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도쿄도지사 선거 (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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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도쿄도지사 선거
2024年東京都知事選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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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 72.17% ▲ 17.17%p
선거 결과
후보
득표율
13.96% 6.35% 65.03%
득표수 1,124,049 511,297 5,236,082.140
당선자
개신당
호리코시 지로

개요

東京に伝える愛を受けてください。

도쿄에 전하는 사랑을 받아주세요.[1]

2024년 도쿄도지사 선거(일본어: 2024年東京都知事選挙)2024년 7월 21일 열리는 도쿄도지사 선거이다.

지난 선거에 이어 이번 선거도 고이케 유리코 지사의 임기 만료로 인해 치뤄진 선거이다. 이 날 도쿄도의회의 n개 선거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도 함께 실시되었다.

선거 전 상황

도정 여당(일본의 미래당) 측

일본의 미래당 출범

유례없는 개신당 돌풍 속에서 출범한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 내각과 여당의 지지율이 집권 2년차인 2024년에도 80%선 밑으로 내려오지 않자 자유민주당, 공명당, 입헌민주당 등 기성 정당들은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자와 이치로 입헌민주당 대표의 "의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총리[2]는 쪽팔려서 어떡하나?"(議会でこの野郎どもが承認しないと、総理はみっともないのでどうしようか。) 발언을 시작으로 기성 정치인의 반 개신당 정서가 수면위로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이에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가 "(오자와) 대표의 발언은 명백하게 '총리는'(そうりは)이 아니라 '그것은(それは)' 이다." 라고 옹호하며 야권 연대의 훈풍을 일으켰다.

이어, 기성 정당의 노골적인 반 개신 연대 행보와 물밑에서의 접촉 끝에 2024년 5월 1일, 일본공산당을 제외한 모든 원내 야당이 일본의 미래당이라는 신당으로 합당하였으며 얼마 남지 않은 도쿄도지사 후보 공인을 위한 협의를 시작하게 되는데...

도쿄도지사 하토야마 유키오?

자민당계 등 우파가 지지하는 현직 도쿄도지사 고이케 유리코와 민주당계 등 좌파가 지지하는 야마모토 타로의 공인을 두고 당이 둘로 나뉘어 싸우던 7월 5일 목요일 오후 5시경, 일본의 미래당 공동대표인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비밀리에 도쿄도지사 후보로 등록했다.

7월 6일 금요일 새벽 3시에는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 등 민주당계 당직자를 소집해 대표는 하토야마 본인만 참여한 확대대표회의를 열어 만세삼창으로 도쿄도지사 후보 하토야마 유키오 공인안을 통과시켰다.

곧바로 하토야마 공동대표는 당인이 찍힌 공인장을 도쿄도 선거관리위원회에 팩스로 보내고 소집한 민주당계 당직자와 의원들과 함께 당사 입구를 의자와 책상으로 봉쇄했다. 도쿄도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출근하는 9시까지 버티면 이긴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하토야마 공동대표가 도쿄도지사에 출마하기 위해 당사를 봉쇄하고 있다."테레비 아사히의 보도를 시작으로 수많은 언론에서 속보로 다루기 시작하며 당내 좌파든 우파든 관계없이 당사 앞으로 몰려와 하토야마 측 당직자와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보도된 지 1시간 만인 6시 10분경에는 당사 입구가 뚫렸으며, 7시경에는 하토야마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표실 앞까지 도착했다.

대망의 7시 28분,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문을 열지 않고 있던 하토야마 공동대표를 대표실에서 끌고 나오기 위해 사쿠라이 마코토 일본의 미래당 노인권익위원회 위원이 빠루를 들고 와 문을 열기 시작했다. 대표실의 문은 곧 열렸지만, 하토야마는 당인을 넣은 보자기를 등에 멘 채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하토야마 공동대표는 2층의 대표실에서 무사히 뛰어내려 택시를 타고 사라졌으며, 모리 요시로 책임대표는 당인을 다시 발급받고자 했으나 하토야마 공동대표가 이미 당인 재발급 금지를 주무관청에 요청해놓은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도쿄도지사 선거기간 내에 하토야마 공동대표를 찾아 당인을 되찾기 위한 추격전이 벌어지게 된다.

