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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에는 동아세아 문명의 중심지였던 중국 대륙과 인접하여 국력이 강성하였으나, 붕당정치와 세도정치로 인해 국력이 쇠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경조 의황제 이희|의황제]]의 세도정치 척결과 개혁으로 상당한 국력 신장을 이루었고, 19세기 중엽 불란서와 전투를 벌인 [[갑인앙요 (설중매)|갑인양요]]에서 패배하여 서양 열강들과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하며 유구와 대마도를 내지로 편입하기도 했다. 1860년대에는 어일신을 단행하여 수백년간 고수해온 쇄국정책을 완전히 폐지하고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일본, 청나라보다 먼저 서양의 제도와 기술을 수용하고 체화하는데 성공했으며 한청전쟁의 승리를 통해 황제국을 선포, 남만과 요동 남부를 병합하고, 한노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요동 북부, 북주를 병합하고 [[일본 (설중매)|일본]]을 번국으로 삼으며 국제사회에서 열강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1차대전 이후에는 남양군도를 위임통치령으로 삼고 적백내전을 틈타 연해주와 북화태를 병탄하여 전성기를 열었다. 그러나 1929년 발발한 대공황으로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되며 내부 단속에 박차를 가한다. | 전근대에는 동아세아 문명의 중심지였던 중국 대륙과 인접하여 국력이 강성하였으나, 붕당정치와 세도정치로 인해 국력이 쇠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경조 의황제 이희|의황제]]의 세도정치 척결과 개혁으로 상당한 국력 신장을 이루었고, 19세기 중엽 불란서와 전투를 벌인 [[갑인앙요 (설중매)|갑인양요]]에서 패배하여 서양 열강들과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하며 유구와 대마도를 내지로 편입하기도 했다. 1860년대에는 어일신을 단행하여 수백년간 고수해온 쇄국정책을 완전히 폐지하고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일본, 청나라보다 먼저 서양의 제도와 기술을 수용하고 체화하는데 성공했으며 한청전쟁의 승리를 통해 황제국을 선포, 남만과 요동 남부를 병합하고, 한노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요동 북부, 북주를 병합하고 [[일본 (설중매)|일본]]을 번국으로 삼으며 국제사회에서 열강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1차대전 이후에는 남양군도를 위임통치령으로 삼고 적백내전을 틈타 연해주와 북화태를 병탄하여 전성기를 열었다. 그러나 1929년 발발한 대공황으로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되며 내부 단속에 박차를 가한다. | ||
이러한 극심한 사회혼란속에 군부가 발흥하여 [[5.16 사건 (설중매)|수상이 백주 대낮에 암살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나, [[광형옥사 (설중매)|광형옥사]]로 대규모 숙군 작업이 벌어지는 결과만을 자아냈다. 1949년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미국과의 동맹을 맺어 제1세계로 편입했다. 1960년대 중후반에는 | 이러한 극심한 사회혼란속에 군부가 발흥하여 [[5.16 사건 (설중매)|수상이 백주 대낮에 암살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나, [[광형옥사 (설중매)|광형옥사]]로 대규모 숙군 작업이 벌어지는 결과만을 자아냈다. 1949년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미국과의 동맹을 맺어 제1세계로 편입했다. 1960년대 중후반에는 신종의 건강 악화로 국정의 주도권이 권신들과 강씨 척족들에게 넘어가는 신세도기가 열리기도 하였으나, [[익종 환황제 이주|익종 환황제]] 즉위 이후 서서히 약해졌고, [[고종 인황제 (설중매)|고종 인황제]] 즉위 이후 부터는 황제 중심의 정치가 재개된다. 이후 고조에 의해 [[대한제국 헌법 (설중매)|신헌법]]이 반포된 이래 대한의 정치 · 외교는 신헌법과 한미동맹에 기초해 왔다. 제국헌법 제1조는 대황제를 '영구히 군림하고 국법에 따라 대한제국을 통치함'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국가원수인 대황제에게 막중한 정치적 권한을 부여하여 일반적인 입헌군주국의 군주보다도, 심지어는 대통령제 국가의 대통령보다도 정치적 중요성이 강하다. 이에 따라 현실정치는 대황제가 정국을 주도하는 의원내각제로 운영되며 2인자는 내각의 수장인 내각총리대신으로 대황제를 보필하여 중앙부처를 지휘하며, 현직은 [[이관섭 (설중매)|이관섭]]이다. 집권 여당은 [[민주자유당 (설중매)|민주자유당]]으로, 1943년 신체제운동으로 탄생한 [[재건당 (설중매)|재건당]]의 후신격이다. 1943년 이래 대한은 재건당과 재건당의 후신격인 민주자유당이 집권하였으며 현재도 그러하다. 외교에 있어선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바탕으로 한 친미/친서방 외교를 고수해 왔고, 신냉전이 본격화된 2010년대 후반 이후론 서방 세계 내에서 가장 신뢰받는 인도-태평양 전략 파트너로 여겨지고 있다. | ||
