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국민당 (개화)

Curio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3월 3일 (일) 10:59 판 (새 문서: {{개화 배너}}분류:개화분류:개화/정치분류:개화/정당 및 단체분류:개화/녹우크라이나분류:보수주의 정당분류:민족주의 정당 {{녹우크라이나 최고의회의 원내 구성 (개화)}} {| class="wikitable" style="font-size:10pt; color:#000; max-width:420px; float:right; border:2px solid #023AA7;" |- | colspan="2" align=center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 width:420px; height:95px;" | 파일:우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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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크라이나 최고의회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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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우크라이나 국민당
95석

우크라이나 민주연합
82석
야당

국민노동당
64석

인민의 종
33석

파스치
21석

기독교 민주당
9석
무소속 4석
공석 2석
재적 299석
우크라이나 국민당
영어명 Ukrainian Nationalist Party / UNP
오어명 Українська Націоналістична Партія[1] / УНAПA[2]
창당일 1931년 모월 모일
전신 진보당[3], 기독교 사회연합[4], 국민혁명동맹[5]
당대표 미하일로 데흐탸로우
원내대표
이념 보수주의 (녹오)
오극란 민족주의
정교회 우파
태평양주의
반공주의

역사적 :
온건 보수주의 (-1940s)
자유민주주의 (1950s-1980s)
자유보수주의 (1990s-2000s)
스펙트럼 우익

역사적:
중도우파 (-1940s)
빅텐트 (1950s-1980s)
중도우파 (1990s-2000s)
입법의원 95석 / 300석 (31.7%)
당색
청색 (#023AA7)
당원 수 13만 6천 명
국제조직 국제민주연합
공식 사이트
SNS | |

개요

녹우크라이나의 보수주의 우익 정당. 1931년 창당된, 녹우크라이나의 최고(最古) 정당으로, 녹우크라이나의 굴곡진 현대사를 모두 경험한 역사의 산증인(?)이다. 현 대통령세르히 푸르할이 속해있는 집권여당이기도 하다. 국회에서는 자유주의 우파 정당인 민주연합과 공동교섭단체를 형성하고 있다.

역사

제1공화국

우크라이나 국민당 지지 집회 (1935년, 볼로디보스토크)

1918년 제1공화국 헌법 제정 이후 녹오 최고 라다는 정당정치보다는 계파 중심의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대공황의 혼란 속에서 치러진 1930년 대선에서 중도좌파 성향의 코스트 안드루셴코가 중도우파 성향의 현직 대통령 이반 모졸렙스키를 누르고 당선되는 일이 벌어졌다. 건국 이후 12년동안 집권해오던 범우파 진영에게는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진보당, 기독교사회연합, 국민혁명동맹 등 원내의 보수-민족주의 성향 세력이 통합해 우크라이나 국민당을 창당하기로 합의했고, 1931년 7월, 볼로디스히드 야로슬라우 광장에서 창당대회를 열어 창당을 선포했다. 창당 후 첫 선거였던 1932년 총선에서는 친안드루셴코 세력에게 패배하기는 했지만 준수한 성적을 받았다.

국민당은 1934년 대선에서 시베리아 전쟁 당시 우크라이나군을 지휘했던 보리스 흐레샤티츠키 육군 대장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흐레샤티츠키가 재선에 도전하는 안드루셴코 대통령을 꺾고 당선되면서 국민당은 여당의 자리에 등극하게 되었다. 이후 1936년 소련군의 국경 침범으로 대규모 교전이 벌어지자 녹오 국민들의 안보 불안감이 가중되었고, 국민당은 이를 바탕으로 1936년 총선에서 최고의회 의석의 약 70%를 차지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어진 1938년 대선에서는 현직 대통령인 흐레샤티츠키를 다시 대통령 후보로 선출, 흐레샤티츠키가 승리하면서 여당의 지위를 지켜냈다.

극동전쟁과 망명정부

우크라이나 국민당 지도부 (1944년, 한성)

1940년 총선에서도 아슬아슬하게 과반의석을 확보하여 신승을 거두었으나, 의회가 개원하기도 전에 제3차 극동전쟁이 발발하면서 혼란에 빠졌다. 국민당은 범진보 정당인 사회당과 정쟁을 중단, 각종 전시법안들을 통과시켰으나 소련군의 진격으로 수도 볼로디스히드까지 함락되면서 한국 한성으로 당사를 옮겼다. 이후 앵커리지 조약으로 제1공화국이 멸망하면서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잔존한 당 조직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함께 한성에 자리를 잡았고, 당이 완전히 공중분해돼버린 사회당과 기타 군소정당 출신의 인사들이 합류하면서 약 40여 년 간 녹우크라이나 망명정부의 빅텐트 여당 역할을 하였다.

당시 우크라이나 국민당의 임시 중앙당사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해있었으며, 함경도와 간도 지역을 중심으로 각지에 지방당을 두어 우크라이나계 망명자들의 입당을 받았다. 우크라이나계 망명자들을 규합하고 본토에서 반공·반소 프로파간다를 펼치는 활동을 하였고, 망명정부의 인재풀 역할도 담당하였다. 당 운영 경비는 당원들이 납부한 당비와 대한민국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충당했다.

제2공화국

성향

역대 선거 결과

  1. 발음 : 우크라인스카 나치오날리스티치나 파르티야
  2. 발음 : 우나파
  3. 온건 보수주의 성향의 정당
  4. 기독교 민주주의 성향의 원내 회파
  5. 급진적 국민주의 성향의 원내 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