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경성시
최대 도시
경성시
접경국
만주 공화국
만주 민주국[1]
러시아 연방
중화인민공화국[2]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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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91887871명(9188만 7871명)
출산율
1.4명
기대 수명
83.5세
공용어
삼한어
공용 문자
한글
종교
국교
삼한제교
분포
무종교/삼한제교 56%, 불교 24%. 기독교 11%, 그 외 9%
군대
신라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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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
제주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서도, 경상중도, 경상동도, 충청서도, 충청동도, 강원남도, 강원북도, 한수남도, 한수북도, 황해남도, 황해북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백두남도, 백두북도, 함경남도, 함경북도[3], 연변도[3]
특별시
경성특별시, 평양중립특별시, 함흥특별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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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민주주의 지수
7.94(결함있는 민주주의)
국가 원수 (황제)
임희제(금와)
정부
요인
상대등
여당
국익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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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
GDP
(명목)
전체 GDP
3,045,972(US$ Million), 세계 7위
1인당 GDP
34,510$
신용 등급
AA-
화폐
공식 화폐
신라 원
ISO 4217
SHW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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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임희(恁熙)
시간대
UTC+9
도량형
SI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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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가입
1956년 12월 18일
ccTLD
.sh
국가 코드
SH
전화 코드
+82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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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신라 제국(新羅帝國)은 동아시아의 삼한반도와 남만주에 위치한 입헌 군주제 민주공화국이다. 삼한(三韓)이라고도 하며, 영어로는 Shilla 또는 Korea이다.

국가 상징

국호

언어별 명칭
삼한어 신라 제국
한문 新羅帝國
관북어 실라 제궉
[ 외국어 ]
영어 Shilla Empire
Korean Empire
일본어 新羅帝国
중국어 新羅帝國
러시아어 Корейская Империя
힌디어 किन्हाई साम्राज्य
프랑스어 Shilla Empire
Korean Empire
스페인어 Shilla imperio
아랍어 إمبراطورية تشينغهاي
신(臣)들은 생각건대 '신'(新)은 덕(德業)이 날마다 새로와져서, '라'(羅)는 동·서·남·북의 것들을 널리 받아들여 모두 포함한다는 의미이므로, 그것으로 국호(國號)를 삼는 것이 좋을 듯하오며, 또 생각건대 자고로 국가를 가진 이가 다 제왕(帝王)이라 칭하였는데 우리 시조가 건국한 지 지금 제22대에 이르도록 단지 방언(邦言)으로 칭하여 존호(尊號)를 정하지 아니하였으니 지금 군신(群臣)은 한뜻으로 삼가 신라국왕(新羅國王)이란 존호를 올리옵니다"고 하니, 왕이 거기에 좇았다.
臣等以爲, 新者德業日新, 羅者網羅四方之義, 則其爲國號宜矣, 又觀自古有國家者 皆稱帝稱王, 自我始祖立國, 至今二十二世, 但稱方言, 未正尊號, 今群臣一意, 謹上號新羅國王, 王從之".
삼국사기 中

국호 "신라" 는 옛 이름 "사로" 의 변형으로 추정되며, "덕이 날마다 새로워져서 사방의 것들을 널리 받아들여 포함한다" 라는 뜻이 부여되어 있다. 구어체에서는 "삼한" 이라는 이름도 사용된다.

정식 명칭은 "신라 제국" 이지만, 보통 "신라국" 이라고 지칭되는 편이며 공문서에서도 역시 혼용되어 있다.

국기

초생월기
初生月旗
[ 국기 정보 ]
지위 국기
비율 4:9
채택일 1625년
제작자 알 수 없음


초생[4]월기는 두개의 햐양색 띠 사이의 짙은 파랑색 배경에 하양색 초승달이 그려진 모습을 하고 있다. 상징으로써는 촤소 1500년전부터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삼국시대와 통일시대에는 군기로써 사용되었으며, 이는 군사세력의 정권인 청해진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이후 여진과 몽골, 관북인의 지배를 받던 1200~1500년대에 자취를 감추지만, 임진왜란 이후 신 금씨왕조가 들어서고 신라가 재수립된 후 신라 부활의 명분을 강조하기 위해[5] 다시 상징기로써 정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남색 배경은 신라의 유구한 역사, 초승달은 신라의 국체, 두 하얀 띠는 신라의 단결을 의미한다. 최종적인 개정은 1975년 박정희에 의해 이루어졌다.

