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 (민국 38)

Sindan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12월 5일 (화) 19:4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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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관 설명 ]
[ 세계관 설명 ]
중국이 제국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망국의 인간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노예로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민국 38(民國三十八)은 가장 대표적인 대체역사 소재 중 하나인 중화민국국공내전 승리를 가정한 세계관 입니다.
민국 38년(1949년) 중화민국의 국공내전 승리 이후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변화한 여러 정치, 사회, 문화,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틀:소련 자유민주당 총재 (민국 38)


초대 소련 자유민주당 총재
블라디미르 볼포비치 지리놉스키
Владимир Вольфович Жириновский
Vladimir Volfovich Zhirinovsky
출생 1946년 4월 25일
소련 카자흐 SSR 알마아타
사망 2022년 4월 6일 (향년 75세)
소련 러시아 SFSR 모스크바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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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볼프 아이델슈타인
어머니 알렉산드라 파블로브나 지리노브스카야
배우자 갈리나 레베데바[1]
자녀 2남 1녀
학력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법학과 / 졸업)
종교 러시아 정교회
신체 176cm
최종 당적 러시아 자유민주당
지역구 슈첼코프스키 자치구
의원 선수 8
의원 대수 13, 14, 15, 16, 17, 18, 19, 20
약력 소련 자유민주당 총재
자유민주당 파벌 대표
제13·14·15·16·17·18·19·20대 연방회의 의원 (슈첼코프스키 자치구 / 소련 자유민주당)

개요

Владимир Вольфович Жириновский
Какие метеориты? Никогда нигде ничего не падает, у вселенной свои законы, там ничего никогда просто так не упадет!
То, что падает, это делают люди – поджигатели войны и провокаторы!
뭔 놈의 운석? 운석은 어느 곳에도 안 떨어져! 자연에도 법칙이 있어. 거기엔 아무 이유 없이 떨어지는 법이 없다고!
아, 떨어지는 곳이 있긴 하네. 전쟁을 부르짖는 병신들과 도발꾼들에게는 말이야!

소련의 정치인, 변호사, 민주화 운동가. 1989년 자유민주당의 창당 이후 2022년 사망 할 때 까지 소련 자유민주당의 대표직을 역임하였다.

생애

1946년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인 알마아타에서 우크라이나 유대인인 아버지와 러시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64년에 모스크바로 이주하여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법학 학위를 수여받았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1998년에는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크렘린 사태 이후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이 여론의 환기를 위하여 일부 야당들의 창당을 허가하자 당시로써는 관제야당이던 소련 자유민주당의 창당에 참여하였고 이후 초대 대표로 선출되었다.

1993년 소련 최고 소비에트 선거당시 하원인 연방의회 의원으로 슈첼코프스키 자치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는 선거운동 당시 과격하고 강경한 일명 사이다 발언으로 높은 인기를 구사하였으며 당시 개혁개방으로 인해 급속도로 커져버린 빈부격차에 신음하던 많은 소련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또한 공산당의 부패를 비난함과 동시에 자신의 변호사 경력에서 나오는 법학지식을 섞어말하며 토론장에서 공산당 후보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모습은 소련인들로 하여금 그를 부패한 공산당의 대안으로 보게 만들었다.

이에 소련 당국은 자유민주당을 해산시키고 지리놉스키를 구속시키려고 시도하였으나 소련인들의 반발을 의식하여 무산되었다. 지리놉스키는 소련인들의 지지에 힘입어 1997년 총선에서도 재선되었고 이후 당대표 선거에서도 재선되면서 당의 주도권을 완전히 휘어잡고 자유민주당을 위성정당에서 독자정당으로 탈바꿈시켰다. 자유민주당에 이러한 시도에 소련 정부는 자유민주당에 대한 탄압시도를 멈추지 않았고 지리놉스키는 이에 반발하여 소련 공산당을 더욱 신랄하게 까기 시작했으며 결과적으로 이는 자유민주당의 당새를 확장시켜주는 결과를 낳았다.

