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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체역사를 처음 작성해보는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이다. 공산1968[1]이 작성하였다.

대체역사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매우 쉬우며, 필요한 것은 조금이고 주의해야할 것도 조금이며 할 수 있는 것은 무궁하다.

들어가기 전에: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 없는 대화이다.
역사학자 E. H. 카
역사가와 그가 기록하는 대상 사이에는 거대한 장벽이 있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베빙턴

역사철학의 핵심 개념

기능론 대 갈등론

기능과 갈등은 항상 함께하지만, 사회적 현상이 기능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능론 사회학자 로버트 K. 머튼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
갈등론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

기능론(functionalism)과 갈등론(conflict theory, 혹은 marxism)은 사회학에서 다루어지는 개념이나 역사학에서도 사용되는 개념이다. 기능론은 사회가 하나의 유기체와 같으며, 사회의 주체가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체계와 같다고 본다. 반면 갈등론은 사회가 구조와 개인, 개인과 개인, 자본가와 노동자, 제국과 식민지 같은 다양한 주체가 층층이 갈등하는 대립의 장소라고 본다.

기능론 역사철학은 역사의 발전이 착취와 피착취자의 투쟁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주요한 발전은 오히려 주체간의 상호 협력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토인비(Toynbee, A.)의 "창의적 소수와 모방하는 다수" 이론에 따르면, 역사의 발전이 언제나 순차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극소수의 천재들이 등장한 짧은 기간 동안 획기적으로 많이 이루어졌다. 이를 다수가 모방하면서 새로운 기술이 인류 문명 대부분에 받아들여지게 되고 이를 토대로 역사가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능론의 관점을 취하는 역사학자들은 사회가 상호 협조의 사회이며 문명의 발전을 기술의 공유와 노동 협동 없이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반면, 갈등론 역사철학은 마르크스의 유명한 말인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라는 말처럼 착취자가 존재하고, 착취자가 피착취자의 노동력과 자원을 착취하면서 역사가 발전했다는 입장을 취한다. 가장 대표적인 갈등론 역사학 조류인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는 인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와 같은 지역의 역사에서, 착취자였던 제국주의 국가와 피착취자였던 식민지 주민들을 대조하여 어떻게 착취자가 만들어낸 사회 구조와 그들의 문화가 식민지에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다. 또한, 산업혁명이나 무역의 발달과 같은 인류의 발전 역시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착취자 국가가 자국의 노동력과 식민지의 자원을 착취함으로서 궁극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갈등론적 역사학은 역사를 단일한 협동의 장소가 아닌 잠재적인 투쟁과 착취의 장소로 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능론과 갈등론은 명확하게 나누어지지 않으며, 대부분의 사회학자와 역사학자들이 기능론과 갈등론 중 어느 한쪽만을 지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20세기 후반~21세기 초반에 들어 게임 이론(game theory),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와 같이 기능론과 갈등론을 절충한 이론이 사회학-역사학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으므로 기능론과 갈등론적인 사학을 편견 없이 접하는 것이 사학 연구에 있어 중요하다.

거시론 대 미시론

동적연구 대 정적연구

현대 역사철학의 주요한 사조

실증주의 (Positivism)

Wie eigentlich es gewesen
그것이 있는 그대로

역사가 레오폴트 폰 랑케
  • 랑케(Ranke, L.)
근대 사학의 아버지 레오폴트 폰 랑케

​실증주의는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 적는 역사학의 갈래를 의미하며, 교과서적인 서술을 중시하는 가치중립적 역사학 사조이다. 흔히 역사주의(historism)이라고도 한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역사학적 연구 방식의 모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증주의는 기본적으로 인문학이라는 학문을 마치 과학과 같다고 본다. 실증주의자들에 있어, 역사는 "해석"되어야할 것이 아니라 "기록"되어야할 것이며, 서술자의 개인적인 가치가 개입되면 안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증주의는 역사를 "어떤 각도에서" 볼 것인지에 대한 답변보다는, "어떻게 연구할 것인지"에 대한 답변을 더 요구한다. 교과서적인 역사학은 대부분 실증주의에 포함된다. 따라서 실증주의는 역사적인 사료들을 발굴하고, 그러한 사료를 비판하면서 역사를 서술하는 것을 중요한 연구적 태도로 삼는다. 고대의 역사서를 찾아 번역하고, 다른 역사서와 교차검증해가며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 적는 것이 실증주의적 사관이라고 볼 수 있다.

