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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들어 서양에서 과학기술이 들어오면서 교통과 통신이 발달했고, 정치체제 또한 근대적인 재상제도를 구축했다. 과거에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지만, 변화된 사회에서는 근대서원제도를 통해 서원의 전면적인 통제와 조직화가 가능했다. [[국가성리학 (1925)|국가성리학]]을 가능케 하는 한 가지 제도적 기반이기도 했다. 패전 이후 1946년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근대서원제도를 폐지하였지만, 격이 높았던 서원은 여전히 대우받는다. 과거에 격을 받았던 서원는 관련 자료에서 '옛 서원격(舊書院格) 〇〇書院'라고 알려주는데, 바로 근대서원제도에서 받았던 등급을 말한다. 홍살문 앞 표석에 옛 서원격을 새긴 곳도 많다. 비록 제도가 폐지되긴 했어도 과거에 높은 격을 받았던 서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중요하게 대접받는다. | 19세기에 들어 서양에서 과학기술이 들어오면서 교통과 통신이 발달했고, 정치체제 또한 근대적인 재상제도를 구축했다. 과거에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지만, 변화된 사회에서는 근대서원제도를 통해 서원의 전면적인 통제와 조직화가 가능했다. [[국가성리학 (1925)|국가성리학]]을 가능케 하는 한 가지 제도적 기반이기도 했다. 패전 이후 1946년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근대서원제도를 폐지하였지만, 격이 높았던 서원은 여전히 대우받는다. 과거에 격을 받았던 서원는 관련 자료에서 '옛 서원격(舊書院格) 〇〇書院'라고 알려주는데, 바로 근대서원제도에서 받았던 등급을 말한다. 홍살문 앞 표석에 옛 서원격을 새긴 곳도 많다. 비록 제도가 폐지되긴 했어도 과거에 높은 격을 받았던 서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중요하게 대접받는다. | ||
이러한 서원격 매김은 | 이러한 서원격 매김은 한국 정부(또는 황실)의 입장에서 했기 때문에, 높은 서원격을 받은 시설이라고 반드시 격에 비례해서 한국 민중에게도 인기 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랜 세월 대대로 굉장히 인기 있는 서원인데도 인기에 비하면 서원격이 낮은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정부 또한 약간은 민중의 인기를 고려했고, 민중 또한 정부가 높은 서원격을 내린 서원이라고 하면 좀 더 각별하게 여긴 것 같다. | ||
아무 격도 받지 못한 작은 서원를 무격서원(無格書院)라 했는데, | 아무 격도 받지 못한 작은 서원를 무격서원(無格書院)라 했는데, 한국 전체에 있는 서원들 중 절반 이상이 무격서원였다. 무격서원이 새로이 격을 받거나, 또는 이미 격을 받은 서원이 또다시 다른 격을 받는 것을 열격(列格)이라고 하였다. | ||
=== 종묘(宗廟) === | === 종묘(宗廟) === | ||
근대서원제도에서 종묘는 | 근대서원제도에서 종묘는 한국과 조선의 선왕, 즉 유교에서 중시하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서 인을 널리 행한 인물인 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가장 존엄한 곳이라 하여 아예 서원격을 매기지 않았다. 사람들이 종묘에 서원격을 매긴다 어쩐다 하는 행동 자체를 불경하게 여겼으므로, 종묘는 '등급 외의 등급'이라고 할 수 있겠다. | ||
=== 관국례원(官國禮院) === | === 관국례원(官國禮院)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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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 외의 등급이나 다름없는 종묘의 밑으로는 크게 관례원(官禮院)과 국례원(國禮院)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 정(正)·부(副)·참(參)으로 구분했다. 여기서 례(禮)란 제례(祭禮)를 뜻하는데, | 등급 외의 등급이나 다름없는 종묘의 밑으로는 크게 관례원(官禮院)과 국례원(國禮院)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 정(正)·부(副)·참(參)으로 구분했다. 여기서 례(禮)란 제례(祭禮)를 뜻하는데, 한국 정부는 이 제례에서 사용되는 비용과 예물을 통틀어 전폐(奠幣)라고 칭하여 불렀다. 관례원은 한국 황실(구체적으로는 궁내부)에서, 국례원은 한국 정부에서 전폐를 지원했다. | ||
크게 관례정원(官禮正院)·국례정원(國禮正院)·관례부원(官禮副院)·국례부원(國禮副院)·관례참원(官禮參院)·국례참원(國禮參院) 등 6등급으로 나누었다. 1872년 광무 정부는 따로 별격관례원(別格官禮院)이라는 등급을 신설하고 관례참원에 준하여 대우하기로 했다. 별격관례원은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자'를 성현으로 모시는 서원 중에서 선별했다. 1946년 근대서원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총 N개 시설이 별격관례원이 되었는데 그 중 일본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곳이 바로 장충단이다. 충무공 이순신을 성현으로 모시는 현충사 역시 별격관례원이었다. | 크게 관례정원(官禮正院)·국례정원(國禮正院)·관례부원(官禮副院)·국례부원(國禮副院)·관례참원(官禮參院)·국례참원(國禮參院) 등 6등급으로 나누었다. 1872년 광무 정부는 따로 별격관례원(別格官禮院)이라는 등급을 신설하고 관례참원에 준하여 대우하기로 했다. 별격관례원은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자'를 성현으로 모시는 서원 중에서 선별했다. 1946년 근대서원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총 N개 시설이 별격관례원이 되었는데 그 중 일본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곳이 바로 장충단이다. 충무공 이순신을 성현으로 모시는 현충사 역시 별격관례원이었다. | ||
