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 세계 이론: 라이프니츠와 비트겐슈타인
대륙 이성주의 철학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와 20세기 분석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철학을 강화하기 위해 가능세계(Possible world) 개념을 도입한다.
라이프니츠에게 가능세계는 가능했던 모든 세계를 의미한다. 라이프니츠의 철학에서 핵심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가 그러한 가능했던 모든 세계 중에 가장 최선인 세계였다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세계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단위를 단자(Monade; 모나드)로 놓고, 그러한 무수하게 많은 단자들이 특정한 방식을 배열되어 우리의 세계를 구성한다고 본다. 이때 각 단자들은 어떠한 상호관계도 없으며, 오로지 전적인 선성을 지닌 신에 의해 특정한 방식으로 질서지어져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자가 특정하게 배열된 것은 신의 자유의지에 따른 충족이유이며, 그러한 단자가 가장 최선으로 배열된 것이 우리의 세계이다. 반면 단자가 최선으로, 혹은 효율적으로 배열되지 못한 가능세계도 존재했는데, 이것은 모두 가능한 조합이다. 그러나 신은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가능한 최대로 모순이 없는 세계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라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의 세계는 다른 가능세계의 가능성을 이기고 채택된 바로 그 세계라는 함의를 갖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라이프니츠를 계승했지만 형이상학적인 측면은 배제하고자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라이프니츠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상호 연관이 없는 파편적이고 원자적인 사실(Fact)의 총체로 본다. 사실은 사태가 실현되면 성립하며, 사태는 또 다시 맥락에 따라 배열된 이름의 체계, 즉 명제로 구성된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서 이름은 대상에 대응하며, 그것은 실제 사물을 의미한다. 그러나 세계는 사물이 아닌 사실에 의해 구성되어있다. 대상이 결합하여 사태를 이루고, 그 사태의 가능성에 따라 사실이 성립된다면 그 사실의 무한한 합의 체계가 곧 세계라는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대상은 모두 논리적인 형식을 그림처럼 공유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있어 그림 그리기의 형식은 그림을 그리는 특정한 형식이 있고, 그것을 벗어나는 그림은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떠한 그림을 그리든 상관이 없지만 그 그림은 그림이라는 하나의 틀 안에서 의미를 가진다. 마찬가지로 비트겐슈타인에게 어떠한 사태는 오로지 논리적인 형식 내에서만 의미를 가지며, 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은 실제로도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에게 내 언어[논리]의 한계가 내 세계[실재]의 한계라고 말해지며, 실재는 논리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러한 논리는 동어반복적이며, 어떠한 것이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줄 뿐이지 가능한 틀 내에서는 무엇이 실제로 일어날지에 대해 논리가 전혀 말해줄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에게 논리는 어떤 형이상학적, 윤리적, 미학적, 종교적 가치도 말하지 않는 공허한 동어반복의 원리이다. 즉, 그것은 내용이 없는 형식에 불과하며, 내용은 철학이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가능세계라는 것은 이때 어떠한 내용이든 발생할 수 있는 논리 형식의 틀을 가리킨다. 우리의 세계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은 가능세계에 속하며, 어떠한 사태는 가능하다면 그것은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예컨대 인간이라는 보편적 존재가 실존하는 한에서 2차 대전은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것은 인간이 갑자기 돌이 되는 등 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과는 별개 범주이다. 따라서 비트겐슈타인의 가능세계 이론은 곧 논리학이 무내용적인 틀로, 어떠한 내용이든 발생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그 속에서 발생 불가한 것은 실제로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있어 어떤 것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것의 성립 여부는 철학이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역사, 미학, 윤리학 등이 해명해야할 것이며,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이를 경험과학으로 환원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콰인-뒤엠 명제와 콰인의 종합-분석 이분법 해체 이후 논리실증주의의 이러한 논의는 힘을 잃었으며, 마찬가지로 후기 비트겐슈타인도 전기 비트겐슈타인과 상당히 다른 논리를 보여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