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누벨 외로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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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0월 25일, [[27 혁명]]의 60주년을 맞이하여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대통령은 [[레흐 바웬사]]를 위시로 한 [[폴란드 자유노조]]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회의 부분적 자유화 조치를 취하였다. 통제 경제는 [[혼합경제]]로 재편되었고 다당제도 허용되어 [[폴란드 인민당]] 등 여러 야당들이 허가되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민족 사회주의라는 체제는 포기하지 않은 채 부분적이고 점진적으로 개혁이 진행되었고, 기존 사회주의 체제의 효율성은 유지한 채 자본주의-부분적 제한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체제로 성공적으로 체제를 이양하여 1989년 이후의 동구권 붕괴에도 불구하고 국명에 "사회주의"가 들어가는 유일무이한 중부 유럽의 맹주로 자리잡았다.
1987년 10월 25일, [[27 혁명]]의 60주년을 맞이하여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대통령은 [[레흐 바웬사]]를 위시로 한 [[폴란드 자유노조]]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회의 부분적 자유화 조치를 취하였다. 통제 경제는 [[혼합경제]]로 재편되었고 다당제도 허용되어 [[폴란드 인민당]] 등 여러 야당들이 허가되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민족 사회주의라는 체제는 포기하지 않은 채 부분적이고 점진적으로 개혁이 진행되었고, 기존 사회주의 체제의 효율성은 유지한 채 자본주의-부분적 제한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체제로 성공적으로 체제를 이양하여 1989년 이후의 동구권 붕괴에도 불구하고 국명에 "사회주의"가 들어가는 유일무이한 중부 유럽의 맹주로 자리잡았다.


1989년 7월 1일, 처음으로 치러진 자유로운 대통령 선거 하에서 [[폴란드 자유노조]], [[폴란드 인민당]], [[폴란드 민주동맹]]의 지지를 받는 무소속 [[레흐 바웬사]] 후보가 50%를 득표해 47%를 얻은 [[사회주의민족당]] 소속의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스프키]]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체제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가 성사되었다. 이 소식은 다른 동구권 국가로도 퍼져나가 [[동유럽 혁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89년 7월 1일, 처음으로 치러진 자유로운 대통령 선거 하에서 [[폴란드 자유노조]], [[폴란드 인민당]], [[폴란드 민주동맹]]의 지지를 받는 무소속 [[레흐 바웬사]] 후보가 50%를 득표해 47%를 얻은 [[사회주의민족당]] 소속의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스프키]]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체제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가 성사되었다. 이 소식은 다른 동구권 국가로도 퍼져나가 [[동유럽 혁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허나 바웬사 대통령은 폴란드 합중국 체제 자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 이미 체제와 타협하여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민주화로의 체제를 이양하기로 한 상태였다. 바웬사는 사회주의 체제를 준수하면서 부분적으로 사회, 경제, 정치의 자유화를 약속하며 폴란드의 개혁을 주도했다.


1993년 1월 1일, 국민투표를 통하여 각 구성국들의 독립 여부를 결정하게 하였다. [[체코 사회주의 공화국]]이 찬성 83.2%, [[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60.6%로 합중국에서 탈퇴하였으며, 그 외 구성국들은 폴란드 합중국 체제에 잔류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럼에도 각 소수민족들의 독립을 바라는 목소리는 막을 수 없었고 바웬사는 각 국가들의 독립을 보장하며 주민투표를 제안했다. 1992년 1월 1일, 주민투표를 통하여 각 구성국들의 독립 여부를 결정하게 하였다. [[크림 반도 러시아인 자치 공화국]]이 찬성 52.6%, [[체코 사회주의 공화국]]이 찬성 83.2%, [[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60.6%로 합중국에서 탈퇴하였으며, 그 외 구성국들은 폴란드 합중국 체제에 잔류하기로 결정하였다.


