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이탈리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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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제국
Impero Italiano
Imperium Italiae
국기 국장
F.E.R.T.
사보이 왕가의 표어 (1861 ~ )
상징
국가 왕의 행진곡 #
(Marcia Reale d'Ordinanza)
국화 데이지
역사
이탈리아 통일 1861년 3월 17일
생제르맹 조약 1920년 7월 16일
제국 성립 1946년 1월 1일
이탈리아령 리비아 독립 1962년 8월 11일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동군연합 1975년 12월 1일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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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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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6,794만 3,945명 | 세계 20위 (2021년)
밀도 142.01명/km2
출산율 1.67명 (2021년)
기대수명 84세 (2020년)
민족 이탈리아인 93.9%
• 본토계 이탈리아인 83.2%
• 에리트레아계 이탈리아인 5.2%
• 알바니아계 이탈리아인 4.4%
• 기타 1.1%

외국인 6.1%
공용어 이탈리아어, 라틴어
지역어 알바니아어, 티그리냐어, 아랍어, 독일어, 크로아티아어
공용 문자 라틴 문자
종교 국교 없음 (정교 분리)[2]
분포 가톨릭교 77.1%
이슬람교 7.3%
개신교 3.2%
기타 및 무종교 10.9%
군대 이탈리아 제국군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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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조네 24개[3]
프로빈차 128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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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양원제, 민주제, 단일국가
민주주의 지수 8.44점 | 완전한 민주주의
(167개국중 16위, 2021년)
국성 사보이아 (Savoia)
황제 (국가원수) 세바스티아노 1세
정부
요인
총리 (정부수반) 로베르토 그란치니
부총리 엔리코 레타
대의원장 세르조 마타렐라
집권 여당 이탈리아의 봄
연립 여당 사회당 이탈리아2050
신임과 보완 무슬림동맹 남티롤 인민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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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PPP)
$3조 7,708억 8,894민 7,500 | 세계 7위 (2021년)
1인당 $55,500
GDP
(명목)
$2조 9,827억 3,918만 5,500| 세계 7위 (2021년)
1인당 $43,900
수출
입액
수출 $4,431억 7,700만
수입 $6,043억 3,100만
외환보유액 $1,830억 1,100만
신용등급 무디스 Aa3
S&P AA-
Fitch AA-
화폐 공식 화폐 유럽 유로(€)
ISO 4217 EUR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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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연호 서력 기원
시간대 GMT+01:00 ~ +03:00(이탈리아 표준시)
운전 방향 우측통행
단위 SI 단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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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수교 현황 조선: 1884년 6월 26일
한국: 1954년 11월 24일
북한: 1970년 9월 17일
주한대사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대로 98
UN 가입 1945년 (창립국)
유럽 연합 가입 1958년 1월 1일 (창립국)
ccTLD
.it
국제 전화 코드
+39
국가 코드
IT, ITL, ITA, 380
위치

개요

이탈리아 제국(이탈리아어: Impero Italiano 임페로 이탈리아노[*], 영어: Italian Empire)은 남유럽의 이탈리아 반도발칸 반도, 동아프리카의 에리트레아 지역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상세

수도와 최대 도시는 로마이며, 밀라노, 베네치아, 나폴리, 피렌체 등의 대도시들이 위치하여있다. 인구 수는 6,800만명 가량으로 유럽에서 러시아와 독일 다음으로 많다. 면적은 478,447km2로 스웨덴보다 약간 작으며 유럽에서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프랑스, 스페인, 스웨덴에 이은 면적 순위 6위이다.

국성은 사보이아 왕조(Casa Savoia)이다. 국가 원수인 이탈리아 황제는 2021년 즉위한 세바스티아노 1세, 정부수반인 국무총리(각료평의회의장)는 이탈리아의 봄 소속의 로베르토 그란치니이다. 입법 기관은 이탈리아 원로원(Senato)과 이탈리아 대의원(Camera dei Deputati)으로 나뉘어져있다.

세계적으로 발전된 선진국중 하나이다. 국방, 경제, 과학, 기술,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프랑스, 영국과 함께 유럽에서 세개밖에 없는 핵 보유국이기도 하다. 명목 GDP 순위는 세계 7위로, 유럽 국가중에서는 프랑스 다음으로 높으며, PPP 순위는 러시아에 이은 7위이다. 현재 유럽연합의 회원국이며, 나토와 UN, 파리 기후협약, 핵확산 방지조약 등 여러가지 국제 조약과 기구에 가입되어있다. 프랑스, 러시아, 미국, 영국, 중국과 더불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기도 하다.

상징물

국호

이탈리아어 Impero Italiano
라틴어 Imperium Italiae
알바니아어 Perandoria Italiane
티그리냐어 የጣሊያን ኢምፓየር
아랍어 الإمبراطورية الإيطالية
독일어 Italienisches Kaiserreich
그리스어 Ιταλική Αυτοκρατορία
크로아티아어 Talijansko Carstvo
슬로베니아어 Italijansko Cesarstvo
영어 Italian Empire
프랑스어 Empire Italien
스페인어 Imperio Italiano
러시아어 Итальянская Империя
중국어 意大利帝国
한국어 이탈리아 제국

한자 음차 명칭은 이태리(伊太利)이다. 그 외에 이태리아(伊太利亜), 의대리(意大利, 義大利) 등이 있다.

과거 신화에서 헤라클레스가 도망친 소를 찾으려고 칼라브리아 남부 지역까지 왔다가, 그 지역 사람들이 소를 비툴루스라고 부르는데에서 착안해 이 지역을 비툴리아라고 부른 곳에서 유래했다는 전설이 내려져온다. 그 외에는 이곳을 통합하고 다스링 이탈루스 왕자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고, 이곳의 사람들이 소를 숭배하는 토테미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툴루스라고 불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로마 시대에는 이탈리아라는 이름이 반도 북부까지 확장되어, 지리명으로서 사용되었고, 이후에는 반도에 사는 여러 민족들을 통칭하는 이름으로서도 사용되었다. 서로마 멸망 이후 이탈리아라는 이름은 지리적으로만 쓰이다가 리소르지멘토를 계기로 민족적 함의를 지니게 되었다.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세워지면서 이탈리아는 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국호로서 사용되었으며, 1945년 왕국이 제국으로 바뀌면서 공식 국호도 이탈리아 제국으로 바뀌었다.

한편 이탈리아 제국이 과거 로마 제국의 영토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신(新)로마 제국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신성 로마 제국과의 혼동으로 인하여 잘 사용되지 않는다.

국가


Marcia Reale d'Ordinanza

왕의 행진곡(이탈리아어: Marcia Reale d'Ordinanza)을 공식적인 국가로 사용하고 있다. 주세페 가베티가 작곡, 작사한 노래로, 사보이아 왕조의 왕실 찬가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반주만 있는 노래이지만 가사를 넣어서 부르기도 한다.


