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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일 (일) 22:15 판
김두봉 내각
김두봉 내각 金枓奉內閣 | Kim Tu-bong Cabine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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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5월 19일 ~ 1950년 11월 28일 | |||
출범 이전 | 이후 | ||
김성수 내각 | 1차 이승만 내각 | ||
총리 | 김두봉 / 제20대 | ||
부총리 | 1대 오위영 2대 이관술 | ||
여당 | |||
연립여당 | 진보당 노동당 호헌동지회(~1950.8.17.) |
▲장도영을 육군대장에 임명하는 김두봉 내각총리대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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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금일 이 자리에서, 우리는 인민의 의지와 자유의 약한 연대가 독재와 권위의 강한 억압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육당 홍명희, 중추원에서 연설 中 |
김두봉 내각은 한국독립당의 계파 민족혁명그룹과 반제동맹, 그리고 그 영수 김두봉을 기반으로 하는 대한국의 내각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주의의 황금기이자 구좌파의 마지막 불꽃인 시대이다.[1]
배경
- 김성수 내각이 4.28 파동[2]이후 내각불신임결의로 해산하자, 중추원선거를 앞두고 한국독립당 내 좌파들이 크게 인기를 싹쓸이했다. 이때 민전출신 인사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이들은 기존 한국독립당의 혁신계파 개조동맹을 장악하였다. 이후 김원봉 등의 극좌 민족주의 인사들은 민족혁명그룹을, 이주하, 이관술 등의 조선공산당 재건파, 한성콤그룹 계열의 전설적 사회주의 인사들은 반제동맹을 창립하며 중추원에 입성하였다. 이외에도 사회자유주의,사민주의,민사주의 등의 온건/변절 계통의 조봉암, 서상일, 장건상 등은 한독당에서 탈당, 진보당을 창당하여 중추원의 좌파들은 크게 세 그룹으로 분열하였다.
반면, 김성수 불신임에 일조한 우파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결집했다. 호헌동지회는 구파동지회 출신의 신익희, 유진산, 조병옥 등과, 신풍정안회 출신의 장면, 오위영, 박순천, 족청 출신의 이범석, 장준하, 신정동지회의 이승만, 윤치영 등의 당내 우파들의 총본산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14대 중추원선거를 당내 좌파가 싹쓸이하면서, 김두봉을 중심으로 하는 민혁그룹•반제동맹•진보당•노동당의 대연정이 수립되었다.
내각
부처 | 이름 |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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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부대신 | 조만식 | 1 |
외무부대신 | 김규식 | 2 |
재무부대신 | 백두진 | 3 |
법무부대신 | 허헌 | 3 |
노동부대신 | 김철수 | 3 |
군무부대신 | 김경천 | 3 |
농림부대신 | 조봉암 | 3 |
체신부대신 | 정일형 | 3 |
상공부대신 | 김삼룡 | 3 |
공보부대신 | 최현배 | 3 |
문교부대신 | 김태준 | 3 |
보건부대신 | 허정 |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