옥새 들고 나르샤

7월 7일

7월 7일 오전 8시, 하토야마 공동대표가 비서와 도쿄역에서 신칸센 표를 발권하고 있다는 내용의 트윗이 올라왔다. #

오전 9시 32분, 하토야마 공동대표가 당인이 들어있는 배낭을 메고 도쿄역 플랫폼에서 앉아있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일본의 미래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도쿄역사로 급하게 달려갔으나 만나기 고작 2분 전에 들어온 열차를 타고 하토야마 공동대표는 유유히 떠났다. #

일본의 미래당은 '#HATOYAMA_STOP'과 '#HATOYAMAISHERE'이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하토야마 공동대표의 위치를 SNS로 제보해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SNS에 올린 지 3분 만에 1천 개 이상의 제보가 전달되었다. 일본의 미래당 모리 요시로 대표는 감사의 마음으로 일본의 미래당 본부(舊 자유민주당 본부)부터 국회의사당 정문까지 삼보일배를 하기로 했다. #

오후 2시, 하토야마 공동대표가 교토 모처에서 우동을 먹으며 지지자와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 제보되었다. 오후 4시에는 금각사에서 셀카를 찍는 모습이 제보되었다. #

오후 5시, 일본의 미래당 교토부 당직자들이 금각사를 급습했으나 비서의 완고한 길막과 때마침 온 버스 때문에 하토야마를 붙잡는 데 실패했다. # 곧이어 들어온 제보에 따르면 가라스마 역앞에서 버스에서 내려 역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오후 6시경. 하토야마가 오사카의 아와지역에서 내려 인근 야키소바 식당에 들어간 것이 확인되었다. 다시 당직자들이 이 식당을 찾아 들어갔으나 하토야마는 이미 떠난 뒤였다.

일본의 미래당 교토부련에서 억류하고 있던 하토야마의 비서를 풀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권고가 있었다고. #


타치바나 전 대표가 올린 영상

오후 7시, 타치바나 타카시 전 NHK당 대표는 하토야마가 당인을 들고 도망쳐 NHK의 시청률이 올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를 '하토야마의 장례식'이라고 부르며 하토야마 잡기에 나섰다. 타치바나 전 대표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차량을 타고 "하토야마 구속을 반대하는 사람을 경멸한다"며 즉각 법정 구속을 시켜야 한다는 요지의 영상을 게시했다.

7월 8일

새벽 3시, 신오사카역 인근 소재의 모텔 직원이 하토야마가 투숙하고 있다며 sns에 방으로 들어가는 하토야마의 사진을 게시했다. # 이를 확인한 일본의 미래당 선거대책위원회는 당직자·당원을 총출동하여 해당 모텔로 집결시켰으며 약 4만 명의 당직자와 당원이 운집했다. 이들은 모텔의 정문과 후문을 완전히 봉쇄한 채 하토야마가 투숙중인 4층으로 올라갔다.

새벽 6시, 일본의 미래당 당직자들은 모텔 직원의 협조로 경찰의 동석 하에 하토야마가 투숙중인 302호의 문을 마스터키로 열었는데, 우연찮게 창가에 서있던 하토야마가 들어오는 경찰과 당직자를 보고선 황급히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모텔에 같이 투숙중이던 아내 하토야마 미유키는 남편이 창문 밖으로 뛰어내린 데 충격을 받아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

하토야마 유키오는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3층의 높이에서 뛰어내렸지만 사쿠라이 마코토의 몸 위로 쓰러지며 큰 충격을 받지 않고 마침 정차한 버스에 탑승해 탈출에 성공한다. #

하토야마의 낙하 충격으로 인해 정신을 잃은 사쿠라이 마코토 일본의 미래당 노인권익위원회 위원은 긴급히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곧 "하토야마(와 지지자)들을 깡그리 죽여 버릴 거야"라며 퇴원했다. 하지만, 채 하루가 지나기 전인 21시 경, 미사카 미코토 의원의 제명을 논의하던 당기위원회 회의실 주변에서 결과를 기다리던 중 갑자기 쓰러졌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사망했다. 사인은 다발성 장기 부전. ##

경찰은 사쿠라이 마코토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하토야마 유키오를 과실치사상죄로 수사하기로 결정했다"하토야마 유키오를 현상수배 한다"고 밝혔다. 현상수배 금액은 14만 4천엔이다. #

국민장 추진과 미사카-국제마피아파의 의원총회 습격

'여성총리만들기범국민본부'(여국본)와 '하토야마유키오장례추진국민투쟁본부'(장투본)에서 하토야마 유키오 공동대표의 국민장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여성총리만들기범국민본부 장례추진본부장 미사카 미코토는 7월 13일에 국민장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으나 하토야마유키오장례추진국민투쟁본부에서 7월 12일 국민장을 주장하며 13일 안을 거부하였다.