실증주의는 현대 역사학의 시초를 쌓았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 학파이지만, 과거부터 꾸준히 비판을 받아온 학파이기도 했다. 현대 역사학은 실증주의에 대한 반동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실증주의가 취한 기계적인 중립과, 가치판단 배제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비판, 그리고 설령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그러한 역사가 우리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비판이 대두되면서, 고전 실증주의는 20세기 초~중반에 들어 점차 쇠락하게 된다. 이러한 비판을 일부 수용해, 현대 실증주의는 고고학, 지질학 등 다른 과학적인 자료들을 통해 역사를 평가하고자 하는 현대실증사관으로도 발전하게 된다.

마르크스주의 (Marxism)

마르크스에 의해 훈련을 받은 역사가가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계급투쟁은 조야하고 물질적인 것들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싸움이다. 이러한 싸움 없이는 고상하고 정신적인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상하고 정신적인 것들은, 계급투쟁 속에서 승리자의 손에 굴러 떨어진 전리품의 이미지와는 다른 양상을 하고 있다. 그것은 신뢰, 용기, 유우머, 기지, 불굴성으로서 이러한 투쟁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또 지나가 버린 머나먼 과거의 시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덕목들은, 지배자에게 굴러 떨어진 일체의 승리에 언제나 새로이 의문을 제시할 것이다. 마치 꽃들이 해를 향하듯, 과거 또한 알 수 없는 종류의 신비스러운 향일성(向日性)에 힘입어, 바야흐로 역사의 하늘에 떠오르는 바로 그 해를 향하려고 하고 있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모름지기 모든 변화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이러한 사소한 변화에 정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 <역사 철학 테제> 4번
  • 홉스봄(Hobsbawm, E.), 톰슨(Thompson, E.P.), 힐(Hill, C.), 앤더슨(Anderson, B.)
마르크스주의 사학자 에릭 홉스봄

마르크스주의는 인문학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고, 여전히 인문학에서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 사조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카를 마르크스가 저술한 <자본론> 등의 저작물에서, 카를 마르크스가 역사를 분석하는데 취한 입장을 계승한다. 마르크스는 인류의 역사가 "계급 투쟁"으로 발전해왔다고 주장한다. 억압을 하는 지배 계급이 있고, 억압을 받는 피지배 계급이 있다. 지배 계급은 끊임 없이 피지배 계급을 착취하나, 언젠가는 피지배 계급이 지배 계급을 뒤집어 엎는 혁명을 일으켰고 그것이 역사가 발전한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은 지배 계급이었던 귀족에 대항해 피지배 계급이었던 부르주아지가 일으킨 혁명이었다. 1989년 동유럽 혁명은 지배 계급이었던 공산당에 대항해 피지배 계급이었던 시민들이 일으킨 혁명이었다. 마르크스주의 사학은 언제나 피지배 계급과 지배 계급이 존재하며, 두 계급이 갈등하는 과정이 역사 발전의 핵심이라고 보고 이 두 계급의 관계를 서술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는다.

