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비 1세

쿠리오 긴배 도프 공산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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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제국 샤한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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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제국 제1대 샤한샤
레자 샤 팔라비
رضا شاه پهلوی‎ | Reza Shah Pahlavi
출생 1878년 3월 15일
이란 숭고국 마잔다란
사망 1944년 7월 26일 (향년 66세)
남아프리카 연방 요하네스버그
국적 이란국
임기 이란 숭고국 제20대 총리
1923년 10월 ~ 1925년 2월
이란국 샤
1925년 12월 ~ 1941년 9월
배우자 타자 올-몰룩
자녀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종교 시아파 이슬람교 (세속)

개요

이란 제국의 개창자. 살아생전의 칭호는 샤였으나 아들 팔라비 2세의 추존으로 사후 샤한샤가 되었다.

생애

초기 생애

레자 팔라비는 1878년 이란 북부의 한 군인 가정에서 태어난다. 16세에 코자크 여단에 입대하였는데 아버지로부터 무인의 기질을 이어받은 덕인지 능력을 인정받아 고속승진하였다.  레자가 준장까지 승진하여 코자크 여단 여단장을 맞고있을 즈음, 카자르 왕조는 온갖 병크로 인해 권위가 땅에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러자 레자는 1921년, 영국의 지원을 받아 코자크 여단을 이끌고 테헤란으로 진격, 실권을 잡았다. 국왕과 수상을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린 레자는 스스로 전쟁상의 자리에 올라 전국을 돌아다니며 혼란을 수습했다. 테헤란으로 돌아온 1923년 부터는 수상의 자리에 올랐으며 1925년 의회 결의를 통해 카자르 왕조를 폐지했다.

이란의 샤

레자는 이웃 튀르키예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처럼 신생 이란을 공화국으로 만드려고 했으나 각층의 우려와 반발로 단념, 스스로 '샤'가 되어 이란을 왕국으로 만들었다. 팔라비 왕조의 시작이었다.

팔라비 1세로 즉위한 레자는 급진적인 개혁을 펼쳤다. 사회 인프라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국립은행과 테헤란 대학교[1]를 설립하였으며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령들이 제정되었다.  그의 치세 중 고속도로의 길이는 7배, 공장의 수는 17배 늘어났으며 이란을 관통하는 철도가 완공되었다.  1935년에는 정식 국호를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 고쳤다. 이란인들은 대체적으로 그의 개혁정책을 지지했으나 민주주의자들은 그가 의회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비민주적인 통치를 펴서,  성직자들은 그가 강력한 세속주의 정책을 펴서 그를 불호했다.

퇴위와 사망

이란은 2차 세계대전에서 중립을 지켰다. 비록 추축국이나 연합국에 가입하지는 않았으나 팔라비 1세는 이란을 통한 소련 물자 지원을 거부하였다. 이에 영국과 소련은 1941년 이란을 침공하였다. 팔라비 1세가 직접 이란군 총사령부 회의실을 찾아 지휘관들을 격려했으나 이란군은 무기력하게 무너져내렸다. 결국 이란은 항복하였고 팔라비 1세는 영국의 요구에 의해 왕위를 아들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에게 물려주고 남아프리카 연방으로 망명해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1944년 요하네스버그에서 사망했고 이란 정부는 그 날을 애도일로 지정했다. 유해는 1950년 이란으로 이장되었고 현재는 테헤란 교외의 영묘에 묻혀있다.

평가

각주

  1. 이란 최초의 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