La Leggenda del Piave

피아베강의 전설(이탈리아어: La Leggenda del Piave) 역시 준국가로 많이 사용된다.

표어

제15대 사보이아 공작이자, 초대 사르데냐 국왕이었던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가 채택한 사보이아 가문과 이탈리아 왕국 및 제국의 공식적인 표어이다. 오스트리아의 표어인 A.E.I.O.U.와 같이 무슨 문장의 역두문자인 것은 알려져있지만 그 문장이 무엇인지는 알려져있지 않다. 다음은 이 문장에 대한 추측들이다.

  • Foedere et Religione Tenemur
    (우리는 조약과 종교 안에 존재한다.)
  • Fortitudo Eius Rhodum Tenuit
    (그의 강함(또는 용기)이 로도스를 정복했다.)
  • Fortitudo Eius Rempublicam Tenet
    (그의 강함이 우리 주(州)를 보전한다.)
  • Fides Est Regni Tutela
    (믿음이 우리 왕국의 수호자이다.)

역사

과거 로마가 위치해있던 지역이었으나, 서기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게르만족에게 짓밟히면서 이탈리아 지역은 일시적으로 쇠퇴하게 되었다. 이후 중세 시대에 도시 국가가 발전하였으나 나폴레옹의 침략 당시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등 유럽 내에서 이렇다할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하는 약소한 지역에 불과했다.

그러나 1848년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이후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1859년부터 사르데냐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려는 리소르지멘토 운동이 일어났다. 1861년, 리소르지멘토 운동의 결과로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세워졌으며 1870년 이탈리아 왕국군이 로마에 입성하면서 이탈리아의 통일이 이뤄졌다.

이탈리아는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면서 그 영토를 넓히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때 이탈리아 왕국은 영국,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독일에 맞서 싸웠다. 제1차 세계 대전을 통하여 이탈리아는 발칸반도 지역을 할양받았으며 2차 대전으로 알바니아를 확보하였다. 또한 1920년대 리비아, 에리트레아 등의 해외 식민지를 개발하면서 식민제국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1945년, 이탈리아의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이탈리아 제국을 선포하였다.

1940년부터 1943년까지 이탈리아는 시칠리아 섬과 리비아 식민지 등 일부 영토를 제외하고는 독일의 수중에 들어갔었던만큼 국토 전체가 황폐화되어져있었다. 그러나 전후 기독교민주당, 공산당, 사회당을 축으로 하는 안정적인 삼당제가 자리잡고, 강력한 국가주도의 경제 발전 정책을 추구하여 1960년대 이탈리아는 전쟁의 참화를 딛고 최대의 경제적 번성을 누리게 되었다. 또한 1955년부터는 승전국 지위로 UN의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1960년대 초반에는 이탈리아 최대의 식민지였던 이탈리아령 리비아가 독립한 리비아 독립 전쟁의 여파로 잠깐 주춤하였다. 또한 베트남 전쟁 참전에 반대하는 68 혁명이 있었으며, 사회 혼란이 극대화되었다. 68혁명을 전후하여 극좌파 정당이 약진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정작 비슷한 시기 치러진 프랑스 총선과 마찬가지로 보수 세력이 68혁명에 대한 반발로 압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불어닥친 변화의 물결을 거부할 수는 없었으며 알도 모로 총리는 복지 제도를 확충하고 사회 자유화 조치를 취하며 이탈리아의 세속화와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1990년대 냉전의 해체 이후 이탈리아 제국 정부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에 개입하여,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코소보 등 수많은 국가들의 독립을 보장하는 대신 구동구권으로의 경제적 패권을 크게 넓혔다. 또한 그리스, 리비아, 튀니지 등 다른 지중해 국가들과의 경제, 군사, 정치적 협력도 강화되었고 1996년에는 지중해 경제 협력체를 출범시켜 지중해 지역의 패권자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2008년 일어난 리먼 사태와 뒤이은 대침체로 이탈리아의 경제는 크게 후퇴하게 되었다. 강력한 긴축 정책이 시행되면서 복지 제도는 축소되었고 황실의 부정부패와 탈세 논란까지 합쳐지면서 이탈리아의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대 현대까지 이탈리아는 세계 경제력 5위, 군사력 9위의 강대국이자, UN의 상임이사국으로서 유럽과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지리

산지가 많은 국가이다. 이탈리아 반도에는 아펜니노 산맥(Apennine)이 정맥처럼 뻗어있으며 발칸 반도와 이탈리아 반도 북부로는 알프스 산맥이 존재한다. 피렌체와 같이 산맥 한 가운데에 자리잡아 발전한 도시들도 있다. 북부 지역에는 그나마 평원이 많은 편이다.

주요 강으로는 포 강, 루비콘 강, 티베레 강 등이 있다. 알바니아 지역에는 오흐리드 호라는 제법 큰 호수가 있으며, 이 호수를 통해 북마케도니아에 접한다.

국토 대부분은 이탈리아 반도에 위치해있다. 그러나 1919년 제1차 세계 대전을 통한 생제르맹 조약에서 발칸 반도의 영토를 많이 차지하였기 때문에, 발칸반도의 해안가에도 영토가 길게 자리잡고 있다. 발칸 반도와 이탈리아 반도 사이에는 티그리아 해가 존재한다. 발칸 반도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지역은 알바니아 지역으로, 이 지역과 이탈리아 반도의 남부를 해저 터널로 연결하려는 계획이 있지만 길이가 84km에 달한데다가 대침체로 이탈리아의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무기한 연기중이다.

이탈리아령 에게해 지역은 대만의 진먼섬과 마찬가지로 본토와 멀리 떨어진 섬이기 때문에 본토의 지배가 잘 미치지 않는다. 이 지역에서는 이탈리아어보다 그리스어가 더 많이 쓰이고, 터키와 가까운만큼 당연히 터키어 화자 비율도 높다. 이탈리아에게는 주요 관광지 및 군 주둔지 외에는 별로 알려져있지 않지만 로도스 섬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편이다.

이탈리아령 에리트레아는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유일한 유럽 식민지이며, 동시에 아프리카 내에서 가장 삶의 질이 높은 지역중 하나이다. 역시 이탈리아 본토와는 멀리 떨어져있으며, 고도의 자치권이 주어져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의 강력한 동화정책으로 이탈리아어를 구사하는 화자는 매우 많고 대도시에는 이탈리아식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있다.

시간대

이탈리아 제국의 시간대는 이탈리아 표준시로 GMT(그리니치 표준시)+01:00부터 +03:00까지의 시간대를 사용한다. 반도국가인만큼, 영토가 가로로 넓지 않고 세로로 길쭉하여 대부분의 영토는 GMT+01:00 시간대에 속한다. 이탈리아령 에게해 제도는 GMT+02:00, 이탈리아령 에리트레아는 GMT+03:00을 사용하지만 국민 80% 이상이 GMT+01:00 시간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서머 타임이 적용되는 국가이다.