또다른 중요한 개념은 "토대와 상부구조"인데, 상부구조는 법률, 예술, 정치 등 "이데올로기", "관념", "체제"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며, 토대는 기계, 노동자, 사유재산 등 "생산 관계" "생산 수단" "물질"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토대-상부구조 이론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정치 체제, 문화, 종교 등이 사실은 우리가 일하고, 생산하고, 먹고 사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기존의 역사학은 종교나 정치가 존재하고, 그것이 노동의 형태를 결정지었다고 주장했지만 마르크스는 반대로 경제적 생산 활동이 종교, 정치, 경제 체제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주의 사학은 이처럼 경제적인 생산 체계, 계급 의식, 피지배-지배 관계 등을 중시하며, 이를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고자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 언제나 계급과 계급의 갈등을 자본가-노동자의 이분법적인 관계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며,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그 역사만큼이나 많은 변동을 거쳐왔다. 현대 마르크스주의 사학자는 레닌(Vladimir Lenin), 루카치(Georg Lukacs), 알튀세르(Althusser) 세명 중 한명의 영향 아래에 놓여있는데, 각자가 어느정도 입장이 미묘하게 다르다. 마르크스주의 사학자들은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며[2], 한국의 "민중사학"과도 큰 연관이 있다.

아날 학파 (École des Annales)

  • 브로델(Braudel, P.), 블로크(Bloch, M.), 페브르(Febvre, L.), 샤르티에(Chartier, R.)
2세대 아날학파 사학자 페르낭 브로델

아날 학파는 마르크스주의와는 또 다른 방법으로 실증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학파이다. 마르크스주의 사학이 영국에서 발달했다면, 아날 학파는 프랑스에서 발달한 학파이다. 아날 학파의 등장은 사회학이라는 학문과 연관이 있다. 사회학은 앞서 설명한 실증주의의 한 조류로서 생겨난 학문으로, 오귀스트 콩트 등에 의해 정립되었다. 이는 생물 세계에 일정한 법칙이 있듯, 우리 인간의 "사회"에도 일정한 법칙이 있으며 이를 각종 수치와 연구, 통계 등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사회학의 입장을 받아들여, 역사의 중심은 인물이나 사건이 아닌 "사회 그 자체"에 있다고 보고, 현대 사회학의 세 아버지, 즉 카를 마르크스, 막스 베버, 에밀 뒤르켐의 영향을 받은 "사회학적 사학"을 전개하였다.

아날 학파가 마르크스의 영향을 엄청 받긴 했지만, 마르크스주의와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점은, 사회를 투쟁의 장소로 보지 않고 그 자체로 본다는 점에 있다. 물론 우리는 사회를 살아감에 있어 저항도 하고 투쟁도 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밥 먹고, 잠 자고, 노는 것으로 보낸다. 이러한 삶이 뭉쳐져 사회를 이루고 아날학파는 바로 그런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관찰하고자 한 것이다(사실 이 점에서 마르크스보다 뒤르켐의 영향력이 두드러진다). 아날 학파는 1,2,3,4세대로 나뉜다.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와 뤼시앵 페브르(Lucien Febvre)로 대표되는 1세대 아날학파는 "실제 중세의 삶은 어떠했는가?"를 사회학의 입장에서 실증적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이들을 이어받은 2세대 아날 학파는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로 대표된다. 페르낭 브로델은 단순히 중세와 근세, 현대의 "일상적인 삶"을 그 자체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은 매커니즘까지도 서술하고자 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즉 경제 체제, 외교 관계, 전염병 등 다양한 면들을 파악해, 이를 토대로 역사 속 사회의 모습을 역사책 속에 그려내고자 했던 것이다. 자크 르 고프(Jacques Le Goff)로 대표되는 3세대는 포스트모던 사학과도 연관이 되며, 이들은 보다 디테일한 삶의 모습까지 파헤치고자 하였다. 눈에 보이는 거시적인 삶의 변화 뿐 아니라, 미시적인 풍습이나 미신 등까지도 포함시켜 사회를 보다 온전하게 재현하고자 한 것이다. 현재의 아날 학파는 로제 샤르티에(Roger Chartier) 등으로 대표되는 4세대로 분류되고 있다.