대한은 아세아의 대표적인 선진국이자 강대국 중 하나다. 대한의 원은 세계 무역결제통화 비중의 15~20%를 차지하며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신뢰성이 높은 통화다. 이 때문에 원화는 미국 달러, 유로와 함께 세계 3대 통화로 꼽힌다. 대한의 GDP는 미국, 중국, 독일에 이은 세계 4위이며, PPP 세계 4위, 금 보유고 세계 8위, 주식시장 규모 세계 3위, 대외순자산 규모 세계 1위 및 국제통화기금(IMF) 투표권은 세계 2위다. 삶의 질을 측정하는 legatum 번영지수, OECD 지수에서 아세아 1위, 비서양권 국가 중 유일한 G7 회원국이자 TPP 주도국, 아세아개발은행 설립국이며, 유네스코 예산 분담률 1위, 유엔 분담률 3위로서 전세계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이다. | 대한은 아세아의 대표적인 선진국이자 강대국 중 하나다. 대한의 원은 세계 무역결제통화 비중의 15~20%를 차지하며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신뢰성이 높은 통화다. 이 때문에 원화는 미국 달러, 유로와 함께 세계 3대 통화로 꼽힌다. 대한의 GDP는 미국, 중국, 독일에 이은 세계 4위이며, PPP 세계 4위, 금 보유고 세계 8위, 주식시장 규모 세계 3위, 대외순자산 규모 세계 1위 및 국제통화기금(IMF) 투표권은 세계 2위다. 삶의 질을 측정하는 legatum 번영지수, OECD 지수에서 아세아 1위, 비서양권 국가 중 유일한 G7 회원국이자 TPP 주도국, 아세아개발은행 설립국이며, 유네스코 예산 분담률 1위, 유엔 분담률 3위로서 전세계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이다. |
2024년 8월 10일 (토) 19:5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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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大韓帝国 | Empire of Kore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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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코드 | ||||||||||||||
408, EOD, KOR, EOK | ||||||||||||||
국제 전화 코드 | ||||||||||||||
+82 | ||||||||||||||
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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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8K로 촬영된 대한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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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大韓帝国) 통칭 대한(大韓)은 동아세아의 입헌군주국이다.
대한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남양군도에서 서쪽으로는 남만해의 남만, 동쪽의 북주에 자리하고 있다. 이들 영토는 내지인 한반도와 외지로 구분되어 있다.
인구는 약 1억 1300만 명으로 세계 15위다. 명목상의 인구 밀도는 국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요동 지역이 광대한 면적과 넓은 평야를 자랑하는 터라 많은 인구수를 차지하는 높지 않으나 많은 인구수를 차지하는 한반도 지역의 면적은 상대적으로 좁기에 한반도 지역의 인구 밀도가 높은 편이기에 실질적인 인구 밀도는 매우 높다. 수도 황성 한성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대도시권이며 그 인구는 1,000만 명 가량이다. 평균 수명은 84.62세로 세계 1위인 한편 여느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수십 년간 저출산이 진행되어 왔기에 인구 감소 및 복지 부담 증가 등 인구학적 문제를 겪고 있기도 하다.