행정구역

이탈리아의 프로빈차와 레조네를 나타낸 지도

이탈리아의 행정구역은 레조네(Regione), 프로빈차(Provincia) 및 치타 메트로폴리타나(Città Metropolitana), 코무네(comune)의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어 공식명칭은 레조네는 주(州), 프로빈차는 도(道), 치타 메트로폴리타나는 광역시(廣域市), 코무네는 시(市)이다.

레조네

레조네는 광역 행정구역으로 24개가 있다. 그 중에서 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 트렌티노알토아디제, 발레다오스타, 사르데냐, 시칠리아, 알바니아, 달마티아, 이탈리아령 에리트레아, 이탈리아령 에게해 제도의 9개는 자치 레조네(regione autonoma)이다. 자치 레조네는 상대적으로 소수 민족이 많다는 이유 등으로 다른 레조네보다 더 많은 자치권을 갖는다. 레조네의 중심 도시는 대부분 명성이 있던 도시 국가 혹은 식민지의 수도여서 관광지로 유명하다.

프로빈차, 치타 메트로폴리타나, 코무네

레조네는 128개의 프로빈차로 나누어진다. 행정구역 개편으로 주요 도시와 주변을 포함한 일부 프로빈차가 치타 메트로폴리타나가 되어서 볼로냐, 제노바, 밀라노, 토리노, 베네치아, 로마, 피렌체, 레조칼라브리아, 나폴리, 바리, 칼리아리, 카타니아, 메시나, 팔레르모, 티라나, 아스마라, 리에카의 17개의 치타 메트로폴리타나가 만들어졌다. 일부 프로빈차는 중심 도시의 규모와 주위에 미치는 영향력이 작거나 주변 도시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광역시로 지정된 프로빈차보다 인구가 많은데도 치타 메트로폴리타나가 되지 않았다.

프로빈차는 9,164개의 기초 자치 단체인 코무네로 나누어진다. 코무네는 프로빈차의 통제를 많이 받는다.

황실

국성(國姓)은 사보이아(Savoia)이며, 1945년부터 현재까지 황작(皇爵)을 잇고 있고, 이탈리아 왕국 시대에는 1861년부터 1945년까지 왕작(王爵)이었다.

유럽 최후의 황제국인데다가, 로마 제국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그 위상과 권위는 남다르다. 영국 왕실, 일본 황실에 버금갈정도로 높은 인지도와 영향력을 가진 황실로 손꼽힌다. 현재의 황제는 제7대(황제국 건국으로부터 따질 시 제5대) 황제인 세바스티아노 1세이다.

막강한 권위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왕실, 태국 왕실과 마찬가지로 장래가 불안정한 황실로 분류된다. 선 황제 가브리엘 2세와 현 황제 세바스티아노 1세의 각종 도덕적 추문이 있는데다가 가브리엘 2세는 탈세 문제로 후안 카를로스 1세와 동방상련인 신세다. 1990년대만 해도 국민의 80%가 황실을 지지했지만 지금은 60%도 되지 않으며 때로는 공화정 여론이 왕정 유지 여론보다 높게 나올때도 있다.

이탈리아 황실은 이러한 여론을 잠재우고자 황실 이미지 개선을 추구하고 있지만 현 황제 세바스티아노 1세 역시 문제가 많은 인물이라 황실 이미지 개선은 당장으로서는 어려운 이야기이다.

이탈리아 황제


이탈리아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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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움베르토 1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움베르토 2세
제5대 제6대 제7대
가브리엘 1세 가브리엘 2세 세바스티아노 1세
로마제국 · 프랑크 · 중프랑크 · 신성로마 · 나폴레옹 · 사보이아 공작 · 사르데냐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이탈리아의 황제(이탈리아어: Imperatore d'Italia), 여성형 이탈리아의 여제(이탈리아어: Imperatrice d'Italia)는 이탈리아의 국가 원수이자 명목상의 정부 수반, 군통수권자이다.

현재의 황제는 2021년 즉위한 세바스티아노 1세이며 세바스티아노 1세 이전에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움베르토 1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움베르토 2세, 가브리엘 1세, 가브리엘 2세가 이탈리아의 황제로 즉위했다. 이중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이후부터는 1945년 이탈리아의 칭제(稱帝)이후 재위한 황제들이다.

유럽 최후의 황제작(皇帝爵)이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모든 유럽의 황제국이 해체되었으나,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이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스스로를 이탈리아의 황제로 선포하면서 황제국이 부활되었다. 특히나 제국의 수도인 로마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로마 황제의 계승작으로서의 정통성도 높다. 이탈리아의 황제는 알바니아의 국왕과 그리스의 국왕, 에리트레아의 국왕을 겸하기 때문에 공식적인 명칭은 전 이탈리아인의 국왕, 알바니아의 국왕, 그리스의 국왕, 에리트레아의 보호자이신 이탈리아 황제 폐하(이탈리아어: Sua Maestà Sua Maestà, già Re d'Italia, Re d'Albania, Re di Grecia, Protettore d'Eritrea, Imperatore d'Italia)이다.

의회 해산권, 총리 해임권, 군 통솔권 등을 가지고 있는 등 이탈리아의 황제는 다른 입헌군주제 국가의 국왕에 비해 큰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역시 국왕의 의사가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이탈리아 하원에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강력한 의지로 참전이 결정된 바가 있다.

그러나 1968년의 68 혁명 이후 이탈리아 황제가 가지는 권한은 점차적으로 줄어들었다. 다만 황제의 명목상 권한은 여전히 헌법 상에 남아있다.

영국과 더불어 현재의 군주국 국왕으로서는 드물게 동군연합을 하고 있으며, 단순한 식민지의 국왕을 겸하여 재위하는 것 뿐만 아니라 엄연한 주권 국가인 그리스의 국왕도 겸한다. 1973년 그리스 군사 정변으로 그리스 왕실이 폐위된 이후, 1975년 왕정복고가 이뤄질때 그리스 역시 로마의 일부라는 인식 하에 국민적으로 이탈리아의 황제가 그리스의 국왕을 겸해야한다는 여론이 높았고 이에 따라 1975년 12월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동군 연합이 이뤄졌다.

왕가

사보이아 왕가의 문장

사보이아 왕가(이탈리아어: Casa Savoia)는 이탈리아의 황제작을 잇는 가문이다.

사보이아 왕가는 과거 독일의 마그데부르크에서 기원한 귀족 가문으로 12~13세기에 프랑스의 사부아 지역에 정착하였다. 이후 1720년 사르데냐 왕국이 수립되었고, 1861년에는 이탈리아의 통일이 이뤄지면서 사보이아 왕가는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왕작을 차지하게 된다. 1945년에는 칭제가 이뤄지면서 합스부르크 왕가, 호엔촐레른 왕가, 로마노프 왕가에 이은 유럽의 황제 가문이 되었다.