겐나디 야나예프 서기장이 퇴임하고 니콜라이 리즈코프가 서기장에 취임하자 지리놉스키는 잠시 공격의 강도를 낮추었고 푸틴 정권 초기까지도 상당히 잠잠한 행보를 보였으나 2018년 푸틴 서기장이 임기 제한 규정을 폐지하고 푸틴 사상을 헌법에, 그것도 공개투표로 추가해버리자 칩거를 깨고 나타나 "우리에겐 죽을때까지 정치지도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라는 발언을 하며 푸틴을 비판하였다. 또한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대놓고 푸틴을 비판하는 등 노골적인 반푸틴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9년 칼리닌그라드 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특별행정구 정부와 소련 당국의 무력진압에 대해서 비판하며 시위대를 지지하였으나 일부 시위대의 독립이나 독일 재편입 주장에 대해서는 선을 그으며 단호하게 비판하였다. 또한 2020년 홍콩 보안법이 홍콩 입법회가 아닌 소련 최고 소비에트에 상정되자 반대표를 던졌으며 결과적으로 통과되자 "이럴거면 우리 최고 소비에트는 없어지는 것이 낫습니다."라며 사실상의 거수기 역할을 하는 최고 소비에트를 비판하였다. 또한 동년 7월 20일 자당소속 하바롭스크 지방 지사 세르게이 푸르갈이 푸틴 총서기에 의해 재명당하자 강하게 반발하였다.

2020년 초반 일명 볼고그라드 폐렴이라 불리는 코로나 19가 확산됨에도 불구하고 소련 정부가 오히려 진실을 알린 의사들을 감금하고 상황이 악화되자 무차별적인 봉쇄로 일관하는 태도를 보이자 정권을 향한 강도높은 비난을 이어나갔으며 이와중에 푸틴 서기장이 크렘린을 버려두고 코로나 19 대처를 미하일 미슈스틴 장관회의 주석에게 위임한 채 교외로의 몽진을 떠나자 "이 서기장은 조국을 살리는 서기장이 아니라 조국을 망치는 파괴의 서기장이다."라고 비판하였다.

한편 2021년 들어서 푸틴 서기장이 국가주석 3연임을 위하여 대중문화와 기업에 대한 탄압의 수위를 높임과 동시에 제로 코로나 정책을 밀고 나가자 "참 나쁜 서기장이다. 인민이 불행하다. 서기장 눈에는 3선밖에 안 보이느냐?"라며 다시한번 비판하였다.

사망

2022년 4월 6일, 코로나 19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이미 2022년 2월부터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감염으로 폐의 70% 이상이 손상되어 인위적 혼수상태에서 치료를 받던 와중이라고 알려졌다. 그의 사망에 대하여 미국, 독일, 폴란드 등은 애도의 뜻을 밝혔으며 소련 전역에 추모의 물결이 일었다. 또한 정적이라 평가받던 푸틴 서기장 또한 그를 조문하였다. 한편 소련 정부는 그의 사망이 이전 옐친의 사망으로 인해 비롯된 크렘린 사태와 같이 새로운 시위를 불러 일으키는 것을 염려하여 통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미국 CNN의 보도가 있었다.

2022년 10월 소련 공산당 당대회에서 푸틴 서기장의 3선이 확정되자 소련 내에서의 반발이 거세지는 가운데 지리놉스키의 무덤에 참배객이 늘자 그의 무덤이 위치한 공동묘지가 봉쇄되었다. 2022년 야고슬라브 노동자 학살사건으로 인해 기폭된 소련 시위에서 지리놉스키의 사진이 시위의 상징으로 등장하며 사망 이후에도 그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다.

비판 및 논란

평가

여담

어록

선거 이력

소속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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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2022-2024년 소련 시위 관련문서 (민국 38)


  1. 1971년 결혼, 1978년 이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