타치바나 타카시 하토야마유키오장례추진국민투쟁본부 국민장추진명예위원장은 "7월 13일은 하토야마 유키오의 하토(鳩)의 획수가 13획이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며 "죽을 사(死)의 획이 6획이니 死를 두 번 쓴 획수의 12일에 국민장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

결국 같은 날 18시에 열린 일본의 미래당 의원총회에서 타치바나 타카시 국민장추진명예위원장의 강력한 호소에 따라 공식적으로 12일 참의원·일본의 미래당 합동장을 결의했다.

미사카 미코토와 국제마피아파의 습격현장

일본의 미래당 의원총회의 12일 장례안 의결 소식을 들은 미사카 미코토가 사이타마현을 근거지로 하는 국제마피아파 조직원 백여 명과 함께 의원총회장을 습격해 의원 8명이 중상, 46여 명이 경상을 입었으며 조직원 30여 명, 경찰 8명이 부상을 입었다.#

모리 요시로 책임대표는 미사카 미코토 의원을 당기위원회에 회부하였으며 당기위원회에서는 만장일치로 미사카 미코토 제명안을 통과시켰다.#


타치바나 명예위원장이 올린 "국민장이 통과된 소감" 영상

타치바나 타카시 국민장추진명예위원장은 "무뢰배들에게 부상을 입은 모든 분께 위로의 말을 전한다"며 "반드시 국민장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7월 9일

오전 11시 20분, 하토야마 공동대표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시모노세키의 한 식당에서 "일본의 제국주의가 시작된 시모노세키 조약의 도시 시모노세키입니다. 일본은 동아시아가 입은 피해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오코노미야키 사진을 올렸다.# 이와 같은 하토야마의 도발에 대해 경찰은 "사진의 시간 정보와 위치 정보를 분석해 하토야마의 경로를 특정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오후 3시 56분, 모 시민의 제보로 하토야마가 탑승하고 있는 차량의 번호판이 확인되었다. 해당 차량은 후쿠오카현 유쿠하시시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5시 8분, 경찰은 제보된 차량을 확보하는데 성공했으나 하토야마는 탑승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밝혔다. 곧이어, 5시 20분경에 하토야마의 SNS에 "오이타의 명물이라고 합니다. 도쿄도민 여러분께 선물로 제격이네요."라며 루이사(瑠異沙)를 먹고 있는 셀카를 게시했다.##

오후 9시 경, 하토야마가 현직 중의원 의원인 기라 슈지(오이타 1구·7선) 의원의 사무실을 방문한 것이 언론에 의해 밝혀졌다. 경찰은 해당 사무실을 찾아가 기라 슈지 의원으로부터 하토야마가 경비행기를 이용해 한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할 계획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7월 10일

0시 10분 경, 경찰은 첩보를 통해 하토야마 유키오 공동대표가 미야자키 공항에서 한국행 경비행기를 매수한 것을 확인했다. 이어, 육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의 협조 하에 운전수를 체포, 미야자키 공항을 봉쇄하고 하토야마를 체포하려 했으나 하토야마가 자력으로 경비행기를 몰아 이륙에 성공했다.