대부분의 왕족은 로마에 위치한 황궁에 거처하며 일부는 사보이아 왕가의 정신적, 역사적 수도라고 할 수 있는 북부 토리노 지역에 거처한다. 사보이아 왕가 및 황실의 각종 행사에 들어가는 정부 예산은 연 예산의 0.23%~0.34% 가량이다. 이탈리아 황실 자체가 상당히 부유한 가문이기 때문에 정부의 예산으로 얻는 돈보다는 황실이 벌어들이는 돈이 더 많다. 그럼에도 일부 공화주의자들은 정부 예산이나 받아서 놀러다닌다며 황실 예산의 전면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공화제 전환 요구

이탈리아 공화정 전환에 대한 여론조사
Yougov / 2021년 7월 11일
입장 제정 유지 공화정 전환
전체 57% 35%

이탈리아의 황제는 지난 80여년간 이탈리아인들을 통합하는 상징적인 국가원수 지위를 유지하여왔으나, 최근 들어서는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 황실 폐지 및 이탈리아 공화국(Repubblica Italiana)으로의 전환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정치

부패인식지수 73점, 20위 (2017년)
민주주의지수 8.44점, 16위, 완전한 민주주의 (2021년)
언론자유지수 22.94점, 36위 (2020년)

세계적으로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이다. 동시에 남유럽에서 몇 안되는 군주국이다. 정치적으로는 매우 안정되어있으며 중도좌파 진영과 기독교 중도우파 진영의 양당 구도가 수십년간 이어져오면서 의회민주제가 잘 자리잡은 국가로 꼽힌다.

총리

의회

틀:이탈리아 국회의 원내 구성 이탈리아의 의회는 상원인 원로원(Senato)와 하원인 대의원(Camera dei Deputati)으로 나뉘어져있다. 원로원은 228석으로, 대의원은 559석으로 구성되어있다. 원로원 의석은 전원 지역구 의석이며 대의원 의석은 149석이 비례대표 의석으로 따로 배정되어있다. 원로원과 대의원의 지역구 의석은 둘 다 레조네를 기준으로 한 대선거구제이다. 다만 대의원은 인구 비례로 의석이 배분되는데 반해, 원로원은 일정 인구수를 넘으면 똑같은 의석을 배분받는다. 가령 700만명 이상의 레조네는 10명의 원로원 의석을 배정받는다. 500만~700만은 8명, 300만~500만은 6명, 100만~300만은 4명, 100만명 이하의 레조네는 2명으로 배정되어있다.

군소 정당의 원내 입성이 꽤 수월한 편이다. 현재 대의원에는 10개의 원내 교섭단체가 존재하며 원내정당은 그보다 더 많다. 이탈리아는 원내 정당의 수가 많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원내 교섭단체를 중심으로 의회가 돌아간다. 최대 교섭단체인 이탈리아의 봄이탈리아 공산당, 좌파연합, 사회주의와 해방당, 로마시민동맹, 이탈리아 공화주의 운동, 이탈리아 녹색당, 혁명적 사회당 등 7개 정당의 연합체이다. 반면 기독교민주당의 원내교섭단체처럼 단일 정당으로만 구성된 교섭단체도 존재한다.

원로원에 비해 대의원의 권한이 강력하다. 대의원은 총리 선출권, 예산 결정권, 총리 불신임권, 장관 신임권 등 대부분의 권한을 가지는 반면 원로원은 총리 선출권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원로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대의원에서 통과된 법을 일정 기간 계류시키며 그것을 심사하는 역할 뿐이다. 설령 원로원에서 심사가 거부되더라도 대의원 의원의 2/3가 원로원의 심사를 무시하기로 결정했다면 법안 통과가 가능하다. 또한 원로원 심사 거부는 의원 228명중 60%인 136명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한다.

따라서 원로원은 사실상 명예직이다.

정당

이탈리아의 원내 정당은 대의원 기준으로 총 22개이나[4], 원내 교섭 단체를 이루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보다 덜 혼란스럽다.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양당제는 중도우파 성향 기독교민주당과 중도좌파 성향 이탈리아 사회당으로 이루어져있었다. 기독교민주당은 엄격한 보수-기독교 성향의 정당이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68혁명을 겪으며 현재와 같은 자유주의-우파 성향의 보수 정당으로 굳어졌다. 또 알도 모로 총리 시절까지만해도 좌파 성향 인물들이 기독교민주당 내 상당수 있었으나 1980년대 이후로는 이탈리아 사회당으로 대거 빠져나갔다.

이탈리아 사회당은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당이나 현재는 예전과 같은 막강한 힘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와 유로존 사태 이후 긴축 정책에 찬동하며 좌파의 헤게모니를 극좌파 세력에게 넘겨준 탓이 크다.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내에서는 급진 좌파 세력인 이탈리아의 봄 선거연합이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제23대 이탈리아 대의원 선거를 통해 처음으로 사회당과 기민당이 아닌 극좌 세력이 집권하게 되었다.

군소 정당으로 이탈리아 급진당[5], 이탈리아 공산당[6], 북부동맹이 꽤 큰 편이고, 정당 연합 중에서는 저항자들[7]의 세가 강력하다.

분리주의 운동

이탈리아의 과거 식민지로는 이탈리아령 리비아, 이탈리아령 에리트레아,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 이탈리아령 에게해 제도, 이탈리아령 알바니아가 있었다. 이중 알바니아와 에게해 제도는 사실상 이탈리아와 본토로 취급되어 상당한 강도의 동화 정책이 시행되었으며, 투표권을 비롯한 각종 권리도 주어졌기 때문에 독립 요구는 사그라들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리비아 역시 알바니아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의 제2의 본토로 삼으려는 정책 하에, 1930년부터 1950년대까지 이탈리아를 공용어로 지정하고 자치 의회 설립을 허가하며 일정 부분의 참정권을 부여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이탈리아 정부가 1952년 리비아에서 진행한 핵 실험인 알레기에리 프로젝트가 리비아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또한 1954년 밀라노에서 개최된 리비아인들의 독립 요구 집회가 정부에 의해 무력진압되면서 리비아 내 독립 여론이 고조되었다. 동시에 리비아 내에서는 아랍 국가들이 서구 제국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에 맞서야한다는 미셸 아플라크아랍 사회주의에 자극을 받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1955년 리비아 최대의 독립 기구라고 할 수 있는 리비아 투쟁 전선(جبهة النضال الليبي, Fronte di Lotta Libico; FDLL)이 창립되었다.

FDLL의 로고

FDLL은 이탈리아의 통치에 반발하는 리비아 주민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빠른 속도로 세를 불렸고, 이탈리아의 통치에 유화적이었던 주요 리비아 정치인들을 공격하였다. 이에 반발한 이탈리아 정부는 리비아 지역에 군대를 진주시키면서 1957년 8월 11일 리비아 독립 전쟁이 발발하였다. 초기에는 대다수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한 FDLL의 승산이 낮았지만 점차 이탈리아 제국군의 유혈 진압이 리비아인들의 비토를 사게 되면서, FDLL은 최종적으로 전쟁에서 이탈리아군을 쫓아내고 이탈리아로부터의 독립을 이뤄냈다.