탈근대주의 (Post-modernism)

  • 월러스틴(Wallerstein, I.), 스피박(Spivak, G.), 사이드(Said, E.)
세계체제론을 제시한 사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

​1968년, 서구 인문학계는 큰 지각 변동을 맞이한다. 그동안 거대한 권력과 사회 풍습에 억눌려있던 흑인, 여성, 성소수자, 환경운동가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권리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 "68혁명"은 역사학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마르크스주의니 아날이니 하던 역사학이 사실은 너무 서양, 권력자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려고 한 것이 아닌지에 대한 비판이 대두된 것이다. 이를 "탈근대주의 사학" 혹은 "포스트 모더니즘 사학"이라고 부른다. 들뢰즈(Gilles Deleuze), 데리다(Jasque Derrida), 푸코(Michel Foucault)로 대표되는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전통적인 서구 철학으로부터 벗어나기"이다. 마찬가지로 포스트 모더니즘 역사학도 "전통적인 서구 역사학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시전, 기존 서구 역사학의 "유럽 중심성"을 벗어나고자 하였다.

이 사조에서 가장 유명한 개념은 "오리엔탈리즘" 개념이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ïd)가 정립하였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북한 총리 윤석열이 후지산에서 에베레스트 트래킹을 하고 위구르족의 전통요리인 분짜를 먹으며 고량주 드링킹을 했다" 이 말은 동아시아인들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터무니 없지만, 중요한 것은 서구인들이 이런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동아시아나 남아시아나 다른 제3세계를 접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동아시아의 신비"니 뭐니 하며 각종 이상한 미신들이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양 알려졌고, 반대로 우리도 판타지 소설을 보면 각종 프랑스어, 독일어 등을 섞은 괴상한 귀족 작명을 등장 인물 이름으로 집어넣곤 한다. 이처럼, 에드워드 사이드는 각 문화권이 서로를 향해 왜곡된 시선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왜곡된 접근을 하였다는 "오리엔탈리즘"의 개념을 제시하였다.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은 이 개념을 더욱 확장시켜 포스트모던, 포스트식민주의, 그리고 페미니즘 역사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스피박이 제시한 개념은 "서발턴"인데, 이 개념은 <어떤 약자는 자기들을 대변할 정당이나 이념이라도 있지, 진짜 약자들은 그럴 조직도 갖추지 못했다>로 요약된다. 즉, 스피박의 "포스트 모던 역사학"은 역사 속에서 오리엔탈리즘 속에 갇혀 서서히 사라져간 "서발턴"을 집어내어, 역사의 주체로 재부각시키는 것에 있다. 우리에게 보다 친숙한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주제는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 등으로 대표되는 "세계 체제론"이 있다. 세계 체제론은 종속이론과 비슷한 개념인데, 미국이나 남아메리카, 인도, 한국 등 여러 나라들이 분리되어 개별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특히 "거대한 나라"들의 체제에 종속되어 상호작용하며 역사가 발달했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탈근대주의 역사학은 현대 사학계에서 나름대로 핫한 주제이나, 들뢰즈 등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신유물론[3] 탈근대주의와는 어느정도 분리시켜 볼 필요가 있다. 포스트모던 역사학은 포스트모던 철학에 비해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고, 특히 20세기를 대표하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였던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를 빼고서는 포스트모던 사학의 담론들을 설명하기 어렵다. 반면 현대의 탈근대주의 철학은 마르크스주의를 어느정도 멀리하고자 하기에 차이가 있다.

문명주의[4]

문명은 발생, 성징, 쇠퇴, 해체되는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
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 토인비(Toynbee, A.), 헌팅턴(Huntington, S.), 다이아몬드(Diamond, J.), 하라리(Harari, Y.)

문명주의적 사학은 엄밀한 분류는 아니나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일련의 문명중심 사학의 조류를 뜻한다. 이 조류는 가장 고전적인 사학 조류인 순환주의를 부분적으로 계승했다고 볼 수 있으며, 랑케에 의해 촉발된 근대 실증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출발하였다. 1848년 혁명으로 촉발된 국민주의(nationalism)의 태동기에 등장했던 랑케의 사학에 있어, 역사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국민국가와 민족(volk)이었으며 문명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탈근대주의의 대두를 통해 기존 사학의 서구문명중심주의가 비판받게 됨에 따라 20세기 후반에 들어 세계사를 국가와 민족 중심의 역사가 아닌 문명(civilization)간의 상호작용을 통한 발전이라고 보는 시각이 대두되었는데, 이를 문명주의라고 범주화하기도 한다.

