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한나라닷컴}} {| class="wikitable" style="font-size: 10pt; border: 2px solid #000; width: 100%; text-align: center" ! style="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383b40 20%, #000); color: #fff" | 박완서 관련 틀 |- | colspan="1" | <div class="mw-customtoggle-6798580" style="margin-left:auto; margin-right:auto; padding:6px -1px 11px; padding-left:3px; width:100%; text-align:center; background-color: transparent; color:#000000;"><div style="margin: -3px 0px">'''[ 펼치기 · 접기 ]'''</div></div> <div class="mw-collapsible mw-collapsed" id="mw-customcollapsible-6798580" style="background:none; border: 1px solid transparent;width:100%; text-align:center;"> <div class="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 style="background:none; margin: 0px -15px 0px; border: 1px solid transparent;text-align:center; "> {| style="font-size:10pt; margin-left:-2px; margin-right:-15px;margin-bottom:-12px;width: calc(100% + 5px);text-align:center;margin-top:-2px " |- | {{동아일보 선정 지난 1천년간 대한제국 최고의 문인 (한나라)}} ---- {{이달의 문화인물 (한나라)}} ---- {| class="wikitable" style="font-size: 10pt; border: 2px solid #980000; width: 100%; text-align: center" |- ! colspan="2" style="background: #980000; color: #EDE4D3" | [[문화훈장 (한나라)|{{large|{{color|#EDE4D3|대한제국 문화훈장 수훈자}}}}]] |- | colspan="2" | [[파일:문화금관.jpg|200px]] |- ! style="width: 30%; background: #980000; color: #EDE4D3" | 연도 ! style="background: #EDE4D3; color: #980000" | 2011년 |- ! style="background: #980000; color: #EDE4D3" | 이름 ! style="background: #EDE4D3; color: #980000" | 박완서 |- ! style="background: #980000; color: #EDE4D3" | 분야 ! style="background: #EDE4D3; color: #980000" | 문학인 |- ! colspan="2" style="background: #980000; color: #EDE4D3" | 금관문화훈장(1등급) |- |} |- |} |} ---- {| class="wikitable" style="max-width: 420px; width: 100%; float: right; border: 2px solid #000; text-align: left; font-size: 10pt" |- ! colspan="2" style="background: #000; color: #fff" | {{large|박완서}}<br>朴婉緖 |- | colspan="2" | <div style="margin: -4.5px -9.0px">[[파일:벅완서 (한나라).jpg|420px]]</div> |- ! rowspan="2" style="width: 100px; background: #000; color: #fff" | 출생 | [[1931년]] [[9월 15일]] |- | [[경기도 (한나라)|경기도]] [[개풍군 (한나라)|개풍군]] 청교면 묵송리<br>(現 [[경기도 (한나라)|경기도]] [[개성시 (한나라)|개성시]] 개풍군) |- ! rowspan="2" style="background: #000; color: #fff" | 사망 | [[2011년]] [[1월 22일]] (향년 79세) |- | [[경기도 (한나라)|경기도]] [[구리시 (한나라)|구리시]] |- ! style="background: #000; color: #fff" | 직업 | [[소설가]], 가정 주부 |- ! style="background: #000; color: #fff" | 주요 수훈 | [[문화훈장(대한제국) (한나라)|금관문화훈장]] <sup>(2011년 추서)</sup> |- | colspan="2" | <div class="mw-customtoggle-54618356" style="text-align: center; color: #000; font-size: 10.5pt"><div style="margin: -2px">'''[ 펼치기 · 접기 ]'''</div></div> <div class="mw-collapsible mw-collapsed" id="mw-customcollapsible-54618356" style="border: 1px solid transparent"> <div class="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 style="margin: 0px -15px 0px; background: none; border: 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 left"> {| style="margin-left: -2px; margin-right: -15px; margin-bottom: -13px; width: calc(100% + 5px); font-size: 10pt; text-align: left" |- ! style="width: 100px; background: #000; color: #fff" | 학력 | [[경성매동공립국민학교]] <small>(졸업)</small><br>[[숙명여자중학교]] <small>(졸업)</small><br>[[아오야마가쿠인대학]] 전문부 <small>(영어사범과 / 졸업)</small><br>[[한성대학교 (한나라)|국립한성대학교]] <small>(국어국문학 / 명예학∙박사)</small> |- ! style="background: #000; color: #fff" | 활동 기간 | [[1970년|1930년 –]] [[2011년]] |- ! style="background: #000; color: #fff" | 배우자 | 호영진 |- ! style="background: #000; color: #fff" | 장르 | [[소설]], [[산문]], [[페미니즘 문학]] |- ! style="background: #000; color: #fff" | 데뷔작 | 소설 『나목』 <small>(1970)</small> |- |}</div></div> |} {{목차}} == 개요 == {{인용문|이렇게 해서 나의 고가는 완전히 해체되어 몇 푼의 돈으로 바뀌었나 보다. 아버지와 오빠들이 그렇게도 사랑하던 집, 어머니가 임종의 날까지 그렇게도 집착하던 고가. 그것을 그들이, 생면부지의 낯선 사나이가 산산이 해체해 놓고 만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고가의 해체는 행랑채에 구멍이 뚫린 날부터 이미 비롯된 것이었고 한번 시작된 해체는 누구에 의해서고 끝막음을 보아야 할 것 아닌가. 다시는, 다시는 아침 햇살 속에 기왓골에 서리를 이고 서 있는 숙연한 고가를 볼 수 없다니.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의 육신이 해체되는 듯한 아픔을 의연히 견디었다. 실상 나는 고가의 해체에 곁들여 나 자신의 해체를 시도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남편이 쓸모없이 불편한 고가를 해체시켜 우리의 새 생활을 담을 새 집을 설계하듯이, 나는 아직도 그의 아내로서 편치 못한 나를 해체시켜, 그의 아내로서 편한 나로 뜯어 맞추고 싶었다.|『나목』 中}} [[대한제국 (한나라)|대한제국]]의 소설가. '''대한제국 페미니즘 문학의 효시'''로 평가받으며, 대한제국 문단계의 추세를 고려하였을 때 그의 영향력은 2010년대를 넘어 2020년대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f>1990년대 이후 공지영과 신경숙, 공선옥, 은희경 등이 주도한 페미니즘 문학의 열풍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지만, 전반적인 산문, 수필, 소설 분야에서도 박완서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어렵다.</ref>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을 유려한 문장을 통해 풀어 써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소시민으로서 겪을 수 있는 사소하고도 깊은 감정들을 극대화한 소설들로 유명하다. ---- [[분류:한나라 유니버스/문학]]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2 (원본 보기) 틀:Color (원본 보기) 틀:Large (원본 보기) 틀:Resize (원본 보기) 틀:Small (원본 보기) 틀:글씨 색 (원본 보기) 틀:동아일보 선정 지난 1천년간 대한제국 최고의 문인 (한나라) (원본 보기) 틀:목차 (원본 보기) 틀:이달의 문화인물 (한나라) (원본 보기) 틀:인용문 (원본 보기) 틀:좌측 광고 (한나라) (원본 보기) 틀:한나라닷컴 (원본 보기) 박완서 (한나라)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