한편, 대신라제국 시절 사용되었던 국기인 "태극기" 도 존재한다. 하영색 배경에 태극무늬를 사괘가 둘러싼 모양의 국기로, 태극은 삼한제교의 상징이다. 태극기는 국제사회에서 욱일기, 하켄크로이츠와 마찬가지로 전범기 취급을 받는다.[6] 신라 내부에서도 전쟁의 종결 이후 사용이 금지되었으나, 5.16 군사혁명 이후 국가기관이나 군기로써의 사용이 부활하여 현재도 준국기의 위치에 있다.

국장

십육문 초생월장
十六紋 初生月章
[ 국장 정보 ]
지위 국장
채택일 1962년
제작자 박정희

남색 배경 안에 초승달이 그려진 이 국장의 이름은 "십육문 초생월장"이다. "십육문"은 국장에서의 튀어나온 16개의 모서리를 의미하며 16개의 선은 자나라 시대부터 번영과 부귀영화의 상징으로써 쓰여지고 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국장이 게시될 때에는 반드시 배경의 중심에서 조금 위로 올라간 곳에 게시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신라의 국제적인 위상과 국가의 자신감을 상징한다.

역사

본래 진한의 사로국이다. 삼한반도의 동남쪽에서 설립했으며, 백제, 고구려 등과 겨루며 발전하였다. 7세기에는 당나라와 협력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했으며, 삼한일통을 이루었다.

장보고의 정변으로 상고 김씨왕조가 허수아비로 전락한 이후 , 송나라의 설립 후 활성화된 무역에 힘입어 해상무역 국가로써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요나라와의 전쟁 과정에서 북쪽 호족의 힘을 빌린 탓에 호족들의 힘이 강해지기 시작하더니, 금나라의 침략으로 청해진 시대는 무너지고 호족들이 난립하였으며, 상고 김씨 왕조는 금나라의 북 김씨왕조와 호남에서 세를 유지하던 청해진의 남 김씨왕조로 나뉘었다. 이후 원나라의 지배 하에서 남 김씨 왕조는 멸족당하고유일하게 마지막 왕 안평왕의 막내아들 김지겸의 서자 김임연만이 가마쿠라 막부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북 김씨 왕조는 대도와 평양에 머물며 명목상의 신라 왕위를 유지하였다.

원의 힘이 약해지자 다시 지방 호족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하였으나, 곧이어 금나라 시기 함경도에서 형성된 삼한인과 여진의 혼혈 민족 관북인들이 세운 대자국(자나라)에게 정복당했다. 대자국의 갈성씨 왕조는 북 김씨 왕조의 공주 충한왕을 신라의 왕으로 삼고 이어 결혼하여 신라의 왕위를 가져갔다.