21세기 이후 문명주의적 사학은 대중의 차원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총, 균, 쇠>라는 저서로 유명한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를 들 수 있다.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연구 활동을 벌인 뉴기니섬의 원주민들을 사례로 들어 왜 서구의 문명이 산업혁명을 통해 기계 혁명을 이룬 반면 뉴기니 섬은 야생에 머물렀는지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총, 균, 쇠>의 기본적인 입장은 인류의 발달은 언제나 인류 공동체가 속한 기후, 지리, 역사맥락적 요인, 즉 문명이라는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지 인종간의 우열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 그 외에 유명한 문명주의자로는 문명 이론의 창시자 격으로 평가받는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가 있는데, 창조적 소수와 모방하는 다수, 도전과 응전 등의 개념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유발 하라리(Yuval Harari)가 문명주의자로 분류될 수 있다. 비록 이전의 문명주의자와는 어느정도 차이가 있지만, 인류를 하나의 문명으로 보고 이를 분석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입장과 방법론은 동일하다.

근 2~30년간, <총 균 쇠> <문명의 붕괴> <사피엔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문명의 충돌> <팩트풀니스>와 같이 역사주의의 입장을 따르거나 혹은 비슷한 맥락에서 저술된 여러 사회역사학 도서가 대중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이와 별개로 학계에서 문명주의는 유사 역사학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 이유는 문명주의가 다루는 범주가 생태학, 지리학, 지정학, 경제학, 역사학 등 워낙 많아 "넓고 얕은" 연구만을 진행하는 문명주의자들이 많을 뿐더러, 그러한 이유로 유발 하라리를 비롯한 절대다수의 문명주의자들이 학계 연구에서 필수적인 동료평가(peer review)를 전혀 거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문명주의적 사관이 기본적으로 서구중심주의를 탈피하지 못한 오리엔탈리즘적이고 피상적인 사학이라는 비판 역시 제기된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와 탈근대주의로 대표되는 현대 주류 역사학은 문명주의를 진지한 역사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것이 필요한가?

시대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

대체역사를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바꾸고자 하는 시간대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이다. 이것은 그렇게 많은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냉전 시대의 대체역사를 쓴다고 할 때, 필요한 것은 어느 나라가 공산권이었고 어느 나라가 자유진영이었는지에 대한 지식이다. 하지만 핵심적인 것은 그 지식 그 자체만으로는 불충분하다라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서독과 동독이 분단되었는지, 왜 헝가리에서 혁명이 일어났는지, 왜 페레스트로이카가 시행되었는지 등, 그 시대에 대한 단순한 지식을 넘어서는 이해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역사를 짠다고 해서 그렇게 많은 지식이 필요한건 아니다. 독일의 역대 총리, 스페인의 정당 목록, 영국의 왕실 구성원 명단 등을 외울 필요는 없다.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그러한 것들이 왜, 어째서 일어났는가?에 대해 명쾌히 설명할 수 있는 역사 이해 능력이라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보았을 때는 지식이 거의 없더라도 대체역사를 쓰는게 가능하다. 물론, 어째서 왜 역사가 변화하였는지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어느정도 요구되기 때문에 지식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요지는 핵심이 지식이 아니라 이해도에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역사의 어느 시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더라도, 대체역사에서 필요한건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이지 무엇이 어떤지가 아니다.

