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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국민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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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명 | Ukrainian Nationalist Party / UNP |
오어명 | Українська Націоналістична Партія[1] / УНAПA[2] |
창당일 | 1931년 모월 모일 |
전신 | 진보당[3], 기독교 사회연합[4], 국민혁명동맹[5] |
당대표 | 미하일로 데흐탸로우 |
원내대표 | 올렉산드르 가가멜 / 4선 |
이념 | 보수주의 (녹오) 오극란 민족주의 정교회 우파 태평양주의 온건 보수주의 (-1940s) 자유민주주의 (1950s-1980s) 자유보수주의 (1990s-2000s) |
스펙트럼 | 우익 빅텐트 중도우파 (-1940s) 빅텐트 (1950s-1980s) 중도우파 (1990s-2000s) |
입법의원 | 95석 / 301석 (31.6%) |
당색 | 청색 (#023AA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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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 수 | 13만 6천 명 |
국제조직 | 국제민주연합 |
공식 사이트 | |
SNS | | | |
개요
녹우크라이나의 보수주의 우익 정당. 1931년 창당된, 녹우크라이나의 최고(最古) 정당으로, 녹우크라이나의 굴곡진 현대사를 모두 경험한 역사의 산증인(?)이다. 현 대통령인 세르히 푸르할이 속해있는 집권여당이기도 하다. 국회에서는 자유주의 우파 정당인 민주연합과 공동교섭단체를 형성하고 있다.
역사
제1공화국
우크라이나 국민당 지지 집회 (1935년, 볼로디스히드) |
1918년 제1공화국 헌법 제정 이후 녹오 최고 라다는 정당정치보다는 계파 중심의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대공황의 혼란 속에서 치러진 1930년 대선에서 중도좌파 성향의 코스트 안드루셴코가 중도우파 성향의 현직 대통령 이반 모졸렙스키를 누르고 당선되는 일이 벌어졌다. 건국 이후 12년동안 집권해오던 범우파 진영에게는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진보당, 기독교사회연합, 국민혁명동맹 등 원내의 보수-민족주의 성향 세력이 통합해 우크라이나 국민당을 창당하기로 합의했고, 1931년 7월, 볼로디스히드 야로슬라우 광장에서 창당대회를 열어 창당을 선포했다. 창당 후 첫 선거였던 1932년 총선에서는 친안드루셴코 세력에게 패배하기는 했지만 준수한 성적을 받았다.
국민당은 1934년 대선에서 시베리아 전쟁 당시 우크라이나군을 지휘했던 보리스 흐레샤티츠키 육군 대장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흐레샤티츠키가 재선에 도전하는 안드루셴코 대통령을 꺾고 당선되면서 국민당은 여당의 자리에 등극하게 되었다. 이후 1936년 소련군의 국경 침범으로 대규모 교전이 벌어지자 녹오 국민들의 안보 불안감이 가중되었고, 국민당은 이를 바탕으로 1936년 총선에서 최고의회 의석의 약 70%를 차지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어진 1938년 대선에서는 현직 대통령인 흐레샤티츠키를 다시 대통령 후보로 선출, 흐레샤티츠키가 승리하면서 여당의 지위를 지켜냈다.
극동전쟁과 망명정부
우크라이나 국민당 지도부 (1944년, 한성) |
1940년 총선에서도 아슬아슬하게 과반의석을 확보하여 신승을 거두었으나, 의회가 개원하기도 전에 제3차 극동전쟁이 발발하면서 혼란에 빠졌다. 국민당은 범진보 정당인 사회당과 정쟁을 중단, 각종 전시법안들을 통과시켰으나 소련군의 진격으로 수도 볼로디스히드까지 함락되면서 한국 한성으로 당사를 옮겼다. 이후 앵커리지 조약으로 제1공화국이 멸망하면서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잔존한 당 조직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함께 한성에 자리를 잡았고, 당이 완전히 공중분해돼버린 사회당과 기타 군소정당 출신의 인사들이 합류하면서 약 40여 년 간 녹우크라이나 망명정부의 빅텐트 여당 역할을 하였다.
당시 우크라이나 국민당의 임시 중앙당사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해있었으며, 함경도와 간도 지역을 중심으로 각지에 지방당을 두어 우크라이나계 망명자들의 입당을 받았다. 우크라이나계 망명자들을 규합하고 망명정부의 인재풀 역할도 담당하였다. 라디오 스보보다를 운영하며 본토에서 반공·반소 프로파간다를 펼치는 활동을 하였다. 당 운영 경비는 당원들이 납부한 당비와 대한민국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충당했다.
제2공화국
성향
다양한 세력들이 모여 만들어진 정당이었던만큼 1공화국 당시에는 중도부터 우익까지 보수 빅텐트 성향을 가졌으나 전반적으로 중도우파 성향이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및 반공주의를 공통적으로 띄었으나 당을 구성하던 여러 계파들의 세부적 정치성향은 천차만별이었다. 3차 극동전으로 녹우크라이나 제1공화국이 멸망하고 한성으로 망명하였을 때에는 그 스펙트럼이 훨씬 더 넓어졌다. 전쟁으로 공중분해된 여러 진보 정당의 망명객들이 개별적으로 국민당에 입당하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망명정부 당시 국민당은 녹우크라이나 독립 및 민주화 정도 외에는 소속 정치인들을 아우를 수 있는 이념이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포괄정당의 모습을 보였다.
소속 대통령
역대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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