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의 조선 배너}} {{제주 관련 문서 (당신들의 조선)}} {| class="wikitable" style="float:right; border: 2px solid #ddd; max-width: 450px; width: 100%; margin-left:auto; margin-right:auto; text-align: center" |- ! style="background: #000; color: #ddd" | {{large|국부천제}}<br>國府遷濟 <nowiki>|</nowiki> Retreat of the Republic of Korea to Jeju |- | <div style="margin: -4.5px -9.0px">[[파일:국부천제.png|450px]]</div> |- | style="background: #f5f5f5; color: #000" | 부산, 군수품을 운반하는 국군의 모습 |- |} {{목차}} {{-}} == 개요 == {{인용문1|배는 6시 15분에 도착했다. 차가운 나무판자 위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군중들은 배가 선착장에 닿는 것을 보자마자 이성을 잃은 듯 "와~" 하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 나갔다. 선착장 위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공포가 발사되고 호각이 울리고 줄이 쳐졌다. 하지만 그 속에 아이를 잃어버린 어머니, 쌀자루를 떨어뜨린 남편, 옷보퉁이가 바뀐 딸아이들의 울음소리로 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서로 부르고, 찾고, 꾸짖는 소리로 부두가 떠내려 가려는 듯했다. 그들은 모두 이 배를 타지 못하면 '''그대로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에 부딪치는 하얀 물보라가 까맣게 변했다.|[[김동리]], 「부산항」 中}} [[6.25 전쟁 (당신들의 조선)|6.25 전쟁]]에서 패한 [[제주 (당신들의 조선)|대한민국]] 정부가 피난민 수십 만 명을 이끌고 [[1950년]] [[8월 26일]]부터 약 2주간 [[제주도 (당신들의 조선)|제주도]]의 북제주군<ref>現 [[제주시 (당신들의 조선)|제주시]].</ref>로 수도를 옮긴 사건. 2주의 시간 동안 약 50만명의 부산 시민과 피난민들이 제주도로 내려왔으며, 건물 한 채라도 [[조선 (당신들의 조선)|북괴]]의 손아귀에 들어가선 안된다는 취지 하에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시 (당신들의 조선)|부산]]의 관공서, 창고, 민가까지 모조리 불태운, '''단군 이래 최대 천도'''라고 불릴 정도의 대규모 수도 이전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은 완전히 상실되었으며, 국부천제 이후 대한민국을 시작으로 [[도미노 이론|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는 것 마냥]] 대만,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이 차례대로 공산화되기 시작했다. == 배경 == {{youtube|DggOaoM8no4}} [[1950년]] [[8월 12일]], 마산 전투에서의 패배를 시작으로 다부동 전투와 같은 큼지막한 전투에서 한국군과 미군이 대대적으로 패하자 대한민국의 유일한 생명줄이었던 [[낙동강 전선]]은 '''결국 돌파당하게 되었다.''' 최전선에 위치해 있던 달성을 시작으로 [[대구시 (당신들의 조선)|대구]], 함안, 군위, 영천이 [[조선인민군 (당신들의 조선)|인민군]]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통영, 포항, 마산도 인민군에게 점령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임시 수도인 [[부산시 (당신들의 조선)|부산시]] 마저 점령당하게 생긴 [[이승만|이승만 정부]]. 그러나 [[월튼 워커]] 미8군사령관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만들어 둔 계획이 존재했으니, 그 계획이 바로 '''신한국 계획'''(New Korea Plan)이다. 신한국 계획의 골자는''' '대한민국 정부를 [[제주도 (당신들의 조선)|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 이 계획을 들은 이승만은 권총까지 꺼내들며 불같이 화를 내었으나 [[9월 8일]], 인민군이 경주 시가지까지 진입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승만은 결국 신한국 계획을 진지하게 미군과 논의하게 된다. 여러 지역이 정부 이전 후보지로 거론되었으나 최종 후보지는 [[소한민국|서사모아 제도]], [[제주도 (당신들의 조선)|제주도]], [[일본 (동음이의)|일본]]의 [[야마구치 현]]과, [[류큐 열도]], [[대만 (동음이의)|대만]] 총 5곳이 선정되었다. 그러나 서사모아 제도는 [[한반도]]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는 이유<ref>직선거리로만 무려 '''9,173.70km'''.</ref>로 최종 후보지에서 제외되었으며 야마구치 현은 일본 내에서의 반한감정으로 인해 극우 테러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제외, 대만은 결국 [[중국 (동음이의)|중국]]에게 점령당하게 되어서 제외, 최종적으로 제주도와 류큐 열도 두 개의 후보지가 남게 되었으나 논의 도중 영산 일대가 점령했다는 소식이 들려와 한시가 급한 상황이 되어버렸기에 결국 부산과 거리가 더 가까운 제주가 최종 후보지로 결정되었다. == 과정 == [[파일:국부천제2.png|300px|썸네일|오른쪽]] 이승만 정부는 당시 부산항에 정착 중이었던 '''메러디스 빅토리호'''(SS Meredith Victory)와 같은 수 척의 수송선과 나룻배 수십 척을 동원해 최대한의 많은 시민들을 제주도로 이송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부산에 있던 수 백만의 민간인을 전부 제주도로 이송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결국 민간인 10만여명만을 선발해 북제주군으로 차차 이송시켰다. 그리고 8월 15일 광복절, 첫 번째 수송선인 '''버지니아 빅토리호'''(SS Virginia Victory)를 시작으로 총 12척의 수송선과 나룻배 50여척을 이끌고 차근차근, 약 일주일 간 부산항, 포항항, 마산항에서 출발, 제주항으로 도착했다. == 결과 == 국부천제 이후 대한민국은 2,000만 국민의 국가에서 순식간에 65만 남짓하는 인구<ref>이마저도 부산에서 온 피난민들까지 포함한 숫자이다.</ref>를 가진 조그마한 약소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로써 6.25 전쟁은 사실상 [[김일성 (당신들의 조선)|김일성]]과 [[조선 (당신들의 조선)|조선]]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 영향 == == 대중매체 == * 소설가 [[김동리]]의 소설, [[부산항]]이 국부천제 당시 부산항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 == 기타 == == 관련 문서 == ---- {{각주}} [[분류:당신들의 조선]]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 (원본 보기) 틀:Color (원본 보기) 틀:Large (원본 보기) 틀:Resize (원본 보기) 틀:Youtube (원본 보기) 틀:각주 (원본 보기) 틀:각주 (당신들의 조선) (원본 보기) 틀:글씨 색 (원본 보기) 틀:글씨 크기 (원본 보기) 틀:당신들의 조선 (원본 보기) 틀:디데이 (원본 보기) 틀:목차 (원본 보기) 틀:인용문 (원본 보기) 틀:제주 관련 문서 (당신들의 조선) (원본 보기) 틀:테두리 (원본 보기) 국부천제 (당신들의 조선)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