긴급 출동한 항공자위대의 전투기가 하토야마가 타고있는 경비행기의 뒤에 붙어 무전과 경고 사격으로 회항시키려 했으나 하토야마는 이를 거부하고 김해공항에 '왜!! 관제사 선생님.. 항로가..어째..되시는지요', '시끄러 무슨 회항이 만세야'라며 지속적으로 한국행을 시도했다. 결국 1시 44분, 항공자위대에서 경고사격과 함께 마지막 경고를 보내 '회항하지 않으면 즉시 격추하겠다'고 하자 자위대의 전투기에 무전으로 '훠훠훠훠훠.. 어쭈~!' 라는 교신을 보내고 낙하산을 이용해 경비행기를 탈출했다.#

해상자위대와 경찰은 하토야마가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쓰시마 인근 해상에서 50시간 20분간 수색했으나 결국 발견에 실패하고 행방불명자로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사망 후

하토야마 유키오 공동대표 과실치사상죄 수사의 주요 참고인인 비서 A씨가 하토야마의 사망 소식을 접하자 경찰에 당인의 위치를 털어놓았다. 당인은 하토야마와 비서가 시모노세키에서 향후 거취를 논의하던 중 하토야마 본인은 경비행기를 통해 한국으로 피신, 비서는 비서의 친척이 살고있는 시모노세키의 자택에 당인을 숨겨놓기로 한 것이었다.##

경찰은 비서의 제보에 따라 시모노세키의 자택을 수색, 신문지에 감싸져있는 채로 수도계량기에 들어가있는 당인을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일본의 미래당의 요구에 따라 당인은 일본의 미래당에 반환되었다.#

고이케 유리코 공인

일본의 미래당 당인이 반환된 7월 12일, 모리 요시로 책임대표는 도쿄도지사 공인을 위한 대표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고이케 유리코 공인안을 확정지었다. 이 소식을 접한 반 고이케 의원과 당원들이 회의실로 모여들었고, 대표들은 18시간 동안 지하 1층의 소회의실에서 감금되었다.#

소회의실 내부에서는 계속 경찰에 신고를 시도하였으나 통신장비의 고장으로 인해 지하에 전파가 통하지 않아 신고에 번번히 실패했다. 이어, 무라야마 도미이치 공동대표가 감금에 불안증세를 호소하며 졸도하자 호소카와 모리히로 공동대표가 회의실 밖의 반 고이케 당원들에게 전 당원 투표로 도쿄도지사 후보를 다시 선출하겠다며 밖으로 내보내달라고 호소하기에 이른다. 간절한 호소에 설득된 당원들이 대표진을 풀어줬으며 무라야마 공동대표는 인근 병원으로 호송되었다.#

하지만, 모리 요시로 책임대표는 호소카와 공동대표의 발언이 "합의가 없었다"며 고이케 유리코 단수공천을 확정지었다.# 분노한 당원들이 당사로 집결해 모리 요시로 책임대표를 죽이려 들었지만 시큐리티 폴리스의 경호를 받아 모리 책임대표에게 접근하는데 실패했다.#

결국 선거관리위원회에 하토야마 공인 철회서와 고이케 유리코 공인안을 제출했고, 이에 반발한 정치인들이 무더기로 독자 출마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독자 출마자 목록

지지 계파 이름 약력 비고
NHK당계 다치바나 다카시 NHK당 대표 2024. 1. 6. 출마 선언
2024. 5. 3. 출마 포기[3]
2024. 6. 11. 재출마 선언[4]
하토야마 그룹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모임
[5]
하토야마 유키오 제93대 내각총리대신
제2·7대 민주당 대표
2024. 0. 0. 출마 선언
토키와다이카이[6] 미사카 미코토 개신당 초대 대표대행 2024. 0. 0. 출마 선언
2024. 0. 0. 제명
사쿠라이 그룹
소류 내각을 허용하지 않는 의원 모임
사쿠라이 마코토 일본제일당 당수
재특회 회장
2024. 0. 0. 출마 선언
2024. 0. 0. 사망[7]
레이와 신센구미
사회민주주의 포럼
야마모토 타로 레이와 신센구미 대표 2024. 0. 0. 출마 선언
나라의 모습 연구회
새로운 정책연구회[8]
생추어리
직간회
소승회
간 나오토 제94대 내각총리대신
제13대 재무대신
제80대 후생대신
제1·3·8대 민주당 대표
2024. 0. 0. 출마 선언
신정권연구회
료운카이
화제회
와타나베 슈 국민민주당 부대표
입헌민주당 간사장 대행
2024. 0. 0. 출마 선언
자유민주당 출신 일부
일본유신회 출신 일부
구로이와 유지 제17-19대 가나가와현지사 2024. 0. 0. 출마 선언
지공회
헤이세이 연구회
舊 수월회
고노 다로 제145·146대 외무대신
제20대 방위대신
제4대 디지털대신
2024. 0. 0. 출마 선언
2024. 0. 0. 사퇴[9]
중원선에서의 대거 낙선으로 파벌과 그룹의 구분이 사실상 없어졌다.

