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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하버마스 Jürgen Haberma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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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9년 6월 18일 (95세) |
바이마르 공화국 프로이센 자유주 뒤셀도르프 | |
국적 | 독일 |
직업 | 철학자, 대학 교수 |
학력 | 본 대학교 (철학 / 박사) 마르부르크 대학교 (교수시험 합격) |
학파 | 프랑크푸르트 학파, 서구 마르크스주의(논란 있음), 신실용주의 |
주요 이력 | 마르부르크 대학교 교수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교수 막스 플랑크 과학기술세계 생활조건 연구소 |
개요
독일의 철학자.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2세대에 속하는 철학자로,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슬라보예 지젝, 안토니오 네그리, 주디스 버틀러 등과 함께 생존해있는 대륙철학계 최고의 거장중 한명으로 손꼽힌다.
생애
테오도어 아도르노 등 1세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영향을 받았고, 그들에게서 철학을 배웠지만 정작 아도르노는 하버마스를 학교에 받아주지 않았다. 하버마스를 제자로 받아준 것은 하버마스와 가장 크게 논쟁한 인물이기도 한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였는데 이는 가다머가 다른 의견을 가진 철학자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였다고 한다.
후기로 갈수록 하버마스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칼 포퍼, 콰인 등 영미 분석철학, 그중에서도 실용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모습을 보였다. 일반적으로 분석철학과는 사이가 안좋은 대륙철학자 치고 하버마스는 분석철학에서 개념을 많이 빌려온 편이다. 이는 소통을 강조하는 그의 태도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주요 개념
생활 세계의 식민지화
테오도어 아도르노, 막스 호르크하이머 등 1세대가 발전시킨 자본주의 시대의 합리성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하버마스가 도입한 개념이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근대화, 즉 자본주의 시대로 이행함에 따라 현대 사회는 경제 체계와 행정 체계로 구성되는 <체계>와 인간이 살아가는 영역으로 구성되는 <생활 세계>로 양분되었다. 이 두 영역은 독립적이면서도 상호작용하는데,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체계는 더더욱 복잡해지며, 이는 체계가 생활 세계를 침범하도록 만든다.
체계의 이러한 과도한 발전은, 생활 세계에서의 일상적인 실천을 위협, 파괴한다. 또한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 "제도화"(아비투스)되며, 지식이나 문화를 향유하는 것 자체가 계급적인 특성을 띄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심화는 문화적이고 일상적인 빈곤을 필연적으로 초래시킨다. 하버마스는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불러일으키고 있는 경제 혼란이나 환경 오염 등의 문제들이, 체계 내부에서 생성되기보다는, 자본주의로 인하여 체계가 너무 복잡해지고 그것이 일상의 생활세계를 과도하게 침범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보았다.
이것들을 통틀어 하버마스는 <생활 세계의 식민지화>라고 하였다. 경제, 행정 체계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컨트롤하는 것이 심화된 현대의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공론장과 숙의민주주의
공론장은 아고라와 같은 것으로, 인간의 사회 어디에나 있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공론장이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가령 고대 그리스 시대에느 공론장이 직접민주제의 형태로 등장했다. 현대, 즉 자본주의 시대에 공론장은 의회민주정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것들을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구조변동이라고 해설한다.
그런데 하버마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론장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바라본다. 허버마스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물화(物化)를 통해 인간의 관념 체계를 조작하며, 미디어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엘리트들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득권"인 의회민주주의를 작동시키고, 주류 언론들이 인간의 표심을 좌지우지하며, 어찌되었든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의회민주정은 돈 많은 자들과 다수를 대변할 수 밖에 없으므로 정상적인 공론장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는 자유민주주의가 실제로는 기득권을 수호하는 독재적이며 엘리트주의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버마스는 숙의민주주의의 개념을 내세운다. 숙의민주주의는 다른 말로 토의민주주의, 토론민주주의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자유로운 개개인이 투표가 아닌, 토의와 토론, 대화, 의사소통을 통해 서로 합의점을 찾아내고 최선의 해결책을 내는 민주주의의 한 형태이다. 의회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보통 의사소통과 토의가 의사결정을 위한 수단으로서 줄곧 사용되고 있으나, 하버마스는 이를 비판한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그러한 방식으로밖에 토의와 의사소통이 사용되지 않는 것은 합리성의 도구화이다. 하버마스는 반대로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내세운다. 의사소통, 토의, 토론, 의논이 곧 의사결정이 되어야하며, 이것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로의 이행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진정한 해방과 자유라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해방이라고 볼 수 없으며, 개개인들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만큼 성숙해진 시민 사회가 되어야 그 사회가 진정한 자유-해방 사회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버마스는 마르크스의 <계급 투쟁>에 집중하기보다는 <계몽>을 핵심적인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자 한다. 한마디로 말해, 고전 마르크스주의가 혁명을 위해 계몽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면, 하버마스(와 그 이후의 마르크스주의 철학계)는 계명이 곧 혁명이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의사소통 이론
신사회 운동
여성주의, 환경주의 등의 개념들을 마르크스주의 혁명의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곤 했던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하버마스는 그런 여성 운동, 환경 운동 등 68혁명의 쟁점이 되었던 신좌파 이론에 관심을 기울여야한다고 주장한다[1]. 그러한 점에 있어서 하버마스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와는 또 다르게 차이가 나는 편이다. 하지만 하버마스가 그렇다고 하여 "정체성 정치"와 같은 퇴행적인 부르주아적 자유주의 운동에 동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버마스가 주창하는 신사회 운동은 <생활 세계의 식민지화>로부터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사회주의적이고, 보다 철학적인 해방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인가?
여담
- 사실상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사람을 찾는게 더 빠른 대륙철학계에서 하버마스는 비교적 온건한 성향의 인물이기 때문에 생활과 윤리 교과서에 등장하는 몇 안되는 대륙철학자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를 배우지 않고 바로 하버마스로 넘어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이 숙의민주주의와 공론장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할 수 있다.
- ↑ 다만 하버마스는 68혁명 자체는 부정적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