인문학적 지식

그렇다고 하여 지식이 완벽하게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체역사에는 어느정도의 고증이 필요한데, 그 고증을 맞추는 것은 이해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지식이 있어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대에 대한 이해도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그 시대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너무 많이 알 필요는 없다. 적당히만 알면 된다.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이긴 세계관으로 구상한다 쳐보자. 여기서 독일이 어떻게 승리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이해력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는 군데 군베 빈 곳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독일이 어떤 전투에서 이겼고 어떤 장성이 어떤 무기를 통해 이겼는지 말이다. 또한 독일의 정치 상황과 해외의 외교 관계도 비어버린다. 그런 빈 공간들을 메워주고, 세계관을 보다 더 현실성 있게 만드는 것이 인문학적인 지식이다. 따라서 역사 공부를 등한시하는 것은 안되고, 세계관을 만들기 전에 있어 최소한의 역사 상식은 가지고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인문학적인 상식은 단순히 정치, 군사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가 변할 때에는 때로 경제가 개입하기도 하고, 문화가 개입하기도 하기 때문에, 문화나 경제, 외교, 종교 같은 다른 인문학적 지식을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개연성

서사를 만들 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얼마나 말이 되냐라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관을 쓰는 것과는 상관 없이, 그냥 서사를 구성하는데에 있어서의 핵심이다. 하지만 역사에서도 서사는 거의 동일하게 적용된다. 때로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지만, 단순히 서사를 우연이나 운에만 맡기는 것은 그 이야기를 재미 없고, 비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 공산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관의 역사나 구조를 구성함에 있어, 세계관의 내적 요소와 외적 요소가 최소한 말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끔 설정하는 것은 재미있는 세계관을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추진력

세계관을 단순히 연습장에서만 굴리면 그건 세계관이 아니다. 틀만 고치거나, 국명만 수정하는 식으로 세계관의 정작 중요한 서사나 역사 등을 구성하지 않고 미시적인 부분에만 집중하는 것 역시 대체역사 세계관을 만드는 좋은 태도라고 볼 수 없다. 핵심적인 것은, 국명이나 틀에 대한 집착 등 미시적인 요소가 아니라 역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등의 거시적인 부분이다. 대체 역사를 다룰때 있어, 많은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은 고증이나 심미성을 이유로 자신의 원대한 구성을 오직 연습장에만 적어둔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은 세계관이라고 부를 수 없다. 좋은 세계관은 아무리 세계관이 엉망이라도, 일단 남 앞에 보여주어 평가를 받는 과정을 통해서만 완성된다. 따라서 과감해지는 태도가 중요하고 이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추진력이라 하겠다.

대중성

염두에 둬야할 것은 대중들은 생각보다 무식하다는 것이다. 때로, 상식 같아 보이는 것도 상식이 아닐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시적인 것에만 집중하고,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명단이나 미국 역대 국가안보보좌관 명단을 수정하는 등 미시적인 부분, 세세한 부분에 집중하는 것은 세계관 그 자체로만 보았을 때에는 훌륭한 태도이지만 중요한건 사람들은 그게 뭔지 모르기 때문에 재미 없어한다는 점이다. 즉, 대중성의 부족이다.

그렇다면 세계관을 어떻게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대체역사를 짤 때에 있어, 판타지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우리가 아는 역사와, 대체역사의 세계관에서의 역사가 일정 부분까지는 동일하다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대체역사는 아는 역사와, 바뀌는 역사의 구분점을 절묘하게 두면 그 재미와 대중성이 극대화된다. 따라서 대체역사의 대중성을 높이는 방법은, 아무도 모를 것 같은 부분을 바꾸는것보다는, 거시적이고 눈에 보이는 부분을 바꾸는 것이다. 또다른 방법은, 세계관의 역사를 너무 크게 바꾸지 않는 것이다. 역사의 일부를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수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좋아보일지는 몰라도, 그렇게 된다면 판타지와 구분할 길이 없다.

