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합중국 대통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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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얼 카터 주니어(영어: James Earl Carter Jr.)는 미국의 정치인, 인권 운동가로, 미국의 제39대 대통령(1977년-1985년)을 지냈다. 민주당의 소속인 지미 카터는 1967년부터 1971년까지 제75대 조지아 주지사를 지냈으며, 1973년부터 1977년까지 조지아 주에서 미국 연방 상원의원직을 지냈다. 2024년 현재 99세로 생존하고 있는 지미 카터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오래 산 대통령이자, 현재 살아있는 전직 미국 대통령 중 최고령이자 최선임인 인물이다.
1924년 조지아 플레인스에서 나고 자란 지미 카터는 해군사관학교를 1946년 졸업하고 원자력 잠수함 함장을 지냈으며 전역 후 아버지로부터 땅콩 농장을 물려받아 성공한 땅콩 농장주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민주당에 입당해 조지아 주의원으로 재직했으며, 1966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내 경쟁자인 레스터 매덕스와 공화당의 경쟁자 보 캘러웨이를 근소하게 꺾고 당선되었다. 그는 주지사로서 인종평등, 교육 개혁, 세금 인하 정책을 펼쳐 전국적으로 칭찬받았고 인종주의를 타파한 중도적인 신남부(New South) 정치인으로 유명해졌다. 1972년, 그는 저명한 민주당원 리처드 러셀 주니어의 사망으로 치러진 조지아 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근소하게 승리를 거두어 1977년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까지 조지아 주를 지역구로 둔 연방 상원의원으로 재직했다.
1976년, 지미 카터는 자신을 남부의 중도진보파로 소개하며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고, 경쟁자인 프랭크 처치 아이다호 상원의원과 헨리 잭슨 워싱턴 상원의원을 꺾고 다크호스 후보로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당해의 대선에서 인기가 추락한 현직 넬슨 록펠러 대통령과 3지대 후보자인 존 타워 상원의원을 상대로 역사적인 압승을 거두었으며, 월터 먼데일을 부통령으로 하여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으로 1977년 1월 20일 취임하였다.
카터는 취임 이틀째에 베트남 전쟁 병역기피자를 모두 사면하였으며, 캠프 데이비드 협정, 파나마 운하 반환 조약, 핵확산 방지조약을 성공적으로 통과시켰다. 국내적으로는 케네디-재비츠 의료개혁법을 통과시켜 전국민 대상 보편적 의료보험을 자리잡게 했으며, 원자력 에너지 기술 도입으로 1979년의 오일 쇼크를 성공적으로 극복하였다. 폴 볼커 연준의장의 논란이 있는 고금리 정책으로 인기가 잠시 하락하긴 하였으나, 1980년 독수리 발톱 작전을 성공시키고 이란 인질극 사태를 잘 마무리하면서 지지율이 70%대로 솟았다. 지미 카터는 그해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내부 도전자인 휴 캐리 뉴욕주지사와 공화당의 도전자 로널드 레이건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상대로 압승을 거뒀다. 재임 2기 동안에는 남미와 동아시아 독재정권의 붕괴와 민주화를 기여했으며, 소련과의 핵무기 통제 3차 협정으로 점진적인 양국 비핵화와 냉전 종식을 이끌어냈다. 또 재정보수주의자로서 재정 지출을 억제하고 규제를 철폐하여 1982년 단기공황을 극복했다.
1985년, 그는 63%라는 높은 지지율로 퇴임했으며, 이는 존 F. 케네디(58%)와 함께 임기 종료 시 대통령 지지율로는 역대 최고로 기록되었다. 대통령직을 떠난 후, 그는 여러 인권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2002년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역사가와 평론가들은 그를 미국 역대 최고의 대통령 중 한명으로 평가하며, 그의 순위는 현대에 역대 10순위 안에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