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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네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4월 5일 (수) 23:04 판

김두봉 내각

김두봉 내각
金枓奉內閣 | Kim Tu-bong Cabinet
1950년 5월 19일 ~ 1950년 11월 28일
출범 이전 이후
김성수 내각 1차 이승만 내각
총리 김두봉 / 제18대
부총리 1대(~1950.8.19.) 오위영

2대 이관술(1950.8.21.~1950.11.28.)

여당 한독당.png

-민족혁명그룹
한독당.png -반제동맹

연립여당 진보당
노동당
호헌동지회(~1950.8.17.)
▲장도영을 육군대장에 임명하는 김두봉 내각총리대신

개요

"금일 이 자리에서, 우리는 인민의 의지와 자유의 약한 연대가 독재와 권위의 강한 억압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육당 홍명희, 제21대 중추원 개회에서 축사 中-

김두봉 내각한국독립당의 계파 민족혁명그룹반제동맹, 그리고 그 영수 김두봉을 기반으로 하는 대한국의 내각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주의의 황금기이자 구좌파의 마지막 불꽃인 시대이다.[1]

배경

김성수 내각4.19 사태[2]이후 내각불신임결의로 해산하자, 중추원선거를 앞두고 한국독립당 내 좌파들이 크게 인기를 싹쓸이했다. 이때 민전출신 인사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이들은 기존 한국독립당의 혁신계파 개조동맹을 장악하였다. 이후 김원봉 등의 극좌 민족주의 인사들은 민족혁명그룹을, 이주하, 이관술 등의 조선공산당 재건파, 한성콤그룹 계열의 전설적 사회주의 인사들은 반제동맹을 창립하며 중추원에 입성하였다. 이외에도 사회자유주의,사민주의,민사주의 등의 온건/변절 계통의 조봉암, 서상일, 장건상 등은 한독당에서 탈당, 진보당을 창당하여 중추원의 좌파들은 크게 세 그룹으로 분열하였다.

반면, 김성수 불신임에 일조한 우파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결집했다. 호헌동지회는 구파동지회 출신의 신익희, 유진산, 조병옥 등과, 신풍정안회 출신의 장면, 오위영, 박순천, 족청 출신의 이범석, 장준하, 신정동지회의 이승만, 윤치영 등의 당내 우파들의 총본산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15대 중추원선거를 당내 좌파가 싹쓸이하면서, 김두봉을 중심으로 하는 민혁그룹•반제동맹•진보당•노동당의 대연정이 수립되었다.

내각

부처 이름 정당
내무부대신 조만식 반제동맹
외무부대신 김규식 무소속
재무부대신 백두진 호헌동지회
법무부대신 허헌 반제동맹
노동부대신 김철수 반제동맹
군무부대신 김경천 무소속
농림부대신 조봉암 진보당
체신부대신 정일형 호헌동지회
상공부대신 이동화 진보당
공보부대신 최현배 민혁그룹
문교부대신 김태준 반제동맹
보건부대신 김용범 민혁그룹

성향

대체로 사회주의 성향으로 분류된다. 총리대신 김두봉은 사회주의 성향이고, 여당인 민혁그룹은 좌파 민족주의, 반제동맹은 공산주의나 그 하위 이념, 연립여당인 진보당과 노동당은 민사주의, 사자주의, 자사주의 등으로 분류되며, 호헌동지회는 자유주의부터 우익권위주의까지의 중도우파~극우의 느슨한 연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각 역시 사회주의 인사들이었으며, 호헌동지회 내의 자유주의 성향의 인사들 또한 입각했다.

취임사

존경하는 대한의 인민 여러분, 노농인민 여러분, 대한의 뿌리인 우리의 동지 여러분.

나는 인민 동지 여러분과 같은 위치, 같은 시선에서, 동지들이 바라보는 바로 이 자리에서 제18대 총리대신에 취임할 것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대한인민 동지 여러분. 우리는 지난 수 개월 간 파렴치하게도 노농인민의 것을 앗아가 제 배를 불리겠다고 소위 자신들이 주창한 '민주주의'를 더럽히는 꼴을 목도했습니다. 민중의 총의인 의회가 어떻게 더럽혀지는가, 우리는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저들의 속임수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우리 인민대중들의 눈과 귀는 막지 못했습니다. 인민대중의 자발적 연대와 그 행동은 스스로 악적을 심판했습니다. 배를 이끌어 가는 것이 바람이고 바다이듯, 대한의 역사와 이 제국을 움직이는 그 근원이 바로 인민대중 여러분임은 영원불변의 사실입니다.

부산에서, 마산에서, 평양에서, 원산에서, 공장에서, 논밭에서, 사무실에서, 전국토에서 평등과 해방을 부르짖으며,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열사들의 목소리는 여기에 남아 전국토를 흔들고 있습니다.

수많은 민중의 목소리가 그대로 의회에 전달된 결과로서, 민중의 바람으로서, 정계는 다시 한 번 요동쳤습니다. 그들은 우리 위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비열한 속임수로 인민을 속이려 했던 이들은 처참히 무너졌으며, 양심적 지도자들과 지식인의 비판과 연설로도 막지 못한 절대권력을, 오직 인민만이, 인민 혼자만이 무너뜨렸습니다.

우리 내각이 동지 여러분께 단호히 약속드리는 것은, 첫째로 인민의 의지를 따르는 것은 물론이요, 노농인민 동지 여러분의 '해방'을 통해 국가의 기본적 위업이자 이념을 달성하는 것이요, 둘째는 노동대중의 복지실현이요, 셋째는 민족위업 달성을 위한 화합적 모습의 실현이요, 넷째는 구시대 유물의 해체이며.....(하략)
-백연 김두봉, 종로사거리에서 취임식 中-
  1. 다만, 학계 내의 일부 시각에서는 제2차 원산 강령 이후 내각에 입각할 때부터까지를 구좌파로 보기도 한다.
  2. 김성수 내각의 권위주의적 정책과 부패에 반하여 일어난 반정부적인 시위. 부산•마산 등지에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