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일몽 혁명위원회] 제2차 전원회의 결과 보고

혁명전사에 관한 론의에서 본 혁명위원회(이하 위원회)는 국가설립의 력사적 현실성을 구성하는 기본원칙으로 ''개연성·관계성·관찰성''의 세 요소를 확립하여야 한다고 인정하였다. 이에 따라 디스또삐아적 세계관의 20세기 력사 형성을 이 세 원칙에 따라 검토하기로 결정하였으며, 력사는 ''혁명전사·건국후사·당사''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정리하기로 하였다.
위원회는 혁명전사의 기본과업을 국가설립의 개연성 확보와 쏘련과의 관계 설정으로 규정하였다.
이를 위하여 혁명전사의 핵심적인 개연성은
▲스딸린의 모택동에 대한 불신 ▲씨비리횡단철길의 미완성과 만철의 전략적 가치 ▲고강의 정치적 야심
이 요소가 서로 긴밀한 관계성을 이루는 것으로 설정하기로 하였다. 위원회는 이러한 설정이 관찰성의 측면에서도 충분한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한편 신중국 건설을 둘러싼 국공내전의 전개과정에서 ''동북이 없는 모택동이 과연 승리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위원회는 설정상의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장개석이 불의의 사고로 정상적인 통치능력을 상실하였다는 가정을 도입하기로 결정하였다.
건국후사의 기본과업은 국가주석의 설정과 시대별 정책의 검토로 규정하였다. 주석 인선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으나,
부작의와 마점산 등 기존 설정 인물들을 적극 재활용할 가치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또한 건국후사의 디스또삐아적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의견에 따라 국가적 숙청사건을 추가하기로 하였다.
우선 몽골인민공화국과의 관계에서는 처이발상이 스딸린주의를 신봉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갈등이 발생하므로 몽골계에 대한 숙청사건을 설정하기로 하였다.
아울러 남쪽의 봉건조선이 계속 존속하는 세계관적 특성을 반영하여 조선족 간첩사건을 설정하기로 하였으며, 이를 '''서백림사건'''으로 명명하였다. 사건의 내용은 조선족 가운데 한 인물이 서방세력의 공작원과 접촉하여 간첩활동을 벌였다는 것으로 설정하며, 이는 봉건조선이 꾸민 정치공작의 결과로 규정하기로 하였다.
또한 반우파운동에 해당하는 정치운동을 더욱 확대하여 풍중운 집권 말기 청나라 황족 잔존세력과 동북지역 국민당 전향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이후 서백림사건이 련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정치숙청이 더욱 확대되고, 그 반작용으로 백학림이 국가주석에 올라 국가 말기의 정치적 전환기를 형성하는 것으로 설정하기로 하였다.
당사에 관하여 위원회는 중국공산당과의 분당과정에서 당내 정치세력 가운데 마오주의의 영향을 받은 농본사회주의 세력이 주요 파벌로 성장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당의 발전과정은 스딸린의 사망을 기준으로 세 시기로 구분하기로 하였다.
초기에는 반모택동주의와 맑스-레닌주의를 기본로선으로 삼고, 스딸린 사후에는 수정맑스-레닌주의와 탈스딸린주의가 점차 등장하도록 설정한다.
후기에는 개혁개방을 지향하는 세력이 당내 주도권을 확보하면서 당의 일관된 로선이 분열되고, 그 결과 민국시대로 이행하는 력사적 전환을 형성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위원회는 력사적 숙청사건과 민공시대로의 이행은 현대사의 필연적인 발전과정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1991년 쏘련의 붕괴 이후 전개될 민주화 과정과 중국과는 구별되는 동구권적 사회문화 형성을 위하여 문화적 설정을 보다 세부적으로 보완하기로 결정하였다.
우선 로어의 도입시기는 1960~1970년대 친쏘파 리립삼 집권시기에 급진적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설정하기로 하였다.
이를 통하여 국가 전반의 언어생활과 사회문화가 점차 동구권적 특성을 띠도록 한다.
민족관에 있어서도 친쏘파 집권 이후 민족자결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제기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다수민족인 한족 가운데 일부가 족보를 통하여 자신의 만주족 선조를 재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복고적 풍토가 형성되는 것으로 한다. 다만 이러한 현상은 일부 계층에 한정하며, 한족 사회 내부에서 만주족 정체성을 새롭게 해석하는 사회문화적 흐름으로 규정한다. 이 과정에서 만주족이라는 정체성은 혈통 그 자체보다 시대적 해석과 민족자결주의적 분위기에 의하여 새롭게 구성되는 개념으로 설정하기로 하였다.
