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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관의 모든 인물, 사건, 단체, 국가는 가상이며 현실의 어떠한 인물이나 단체도 찬양하거나 비하할 의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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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입법원 원내 구성 | |
[ 펼치기 · 접기 ] |
New Democratic Alliance / 신민주동맹 | |
New Democratic Alliance | |
NDA, 民盟 | |
实现梦想中的民主 꿈꾸던 민주주의를 실현하다 | |
1998년 6월 11일 | |
공당 /2015년 흡수합당 | |
홍콩민주동맹 미팅포인트 홍콩민주촉진회 홍콩독립당 | |
친아태주의 사회자유주의 진보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홍콩 내셔널리즘 | |
중도 ~ 중도좌파 | |
폴 치머만[1] | |
엘런 렁 제이슨 왕 렁 카싱 네이선 로 | |
아태개혁당 | |
42석 / 100석 (42%) | |
180석 / 479석 (37.6%) | |
황색 (#F9B923) | |
영광이 오리라 | |
진보동맹 자유주의 인터내셔널 | |
일반당원: 6만 2천명 (2022년 2월 기준) 주권당원: 1만 2천명 (2022년 2월 기준) | |
민주청년 | |
홍콩민보 | |
신민주정책실 |
개요
신민주동맹은 홍콩의 자주파 리버럴 정당연합체이다. 현재 같은 자주파 정당인 본토민주전선과 함께 연립내각을 이루고 있다.
역사
제헌 입법원 총선에서 범민주파가 승리하여 마틴 리[3]를 총리로 하는 내각을 구성하였으나 광범위한 연립내각이었던 탓에 위치가 불안정하였다. 이로 인해 내각 구성 1년만에 조기총선을 치루게 되자 총선을 앞두고 급하게 여권을 합쳐 정당연합체를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신민주동맹이다. 원래는 조기 총선만을 위한 임시조직이었던지라 선거가 끝나면 해산될 예정이었지만 총선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정권 연장에 성공하자 가맹 정당들은 연합체를 계속 존치시키기로 합의했다.
2002년 총선에서는 재스퍼 창이 이끄는 인민공화연맹에 패해 여당의 자리를 내어주었으나 2006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다시 정권을 잡았다. 2009년, 외무부장관의 부패 스캔들과 리먼브라더스 사태발 경제 위기가 발생하자 신민주동맹의 지지율은 크게 하락했고 리윙땃 총리는 사임했다. 하지만 조기 총선을 치루는 대신 신민주동맹 내 마이너 세력이었던 클라우디아 모에게 총리직을 넘겼다.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 민심을 잡으려는 조치였으나 이 일이 무색하게 2010년 총선에서 인공련에게 패하고 또다시 정권을 내주었다.
이후 서중국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려하는 에밀리 라우가 당대표에 선출되었다. 그러자 서중국에 대해 강경한 태도로 일관한 클라우디아 모 전 총리가 자신을 따르는 계파를 이끌고 탈당, 본토민주전선이라는 정당을 만들었다.
2013년 인민공화연맹 소속 렁춘잉 총리가 부정채용 논란으로 인해 총리직 사임과 조기 총선 실시를 선언하자 신민주동맹은 정권 창출의 기회로 보고 선거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스태리 리 신임 총리가 이끈 인공련이 조기총선에서 예상 외로 크게 선전했고 과반 의석을 사수하면서 신민주동맹은 집권에 실패했다. 이 여파로 라우 대표가 사임하였고 우치와이가 신임 대표로 선출됐다.
2014년, 레기나 입 내란음모사건이 발생하면서 인민공화연맹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인공련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자신 해산하고 온건파 자유당의 펠릭스 청을 총리로 선출했지만 민심은 싸늘했다. 2016년 총선에서 홍콩 시민들이 신민주동맹의 손을 들어주면서 우치와이를 총리로 하는 단독내각 수립에 성공, 6년만에 집권에 성공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로 인해 정권재창출 여부가 불확실해졌었으나 원내 과반을 잃었을지라도 원내 1당의 지위는 지켰고 클라우디아 모의 본토민주전선과 연정하여 우치와이 2기 내각이 출범했다.
성향
여담
- 원래 이 문서는 홍콩을 담당하기로 한 긴배가 만든 신진시민당이었지만 쿠리오가 홍콩 설정을 하기로 하면서 개편이 이루어졌다. 다만 일부분에서는 이전 신진시민당 시절의 설정과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