일본한치시기 왜에서 관례정원은 강도부에 위치한 [[예신서원 (1925)|예신서원]]과 평안경부에 위치한 [[전명서원 (1925)|전명서원]] 2개, 국례참원 27곳이 있었다. 이 외에도 [[백제서원 (1925)|백제서원]]이 전명서원을 잇는 새로운 관례정원으로 결정하고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공사 도중에 | 일본한치시기 왜에서 관례정원은 강도부에 위치한 [[예신서원 (1925)|예신서원]]과 평안경부에 위치한 [[전명서원 (1925)|전명서원]] 2개, 국례참원 27곳이 있었다. 이 외에도 [[백제서원 (1925)|백제서원]]이 전명서원을 잇는 새로운 관례정원으로 결정하고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공사 도중에 한국이 패망하여 완공하지 못한 채로 해체되었다. 따라서 왜가 독립하는 그날까지 실제로 성현을 모시고 국가성리학을 교육하는 실질적인 서원으로 기능하는 관례정원은 예신서원과 전명서원 둘 뿐이었다. 식민지 왜에서 관례정원 두 곳과 국례참원 27곳을 제외하면 다른 관국례원 등급 서원이 없었다. 동이총독부는 왜에서 각 현마다 국례참원을 하나씩 둘 예정이었지만, 계획을 완수하기 전에 한국이 패망해버려 해당 계획은 백지화되었다. | ||
=== 제원(諸院) === | === 제원(諸院)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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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국례원 등급 밑으로는 제원(諸院) 등급으로, 부(府)나 도(道)·방(坊)·군(郡)·현(縣)·계(契)·면(面)·읍(邑) 등 각 행정구역을 대표하여 부원(府院)·도원(道院)·방원(坊院)·군원(郡院)·현원(縣院)·계원(契院)·면원(面院)·읍원(邑院)을 두었다. | 관국례원 등급 밑으로는 제원(諸院) 등급으로, 부(府)나 도(道)·방(坊)·군(郡)·현(縣)·계(契)·면(面)·읍(邑) 등 각 행정구역을 대표하여 부원(府院)·도원(道院)·방원(坊院)·군원(郡院)·현원(縣院)·계원(契院)·면원(面院)·읍원(邑院)을 두었다. | ||
왜의 행정체계는 | 왜의 행정체계는 한국과 달랐으므로, 제원(諸院) 등급으로는 동이총독부가 따로 현례원(縣禮院)·부례원(府禮院)·향례원(鄕禮院)·촌례원(村禮院)을 지정하여 각 현·부·향·촌이 공금으로 서원의 유지비를 지원하도록 했다. 례(禮)는 '제례'라는 뜻이다. 따라서 현례원, 부례원이란 명칭은 '현·부에서 제례를 지내는 서원'이란 뜻이다. | ||
=== 치제원(致祭院) === | === 치제원(致祭院) === |
2023년 7월 10일 (월) 21:23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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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서원제도(近代書院制度)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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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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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 근대서원제도 |
한자 | 近代書院制度 |
영어 | Modern system of ranked Seowon |
개요
1871년 광무 정부가 서원 시설에 등급을 매겨 관리하는 제도.
'근대서원제도'란 명칭은 당시 광무 정부가 사용한 단어가 아니라, 직전에 사액서원 제도와 대조하여 '근대'에 나온 제도라고 후대에 이름을 붙인 용어이다. 근대서원제도란 용어에 대응하여, 19세기 이전에 사액서원 제도를 '중세서원제도'라고도 부르지만 자주 사용하는 용어는 아니다.
배경
등급
19세기에 들어 서양에서 과학기술이 들어오면서 교통과 통신이 발달했고, 정치체제 또한 근대적인 재상제도를 구축했다. 과거에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지만, 변화된 사회에서는 근대서원제도를 통해 서원의 전면적인 통제와 조직화가 가능했다. 국가성리학을 가능케 하는 한 가지 제도적 기반이기도 했다. 패전 이후 1946년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근대서원제도를 폐지하였지만, 격이 높았던 서원은 여전히 대우받는다. 과거에 격을 받았던 서원는 관련 자료에서 '옛 서원격(舊書院格) 〇〇書院'라고 알려주는데, 바로 근대서원제도에서 받았던 등급을 말한다. 홍살문 앞 표석에 옛 서원격을 새긴 곳도 많다. 비록 제도가 폐지되긴 했어도 과거에 높은 격을 받았던 서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중요하게 대접받는다.