이러한 움직임에 놀란 이탈리아 제국 정부는 이탈리아령 에리트레아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의 독립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자치 의회 설립을 승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천억 리라에 달하는 경제 지원 정책을 추진하였고, 1974년부터는 본토 대의원(하원) 의원을 선출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였다. 또한 법적으로 에리트레아 주민들에게 이탈리아 본토의 시민권을 부여하면서 식민지와 본토의 차이를 없애 독립 여론을 잠재우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리트레아와 소말릴란드 내에서의 분리독립 여론이 높아지자, 이탈리아 정부는 1980년 7월 11일 투표를 실시해 양측 지역의 독립을 추진시켰다. 에리트레아는 40.6%대 59.4%로 독립 반대가 앞섰으나, 소말릴란드는 76.6%대 23.4%로 독립 찬성이 앞서,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는 소말릴란드 인민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탈리아의 에리트레아 통치는 에리트레아에게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1980년의 독립 투표를 통해 실질적으로 에리트레아가 얻은 것이 없다는 에리트레아 주민들의 반발감, 이후 개헌을 위한 레조칼라브리아(Reggio Calabria) 협정과 카타니아(Catania) 협정이 부결되었다는 점, 그리고 경제 발전의 이면 속에서 성장한 빈부격차 등으로 인해 독립 열기는 다시금 높아졌다. 그렇게 1997년 9월 16일 에리트레아의 2번째 독립 투표가 진행되었는데, 결과는 이러하였다.

  • 독립 찬성: 48.78% (123만 3,939표)
  • 독립 반대: 51.22% (129만 5,661표)

겨우 3%p 차이로 반대가 승리하면서 이탈리아 정계에서는 큰 파장이 일어났으며, 이러한 결과는 에리트레아가 2000년대 이후 이탈리아로부터 많은 배려를 얻어내는 기반이 되었다. 에리트레아는 인구 비례보다 많은 대의원 의원을 선출하며, 이탈리아령 에리트레아의 총독은 반드시 아랍어티그리냐어를 할 수 있어야한다. 이 때문에 에리트레아의 기자가 티그리냐어로 물으면 총독은 티그리냐어로 답하고, 아랍어로 물으면 아랍어로 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리트레아의 국경일이라고 할 수 있는 11월 1일에 에리트레아 최대의 독립주의 성향 좌파 언론인 <라 보체 델라프리카>(La Voce dell'Africa)는 꾸준히 에리트레아의 세번째 독립 투표에 대한 떡밥을 던진다. 실제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에리트레아의 경제적인 상황은 어려워졌고, 이에 따라 독립을 해야한다는 여론도 다시 반등하고 있다. 하지만 수에즈 운하를 바로 앞에 두고 있는 천혜의 환경 때문에 도리어 21세기에 들어서 무역적으로 크게 발전한 것은 물론, 이탈리아 제국군의 입장에서도 에리트레아는 아라비아 반도의 바로 코앞에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이탈리아 정부는 물론 에리트레아의 중산층과 고위층이 결코 독립을 지지할리가 없다는 현실적인 지적이 제기된다.

노동조합

이탈리아는 노동조합의 힘이 그 어떠한 국가보다도 강력한 국가이다. 전체 노동자중 63.5%가 노동조합에 가입되어있으며, 단순 생산직 노동자로만 칠 시 90% 이상이 노조 조합원이다. 노동조합의 힘이 강력한만큼, 이탈리아는 노동자들의 임금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노동권 역시 잘 보장된다. 사회노동복지부는 이탈리아 내에서 3번째로 급이 높은 기관이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노동 생산성 역시 매우 높아, 이탈리아가 경제적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탈리아는 노동조합 지지자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이상적인 국가로 받아들여진다.

군사

이탈리아 제국의 대외 전쟁·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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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제국군(이탈리아어: Esercito Imperiale d'Italia)은 유럽 내에서 손꼽히는 강군으로, 상비군 46만명, 예비군 8만 3천명을 운용하고 있다. 세계 군사력 순위는 9위(2021년)이다. 2021년 기준 국방비는 연간 530억 달러이다.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미군과 함께 군사 작전을 펼친 적이 많은 미군의 대표적인 동맹군이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 당시에는 내각의 결정에 따라 참전하지 않았고,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2008년 이후로는 최소한의 병력만을 주둔시켰다.

내부적으로는 리비아 독립 전쟁, 에리트레아 독립 전쟁과 같은 식민지들의 독립 전쟁은 물론, 그리스 내전이나 리비아 안정화 작전 등 주변 국가들의 안정과 친이탈리아화를 위하여 개입한 경우도 많다. 일부는 이러한 이탈리아군의 성격을 지중해 패권주의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적절한 군사작전의 사용을 통하여 현재 이탈리아 주위에는 이탈리아에 우호적인 국가들이 다수이다.

최근에는 티그라이 전쟁에 참전하고 있다. 에티오피아군과의 직접적인 교전은 피하고 있으며 어디까지나 티그라이 인민해방전선을 비롯한 민간인들의 안전 보장을 위한 치안군으로서의 참여이기 때문에 국내외적인 여론은 긍정적인 편이다.

다만 강력한 군사력과는 별개로, 역사적으로 이탈리아군이 잘 싸우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어왔고 이는 현재까지 유지되어오는 고정관념이다. 이탈리아군은 강성한 군사력에 비해 군사들의 사기와 용맹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경제

1인당 국민소득은 PPP 55,500달러, 명목 43,900달러로 선진국중 중간정도의 수준이다. 영국보다는 국민소득이 약간 높으며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이다. 총 GDP는 명목 3조 1,797만 달러 정도로, 규모 5위위며 유럽 내에서만 한정할 시 독일에 이은 2위이다.

또한 주변 국가들인 그리스, 코소보,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리비아, 튀니지, 몰타, 키프로스가 모두 이탈리아에 경제 의존도가 높은데다가 이탈리아도 이 점을 노려 해당 국가들과 경제 외교적 친선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경제권 규모는 자국 경제의 배 수준으로 큰 편이다. 사실상 독일이 EU에 미치는 영향력만큼이나 지중해에 미치는 영향력이 높다고 평가받으며 이를 통틀어 이탈리아 제국의 경제권을 지중해 제국(Mediterranean empir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96년 이후로는 이들 국가와 지중해 경제 협력체를 체결하여 한층 더 높은 수준의 경제 동맹을 추구하고 있다.

더불어 구 유고슬라비아 국가들과 민족적 갈등이 있는 세르비아나, 민족 문제가 복잡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제외하면 주변에 특별한 적국이나 안보 불안의 요소가 없기 때문에 해외 투자자들에게 있어서 매력적인 투자처로 꼽힌다.