모티브

어디선가, 헤겔은 세계사적으로 몹시 중요한 사건과 인물은 두 번씩 나타난다고 썼다. 나는 이 말에 이렇게 덧붙이겠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에는 희극으로 나타난다고.
카를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사실, 세계의 인문학적인 양상이나 역사는 대부분 비슷한 방법으로 반복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인 대체역사를 쓰는 것은, 아예 처음부터 모든 것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역사를 절묘하게 비틀어, 그것을 패러디하거나 모티브로 삼는 것이다. 실제 대체역사에서도 이를 많이 볼 수 있다. 가령 <높은 성의 사나이>는 냉전에 대한 고도의 패러디이다. <비명을 찾아서>는 전두환 정권과 광주 민중항쟁에 대한 군사정권의 역사왜곡을 풍자한 대체역사 소설이다. 이처럼 많은 대체역사물들은 과거의 선례들을 반복하면서도 일정부분은 바꾸는 식으로 그들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성해낸다.

가상 국가를 만들때나, 혹은 가상 정당을 만들때, 너무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으려고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오히려 역사적인 사례를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변주하려는 자세가 더 나은 세계관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것은 모방이 아니라 독창적인 재해석이다.

주의해야할 것들

역사를 너무 단순하게 보지 말자

군사 갤러리와 같은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역사를 지나치게 선악과 정의대 비정의의 구도로 나누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 역사를 통틀어보면 그렇게나 간단하게 선악이 나누어지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또 (알베르 카뮈의 말대로) 때때로 정의는 비정의에 패배하기도 하고, 용자는 겁쟁이에 패하기도 하며, 진실은 거짓에 패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역사는 매우 복합적이고 어려운 양상을 띄고 있다.

주류 언론들은 선악으로 국제 지도자를 판단하기를 즐겨하기 때문에, 세계관을 만들 때 있어 선악을 구분해두지 않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다각면에서 바라보면, 때로 히틀러, 스탈린, 차우셰스쿠, 밀로셰비치 같은 독재자에 대해 재평가할만한 여지가 생기곤 한다. 재평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쨌든 국민들에게서 지지를 받았고, 나름의 철학으로 국정을 운영해나갔다는 것이다. 이 점을 주지하며, 역사를 단순한 것이 아니라, "왜 그랬는가?"의 태도로 중립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것이 좋다.

한마디로 말해, 대체역사를 쓸 때에는 최대한 중립적이고 제3자적인 시각에서 쓰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개인에 집중하지 말자

일본 애니메이션 등의 영웅적인 서사시는 역사의 흐름에서 개인의 역할을 부각하는 것을 즐겨한다. 북한이나 루마니아 같은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역사를 통틀어 개인이 엄청난 영향을 미친 사건은 상당히 드물었다. 그보다는, 개인은 그저 역사 속의 등장인물일 뿐이고, 실제로는 역사가 구조나 시스템 등 다른 것으로 인하여 흘러가는 경우가 훨씬 많다.

개인이 아무리 뛰어나고 훌륭하더라도, 실제 역사가 흘러가는 것은 더 복잡한 과정을 수반한다는 뜻이다. 히틀러를 예시로 들어보자. 히틀러 개인에 대한 집중은 나쁠게 없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히틀러 한명 때문에 독일의 역사가 바뀌었다고 하면 오류다. 그보다는 단치히 회랑이나 베르사유 조약, 대공황, 뮌헨 폭동 같은 다른 이유도 필요하다. 대체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개인보다는 구조와 사건, 흐름에 더 집중하는 편이 좋다.

무엇보다, 개인에 지나치게 접근하는 태도는 자캐딸을 유발한다.

미시성보다 거시성에 집중하자

실제로 봤던 사례지만 국명을 뭘로 할지, 가상 섬의 위치를 어디로 할지, 틀의 색을 어떻게 할지로 1년 넘게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가 세계관을 쓸 때에 있어 가장 피해야할 태도이다. 대중이 알고 싶어하는건 황제의 집무실이 어디인지가 아니라 황제가 누구이고 어떻게 즉위했는지이다. 미시적인 부분을 쓰는 것은 세계관 작성자 개인에게는 흥미로울지는 몰라도 대중에게는 지루한 일이다. 그보다는 역사나 사건 등 거시적인 부분을 우선적으로 작성하는 것이 훨씬 대중성에는 도움이 된다.

