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공정본부 (개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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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0일 (화) 19:25 판

틀:대한민국 육군의 기능본부 (개화)
육군공정본부
陸軍空挺本部
Army Airborne Command
국가 대한민국
창건 1938년 10월 17일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육군도총부
규모 사단급 기능본부
분류 공수부대
도정 부장 김부장
부정 참장 이참장
위치 평안북도 태천군

개요

하늘의 백장미[1]
White Rose in the Sky

육군공정본부는 대한민국 육군사단급 공수부대이다. 수송기와 헬리콥터 등을 탑승하고 신속하게 전개될 수 있어 신속대응군 겸 정예 경보병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역사

공정본부의 직접적인 전신은 1932년에 창설된 항공보병대대이다. 당시 양기탁 내각은 대공황으로 인해 공격적인 군축을 벌였지만 이로 인한 국군의 전력 약화를 심각하게 우려하였다. 이에 작은 규모로도 극한의 효율응 뽑아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였고, 검토 끝에 나온 방안이 바로 공수부대였다. 공수부대는 적은 병력으로도 전장에 빠르게 전개하여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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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방주?의)
공정대원 (1943)[2]

항공보병대대는 1934년에 항공보병연대로, 1936년에는 공정여단으로 승격되었다. 구소련과 일본의 위협에 맞서 재군비를 추진하던 안창호 내각은 공정부대를 눈여겨보았고, 이 부대를 대규모로 증편하기로 한다. 이에 따라 1938년 군단급의 육군공정본부가 창설되었고 1940년애는 예하에 3개 공정사단이 배속되었다.

제3차 극동전쟁 초반에는 국군이 제공권을 상실한 상황이었기에 공정부대는 공수능력을 상실하고 정예 보병부대처럼 운용되었다. 하지만 앵커리지 조약으로 한국과 구소련이 전쟁을 멈추고 일본만을 상대할 수 있게 되자 제공권이 다시 서서히 한국 측으로 넘어왔고, 이에 따라 전쟁 중반 이후부터는 공정부대가 본연의 임무인 공수와 항공강습작전을 활발하게 진행하였다. 대표적인 작전으로는 1943년 공정부대가 남쪽으로 퇴각중이던 일본군의 퇴로를 차단한 대전 전투와 연합국 공정대[3]가 일본에 의해 점령된 제주도에 전개된 제주도 탈환작전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공정부대는 계속해서 육군의 정예부대로 남았다. 한중전쟁 직후인 1955년에는 네 번째 공정사단이 창설되어 4각 편제를 갖추게 되었고, 공정부대를 위한 공수전차와 각종 경장갑차가 배치되며 전력이 강화되었다. 베트남전 당시에도 1개 여단이 베트남에 파견되어 맹활약하였으며 걸프전에도 약 1천 여 명의 병력이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가했다.

1980년대 말 공산권이 붕괴하고 냉전이 끝나면서 한국 정부는 대대적인 군축을 감행했고 공정본부 역시 이를 피할 수 없었다. 1990년 당시 4개 사단 5만 명의 병력을 보유했던 공정본부는 2005년에는 4개 여단 2만 명으로 크게 감축되었다. 공정본부 도정에도 원래는 정장이 보임되었으나 2001년부터는 부장이 보임된다.

편제

  • 본부 (평북 태천)
    • 공정교련단
    • 공정항공단
    • 정보통신대대
    • 군수지원대대
  • 제101 공정여단 (요남 건안)
  • 제102 공정여단 (만주 헤이허)
  • 제103 공정여단 (평북 태천)
  • 제105 공정여단 (만주 푸신)
  • 제106 동원공정여단 (황해 황주)

공정여단의 편제는 이곳을 참고하라.

장비·군복

육군의 대표적인 정예부대인 만큼 장비도 고가의 신형 장비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병력과 물자를 빠르게 수송하기 위해 다수의 각종 헬리콥터와 수송기를 보유하고 있다. 또 화력지원 등을 목적으로 하는 장갑차량도 다수 있는데, 수송시에 적재해야 하기에 무게가 가벼운 경장갑차를 애용한다. 과거에는 무반동포를 탑재한 지프차를 화력 지원용으로 사용했으나 현재는 모두 화력지원용 장갑차로 대체되었다.

극초기 공정병의 군복은 일반 보병의 군복과 다를 바가 없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점차 개선되었다. 또 1938년부터는 육군의 일반적인 황록색보다 더 녹색이 많이 첨가된 군복을 도입했다. 2차 대전 종전 후에는 산악부대와 함께 국군 최초로 위장복을 도입하였다.

각주

  1. '공정대가' 혹은 '공정대원의 노래'라고도 불린다.
  2. 낙하산 강하 훈련을 받기 위해 수송기에 탑승하려는 공정대원 이소월 부교(당시 29세)를 찍은 사진이다. [일러스트: 사용자:Heleli]
  3. 한국군, 미국군 그리고 소수의 영국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