정부 여당(개신당) 측

레이와 정책연구회호리코시 지로 출마 요구

레이와 정책연구회니시키기 치사토 회장 명의로 "호리코시 지로 의원이 이번 도쿄도지사 선거의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나가야 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후 니시키기파는 오사카도청 광장에서 천막을 치고 회원총회를 실시하였고 사토 일레이나 오사카도지사가 참석한 상태로 개회되었다. 사토 일레이나도지사는 "호리코시 지로 선대위원장이 결단을 내리면 우리 레이와연구회는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을 돕겠다."라고 밝혔다.#

이후 니시키기 회장을 포함한 몇몇 간부들의 모두발언이 있고난 뒤 회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호리코시 지로 도쿄도지사 후보 추천안"이 채택되었다. 추천안이 채택된 직후 사토지사는 "이번 도쿄도지사 선거는 좌우 이념을 초월하여 모두 을 위해 힘써야 한다"라고 입장을 표명하고 이 추천안은 통과 직후 치사토 법무대신이 직접 비행기를 탑승하여 도쿄에 위치한 개신당 중앙당사에 제출하였으며 이후 사본은 등기우편을 통해 열풍회 회장실로 전달되었다.#

유메노 샐리사토 일레이나 간첩행위 발언

레이와 정책연구회에서 보낸 호리코시 지로 도쿄도지사 후보 추천안 등기우편이 열풍회 건물로 들어오자 회의중이던 유메노 샐리 특명대신이 우편을 집배원에게서 빼앗아 찢어버리고 "사토 일레이나가 간첩 행위를 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어, 열풍회 건물 인근에서 생중계중인 기자들을 모아 "대표 출마 무산시키고 말이야. 못하게 했잖아, 혁신을! 이제는 정말 개신의 존립에 근본적으로 도움 안 되는 사람들은 육모방망이를 들고 뒤통수를 뽀개버려야 돼요. 동지라는 것에서 이제 적으로 간주해서 무참하게 응징해야 된다고!" 라고 말했다.#

또한 테츠완 아톰 열풍회 상임고문 역시 이에 맞장구 치며 "우리는 사토 지사가 최초의 오사카도지사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달게 최선을 다했고, 또한 도와줬습니다. 허나 그들은 이것을 잘못되게 해석하여 이를 우리 회파 회장이신 지로 회장에게 풀려하고 있습니다. 겨우 그러한것으로 이런 유치한일을 벌리는것은 그들의 진정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합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레이와 정책연구회의 반발

레이와 정책연구회는 샐리 특명대신의 발언이 보도된 직후 니시키기 치사토 법무대신을 필두로한 레이와 정책연구회 지도부가 즉각 열풍회를 항의 방문을 하였으나 열풍회가 문을 열어주지 않아 진입에 실패하였다. 이에 크게 분노한 레이와 정책연구회 몇몇 회원이 근처에 있던 야구방망이(!)를 가지고 창문과 문을 부술려고 시도하였으나 모두 실패하고 철수하게 된다.##

다음날, 레이와 정책연구회 소속 대신들이 각의에 불참하고 열풍회 사무실 앞에서 샐리의 사과를 요구하는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니시키기 법무대신은 "사토회장은 누구보다 의 존립을 위해 노력하였고, 당을 위해 직접 오사카도지사에 출마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사토 회장이 간첩이라면 당신들은 뭡니까?" 라고 발언하였다. 이후 사토 지사가 농성장에 방문하여 천막을 치고 긴급 간부회의를 실시하였다. 간부회의에서 '호리코시 지로 도쿄도지사 후보 추천안'을 다시 한번 의결하였다.#