전근대에는 동아세아 문명의 중심지였던 중국 대륙과 인접하여 국력이 강성하였으나, 붕당정치와 세도정치로 인해 국력이 쇠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의황제의 세도정치 척결과 개혁으로 상당한 국력 신장을 이루었고, 19세기 중엽 불란서와 전투를 벌인 갑인양요에서 패배하여 서양 열강들과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하며 유구와 대마도를 내지로 편입하기도 했다. 1860년대에는 어일신을 단행하여 수백년간 고수해온 쇄국정책을 완전히 폐지하고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일본, 청나라보다 먼저 서양의 제도와 기술을 수용하고 체화하는데 성공했으며 한청전쟁의 승리를 통해 황제국을 선포, 남만과 요동 남부를 병합하고, 한노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요동 북부, 북주를 병합하고 일본을 번국으로 삼으며 국제사회에서 열강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1차대전 이후에는 남양군도를 위임통치령으로 삼고 적백내전을 틈타 연해주와 북화태를 병탄하여 전성기를 열었다. 그러나 1929년 발발한 대공황으로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되며 내부 단속에 박차를 가한다.
이러한 극심한 사회혼란속에 군부가 발흥하여 수상이 백주 대낮에 암살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나, 광형옥사로 대규모 숙군 작업이 벌어지는 결과만을 자아냈다. 1949년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미국과의 동맹을 맺어 제1세계로 편입했다. 1960년대 중후반에는 신종의 건강 악화로 국정의 주도권이 권신들과 강씨 척족들에게 넘어가는 신세도기가 열리기도 하였으나, 익종 환황제 즉위 이후 서서히 약해졌고, 고종 인황제 즉위 이후 부터는 황제 중심의 정치가 재개된다. 이후 고조에 의해 신헌법이 반포된 이래 대한의 정치 · 외교는 신헌법과 한미동맹에 기초해 왔다. 제국헌법 제1조는 대황제를 '영구히 군림하고 국법에 따라 대한제국을 통치함'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국가원수인 대황제에게 막중한 정치적 권한을 부여하여 일반적인 입헌군주국의 군주보다도, 심지어는 대통령제 국가의 대통령보다도 정치적 중요성이 강하다. 이에 따라 현실정치는 대황제가 정국을 주도하는 의원내각제로 운영되며 2인자는 내각의 수장인 내각총리대신으로 대황제를 보필하여 중앙부처를 지휘하며, 현직은 이관섭이다. 집권 여당은 민주자유당으로, 1943년 신체제운동으로 탄생한 재건당의 후신격이다. 1943년 이래 대한은 재건당과 재건당의 후신격인 민주자유당이 집권하였으며 현재도 그러하다. 외교에 있어선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바탕으로 한 친미/친서방 외교를 고수해 왔고, 신냉전이 본격화된 2010년대 후반 이후론 서방 세계 내에서 가장 신뢰받는 인도-태평양 전략 파트너로 여겨지고 있다.
대한은 아세아의 대표적인 선진국이자 강대국 중 하나다. 대한의 원은 세계 무역결제통화 비중의 15~20%를 차지하며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신뢰성이 높은 통화다. 이 때문에 원화는 미국 달러, 유로와 함께 세계 3대 통화로 꼽힌다. 대한의 GDP는 미국, 중국, 독일에 이은 세계 4위이며, PPP 세계 4위, 금 보유고 세계 8위, 주식시장 규모 세계 3위, 대외순자산 규모 세계 1위 및 국제통화기금(IMF) 투표권은 세계 2위다. 삶의 질을 측정하는 legatum 번영지수, OECD 지수에서 아세아 1위, 비서양권 국가 중 유일한 G7 회원국이자 TPP 주도국, 아세아개발은행 설립국이며, 유네스코 예산 분담률 1위, 유엔 분담률 3위로서 전세계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이다.