또한 그런 미시성에만 너무 집착하다보면, 머리가 너무 아프다. 지나치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거시적인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다보면, 미시적인 것은 나중에 나오는 법이다. 처음부터 모든걸 하려 하지 말자.

끈기를 가지자

3일에 한번씩 세계관을 바꾸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3일에 한번 설정을 쓰더라도 세계관을 붙들고 있는게 나을까? 즉각적인 감정과 즉흥에 맡겨 세계관을 아무렇게나 써내려가면, 세계관은 그저 허브 문서나 한두개의 문서만 있고 끝나는 경우가 있다. 사실, 대중은 과정보다는 결과에 더 집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세계관 하나에 끈기를 가지고 오래 쓴다면, 먼 미래에는 상당히 장대한 세계관이 만들어져있을 것이다. 대중들에게 내놓아지는 결과물은 세계관 허브 문서만 있는 세계관 대 수만 바이트가 넘는 문서의 세계관이라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더 매력있게 다가오겠는가? 끈기를 가지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세계관이 망했거나 생각이 안난다고 섣불리 세계관을 접어서는 안된다. 먼 미래에 다시 세계관이 생각나서, 그걸 쓸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된다. 망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고쳐 쓰는 편이 낫다. 어떤 걸 하더라도, 바로 접고 다른 세계관 하는것보단 낫다.

평가를 주저하지 말자

외적인 부분이다. 남이 쓴 설정을 읽고, 그것을 칭찬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무비판적인 칭찬은 독이지 약이 아니다. 원래 대체역사라는 것은 사람에 따라서는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되돌아보며 피드백을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남의 세계관을 평가할 때 다소 공격적일지라도 피드백을 주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며 오히려 권장할만한 일이다. 물론, 해당 작가가 주눅이 들어 세계관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관을 평가할 때에는, 아쉬운 점과 고칠 점을 말하는 것에 있어서는 주저하지 말아야한다. 칭찬할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칭찬하는 것이 맞겠지만, 칭찬만 해서 세계관이 발달할 것이라 보는건 오산이다.

모방을 두려워하지 말자

역사는 결국 반복되는 일이고 모방일 뿐이다. 동서고금의 훌륭한 작가들도 자신의 책을 쓰는데 있어 셰익스피어나 브레히트 같은 훌륭한 고전을 참조하곤 한다. 대체역사를 쓰는데 있어, 너무나 자신의 독창성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남의 세계관이나 실제 역사를 배껴오되, 그것을 조금 변형하는 것에서 자신의 독창성을 찾는 경우도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모방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대담해져야하고, 세계관을 통째로 배끼지는 말되 조금 변형하는 식으로 간다면 충분히 좋은 세계관이 나올 것이라는 뜻이다.

참조할만한 대체역사물

소설

영화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드라마

  • 포 올 맨카인드 (애플tv)

세계관

도움이 되는 사이트들


  1. 신공, 노동자의 새조국, 피아베 강의 전설, 다롄, 대륙의 유령들 작성자. 제이위키에서는 개마, 구주, 신대륙의 황제국, 브리타니아/대동아제국 작성했음.
  2. 현대 탈근대철학을 프랑스철학으로 뭉뚱그려 표현하는 것처럼 현대 마르크스주의 사학을 영국 마르크스주의 사학으로 표현한다.
  3. 메이야수(Meillasoux, Q.), 라투르(Latour, B.), 베넷(Bennet, J.), 해러웨이(Haraway, D.), 브라이언트(Bryant, L.) 등을 통칭하는 21세기 포스트모던 유물론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현대 탈근대 사학의 경우 데리다나 푸코의 영향을 받았고 마르크스주의의 영향력도 우세한 반면 현대 신유물론 탈근대철학에서는 들뢰즈의 영향력이 두드러진다.
  4. 문명주의(civilazationsim)라는 범주는 통상적으로 학술의 영역에서 쓰이는 용어는 아니며 (주로 탈근대주의 혹은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서) 비판의 의도가 강한 범주화이지만, 21세기 역사학의 동향을 표현할 마땅할 범주가 없기에 추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