자나라는 원명교체기의 혼란 속에서 순식간에 급성장을 이루었다. 삼한 반도와 남만주에서 착취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만주와 몽골 초원을 정복하고 대칸 자리를 차지했으며, 위구르 지역을 간접 지배했으고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와 최왼관계를 형성했다. 남쪽으로는 명나라와, 서쪽으로는 티무르 제국과 끊임없이 다투었다. 자나라는 16세기 왕권 다툼으로 몽골의 서자, 만주의 동자, 삼한반도의 남자 세 세력으로 분열했다.[7] 남자는 명나라에 조공했으며, 서자는 몽골에게, 동자는 여진과 남자에게 정벌당해 사라졌다. 자나라가 분열한 이후, 삼한인들은 300년에 달하는 북방 민족으로부터의 독립을 꾀하였다. 이 중심에는 호족 난립 시대에 창립된 삼한제교[8]가 중심이 되었다. 삼한 반도의 남부 지역에서는 봉기가 끊이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삼한 정벌이 개시되었는데, 김임연의 후손이자 규슈 서부와 남부의 다이묘 킨 아키츠라(金 鑑連)[9]가 선봉에 서 순식간에 경성과 평양을 함락시키고 자나라를 만주로 몰아냈다. 이후 아키츠라(신라 폐종)은 히데요시에게 반란을 일으켜 삼한반도를 장악하였고, 나라 이름을 다시 신라라고 하여 신 김씨 왕졸르 설립하였으나, 삼한인에 대한 몰이해과 좋지 못한 정치 능력으로 얼마 되지 않아 아들 나가요시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살해당한다. 나가요시(세조)는 신라에서 가장 뛰어난 군주로, 삼한제교를 받아들이고 정부와 왕실을 삼한에 맞게 바꾸며, 청과 함께 자나라를 완전히 정벌하고 청나라는 자나라 정벌을 계기로, 에도 막부는 나가요시와 이예야스의 친분을 통해 이웃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바로잡았다. 또한 서양 상인들을 위한 교역소를 설치하고, 대동법을 시행하고 모내기법을 보급하였다.

이후 신라는 몇 차례 기근을 겪으며 잠시 주춤하였지만, 이후 계속 발전하였다. 신 김씨 왕조는 본래 일본의 가톨릭 다이묘이며 서양 상인과의 활발한 교류를 해왔던 가문이었기 때문에, 주변국과는 달리 신라는 주변국들과는 달리 서양인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진행하였고 오히려 다이묘 시기 정벌한 류큐 왕국을 통해 타이완 섬의 진과스 광산에서 대량을 금을 채굴하여 부를 쌓았다. 이러한 환경은 성종반정이라는 진통을 거쳤지만 일본에 비해 자연스럽게 근대화에 성공하는 배경이 된다. 근대화에 성공한 1800년대 중반 이후 신라는 칭제건원을 하며 2차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청나라와 계속해서 부딪혔다. 이후 일본과의 혼인동맹을 맺으며 아시아의 2대 열강으로 떠올랐다. 1911년 청이 멸망할 즈음 신라는 남으로는 타이완 북부, 북으로는 요동과 연해주에 달하였다.

제국주의 열강으로써 세를 자랑하던 신라였지만, 일본이 군부의 폭주로 망가진 것처럼 신라는 삼한제교의 37대 교주로 등극한 장형근이 황실과 군대를 장악하며 망가져갔다. 장형근은 <삼한이 제일이다> 라는 삼한제교의 교리를 재해석하여 <삼한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사람으로, 신라는 1930~1940년대 중국, 연합군과 무리하게 전쟁을 치르다 패전하게 된다. 이후 신라의 남쪽은 미국의 망명하였던 신라 임시정부가, 북쪽은 혁명으로 건설된 삼한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자리하게 된다.

북신라의 김일성은 장형근파를 숙청하고 1인 체제를 강화했지만, 남신라는 몇 년 동안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었다.

각주

  1. 미승인국
  2. 중화인민공화국의 명목상
  3. 3.0 3.1 관북 왕국
  4. "초생"=초승달
  5. 신 금씨왕조는 임진왜란 시기 자나라를 정복한 다이묘 출신으로, 본류는 몽골의 침입을 피해 도망한 신라 왕족의 먼 방계 혈통이다.
  6. 신라로부터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중화권 국가에서는 아예 소지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7. 명목상의 대칸 자리는 삼한반도에 있었다.
  8. 삼한제교는 호족난림시기 설립되어 몽골의 지배시기에 발전한 지하종교이며, 네스토리우스교, 불교, 탱그리교, 도교 등의 다양한 종교의 교리가 결합된 강한 삼한인 중심적 성격을 가진 종교이다.
  9. 또는 김감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