호리코시 지로 단수공천

6월 14일, 사토 일레이나 지사는 다시 의결된 '호리코시 지로 도쿄도지사 후보 추천안'을 들고 총리관저를 방문했다. 이어, 소류 총리에게 직접 지로 후보 추천안을 주며 약 30분동안 지로가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소류 총리는 사토 지사에게 "지사님의 의견을 잘 들었다"며 "중요한 자리니만큼 신중히 결정하겠다"는 답을 했다고 알려졌다. 이 소식을 들은 사토 지사의 지지자들이 "소류의 대답은 사실상의 거부다"라며 "날마다 지로 책상 밑으로 들어가는 소류 총리는 퇴진하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총리관저 앞으로 몰려와 일대의 교통 혼선을 빚었다.#

다음날에는 지로의 출마를 요구하는 우파 개신당원들과 지로의 출마를 반대하는 좌파 개신당원들이 개신당사 앞에서 충돌했다. 사토 지사의 지지자 모임인 '자이니치네 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우파의 집회에서는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안 대주면 지로는 쌓여서 어떡하나" , "좋아 빠르게 싸"라는 구호를 연신 외쳤고, 이에 맞서 지로 선대위원장의 지지자 모임인 '새로운 보건복지 갤러리'(약칭 새보갤)을 중심으로 하는 좌파의 집회에서는 "칼로 니 친정엄마, 씹구멍 찢어서 좆탱이에" , "그럼 바지를 한 번 더 내릴까요?"등의 구호를 외치며 맞불 집회를 놓았다.#

도쿄도지사 선거를 놓고 좌우의 분열이 심화되자 당내에서는 "당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지로 선대위원장이 용단을 내려야 한다"라는 지로 용단론과 "사토 지사가 문제를 촉발시켰으니 사토 지사가 출마해야 한다"는 사토 재출마론이 맞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토 재출마론의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고, 정치적 이익이 없는 것이 자명했기에 사토 재출마론은 열기가 식어갔으며, 보수 파벌을 중심으로 지로 출마 요구가 거세지자 결국 소류 총리와 스즈미야 부총리가 지로 선대위원장에게 출마를 권고하기에 이른다.#

6월 28일, 호리코시 지로 선거대책위원장은 "제 거취를 놓고 일어난 당의 혼란을 수습하는 것이 제게 맡겨진 사명"이라며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쿄도지사 후보 출마를 선언했다. 바로 다음날인 29일에는 기다렸다는 듯 '도쿄도지사선거 호리코시 지로 단수공천안'이 의원총회에서 의결되고 소류 총리가 이를 받아들이며 지로 단수공천을 확정짓게 된다.#

기타 원외 정당

반NHK신당

5월 1일타치바나 타카시는 이미 일본의 미래당이라는 신당으로 합당하면서 도지사의 야욕을 접었다고 밝혔지만, 재출마할 것으로 유력한 고이케의 친NHK 행보를 저지하겠다는 명목으로 6월 11일에 다시 출마를 선언하며 신당을 창당했다.

6월 11일에 '고이케와 NHK로부터 도민을 지키는당'으로 창당했으나 이틀 뒤인 6월 13일에 반NHK신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당 조직은 NHK당 시절과 다를 바 없다. 바뀐것은 일본의 미래당과 호리에몽 신당의 일부 인원을 추가한 정도.

6월 21일, 타치바나가 호리코시 지로가 NHK 소속의 아나운서와 불륜, 노상, 카섹스를 했다고 주장하며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같은 이름의 후보를 출마시키겠다고 밝혔다. #

6월 25일, 도쿄역사에서 노숙중인 67세의 호리코시 지로를 자당 후보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호리코시 지로는 NHK 회장이 출근하는 틈을 타 자신이 쓰던 틀니를 회장의 뒤통수에 찍어 중상을 입힌 혐의로 징역 6월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6월 26일, 지난 도쿄도의회 의원 선거에서 호리에몽 신당 소속으로 출마한 신도 가나를 도지사 후보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공명에어모토


공명히사모토의 선거 광고

니코동 등에서 '에어모토씨'라는 매드 무비의 소재로 인기를 끌던 히사모토 마사미2023년, 자민당 유세차량에 교통사고를 당해 뇌 손상으로 인한 정신착란을 겪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고 이후에 히사모토는 자민당 고위층이 교통사고를 사주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민당에 엄청난 적개심과 동시에창가학회와 공명당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2024년에 공명당과 자민당이 합당한다는 소식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공명당과 같은 이름의 신당을 창당했다.