이러한 서원격 매김은 한국 정부(또는 황실)의 입장에서 했기 때문에, 높은 서원격을 받은 시설이라고 반드시 격에 비례해서 한국 민중에게도 인기 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랜 세월 대대로 굉장히 인기 있는 서원인데도 인기에 비하면 서원격이 낮은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정부 또한 약간은 민중의 인기를 고려했고, 민중 또한 정부가 높은 서원격을 내린 서원이라고 하면 좀 더 각별하게 여긴 것 같다.
아무 격도 받지 못한 작은 서원를 무격서원(無格書院)라 했는데, 한국 전체에 있는 서원들 중 절반 이상이 무격서원였다. 무격서원이 새로이 격을 받거나, 또는 이미 격을 받은 서원이 또다시 다른 격을 받는 것을 열격(列格)이라고 하였다.
종묘(宗廟)
근대서원제도에서 종묘는 한국과 조선의 선왕, 즉 유교에서 중시하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서 인을 널리 행한 인물인 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가장 존엄한 곳이라 하여 아예 서원격을 매기지 않았다. 사람들이 종묘에 서원격을 매긴다 어쩐다 하는 행동 자체를 불경하게 여겼으므로, 종묘는 '등급 외의 등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관국례원(官國禮院)
관국례원(官國禮院) | ||||||||||
관례정원 | → | 국례정원 | → | 관례부원 | → | 국례부원 | → | 관례참원 | → | 국례참원 |
官禮正院 | 國禮正院 | 官禮副院 | 國禮副院 | 官禮參院 | 國禮參院 | |||||
별격관례원(別格官禮院)은 관례참원에 준하여 대우함 |
등급 외의 등급이나 다름없는 종묘의 밑으로는 크게 관례원(官禮院)과 국례원(國禮院)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 정(正)·부(副)·참(參)으로 구분했다. 여기서 례(禮)란 제례(祭禮)를 뜻하는데, 한국 정부는 이 제례에서 사용되는 비용과 예물을 통틀어 전폐(奠幣)라고 칭하여 불렀다. 관례원은 한국 황실(구체적으로는 궁내부)에서, 국례원은 한국 정부에서 전폐를 지원했다.
크게 관례정원(官禮正院)·국례정원(國禮正院)·관례부원(官禮副院)·국례부원(國禮副院)·관례참원(官禮參院)·국례참원(國禮參院) 등 6등급으로 나누었다. 1872년 광무 정부는 따로 별격관례원(別格官禮院)이라는 등급을 신설하고 관례참원에 준하여 대우하기로 했다. 별격관례원은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자'를 성현으로 모시는 서원 중에서 선별했다. 1946년 근대서원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총 N개 시설이 별격관례원이 되었는데 그 중 일본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곳이 바로 장충단이다. 충무공 이순신을 성현으로 모시는 현충사 역시 별격관례원이었다.
일본한치시기 왜에서 관례정원은 강도부에 위치한 예신서원과 평안경부에 위치한 전명서원 2개, 국례참원 27곳이 있었다. 이 외에도 백제서원이 전명서원을 잇는 새로운 관례정원으로 결정하고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공사 도중에 한국이 패망하여 완공하지 못한 채로 해체되었다. 따라서 왜가 독립하는 그날까지 실제로 성현을 모시고 국가성리학을 교육하는 실질적인 서원으로 기능하는 관례정원은 예신서원과 전명서원 둘 뿐이었다. 식민지 왜에서 관례정원 두 곳과 국례참원 27곳을 제외하면 다른 관국례원 등급 서원이 없었다. 동이총독부는 왜에서 각 현마다 국례참원을 하나씩 둘 예정이었지만, 계획을 완수하기 전에 한국이 패망해버려 해당 계획은 백지화되었다.
제원(諸院)
제원(諸院) | ||||
부원(府院) | → | 방원(坊院) | → | 계원(契院) |
도원(道院) | 군원(郡院) | 면원(面院) | ||
현원(縣院) | 읍원(邑院) | |||
왜의 제원 | ||||
현례원(縣禮院) | → | 부례원(府禮院) | → | 촌례원(村禮院) |
향례원(鄕禮院) |
관국례원 등급 밑으로는 제원(諸院) 등급으로, 부(府)나 도(道)·방(坊)·군(郡)·현(縣)·계(契)·면(面)·읍(邑) 등 각 행정구역을 대표하여 부원(府院)·도원(道院)·방원(坊院)·군원(郡院)·현원(縣院)·계원(契院)·면원(面院)·읍원(邑院)을 두었다.
왜의 행정체계는 한국과 달랐으므로, 제원(諸院) 등급으로는 동이총독부가 따로 현례원(縣禮院)·부례원(府禮院)·향례원(鄕禮院)·촌례원(村禮院)을 지정하여 각 현·부·향·촌이 공금으로 서원의 유지비를 지원하도록 했다. 례(禮)는 '제례'라는 뜻이다. 따라서 현례원, 부례원이란 명칭은 '현·부에서 제례를 지내는 서원'이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