== 행정구역 ==
== 행정구역 ==

2022년 10월 25일 (화) 02:0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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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다민족 사회주의 합중국
Zjednoczone Wieloetniczne Socjalistyczne Państwa Polskie
United Multi-ethnic Socialist States of Poland
국기 국장
Kraj wszystkich narodów
모든 민족의 나라
(1927~現)
상징
국가 돔브로프스키의 마주레크
(Mazurek Dąbrowskiego)
국화 팬지꽃
국조 흰꼬리수리
역사
폴란드 제2공화국 성립 1918년
현 체제 성립 1927년
개혁 개방 1987년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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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바르샤바 (Warszawa)
북위 52° 13′ 56″ 동경 21° 00′ 30″
최대 도시
면적 1,043,178km2
내수면 비율 1.8%
접경국 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라트비아
러시아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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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억 398만 7,400명 (2022년)
밀도 99.68명/km2
출산율 1.85명 (2022년)
민족 비율 폴란드인 47.1%
우크라이나인 26.1%
벨라루스인 11.0%
몰다비아인 3.9%
리투아니아인 3.6%
유대인 3.0%
라트비아인 1.4%
독일인 1.1%
기타 2.8% (2022년)
공용어 폴란드어
지역어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 벨라루스어, 리투아니아어, 라트비아어, 독일어, 이디시어, 루마니아어
공용 문자 라틴 문자, 키릴 문자
종교 국교 없음 (세속주의)
비율 가톨릭교 71.2%
정교회 5.6%
유대교 2.6%
이슬람교 2.1%
무종교 및 기타 18.5%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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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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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다민족 사회주의 (명목상), 공화제, 사회주의 공화국, 이원집정부제, 일당 우위 정당제, 양원제
민주주의 지수 5.87점[188개국 중 76위] (혼합된 체제)
대통령
(국가 원수)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정부
요인
총리
(정부 수반)
율리아 티모셴코
부통령[2] 안제이 두다
하원의장 알렉산데르 두친스키
인민재판소장 파트릭 조비코
입법부 최고 라다 (상원)
세임 (하원)
집권 여당 사회주의민족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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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국가자본주의혼합 경제[3]
GDP
(PPP)
$3조 6,125억 2,227만 | 세계 7위
1인당 $34,740 (2021년)
GDP
(명목)
$2조 2,773억 2,406만 | 세계 8위
1인당 $21,900 (2021년)
신용등급 무디스 A1
S&P A-
Fitch A-
화폐 공식 화폐 즈워티(zł, złoty)
ISO 4217 PLN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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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GMT+01:00
도량형 SI 단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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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교현황 대한민국: 1988년 11월 1일
북한: 1948년 10월 16일
국제연합 가입 1945년 10월 24일
무비자 입국 양국 모두 45일
ccTLD
.pl
국가 코드
616, PL, POL
국가 전화 코드
+48
여행 경보
여행 자제 전 지역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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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역사

체제 이양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여파로 인해 소련의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고, 소련에서 개혁파인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이 되자, 기존의 공산권 국가와 이질적 체제를 갖추고 있던 폴란드는 소련으로부터 독자적인 외교 노선과 정치 노선을 취하기로 결정하였다. 소련은 이에 반발했으나, 결과적으로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이를 시나트라 독트린이라 부른다. 결과적으로 시나트라 독트린의 수립은 다른 동유럽 국가들의 붕괴로도 이어진다.

1987년 10월 25일, 27 혁명의 60주년을 맞이하여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대통령은 레흐 바웬사를 위시로 한 폴란드 자유노조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회의 부분적 자유화 조치를 취하였다. 통제 경제는 혼합경제로 재편되었고 다당제도 허용되어 폴란드 인민당 등 여러 야당들이 허가되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민족 사회주의라는 체제는 포기하지 않은 채 부분적이고 점진적으로 개혁이 진행되었고, 기존 사회주의 체제의 효율성은 유지한 채 자본주의-부분적 제한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체제로 성공적으로 체제를 이양하여 1989년 이후의 동구권 붕괴에도 불구하고 국명에 "사회주의"가 들어가는 유일무이한 중부 유럽의 맹주로 자리잡았다.

1989년 7월 1일, 처음으로 치러진 자유로운 대통령 선거 하에서 폴란드 자유노조, 폴란드 인민당, 폴란드 민주동맹의 지지를 받는 무소속 레흐 바웬사 후보가 50%를 득표해 47%를 얻은 사회주의민족당 소속의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스프키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체제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가 성사되었다. 이 소식은 다른 동구권 국가로도 퍼져나가 동유럽 혁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허나 바웬사 대통령은 폴란드 합중국 체제 자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 이미 체제와 타협하여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민주화로의 체제를 이양하기로 한 상태였다. 바웬사는 사회주의 체제를 준수하면서 부분적으로 사회, 경제, 정치의 자유화를 약속하며 폴란드의 개혁을 주도했다.

그럼에도 각 소수민족들의 독립을 바라는 목소리는 막을 수 없었고 바웬사는 각 국가들의 독립을 보장하며 주민투표를 제안했다. 1992년 1월 1일, 주민투표를 통하여 각 구성국들의 독립 여부를 결정하게 하였다. 크림 반도 러시아인 자치 공화국이 찬성 52.6%, 체코 사회주의 공화국이 찬성 83.2%, 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60.6%로 합중국에서 탈퇴하였으며, 그 외 구성국들은 폴란드 합중국 체제에 잔류하기로 결정하였다.

행정구역

  1. 188개국 중 76위
  2. 연방 부통령은 상원의장을 겸한다.
  3. 1987년 이전에는 사회주의통제 경제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