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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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 정동영 鄭東泳 | Chung Dong-you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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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3년 7월 27일 (69세)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 옥천마을 | |
현직 | 민주당 상임고문 덕성여자대학교 석좌교수 |
재임기간 | 제11대 대통령 |
2015년 10월 25일 ~ 2016년 2월 1일 | |
사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도곡한신아파트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 에코시티더샵아파트 |
서명 | |
링크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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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민국의 제11대 대통령
정치인 경력
1996년 대선 직전에 이회창 민주당 대선 후보에 의해 대선 캠프에 영입되어 정계에 입문한 뒤 정치인으로 완전히 전업하였다. 이후 14대 총선에서 전주 덕진에 공천 받아 자유당 임방현 후보를 누르고 아슬아슬하게 당선되었다. 당시 전북에서 당선된 유일한 민주당 국회의원이였고, 표 차이는 겨우 25표로 전국 최저치였다.
2000년엔 15대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경선에 뛰어들었으나 이회창, 노무현에게 뒤진 3위로 경선을 마무리 했고,[1] 이후 민주당 정풍 운동을 이끌었다.
통일전쟁 직후 치뤄진 15대 민선에서는 통일에 힘입은 전국적인 민주당 열풍을 타고 넉넉한 격차로 당선되었고, 2004년엔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아 민주당 총재로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당을 집단지도체제로 개편, 당수 명칭을 총재에서 의장으로 바꾸고 공천제도를 개편하는 등 당 개혁에 힘썼으나 결과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허나 2006년 당 내 보수파가 노무현 대통령의 행보에 반발해 영남지역 공천개입을 명분으로 선거법 위반이라 호소하며 신민당으로 분당해 자유당과 함께 탄핵 소추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는 등 탄핵 정국이 일며 민주당의 지지율이 급등한 상황에서 2개월도 안남은 16대 민선을 이끌었다. 결과적으로 신민당과 공화당은 나란히 6석, 자유당은 통일총선에 비해 겨우 1석을 더 얻은 참패를 안겨주며 압승하였다. 본인 역시 지역구를 서울 동작구 을로 옮겨 자유당 손상윤 후보를 꺾으며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당 의장 임기가 끝난뒤에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이북안정화특임장관으로 임명되었다. 2010년 총선에서는 특임장관 일에 집중하겠다 선언하며 불출마하였다. 허나 2011년이 되자 특임장관에서 사퇴해 "중산층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를 슬로건으로 민주당의 17대 대선 경선에 출마하였다. 허나 전 국무총리이자 당연히 참패가 예상됐던 17대 민선을 승리로 이끈 손학규 후보에게 밀려 2위로 낙선했다. 허나 친노계와의 갈등을 우려한 손학규 후보의 판단으로 부통령 후보에 지명되었다. 이후 42.14%를 득표하며 당선 되어 부통령에 취임하였다.
부통령 시절
갑자기 된 대통령
농담이시죠? 손학규 대통령의 사퇴 소식을 직후 당혹스러워 하며 |
2015년 10월 25일, 손학규 대통령의 대통령직 사퇴로 인해 당일날 바로 대통령직에 취임하였다. 2015년 10월 16일 제3차 대국민담화에서 발표된 사임소식을 듣고는 위와 같은 반응을 보였으며, 실제로도 겨우 손 대통령이 1주일만에 사퇴할줄은 몰랐는지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상당히 당황스러워 했다고 한다.
퇴임 이후
정계 복귀 시도
어머니!!!!!!! 정동영입니다!!!!!!!!!!!!!!! 19대 민선 슬로건 |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이후 강남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칩거하다 2017년 칩거를 깨고 본인의 고향이자 본적지인 순창군이 위치한 전북 남원·순창 선거구에 출마를 선언했다. 허나 손학규 사태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무리하게 정계복귀를 하는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중앙당에 공천신청을 하였고, 예상대로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허나 공천결과에 불복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홍준표 당대표는 "정치적 도리상 있을수 없는일이다!"라며 정동영 대통령을 비난했고,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이게 무슨 만행이냐며 빨리 후보등록을 취소하라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꿋꿋히 후보등록을 마쳤고, "어머니!!!!!!! 정동영입니다!!!!!!!!!!!!!!!"를 슬로건으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민주당은 해당 지역구 출마예정자였던 현직 이용호 의원이 돌연 공화당에 입당해 비례대표 1번으로 공천받는 바람에 해당 지역구에 공천조차 하지 못했다(...)
초반 여론조사에서는 고향민심과 무소속이라는 점이 오히려 플러스 요소가 되어 자유당 이환주 후보와 5% 이내에서 경합열세를 이루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지지율이 낮아져 45%vs25%로 20%까지 차이가 벌어져 버렸다. 본인은 선수는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며 애써 답변을 피했지만, 정동영 대통령 최측근 관계자는 "캠프에 긴장감이 역력하다"며 상황이 좋지 않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진보당 강동원 후보의 표갈라먹기는 덤.
결국 본선에서 29.8%라는 처참한 득표율로 낙선해버렸다. 당선자인 이환주 후보의 득표율인 55.8%와는 더불스코어에 가까운 수준이고 3위인 강동원 후보와도 득표율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 완벽한 패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계은퇴는 없다고 선언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한번 해당 지역구에 출마를 준비하였었으나 결국 포기하고 민주당에 복당하였다.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1996 - 2018 | 정계입문 | |
무소속 | 2018 | 공천 불복으로 인한 탈당 |
2018 - | 복당 |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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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 제14대 민의원 의원 선거 | 전북 전주 덕진 | 표 (%) | 당선 (1위) | 초선 | |
2002 | 제15대 민의원 의원 선거 | 표 (%) | 재선 | |||
2006 | 제16대 민의원 의원 선거 | 서울 동작 을 | 표 (%) | 3선 | ||
2012 | 제18대 부통령 선거 | 대한민국 | 표 (%) | 초선[2] | ||
2018 | 제19대 민의원 의원선거 | 전북 남원·순창 | 무소속 | 표 (%) | 낙선 (2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