이 소식을 접한 니코동 회원들이 집단으로 히사모토의 공명당에 입당. 당을 장악해 히사모토가 자는 동안 히사모토의 자택 앞에 5만 명의 당원이 군집해 당대회를 열어 당명을 날치기로 공명에어모토로 변경시켰다.

이후, 히사모토 마사미를 설득해 6월 30일에 도쿄도지사 선거에 후보자로 등록시켰다.

후보

여론조사

출구조사

결과

도쿄도지사
도쿄도 일원
후보 득표수 비고
정당 득표율 당락
호리코시 지로[44세] 5,236,082.140[안분표] 1위
[12] 65.03% 당선
고이케 유리코 1,124,049 2위
13.96% 낙선
간 나오토 511,297 3위
무소속[13] 6.35% 낙선
야마모토 다로 334,155 4위
무소속[14] 4.15% 낙선
하토야마 유키오 186,805 5위
무소속[15] 2.32% 낙선
미사카 미코토 131,246 6위
무소속[16] 1.63% 낙선
와타나베 슈 81,324 7위
무소속[17] 1.01% 낙선
반NHK신당 다치바나 다카시 73,833.944[안분표] 8위
반NHK신당[19] 0.92% 낙선
공명에어모토 히사모토 마사미 71,662 9위
공명에어모토 0.89% 낙선
오노 다이스케 70,052 10위
무소속[20] 0.87% 낙선
일본국민당 스즈키 노부유키 49,117 11위
일본국민당[21] 0.61% 낙선
반NHK신당 호리코시 지로(堀越 二郎)[67세] 46,188.496[안분표] 12위
반NHK신당 0.57% 낙선
행복실현당 나나미 히로코(七海 ひろこ) 30,597 13위
행복실현당 0.38% 낙선
구로이와 유지 28,182 14위
무소속[24] 0.35% 낙선
노노무라 류타로(野々村 竜太郎) 19,325 15위
무소속 0.24% 낙선
반NHK신당 신도 가나(新藤 加菜) 15,902.978[안분표] 16위
반NHK신당 0.20% 낙선
트랜스휴머니즘당 고토 테루키(後藤 輝樹) 14,493 17위
트랜스휴머니즘당 0.18% 낙선
고미야마 히로시(込山 洋) 12,078 18위
무소속[26] 0.15% 낙선
도민재건회 다노우에 이쿠코(田之上 郁子) 6,442 19위
도민재건회 0.08% 낙선
이시이 히토시(石井 均) 4,026 20위
무소속 0.05% 낙선
하마모리 카오리(浜森 香織) 3,221 21위
무소속 0.04% 낙선
무라모토 토라츠구(村元 寅次) 2,416 22위
무소속 0.03% 낙선
우시오 가즈에(牛尾 和恵) 1,610 23위
무소속 0.02% 낙선
유권자 수 11,375,296 투표율
72.17%
투표 수 8,209,551
무효표 수 157,623

반응

  1. 이번 선거 캠페인의 모델은 배우 기노시타 에이센이다.
  2. 총리(そうり)가 아니라 소류(そうりゅう)라는 설 있음
  3. 신당 건설을 위해 후보 등록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4. 친NHK적인 고이케의 재선을 막겠다며 다시 출마 의사를 밝혔다.
  5. 친하토야마 세력이 결집해 만든 파벌...이라지만 사실상 무파벌로 간주된다.
  6. 미사카 미코토를 따라 개신당에서 탈당한 의원이 구성한 회파. 사실상 무파벌로 간주된다.
  7. 하토야마 유키오 추격 중 사망
  8. 오자와 그룹
  9. 고이케 유리코로 단일화
  10. 선거일 기준
  11. 안분표
  12. 일부 추천
  13. 추천
  14. 일부 추천
  15. 일부 추천
  16. , 일부 추천
  17. 일부 추천
  18. 안분표
  19. 일부 추천
  20. 일부 추천
  21. , 틀:일본제일당 일부 추천
  22. 선거일 기준
  23. 안분표
  24. 일부 추천
  25. 안분표
  26. 스마일당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