복지

2003년에는 전체 GDP 대비 복지 지출 비용이 31.5%에 달하였다. 이 당시에는 실업을 해도 국가가 알아서 직장을 찾아주고, 대학교까지 무상으로 나오며 의료 비용과 주거 비용도 거의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북유럽을 제외하면 가장 복지가 잘 되어있는 국가로 손꼽혔다.

그러나 이러한 막대한 복지는 이탈리아의 재정적자를 불러왔으며 곪은 문제가 2008년의 세계 금융 위기로 폭발했다. 이후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기민당, 사회당, 녹색당 등이 협의하여 출범시킨 베티노 니콜라치 거국내각 하에서 대대적인 긴축정책이 이뤄져, 고세(高稅) 무상복지라는 정부의 오랜 정책 기조가 깨지고 복지는 상당 부분 후퇴하였다.

국민적으로는 이에 대해 국가가 어려우니 15~20년만 참고 복지를 부활시키자는 여론, 지금까지는 너무 과했으니 이제 조금 줄여도 된다는 여론, 말도 안된다며 당장 복구시키라는 여론 등 여러가지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2010년 대규모 긴축 이후로도 청년 실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데다가, 2018~2020년 사이 가브리엘 2세, 세바스티아노 1세 등 황족들의 부정부패와 사치가 폭로되면서 국민적으로 긴축 정책은 급속하게 지지를 상실했다.

취업

실업 문제, 특히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2020년 기준으로 전체 실업률은 11.5%인데 청년 실업률은 36.1%에 달해 청년 10명중 4명 가까이가 직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가장 심각했던 2009년 청년 실업률은 50% 이상이었으며 이후 긴축정책을 통해 복지를 줄이면서까지 일자리 창출에 애썼으나, 청년 실업률은 유의미한 하락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부동산

취업 문제와 달리 부동산 문제에 있어서는 복지선진국 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 내각 하에서 한 회사가 주택 단지를 지을때 정부가 주택 건설 비용의 7~9%를 부담하는 대신, 신축 주택의 15%를 정부 측의 소유로 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정부 소유의 저택은 저소득층 및 청년층에게 돌아가며 집세는 매우 저렴하다. 기본적으로 임대 형식이기 때문에, 돈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돈에 부담감을 가지지 않고 최소한의 거주 공간을 가질 수 있으며 돈을 더 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더 좋은 건물로 이사해서 거주한다.

물론 누구나 국가 소유의 주택에서 거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신청과 심사를 통하여 임대 여부가 결정된다. 그 지역의 평균적인 임대료보다 돈을 적게 벌거나, 혹은 더 많이 벌더라도 150% 미만의 수준으로밖에 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택을 우선적으로 임대하고 있다. 150%부터 250%까지 버는 사람들은 그 다음으로 임대권을 보장받으며 250%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은 임대권이 없다.

이 정책은 2010년 긴축 이후로도 유지되었기 때문에 현재도 이탈리아에서 집을 구하는건 어렵지 않은 편이다. 이 때문에 로마, 나폴리, 밀라노, 베네치아 등의 대도시의 중심지가 아닌 이상은 집값이 합리적으로 유지된다.

사회

종교

국민의 80% 이상이 기독교를 믿는 대표적인 기독교 강세 지역이다. 이탈리아 제국의 수도인 로마 내에 세계 가톨릭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바티칸 시국이 위치해있으므로 매우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교황청이 위치한 지역답게 개신교는 북부 독일어권 지역을 제외하면 거의 힘을 쓰지 못하며, 대다수의 국민들이 가톨릭교를 믿는다.

이탈리아의 교육 과정에서는 가톨릭의 교리를 초등학교 및 중학교 과정에 학습하며 이는 한국의 도덕 교육과 같다. 프랑스식 라이시테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이런 가톨릭 교육을 반대하는 입장도 있지만, 가톨릭은 국가의 통치 및 기초 윤리 이념으로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여론은 높지 않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기독교 신자들은 무조건적으로 기독교민주당에 투표해야한다는 조항이 있었고, 전반적으로 기민당으로 대표되는 기독교 세력이 집권한 기간 역시 매우 길었기 때문에 정치계에서도 기독교가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기민당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사회당 역시 기독교 좌파 세력에 속하는 집단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은 리비아나 시리아 등지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나, 이탈리아령 에리트레아, 알바니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탈리아 전체 인구의 7~8% 정도를 차지한다.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도 있으며 나치 시대의 박해를 피해 이탈리아로 건너온 유대인들이 많기 때문에 대도시에서는 유대교 신자의 비율이 5% 이상을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보았을때 유대교는 대략 0.8%정도로 집계된다.

그 외에 무종교인들은 8%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젊은층 사이에서는 비교적 무종교가 우세하나 무종교인들이 가장 많은 집단인 18세~24세에서도 무종교인의 비율은 35%를 넘지 않는다.

언어

이탈리아어가 국어(國語)로 지정되어있다. 또한 라틴어도 공용어이지만 실제로 라틴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종교학자들을 제외하면 극히 드물며 과거 로마 제국을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공용어로 지정된 것에 가깝다. 물론 완전히 껍데기만 공용어인건 아닌지라 주요 정부 시설이나 종교 시설에는 라틴어가 쓰여져있고 국가 주도의 기독교 행사에서도 라틴어가 사용된다.

주요 지방 언어로는 발칸반도에서 사용되는 크로아티아어, 슬로베니아어, 알바니아어, 이탈리아령 에리트레아에서 사용되는 아랍어티그리냐어가 있다. 이중 티그리냐어와 아랍어는 준공용어의 수준으로, 2000년에 제정된 에리트레아 자치법에 따라 에리트레아 총독은 반드시 아랍어와 티그리냐어를 할 줄 알아야한다.

그 외에는 북부 쥐트 티롤 지역에서 사용되는 독일어, 이탈리아령 에게해 제도에서 사용되는 그리스어 등이 있다.

치안

치안이 안좋은 대표적인 선진국이기도 하다. 1980년대에는 로마와 파리가 유럽 최악의 범죄 도시로 악명이 높았고 지금도 미국에서 이탈리아계 마피아의 위세는 대단하다. 이탈리아 내에서는 대대적인 탄압 및 조사를 통해 규모가 작아지긴 하였지만 시칠리아 등 남부 이탈리아 지역에서는 여전히 마피아의 영향력이 지대하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의 혼란상을 타고 알바니아로 넘어온 난민들이 폭증하며 알바니아계 마피아의 세력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알바니아계 마피아는 알바니아 주 정부는 물론, 이탈리아 정재계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므로 이탈리아의 새로운 사회문제로 자리잡았다.

그나마 1990년대 로마시에서 대규모의 치안 유지 작전을 펼침에 따라 잔도둑들은 많이 사라졌지만, 다른 대도시에서의 치안 문제는 여전하다. 게다가 2008년 이후 대침체로 경제가 안좋아지면서 치안 상태는 더더욱 나빠지고 있다. 시리아에서 건너온 일부 이슬람 난민들과 이에 맞서는 인종차별주의자들도 치안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결국 이런 약화된 치안은 2015년 밀라노 연쇄 테러 사건을 일으키는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이로 인하여 기존 총리였던 마리오 몬티가 사퇴해야했다.