상징
국호
심순택(沈舜澤)이 아뢰기를 "우리나라는 옛날에 화인(華人)이 아사달(阿思達)을 칭한 조선(朝鮮)이란 이름을 그대로 칭호로 삼았는데 애당초 합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나라는 오래되었으나 천명이 새로워졌으니 국호를 정하되 응당 전칙(典則)에 부합해야 합니다." |
上曰: 我邦乃檀君之地, 三韓續大統. 而國初受命, 統合爲一。 今定有天下之號曰‘大韓’, 未爲不可。 且每嘗見各國文字, 不曰‘朝鮮’, 而曰韓者, 抑有符驗於前, 而有竢於今日, 無待聲明於天下, 而天下皆知大韓之號矣。 상이 이르기를 우리나라는 곧 단군의 땅인데, 삼한(三韓)이 그 대통을 이어받았다. 국초(國初)에 천명을 받고 한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 나라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성조 태황제 실록》연수 원년(1895년) 양력 5월 13일 3번째 기사: 시임 대신과 원임 대신 이하의 관리들을 인견하다 |
심순택이 아뢰기를 "삼대(三代) 이후부터 국호는 예전 것을 답습한 경우가 아직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은 화인이 아사달(阿思達)을 칭한 것이니, 당당한 황제의 나라로서 그 칭호를 그대로 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대한'이라는 칭호는 천명을 받은 나라들을 상고해 보건대 옛것을 답습한 것이 아닙니다. 성상의 분부가 매우 지당하니, 감히 보탤 말이 없습니다." |
상이 이르기를 "국호가 이미 정해졌으니, 원구단에 행할 고유제의 제문과 반조문에 모두 대한으로 쓰도록 하라." 《성조 태황제 실록》연수 원년(1895년) 5월 8일 |
정식 국호는 '대한제국(大韓帝国)'으로, 대한은 삼한을 일컫는 다른 말로써 한반도 전역을 이르는 말이다. 기원전 4세기 고조선의 군주가 한(韓) 씨라는 기록이 있으며 이후 준왕이 위만에게 왕위를 뺏긴 후 건마국의 군주가 될 때 한왕(韓王)을 자처한 대서 한(韓) 국호의 유래가 있다. 이후 한반도 중남부의 마한, 진한, 변한은 삼한으로 불렸다. 마진변한이 사라진 지 이미 수백년이 지난 삼국시대 후반부 당시에는 의미가 변형, 확장되어 고구려, 백제, 신라 셋을 삼한이라고 불렀고,[5] 이것을 통일신라와 고려가 통일할 때 스스로 삼한일통이라 했기 때문에 '한'은 예맥민족의 영역 전체를 의미하는 별칭으로도 쓰이고 있었다. 삼한이 원래 삼국시대 초반 한반도 중남부에 있던 여러 나라들을 의미했다는 것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고증에 의해 밝혀졌지만, 관용적 용법은 계속 이어져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 때까지 삼한이란 단어는 지금의 대한을 의미했기에 태황제는 한(韓)을 정식 국호로 정한 것이다.
별칭은 '대한국'이다. 구헌법인 '대한국 국제'에서 보이듯이 혼용되었다. 약칭으로는 '대한'과 '한국'이 사용되었는데, 보통 국내적으로는 대한이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반면, 여타 한자문화권의 국가에서는 한국이라는 약칭이 더 자주 사용되는 편이다.
영어명인 Empire of Korea은 칭제건원 이후 초기에 고집하던 표현으로, 여러번 타국에 표기법 수정을 요청했지만 이미 Korea가 한국을 뜻하는 말이 된지 수백년이 지난터라 바뀌지 않았다. 결국 Korea(프랑스어 Corée/러시아어 Корея)를 수용하여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국기
태극기 太極旗 | |||
지위 | 공식 국기 | ||
제정일 | 1862년 3월 6일 | ||
근거법령 | 「우선상선규칙」(1862년~현재) (郵船商船規則) | ||
제작자 | 경조 의황제(景祖 義皇帝, 1824 - 1879) |
태극기는 1865년 상선기로 지정되며 최초로 사용하였다. 본래 조선은 다른 전근대의 동아세아 국가들처럼 왕을 상징하는 어기나 군대를 상징하는 군기는 있었으나 국가적 상징으로서의 국기라는 개념이 없었으며, 강도 조약을 체결한 이후 국기 제정 문제를 두고 논의하였으나 계속하여 도안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1854년 강도 조약 이후로 태서와의 교류가 폭증하였다. 문제는 당시 국제법에는 무역선은 반드시 국적을 표시하는 상선기를 달아야 하고, 상선기를 달지 아니할 경우 해적선으로 간주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상선기가 부재했던 대한의 상선들은 다른 나라 국기를 달고 다니는 등 엄청난 혼란이 발생했다. 점차 불만이 누적되자 상인들은 조정에 조선을 상징하는 깃발을 만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마침 1862년 양쯔강 후베이성에서 영국 군함과 청나라 군함이 충돌하여 영국 해군이 청나라 군함에 발포해 침몰시켜버리고도 청의 함선에 국기가 없어서 일반 해적선과 군함을 구별할 수 없었다는 영국의 주장에 충격을 받은 경조는 "향후 아국도 이런 불상사를 막아야 하겠다"며 예조에 국기 제작을 명령했다.
