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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서원제도(近代書院制度)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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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871년 광무 정부가 서원 시설에 등급을 매겨 관리하는 제도.
'근대서원제도'란 명칭은 당시 광무 정부가 사용한 단어가 아니라, 직전에 사액서원 제도와 대조하여 '근대'에 나온 제도라고 후대에 이름을 붙인 용어이다. 근대서원제도란 용어에 대응하여, 19세기 이전에 사액서원 제도를 '중세서원제도'라고도 부르지만 자주 사용하는 용어는 아니다.
배경
등급
19세기에 들어 서양에서 과학기술이 들어오면서 교통과 통신이 발달했고, 정치체제 또한 근대적인 재상제도를 구축했다. 과거에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지만, 변화된 사회에서는 근대서원제도를 통해 서원의 전면적인 통제와 조직화가 가능했다. 국가성리학을 가능케 하는 한 가지 제도적 기반이기도 했다. 패전 이후 1946년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근대서원제도를 폐지하였지만, 격이 높았던 서원은 여전히 대우받는다. 과거에 격을 받았던 서원는 관련 자료에서 '옛 서원격(舊書院格) 〇〇書院'라고 알려주는데, 바로 근대서원제도에서 받았던 등급을 말한다. 홍살문 앞 표석에 옛 서원격을 새긴 곳도 많다. 비록 제도가 폐지되긴 했어도 과거에 높은 격을 받았던 서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중요하게 대접받는다.
이러한 서원격 매김은 한국 정부(또는 황실)의 입장에서 했기 때문에, 높은 서원격을 받은 시설이라고 반드시 격에 비례해서 한국 민중에게도 인기 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랜 세월 대대로 굉장히 인기 있는 서원인데도 인기에 비하면 서원격이 낮은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정부 또한 약간은 민중의 인기를 고려했고, 민중 또한 정부가 높은 사격을 내린 신사라고 하면 좀 더 각별하게 여긴 것 같다.
아무 격도 받지 못한 작은 서원를 무격서원(無格書院)라 했는데, 한국 전체에 있는 서원들 중 절반 이상이 무격서원였다. 무격서원이 새로이 격을 받거나, 또는 이미 격을 받은 서원이 또다시 다른 격을 받는 것을 열격(列格)이라고 하였다.
종묘(宗廟)
근대서원제도에서 종묘는 대한제국과 조선의 선왕, 유교에서 중시하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서 인을 널리 행한 인물인 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가장 존엄한 곳이라 하여 아예 서원격을 매기지 않았다. 사람들이 종묘에 서원격을 매긴다 어쩐다 하는 행동 자체를 불경하게 여겼으므로, 종묘는 '등급 외의 등급'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