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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白石 | Baek Seo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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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백기행(白夔行) |
출생 | 1915년 10월 8일 |
평안북도 정주군 길산면 익성리 (現 평안북도 정주시 오산동) | |
사망 | 2001년 10월 9일 (향년 86세) |
평안북도 정주시 오산동 | |
직업 | 시인, 영어 교사 |
주요 수훈 | 공쿠르상 (1988년) 욱일대수장 (1994년) 문화공훈영예장 (1996년)[1] 레지옹 도뇌르 훈장 (1997년) 금관문화훈장 (2002년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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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대한제국의 시인.
논란의 여지가 없는 국문학 역사상 최고의 문학인[3]으로, 근대 문학은 물론 현대 문학에까지 막대한 족적을 남긴 저명한 시인이다. 풍요롭지는 않지만 정겹고 정신적인 안식처인 고향을 평안도의 토속적인 사투리를 통해 맛깔나게 표현한 그의 시는 박완서, 황순원, 이문구, 김소진 등 다양한 문학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생애
사망
2001년 10월 9일 새벽, 86세 생일이 지난 다음날 자신의 고향 집에서 잠을 자다가 평안히 죽음을 맞았다. 그는 사망 10일 전까지 농사를 짓거나 친구들을 만나 술자리를 가지는 등 아주 건강한 상태였는데, 감기에 걸린 후 폐렴으로 급속하게 전이되었고 이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주요 작품
여담
- 평생 명예나 물질을 좇지 않는 삶을 살았고, 명예박사 학위나 각종 서훈도 되도록이면 받지 않으려고 했다. 또 문학상을 수여받아 얻은 상금은 모두 후배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멋을 내는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아서 전형적인 모던보이 같은 복장을 하고 다녔다 한다.
- 고당 조만식 선생을 존경하여 따랐다. 평생 정치적인 일에 함구하던 그가 거의 유일하게 지지했던 정치인이 조만식이었다.
- 미당 서정주는 생전 백석을 싫어했는데, 그 이유는 후배 문인들이 자신이 아니라 백석에게 가장 먼저 가서 인사를 드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정주는 친일 문인, 친독재 문인으로 1970년대 들어 부정적인 방향으로 재평가를 받게 되었고 이에 많은 문인들이 새해 인사를 대원로 서정주가 아닌 백석, 조지훈, 황순원 등에게 드린 것이다. 정작 백석은 서정주의 시를 싫어하지 않았으며 일부는 고평가했다고 전해진다.
- 한국인 중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타진된 인물이기도 하였다. 대한제국 뿐만 아니라 만주, 일본, 중국, 대만 등 동북아시아 문학계에서 백석이 받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고, 1992년 오에 겐자부로가 상을 받으면서 백석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점쳐졌다. 그러나 백석은 그러한 명예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실제로 해외에서 숟한 문학상을 수상하고 많은 명예훈장을 수여받았지만 공쿠르상 같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출국까지 해 상이나 훈장을 받아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후대에 문학평론가 류원이 평가하길 그의 비정치적인 성격이 노벨문학상의 성향과 맞지 않아 수상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 말년의 그는 자신의 고향집에서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며 낮에는 농사를, 밤에는 시를 쓰는 일상을 반복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농사 짓는 솜씨가 너무 형편이 없어서 마을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줬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나중에는 나름 고수가 되었다고 한다.
- 그에 대해 다룬 평전으로는 송준, 안도현, 고은 등이 쓴 것이 있는데, 송준 선생은 백석과 나눈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토대로 백석의 자취가 닿은 모든 곳을 탐색해 1996년 백석 평전 1~4권을 내놓았다. 송준은 백석에게 자신의 평전을 보여주고 평가를 요청했는데, 백석은 다 읽은 후 말 없이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고은의 평전은 고은 시인 특유의 속성인 자뻑을 위해 쓰여진, 안 읽는것만 못한 열등감의 산실로, 비문과 해괴한 단어가 책의 반을 이루는 쓰레기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