이때 청나라는 당시 청 황실의 깃발로 사용하던 삼각형 황룡기를 변형하여 조선에 "속국의 모습을 보이라."라고 제안하였는데, 말이 제안이지 사실상 명령이었다. 이 과정에서 황색 바탕을 백색 바탕으로 바꾸고 청색 용은 붉은 용으로 바꾸며 청색 구름도 추가하여 백저청운홍룡기를 만들어 쓰라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다루었다. 동양의 오방색에서 황색은 중앙을, 청색은 동쪽을 의미한다. 또한 청룡은 동쪽을 관장하는 신수이니, 청나라가 황룡기를 사용하고 조선이 청룡기를 사용하라는 의미는 곧 변방에 있는 신하의 예를 갖추라는 말을 의미했다. 또한 조선의 용은 격식을 낮추어 발톱이 하나 적게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경조는 청나라의 이런 일방적인 명령을 분개해하여 거부하였고, 독자적인 깃발을 제정하라는 명을 내린다.
경조는 백성을 상징하는 백석을 바탕으로 하여 군주를 상징하는 붉은색, 신하를 상징하는 파란색을 넣은 태극을 제안한다. 그러나 박규수는 그 도안이 너무 단조로움을 지적하면서, 주변에 조선 8도를 상징하는 팔괘를 추가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여기에 영국인 선장이 괘가 8개나 있으면 너무 그리기 어렵고 번잡하니 4괘로 단순화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고, 마침내 도안이 확정되었다.
이렇게 채택된 깃발은 가운데 태극의 이름을 따 태극기(太極旗)로 명명되었고 상선기이자 조선 해군의[6] 군기로 채택하였다. 이후 태극기가 조선을 거쳐 대한의 사실상 국기가 되었으나, 1873년 대내사성 포고라는 빈약한 법적 근거만을 가진 상황이다. 이후 백여년이 넘는 기간 제국의회가 법률로 처리하려던 때마다 뭔가 일이 생겨서 총리보고안으로 백 년 이상 묵다 보니 안건으로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실제로 1931년에 '대한제국 국기 법안'을 제출하여 민의원에서 통과되었으나, 회기가 종료되어 제국의회가 폐회되자 폐기되었다. 그래서 국기를 써야 할 상황이 되면 법에는 없지만 일단은 관습적으로 태극기를 쓰는 상황이다.
국장
대한제국 국장 大韓帝国国章 | |||
이화문 (대한제국 황실 문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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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 관습상 황실 문장 관습상 국장 | ||
이명 | 자두문 (紫李紋) 오얏문장 가경자문(嘉慶子紋) 이화문장 (李花紋章) 자두꽃 문장 오얏꽃 문장 | ||
채택일 | 1889년 9월 30일 |
국가
애국가 愛国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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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 대한제국 국가 | |
채택일 | 1888년 9월 9일 | |
작사 | 미상 (성조 태황제로 추정) | |
작곡 | 프란츠 에케르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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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옥새
대한제국의 어새(御璽) 황제지보(皇帝之寶)의 인뉴(印鈕)와 인문(印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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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은 국가의 도장인 국새(国璽)와 대황제의 도장인 어새(御璽)를 같이 사용한다. 대한제국 선포 이후 성조 태황제는 천자만이 쓸 수 있는 옥으로 국새와 어새를 제작했다.
국새와 어새 모두 1895년에 제작하여 신자체가 아닌 구자체를 사용했다. 이들 옥새들은 전서체로 국새에는 대한국새(大韓國璽), 황제지새(皇帝之璽), 황제지보(皇帝之寶), 칙명지보(勅命之寶), 제고지보(制誥之寶), 시명지보(施明之寶), 대원수보(大元帥寶), 원수지보(元帥之寶)라고 인문을 새겼다. 대한제국의 국새와 어새는 KBS의 대황제 관련 다큐에 딱 한 번 황제지보(皇帝之寶)가 공개된 이후 여태껏 공개된 적이 없다.
새로운 대황제가 즉위할 때 이 국새와 어새도 새 황제가 승계하게 되며, 어새와 국새 중 어새를 훨씬 자주 사용한다. 이는 대한제국이 군주국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역사
大韓歷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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