인명의 로어화에 대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확립하였다.
- 만주족 인물은 본래의 성씨를 유지하되, 로씨야식 접미사 '''-예브(-ев)''', '''-오브(-ов)''' 등을 부가하여 성씨를 구성한다. 이름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로어식 이름으로 개칭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혁명 원로세대는 전통적인 만주식 이름을 그대로 유지한다. 이를테면 '''뉴후루 아이싱고브'''와 같은 인물은 기존의 이름을 유지하며, 이후 세대의 만주족 인물부터 로어식 이름을 사용하는 것으로 설정한다. 이를테면 '''푸차 자이탄'''은 '''푸차로브 마뜨베예브(Фучаров Матвеев)'''와 같은 형식으로 개명한다.
- 한족 인물은 성명을 로어 음역에 따라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를테면 '''리립삼'''은 '''리 리싼(Ли Лисань)'''으로 표기한다.
- 후이족 인물은 문화혁명 이전까지 아랍계 이름을 사용하였다는 설정을 반영하여, 아랍계 이름의 음역을 성씨화하는 방식을 적용한다. 이를테면 '''마지총'''의 경우 성씨 '''마(馬)'''를 본래 '''무함마드''' 계통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정하여 '''무하메도브'''와 같은 형식으로 로어화한다.
위원회는 이러한 설정이 동구권적 문화양식을 적극 수용하면서도 만주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을 유지하는 절충안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복식에 대하여서는 리립삼 집권 이후 국가의 공식행사에서 양복을 점차 도입하는 것으로 설정하기로 하였다. 다만 국가주석을 비롯한 최고지도부의 공식 정치복식은 인민복(중산복)을 계속 유지하도록 하며, 양복은 점차 공적 복식의 범위 안으로 확대되는 것으로 설정한다. 이에 따라 림풍 집권기에 이르면 양복은 국내외의 공식행사에서도 널리 착용되는 공적 복식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인민복은 여전히 정치권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복식으로 유지하도록 한다.
민국시대에 들어선 이후에도 아이싱고브와 남춘봉 등 구쏘련권 문화를 계승하는 인물들은 공식석상에서 계속 인민복을 착용하는 것으로 설정한다. 그러나 이후 세대부터는 양복이 정치적·공식적 복식으로 완전히 정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한다.
따라서 인공시대 후기에 양복이 등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설정이 아니라, 동구권화가 가져온 가장 가시적인 사회문화적 변화 가운데 하나로 해석하기로 하였다.
아울러 동구권 국가들의 훈장제도를 적극 반영하여 국가훈장과 각종 표창제도를 확대하고, 일반 시민에게도 폭넓은 훈격을 수여하는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 세계관의 개연성과 관찰성을 더욱 높이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위원회는 국가상징이 혁명국가 특유의 시대성과 디스또삐아적 분위기를 충분히 반영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국기에 대하여서는 혁명선언기의 다소 투박하고 선전적인 미감을 살리기 위하여 현행 국기를 수정하기로 결정하였다. 적색 바탕 위에 동일한 비률의 황색 가로띠를 배치하여 삼분기 형식을 구성하고, 중앙에는 낫과 망치를 배치하는 것으로 한다.
국장에 대하여서는 현행 도안이 국가의 혁명성과 상징성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고 인정하여 별도의 변경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
당의 상징에 있어서는 당기를 현행 깃발로 유지하며, 당문장은 국장의 붉은 별과 낫, 망치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낫과 망치의 도안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서양식 망치와 전통적인 낫이 서로 교차하는 형식을 계속 유지하기로 하였다.
위원회는 세계관 설정의 문서화를 올해 9월 중으로 잠정 확정하기로 하였다.
또한 조직의 운영체계를 단계적으로 정비하여, 추후 조직을 '로동조합' 형태로 재편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아울러 세계관의 공식 출범 이후에도 설정의 개연성·관계성·관찰성의 세 원칙을 지속적으로 검토하며, 력사·문화·정치 각 분야의 설정을 보완하는 사업을 계속 추진하기로 하였다.