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국공내전 (6월의 겨울)

본 세계관은 특정 단체 및 국가에 대한 감정 없이 작성되었음을 알립니다.

4차 국공내전
第四次国共内战/第三次北伐
Fourth Chinese Civil War
날짜 2048년 4월 25일~2050년 9월 11일
장소 중국 전역
원인 국민당의 3차 북벌을 통한 중국 통일 시도
결과 국민당의 3차 북벌 중지
강소 명 정부 붕괴
영향 한국의 중국 침공
3차 국공합작 타결
교전국
중화민국
인민해방군 제80 집단군
중화인민공화국
강소 명 정부
병력
중화민국 국군 175만명
인민해방군 제80 집단군 32만명
인민해방군 161만명
명군 11만명
피해규모
중화민국 국군
38만 2789명 전사
62만 5488명 부상
인민해방군 제80 집단군
8만 1885명 전사
13만 6888명 부상
인민해방군
42만 2765명 전사
81만 4532명 부상
명군
2만 1197명 전사
4만 5476명 부상
지휘관
장완안
리즈천
시진핑
량젠화
주위충


개요

4차 국공내전은 2048년 4월부터 2050년 9월까지 중국 대륙의 패권을 두고 공산당과 국민당이 벌인 내전이다.

3차 국공내전이 국민당의 부분적인 승리로 종결되면서 국민당은 완수하지 못한 국민혁명의 끝을 보고자 했고, 이에따라 베이징의 중국 공산당 정부를 향해 3차 북벌을 시작하며 선제 공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전쟁은 초기의 승리에도 불구 국민당의 고전과 양측 군대 내부의 군벌로 인한 내부분열, 그리고 한국의 본격적인 중국 침공을 시작으로 국공간 합작의 필요성이 다시 한번 대두되며 결판을 짓지 못하고 종결됐다.

배경

3차 국공내전과 군벌 시대의 도래

국민당의 북벌 준비

산둥 그레이트 게임

전개

정전 협정의 파기와 국민당의 북벌 재개

강소 명 정부의 붕괴

산둥이 국민당의 편에 서다

8.11 사건

베이징, 10km 앞

전선의 고착화

한국의 만주 진공

정전 협정의 체결

중단된 북벌과 그 이후

3차 국공합작의 시작

뒷방 시황제

매체

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