마약이 합법화된 국가로 마리화나는 담배와 마찬가지인 취급을 받는다. 게다가 몰타를 통해 아프리카산 마약이 유럽으로 들어오는 일종의 빨대 역할도 하고 있어서 마약 중독자들이 늘어나는 요인이 된다. 이탈리아 정부는 1990년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으나 실패했고, 이후로는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상태이다.

당연히 많은 이탈리아인들은 정부의 무능한 치안, 마약 대처에 분노하고 있으며, 마약을 도로 불법화시키고 마약 카르텔과 마피아들을 모두 구속해버려야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다.

인종 차별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 역시 심하며, 루마니아에서 넘어온 루마니아계 이탈리아인에 대한 일종의 편견같은 것도 강하다. 특히 최근 시리아에서 난민들에 넘어오며 각종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자 시리아인들은 물론, 이슬람이 다수인 알바니아이탈리아령 에리트레아 출신의 사람들도 혐오 범죄의 대상이 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국민들의 절대다수는 이런 인종 차별에 반대하며 알바니아나 에리트레아, 리비아 출신의 이슬람 신자들이 사회로 여럿 유입되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슬람교에 대한 이탈리아 국민들의 여론은 긍정적이다.

문화

언론

Gli italiani possono scegliere tra più di 15 quotidiani nazionali e 300 quotidiani locali, ma in realtà affrontano il caso più o meno allo stesso modo, quindi gli italiani che leggono 315 giornali diversi hanno una sola mentalità e leggono ogni articolo.
이탈리아인들은 15개가 넘는 전국 일간지와 300여개의 지역 일간지를 고를 수 있는데, 사실 이들이 사건에 접근하는 방식은 거의 똑같기 때문에 315개의 다른 신문을 보는 이탈리아인들은 단 하나의 사고 방식을 가지고 제각각의 기사를 읽어나간다.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 1982년

영국과 마찬가지로 황색 언론이 판을 치는 국가로, 발행되는 신문 수는 많지만 정작 그중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언론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평가받는다. 극우파, 극좌파는 물론 중도파 언론들도 사건을 왜곡하거나, 자신들의 시선에 맞는 편향된 논조를 보이며 무엇보다도 돈이 되는 가십거리성 기사를 많이 작성한다. 이 때문에 언론 자유지수는 꽤 높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자국 내에서의 언론 신뢰도는 극도로 낮은 상태.

권위가 있는 전국 일간지로는 <템피 피나치아리 임페리알리>(Tempi Finanziari Imperiali), <치타디노 로마노>(Cittadino Romano), <이 레푸블리카니>(I Repubblicani), <포스타 델 메디테라네오 첸트랄레>(Posta del Mediterraneo Centrale), <라 보체 델라프리카>(La Voce dell'Africa) 등이 있다. 제법 급진적인 언론들도 있지만 대체로 논조가 중도진보 내지는 중도보수로 평가받는 신문들이다.[8]

다만 이런 신문들보다는 극좌 <일 파르티자노>(Il Partigiano)나 극우 <누오보 나치오날리스타>(Nuovo Nazionalista) 등 가십거리나 극단적인 정치 논조들을 다루는 타블로이드 언론들이 훨씬 많은 판매 부수를 자랑한다. 당연히 이러한 언론들은 이탈리아의 언론 신뢰도를 깎아먹는 원흉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타블로이드 언론들이 인기를 얻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기사들이 흥미진진한데다가 정론지들에 비하여 하류층의 여론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

지중해 경제 협력체의 회원국을 나타낸 지도
■ 회원국
■ 옵저버 회원국

기본적으로 EU와 NATO에 속해있는 친서방 국가이지만 소련,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등 동구권과 좋은 관계를 구축해왔기 때문에 서구권 내의 중립국이라고 불려왔다. 냉전 이후에도 친중, 친러까지는 아니지만 러시아, 중국과 경제적으로 협력하면서 제2세계 국가들과의 중립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미국과 동맹이면서도 미국을 경계하려는 외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라크 전쟁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결정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는 않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으로 이탈리아는 서구권과 동구권의 사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해왔다.

지중해 지역의 명실상부한 최대 패권자이다. 경제, 사회, 정치적으로 "지중해 제국"이라고 불릴만큼 지중해 권역에 대한 전반적인 영향력이 크다. 북아프리카 국가 및 지중해권 국가들과 친선 관계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자국의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 그리스, 리비아, 코소보, 튀니지 등 지중해 주변 국가들이 거의 다 우방국이며 그나마 이탈리아와 사이가 안좋은 국가로는 코소보 전쟁보스니아 내전 당시 격돌했던 세르비아 정도밖에 없다. 따라서 이탈리아의 지중해 패권은 변수가 없는 한 앞으로 꾸준히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동아프리카 지역은 서로는 에티오피아, 동으로는 소말릴란드가 위치해있고 두 나라 모두 치안 상태나 정치 환경이 좋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탈리아가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한계가 있다. 최근 티그라이 내전의 참전으로 인하여 에티오피아와 이탈리아의 관계는 크게 악화되었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이탈리아가 동아프리카 지역을 지중해와 같은 동맹국의 영토로 만들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리비아 관계

리비아 안정화 작전 당시의 이탈리아군

1925년부터 1962년까지 4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식민통치를 받았고, 독립할때도 평화적인 방법이 아닌 리비아 독립 전쟁을 통한 무력으로 독립한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사이가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이탈리아가 리비아 식민지에서 진행한 핵개발 실험과 경제 착취 등도 현대 리비아인들이 이탈리아를 좋지 못하게 보고 있는 이유이다.

하지만 1962년 리비아 독립 정부 설립 이래 리비아를 적국으로 돌리지 않기 위해 알도 모로 내각 하에서 경제원조가 이뤄졌고, 이탈리아 측에서 리비아 통합사회인민당미프타 압둘 하지레 정권을 지원하였기 때문에 이탈리아 정부와 리비아 정부 간의 관계 회복은 빠르게 이뤄진 편이다. 1986년 베니토 크락시 이탈리아 총리가 리비아 정부와 맺은 사브라타 협정을 통하여 이탈리아 정부가 리비아 독립 전쟁 당시의 유족들에게 피해 보상금을 전달하고 공식적인 사과를 함으로서 두 나라의 사이는 그렇게 나쁘지 않은 협력 관계로 변하였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이탈리아 정부가 리비아 안정화 작전을 통하여 민주화 시위대를 보호하면서 혁명을 간접적으로 지원하였기에 현 정부와 이탈리아 정부의 관계는 이전의 그 어떠한 정부보다도 좋다.

