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6.4 항쟁 六四事件 Revolution of June 4t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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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
1989년 4월 15일 ~ 1989년 10월 1일[1] | |
장소 | |
베이징 등 중국 전역 600여 개 도시 | |
원인 | |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으로 인해 심화된 중국의 빈부격차 리펑 등 공산당 내 보수파의 입지 강화 후야오방 총서기의 사망 동구권 혁명으로 인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 |
충돌 세력 | |
중국 정부 중국공산당 강경파[2] 중국 인민해방군 |
대학생 및 노동자 세력[3] 중국공산당 개혁파[4] 홍위병 중국국민당 혁명위원회 인민해방군 내 불복종 군인들 중국 공안 북경공인자치연합회 베이징대학교 학생 |
지지 국가 | |
만주인민공화국 | 소련 대한제국 대만 |
주요 인물 | |
덩샤오핑 리펑 류화칭 장쩌민 |
자오쯔양 양상쿤 원자바오 쑹추위 롄잔 쉬친셴 류샤오보 딩즈린 웨이징성 왕단 차이링 외르케시 될레트 |
참여 인원 | |
군 병력: 약 3,000명 이상 민경 병력: 약 15,000여명 추정 |
시위대: 약 5,000,000명 이상 군경 병력: 약 7,000명 이하 추정 |
인적 피해 | |
17명 사망 201명 부상 |
337명 사망 1,553명 부상 |
결과 | |
시위대의 승리, 덩샤오핑의 주석 직위 사임 | |
영향 | |
중국공산당 내 개혁파의 집권 중앙 단위 의회민주제, 지방 단위 코뮌민주제 시행 중국 특색 사회주의 폐기, 신시대 마오쩌둥주의 명시 |
개요
肃清修正反动邓小平,建立中国公社! 숙청 수정반동 등소평, 설립 중국공사! (수정주의자 반동 덩샤오핑을 숙청하고 중화코뮌을 이룩하자!) 시위 당시 노동자들의 구호 |
援学生爱國行动! 反腐败! 反官倒! 원학생애국행동! 반부패! 반관도! (학생들의 애국 운동을 지지한다! 부패 반대! 직권 남용 반대!) 시위 당시 대학생들의 구호 |
- ↑ 6월 4일 덩샤오핑 주석이 시위대의 요구안을 관철할 뜻을 밝힘으로서 시위가 성공하였지만, 코뮌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일부 극좌 아나키스트 학생들과 홍위병들의 시위가 10월 1일까지 이어졌다. 최종적으로 천안문에 마지막까지 설치되어있던 시위대 텐트들이 중국 정부와의 협상 끝에 인민공화국 성립 40주년에 맞추어 자진 철수하며 시위는 종료된다.
- ↑ 이른바 "수정주의자"로 불린 덩샤오핑주의자 파벌.
- ↑ 대학생 및 식자층 세력은 주로 서구식 민주주의를 요구했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에게 즉각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직장 내 민주주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공산주의적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초기에는 대학생들이 주도권을 잡았으며 5월 중순을 기점으로 노동자 시위대가 참여하며 주도권이 노동자와 자유노조로 넘어갔다.
- ↑ 이른바 "반수정주의자"로 불린 마오쩌둥주의자 및 온건파 파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