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재영 (한나라)

한닷은 현재 진실·화해를위한한닷사정리위원회를 통해 리뉴얼되고 있습니다!
×
이 문서는 한나라닷컴의 공식 문서입니다. 한나라닷컴 연재자 외 수정을 금지합니다.
창명 양악삼재(兩岳三才)
변재영 백석 아사
변재영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동아일보 선정 지난 1천년간 대한제국 최고의 문인
[ 펼치기 · 접기 ]
동아일보가 2000년 투표로 선정한 "지난 1천년간 대한제국 최고의 문인"의 리스트이다.
1위 2위 3위 4위 5위
백석 서정주 박완서 윤동주 황순원
6위 7위 8위 9위 10위
김수영 박경리 이육사 허난설현 이상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김소월 조정래 아사 황석영 박지원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이광수 고은 피천득 류원 기형도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변재영 김만중 허균 김유정 김한길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조지훈 김지하 박목월 최남선 이윤택
31위부터는 링크 참조.
틀:이달의 문화인물 (한나라)
대한제국 문화훈장 수훈자
연도 1991년
이름 변재영
분야 문학인
보관문화훈장(3등급)
대한제국 문화훈장 수훈자
연도 2022년
이름 변재영
분야 문학인
금관문화훈장(1등급)

변재영
卞在英 | Byun Jai-young
출생 1923년 1월 12일
함경북도 경흥군 아오지면
(現 함경북도 경원시 아오지동)
사망 1951년 12월 10일 (28세)
대일본제국 도쿄도 분쿄구 도쿄대학의학부부속병원[1]
직업 문학가
수훈 금관문화훈장 (2022년 사후 추서)
보관문화훈장 (1991년 사후 추서)
[ 펼치기 · 접기 ]
본관 초계 변씨
학력 경흥공립보통학교 (졸업)
오타니 고등여학교 (졸업)
히로시마대학 히로시마문리과대학 문학부 (철학 / 제적)[2]
활동 기간 1944년 - 1951년
부모 아버지 변응수
어머니 최길순
배우자 최현호
자녀 아들 최영식
데뷔작 창세 (1944)
유작 탁란 (1951)
주요 작품

개요

스러지는 나의 나신을 탐하는 그의 손길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으리오. 어찌 눈물겹지 않으리오.

소설 《쿄오또오 강변 우에
그렇게 묘월[3]의 황혼에서, 그렇게 외지의 팔바일[4]에서
나는 저주받은 선인으로서의 안식을 하사받았습니다.

소설 《경성 데모크라시

변재영(卞在英, 1923년 1월 12일 ~ 1951년 12월 10일) 은 대한제국의 문학가이다.

생애

납치 사건 이전

1923년 1월 12일, 경흥군 아오지면 (現 경원시 아오지동)에서 태어났다. 경흥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일본 전근을 따라 오사카의 오타니 고등여학교에 입학했다. 1943년에는 관북동양은행 행장의 아들인 최현호와 결혼했다. 이후 히로시마대학 히로시마문리과대학 문학부에 입학하며 집필 활동을 시작했다.

데뷔작인 《창세》를 니시닛폰 신문에 기고하며 본격적인 문학가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는데, 가명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히로시마대학에 다니는 미모의 시인이라는 정보가 퍼지며 그녀의 앞으로 러브레터가 물밀려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어 다음 작품인 《산책로》를 기고할 적에는 "사귀어주지 않겠다면 죽이겠다."는 살해 협박까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변재영 납치 사건

1944년 12월 27일, 새벽 1시경. 귀가하던 중 히로시마시에서 괴한에 의해 납치되었다. 일주일간의 수사 끝에 시 외곽의 창고에서 발견되었으나 범인은 이미 도주했고, 변재영 본인은 일주일 동안의 강간으로 인한 영양실조와 탈수, 혼수상태에 빠진 채로 발견되었다.

히로시마 시내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임신한 것 확인되었고, 1945년 5월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납치 사건 이후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이후 납치 사건을 토대로 시 《충간》을 발표하며 이전처럼 왕성한 작품 활동을 계속할 것으로 보였으나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자폭탄으로 인해 다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강간으로 인해 임신한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알 수 없는 데다 정상적인 출산조차도 담보할 수 없게 되자 극도의 불안증세와 우울증에 빠졌고, 마약성이 있는 약을 남용하기 시작했다.[5]

이런 정신적 불안이 처음 반영된 것은 단편소설 《경성 데모크라시》인데, 일제강점기에 독립과 민주주의를 꿈꾸던 청년들이 자라서 돈, 마약, 여자와 명예에 빠져 독재에 부역한다는 내용은 당시 사회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 이후로 발표되는 작품들 역시도 퇴폐적이고 암울한 분위기의 작품이 주를 이뤘으며, 그 강도는 작품을 써 내려갈수록 점차 세졌다.

소설 《뇌내강간》을 발표한 직후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남편과 주치의를 설득해 홋카이도로 한 달간의 여행을 떠났다. 이때의 경험으로 시 《여로》를 발표하면서 정신적으로 회복되는가 싶었지만, 한국전쟁에서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는 비보에 충격을 받으며 불안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유작인 소설 《탁란》은 무너질 대로 무너진 그녀의 정신상태를 반영하듯 살인, 강간, 자살을 주제로 했으며, 너무 높은 수위로 인해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정작 출판된 책은 고국에서 '사회 불안을 야기하는 음란·퇴폐 간행물'이라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되었다.

변재영은 한국 정부에 지속해서 《탁란》을 금서에서 해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스물아홉번째 생일을 약 한 달 남기고 숨을 거뒀다.

대표 작품

작품 목록

구분 제목
(일어 제목)
발간 연도
창세
創世
1944년
산책로
遊歩道
충간
虫姦
1945년
소설 경성 데모크라시
京城デモクラシー
1947년
자궁, 정액, 임신
子宮、精液、妊娠
쿄오또오 강변 우에
京都の川辺の上で
1948년
뇌내강간
脳内強姦
1950년
여로
旅路
어머니, 아버지
おかあさん,おとうさん
락동강
洛東江
1951년
소설 탁란
托卵

여담

둘러보기

  1.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폭으로 인한 사망
  2. 사망으로 인한 제적
  3. 음력 4월
  4. 단두대, (Fallbeil)
  5. 출산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고, 아이 역시 신체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