두 나라는 지중해를 건너 매우 가깝기 때문에 돈을 주고 받는 파트너 관계이기도 하다. 2015년 시리아 난민 위기 당시, 이탈리아 정부에서 시리아 난민 25만명을 장기적으로 리비아에 수용시키는 조건으로 정부 안정화 기금을 조달하였다. 한편으로 리비아는 이탈리아의 최대 석유 수입국인데, 이탈리아 내에서 소비되는 석유의 75.2%가 리비아 산이다. 리비아 정부는 유전을 개발하여 수익의 80%를 리비아 정부가, 20%를 이탈리아 기업이 나눠가지고 이를 이탈리아에게 비교적 싼 값에 파는 방식으로 석유를 이탈리아에 수출하고 있다.

대러 관계

이탈리아 공산당이 수십년간 거대 정당이었기 때문에, 냉전 시기 소련과 이탈리아의 관계는 비교적 우호적이었다. 또한 이탈리아가 전통적으로 어느 한 쪽의 편을 들 지 않는 외교술을 사용해왔기 때문에, 이탈리아는 기본적으로 NATO를 비롯한 여러 친미 기구들에 가입되어있으면서 바르샤바 조약기구에도 우호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정부가 들어선 현재도 러시아와 이탈리아의 관계는 좋지는 않지만 나쁘지도 않다. 러시아의 주요 침략 전쟁에 대해 이탈리아는 약간 한발 떨어진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많은 기업들이 러시아에 진출해있기도 하다.

이탈리아 공산당크렘린의 장남이라고 불릴정도로 소련과의 밀월 관계를 중시해온 정당이었다. 하지만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루이지 세바스티아노 서기장이 체코 슬로바키아 정부를 지지하면서 소련 공산당과 이탈리아 공산당의 관계는 크게 엇나갔다. 반대로 기독교민주당 정부는 소련 정부와 경제적 협력을 가졌다. 1950년대 공산당이 친소, 기민당과 사회당이 반소를 표방했지만, 이것이 뒤집어져 1970년대에는 기민당이 친소, 공산당이 반소를 표방하게 되었다. 이러한 독특한 관계는 현대에까지 이어져 공산당이 자주 외교와 반미-반러를 중시하는 반면, 기민당은 러시아와의 협력을 중시한다.

대미 관계

기본적으로는 협력 관계이지만 실제로는 그것보다 조금 복잡하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일반적으로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며, 미국의 팽창주의적인 외교관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냉전기나 현재나 소련-러시아라는 거대한 가상 적국이 있어왔기 때문에, 미국과 여러 군사 조약 및 경제적 조약을 맺어왔다.

다만 상술했듯이 이탈리아와 소련의 관계, 그리고 이탈리아와 러시아의 관계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서는 우호적이었던만큼, 이탈리아는 미국과 일단은 친하게 지내지만 의존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왔다. 냉전이 끝난 이후에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으며, 2003년 이라크 전쟁 파병을 거부하면서 미국과 사이가 나빠진 적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탈리아 국민들 사이에서 미국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이다. 2015년의 여론조사에서, 이탈리아 국민중 미국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민은 12.6%였으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민은 63.2%였고, 아무쪽도 아닌 시민은 24.2%였다. 정치적인 이유 외에도 미국인들이 멍청하고 게으르며 돈만 밝힌다는 식으로 편견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특히 남부 지역으로 갈수록 이탈리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대독, 대오스트리아 관계

이탈리아 북부 쥐트 티롤 지역에는 수십만명의 독일어 화자가 살고 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독일과는 친선 관계를 맺어왔었다. 이탈리아가 과거 쥐트 티롤의 독일어 화자를 탄압했던 과거가 있었지만, 이탈리아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독일 역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를 침공했던 과거에 대해 사죄하였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독일과 이탈리아의 현재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다.

이탈리아는 독일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휴양지이기도 하며 두 나라간의 문화 교류는 굉장히 활발하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알프스 산맥을 접하는데다가 지리적으로 중부 유럽과 남부 유럽의 가운데에 껴있다는 점에서 북부 이탈리아와 비슷하여, 오스트리아와 북부 이탈리아는 문화적인 정체성을 서로 공유한다. 북부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사람중 73.2%가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으며, 중부나 남부 혹은 발칸 반도에 사는 이탈리아인들의 독일어 구사 실력은 약간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이탈리아 정부는 독일어를 주요 외국어로 등록하고 학생들에게 일정 시간 이상을 의무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대그리스 관계

혈맹 관계로, 현 그리스 국왕을 이탈리아 황제가 겸하고 있기 때문에 양측 정부 및 국민들의 사이는 극히 우호적이다. 문화, 경제, 정치적인 교류가 잦고 이탈리아와 그리스 양국에서 모두 양측 언어를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2011년 그리스가 경제 위기에 내몰렸을때, 당시 이탈리아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음에도 그리스를 돕겠다고 한 이탈리아의 기업인들이 많았다.

역사적으로 그리스/로마 신화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역사문화적인 동질성이 높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모두 독일의 침공을 받았던만큼 그리스와 이탈리아 양국의 파르티잔들이 상호 지원했고 양측 정부도 끈끈한 동맹을 맺으며 끝까지 독일에 맞서 싸웠다. 이때 그리스의 망명 정부가 이탈리아령 리비아에 위치하였을 정도이다. 또 1970년대에는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의 독재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봉기인 그리스 내전 당시 이탈리아가 개입하기도 하여 그리스의 민주화를 지원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남키프로스 정부가 합동으로 북키프로스를 침공하였으나 실패했다.

일부 그리스인들은 이탈리아령 에게해 제도의 반환을 요구하지만, 오히려 에게해 제도의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다.

두 나라의 정당들은 서로 연계되어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정치는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 급진좌파연합이탈리아의 봄과, 범헬레닉 사회주의 운동이탈리아 사회당과, 신민주주의당기독교민주당과 제휴를 맺고 있다.

기타

  • 호주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의 이름인 Albanese는 "알바니아인"이라는 뜻이다. 이는 그가 알바니아-이탈리아계 호주인임을 나타낸다. 이 때문에 앨버니지가 2022년 호주 총리로 선출되었을 때, 이탈리아인들은 우리 친척이 호주 총리로 당선되었다며 많은 사람들이 호주 국기를 계양했다.

각주

  1. 이탈리아령 에리트레아를 제외한 영토는 360,847km2이다.
  2. 1861년부터 1971년까지는 가톨릭교가 국교였다.
  3. 이탈리아령 에게해 제도, 이탈리아령 에리트레아를 포함한다.
  4. 원로원은 당적 보유가 금지되어 전원 교섭단체에서 활동한다.
  5. 사회당 교섭단체와 연계중이다.
  6. 이탈리아의 봄 교섭단체와 연계중이다.
  7. 이탈리아 재건 파시스트당을 중심으로 한 3개 극우 정당(이탈리아 재건 파시스트당, 이탈리아는 영원하다, 신사회동맹)의 연합체.
  8. 아프리카 독립주의, 이탈리아 공산당 지지 성향인 라 보체 델라프리카는 극좌 논조이지만 사회 문제에 있어서는 중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